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Late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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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잡지(松南雜識)』에 기록된 '영산(靈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Youngsan(靈山)' recorded in 『Songnamjabji(松南雜識)』)

  • 조석연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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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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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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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일반적으로 영산은 판소리 단가(허두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알려져 있으나 『송남잡지(松南雜識)』의 기록은 다르다. 조재삼은 『송남잡지』에 '영산'에 관련된 내용 따로 두어 설명하고 있다. <신광수의 시>, <백호 임제의 시>, <김명원의 시> 세 종류 시(詩)를 예시가 그것이다. 첫째, <신광수의 시>에 등장하는 '우조 영산'은 춘면곡에 앞서 부른 노래이다. 신광수가 <제원창선>(1750)을 쓴 시기는 유진한의 『만화집(晩華集)』(1754)이 발표된 시기로 판소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조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볼 수는 없다. 둘째, <백호 임제의 시>와 연결된 '영산 도두음'은 피리와 도드리장단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흔적으로 보아 기악곡인 영산회상과 연결된다. 영산은 불교적인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불교용어를 가진 영산회상은 민간 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계속 사용되었다. 셋째, <김명원의 시> '월하정인'을 영산 항목에 등장 시키며 '타령'이라 칭하였다. 당시 타령의 용어 쓰임새가 판소리와 정가 모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신재효의 <광대가>등 19세기 자료 대부분 '영산'의 용어는 판소리 단가와 같이 본격적인 판소리를 하기 앞서 목을 풀기 위한 용도로 기록되었다. 『송남잡지』에서 기록된 초창기의 영산은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 용어로 영산 회상, 가사와 같은 도드리장단이 중심이 되는 독립된 음악 양식이었으며, 『송남잡지』가 쓰여진 1855년 당시 영산은 타령이라는 용어로 변모하면서 창부음악과 가객음악 모두를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로 영산과 타령 두 용어가 혼재하였다. 그리고 판소리가 성행하면서 '타령'이라는 용어는 판소리를, '영산'은 판소리 단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록의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종교 및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숭유억불정책은 불교적인 영산이라는 용어를 배척하였고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중기에는 영산과 타령이 혼재하거나 영산 대신 타령이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 불교가 재성장되면서 판소리의 등장과 함께 또 다른 의미인 단가의 뜻으로 영산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재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19세기 이르러 판소리가 등장하며 영산이 단가로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인 변화양상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관서지방 배따라기 연행고(演行考) (A Study on Baettaragi Performance in Northwestern Province of Korea)

