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research aims to investigate Park Kilyong's architectural theory and critique of Gyeongseong (Seoul) buildings, expressed in his 'Overview of Modern Buildings in Gyeongseong' and 'Critique of Gyeongseong Buildings' (Samcheolli, Sept. and Oct. 1935); and 'Architectural Form of the 100% Function' and 'The Modern and Architecture (1)-(4)' (Dong-A Daily, 28 Jul. to 1 Aug. 1936). As a result, it is confirmed that Park had the functionalist theory of modern architecture, which suggests that Korean architects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ere accommodating the contemporary trend of world architecture. However, Park shows his fundamental limitations in the fact that the main content of his articles was a verbatim translation of two Japanese references (Kurata, 1927; Ishihara, 1929) without proper indications. Despite the limitations, his texts are still meaningful since he formed his own architectural theory on the basis of what he translated; and indeed his critique of Gyeongseong buildings, however simple, was based on the theory. This research makes a critical analysis of Park's functionalist theory from both the 1930s' and present points of view and compares his commentaries on Gyeongseong architecture with those by Ko Yu-seop (1932) and Hong Yunsick (1937), illustrating how Korea perceived architecture and modernism in 1930s.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경성도시계획 문헌에 기록된 공원녹지 현황표를 분석하여 근대 공원녹지계획의 의의와 한계를 파악하였다. 1925년부터 1940년의 문서 7개를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1930년과 1940년의 문헌은 공식적인 경성 공원녹지 계획안을 담고 있다. 경성의 근대 도시계획 흐름에서 공원녹지는 1920년대까지는 중요한 계획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의 제정을 계기로 1930년대부터 공원계획은 법정 시가지계획의 일부가 되었고, 1940년에 경성시가지계획공원안을 통해 경성의 종합적인 공원녹지계획이 완성된다. 도시계획 초기에 공원은 위생시설로 인식되다가 이후 방공, 여가, 문화적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계획된다. 주요 문헌의 계획 내용을 비교하면 규모와 기능에 따른 공원의 유형 구분, 공간적 배치를 고려한 계획 기준, 시설녹지를 통한 녹지체계의 구상 등의 중요한 계획 내용의 발전이 있었다. 공원녹지계획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공원녹지의 수나 면적의 실질적인 증가는 거의 없었으며, 계획안과 현황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나타난다. 1920년대에는 경성운동장이 유일하게 조성된 시설이었으며, 1930년대에도 삼청공원, 앵정공원 두 개소만 신설된다. 1930년의 계획에서 38개소가, 1940년에는 140개소의 계획 공원이 제안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산림의 공원화, 대한제국 황실 토지의 공원화, 공원 용도의 중복지정, 소규모 아동공원 중심의 실행 등 현실적 조건에서 공원녹지의 양과 질을 향상하려는 대안이 계속해서 탐색되었다. 부족한 예산과 전쟁 준비의 상황으로 인해 일제강점기의 공원녹지계획안은 상당 부분 실현되지 못했지만, 해방 이후 서울의 공원녹지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틀로서 역할을 한다.
