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hronicl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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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기재된 Kepler초신성(超新星)의 관측기록

  • 유경노
    • 천문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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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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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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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
  • Wangjo Silok, the official chronicle of Lee Dynasty, carries 131 records on the Kepler Supernova 1604; all of them are given in the present report. Among them 112 records are detailed descriptions about the observed brightness variation over the period from October 13, 1604 (the 37th year of King Sunjo) to April 23, 1605. On July 14, 1605, an addendum is given as a final assessment of the guest star incidence. Since the apparent brightness, size and position are carefully described as compared to bright planets and stars, these records are ideal for retrieving light curve of the Kepler Supernova over the seven month period. Simple procedures are suggested for the derivation of light cu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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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 of CRISPR/Cas9: a chronicle of the CRISPR system and application to ornamental crops

  • Lee, Hyunbae;Subburaj, Saminathan;Tu, Luhua;Lee, Ka-Yeon;Park, Gwangsu;Lee, Geung-Joo
    • 농업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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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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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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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Since its first demonstration as a practical genome editing tool in the early 2010s, the use of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 (CRISPR) along with the endonuclease Cas9 (CRISPR/Cas9) has become an essential choice for generating targeted mutations. Due to its relative simplicity and cost-effectiveness compared to other molecular scissors, i.e., zinc finger nuclease (ZFN) and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 (TALEN), the CRISPR/Cas9 system has been shown to have a massive influence on genetic studies regardless of the biological kingdom. Although the system is in the process of being established, numerous protocols have already been released for the system and there have been various topics of CRISPR related papers published each year in ever-increasing manner. Here, we will briefly introduce CRISPR/Cas9 system and discuss the variants of the CRISPR system. Also, their applications to crop improvement will be dealt with mainly ornamental crops among horticultural crops other than Arabidopsis as a model plant. Finally, some issues on the barriers restraining the use of CRISPR system on floricultural crops, the prospect of CRISPR system as a DNA-free genome editing tool with efficient facilitators and finally, the future perspectives on the CRISPR system will be described.

백제 판단첨형식 연화문의 형식과 편년 (The Styles and Chronicle Years of Lotus Flower Patterns of the Shape of Straight and Pointed Petals of Baekjae)

  • 조원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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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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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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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판단첨형식 연화문은 연꽃잎이 뾰족한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원형돌기식, 삼각돌기식, 판구곡절식 등과 더불어 백제의 대표적인 연화문 형식 중 하나이다. 이 연화문은 백제 한성기부터 사비기에 이르기까지 와당을 비롯한 불상 광배, 사리병, 두침 등에 다양하게 시문되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판단첨형식 연화문은 사비기의 와당에 시문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 연화문은 중국 북조나 남조, 고구려 등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나 풍납토성 경당지구 출토와당, 용정리사지 출토 와당, 왕흥사지 출토 사리병 등에 시문된 연화문으로 볼 때 중국 북조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백제기에 나타난 여러 문양의 판단첨형식 연화문은 당시 백제의 활발한 문화교섭을 판단케 한다. 백제의 판단첨형식 연화문은 그 평면형태에 따라 보주형, 유엽형, 세장유엽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주형은 풍납토성 및 용정리사지에서 검출된 와당으로 그 시기는 한성기~웅진기의 것들이다. 반면, 유엽형 및 세장유엽형의 연화문은 무령왕릉 왕비두침, 은제탁잔, 서혈사지 와당, 구교리사지 와당, 하죽리 와당 등에서 확인되고 있어 웅진기 이후인 6세기 전반 이후의 연화문임을 추정케 한다. 현재 판단첨형 연화문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풍납토성 경당지구에서 수습된 5세기 중반대의 것이다. 그러나 향후 점진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시기적으로 선행되는 와당이 수습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아울러 다른 다양한 형식도 출토될 여지가 적지 않다. 나아가 중국 남북조시기의 사지, 왕궁지, 기타 건물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다른 판단첨형식 연화문이 수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백제 판단첨형식 연화문의 계통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방송포맷산업에 대한 연대기적 고찰 : 영국 방송포맷산업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hronicle of TV format industry : Focusing on the sociohistorical background of content industry in the UK)

