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illa Stone pag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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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호남지역 신라계 석탑 연구 (A Study on Stone Pagodas with Silla Style in the Honam Region of Korea in Goryeo Period)

  • 탁경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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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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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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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제까지 호남지역의 석탑은 대체로 백제의 고토란 이유로 백제계 석탑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검토한 결과 호남지역의 석탑은 94기이고, 이중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제계 석탑은 15기, 신라계 석탑은 34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본 논문은 이제까지 백제계 석탑에 편중한 연구에서 신라계 석탑에 대한 검토를 통해 호남지역 석탑의 새로운 면모를 밝히고자 하였다. 석탑의 지역적인 배치를 통해 본 결과, 통일신라시대에는 전라남도에 치중하여 신라 석탑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호남지역 전역에 걸쳐 불국사 삼층석탑을 모방한 신라계 석탑이 건립된다. 이러한 점은 이전의 시기보다 신라계 세력의 호남지역에 대한 불교지배력이 강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현상은 백제계 석탑과 신라계 석탑이 공존하는 김제, 정읍, 순창 담양, 영암 강진을 중심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호남지역 신라계 석탑의 기단부의 형식은 이층기단은 21기, 단층기단은 12기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라 석탑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인 이층기단을 계승하고자 했던 의도로 파악된다. 단층기단도 1매석, 또는 자연암반을 하층기단 삼아 단층기단으로 만들어진 탑도 2기가 있었다. 탑신부는 삼층석탑이 21기, 오층석탑이 12기이며, 1층탑신석을 1매석으로 만든 탑이 25기로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3층탑신부와 탑신석 1매석 제작 전통을 잘 계승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옥개받침은 3단, 4단, 5단 등 그 구성방법이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전체적으로 이층기단을 가지고 있는 석탑 중 상층기단과 하층기단에 탱주가 있는 석탑은 16기 중 12기가, 삼층석탑은 21기 중 15기가 전라남도에 분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라계 석탑의 정형성을 잘 계승하여 더 많이 유행한 지역은 전라남도임을 알 수 있었다.

경주 광명동유적 건물지의 성격에 대하여 (Study on the character of architecture remains in Gwangmyeong-dong site, Geongju)

  • 김광수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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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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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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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It was identified by the excavation that architecture remains were confirmed buddhist temple consist of ruins of main building of a temple, auditorium site, ruins of stone pagoda, embankment, pedestrian Facilities and drainage etc. in the Gwangmyeong-dong site. The site has been held temple arrangement with 1 main building of a temple, twin Pagodas from the Unified Silla period to Goryeo dynasty. The temple constructed after that was destroyed the architecture in the Unified Silla period. It seems that aristocrat or royalty power of within group of the nearby remains of city which was constructed in the Unified Silla period build and visit the temple. Considering there are excavations, it assumes that the temple had been constructed during the last days of the Unified Silla, was closed up during the mid-Goryeo Dynasty.

A Study on Tower Modeling for Artificial Intelligence Training in Artifact Restoration

  • Byong-Kwon Lee;Young-Chae Park
    • 한국컴퓨터정보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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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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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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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논문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하여 통일신라 석탑인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의 복원을 위해 3D 모델링 과정을 연구했다. 기존의 3D 모델링 방식은 수많은 Verts와 Face를 생성하므로, 이로 인해 AI 학습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한다. 이에 따라, Verts와 Face의 수를 낮추어 더 효율적인 3D 모델링을 수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석탑의 구조를 정점 및 면의 수로 분석하고, AI 학습에 최적화된 면수를을 최소화 하도록 모델링 방법을 연구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석탑 복원을 위한 인공지능학습에 최적화된 모델링 방법론을 제안하고,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DataSet 을 확보하는 데 의미가 있다.

