• 제목/요약/키워드: historical value

검색결과 844건 처리시간 0.025초

화서 이항로의 학문관과 시세계 (Hwaseo Lee Hang-ro's View of Scholarship and the World of his Poetry)

  • 이훈
    • 동양고전연구
    • /
    • 제69호
    • /
    • pp.259-296
    • /
    • 2017
  • 본고는 화서 이항로가 학문 문로를 통해 정립한 학문관의 실체를 고찰하고, 시세계에 나타난 작법상의 특징을 구명한 것이다. 화서의 시가 그의 학문과 표리를 이룬다는 측면에 집중하여, "화서집"을 통해 화서의 학문관이 정립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의 학문관으로 특정화할 수 있는 개념어를 도출하였으며, 화서의 학문과 사상이 투영된 시를 위주로 하여 작법상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분석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화서는 오서(五書) 오경(五經) 역사서 주자서 "송자대전"을 아우르는 학문 문로를 통해 '지경치신(持敬致愼)'을 근본으로 하는 학문관을 정립하고,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을 병행하는 실천적 학문을 추구하였다. 화서의 시는 작법상에서 용사의 구사, 그리고 서사와 의론의 교직(交織)이 두드러진다. 용사에 있어서는 차용과 변용에 머물지 않고 어휘가 갖는 일반적인 함의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더 나아가 조어(造語)를 창출해 내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화서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행적에 따라 압축적으로 서사를 서술하고 의론을 개진하면서 정서를 표출하였다. 특히 맹자의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서사와 의론의 교직으로 서술한 시는 화서의 학문과 사상이 집약된 것이자 화서의 문학성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산업유산자원의 이용·관리·보존을 위한 메타데이터 요소 설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Metadata Schema Development for the Use, Management and Preservation of Industrial Heritage Resources)

  • 백재은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 /
    • 제56권2호
    • /
    • pp.231-254
    • /
    • 2022
  • 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기술적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미래 산업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과거의 산업 환경, 산업유산·유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활동으로 인해 생산된 산업유산자원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기에 역사적·보존적 가치를 지니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존재한다. 즉, 산업유산자원은 장래를 위한 중요한 기록물이자 증거로 이용적·관리적·보존적 관점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메타데이터는 정보자원의 체계적인 이용, 관리, 보존을 도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특히 역사적·문화적·보존적 가치가 있고 각양각색의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하는 산업유산자원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자료의 스토리, 유형, 시대 등과 관계를 맺는 다양한 관점의 메타데이터 요소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상이한 형식의 산업유산자원을 포괄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메타데이터 요소를 설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기존의 산업유산 관련 메타데이터들을 비교 분석하여, 산업유산자원의 이용·관리·보존이라고 하는 목적에 적합한 메타데이터를 설계하였다. 최종적으로 5개의 유형(관리, 기술, 보존, 정보기술, 이용)으로 그룹화하여 총 25개의 상위요소와 86개의 하위요소, 그리고 어플리케이션을 작성하였다.

기록과 문화유산 관점에서 본 교육 행정박물 관리시스템 설계: J 교육대학 사례를 중심으로 (Design of an Educational Administrative Artifacts Management System from the Perspective of Records and Cultural Heritages: A Case Study on J College of Education)

  • 김현태;전한역;배성중;오효정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 /
    • 제22권2호
    • /
    • pp.75-93
    • /
    • 2022
  • 현재 우리나라는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다수의 학교들이 폐교될 위기에 직면해있으며 지역사회에서는 교육기관을 통폐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 교육문화의 변화를 보여줄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다수의 교육 관련 기록물들이 멸실·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교육 행정박물은 과거 교육기관의 운영에 따른 이력과 이에 담긴 교육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자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관리 방안이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교육 행정박물이 가진 특성을 기록학적 관점과 문화유산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도출하기 위해 현재 공공기관에서 도입하고 있는 표준기록관리시스템, 특수유형 기록물 관리시스템, 사료 관리시스템의 주요 기능을 비교·검토하였다. 나아가 J 교육대학의 행정박물 보유현황 및 관리 사례 분석을 통해, 교육 행정박물 관리를 위한 시스템의 필수 기능과 이에 따른 메뉴 구성안을 제시함으로써 연구 결과의 실효성을 검증하였다.