  • 임수정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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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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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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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 인조대에 경기(京妓)가 폐지된 이후 생긴 향기(鄕妓)의 선상제도(選上制度)로 인하여 지방에서 공연되어 지던 교방정재(敎坊呈才)가 궁중으로 유입되어 궁중정재로 채택, 궁중연향에서 연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종목 중 하나가 선유락(船遊樂)이다. 선유락은 정조19년(1795)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 최초로 기록된 이후 조선후기 궁중연향기록인 각종 의궤의 정재종목으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궁중정재 선유락을 담당한 여기(女妓)들이 당시 평안도 의주, 안주, 성천 등지에서 올라온 선상기(選上妓)들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들에 의해 관서지방의 교방정재인 배따라기가 궁중으로 유입되고 궁중 정재 선유락으로 정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궁중정재 선유락의 형성에 영향을 준 관서지방 교방정재인 배따라기는 명·청교체기후금이 요동지역을 장악하자 명나라 사행(使行)을 바닷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수로조천(水路朝天) 당시의 일을 바탕으로 하여 교방의 기녀들에 의해 공연물로 탄생되었다. 관서지방은 중국으로 사행을 떠나는 사신들이 거쳐 가야 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사신들을 위한 연향이 많았고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들을 위한 전별연(餞別宴)에 교방청 기녀들에 의해 험난한 사행길을 떠나야 하는 이별의 애끊은 아픔과 사신들의 무사귀환을 축원하며 배따라기가 연행되었다. 관서지방 배따라기 관련 많은 문헌에서 교방정재 배따라기가 수로조천 당시 배가 떠나가는 (船離) 이별의 아픔을 처절한 성조(聲調)와 행위로 공연작품속에 담아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을 토대로 살펴본 관서지방 배따라기는 무구로 사용되는 그림배(畵船)가 등장하고, 동기 한 쌍을 뽑아 군사인 소교(小嬌)로 분장시킨 후 군례를 올리고, 행군을 의미하는 고취악을 연주, 행선 전 부르는 노래와 음악반주, 행선의 모습을 극적(劇的)으로 표현, 무사귀환을 축원하는 이별가(배 떠나는 노래)를 부르는 형식으로 공연을 구성하고 있다. 명·청 교체기 수로로 사행을 떠나는 사신을 이별하며 바닷가에서 배를 떠나보내며 벌어진 실제 상황을 이렇듯 악·가·무와 극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공연물로 탄생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탄생된 관서지방의 교방정재 배따라기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을 위한 각종 연향에서 공연되어졌고 선상기들의 활동에 의해 궁중정재 선유락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궁중연향을 마친 선상기들의 귀향(歸鄕)으로 인해 다른 지방에도 유사한 형태의 공연물(『교방가요(敎坊歌謠)』 소재 「선악(船樂)」, 『이재난고(頤齋亂藁)』 소재 「행선곡무(行船曲舞)」)로 정착되어 지방의 연향에서 그 지방의 특색을 담아 서로 다른 절차로 공연되어졌다.

천지개벽의 역학적 사유에서 본 대순사상의 후천개벽과 선험주의적 세계 (The Great Opening of the Later World in Daesoon Thought and the World of Pre-experientialism from the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as Understood in Yi-Jing Studies)

  • 김연재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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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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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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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고에서는 한국근대의 신종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신종교는 민족종교 혹은 민중종교의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조선사회가 근대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고취시킨 민족의식의 산물이다. 당시에 조선은 중국처럼 사회진화론의 발전사관속에 전통의 중건(重建)과 근대의 전환(轉換)과 같은 양단의 칼날에 직면해있었다. 전통의 중건은 반제국주의에 따른 민족의 계몽을 고양하는 역사적 사명감에 달려있다면 근대의 전환은 반봉건주의에 따른 민생의 계도와 민중의 교화를 도모하는 시대적 절박감에 달려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전환기에 등장했던 신종교에 주목하고 특히 대순사상의 세계관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그 중심적 논제 중의 하나로서 개벽의 선험주의적(先驗主義的)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대순사상의 진리는 민생을 계도하고 민중을 교화하는 현실적 인식의 종교적 차원을 지닌다. 개벽의 과정은 대순의 진리를 향해 천하대순(天下大巡)의 존재론적 시계를 확보하고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인식론적 세계를 설정하며 후천개벽(後天開闢)의 가치론적 경계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들 삼중의 영역의 연결고리는 우주의 무궁무한적(無窮無限的) 시공간성을 천지의 틀 속에 후천의 시공간적 개벽으로 경험하는 선험주의적 노선을 특징으로 한다. 그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한 생명력에서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을 만끽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대순사상은 후천의 개벽과 같은 선험주의적 통로를 통해 현실적 삶을 극복하고 선경과 같은 자각의식의 경계를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초월적 관념의 세계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실적 세계에 참여하여 실천하려는 것이며, 따라서 소극적인 출세주의적(出世主義的) 경향보다는 적극적인 입세주의적(入世主義的) 경향을 지닌다. 결론적으로 말해, 후천의 개벽으로 특징짓는 대순사상의 진리에는 유토피아(Utopia)의 이상적 염원이나 디스토피아(Dystopia)의 현실적 혐오보다는 앞으로 희망과 기대를 갈구하는 넥스토피아(Nextopia)의 미래적 조망이 담겨있다.

