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old Pinter's One for the Road(1984) is a play about violence. Nicholas, who appears to be the manager of a place, interrogates Victor, Nicky, and Victor's wife Gila in a room for one day from morning to night. There is no direct physical violence in this play. But hints about the atrocities that took place outside the stage make the audience guess the violence and cruelty. Violence, which is not seen as such, is the central theme of the play. One for the road is worth reading as a resistance to breaking the mirror of global ideology, not as it deals with violent events confined to Turkey. The problem which Pinter had in mind, in particular, is that the United States plays a leading role in producing world-class ideologies, and that Britain is involved in collusion with the United States in cultivating such ideological fantasies, both abroad and at home. This thesis analyzes the contrasting reactions of each character in the play based on this social context. In particular, the conflicting reactions of the characters on the system are the most important conflict in the drama. Nicolas is a manager who moves on the system without seeing the truth. Victor and his family, on the other hand, do not move within the same ideology as Nicholas. This paper will take a look at what their strategies of resistance is and how they are revealed in the work. In fact, Nicholas appears split. Nicholas seemingly reacted decisively to the interpellation of the system. He expresses his belief and respect for the legitimacy of his actions. However, he has repeatedly sought the respect and love of Victor. Nicholas is now swaying. The theme that Nicholas presents consciously by grabbing at his own sway is 'Patriotism.' But this fantasy splits through Victor's silence and death demands. Therefore, the questions to be answered are: So why does Nicolas appear to be torn apart in a system that directs violence? But why is he forced to assimilate into the system? What other figures imply? To answer these questions, this thesis will take Slavoj Zizek's view of ideology. On the other hand, there are previous studies that read the system of violence in One for the road from the Althusser's perspective. Surely, this play explores the role of Ideological State Apparatus. However, from the point of view of Althusser, it is not possible to read Nicholas's division and the point of resistance seen by Victor's family. Pinter does not limit the scope of the ideological system as a closed one that regenerates ideologies, but secures the domain of main body resistance and struggle. On the other hand, there are already several domestic theses that read Pinter's work in Zizek's perspective. But these theses are mainly focused on analysis of Mountain Language. What this thesis would suggest is that there is a potential for an ethical figure of Zizek to be considered in One for the Road.
이 연구는 유도의 창시자이며 무도 사상을 전 세계에 전파한 가노지고로의 조선관을 연구하여 한국에 보급된 무도 사상의 근원적 본질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상의 관점에서 진행된 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국학자들에게 역사 교육을 받고 성장한 가노지고로는 전설 속의 인물인 진구 황후가 신라, 백제, 가야를 정복하였다는 정한론에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 정한론은 일제강점기 임나일본부설의 기반이 되었고 가노지고로가 완성한 정력선용, 자타공영의 무도 사상 역시 조선에 유입될 당시 이 정한론이 투영되어 유입되게 된다. 둘째, 가노지고로는 메이지 유신이후 국체라는 설화를 무도 사상의 프리즘에 넣어 분산 확대시켰다. 이는 자신이 만든 무도 사상을 일본의 국체와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가노지고로의 무도 사상은 전 세계에 평화사상으로 적용된 것과 달리 조선에서는 내선일체의 논리로 무도가 사용되게 된다. 셋째,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유입된 가노지고로의 무도 사상은 문화변용현상을 거치면서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모순을 보이게 된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내선일체의 수단으로 무도를 활용하는 반면 한민족 선각자들은 가노지고로의 국가관을 배제시킨 후 민족주의적 특성을 내제시키면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무도를 수련하였다.
