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Lat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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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화를 통하여 본 한국 근대복식 고찰 (A Study of Modern Korean Costumes on Kisan Genre Painting)

  • 이호정;조우현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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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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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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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is study is intended to understand the styles, colors and color arrangements of costumes expressed on Kisan Kim Jun-geun's genre paintings of Joseon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paintings vary according to the status and gender of the person wearing the costume as well as the time period and different situations the person belongs to. Also,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meaning and value of Kisan's paintings in terms of the history of Korean costumes. The result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The basic and common attire for people of all status and class is the jeogori(jacket), baji(pants) for men and Banhoijang jeogori, chima(skirt) for women. Men wear Po(coat) that represents their status and age, and they put on various hats according to different weather conditions or work-skill even when in the same status and class. However, women wear the Baeja(vest), Durumagi(coat) and head-dresses when they are cold. Overall, the costume patterns and shapes that appear on Kisan's paintings show the same patterns and structures when compared to different data during the same time period. Thus, they provide useful information to help not only understand the changes of patterns and structures of costumes, but also the situations and emotions of the people of that time period. Moreover, it can be understood that various colors and color arrangements that reflect the situations and emotions of the late 19th century were used. This study that analyses the colors and color arrangements used in Kisan's genre paintings can provide the very basic and systematically arranged data to help understand the unique colors in Korea. These data can also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to understand the use of dyes and pigments during that time. Therefore, Kisan's genre paintings are meaningful and valuable in terms of the history of Korean costumes for these are the data, from which we can review the costumes, colors and color arrangements in the years from 1890 to 1910.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법 제도와 사례연구 (A Study on the Legal Systems and Case Studies of Cooperatives in Italian)

  • 성연옥;배성필
    • 산업진흥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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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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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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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협동조합은 19세기에 처음 영국에서 조직되어 20세기 초반에는 유럽과 북미, 20세기 중반부터는 나머지 나라들로 확산된 뿌리 깊은 조직체이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우애조합(Friendly Societies)에서 분리되었으며, 초기에는 종교와 무관하게 활동해 왔으나, 이탈리아 사회주의와 19세기 말 가톨릭 교회의 사회 참여와 더불어 다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법과 제도를 중심으로 연구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법과 제도는 사회와 국민경제에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협동조합의 개념과 협동조합운동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찰한다. 둘째,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발전과정과 특성 그리고 법 제도에 대해 검토한다. 셋째,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사례에 대한 분석하고자 한다. 넷째, 연구 결과에 따라 시사점을 제시한다. 연구 결과에 따라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나타났다. 첫째, 마을기업은 대표 및 직원의 애착심, 성실성과 같은 태도가 매우 중요한다. 둘째, 조직구성원 모두가 마을기업의 비전에 공감과 애착심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조직의 필요에 따라 외부로부터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마을기업이 더욱 높은 경제적 성과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여야 한다. 넷째, 사례와 이론을 바탕으로 마을기업 수립 시 펼요한 요소 및 성공요인을 제시함으로써 마을기업의 모델을 수립하는 것은 중요하며 결론적으로 협동조합은 경제적인 이윤추구보다는 본연의 목적인 사회적 공헌에 기여해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후기 청화백자 산수문양의 전개양상 (Landscape Designs on Blue and White Porcelains in the Late Joseon Period)

  • 정은주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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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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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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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논문은 청화백자에서 산수문이 가장 성행했던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분원의 시대적 상황과 그곳에서 시문제작에 직접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화원과 화청장의 역할에 주목하였고, 현존 백자의 청화 산수문 주제를 분류하여 당시 문화.사상적인 배경에 초점에 두고 검토하였다. 또한 백자의 청화산수문양에 나타난 양식적 변화를 당시를 풍미했던 산수화풍 및 화보 도상과 비교하여 그 전개와 제변화 양상을 정리하였다. 조선후기 백자의 청화 산수문 중 대표적 주제는 동정추월문으로 이는 당시 화단을 풍미한 진경산수나 풍속화 등 현실적 소재와는 거리가 있으며, 국왕과 종실 등 분원의 정책을 운영하던 핵심 세력 및 백자 향유층의 사상.문화적인 경향을 잘 시사한다. 또한 청화백자의 기면에 동정추월문과 대칭하여 나타난 소재는 조선 유학자들의 이상적인 삶을 묘사한 처사들의 은일고사의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그 도상적 특징은 조선 중기의 소경산수인물도와 당시 유행하던 중국화보의 영향이 간취된다. 이들 산수문양은 호형 도자 문양을 구획 짓는 릉화창에 시문되거나 편병, 각병 등에 묘사되어 기면의 특성에 맞게 포치를 변화시켜 나타난다. 회화적인 요소가 강한 산수문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도식적으로 변모하거나 약리도와 길상도, 십장생과 같은 민화적 요소와 함께 시문되면서 점차 백자의 중심 문양에서 저변으로 밀려나 퇴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청화 산수문양이 시문된 백자의 편년작이 극히 드문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백자에 그려진 청화산수문 전개 양상의 일단이라도 정리하여 앞으로 이 분야 연구에 다양한 접근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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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육(牛肉) 조리법(調理法)의 역사적(歷史的) 고찰(考察) -IV. "구이"- (Historical Study of Beef Cooking -VI. ${\ulcorner}Roasted Beef{\lrcorner}$-)