중국일본의 기록관리 제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Record Management Systems of China and Japan)

  • 강대신;박지영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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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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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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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우리는 찬란한 기록문화를 보유한 나라지만, 근대의 여러 격변기를 거치면서 몇 년전의 기록도 찾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는 등 기록문화가 없는 나라로 전락하였다. 다행히 1999년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의한법률>이 제정되어 제도적인 장치는 확보하였지만 적용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격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와 문화적, 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국과 일본의 기록관리 제도 및 체계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제도와 비교해 보고자 하였다. 중국의 기록관리법인 국가당안법은 기록물의 수집부터 관리, 활용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규정화한 반면, 일본과 우리나라는 기록물의 행정관리 및 수집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기록물 관리기관의 경우, 중국은 중앙에서 지방 하부 기관에 이르기까지 일차원적인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여 기록물을 관리하고 있다.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제도 또한 중국은 학력교육과 계속교육이 균형있게 진행되고, 단일 학문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있으나, 일본은 아직 학력교육의 틀이 잡히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또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중국과 일본의 기록관리 제도에 대한 분석과 우리나라 제도와의 비교를 통해 본 글에서는 법령개정 보완 문제,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위상문제, 전문인력 배치 및 자격에 관한 문제, 관련 교육 문제에 대해 고려할 만한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삼복 일자 분석 (ANALYSIS OF SAMBOK IN KOREA)

  • 민병희;이기원;안영숙;안상현;이용삼
    • 천문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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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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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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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Sambok (三伏, Three Hottest Days) is the common designation of Chobok (初伏, Early Hot Day), Jungbok (中伏, Middle Hot Day), and Malbok (末伏, Late Hot Day), and widely known to be one of the Korean folk customs. Hence, Sambok is notated in Manseryeok (Ten Thousand-Year Almanac) and in the annual astronomical almanac published by Korea Astronomy and Space Science Institute. In this paper, we investigate the changes of Sambok in Korea based on various documents such as Joseonwangjosilok (朝鮮王朝實錄,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Jeungbo-Jakryeoksik (增補作曆式, The Supplement of Manual for Calendar Making), astronomical almanacs, and so forth. According to Jeungbo-Jakryeoksik preserved in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Chobok and Jungbok are defined as the third and fourth Gyeongil (庚日, The Day Starting with the Seventh Heavenly Stems in Sexagenary Cycles Assigned to Each Day) after the summer solstice, respectively, and Malbok is the first Gyeongil after Ipchu (Enthronement of Autumn). However, if the summer solstice is Gyeongil, then the third Gyeongil counting from the solstice becomes Chobok. Malbok depends on the time of Ipchu. Ipchu itself becomes Malbok if the time of Ipchu is in the morning, or next Gyeongil becomes Malbok if it is the afternoon. On the other hand, Malbok is defined as Ipchu itself regardless of its time according to Chiljeongbobeob (七政步法, Calculating Method for Sun, Moon, and Five Planets), Chubocheobryeo (推步捷例, Quick Examples for Calendrical Calculations), and so on. To verify the methods used to determine Sambok, we examined the record in the extant almanacs during the period of 1392 to 2100 for which the summer solstice or Ipchu is Gyeongil. As a result, we found a periodicity that if the time of Ipchu is in the morning, in general, the time is in the afternoon after two years and then is back into in the morning after nineteen years, i.e., the 2 + 19 years periodicity. However, we found the 2 + 17 years periodicity in some years. We also found that the Chobok method of Jeungbo-Jakryeoksik has been used since 1712, the thirty-eighth reign of King Sukjong (肅宗). In addition, we supposed that Malbok had been determined by the method like Chubocheobryeo since either 1846, the twelfth reign of King Heonjong (憲宗), or 1867, the fourth reign of King Gojong (高宗). At present, these methods of Sambok are customarily used without any legal basis. We, therefore, think that this study will help conventionalize the method defining Sambok in the future.