본고는 북한에서 이루어진 신라(통일신라) 고고학 연구 현황을 정리하고 그 특징 검토를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자료가 남한에 있어 그동안 우리 학계는 북한의 신라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이에 향후 북한 자료를 다루기 위한 기초 연구로써 북한 학계의 연구를 검토하였다. 연구 현황은 우리가 주로 다루는 고고학 주제에 맞춰 무덤, 성곽, 왕경, 토기, 와전, 장신구, 무구, 마구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연구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주체사상이 북한 학계의 삼국통일 해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1955년에 처음 제기된 '주체'는 사대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중소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주창되었다. 이에 따라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와 결탁한 사건으로 보고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1962년 자료부터 확인된다. 두 번째, 반사대주의의 영향으로 삼국문화의 '고유성'과 '단일성'을 증명하려 하였다.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과는 다른 고유성을 가지며, 삼국의 문화는 상호간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일성'의 원천은 고구려의 '우수한' 선진 문화이며, 백제와 신라, 가야에 전파되어 '민족 문화의 단일성'이 형성되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고구려의 선진 문물이 발해와 '후기신라(통일신라)'에까지 전해지고 다시 고려로 이어져 민족 문화의 진정한 통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네 번째는 남한 학계에 비해 신라의 무덤이나 유물의 연대를 상당히 올려 보는 점이다. '조선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신라의 건국을 1세기 초·중엽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국가 형성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의 연대를 올려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고구려 석실분이 신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기 위해서도 신라 석실분 연대의 상향이 필수적이다. 1960년대에 형성된 연구 특징은 지금까지도 북한 학계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지침이 되었다.
본 논문은 건강보험정책결정과정에서의 참여민주주의를 중심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복지국가 성격을 연구하였다. 참여민주주의는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 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자본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정치적 정당성 확보 전략에 의해 도입되었다. 따라서 참여민주주의가 복지국가 발전의 한 지표인 보장성강화를 획득해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이념 추구, 국가재정책임성 미약, 정책결정과정에 가입자의 실질적인 참여 배제로 2007년 보장성강화정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과거 복지제도와 마찬가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참여민주주의제도도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도입되었으나 경제성장우선이데올로기의 제약하에서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제도는 '서비스'가 아닌 '권력'형태의 제도라는 점, 참여민주주의제도로 인한 권력의 부여가 보장성 강화요구를 통해 복지국가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과거 복지국가와는 차별적이다.
본 연구는 한국인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관이라고 알려진 가족주의 가치관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복지제도와 복지정책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는데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가족간의 결속력이 유난히 강하고 가족중심적인 사고가 모든 사회관계에서도 지배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국사회에서의 가족주의 가치관은 다른 가치관이나 이념 및 의식을 구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가족이 그 구성원을 돌보고 양육, 부양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와 책임으로 여기고 있는 가족주의적 사고가 복지의식을 형성하고 구체화하며, 복지국가 형태의 수준을 갖게 하는데 제한을 가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국인의 복지의식을 전통적 가족주의 가치관과의 관련성 속에서 재조명해보고 그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분석을 위하여 서울지역의 기혼 여성과 남성을 체계적 층화표집과 할당표집으로 표본추출하였으며, 총 1,131명이 분석대상이 되었다. 분석결과 한국인의 복지의식은 가족주의 가치관과 많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제도에 관한 인식에서 가족주의 가치관은 부적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주의 가치관이 낮은 집단에서 복지제도 인식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복지책임주체에 관해서는 가난한 사람과 노인영역에서는 가족주의 가치관이 높은 경우 가족책임 성향도 높게, 그리고 장애인과 실업자의 경우에는 가족주의 가치관이 낮은 경우 정부책임 성향을 높게 지적하였다. 그러나 복지정책 욕구에서만은 가족주의 가치관이 낮은 경우 정부책임 성향을 높게 지적하였다. 그러나 복지정책 욕구에서만은 가족주의 가치관의 관련성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다. 가족주의가 높은 집단에서조차 복지정책 욕구가 크게 보여졌다. 이 같은 결과는 가족주의 가치관이 한국인들의 복지의식에 영향을 주는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통적 사고가 국가의 복지제공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되어야 하는 정책적 함의를 제공한다. 이는 한국인에 맞는 복지모형의 개발을 시사한다.