사운드아트 큐레이팅 연구 (Study of Sound Art Curating)

  • 임산
    • 문화기술의 융합
    • /
    • 제8권5호
    • /
    • pp.171-176
    • /
    • 2022
  • 본고는 20세기 중반 이후 펼쳐진 상호학제적인 융합적 예술실천의 핵심적 유형인 사운드아트 큐레이팅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고찰한다. 이에 '사운드아트'의 시작에서 현재까지의 발전적 과정을 정리하되, '사운드'라는 재료가 기능한 시각예술의 맥락을 시대 순으로 살피고 주요한 사운드아트 전시의 큐레이팅 사례를 중심으로 '사운드'가 제공한 미학적 체험의 파장과 동시대적 의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문은 세 개의 섹션으로 구분하여 전개한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19세기 후반 미래파와 다다이스트의 사운드 시에 뒤이어 1913년 마르셀 뒤샹이 음악악보를 시각예술과 접목했던 시도 등이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의 시각적 음악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음을 인식한다. 이에 이러한 배경이 '사운드'를 새로운 미디어로서 다루는 전시의 등장을 야기했음을 설명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예술적 미디어로서의 사운드가 시각성이 지배하는 전시공간과의 비판적 관계성을 성찰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관객이 전시장의 조직 내에서 마치 하나의 시각적 오브제처럼 사운드를 체험하도록 하는 큐레토리얼 방법론을 분석한다. 본고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시장에서의 지각적 구조를 관습화 했던 역사적 실천을 비평적으로 대하며 동시대 예술현장에서 생명력 넘치는 사운드의 역할을 고민한 사운드아트 큐레이팅의 유의미한 방법론을 사유해 본다.

비정형 데이터 분석을 이용한 수원 화성의 문화·기술적 영향요인 연구 (A Study on the Cultural and Technical Influence Factor Using Unstructured Data Analysis)

  • 박은수;김지은
    • 한국과학예술포럼
    • /
    • 제20권
    • /
    • pp.227-241
    • /
    • 2015
  •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한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는 보다 세분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해 과거 공간 중심의 개별적인 분야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영향, 요인, 특성들이 단일 분야만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게 되었으며,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렇게 정보와 지식 전달체계의 발전으로 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문화 콘텐츠가 다양하게 생성되고 소멸되고 있으나, 한 가지 관점만으로 설명 또는 이해가 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들의 다양성을 살펴보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역사적 우수성을 지닌 전통 공간인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문화·기술적으로 영향이 된 요인을 도출하여 공간 형성에 주요한 요인이 된, 핵심적인 요소들을 살펴보고 관련 요소들의 중요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대상인 수원 화성은 정조의 명(命)에 의해 조성된 신도시이다. 당시 수원 화성은 새 시대를 꿈꾸던 많은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담겨 있는 공간으로 과학기술의 진보와 발전 뿐 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과 문화적 가치로써 다양한 시·공간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문화와 기술이 융합된 국내 전통공간의 영향 요인을 효과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분석 방법론으로 적용되는 비정형 데이터 기법은 공간을 해석함에 있어 새로운 가치 판단과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전통공간 및 문화에 대한 다각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틀을 제공하고자 새롭게 시도되는 연구이다.