  • 김태홍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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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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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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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urvey various recipes of the roasted beef with twenty three classical cookboods written before 1943. The roasted beefis found total 32 times in the literature which can be classified into seven groups such as the roasted rib, roasted foot, roasted tail, roasted heart, roasted gall, roasted kidney and roasted fresh meat. The most frequent one is the roasted rib appearing eight times and the next is the roasted sliced beef with seasoning appearing seven. This proves that the those recipes have been the most favorite ones to Korean people for a long time. The roasted rib has been found since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but the process of roasting ribs again with seasoning after three successions of dipping shortly into cold water in the midst of roast wasz disappeared. The roasted sliced beef with seasoning originated since the late 18th century, and the roasted beef with salt since the early 19th century which has been inherited as the roasted raw upper part of roasted beef recipes have been continued until today in the similar manner. Generally the roasted meat with bones and the roasted internal organs started in 1766 earlier than the roasted fresh meat by a century. The main ingredients were rib, foot, tail, heart, gall, kidney, fresh meat and knee bone, and the seasonings were mixtures of scallion stalk, garlic, pepper, oil, soy sauce and sesame seed powder. And peculiarly salted shrimp, pear juice, ginger were added to seasonings and pine nut powder was used as decorating ingred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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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강남(江南)에서 재해석된 사왕풍(四王風) 산수화의 유입 안건영(安健榮)의 <산수도> 6폭 병풍을 중심으로 (The Influx of Four Wangs' Landscape Style Reinterpreted in Jiangnan Circle(江南) in the 19th Century Focused on An Geon-yeong(安健榮)'s Six-fold Landscape Screen)

  • 최경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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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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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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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18세기 전반 북경에서 형성된 사왕산수화풍은 19세기에 한국과 일본으로 널리 전파되어 각국의 새로운 시대 화풍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화풍은 청 문사들과 교유했던 신위나 김정희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았던 신명연, 이한철, 유숙, 장승업, 안중식, 조석진 등이 사왕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 화단의 주요한 화풍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들이 그린 사왕풍 산수화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은 고원법으로 자연 경물을 가까이에서 포착하고, 화면의 오른쪽이나 왼쪽 하단부에 배치된 키가 큰 나무를 기점으로 계류(溪流)를 건너 주산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화원화가 안건영이 그린 <산수도> 6폭 병풍은 19세기 후반 유행했던 사왕풍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경물포착이나 필법 및 색채감각 등에서 이들과는 차별화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안건영의 현전 작품들은 대개 소품인데 이 병풍은 6폭의 산수화로 꾸며진 대작에 해당된다. 특히 산수의 여러 경관을 윤묵(潤墨)의 가는 필선으로 섬세하게 묘사하여 고요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라든지 일부 화폭에서 조감법(鳥瞰法)으로 경물을 포착하여 거시적인 시점을 보여주는 것, 연운(煙雲)을 통해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 등에서 새로운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화풍은 19세기 전반 강남(江南) 화단에서 사왕풍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중국의 실제 명산을 돌아다니며 익힌 사생(寫生)을 절충하며 산수의 기운이나 생명력을 전달하려고 했던 왕학호, 탕이분, 대희 등의 화풍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안건영의 <산수도> 6폭 병풍은 19세기에 북경 화단과는 차별화된 양상을 나타냈던 강남 화단의 사왕산수화풍이 전래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보기 드문 사례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한중(韓中) 묵연(墨緣)의 상징, 매감도(梅龕圖) (Maegamdo(梅龕圖), Symbol of Chinese and Korean Scholary Comespondence in the 19th Century)