본 연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철도공원의 연혁, 이용행태, 공간적 변화를 파악하고, 공원계획 의미를 운동공원의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연구는 철도공원이 일제강점기에 최초로 신규 계획 조성된 공원이면서 공식적인 계획도서에서 계획 공원으로 편입되어 여러 차례 명칭과 영역이 변경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철도공원의 변화가 중요한 계획적 개념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도공원에 대한 분석은 공간적, 이용적 특징과 계획적 의미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공원 이용의 행태는 주로 당시의 공원과 관련된 신문기사와 사진의 분석을 통해 물리적 특징과 공간적 변화는 도시계획서 내용과 부도 및 지도 자료, 항공사진을 시기별로 분석하여 파악하였다. 계획적 의미는 도시계획서와 부도에 나타난 철도공원의 변화를 운동공원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1915년 개설된 철도공원은 철도국 용산관사단지의 부대시설로 조성되었으나, 1925년 경성부 공원으로 편입되면서 일제강점기에 종합운동경기장의 역할을 하였다. 1930년 공원계획에서 운동공원의 유형이 등장하지만, 프로그램적 성격이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으며, 운동공원으로서 철도공원의 중요성은 주목받지 못했다. 1930년대에 운동공원이 계획적으로 일반공원과는 다른 프로그램적 성격의 공원으로 인식되면서 철도공원을 확대하여 운동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나타난다. 1940년의 계획안에서 철도공원은 이촌공원으로 재편되어 경성의 중요한 대형 공원이자 운동공원으로 계획된다. 철도공원은 근대 공원계획이 양적인 계획에서 프로그램을 고려한 질적 공원계획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여러 제약 속에서 근대 공원계획을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남산은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여타의 다른 산과 달리 도심의 공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본 연구는 남산이 공원으로 인식되는 시점인 대한제국기와 식민지기를 주요 배경으로 변화와 변용의 과정 및 내용을 살폈다. 남산이 공원이 되고 공원이 다시 종교시설로 변용되는 일련의 과정이, 실은 일본의 도시 식민지화 과정과 식민지적 공간 통치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일본이 왜성대공원(矮城臺公園)을 시작으로 경성공원(京城公園), 한양공원(漢陽公園)에 이르기까지 도성 안 남산을 모두 공원화한 것은 한성부에 대한 일본의 세력 확장과 관련한 것으로, 여기서 공원은 일본이 한성부를 점거하는 전략적 도구가 되었다. 그러므로 남산의 공원화는 단순히 위락과 여가시설의 확보가 아니라 공원 조성을 명분으로 한 타자의 공간 점유로 보아야 한다. 이 시기 남산의 공원 가운데 왜성대공원과 한양공원은 각각 경성신사(京城神社)와 조선신궁(朝鮮神宮)으로 변용되는데, 주체와 목적에 따라 그 양상은 점진적이기도 하고 폭력적이기도 하였다. 공원에 일본의 문화가 이식되고 공원이 지배자의 공간으로 치환되는 이러한 사실은 일본이 공원을 이용해 남산을 물리적으로 점거한 것과는 또 다른 공간 지배 양상을 의미한다. 즉 남산의 공원화가 한성부 내 일본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이후의 변용은 식민지 지배를 공간의 양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남산은 공원이라 불렸지만 실제로 공원으로 이용된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나마 남산이 공원으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경성공원 일대의 산림자원 덕분인데, 그 배경에는 신사와 신궁을 위한 신원의 보존과 관리가 있다. 이 또한 식민 공간 통치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장충단공원은 현재 남산자락 내 공원으로 인식되지만, 조선 시대 남소영(南小營) 터에 대한제국의 군인 추모를 위해 조성된 장소였다. 일제강점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공원으로 변모했고, 식민지의 타당성을 표현하는 공간구성요소가 도입되었다. 이에 일제강점기 장충단공원의 시계열적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제국을 위해 싸운 군인들을 위한 추모공간이었다. 1900년 남산 자락의 제한된 진입공간을 지닌 터에 중심건물인 단사(壇舍)와 부속건물을 지형에 위요되도록 배치했다. 1909년까지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추모 제례를 진행했다. 둘째, 경성부민을 위한 도시공원이었다. 1919년 경성부는 장충단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제례를 금지시켰고, 단사를 제외한 기존 건물은 공원관리 시설로 활용했다.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휴게시설과 편의시설이 보완되었고, 대규모 벚나무 식재로 관앵(觀櫻)과 탐화(探花)의 명소가 되었다. 셋째, 식민지에 영향을 준 인물을 배향하는 추모공간을 조성했다. 1932년 이토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博文寺)가 장충단 권역을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았다. 이때, 조선의 전통건축을 이축(移築)하여 박문사의 부속건물로 활용했다. 관광지화 전략으로 경성유람코스에 박문사를 포함하여 다수가 경성 시내와 장충단 권역을 시야에서 내려 보는 경관을 체험하도록 유도했다. 장충단공원은 일제강점기 이질적 구성요소가 도입되어 공간이 지닌 성격조차도 변화되거나 재생산되었다. 향후 공원에 대한 재정비 사업의 진행 시 과거 기억을 존중하는 공간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The deteriorating role of Nakdong River due to the Four Major Rivers Project has caused a series of problems, including water pollution, drying streams, aggravation of the hydroecology. Geumho River and Gyeongseong-cheon had a higher concentration index and is believed to impact the water quality of the main stream. The influence index of Geumho River and Nam River between 2015 and 2016, which have a large amount of discharge, was the highest among the tributaries in terms of the load material balance. Showing the highest average concentration and average load in the index assessment, Geumho River is believed to require an intensive management for improving the water quality of the main stream. Furthermore, when the cumulative percentage of the average concentration and average load was compared based on the water quality improvement of the tributaries mixed to Nakdong River, which was set to 60%, Geumho River, Nam River, Topyeong-cheon, and Cha-cheon, which showed the highest ratio in that order, were determined to require a water quality management program as a priority.
