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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타리의 '생성'사유를 바탕으로 한 대학교 예술관 계획연구 (A Study of University Art Center Design based on the Deleuze-Gattari's 'devenir' thought)

  • 강훈
    • 한국디지털건축인테리어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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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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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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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e purpose of this study on university Art Center Design based on the Deleuze Gattari's 'devenir' thought. So, this paper studies the concept of Deleuze Gattari's 'devenir' thought. Expressing the potential constantly is to actualize he 'Devenir Architecture', and planing by using the digital design method of utilizing the digital media. Above all things, raising the virtual through the digital method, it creates devenir space that it try to make sustainable moving space. This trial can be one actual example as form generation in digital architecture, it is significant to be presented the one way to design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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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로 본 다이어그램(Diagram)에 관한 연구 - 질 들뢰즈의 '추상기계'와 피터 아이젠만, 벤 반 버클의 '다이어그램'을 중심으로 - (A Study on 'Diagram' as a Digital Design process - Through G. Deleuze's 'machine abstraite' and Peter Eisenman, Ben Van Berkel's 'Diagram'-)

  • 강훈
    •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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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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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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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Among the architects who use diagrams as a digital design process, especially through Peter Eisenman and Ben van Berkel's works, we have specifically got the meaning of their diagrams. Their diagrams act as 'the block of becoming' and we can regard the diagrams not only as a tool of devenir including architect's root thoughts beyond a tool of schematic presentation, but also as architect's intention including devenir thought. And in the case of diagrams which the architects use, we can recognize that architects' intentions are to think that Deleuze's 'machine abstraite' evolve the diagram into various and transformed form. That is to say, Peter Eisenman interprets the machine abstraite as a root thought of devenir by using diagram as medium to reveal the virtual. And Ben van Berkel transforms the diagram by including all external conditions into selected diagram which shows the abstract relations to the elements. We can get the meaning of the machine abstraite from these cases well. This study will play an important role in giving good usage of the diagram in making a form of contemporary digital architecture and showing the direction of form creation field.

힘과 움직임 그리고 시간을 표현하는 디지털건축형태에 관한 연구 - 들뢰즈.가타리의 시뮬라크르 사유를 표출하는 사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Digital Architectural Form expressed on the Movement, Force and Time - focused on the works based on the Deleuze.Guattari's idea of 'Simulacre' -)

  • 강훈
    • 한국디지털건축인테리어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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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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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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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Since the past, an attempt of figuration which is for movement, time and force has existed constantly. A process of representative from expressed on the movement, time and force creates events, and the process through the events expresses the idea of a simulacre. Furthermore, Architectural works for potentiality to give a demonstration are in common with hybrid characteristics, and have lasting creation of flux architecture. Ignoring the gravity of the floating figuration, so it appears unrealistic hyperphysical virtual space that easily could make the life of creation. For this reason, the form generation based on the digital design method is expressed the important method. In conclusion, actualizing the virtual is the suitable way for 'devenir architecture' based upon the Deleuze Guattari's idea of 'simulacre' and creating the from generation on the contemporary digital architecture design in a similar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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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문학과 문학교육의 과제 (Deleuze and Guattari's Death, the Minor Literature and the Minor Philosophy of Education)

  • 윤승리
    • 한국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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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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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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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생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소수 교육철학의 형성에 기여한다. 소수 문학에 대한 탐구는 이 관계를 확고하게 해준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 문학이란 소수 언어로 쓰인 문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들이 다수언어로 만들어내는 문학을 말한다. 그들은 카프카의 작품들을 그 전형으로 내세운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이 생성(devenir)으로서의 죽음을 말한다. 죽음과 소수 문학은 강도(intensité)라는 이론적 도구를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전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수 교육철학은 이런 주장을 좇아 그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잘 포장된 상품으로서의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만 만족하는 현대 교육철학자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특정한 방식으로만 철학자들을 독해하도록 강요하는 주류 교육철학에 맞선다. 우리는 이 가능성을 정동(affect)으로서의 언어에 입각한 교육활동을 통해 제기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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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죽음에 관한 진지한 사유와 죽음의 형이상학적 의미 (La pensée sérieuse sur la mort et le sens métaphysique sur la mort chez Kierkegaard)

