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Gorye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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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염색을 활용한 전통 문화상품의 개발 (Development of Traditional Cultural Products Using Persimmon Dyeing)

  • 이은진;김선경;조효숙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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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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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3-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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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This study purposed to restructure representative traditional patterns formatively, manufacture actual cultural products with traditional dyeing technique using persimmon, and commercialize the results of the research. Traditionally in Korea, the dying of natural fiber such as cotton, flax and silk with persimmon was called Galmul dyeing, and clothes made through Galmul dyeing were called Galot. Galot was very useful because it is strong, does not pick up dirt easily, dries easily, and is cool in summer. In addition, cloth dyed with persimmon becomes stiff, so it does not need to be starched or ironed after washing. Moreover, it does not transmit heat under direct rays and is highly air-permeable, so it is cool and useful for standing the heat. In this study, we used traditional persimmon dyeing technique, printing traditional patterns fit for contemporary people's aesthetic sense not through dip-dying but through printing. When persimmon dyeing is used in expressing patterns, it produces not only visual effect but also embossing effect due to the characteristic of persimmon that makes printed patterns stiff, so we can obtain unique texture distinguished from other printing methods. We chose seven motive patterns, which were lotus pattern symbolizing eternal life, peony pattern symbolizing wealth and rank and prosperity, character Su(壽) pattern widely used as a symbol of health, bird and cloud pattern in the Goryeo Dynasty, Sahapyeoeuisohwa(四合如意小花) pattern printed on brocade in the Goryeo Dynasty, lattice pattern, cloth pattern on wall paintings from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From each pattern chosen as a motive was extracted unit patterns and the original pattern was restored using Adobe Illustrator. Restored patterns were restructured to be applied to cultural products fit for contemporary formative sense. Fabrics used in dyeing were cotton, linen, ramie, silk, and polyester. Although the same persimmon dyeing was applied, we produced different feelings of patterns using various fabrics and in some cases gold and silver powder was added for the effect of gloss in addition to the embossing of patterns. Using printed fabrics we manufactured tea pads, place mats, cushions, wrapping cloth for gifts, wallet, lampsh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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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심관세음보살타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陀羅尼經)』의 치병법을 통해 살펴본 한국 불교의학의 일면 (An Aspect of Buddhist Medicine in Korea Studied through the Sūtra of Great Dhāraṇī of the Uṣṇīṣa-cittā)

  • 이유진;안상우;김동율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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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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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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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The $S{\bar{u}}tra$ of Great Dhāraṇī of the Uṣṇīṣa-cittā is one of the most widely published scriptures of Esoteric Buddhism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The sutra is often referred to as a Buddhist medical scripture whose recitation is believed to allay diseases such as difficult birth, chest pain, and infectious and incurable diseases. It utilizes two major methods for healing: reciting and copying the sutra or copying the dharani and talisman which appear at the end of the text with fine cinnabar and ingesting them with aromatic water. In order to understand the medical and historical value of this sutra, this study examine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its establishment in early China and its migration to Korea in the Goryeo period. This study also investigates the identity and value of the scripture in Buddhist medical history. The oldest known printed texts of the sutra in Korea are dated to the late 11th century. Because of the material benefits of the text, the tradition of printing and distributing the sutra was very popular between the 13th and 19th centuries. Therefore, examples of the sutra having been used for medicinal purposes during rites are found in historical records. Finally, the study tries to identif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reatment methods of the Sutra and those of Korean traditional medicine focusing on several Korean traditional medical texts such as the Hyangyak-Jibseongbang (Compilation of Native Korean Prescriptions), the Donguibogam, and the Euibang-Hapbu.

고려시대(高麗時代) 시위제도(侍衛制度)에 관한 사적고찰(史的考察) (A Social Historical Study on Security System of Goryo Period)

  • 김창호;민재기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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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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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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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시위군은 궁성(宮城)의 수위(守衛) 및 국왕, 왕실세력의 행차시 최측근 군사력으로 일반군사조직이 붕괴되는 고려말까지 존속되었던 군사조직이었다. 외침(外侵)이나 내란(內亂)등으로 왕권이 위협받을 때 더 굳건한 시위조직이 구축되었고, 그 규모나 능력 면에서도 강화되었다. 고려시대의 시위조직은 군사조직의 일환으로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뉜다. 2군은 국왕의 시위군이고, 6위는 수도경비와 국경방위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중앙군의 지휘관들은 상장군.대장군 등으로 일컬어 졌고, 그 휘하에 장군들이 있었다. 문신귀족들이 국가의 중요정책을 도병마사에서 의논했듯이 상장군 대장군 등은 무관들의 회의 기관인 중방에서 군사문제를 의논했는데, 중방은 나중에 무신정변이 일어나 무신들이 집권한 뒤에는 권력의 중추 기구가 되었다. 무신정권 시기에는 현대적 의미의 사설 시위조직인 도방과 내도방이 출현하게 된다. 또한 최씨정권기에는 사설 시위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국가 공무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최씨일문에 전횡을 증오하고 반대하는 순기능적 역할도 수행하였다. 오늘날 세계 어떤 국가의 헌법(憲法)을 살펴보더라도 그 국가의 국왕 및 국가원수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국가원수의 시위(侍衛)는 한 개인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데 머물지 않고 국가의 안위를 보호하는 국가안위적(國家安危的) 차원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 져야한다. 또한 국가원수에 대한 시위(侍衛)는 시위기관에 부여된 최대의 임무인 동시에 국가의 안위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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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관경십육관변상도에 보이는 고려 전통의 계승과 변용 -정토인식과 왕생관의 변화를 통해- (Study on the Inheritance and Transformation of the Goryeo Tradition in the Illustrations of the Sixteen Contemplations of the Amitayurdhyana Sutra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ith the Focus on the Concept of Rebirth in the Pure Land-)