  • 주재원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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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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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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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오늘날과 같은 다매체 시대에서는 미디어의 형태(하드웨어)보다 미디어의 내용(콘텐츠)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콘텐츠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국경을 넘어 공급되고 현지 시청자들에 맞게 각색된 이른바 '포맷'이라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포맷산업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1990년대부터 유럽으로 주도권이 옮겨지게 되었고, 이후 "super-formats"에 의해 확고하게 자리잡은 산업이며 오늘날 연간 31억 유로로 추정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세게 방송포맷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영국의 사례는 문화콘텐츠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방송포맷산업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고찰하고 콘텐츠 강국으로서의 영국이 가진 산업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콘텐츠산업에 시사하는 바를 찾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조선 현종 5년 1665년 대혜성의 궤도 요소 결정 (DETERMINATION OF PRELIMINARY ORBITAL ELEMENTS OF THE GREAT COMET C/1665 IN KOREAN HISTORY)

  • 안상현;최윤희;김성수
    • Journal of Astronomy and Space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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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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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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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한국의 역사서에 속에는 혜성을 관측한 기록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조선 현종 5년 1664년 겨울에 나타난 혜성을 관측한 기록을 <성변측후단자>, <천변등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에서 수집 정리하였다. 우리는 올버스(Olbers)의 방법을 사용하여 혜성의 예비 궤도 요소를 구하고, 그것을 이전의 연구들과 비교하였다 올버스의 방법에서는 혜성 궤도의 이심율 e=1인 포물선 케도로 가정한다 관측 자료를 사용하여 궤도를 계산한 결과, 근일점 거리 (perifocal distance) $q=1.07\pm0.008AU$, 근일점 통과 시간 $T=2329165.50\pm0.72$일, 승교점과 근일점의 이각(argument of the perifocus) $\omega=318^{\circ}.2\pm2^{\circ}.29$, 승교점 경도(longitude of the ascending node) $\Omega=85^{\circ}.23\pm2^{\circ}53(J1665)$, 궤도 경사(inclination) $i=160^{\circ}.28\pm1^{|circ}.56$를 얻었다.

<금옥총부>를 통해 본 안민영의 가악 활동과 가곡 연창의 방식 (Ahn Minyoung's activities on Music and the ways of Gagok playing through 'Geumokchongbu')

  • 김용찬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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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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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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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금옥총부>는 안민영의 개인 작품만으로 이루어진 가집(歌集)이다. 가집 편찬자이자 가창자(歌唱者)로 활동했던 안민영은 조선 후기. 특히 19세기의 시조 문학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루어야만 하는 인물이다. 그가 편찬한 가집인 <금옥총부>의 검토를 통해서, 안민영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곡원류>는 물론 <금옥총부>라는 가집 역시 그의 치밀한 음악적 고려에 의해 탄생된 가집인 것이다 가집에 수록된 음악의 곡조는 당시 연창(演唱)되던 가곡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대체로 <금옥총부>를 비롯한 이 시기에 편찬된 가집의 편제는, 오늘날 가곡 연창의 전통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가집의 편자인 안민영에 대해서는 그동안 적지 않은 연구 성과들이 제출되었지만, 그의 개인사적 면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부분 해명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금옥총부>에는 매 작품마다 작품의 창작 배경이나 다양한 설명을 곁들인 발문이 기록되어 있다. 발문 중에서는 작품의 창작 연대를 밝힌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연대기를 통해 안민영의 생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추적해 나갈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음악에 대한 해박한 식견이 드러나기도 했으며. 대원군 이하응을 비롯한 왕실 인물들과 당대 예인(藝人)들과의 활발한 교유의 구체적인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가집에 수록된 일부의 특정 곡조들을 취해서 부분적으로 묶어 부르는 연창 형식이 존재했음도 확인되었다. 예컨대 대원군이나 왕실 인물들에게 바치는 '하축시(賀祝詩)'는 그 성격상 철저히 연창을 전제로 창작된 것이다. 따라서 특정 인물들에게 바친 '하축시'는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세트로 묶여 연창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당시 가곡의 연창 방식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 졌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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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연곡면 유등리 '유상대(流觴臺)' 곡수로(曲水路)의 조명(照明) (A Study on the Yousang-Dae Goksuro(Curve-Waterway) in Gangneung, Yungok-Myun, Yoodung Ri)