뚝섬 일대는 조선 시대 국마를 기르던 목장과 내농포가 있던 교외 지역이었다. 일제 식민지기, 이곳에는 유원지가 조성되었고, 광복 이후 도시화 과정을 거쳐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 연구는 뚝섬유원지의 조성부터 공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유원지의 경관과 문화적 특성을 도출한다. 1930년대 교외 철도를 운영했던 경성궤도는 승객 유치를 위해 뚝섬에 유원지를 조성한다. 이는 철도 연선에 유원지를 조성했던 일본 사철의 경영 방식을 모범으로 개발된 것이다. 식민지기 뚝섬 일대의 농업 경관은 대중매체를 통해 도시와 대비되는 목가적인 '전원 풍경'으로 묘사되었다. 뚝섬유원지는 경성 서민들의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로 떠올랐으며, 경성부에 의해 관리되는 계도의 장이기도 했다. 광복 이후 뚝섬은 서울에 편입되고, 유원지 역시 서울시에서 운영했다. 1960년대부터 뚝섬 일대가 도시화되면서 뚝섬에 공원 혹은 대규모 유원지를 개발하려는 계획이 지속적으로 수립되지만 구현되지 못했다. 광복 이후에도 뚝섬유원지는 식민지기의 운영과 이용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시민공원으로 재탄생한 뚝섬유원지는 한강변의 모래사장은 사라졌지만, 노천 수영장, 캠핑장, 보트놀이 등 과거의 시설과 주요 활동들이 현재까지도 주요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뚝섬 일대의 도시화가 일단락되고 전원 이미지를 구성했던 요소가 사라지면서 유원지로서의 매력도 상실한다. 과거 뚝섬유원지에서 제공했던 동적 레크리에이션은 공원에서 일상적으로 제공하게 된다. 따라서 뚝섬유원지에서 뚝섬한강공원으로의 변화는 서울의 도시화 과정의 산물인 동시에, 유원지와 공원의 습합 과정을 보여준다.
In Korea, historical plays took an epoch-making turn from the previous historical plays in terms of approaches to topic and material and methods of rewriting history in the 1990s. Historical plays became dehistoricized with individual, everyday life, and faction emerging as major codes of historical plays according to mistrust in history and grand narrative as the original and disappearance of trust in the growth and totality of history. A new trend became dominant of presenting fictionality prominent instead of reproduction of history and freely playing with history outside the context. While modern historical plays were subject to the content of history, post-modern historical plays sought after new history writing to tell a new story on history within a framework of fiction. Focusing on some of the trends in post-modern historical plays since the 1990s, which include play with history, daily life-style history writing, and reproduction patterns of colonial modernity, this study examined the goals, representations, and text strategies of new history writing in three historical plays, Generation After Generation(2000) by Park Geunhyung, The Mercenaries(2000) by Park Sujin, and Chosun Detective Hong Yunshik(2007) by Sung Giwoong. In Generation After Generation, the author adopts a plot of starting with the present and tracing back to the past, breaking down the myth of racially homogeneous nation. At the same time, he discloses that the colonial history is not just by the oppressive force of Japan but also by the voluntary cooperation of Korean people. That is, we are also accountable for the colonial history of the nation. The Mercenaries contrasts the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colonial period against the modern history developed after Liberation, thus highlighting the still continuing coloniality, namely post-colonial present. The past is presented as the "phantom of history" making its appearance according to the request of the present hoping for salvation. The author politicizes history and grants political wishes to history by summoning the history by personal memories such as fictional diaries and letters with Messiah-like images opposed to the present of collapse and catastrophe. In Chosun Detective Hong Yunshik, the author makes an attempt at the microscopic reproduction of daily life by approaching the 1930s as the modern period when capitalist daily life started to take root. The lists of signs comprising daily life in colonial Gyeongseong are divided between civilization and savagery and between modern and premodern. With the progress of narrative, however, they become mixed together and reversed in the representation system in which the latter overwhelms the former.