이 글의 목적은 70년대 국가권력에 의해 소환되었던 전통 이념이 '전통의 현대화'라는 명목 아래 당대 한국연극 현장에 수용되었던 양상과 그 함의를 밝히려는데 있다. 이는 다른 한편 70년대 전통 논의를 둘러싼 한국연극계의 자기검열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민족극을 창안하는 방식으로 70년대 한국연극계의 전통 논의를 선점했던 극단 민예극장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이제까지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에 대한 평가는 전통의 계승과 변용을 내세운 허규의 연출 작업을 바탕으로 공연예술적 성취 여부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70년대 국가가 주도한 문화정치의 장(場)에서 구성된 전통 이념과 그것이 작동된 양상은 예술적 성취라는 측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다. 무릇 전통을 전유하려 한 주체의 선택적 기준에 따라 전통 이념은 선별되고, 선별된 전통 이념의 선택 과정에서 특정 대상들이 배제, 폐기, 재선별, 재해석, 재인식된다. 70년대 비문화로 호명되었던 서구적인 것이나 퇴폐불온한 것과의 차이 속에서, 전통이 전유되었던 70년대의 상황도 이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 국가가 주도한 70년대의 전통 논의는 전통의 특정 이념을 안정된 가치로 합법화했는데, 그것을 작동시킨 한 방식은 국가의 문예지원이었다.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은 당시 연극 위기론의 구체적 대안으로 선택되었던 전통의 현대화를 바탕으로 민족극을 지향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전통연희의 계승과 변용이라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는바, 특히 극단 민예 극장의 대표 연출가 허규에게 전통은 거부할 수 없는 안정적 가치였고 그것의 계승과 변용은 의심할 바 없는 소명으로 내면화되었다. 그 결과 허규가 연출한 극단 민예극장의 공연은 일정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전통연희의 관습들로 채워진 숙련된 장인술로 귀착되었다. 70년대의 전통 이념은 80년대 들어 새로운 전유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1986년 극단 민예극장의 핵심 단원이었던 손진책, 김성녀, 윤문식 등은 민예극장을 탈퇴하여 극단 미추를 만든다. 극단 미추는 연출가 손진책을 중심으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마당놀이를 선보이며 전통의 대중화를 끌어냈다. 전통연희에 내재된 민중의 저항정신을 전통적 가치로 전유했던 대학가의 마당극처럼, 손진책의 마당놀이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 위압적인 국가권력을 비판하고 조롱함으로써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전통 논의의 자장 안에서, 민중의 저항정신을 전통적 가치로 전유하며 자생한 마당극이나 전통의 대중화를 성취한 극단 미추의 마당 놀이는 예술적 성취로써만 평가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통의 계승과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이 성취한 것 역시 70년대 전통이 소환되었던 맥락을 제외하고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70년대 국가 주도의 전통 논의에 대응한 한국연극 평단의 시각이 예술성을 바탕으로 한 공연예술의 질적 성취에만 집중된 대목이 아쉬운 것은 그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맥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의 활동을 중심으로 당대 한국연극계의 전통 논의와 그 실천 양상을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의 활동이 한 계기로 작용했을 대중적 마당놀이나 민중저항의 마당극은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이 전통을 전유하는 방식, 곧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용과의 '차이' 속에 정립되었다. 계기는 되었으나 그에 따른 유의미한 차이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한 점, 이것이 극단 민예극장의 '전통'이 70년대 한국연극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이자 한계이다.