송대 무학에 관한 사적 고찰 (A Historical review on Martial Study for Song Dynasty)

  • 신수용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 /
    • 제8권2호
    • /
    • pp.9-18
    • /
    • 2014
  • 이 연구는 병법교육을 담당하였던 송대 '무학(武學)'을 주제로 문헌적 연구를 실시한 것이다. 중국에서 무거(武擧)와 무학은 무신관료(武臣官僚) 체계와 연관이 있으며, 무술을 전통체육활동으로 취급하는 체육학에서도 중요한 사료가 된다. 무학의 설립은 송대의 관료주의와 유교사상의 기풍으로 덕(德)과 의(義)를 갖춘 유장(儒將) 개념의 등장과 확산이 단초가 된다. 무학은 최초로 1043년(慶歷 3년)에 설립되고 1072년(熙寧 5년)에 공식적인 면모를 갖추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선발하는 기능이 원활해지면서 정치상의 효과를 보아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켰다. 무학 교육내용은 첫째, 보병·기병·궁병의 신체 기술과 둘째, 경서인 무경칠서(武經七書) 즉,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위료자(尉繚子),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 강태공육도(姜太公六韜), 당리문대(唐李問對)의 뜻을 이해하여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 셋째로 현실적인 문제해결 등을 시험하여 그 대책을 가르쳤다. 이러한 무학은 신체기술(人), 전쟁(事), 무기(物)의 세 가지 측면을 포괄하고, 교육·선발·승진의 기능을 담당하여 무거제의 발전과 존속을 꾸준히 뒷받침하였다. 수집된 자료를 통해 중국의 전통사회에서 체육전문인이라고 하라 수 있는 무관의 조건이 신재는 물론이고, 지도자의 통솔력과 공맹(孔孟), 그리고 병법을 강론하는 등의 지식을 겸비해야하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기 기념물보존 행정조직의 탄생과정 고찰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an Administrative Organization for Monument Conservation during the French Revolution)

  • 조용훈;김영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6권3호
    • /
    • pp.254-273
    • /
    • 2023
  • 2023년 문화재청은 60년간 이어져 온 '문화재' 체제를 '국가유산' 체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유산 개념발전의 역사맥락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국내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문화유산과 관련한 개념들은 국외에서 수입한 것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원산지에서의 개념발전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화유산 개념의 원산지로 주류를 이루는 유럽을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유럽 내에서도 프랑스를 선택하였다. 프랑스는 18세기 말 공화국을 설립한 이래로 일찍이 유럽의 기념물 개념에서 국민의 유산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프랑스의 역사 중 프랑스 대혁명기를 대상으로 삼았다. 프랑스 대혁명기 구체제가 붕괴되고 보호체계를 잃어버린 기념물들이 어떻게 다시 새로운 국민국가의 보호 테두리 안으로 들어갔는지가 본 연구의 탐구대상이다. 프랑스 정부는 기념물들의 보존을 위한 행정조직으로 기념물위원회 및 예술임시위원회를 탄생시켰다. 두 조직은 혁명과 전시상황 속에서 이념과 정치선전에 구속되었기 때문에 기념물 보존활동에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지침서를 통하여 보존원칙을 수립하였고 기념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전국에 배포한 지침서 중 기념물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국민의 유산이라는 시각을 보였다는 것은 선구적이다. 이것은 이후 프랑스의 문화유산 개념발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이 흐름 속에서 기념물, 역사기념물, 문화재, 문화유산으로 프랑스의 문화유산 개념은 발전해나간다. 프랑스 혁명기의 역사는 구체제의 붕괴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이전 체제의 기념물들을 새로운 보호체계 속에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분단국가로서 가치관의 혼란위험이 잠재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분야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신라왕경 성곽의 현황과 조경학적 차원의 연구방향 (Present Condition of Fortress of Silla Capital and Research Direction on Landscape Architecture)