  • 이승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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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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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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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조선전기 제작된 관경변상도는 전환기 조선사회의 시대상 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정토인식이 화면의 구성과 도상에 잘 투영되어 미술사적,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조선 15세기 관경변상도는 모두 3점으로 이중 1435년 <지온지 관경변상도>와 1465년 <지온인 관경변상도>는 왕실인물과 고위승려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 이 두 작품은 1323년 <지온인 관경변상도>의 구성과 도상을 계승하면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고려후기에 융성했던 천태종(天台宗)의 정토신앙경향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고려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선호했던 자력적(自力的)인 정토신앙의 경향이 조선의 왕실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천태사상의 영향을 받은 정토신앙은 조선전기까지 계승되어 천태종이 불교의 통폐합과정에서 선종에 흡수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천태정토신앙의 경향은 이 두 작품이 각각 천태승 행호와 행호를 진불(眞佛)로 모셨던 왕실의 어른 효령대군이 발원하였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한편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사회가 안정화되어 감에 따라 관경변상도를 포함한 정토불화들은 점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교학적이고 자력적인 정토인식보다는 아미타불의 힘에 의해 구원받고자 했던 타력적인 정토신앙이 확산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도상이 용선접인도상이다. 자력적인 정토왕생을 좀더 가치있다고 여겼던 시기에 제작된 <묘만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용선접인 도상에서는 부처님의 인도를 받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해 조선전기의 용선접인 도상에서는 아미타부처님이 관음, 지장, 혹은 인로왕보살등과 함께 왕생자를 이끌고 배를 타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이는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극락왕생한다는 타력왕생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선전기 제작된 3점의 관경변상도는 유교주의 사회에서 타력적인 신앙을 선호하는 정토신앙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불화로서 매우 의미가 크다.

서산(瑞山) 보원사(普願寺)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 고찰(考察) (A Study on the Iron Seated Buddha at Bowonsa Temple in Seosan)

  • 강건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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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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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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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보원사(普願寺)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북쪽에 위치한 사찰로, 경내에는 나말여초에 조성된 문화재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충청남도의 고적 조사를 계획했고, 1916년(대정 5) 보원사지에 가서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 소옥(小屋)에 안치된 철조여래좌상(무릎너비 7척, 두께 5척 5촌)을 확인했고, 이듬해에 경복궁으로 해당 철조여래좌상을 이운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보원사지에 2m가 넘는 대형 철조여래좌상 1구만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철조여래좌상은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이 955년에 조성하였을 것이다. 탄문은 광주 고봉의 유력가문 출신으로 태조의 보살핌 속에 화엄종의 중심인물로 성장했고, 연이어 혜종(惠宗)(재위기간 943~945)과 정종(定宗)(재위 945~949)대에도 왕실의 불교행사를 주관했다. 이후 탄문은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의 후원을 받은 균여(均如)(923~973)의 등장으로 개경에서 떨어진 보원사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충주 유씨의 후원을 받아 지지 세력의 결속을 다지고 한편으로는 광종(光宗)(재위 949~975)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형의 철조여래좌상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탄문의 비문에 나오는 '주금상지삼존(鑄金像之三尊)'도 보원사에서 철조여래좌상이 주조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 철조여래좌상의 원(原) 봉안처는 보원사지 내 '건물지3'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의 금당지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건물지로 드러났기 때문에,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다른 장소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건물지3은 다른 건물지에 비해 고려시대 기와와 자기의 출토 빈도가 높고, 무엇보다도 정방형에 가까운 불단 유구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고려시대 전각인 건물지3에 봉안되었다가 조선시대 중창불사를 통해 지금의 금당지로 이운되었을 것이다.

