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War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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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재일잡지미디어 지형과 재일사회 -1959년까지의 태동기를 중심으로- (Post-War Zainichi Magazines in Japan and Zainichi Society -Focusing on the Quickening Period until 1959-)

  • 이승진
    • 한일민족문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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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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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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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is paper summarizes the genealogy of post-war Zainichi magazines in Japan until 1959 and examines their meaning in the context of magazine history in Japa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epare the framework to view characteristics of Zainichi magazines in Japan after the war until the present from a continuous and comprehensive perspective. Zainichi, who were left behind in Japan after the war began to project diverse aspects of their lives onto magazines. Despite the poor publishing environment, censorship of GHQ, shortage of writers and financial limitations, the Zainichi society did not give up the public sphere of magazines. The confusion in this time period acted as an element to expose limitations of Zainichi magazines in Japan. Most of magazines published in 1940s and 50s had to focus on political propaganda within the political frame, and many of such magazines were only published for a short term. In other words, it is ambiguous to define the majority of them as 'magazines' and a considerable number of them cannot even confirm the existence, making it difficult to examine the whole picture of magazines from this period. However, recently excavated materials indicate that most of Zainichi magazines in Japan attempted to reflect the reality of the Zainichi society in various ways, though they were confined in the political frame. The process in which language of magazines was changed from Korean language to Japanese and then again to Korean language suggests that Zainichi magazines in Japan tried to consistently express their existence in 'ethnicity,' 'homeland' and beyond, mediated by 'politics' and 'culture.' Moreover, the experience of seeking for the possibility of Zainichi culture in Japan from the flow of cultural movements in Japan during 1950s is an experience of seeking for a popular 'expression' that overcomes the political conflict of homeland. This reveals the diversity the Zainichi society to occur afterwards. A more precise study on individual magazines published during this period would be necessary in the future.

남북 수단 분쟁 연구 (The Study on the South-North Sudan Conflict)

  • 조상현;금상문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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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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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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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의 목적은 남북 수단 분쟁의 역사와 과정을 고찰하여 남북 수단 분쟁을 이해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분쟁원인과 해결에 대한 이론과 실제적 접근을 통해 분쟁원인과 해법의 일반론적인 검토와 더불어 남북 수단의 특별한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후 남북수단 분쟁의 역사적 배경 및 원인을 19세기 이전의 남북수단, 이집트의 수단 정복과 남북의 이질화, 영국의 식민지배와 남북 갈등 심화, 영국의 식민지배와 남북 갈등 심화, 수단의 독립에 따른 남북 수단 갈등, 종교와 자원을 둘러싼 남북의 갈등 등으로 구분해서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남북 수단 분쟁의 경과를 제1, 2차 내전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남북 수단 분쟁은 이집트 영국의 식민지배 기간 중 남부와 북부의 분리통치 정책으로 인해 이질화가 심화되었고, 게다가 인종 종교 등 고질적 요소와 석유 이권을 둘러싼 갈등 등이 원인이었다. 2005년 합의된 포괄적 평화협정이 이행되어 남수단이 국민투표를 통해 분리 독립했다. 수단은 내전이 합의와 협정을 통해 해결된 아프리카 분쟁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당시 전문가들이 수단 중앙정부가 2011년 분리 독립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던 것을 볼 때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수단은 남수단이 분리 독립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경지역 일부와 유전이 개발되고 있는 몇몇 곳에서는 갈등과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아비에이 지역을 둘러싸고 수단과 남수단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북 수단분쟁은 아프리카 연합의 중재로 잠정 해결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논란이 되고 있어 추가적인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측과 국제사회의 합리적인 해법이 요구되고 있다.

논(論)『묵자(墨子)』군사사상급기현대의의(軍事思想及其現代意義) (The Comment on Valuable and Significant Mozi's Theories Based on a military Thoughts)

  • 황성규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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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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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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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글은 묵자가 개진한 군사사상들을 살펴보고 그것이 지닌 현대적 가치를 조명해 보는데 있다. 묵자의 군사사상은 그가 제창한 "비공"사상을 이론적 기초로 하여 약자가 강자의 침략과 약탈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성되었다. 이점은 공격위주의 다른 병법과 다른 점이다. 그런데 묵자의 군사이론 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할 몇 가지 가치가 눈에 띈다. 먼저, 전쟁 시 부녀자와 노인 그리고 아동에 대해 특별한 임무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녀자의 경우는 남자와 거의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나라의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노인과 아동에 대해서도 일정하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실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도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한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해 권익을 보장하고 지위를 존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묵가의 사상은 인간이 지닌 권리 존중의 초보적 접근이라고 보여 지며 이 글을 통해 밝혀내고자 한다. 또한 애민의식에서 비롯된 묵가의 과학기술사상은 방어전에도 적용이 되어 당시로 볼 때 상당히 선진화된 무기들을 개발하고 실전에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묵가가 전쟁에서 활용한 무기들은 모두가 방어전에만 유용한 것들이다. 백성들에게 유용한 것이 진정한 과학이라고 하는 묵가의 사상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질 않고 발생하고 있다. 이들 전쟁 모두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서로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한 묵가의 사상이 반전 평화의 군사사상을 주창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IMU탄생에서 해체까지의 ICM (ICM from the foundation to the suspension of the old IMU)

