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Unified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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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정세와 경호조직 변천사 (A Study on the Change of Three States and Unified Silla Guard Organization History)

  • 장철원;김상진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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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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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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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국가의 성립과 발전에 따라 그 사회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발생한다. 이 중 지배자는 다시 세분화되어 국왕이나 대통령 및 최고 집권자 등으로 구분되어 상대적으로 신변에 불안을 느끼게 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위해 요인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여러 작용이 발생하는 바, 이것을 일반적으로 경호라 한다. 따라서 경호의 시작은 왕권의 강화 내지 중앙집권화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처음에는 군사조직이 이를 대행해 왔으나, 점차 경호업무의 세분화${\cdot}$조직화에 따라 독립적인 부서로 자리를 잡게 된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경호는 왕권의 강화, 영토의 확장, 중앙집권화의 확립 등에 따라 새로운 지배체제가 필요하였으며, 국와 근시집단과 시위부가 성립하여 국왕을 시위하거나 사병적 역할을 담당하는 업무를 관장하게 된다. 신라말에는 광범위한 관제개혁이 진행되어 중사성${\cdot}$선교성 등의 근시기구가 나타나며, 국왕과 태자의 시종뿐만 아니라 문한(文翰)의 업무도 장악하는 관부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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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천문역법(天文曆法)과 물시계(漏刻) 복원연구 (Astronomical Calendar and Restoration Design of Clepsydra in the Silla era)

  • 이용삼;정장해;김상혁;이용복
    • Journal of Astronomy and Space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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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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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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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당나라 때 사용하던 역법들과 우리나라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신라시대에 사용한 역법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특히 신라역법에 결정적 영향을 준 당(庸)나라 역법들을 시대순으로 살펴보고 신라시대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역법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주로 신라시대 사용한 역법은 인덕력(麟德曆), 대연력(大衍曆), 선명력(宣明曆)등이 있음을 밝혔다. 아울러 당시 누각전(漏刻殿)에서 사용한 누각(漏刻)의 복원설계를 위해 삼국사기와 중국과 일본의 누각 관련 자료를 찾아 살펴본 결과 통일신라시대는 사급보상식부전루를 사용함을 알게 되었다. 중국 문헌과 일본 아스카사(비조사, 飛鳥寺)에 복원해 놓은 물시계 모델을 참고하여 신라시대에 사용한 물시계 종류와 구조를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사급보상식루각 설계를 위해 파수호의 관을 통해 공급되는 물의 양과 관의 직경에 따른 변화를 알아보는 유속 측정기를 직접 제작하여 실험하였다. 그리고 이 장치를 소개하고 실험 방법에서 얻어진 결과를 제시하고 신라시대 물시계의 사급보상식루각(四級補像式漏刻)의 개념 설계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신라의 역법에 근거하여 당시에 사용한 부전(浮箭)과 함께 복원 설계도를 완성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옥사(屋舍)" 조(條)의 재고찰(再考察) (A Study on the Section of 'Housing Regulations' in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 이상해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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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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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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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This study examines the Section of 'Housing Regulations' in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ulcorner}$三國史記${\lrcorner}$ 屋舍條) to verify the residential architecture during the period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Through the study, the basic architectural terms in the Section of 'Housing Regulations', such as the size of the building, glazing roof tile, animal-shaped ornamental piece on roof ridge, eave purlin, wooden bracket arms, roof decoration, decorative paintings, stone steps, wall structure, blind screen, folding screen, bedstead, and gate are analyzed, interpreted and defined, and, in addition, the forms and styles of the residential architecture during the period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are basically reconstru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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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와당을 모티브로 한 주얼리장식용 문양 연구 (A Study on the Jewelry decorative pattern based on Wa-Dang in Unified Silla period)

  • 김경태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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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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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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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문화 &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주도하는 지식정보사회에 있어서 전통문화의 유물자산을 활용한 문화상품 개발을 전제로 진행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전통건축에서 출토된 와당 유물의 문화콘텐츠 상품 가능성을 탐색하고 주얼리 디자인에 활용성이 높은 상품화 모티브의 확장성을 넓히는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먼저 문헌과 매체 연구를 통하여 와당의 원형과 소재, 용도, 크기, 의미, 조형적 심미성을 파악하였다. 고찰된 와당중에서 카테고리별 대표성과 모듈·패턴화 가치가 있는 10종류의 와당을 선택하여 '형태적 단순화 기법'으로 원형이미지를 추출·모듈화하였다. 문양구성 배열형식 체계화 방법인 '수학적 대칭성 분석기법'에 근거하여 문화콘텐츠산업 및 주얼리디자인 개발시에 활용할 수 있는 평면적 조형요소를 도출하였다. 향후 주얼리산업에서의 활용성 확대를 위하여 2D 디지털이미지로 제시하였다. 향후에도 전통문화를 매개로 하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산업에 관한 연구가 더한층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북한의 신라 고고학 연구 현황과 특징 (A Review of Archaeological Research on Silla in North Korea)