통일신라의 문화교류 및 전탑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Examination on unified Silla's cultural exchange and brick pagoda formation course)

  • 김상구;이정수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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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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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9-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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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우리나라의 불탑은 목탑, 전탑, 석탑 등 다양하게 조영되었다. 하지만 전래되어 지고 있는 불탑은 전탑, 석탑 등 소실되기 어려운 재질의 불탑 형식만이 있다. 석탑에 비해 전탑의 경우 실측 등 실물에 대한 자료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으나, 문헌적인 자료 및 축조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탑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점, 지역적으로 제한적인 점, 재료적인 한계를 문헌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점, 탑의 구성을 시대적, 지역적인 문제로 해석하지 않고 탑의 조영에만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 것 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 연구는 전탑이 축조된 지역에서의 지역적 문화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전탑형성과정을 해석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는 나타난 유적을 비교해 살펴보면,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와 함께 해상경로로의 교류가 있었으며, 이러한 교류는 동아시아지역과도 함께 공유되었다. 그리고 중국과의 교류는 전파를 통한 맹목적인 습득이 아니라 지역적인 세력의 선택적인 교류라 할 수 있었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전탑이 조영된 이유로 이제까지의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질의 흙 뿐 만 아니라 불교적으로 중심세력에 부합하지 않는 의상의 화엄종의 교섭 및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인 불교의 대중화, 지방세력의 거점화 등이 지방세력과의 밀접한 관계가 전탑 조영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셋째, 전탑의 조영은 발해와 신라와의 교섭관계 및 지역적, 민족적 영향력이 작용하고 중국에서 넘어온 문화에 대한 선택적인 소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전탑이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적인 전파 및 중국의 소국으로서의 발생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국가의 형성에서 발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양 현리와 화천리 삼층석탑 연구 - 탑부조상(塔浮彫像)의 도상 분석을 중심으로 - (A Study of the Three-story Stone Pagodas in Hyeon-ri and Hwacheon-ri, Yeongyang - Focusing on Analysis of the Pagoda Reliefs -)

  • 한재원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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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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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0-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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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경상북도 영양의 <화천리 삼층석탑>(보물 제609호)과 <현리 삼층석탑>(보물 제610호)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다. 두 탑은 이중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양식이나 기단부 결구(結構) 방식 등을 고려하면 늦어도 9세기 중·후반 무렵에는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석탑의 탑신부와 기단부의 탑부조상으로도 확인된다. 사천왕상과 십이지상 부조는 8세기 후반의 <원원사지 삼층석탑>에서 처음으로 조합되어 나타났고, 팔부중상도 9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유행한 탑부조 신중상이다. 그런데 영양석탑 두 기는 사천왕상(탑신)-팔부중상(상층기단)-십이지상(하층기단)이 조합되는 특징적인 장엄을 갖추었고, 또한 석탑에 사용된 석재도 일반적인 화강암이 아닌 영양 지역 지질층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사암 계통의 퇴적암이다. 이렇게 세 종류 도상의 신조합과 팔부중상이 좌상에서 입상으로 변화한 점 등은 지역 자생적인 재료로 석탑을 구축한 사실과 함께 영양의 불교 신앙과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영양석탑의 팔부중상은 기존 팔부중 석탑의 두 가지 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일부 도상을 새로운 방위로 재배치하였다. 동면에는 아수라-건달바, 남면에는 용-마후라가, 서면은 천-가루라, 북면에 긴나라-야차로 구성된 이 형식은 영양 지역만의 독특한 '팔부중 제3형식 배치'로 분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팔부중상 배치 형태와 자세의 변화는 탑부조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건달바상과 야차상이 각각 동면과 북면에 조각된 것은 이들이 지국천왕(동)과 다문천왕(북)의 권속이기 때문이며, 용상과 마후라가상이 남면에 조각된 것은 반변천 북변이라는 두 탑이 처한 지리적 위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통일신라 전형 양식 석탑의 '구조'와 새로운 형식의 탑부조상 '장엄'을 함께 갖춘 <현리 삼층석탑>과 <화천리 삼층석탑>은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한편 지역적 특성도 뚜렷한 9세기의 중요한 방계(傍系) 석탑으로 평가된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손상 특성 연구 (Studies on Damage Characteristics of Gyeongju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 도진영;김정진
    • 한국광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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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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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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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석탑이다. 석탑에서 나타나는 손상양상은 백색피각, 흑색피각, 변색, 토양흡착 등의 오염물, 생물서식, 보수물질 등이다. 구조적 요인에 의한 손상양상으로 배부름 현상이 나타난다. X-선 회절분석 결과에 의하면 백색피각의 주 구성광물은 방해석($CaCO_3$)과 서모나트라이트($Na_2CO_3{\cdot}H_2O$)로 자연 상태에서 쉽게 나타나는 증발잔류광물이다. 석탑에 나타나는 손상양상은 각 부위별로 상당히 다르다. 생물서식은 기단, 사자상, 1층과 2층의 옥개석에서, 보수물질은 기단에서 확인된다. 배부름 현상은 1층 탑신에서 나타난다. 전체적인 손상 유형별 점유율은 생물서식, 오염물, 보수물질이며 그외 배부름 현상, 박리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인 개별 손상양상은 흑색미생물(39.3%)이며, 다음은 지의류(17.9%), 변색(8.0%), 백색피각(5.5%), 시멘트 모르타르(5.1%), 배부름 현상(3.9%), 박리(3.1%) 순으로 나타났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의 표면오염물 분석 및 손상메커니즘 해석 (Deterioration Mechanism Interpretation and Surface Contaminant Analysis of the Five-Storied Stone Pagoda in Tapriri, Uiseong)