  • 노재현;신상섭;이정한;허준;박주성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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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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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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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 대상인 강원도 강릉시 연곡동 유등리 뱀골 하류의 너럭바위에 새겨진 '유상대(流觴臺)' 각자와 암각바둑판은 이곳이 유상곡수 놀이와 신선 풍류 행위가 이루어졌던 풍류처임을 확인시켜 준다. 3차에 걸친 정밀답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통일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운(道雲)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폐허가 되었고, 1954년에 재건된, 백운사 경내에 새겨진 '만월산 백운동천(萬月山白雲洞天)'이란 암각서는 뱀골 계곡에 선도적(仙道的)풍류와 선비문화의 전통이 면면히 스며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단서이다. 최백순이 1934년 편찬한 강릉의 읍지인 동호승람 제2권에 인종원년(1545)을 전후하여 '남전현(籃田縣)의 백운사는 율곡 이이, 성제 최옥 등 명유(名儒)의 강례처(講禮處)'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공간이 유서 깊은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호승람과 완역 증보임영지에 기술된 무오년, 즉 철종9년(1858) 김윤경(金潤卿)이 창건한 백운정(白雲亭)의 존재를 통해 누정 및 동천 경영의 흔적을 추론할 수 있다. 아울러 유상대 각자 바위 계류 건너 입석에 새겨진 '백운정동천(白雲亭洞天)' 암각서는 백운정 건립 3년 뒤인 철종12년(1861)에 조성되었으며, 유상대와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는 상징적 표식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정황과 입지성을 전제로 유상대 곡수유구 흔적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유상대 주변 계류 및 암반에는 수량과 유속을 조절하기 위한 세분석(細分石)과, 유로와 잔을 가두기 위한 홈인 금배석(擒盃石)과 유배공(留盃孔)의 조탁 흔적 등을 발견하였다. 더불어 하단 암벽에서 '오성(午星)'이란 명기 아래 23인명의 각자를 발견하게 됨에 따라 이곳이 20C중반까지 유상곡수연의 성격을 갖는 풍류 문화경관의 거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공간에서는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 유상대를 중심으로 한 선비 풍류의 문화가 전승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유 불 선(儒 彿 仙)이 습합된 독특한 역사문화공간'이란 측면에서도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23인명의 정체와 유상대 각자 주체 파악 등 유상곡수 등 풍류행위를 기록한 자료 발굴 등을 통해 본 공간의 성격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기록에 전해지는 암각장기판 또한 발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바, 현재 콘크리트포장 도로의 파쇄를 통한 추가 유적의 발굴 및 노선 변경 등 원형경관 회복방안 또한 시급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벚꽃을 통해 본 근대 행락문화의 해석 (A Study on Interpreting People's Enjoyment under Cherry Blossom in Modern Times)

  • 김해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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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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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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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경분야에서 식물은 생태적 외형적 특징뿐만 아니라 설계자의 의도와 이용자 행태의 매개체 역할로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식물에 대한 연구는 생태 특성과 재배 환경에 집중되어있고, 식물을 통한 시대상 분석은 희소하다. 벚나무의 경우 현재는 보편화된 수종이지만, 일제강점기라는 도입배경으로만 설명된다. 따라서 벚나무로 인해서 변하게 된 전퉁적인 행락문화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벚나무를 연대기적 시선으로 도입과 확산, 정착 과정과 상징 의미의 변천을 살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왕벚나무는 1907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3년생 묘목 1,500본을 최초로 수입하여 남산 왜성대 공원에 식재하였다. 이후 조선의 전통공간 근대공원 신작로에 식재하였는데, 식재의 증가 배경에는 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묘목을 양육하여 판매한 것에도 기인한다. 벚나무 확산으로 말미암아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라는 것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다. 둘째, 벚나무가 대규모로 식재된 공간은 벚꽃 명소가 되었고, 당시 매체의 적극적인 홍보로 관앵과 야앵이 경성의 상춘문화로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관앵과 야앵이 보편화된 행락문화가 되었지만, 벚나무에 대한 이중적 시선과 태도는 구분된 명칭 사용으로 표출되었다. 벚꽃 앵 사쿠라가 혼재되었고, 밤벚꽃놀 이도 요자쿠라 아닌 야앵 밤벚꽃놀이를 사용하였다. 혼재된 벚꽃에 대한 단어 사용의 이면에는 벚꽃놀이를 저급한 문화로 보는 시선도 공존했다. 넷째, 벚꽃이 식재된 조선의 상징공간은 위락공간화 되어 소비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벚꽃놀이는 연예 행사 영화 상영 레뷰걸의 공연과 함께 진행되었고, 입장료만 내면 누구든지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전통적인 행락문화의 계급성은 벚꽃놀이 공간에서 와해되어 무질서한 모습이 문제 시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벚꽃(벚나무)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시기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행락문화를 변화시키는 변이점이 되었고, 더불어 현재의 일상적인 상춘문화로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