  • 김형석;심우경;이원호;안계복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3권1호
    • /
    • pp.1-11
    • /
    • 2015
  • 신라왕경 경주는 그동안 고도의 경관골격으로서 성곽에 대한 가치에 관심이 부족했다. 경주를 포함한 많은 성곽들은 정비하여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하거나 산성에 탐방로를 조성하는 것이 그간의 방법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신라왕경 경주의 경관골격인 성곽에 대해 월성(月城)과 명활성(明活城)을 중심으로 역사적 경관적 가치를 살펴보고 조경학적 차원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하였다. 월성과 명활성은 신라시대 왕궁으로 기능하였던바 단순히 외형적 정비만을 통한 복원보다는 성곽 내부에 대한 자세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월성의 경우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시행중에 있지만 산성지구를 대표하는 명활성은 세계유산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은 관리로 인해 그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 이들 유적에 대해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왕궁으로 사용될 당시의 흔적을 통해 신라 왕궁의 조경사적 연구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경주지역 성곽유적에 대한 조경학적 차원의 연구방향으로는 첫째, 그동안 성곽의 형태와 축성방법 등에 치중한 연구에서 벗어나 성곽 내부공간까지 포함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월성과 명활성의 경우 신라시대 왕궁으로 기능했던바 원지, 누정, 수구시설, 괴석, 조산, 포장, 동선체계, 식재흔적 등에 대한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비교 대상으로 동시대의 중국, 일본, 고구려의 사례와 비교를 통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정원고고학적 방법의 적용은 문헌기록이 빈약한 고대정원 연구에 있어서 객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방법이다. 하지만 월성발굴조사에 있어 지금까지의 발굴처럼 고고학 중심의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얻을 수 있는 성과와 정보가 제한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정원고고학의 토대를 통한 조경분야의 참여방안이다. 항공사진, 고고학적 조사, 역사적 건물 분석, 지표면 탐사, 발굴기법, 토양 및 화분분석 등을 통한 환경시료 채취, 유적 발견과 분석과 같은 정원고고학의 적용을 통해 월성을 포함한 신라왕경의 조사 및 연구에 활용한다면 조경학 차원의 많은 연구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경학 전공자들의 고고학적 지식습득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정원고고학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를 초청하여 국제학술심포지엄을 통한 국내의 정원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기타 월성과 경주지역 신라 성곽의 입지 연구, 성곽 내외 공간에 대한 수목 활용 및 처리방안 연구, 월성 해자의 조경학적 연구방향을 제안하였다.

일제시기 총독부 기록과 도시계획 기록의 평가 혹은 재평가 - 이론적 쟁점과 평가의 실제 - (Appraisal or Re-Appraisal of the Japanese Colonial Archives and the Colonial City Planing Archives in Korea: Theoretical Issues and Practice)

