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Wooden Tab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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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출토 목간(木簡) 처방전의 석독(釋讀)에 대한 연구 (Decipherment of the Wooden Tablet Prescription Excavated at Anapji)

  • 이덕호;이선아;김남일
    •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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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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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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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e manufacture date of the number 198 wooden tablet excavated at Anapji is estimated to be between year 751 and 774. As medical artifacts around this period of time is scarce, the discovery of an artifact with distinct medical information such as names of medicinal drugs recorded in hand writing holds great value in the history of medicine. This wooden tablet was presumably a prescription for a medicinal formula. That the '灸' character which is a method of processing drugs is found after '甘草' indicates the possibility of this wooden tablet to be a practical form of prescription. On this slip, a certain sign can be found at the upper right corner of the names of drugs. This is thought to be an additional sign added to the original text. It seems to have been originated from the letter '了', based on the composition and finishing touches of the strokes, presumably to confirm the end of a work by adding the letter '了' which means 'to finish'. The base material of 靑黛 and 藍淀 are the same, and the two often took each other's place in a prescription. It is difficult to find an example of a formula where both drugs are included. Therefore, the prescription on the front with 靑黛, and the one on the back with 藍淀 of tablet 198 can be understood as separate formu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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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당 편액의 제작기법과 효율적인 보존방안 (Manufacturing and preservation of the 'No-An-Dang tablet')

  • 양필승;서정훈;서정호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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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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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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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No-An-Dang' in 'Un-Hyeun palace' was using as a guesthouse by 'dea-won-goon' built in 1864. 'No-An-Dang tablet' exhibited in 'No-An-Dang' seems to be made by using the letters which were written by 'Choo-sa Kim Jeong-Hee'. This tablet was manufactured by special processes; wood frame which was made of a Korean white pine was drawn patterns by variety pigment and latticed inside are joined with 3 of horizontal square wooden sticks and 7 of vertical square wooden sticks, then several sheets of the paper mulberry put on this frame and sheets cut along the edge of letter attached lastly. This structure of tablet could cause more conservation problems than only made in wooden structures. Therefore, replica was made and exhibited in bad condition and original one kept in museum storage for effective conservation of arte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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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탄소연대 위글매칭에 의한 순천 송광사 불패의 연대측정 (Wiggle Matching Radiocarbon Dates of a Buddhist Wooden Tablet (Bulpae) at Songkwangsa Temple, Suncheon, Korea)

  • 연정아;박원규
    • 한국가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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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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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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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date a Buddhist wooden Tablet (No. 271) at Songkwangsa Temple, Suncheon, Korea, using wiggle matching of radiocarbon dates. For wiggle matching, three samples (2nd, 16th and 34~35th rings from inner side) in the pedestal of the Tablet were selected among total of 37 tree rings. Wiggle matching the radiocarbon dates of three samples resulted in A.D. 1660~1679 (95.4% confidence interval) for the outermost ring. This interval suggested the age of this tablet as the late 17th century, which was almost at the same age as other early Buddhist tablet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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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마도3호선 해양유물 중심으로 본 고려시대 음식문화 (Food Culture of Koryo Dynasty from Viewpoint of Marine Relics of Taean Mado Shipwreck No. 3)

  • 고경희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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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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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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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ean Mado Shipwreck No. 3 is presumed to have been shipwrecked between 1260 and 1268. It departed from a Southern costal area of Yeosu in Jeonnam Province to Ganghwa Island, its final destination at which the temporal regime of Koryo Dynasty was located. In the shipwreck, a total of 35 wooden tablets were found, and forwarding places, senders, receivers, descriptions, and quantities of freight were written on the wooden tablets. The names of receivers included Kim Jun, who was influential in the late Musin Era of the Koryo Dynasty, and key institutions such as Junmin and Sambyulcho of the Musin force. Twenty wooden tables had lists of food items such as barley, abalone, salted-fermented abalone, mussel, dried mussel, salted fermented mussel, dried shark meat, fish oil, pheasant, and dried dog meat. The food items in the late 13th century were systematically examined using scientifically determined food organic remains and records of wooden tablets among the marine relics of Mado Shipwreck No. 3.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Archaeological Meanings of Wooden Tablets from Bogam-ri in Naju)