  • 이명곤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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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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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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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죽음에 대한 철학자들의 입장은 자신들의 세계관에 따라서 다양하게 달라지고 있다. 죽음을 무시함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기도 하며, 오히려 죽음에 대한 명상을 통해서 보다 진정한 삶을 살고자 하기도 한다. 키르케고르의 사상 안에서 죽음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처럼 등장하는데, 이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보다 밀도 있고 진정한 삶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사상에서 죽음이란 세속적인 삶으로부터의 죽음 혹은 자기부정을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은 근원적으로 문제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영원적인 것을 함께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그의 인간관 때문이다. 인간의 현재의 삶에 대한 절망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이를 수도 있고, 또한 '자기부정'을 통해 단독자로서 절대자 앞에 나아갈 수도 있다. 인간이 자기부정을 통해서 진정 실존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 곧 '진지함'을 의미하는데, 진지함의 부재(不在)는 정신적 존재 혹은 영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의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죽음에 대해 진지한 사유'란 죽음을 자신의 현존재의 일부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유를 의미하며, 이러한 '진지함'을 '영원과 맞닿아 있는 현실의 삶'이라는 '현재에 충실함'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원처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그의 사유는 육체적인 죽음이 영원성으로서의 생명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하고, 오히려 죽음 이후에 진정으로 의인들이 갈망하였던 그러한 삶이 충만하게 실현될 것이라는 종교적인 확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키르케고르의 사유는 죽음에 대한 '체험된 실재'라는 차원에서 '죽음에 대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철학이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는 고대철인들의 지혜를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해명하는 사유라고 할 것이다.

탈근대 희곡에 나타난 인간동물의 탈경계성 연구 타자성, -되기(devenir) , 생태적 공존을 중심으로- (A Study of Human/Animal Liminality in Postmodern Plays: applying 'Otherness', 'Becoming', and Ecological Coexistence)

  • 김방옥
    • 한국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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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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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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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In these days, we come across a growing interest in animals from various perspectives. Considering that the posthumanistic point of view forms the major stream of postmodern humanities, ethics and philosophies, this paper tries to study the liminality between human beings and animal as appear in postmodern plays. The cases of a middle-aged architect falling in love with a goat (The Goat, or Who is Sylvia? by Edward Albee); An abandoned (human-)dog that encounters his old mistress under the moonlight (A leaseholder by Yoon Young-sun); Coexistence of men, dog, plants in a Country life (White Cherry by Bae Sam-sik); A Mutual sympathy between a swarm of bees and a woman dying of cancer(Bee by Bae Sam-sik) were discussed referring such concepts as 'Otherness' of Derrida, 'Becoming'of Deleuze, 'a bare life' of Agamben and ecological co-existence. In The Goat, the moment of Martin who happened to meet a goat's eyes in a suburbs can be paralleled with that of Derrida who one day found himself caught up with the gaze of a cat in the bathroom while he was naked. They shared the common experience in that they went through the ontological and mysterious abyss that rendered them to raise the question of "Who am I ?" In A leaseholder, a young woman returns to her hometown exhausted by the calculating human society and meet her old time (human-dog). This story reminds us of Agamben's werewolf, Levinas's dog Bobby and Derrida's Zootobiography. He, an abandoned pet, both excluded and included from human society, now appearing as a mysterious human-dog, welcomes, embraces, and comprehends his old mistress and exposes his individual remorses and passions as an animal-subject. In White Cherry, the author describes the coexistence of all the life-beings such as an old dog, a golden bell tree, the deceased daughter and even a fossil remains in a country life. Bee is a story of a beekeeping village where bees were leaving and disappearing. A swam of bees fly down on a woman who was dying of cancer. With physical and spiritual empathy the dying woman helps the swarm of bee to conduct a new birth and a new life.