  • 이상민
    • 기록학연구
    • /
    • 제14호
    • /
    • pp.3-51
    • /
    • 2006
  • 이 글에서 필자는 총독부 도시계획기록을 포함한 일제 식민지 시기 역사기록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러한 기록에 대해서 여러 가지 평가론을 적용시켜 검토해 보았다. 그럼으로써 상대적으로 유용하고 실제적인 평가 방법론을 도출해 보려고 시도했다. 도시계획기록을 포함한 총독부 기록은 기록학적인 평가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대의 보존기간표에 의해 영구기록으로 결정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기록으로서, 기록을 생산한 조직의 위상과 기능이 명확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으며, 기록 생산의 맥락이 대체적으로 불분명하고, 전체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 일부가 우연히 살아남아 보존되기에 이른 것들이다. 총독부 기록과 도시계획기록에 적용시켜본 평가론의 쟁점은 기록의 본원적 가치에 대한 논쟁, 쉘렌버그의 역사기록에 대한 정보가치 평가론, 미래의 이용가치와 경제성의 논리에 기반한 소장 기록 재평가 이론의 유용성, 기능 기반 평가와 도큐멘테이션 전략,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식민지 기록으로서의 특성에 의한 평가, 일제 식민지 기록의 내재적 가치, 당대와 현대의 기록처분권에서 도시계획기록의 "영구 보존기록"으로의 결정 등이었다. 본원적 가치 논쟁에 비추어보면 총독부와 도시계획기록은 오늘날의 대부분의 공공기록과 마찬가지로 진본성과 객관성을 보장받는 기록은 아니다. 생산자의 기록 생산 의도와 진본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역사적 사료로서 사용될 수 있는 기록이다. 소장기록 재평가론은 경제성 및 효율성의 관점에서 평가를 거치지 않은 기록을 계속해서 더 보존할 필요가 있는가를 판별하는데는 유용하지만 식민지 기록같은 유일성과 희귀성이 있는 기록에는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붐스의 사회 표상화 평가 이론, 즉 기록의 평가 및 선별 준거를 기록의 내적 특성이 아닌 기록이 생산된 사회적 과정과 그 사회를 대표하는 정도에서 찾아야 한다는 접근방식이나 도큐멘테이션 전략, 즉, 당대의 대표적 지표를 선별하고, 개별기관의 범위를 넘어서는 전 사회적 차원의 기록을 평가 선별하고 수집하는 접근 방식이 과거 역사기록인 총독부 기록이나 도시계획기록의 평가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유용한 평가틀이 되지는 못했다. 총독부기록은 식민지 통치를 증거하는 얼마 되지 않는 소수의 기록으로서 특정 연대 이전의 기록을 역사기록으로 보존하는 평가 관행으로 볼 때에도 당연히 보존되어야 하는 기록이다. 역사기록으로 결정되는 기년도가 법제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행적으로 보존된 것이 그런 인식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총독부 도시계획기록은 색채로 된 도면과 과거의 도시와 가로의 사진 등 실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디지털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원본을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기록으로 평가된다. 총독부 도시계획 기록의 평가는 결과적으로 거시적 기능적 분석론 등 발전된 평가론의 반영 노력에도 불구하고 쉘렌버그식의 역사적 기록의 정보 가치의 평가 방식으로 회귀했다. 역사적 기록이 갖는 정보 가치의 미시적 평가 방식이 위주가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총독부 지방행정기관의 조직의 기능과 활동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재구성해주는 작업이 수행될 수 있었다. 맥락 정보를 잃은 보존기록의 맥락 정보 및 배경 정보를 최대한 재구축하여, 전체 총독부 기록의 평가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이를 통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조순의 풍고집(楓皐集)을 통해서 본 옥호정의 정원고고학적 가치 (The Garden Archaeological Value of Okhojeong through Kim Jo-sun's Punggojip)

  • 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41권4호
    • /
    • pp.49-56
    • /
    • 2023
  • 본 연구는 옥호정의 조영자 김조순의 풍고집에 나타난 옥호정도의 내용 전체를 분석하여 풍고집내에 옥호정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의 내용을 통해 기존 연구와 옥호정도를 비교하고 조영자와 정원과 관련된 교유관계, 조영사실 등을 규명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옥호정의 조영자인 김조순은 문인취향이 강했던 요인으로 정원의 조영과 경영에 관련된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표현하여 정원의 원형을 추정하기 용이했다. 둘째, 옥호정의 조성연대는 기존에는 을해벽의 각자를 근거로 1815년으로 추정하였으나 이성민이 동성교여집에 김조순이 장씨집을 사들인 기록을 밝혀 1804년으로 정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풍고집에 나타난 김조순의 문예취미는 철저하게 중국고사 등을 따랐으나 정원조영 부분은 사실에 근거한 정원고고학적 기록으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정원의 부지확장에 대하여는 옥호정 남측 부분의 경계를 김생 사호에게 양도 받아 반칸 정도 늘린 것으로 추정되고 원예활동과 정원 곳곳에 가산이나, 석상, 괴석, 분재, 수반 등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석가산을 조성하는 기법과 풍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어린 소나무의 이식에 대한 전문적 식견, 정원의 화목에 대한 애호와 풍류는 시문 곳곳에 깃들여 있다. 아울러 옥호정의 입지를 선정하기 위한 지형 지세의 파악과 기존 식생 등의 현황파악 능력, 초목을 베고 땅을 고른 과정과 기와와 초가로 지은 집들, 이 곳에서 한거하기 위한 목적과 안전을 기원하는 내용이 완벽한 옥호정 조성의 단계를 보여주고 모정인 산반루의 위치와 조성과정을 알 수 있어 정원고고학적 가치를 지닌다. 향후 풍고집에 등장한 교유인물들의 문집의 해석을 통해 옥호정의 정원원형에 대한 보다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기 위한 후속연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