  • 이미혜;전유근;이명성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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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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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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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호)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조문화재이다. 현재 이 석탑은 지속적인 풍화로 인해 전체적으로 흑색, 황색, 백색변색이 발생되어 있으며 백색변색이 발생한 부분에서 미세균열, 박리박락, 입상분해가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 표면오염물에 대한 분석결과, 흑색변색은 망간산화물, 황색변색은 철산화물, 백색변색은 석고와 타라나카이트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석탑에 발생한 물리적 훼손은 암석내부에서 석고의 결정화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보존처리 매뉴얼에 따라 석고를 중심으로 표면오염물을 제거하고 P-XRF를 활용한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구조 (A study on the structure of the Three storied Stone pagoda in Gameunsa Temple site)

  • 남시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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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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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9-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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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신라석탑의 규범을 이루는 시원적인 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석탑은 석조미술품이면서 석구조물이다. 지금까지는 탑을 이해함에 있어서 조탑사상과 미술사적으로는 깊은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져서 양식이나 편년 등은 깊이 있게 연구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석조건축물로서의 연구는 아주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석탑전문가들도 대부분이 미술사전공자이고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공학자는 극히 소수임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앞으로는 석탑을 이해함에 있어서 미술사 못지않게 구조를 포함한 힘의 전달 등 역학 적인 부분도 검토될 수 있도록 공학적인 면으로도 접근하여 탑을 보다 깊이 있게 그리 고 구조체로서 안전하게 이해하고 안전성도 검토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탑을 조성한 우리선조들의 기술적인 부분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 지대석과 하층기단면석을 한 돌로 만드는 기단부의 작은 부재를 가급적 크게 만들어서 상부 하중으로 인한 부재의 이완과 침하 등 부재 변형을 최소화하기 위 한 것이며, 둘째 : 면석과 탱주의 이음에 있어서 탱주에 턱을 두어 면석을 끼워 맞추는 결구방식을 보면 탱주에 끼워지는 면석부분을 살짝 면접기하여 탱주 턱에 쉽게 끼워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면석 결구방식은 감은사석탑 이후 석탑의 면석 결구방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결구방식이다. 셋째 : 각 면에 옥개석과 옥개받침석의 크기를 각기 다르게 하여 상 하 부재의 이음부를 일치하지 않게 하였다. 이는 수직 하중의 분산과 부재의 이완을 방지하기 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 동탑 해체 시 확인된 사항으로 옥개받침의 상면을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안쪽을 볼록하게 도드라지게 다듬어서 가능한 부재의 무게중심을 석탑의 중심에 가깝도록 고려하였다. 작은 부재를 가급적 크게 만든 것, 상하부재의 이음부를 어긋나게 한 기법과 무게중심을 되도록 석탑중심으로 오도록 한 수법 등은 당시 조탑인들은 상당한 수준의 공학적인 식견을 가지고 구조를 이해하는 기술력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실상사 목탑의 복원 연구 (The Study of Restoring Silsangsa Wooden Pagoda)