Every country has a dark history in the process of transition to a modern state. Many countries have until the 21st century, especially in East Asia, colonialism, has experienced conflict influenced, racial discrimination, the trauma of such massacre. Such a dark history in many countries are also still in progress. Dark History of China, which maintains the proletarian dictatorship is the 'Cultural Revolution(Wenhua da Geming)'. 'Cultural Revolution' is neither the outer aspect of the ideological struggle, but in fact it was not even class struggle ideology and class struggle. Put an end to the feudal intellectuals in China in the course of the tragedy stood and lead to build a new China suffered the humiliation of being betrayed from state power. Chinese writers after the 'Cultural Revolution' ended, was created in the process of creation reflects the tragedy of the 'Cultural Revolution' in the country(national memory) is suffering from the pain and suffering the same growth process as it saw this novel growth experienced in the personal growth process. "Road leaving at 18 years" of WiHua has ruled out the pain of growing national attention wholly to personal growth and pain. Such "Road leaving at 18 years" in the sense suggests the possibility of a typical growth story in China Contemporary Literature.
본 연구는 개념적 혼동(conceptual muddle) 상태에 있는 방송과 통신의 핵심적 이념이자 정책 목표인 공익성과 보편적 서비스를 개념적으로 구명(究明)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1) 공익성과 보편적 서비스 개념의 기원, (2) 공익성과 보편적 서비스 개념의 구성 요소, (3) 공익성과 보편적 서비스 개념의 현실적 구현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주요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익성과 보편적 서비스 개념의 기원은 지역적 차이가 있었다. 방송의 공익성 개념은 서구에서 시작되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 방송 이념으로 뿌리를 내린 반면, 보편적 서비스 개념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럽을 비롯한 국가들의 정보 통신 정책의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둘째, 양 개념의 구성 요소를 살펴본 결과,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욱 크게 나타났다. 가장 현저한 양 개념의 공통점은 '보편주의'인 것으로 밝혀졌다. 공익성 개념은 보편적 서비스 개념을 포함하면서, 그 외 독립성, 다양성, 질, 지역성과 같은 내용과 관련된 차별적 구성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셋째, 양 개념의 정책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비교 분석한 결과, 양 개념간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익성 이념은 방송 사업자에 대한 규제 정책 위주로 전개된 반면, 보편적 서비스 이념은 이용자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 나타나, '규제'와 '육성'이라는 정책적 대조를 보였다. 결론적으로, 양 개념은 차별적 개념이기 때문에 학문적 차원에서 사용할 때 엄밀성을 유지할 것이 요구되고, 실제적인 차원에서는 관련 법 제 개정 시 방송에 있어서도 보편적 서비스 의무를 부과하도록 건의하였다.
China in the sixteenth century was exposed to various problems, and the surrounding nations were growing as potential threats by building up their powers and forming an unstable political state by losing control of civilization in politics, economy, knowledge, ideas and ideas. Especially, Mateo Ricci's knowledge and ideas were enough to attract the Chinese knowledge society. However, the influx of Western astronomy and world maps was not only a substitute for the notion of heaven and earth of Chinese tradition, but it destroyed all the knowledge and ideology of China, the foundation of political power and knowledge power. It transformed China in the center of the world into China in some parts of the world. It also brought about a great change in the civilization map of culture and savagery. As a result, the relationship between 'center and periphery', 'civilization and barbarians' could not be established, and the title of Chinese as a unique and exclusive civilization could no longer be maintained.
The concrete, practical orientation of the Chinese toward the aim of communal harmony conditioned their approach toward philosophical differences. Ideological conflicts were seen, not only by the politicians but by the intellectuals themselves, to threaten societal well-being. Harmonious interaction was finally more important to these thinkers than abstract issues of who had arrived at the 'truth'. Perhaps the most obvious illustation of the way the Chinese handled their theoretical conflicts is to be found in mutual accommodation of the three emergent traditions of Chinese culture, Confucianism, Taoism and Buddhism. Beginning in the Han dynasty(206 BC-AD 200), the diverse themes inherited from the competing 'hundred schools' of pre-imperial China were harmonized within Confucianism as it ascended to become the state ideology. The harmony among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raditional philosophical trend in China, is very important research subject at contemporary circumstance. For its cultual influences to surrounding nations, such as Korea, japan and Vietnam etc., are so cru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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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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