  • 김성숙;강미경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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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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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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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사회의 모든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학술분야에서도 갈등이 나타났고 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에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불가리아, 터어키를 비롯한 강대국이 패전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며 유럽의 지도가 바뀌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1919년 국제연구협의회(International Research Council) 를 창설하고 그 산하에 국제 수학연맹 (IMU) 을 만들어 은밀히 독일계의 수학자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정책은 심한 비판을 받았고 1928년 ICM에는 모든 수학자들이 초대를 받았다. 결국 그 정책을 반대하던 많은 수학자들의 노력으로 1932년에 IMU가 폐지되었고 수학자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IMU는 1951년에 재창조 될 때까지 거의 20년간 사라졌었다. 첫 번째 IMU가 존속하던 시기는 정치가 수학회에 영향을 끼쳤던 시기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1920년부터 1932년까지의 ICM과 제 1차세계대전이 수학협회와 수학자들에게 끼친 영향 등을 알아봄으로써 20세기 초반의 수학계의 발전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일본 게임속에 나타난 한국 역사의 왜곡 사례에 관한 연구 (The Study on the Distorted Instances of Korean History in Japanese Game)

  • 고병희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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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06년도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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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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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과거 침략에 대한 망언과 함께 올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본 논문은 일본 게임 속에 나타난 한국의 역사왜곡 사례에 대해 연구하였다. 게임 속에서 한국 역사의 왜곡 사례는 일본, 중국, 서양 게임들 모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 게임에서 그 정도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는 인터넷의 발달과 문화 개방의 영향으로 국내 청소년들과 외국인들이 역사를 왜곡한 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위험성이 있으며 그에 대한 대책과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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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とパワーのジェンダーポリティックス: 東アジアの国際関係において日本の平和憲法と慰安部問題の意味づけ (Gendered Politics of Memory and Power: Making Sense of Japan's Peace Constitution and the Comfort Women in East Asian International Relations)

  • 金泰柱;李洪千
    • 분석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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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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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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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This paper examines how Japanese society produced and reproduced a distinctively gendered history and memories of the experience of WWII and colonialism in the postwar era. We argue that these gendered narratives, which were embedded in postwar debates about the Peace Constitution and comfort women, have engendered contradictions and made the historical conflicts with neighboring countries challenging to resolve. On the one hand, this deepens conflict, but on the other, it also generates stability in East Asia. After Japan's defeat in WWII, the American Occupation government created the Peace Constitution, which permanently "renounces war as a sovereign right of the nation and the threat or use of force as means of settling international disputes." The removal of the state's monopoly on violence - the symbol of masculinity - resulted in Japan's feminization. This feminization led to collective forgetting of prewar imperialism and militarism in postwar Japan. While collectively forgetting the wartime history of comfort women within these feminized narratives, the conservative movement to revise the Peace Constitution attempted to recover Japan's masculinity for a new, autonomous role in international politics, as uncertainty in East Asia increased. Ironically, however, this effort strengthened Japan's femininity because it involved forgetting Japan's masculine role in the past. This forgetting has undermined efforts to achieve masculine independence, thus reinforcing dependence on the United States. Recurrent debates about the Peace Constitution and comfort women have influenced how Japanese political elites and intellectual society have constructed distinctive social institutions, imagined foreign relations, and framed contemporary problems, as indicated in their gendered restructuring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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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연합군 총사령관 포슈 장군 군사사상의 현대적 함의 (Contemporary Application of General Foch's Military Thought)