  • 윤상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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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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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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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북한에서 이루어진 신라(통일신라) 고고학 연구 현황을 정리하고 그 특징 검토를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자료가 남한에 있어 그동안 우리 학계는 북한의 신라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이에 향후 북한 자료를 다루기 위한 기초 연구로써 북한 학계의 연구를 검토하였다. 연구 현황은 우리가 주로 다루는 고고학 주제에 맞춰 무덤, 성곽, 왕경, 토기, 와전, 장신구, 무구, 마구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연구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주체사상이 북한 학계의 삼국통일 해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1955년에 처음 제기된 '주체'는 사대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중소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주창되었다. 이에 따라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와 결탁한 사건으로 보고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1962년 자료부터 확인된다. 두 번째, 반사대주의의 영향으로 삼국문화의 '고유성'과 '단일성'을 증명하려 하였다.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과는 다른 고유성을 가지며, 삼국의 문화는 상호간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일성'의 원천은 고구려의 '우수한' 선진 문화이며, 백제와 신라, 가야에 전파되어 '민족 문화의 단일성'이 형성되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고구려의 선진 문물이 발해와 '후기신라(통일신라)'에까지 전해지고 다시 고려로 이어져 민족 문화의 진정한 통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네 번째는 남한 학계에 비해 신라의 무덤이나 유물의 연대를 상당히 올려 보는 점이다. '조선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신라의 건국을 1세기 초·중엽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국가 형성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의 연대를 올려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고구려 석실분이 신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기 위해서도 신라 석실분 연대의 상향이 필수적이다. 1960년대에 형성된 연구 특징은 지금까지도 북한 학계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지침이 되었다.

한국 고대목탑 낙수받이 고찰 (A Study on the 'Naksubaji(horizontal gutter)' of Ancient Wooden Pagodas in Korea)

  • 탁경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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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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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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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목탑의 기단부는 기단토와 이를 둘러싸는 외장, 계단, 그리고 기타 시설물로 구성되며 각각의 구성 요소들은 만들어진 시기, 장소, 조영세력에 따라 그 외형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백제, 신라~통일신라의 목탑지에서는 고구려의 목탑지에서 확인된 물받이시설, 중국 건축물의 산수(散水), 일본 목탑지에서 확인된 이누바시리(犬走り)가 확인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지붕에서 떨어지는 우수로부터 기단부를 보호하기 위해 서까래는 기단선 이상으로 내밀어져야 하며 이 때 떨어지는 낙수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기한 시설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본 고에서는 이 시설을 낙수받이로 명명하였다. 기 발굴조사된 5~7세기의 한국, 중국, 일본 목탑지 검토를 통해 6세기에 조영된 백제 목탑지와 7세기에 조영된 신라~통일신라 목탑지에서 낙수받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의 경우 6세기에 조영된 군수리사지, 능산리사지,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낙수받이가 설치되었으며, 특히 왕흥사지 목탑지의 경우 기단토의 굴광 범위가 당초 백제시대의 기단으로 보이는 부분까지 실시되어 일본 초기 목탑지에서 확인된 경우와 유사하다. 목탑지 조영에는 고려척이 사용되었고 서까래내밀기를 검토하기 위해 평면을 복원한 결과 기단부 길이: 일층탑신 길이:어칸:퇴간의 비례는 군수리사지와 왕흥사지 목탑지가 4.9:2.7:1:0.9로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왕흥사지 목탑지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군수리사지 목탑지와 왕흥사지 목탑지의 주망관계는 어칸 2.49m, 퇴칸 2.14m로 동일하게 나타나 당시 목탑 조영에 있어서 일정한 척도 적용 및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7세기에 들어서면서 용정리사지, 제석사지, 미륵사지 등 전사기는 다른 대형 기단부를 가진 목탑지가 출현하면서 더 이상 낙수받이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통일신라 목탑지의 경우 영묘사지,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목탑지에서 낙수받이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영묘사지 목탑지의 경우 폭 1.8m 할석렬이, 황룡사지 목탑지는 제2탑구석의 범위가, 사천왕사지 목탑지에서는 하층기단 지대석의 설치 형상이 능산리사지 목탑지와 유사함을 검토하여 낙수받이임을 확인하였다. 신라~통일신라 목탑지는 그 조영 자체가 7세기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어 초기에는 비교적 목탑의 구성요소를 충실히 표현하였지만 사천왕사지 목탑지 조영 시점을 경계로 이러한 낙수받이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신라석탑(新羅石塔)의 발생과 성립과정(成立過程)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Creation and Development Process of Silla Stone Pagodas)