신원생대 백령층군 사암의 쇄설성 저어콘 LA-MC-ICPMS U-Pb 연령: 중원생대 집중연령의 의미 (LA-MC-ICPMS U-Pb Ages of the Detrital Zircons from the Baengnyeong Group: Implications of the Dominance of the Mesoproterozoic Zircons)

  • 김명정;박정웅;이태호;송용선;박계헌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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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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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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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백령층군의 사암에서 분리한 쇄설성 저어콘에 대해 LA-MC-ICPMS를 이용하여 U-Pb 연령을 측정하였다. 저어콘 연령은 주로 중원생대와 고원생대말의 기간인 약 1100-1800 Ma의 범위에 집중된다. 그러나 하부고생대 조선누층군이나 상부고생대 평안누층군의 쇄설성 저어콘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1800-2000 Ma 또는 약 2500 Ma의 고원생대 연령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북한의 신원생대 상원계 퇴적암과 동일하며, 백령층군이 상원계의 남서쪽 연장부에 해당함을 시사한다. 군산 인근에 분포하는 임피층이 백령층군과 아주 비슷한 쇄설성 저어콘의 연령분포를 보이는 것은 임피층 역시 상원계에 대비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옥천변성대의 황강리층, 태백산 분지의 묘봉층, 삼방산층, 세송층 등 여러 퇴적층에서 보고된 중원생대 연령의 쇄설성 저어콘들은 중원생대의 저어콘을 갖는 한반도 내의 암석으로부터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 8도′의 별칭과 지형의 관련성 (Relevancy between Aliases of Eight Provinces and Topographical Features during the Chosun Dynasty)

  • 범선규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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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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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8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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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인 행정명칭 이외에 각 도 또는 일부지방의 별칭이 오늘날 뿐 만 아니라 지방행정제도로 도제가 확고하게 시행되었던 조선시대에도 널리 통용되었다. 별칭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조선의 8도(정확하게는 경기와 7도)를 대신하는 기호 관동 호서 해서 호남 영남 관서 관북과 강원도의 동부와 서부를 지칭하는 영동 영서이다. 이 별칭들의 유래는 거의 전부 지형을 비롯한 자연지리적 요소에 그 기준을 두고 있어, 도회지명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공식적인 행정도명과 비교된다. 별칭 중에는 13∼14세기의 문헌에 등장하는 것도 있으며, 15세기 후반부터는 8도의 별칭 모두가 널리 통용된 것 같다. 별칭이 길게는 700년이 넘게, 짧은 것도 500여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지리적으로는 공식적인 행정지명에 못지않은 역할을 해온 것이다. 오늘날 조선 8도와 일부 지방의 별칭은 그곳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은연중에 지리적인 '지역구분'의 단위로 받아들여질 만큼 그 의미가 중요해졌다. 각 도의 별칭은 공식적인 행정도명과는 달리 그 유래나 의미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문헌자료를 통해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지리학계와 일반인들에게 흔히 소개되는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내용 중에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우선 관북 관서 관동의 '관'과 영남 영동 영서의 '영'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갯길 한두 개만 지칭한다고 보기보다는 각각 접경지대(변경지대), 군사상의 요충지가 많은 지방과 소백산맥 태백산맥을 의미하는 면도 있다고 믿어진다. 그리고 호남 호서 기호의 '호'는 금강과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서는 경기만의 서쪽이라는 의미와 함께 해주와 서하(풍천)의 머릿글자를 따라 정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가평 전주이씨묘 출토복식 고찰 (A Study on the Costumes from Excavation in Gapyeong Jeonju Lee's Tomb)