  • 김경표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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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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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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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This article is about restoring the wooden pagoda which located in Silsangsa Temple after historical research. The process of this study, first of all, the theoretical study was considered about similar examples of wooden pagoda and gilt-bronze pagoda in Gorye period and wooden pagoda in contemporary period. After that, the study was established by the present condition of Silsangsa wooden pagoda site, the characteristic of Silsangsa wooden pagoda, the form of arrangement, the scale and height. Finally, considering those studies, the wooden pagoda designed in detail. This restoring design tried to follow the inference in that time. Moreover, the design tried to involve the elements of characteristic of region and Silsangsa wooden pagoda. Therefore, the research establish period of Silsangsa wooden pagoda in Gorye period. Locally, it considered both elements of Silla and Baeckje. The arrange form of restoring wooden pagoda was freestyle arrangement that had two main building of a temple and one middle pagoda. The idea of structure was to establish of double Core system. This system inferred from the system of building structure in ancient wooden pagoda and middle and modern age of multistory wooden construction. According to measurement of foundation stone, the scale of restoring wooden pagoda followed the skill of Tang-scale. The connection structure of each floor followed laminated structure which was the general form of log frame in that time. After study of foundation's condition, the present writer deseeded to have restoring the wooden pagoda 9 stories tall. The final aim was to depend on the structural intuition of the present writer, the writer tried to restore beautiful wooden pagoda according to in those days which is solution for contradiction of unclear point. So, it could be make out a plane of restoring wooden pag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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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목탑 낙수받이 고찰 (A Study on the 'Naksubaji(horizontal gutter)' of Ancient Wooden Pagodas in Korea)

  • 탁경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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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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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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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목탑의 기단부는 기단토와 이를 둘러싸는 외장, 계단, 그리고 기타 시설물로 구성되며 각각의 구성 요소들은 만들어진 시기, 장소, 조영세력에 따라 그 외형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백제, 신라~통일신라의 목탑지에서는 고구려의 목탑지에서 확인된 물받이시설, 중국 건축물의 산수(散水), 일본 목탑지에서 확인된 이누바시리(犬走り)가 확인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지붕에서 떨어지는 우수로부터 기단부를 보호하기 위해 서까래는 기단선 이상으로 내밀어져야 하며 이 때 떨어지는 낙수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기한 시설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본 고에서는 이 시설을 낙수받이로 명명하였다. 기 발굴조사된 5~7세기의 한국, 중국, 일본 목탑지 검토를 통해 6세기에 조영된 백제 목탑지와 7세기에 조영된 신라~통일신라 목탑지에서 낙수받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의 경우 6세기에 조영된 군수리사지, 능산리사지,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낙수받이가 설치되었으며, 특히 왕흥사지 목탑지의 경우 기단토의 굴광 범위가 당초 백제시대의 기단으로 보이는 부분까지 실시되어 일본 초기 목탑지에서 확인된 경우와 유사하다. 목탑지 조영에는 고려척이 사용되었고 서까래내밀기를 검토하기 위해 평면을 복원한 결과 기단부 길이: 일층탑신 길이:어칸:퇴간의 비례는 군수리사지와 왕흥사지 목탑지가 4.9:2.7:1:0.9로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왕흥사지 목탑지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군수리사지 목탑지와 왕흥사지 목탑지의 주망관계는 어칸 2.49m, 퇴칸 2.14m로 동일하게 나타나 당시 목탑 조영에 있어서 일정한 척도 적용 및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7세기에 들어서면서 용정리사지, 제석사지, 미륵사지 등 전사기는 다른 대형 기단부를 가진 목탑지가 출현하면서 더 이상 낙수받이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통일신라 목탑지의 경우 영묘사지,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목탑지에서 낙수받이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영묘사지 목탑지의 경우 폭 1.8m 할석렬이, 황룡사지 목탑지는 제2탑구석의 범위가, 사천왕사지 목탑지에서는 하층기단 지대석의 설치 형상이 능산리사지 목탑지와 유사함을 검토하여 낙수받이임을 확인하였다. 신라~통일신라 목탑지는 그 조영 자체가 7세기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어 초기에는 비교적 목탑의 구성요소를 충실히 표현하였지만 사천왕사지 목탑지 조영 시점을 경계로 이러한 낙수받이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