  • 김현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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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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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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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매화나무는 동아시아 문학과 예술에서 군자의 덕성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즐겨 애용되었다.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역시 매화와 관련된 주요한 회화 형식이다. 이 논문은 구리매화촌사도(九里梅花村舍圖)류의 구성상 기원과 해당 그림들이 조선에 알려지는 과정을 밝히고 매감도(梅龕圖)가 제작되는 과정과 그 특징을 논의하고자 하였기에 이들 작품이 속한 매화서옥도의 발생부터 검토하였다. 현재 학계에서는 매화서옥도를 임포고사(林逋故事)와 연결시키고 있다. 물론 매화서옥도와 임포고사 간의 관계가 문인의 은거라는 의미로 연결되지만 작품의 구성 방식에 있어서는 임포고사에 기초한 회화류와 직접적인 비교가 힘들다. 방학도(放鶴圖)나 관매도(觀梅圖) 같은 임포 관련 회화에는 대개 한 두 그루의 매화나무와 학이 그려지고 이에 조응하는 문인이 표현된 반면, 매화서옥도는 문인의 은거가 묘사되면서도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가 가옥을 둘러싸고 있는 구성이 주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화서옥도는 매화 애호경향의 발생 이후에 그려진 관련 회화처럼 전 시기에 걸쳐 제작되지 않았다. 조선에서 매화와 관련된 회화는 세한삼우(歲寒三友)내지 사군자 일종의 매화도를 비롯해 탐매도(探梅圖) 같은 맹호연(孟浩然)고사에 기초한 산수화가 고려 이후 전 시기에 걸쳐 골고루 제작되었다. 그러나 매화서옥도만은 19세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중국의 경우는 조선보다 빠른 17세기부터 성행하였다. 이같은 상황은 매화서옥도라는 유형의 회화가 특정 시기의 문화현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조선의 19세기에 매화서옥도가 집중적으로 제작된 원인은 바로 김정희가(金正喜家) 및 신위(申緯)와 오숭량(吳嵩梁)을 비롯해 그의 회화 제작 주문을 전담하여 받았던 장심(張深) 간의 교유 때문이다. 이 교류 속에는 두 종류의 매화서옥도류가 제작되어 오고갔다. 청에서는 부춘산(富春山)아래 동강(桐江)가의 구리주(九里洲) 풍광을 담은 구리매화촌사도가 그려졌다. 구리주는 오숭량이 은거하려고 했던 곳으로, 수십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오숭량의 매벽(梅癖)과 그의 시를 기념하는 '매감공양(梅龕供養)' 행위가 일어났고 그 모습을 담은 매감도가 제작되었는데, 이 매감도는 구리매화촌사도류에 보인 '만매(萬梅)형식'을 적용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신위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은 <매감시불도(梅龕詩佛圖)>이다. 이 그림은 북경에 소개되어 장심이 그린 매감도들의 구성상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매감도류는 19세기에 조희룡 등에 의해 '만매서옥도(萬梅書屋圖)'라고 별칭되는 매화서옥도의 유행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19세기 후반에 성행한 만매서옥도의 발생을 파악하기 위한 선행단계에 해당된다.

조선시대 정원의 지식정보 전개와 수용 - 15~19세기 편찬된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중심으로 - (The Development and Acceptance of Knowledge Information in Garden of Joseon Dynasty - Focusing on the Garden and Flowering Books Compiled from the 15th and 19th Centuries -)

  • 김동현;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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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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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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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15~19세기 편찬된 조선시대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대상으로 통시적 분석을 통해 시기별 정원에 대한 지식정보가 전개되는 특징을 도출하고, 그 요인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편찬한 저자들의 관계성을 살펴본 결과 조선시대 실학의 계보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강희안의 실학적 면모는 후대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수광은 연행의 경험을 통해 정원 관련 지식을 축적하였다. 이후 중농학파 홍만선의 이념은 남인 계열의 유박과 관련이 있으며, 서유구 또한 중농학파의 경세론과 중상학파의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실학을 통합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류중림은 『산림경제』를 증보하면서 중농학파와의 관계성이 나타났다. 둘째, 『양화소록』과 『지봉유설』 「훼목부」, 『산림경제』 「양화」, 『증보산림경제』 「양화」, 『화암수록』, 『임원경제지』 「예원지」에는 정원 식물의 특성과 재배법, 관리방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임원경제지』 「이운지」, 「상택지」, 「섬용지」에는 정원의 입지선정과 시설 배치, 조성방법, 재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정원 관련 서적의 서술방식은 개론이 55%로 가장 높았고, 방법론의 제시(42.8%), 이기론(15.5%), 분류(12.4%), 제도(1.9%) 순으로 확인되었다. 셋째, 정원 관련 지식정보의 비중을 기준으로 시기별 정원 관련서적들을 분류한 결과 17세기 이전 편찬된 『양화소록』과 『지봉유설』을 전기, 18세기 편찬된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를 중기, 19세기 편찬된 『임원경제지』가 후기로 분류되었다. 정원 관련서적들은 전대에 수록된 중국 고서와 저자의 경험, 의견들이 후대 정원관련서적에 인용되었으며, 저술 당시 발달한 농업기술과 전문지식을 반영한 정원 관련 지식의 보강이 이루어졌다. 넷째, 시기별 정원 지식정보의 전개와 수용양상을 분석한 결과, 전기에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훼를 다루고 있었다. 이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방대한 정원 관련 지식정보가 유입되어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지식 섭렵의 일환으로 정원 조성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였으며, 이를 통해 정원에 대한 전문성이 확장되었다. 19세기 정원 조성의 유행에 대응하여 그간에 집적된 정원 관련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전문서적이 저술되면서 초기 정원 식물의 수집과 관리에서부터 정원 조성의 당위성, 조성방법, 향유방식, 자아실현 등의 체계가 정립되었다.