  • 최연우;박윤미;김윤경;김지희;박양희;이선우;차서연;편나영;황혜남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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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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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4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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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In 1995, the costumes were restored in an unknown woman's tomb at the Jeonju Lee's family cemetery in Gapyeong, Gyeonggi-Do, and there are currently nine items remaining. In this study, we first introduced these 9 relics to academia and analyzed the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costumes. We also estimated the time and person of burial compared with costumes unearthed from other burials. Jeogories (short jacket) are all four items. One of these items was unusual in shape, and the upper part of the seop (gusset) was wrinkled and shaped. This type of Jeogori appears only till the 1520s in other tombs. There are also two skirts, one of which is characterized by a superimposed pattern. The top and bottom / middle part of the skirt were rolled up, and the skirt, which was double-rolled up in this way, was first discovered. An analysis of the shape of Jeogori and skirt indicated that the person buried in the Jeonju Lee's family tomb was believed to have survived until the early 16th century. Based on these estimated periods, as a result of looking at the genealogy of Jeonju Lee's family, it was concluded that the tomb was probably a woman named Lee Geum Myeong (李金命) born in the mid-15C and died between the late 15C and the early 16C.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소장 필첩 및 첩갑에 사용된 직물 및 염료분석 (Analysis on the Textile and Dye Used for the Book Cover and Slipcase Housed in the Oryundae Korean Martyrs Museum)

  • 백영미;하신혜;배선영;이정은;권영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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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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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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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연구는 부산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국긔복소션"과 "법복졀복"의 직의(織衣) 즉, 표지직물 및 이를 보관하는 첩갑을 구성하고 있는 직물에 관한 분석적 연구이다. 본 유물은 조선 제24대 왕인 헌종(재위 1834~1849)의 후궁인 경빈 김씨(1831-1907)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첩갑과 2권의 필첩의 표지는 모두 적외분광 분석 결과, 견직물에 의해 배첩이 되어있으며 첩갑의 표지는 화문직은단(花紋織銀緞)으로 되어있고 두 필첩의 겉표지는 초록색과 적색의 수자편복문단이다. 첩갑의 금속사 부분은 에너지분산형 분광분석으로 분석한 결과 은이 산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염료분석 결과, 적색인 "법복졀복"의 표지직물에서는 berberine, brazilin, carthamin 등이 검출되어 황벽, 소목, 홍화 등에 의해 복합염색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첩갑의 색사들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첩갑의 황색섬유에서 rutin이 검출되어 괴화에 의한 염색으로 추정된다.

체육과 무(武), 국가 번영의 기초 -플라톤과 박은식의 사상을 중심으로- (Physical Training and Martial Art, the Foundations for a Flourishing State -Focusing on the Thoughts of Plato and Park Eun-sik-)

  • 홍영기;홍진기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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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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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0-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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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플라톤의 존재론은 물질과 정신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간주하는 이원론보다는, 이데아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론(Holism)에 가깝다. 그의 형이상학에서 감각적 사물은 이데아의 모상이며, 이데아는 그것의 원형이다. 그에 따라 인간의 육체와 영혼도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연속적이며 기능적으로 상보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영혼의 완성을 추구하는 플라톤의 교육관에서 체육을 중시하며 그것을 공부의 전제로 삼은 이유는 이러한 존재론에 근거한 것이다. 구한말 독립운동가 박은식 역시 플라톤과 비슷한 교육관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민족이 회복해야 하는 내면의 가치인 '마음'을 발견하기 위해선, 무(武)의 교육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플라톤과 박은식 모두는 체육과 무(武)의 교육이 그들이 추구했던 인간상을 만들기 위한 공부의 전제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교육과정을 통해 육성된 인재들은 사회에서 각자 자신의 직분을 다함으로써 국가의 번영을 이끌 것이라 기대했다. 결론적으로, 플라톤과 박은식의 사상에서 학생들에 대한 체육과 무(武)의 교육은 인간의 개인적 완성을 위한 공부의 전제이자,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교육과정 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