본 연구는 탑골공원의 조성 논의가 시작된 1897년부터 공원 형태가 완성된 1916년까지 약 20년 동안 작성된 설계도면을 1차 사료로 활용하여 공간 구성요소의 변화를 통한 공원 성격의 형성과정을 분석했다. 이에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97년에서 1904년까지는 왕실 소유의 공원으로 탑골공원이 조성되는 시기이다. 고종의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해서 1897년 조성 논의의 시작과 1899년 민가를 철거하여 거북이 모양의 공원 평면을 바탕으로 담장 남문 북문 조성하여 1902년 개원하였다. 1903년에는 이왕직 음악대의 연주 장소로 팔각정이 도입되었고, 연주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 1904년 호자식 음악당이 축조되었다. 이 시기는 일요일에만 개방되는 이왕직 소유의 공원이었다. 둘째, 1910년에서 1913년까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이용이 활발해지는 시기이다. 주변 시설로 인해 경계부가 변형되었으며, 이용자를 배려한 휴양시설과 편익시설이 보완되었다. 1913년 8월에는 야간 개방이 이루어 졌는데, 이는 1910년대 일제에 의해서 도시풍 오락의 장소로 탑골공원이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1914년에서 1916년까지 상업시설이 도입된 시기이다. 1914년 상업시설로 끽다점인 청목당이 들어섰으며, 주변에 연못과 등나무 그늘시렁이 조성되었다. 1916년 종로 야시의 시작으로 탑골공원 이용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휴양시설과 편익시설의 확충과 관리를 위한 경계울타리와 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다. 기존의 호자식 음악당이 철거되고 용산군주차사령부에서 가제보형 음악당이 이축되었다. 191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922년 개벽 에 등장하는 탑골공원의 이용 행태와 부합하는 공원형태가 완성되었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공원 설계도면의 발굴이라는 사료적 가치, 기존 연구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근거 제시, 근대 조경공간에 사용된 공간 구성요소와 재료에 대한 탐구로써 의의를 지닌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궁궐은 많은 부분 훼손되었다. 창경궁은 특히 동물원과 식물원, 박물관 등이 건립되면서 가장 많이 훼철된 궁궐이다. 본 연구는 창경궁 내전 구역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여겨졌던 자경전 터의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장서각(이왕가박물관)의 건립 과정을 사료와 현장 조사를 통해 고찰하였다. 1911년에 건립된 장서각은 창경궁 전체를 내려다보는 위치이자 멀리 남산의 경성신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았다. 장서각의 건립 과정에서 주변 공간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910년대 초에는 장서각 터를 조성하기 위해 자경전 후면부 동산의 지형과 장고(醬庫) 일부가 훼손되었다. 장서각 전면부에 앞마당을 조성하면서 장대석 석축을 시공하였으며, 남쪽으로 계단을 설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화당 후면부의 석계의 원형은 파괴되었고, 정일재나 기타 건물 등은 철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1920년대에는 많은 전각이 헐리고 평탄화 작업을 거쳐 동식물원과 박물관이 완공되었다. 장서각이 완공된 후에는 내전과 주변의 관람동선도 변경되었다. 장서각 앞마당과 계단 주변의 화계에는 벚나무와 모란을 심고, 양화당과 집복헌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을 조성하였다. 셋째, 1930년대에는 장서각 주변의 동선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으며, 박물관인 장서각과 동식물원, 그리고 벚나무 동산이 된 창경궁은 일본식 문화공원으로 탈바꿈되었다. 그 이후 철거될 때 까지 주변 공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현재 궁궐의 복원은 문화재청의 장기적이고 국가적인 사업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차후 창경궁 내전권역의 복원 계획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며, 향후 관련 연구자들에게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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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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