  • 김혜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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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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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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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2008년 나주 복암리유적에서 백제지방 최초로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글에서는 목간을 묵서가 있는 목제품으로 정의하고 복암리 유적 발굴보고서에 수록된 목간 65점 중 묵서가 확인된 13점을 대상으로 백제 목간 출토현황과 비교하여 복암리 목간의 의미를 살펴 보았다. 복암리 출토 목간은 모두 대형의 1호수혈에서 일괄 출토되었다. 수혈 내부 토층은 모두 43개의 층으로 세분되나 출토된 목간을 비롯한 다수의 목제품, 토기, 기와 등 유물의 시기적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목간은 다른 유구에서는 출토되지 않았으며 수혈에 일부러 폐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목간의 형태적 특징을 통해 2차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복암리 목간은 간지명 묵서 '경오년(庚午年)'이 확인된 목간과 $C^{14}$ 연대측정 결과 등을 토대로 610년을 중심연대로 7세기 초반으로 편년된다. 출토된 13점의 목간을 묵서 내용과 형태적 특징을 토대로 기능적으로 분류하면 문서목간 6점, 부찰목간 6점, 기타목간 1점으로 나뉜다. 현재까지 출토된 백제 목간은 총 89점으로 출토 지역은 나주와 금산을 제외하면 모두 부여에서 출토되었고, 사비도성 안팎의 왕궁지, 궁원지, 사찰 등으로 다양하다. 복암리 목간과 비교되는 주요 백제 목간으로는 관북리 목간, 궁남지 목간, 쌍북리 280-5번지 목간 등이다. 이들 목간과의 비교를 통해 웅진도독부 시절의 지명에 대한 검토, 지명+관등+인명 순으로 정형화된 신분표시 방식, 백제에서 군제가 실시되었고 복암리는 군이 설치된 지역이었다는 단서, 정중제 실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복암리 목간은 작성시기(610년), 작성지(군이 설치된 두힐성), 작성주체(군좌, 지방관 등)가 확실하며 기록된 내용은 백제 목간의 표준화된 신분표시 방식, 서사방식, 정중제와 양전제의 실시 등 백제 지방사회의 지배에 대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자료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 화물표 목간의 특징에 대한 고찰 - 중국 송·원대(宋·元代) 목간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Goryeo dynasty cargo tag mokkans In comparison with mokkans of the Song and Yuan dynasty)

  • 이연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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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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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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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2007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남 태안에서는 태안선과 마도 1호, 마도 2호, 마도 3호 등 4척의 고려시대 선박이 발견되었고 동시기 목간 175건이 함께 출수되었다. 태안의 목간은 고려시대 목간의 유일한 발견 사례이며, 서사 재료로서 종이가 목간을 대체한 시점에서 화물표[하찰목간]라는 특수한 용도로만 쓰이던 목간의 사용 실태를 보여준다. 태안 목간에는 운송과 관련한 연대, 수취인, 발송지, 화물 종류, 수량 및 단위, 발송 또는 선적 책임자 등의 정보가 적혀 있어 화물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으며, 목간 내용의 기재 방식, 형태, 재료와 제작 방법 등의 고찰을 통해 고려 사람들이 선호했던 목간의 형태와 특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태안의 목간은 기재 양식상 정해진 틀이 없이 자율적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화물에 부착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형태인 상단에 홈이 있는 목간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제작 과정에서 작업의 효율성 제고, 제작 공정의 간소화를 우선시하였다. 태안의 목간은 같은 시기, 동일한 용도의 신안선 및 중국 복건성(福建省) 천주만(泉州灣) 해선(海船)의 목간과 비교해볼 수 있다. 기재 내용과 양식 면에서 중국의 목간은 화주(貨主)를 중심으로 표기하고, 태안의 목간은 수취인과 함께 다른 정보도 비교적 자세히 기재하였다. 형태 면에서 중국의 목간은 두께 1cm 이하이고 하단부를 뾰족하게 다듬었으나, 태안의 목간은 두께와 하단부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제작 방법과 재료 선택에서도 중국과 한국의 목간은 차이가 있다. 이는 국내 화물 운송용이었던 고려 선박과 국제 무역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 선박의 운항 거리, 화물의 성격, 운송 관리 체계, 화물 포장 방식, 운송 주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과의 비교는 대상 연구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단편적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향후 고려 목간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기초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