단일민족, 그 신화 형성에 관한 일 고찰: 종교 가르치기의 한 사례 연구 (A Myth-Making of Homogeneous Ethnicity of Koreans: A Case Study of Teaching Religion)

  • 하정현
    • 종교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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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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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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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신화는 일차적으로 고대인들의 사유와 표상이 담긴 이야기로서 전승집단의 종교와 삶의 규범을 담고 있는 유산이지만, 이 이야기는 전승과정에서 당대의 필요에 의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새로운 신화로 탄생한다. 동아시아의 근대국가가 성립할때 일부 지식인들이 고대로부터의 전승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민족과 국가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이야기들을 구축했다는 것은 한중일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대에 절대시하는 개념들 가운데 어떤 개념은 그 자체가 초역사적으로 신성시 되어 신화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역사적 위기상황의 극복을 위해 수용한 '민족' 혹은 '단일민족'의 개념이 그렇다. 따라서 한국민족이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근대에 형성된 일종의 '신화'로서 근대 민족주의 형성과 함께 만들어진 전통이다. 이 글에서는 종교가르치기에서 신화를 다룰때 반드시 짚어야할 신화(myth) 개념을 근대신화의 형성과정이라는 역사적 사례연구를 통해 알아보았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 신화개념에 역점을 두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첫째, 동아시아 '근대신화' 형성의 토대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로로 점철된 '근현대사'를 파악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 아울러 신화개념을 통한 역사적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신화학을 교양과목으로 수강하는 학생들은 근현대사의 심층적 이해는 물론 현대문화비평의 안목을 기르는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둘째, 신화라는 용어가 내포하는 복합적인 함의를 균형있게 살펴봄으로써 종교가르치기에서 종교의 역동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수신사(修信使)가 본 근대일본풍속(近代日本風俗) - 김기수의 일본풍속인식을 중심으로 - (The late 19th century Japanese folk culture which Korean Embassy experienced - Focused on Japanese folk culture recognition of Ki-Su Kim(金錡秀) -)

  • 전성희;박춘순
    • 한국생활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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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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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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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is paper discusses the late nineteenth-century Korean intellectuals' understanding of Japanese customs on the basis of Ki-Su Kim(金綺秀)'s records. Ki-Su Kim was conservative on his inspection and observation trip to Japan Even though he was loyal to Chinese philosophy, he expressed his great interest when he was reluctant to see the Western technology flowered in Japan because it is not mentioned in Confucianism(朱子學). However, he, like mordern scholars in the later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took an objective view of the military matters, such as the military training of soldiers, weapons, and others. On the one hand, he appreciated the western garment in that it, fitting the human body perfectly, makes people comfortable. In the later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the Koreans had a sense of their superiority to the Japanese and held them in contempt, which had been rooted in the Japanese invasion of Chosun in the year of Imjin(AD 1592). Even around AD 1870, the Koreans regarded the Japanese as a barbarian or a savage, even though the Japanese had attempted to modernize their country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Western civilization since the renovation of Meizi(明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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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복식에 표현된 페미니즘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Feminism through Contemporary Fashion)

  • 장영주;김명숙
    • 한국가정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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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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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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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The essence of Feminism is to establish the women's subjecthood as representing women's sexual characteristic and emerging from the fixed idea about women in our androcentric society. Feminism has been developed in various stages : the homogeneous theory which emphasized the similarity between men and women, the heterogeneous theory which persisted in he difference between men and women and underscored womanhood as an unique quality, androgynous theory which insisted on the common of two sexes since 1980's. The purpose of the thesis is to discuss the correlation between the feminism and the fashion, to examine its influence on shaping the contemporary fashion, and to infer what the women's fashion be like in the coming 21st century. The result of the thesis is as follows : First, the Mannish Look had been developed from the masculinization of female clothing by borrowing the style of women from that of men clothes since 1970's. Second, the Glamor Look has been stressed as the feminism began to swing toward which emphasized the difference between men and women, and women's sexual characteristics from the late 1970's. Third, from the late 19th century, the Fetish Look is still employed in various ways by the avant-garde designers, which impowered to increase the visualization of sex. Fourth, the Androgynous Look was born, androgynous image and neutral image, by the influence of the socio-cultural aspect of gender rather than the physical aspect from the middle 19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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