  • 신용철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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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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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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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development process of the early stone pagodas of Unified Silla. The history of stone pagodas traces back to both Baekje and Silla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but the styles and structures of pagodas began differently. In other words, Baekje attempted to recreate the wooden pagoda style, while Silla attempted to recreate China' brick pagoda style. These different stone pagoda cultures, around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underwent new style changes, and after the mid-7th century, some changes in the five-storied stone pagodas in Tapri appeared, and the milestone perfection of Silla's stone pagodas was achieved through those of Gameusa Temple and Goseonsa Temple. After the mid-7th century, Silla's stone pagodas accommodated some of Baekje's wooden pagodas' elements, shifted from the wooden pagoda style and developed into its own stone pagoda style. This is shown in numerous stone pagodas. However, in Silla's stone pagodas, including the three-storied stone pagoda in Hwagboksa Temple in 692, the size of the pagoda became small and underwent sudden changes. In other words, a new direction of Silla stone pagodas was presented in terms of how massive stones could be reduced, but they differed only in the reduced stone amount; the basic developed style of the Gameunsa Temple stone pagoda and the Goseonsa Temple stone pagoda inherited the traditional style. Thus, the construction of these two pagodas is considered to be significant in the Silla's history of stone pagodas.

《祖堂集》 巻20所載 <順之和尙の敎說> 研究序說 -9世紀新羅における禅教関係の一形態 - (A Study of the "Sunji Hwasan's (順之和尚) teachings" in the "Zutangji"(祖堂集) Volume 20. -One Form of the Relationship Between Chan and Jiao (禅教) in the 9th century in Silla)

  • 佐藤厚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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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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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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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e Korean Buddhism during the unified Silla era, was dominated by Huayen doctrine, which was developed by Uisang(義相) (625-702) and his disciples. During 8th century, many Korean monks visited China to study Chan Buddhism(禪). After they came back to Silla, they started to criticize Huayen philosophy as a doctrinal Buddhism (Jiao教). Their criticism depended on Chinese Chan Buddhist teachings. Korean Chan monk Sunji(順之), a 9th century, was different from other Chan monks in Silla who were trained in China. His teachings are found in the volume20 of "Zutangji"(祖堂集). Although it is based on Chan thought, it has many doctrinal explanations and interpretations. The conventional studies could not clearify the basis of his philosophy. As my research revealed, his teachings were based on the Huayen doctrine of Chinese Huayen monk Li Tongxuan(李通玄) who lived in 7th 8th century. One of his doctorine is "San shen yuan jung kwan"(三聖円融観). It means the unify of three Holies(三聖) Vairocana Buddha(毘盧遮那仏), Manjusri Bodhisattva(文殊菩薩), and Samantabhadra Bodhisattva(普賢菩薩). Monk Junshi used this theory in his teachings. As mentioned above, "Sunji Hwasan's teachings" included by the "Zutangji"(祖堂集) volume 20 is important as what offers a new viewpoint when explor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an and jiao in Silla in the 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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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중문지 출토 치미 연구 (A Study on the Chimi Excavated from the Middle Gate Remains of Bunhwangsa Temple)

  • 김숙경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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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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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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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This paper aimed to identify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chimi excavated from ancient ruins, especially middle gate remains of Bunhwangsa Temple in the Unified Silla period. Middle gate had planned $3{\times}2$ with 295mm measuring unit and gabled building. Detailed study of the shape of chimi of the middle gate restored by related field experts reveals as follows. 1) Height of chimi is 4.5(130.6cm) of Tang's system of measurement classified as large one. 2) The front and back side square hole is made for transverse timber placement. 3) Position of chimi is not the end of the ridge of roof, it moved toward the center. 4) Construction method of chimi is structured with smaller beam and center column. 5) Width and height of the ridge is less than 38cm and 54cm to be approximately, Width and height of the gabled ridge is less than 38cm and 50cm. 6) This chimi is considered to be very unique when compared to existing ancient restored chimis, it is designed to be advantageous to the chimi constru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