  • 임종화
    • 산업진흥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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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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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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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논문은 프랑스 포슈 장군의 군사사상을 분석·규명하여 현실전의 최선방책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1. 포슈의 생애: 보불전쟁 패전으로 프랑스 명예회복을 인생목표로 삼아 군문에 들어선 후 육군대학 교수로서 실전의 지휘관으로서 1차대전의 연합군총사령관으로서 필승의 정신전력을 강조하며 대전을 승리로 종결짓는데 공헌하였다. 2. 포슈 활동기의 시대적 배경: 나폴레옹 실각이후 야기된 일련의 혁명은 유럽에 파급되어 근대국민국가 탄생을 위한 독립 및 통일전쟁의 격화와 해외식민지쟁탈전 심화를 초래하여 포슈 활동기의 유럽은 전 분야가 총체적인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 3. 포슈의 군사사상: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심층연구를 통하여 기술존중과 전승을 위한 공격적 전투수행의지가 담긴 정신전력의 절대 중요성을 강조한다. 4. 포슈 사상의 현대적 함의 : 전투정신이 실추된 군대에게 필승의 정신전력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것은 전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5. 결론 : 정신전력 등 무형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포슈의 군사사상은 높이 평가하여 현대전은 필승의 정신전력과 최신의 정예무기활용의 균형적 조합이 최선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6·25전쟁 전사자 유품의 과학적 보존: 지상작전사령부 소장 지역유품 중심으로 (Scientific Preservation of the Relics left by the Fallen Heroes of the Korean War: Focusing on the Local Relics Kept by the Ground Operations Command)

  • 박민선;오승준;이호연;위광철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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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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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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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국방부 유해발굴단을 통해 발굴된 지역 유품 중 지상작전 사령부 전시관에 소장된 7건(정화제병, 독수리문양 단추, 계급장, 반합, M1 Grand-총기손질도구, 카빈완탄, 탄통)의 6·25 전사자 유품에 대하여 과학적 분석 및 보존처리를 진행하였다. FT-IR 분석 결과 정화제병 내부 잔존물이 Trisodium phosphate와 유사 스펙트럼으로 확인되어 전쟁 시 식수 및 식품 정화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었으며, 3차원 디지털 촬영기법을 통해 육안으로 관찰이 어려운 탄통의 각인된 명문을 확인하였다. 또한 현미경 및 육안 관찰 등을 기초로 한 상태조사를 진행하여 각각의 유품에 대한 보존처리 방향성을 수립하고 안정적인 처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향후 다양한 전쟁 유품에 대한 보존처리 방향성 정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청국장의 역사 (The History of Chongkukjang)

  • 정경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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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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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7-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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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혹자는 청국장(淸麴醬)은 전시(戰時)에 단기숙성으로 단시일 내에 제조하여 먹을 수 있게 만든 장이라하여 전국장(戰國醬), 또는 청나라에서 배워온 것이라 하여 청국장(淸國醬)이라고도 하며 전시장(煎?醬)이라고도 하였다 하고, 청국장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보인 것은 1760년(영조 36) 유중임(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부터라고들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청국장과 메주를 뜻하는 '시(?)'가 삼국사기에 나오므로, 청국장은 삼국시대부터라고도 한다. 이처럼 청국장의 역사는 청나라(1600년대)부터인지 고구려, 신라시대부터인지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아, 혼란스럽고 그 틈을 타서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고문헌 기록을 통해 청국장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재조명하였다. 문헌기록을 통해 본 결과 고구려, 신라시대에 이미 청국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젼국, 쳔국, ?국으로 불리었으며, 한자로 '시(?)'로 썼고, 어느 시기부터 청국장도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이 장(醬)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쓰다가 지금은 청국장(淸麴醬)으로 통일되었다. 시(?)의 의미도 1500년대까지 청국장을 의미했고, 1600년대 이후에는 청국장이 한자로 장(醬)이 붙은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굳어지니까 시(?)의 의미도 메주, 된장을 국한지어 의미하게 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전쟁과 관련이 있거나 청나라와 관련이 있는 음식이 전혀 아니며, 청국장은 문헌 기록상으로 보아 22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나, 기록 이전에 사물이 먼저 있었을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이전인 수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일본의 해양 정책 - 태평양 도서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Ocean Policy of Japan: Focusing on the Relations with Pacific Island Nations)

  • 현대송
    • Ocean and Polar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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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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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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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history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Japan and the Pacific Island Nations in the context of its ocean policy, and to survey the current situation. Particularly, this paper inquires into how Japan's maritime policy, nuclear policy, and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policy have affected relationships with countries in this region. Firstly, this paper gives a brief overview of the socio-political situations of Pacific Island Nations. Secondly, the history of the 'Southward Advance Theory' adopted as national policy by Japan in the Meiji era is summarized. Thirdly, how Japan successfully re-entered this region despite conflicts surrounding the nuclear issue after the Second World War is explored. Lastly, this paper investigates how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and PALM (Pacific Island Leaders Meeting) helped to develop relations between Japan and the Pacific Island N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