토미즘의 인간적 행위에서 '자기초월'의 의미 (La signification du dépassement de soi dans le Thomisme)

  • 이명곤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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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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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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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 연구의 목적은 토미즘에 있어서 '인간적 행위'가 가지는 '자기초월의 성격'을 조명하는 데에 있다. 토미즘에 있어서 이성과 의지를 가진 인간의 본성은 궁극적인 목적에로 지향성을 가진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행위'가 아닌 '인간적 행위'란 이러한 본성에 적합한 행위를 말하며, 현재의 상태보다 더 낳은 상태를 지향하는 '자기초월'을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기초월적 성격을 본질적으로 가지게 되는 인간적 행위의 근거는 인간의 형상인 이성혼(理性魂)이 '자립적인 형상'이라는 데에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인간적 행위의 자기초월의 성격은 크게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볼 수 있는데, (1)자연적 진보의 질서 안에서의 초월, (2)도덕적 질서 안에서의 자기초월 그리고 (3)종교적 삶에 있어서 자기초월이 그것이다. 자연적 진보에서는 우선적으로 이성적 영혼의 특성에서 드러나는데, 아퀴나스는 인간의 이성적인 덕을 '나약함 안에서의 충만함'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이성적인 덕이란 '외적 감각능력들의 목적지($finalit{\acute{e}}$)'로서 고려하기 때문이다. 외적 감각을 통해서 인간은 '감각적 상(especies sensibilis)'들을 수용하며, 이미지들을 보존하고, 이 이미지들은 기억 혹은 추억이라는 형태로 그의 실존의 일부가 되며, 자기의식을 의미하는 정신적인 실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에게 있어서 이성의 덕은 단순히 사변적인 능력이 아니라, '되어짐'의 질서, 충만함의 질서 안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토마스는 이성(ratio)의 능력을 '생성(generatio)'에 비유하고 있으며, 지성(intellectus)을 존재(esse)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성은 감각을 초월하고, 지성은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도덕적 질서 안에서의 자기초월은 의식의 진보와 관련되어 있는데, 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이중적인데, 일차적으로 외부대상에 대한 인식이요, 이차적으로 이러한 외부대상에 대한 인식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자기의식(contientia)이다. 즉 이러한 외부대상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자기의식 혹은 자기인식을 목적으로 하며, 자기인식에서 완성된다. 자기의식은 '자기동일성'에 대한 의식을 말하는데, 여기서 인간의 특유한 도덕적 행위가 발생한다. 즉 당위 혹은 의무라는 것은 언제나 '자기동일성'에 대한 적합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가 지속적일 때, 도덕적 삶이 발생하는 것이다. 도덕적 삶이 그 자체 초월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은 '자기동일성'에 적합한 인간적 행위란 언제나 '보다 나은 것' 보다 '이상적인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삶에 있어서 토미즘의 특성을 보다 잘 부각하기 위해서 본 논문에서는 키엘케고올의 종교적 삶에 대한 초월성을 우선적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종교적 삶에 있어서 초월적 성격은 '절대적 차원의 초월'로서 근본적으로 합리적으로 기술되거나 표현될 수 있는 모든 문화적인 인간적인 지평을 넘어서는 '초월' 즉 '절대적 초월($d{\acute{e}}passement$ absolu)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신과 인간 사이의 '친근성($affinit{\acute{e}}$)'은 수용된 덕들(virtutes infusas)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일종의 종교적인 초월이 수반된다. '가능태'중에 있는 하나의 (수용된)덕이 '현실태'가 되는 곳에는 반드시 '자기초월'의 행위가 수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수용된 덕의 국면은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곧 '인간적인 것'에서 '신성한 것'에로의 초월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퀴나스의 사유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한 인간의 종교적인 삶 안에서 '자기초월'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언제나 신의 섭리가 개입하고 있다는 실재론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