타슈켄트 서울공원 설계과정에서 구현된 한국정원 설계요소 고찰 (A Study of the Implemented Korean Traditional Garden Design Elements on Tashkent Seoul Park)

  • 신현돈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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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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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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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서울시와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수도 타슈켄트(Tashkent)시는 2010년 7월에 자매도시협정을 맺고, 타슈켄트 내에 서울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이를 위한 현상 설계 공모를 2012년 치렀으며, 이때 당선된 작품을 기반으로 하여 2014년 6월 준공 후, 같은 해 9월에 개장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현상 설계 당시의 고민에서부터 아이디어가 실제 설계에 반영되어 준공되기까지 제 전반의 사항들을 한국정원 설계요소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타슈켄트 서울공원은 단순히 타슈켄트 내의 공공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해외에 조성된 한국 전통 정원의 새로운 효시가 될 수 있는 곳으로 조성코자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지금까지 외국에 조성된 한국정원과 공원들이 대부분 조선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재현했던 한계를 벗어나, 타슈켄트 서울공원은 17만 명 고려인들이 우즈베키스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감안하여 옛 고려의 문화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선행 연구를 통해 한국성 재현을 위한 디자인 요소들을 도출하였으며, 여기에는 고려시대의 정원 요소뿐 아니라, 고려인들 외에 현지인들이 보편적인 한국 전통정원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선시대의 재현 요소들도 재해석하여 함께 설계에 반영하였다. 중앙아시아에 한국의 전통미와 서정성이 담긴 공간을 구현하여 타슈켄트시 현지인들에게 우리문화의 단아하고 소박한 풍경을 느끼도록 하였다. 서울공원의 스토리텔링의 공간경험은 두 가지 시점으로 전개된다. 첫째, 고려인과 외국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공간경험으로써, 서정적이고 다원적인 공간구조를 지나면서 체험하는 경관의 단서들을 통해 고향, 한국의 정취를 더듬어 나가는 연속적 경관 체험의 장이다. 둘째, 타슈켄트 시민을 비롯한 이방인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경험으로써, 낯선 경관에서 느끼는 새로움, 지형과 경관을 다루는 다양한 기법 및 자세를 읽고,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와 교역을 이루었던 것처럼 한국정원에서 한국문화와 교감을 하며, 우리의 정서를 느끼는 스토리텔링과정으로 설정하였다. 외국도시에 조성되는 한국정원 및 공원은 단순한 조경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한다. 타슈켄트 서울공원 역시 이를 통해 대한민국과 수도서울의 이미지를 쉽게 알릴 수 있도록 한국 전통조경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반영하여 설계하였다. 더불어 우즈베키스탄 경관과의 차별성을 나타낼 수 있는 디자인,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계획안을 도출하는데 중점을 뒀다. 타슈켄트 서울공원은 현 시점에서 외국에 조성된 '한국정원'의 가장 최근 사례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설계 전략과 내용에 대한 연구를 통해 외국 도시에 조성되고 있는 한국정원에서의 한국성의 재해석 과정과 설계 요소 도출에 대한 고민과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한국 불교음악의 역사적 전개 고찰과 전망 (Consideration and Prospect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Korean Buddhist music)

  • 송지원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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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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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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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한국에서 전개된 불교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이 땅에 불교가 처음 유입된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모두 아울러야 할 것이다. 이는 1,600년이 넘는 시간 속의 전개 양상을 고찰해야 하는 일이라 연구 범위가 넓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이 글은 그 긴 시간 동안 펼쳐진 한국 불교음악의 역사적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찰함으로써 21세기 이후 불교음악이 이 땅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 현재에 이르는 동안 펼쳐진 불교음악의 역사는 '불교 성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며 전개되어 왔다. 왕실의 비호가 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불교음악의 양상과 억불숭유정책이 펼쳐진 조선시대, 그리고 불교가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일제강점기, 대중 포교를 위해 불교음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현재의 불교음악은 그 긴 시간만큼이나 역사적 전개 양상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각 시기별로 불교음악의 주요한 관점과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구분해서 시대별 특징을 밝혀야 하는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글은 좁은 의미의 불교음악을 통칭하는 '범패'의 역사만이 아닌, 이 땅에서 소통된 '불교적 성격을 띤 불교음악'을 모두 포함시키고, 20세기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찬불가 계통의 음악까지를 모두 대상으로 하여 이 땅에서 펼쳐진 '불교와 관련된 음악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조선 전기의 승려들이 부른 명칭가곡, 조선시대에 대중 포교를 위해 만든 음악, '화청'의 존재 의미, 조선시대 음악에 남이 있는 불교음악의 흔적을 파악해 보는 일도 이 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조선전기 남동부 연해읍성의 축조유형 구분과 이건배경 (The construction classification of coastal castles in the early Joseon period and the background on their relocation)

  • 권순강;이호열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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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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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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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Coastal eupseongs, which are mainly built in the period of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 are essential materials in studying the history of Joseon period eupseong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nect the annexation of local districts with the relocation of local government office, so as to categorize the types of coastal-eupseongs and examine the background of their constructions and relocations. Coastal eupseongs are mainly divided into 'maintenance type' and 'Mergence type' according to the annexation of local districts, and maintenance type is broken down into fortress type and non-fortress type in accordance with the existence of old eupseongs(fortresses). Coastal eupseongs can also be categorized into 'application type' and 'relocation type' depending on whether ex-local government offices were reutilized or relocated. Maintenance type is 'fortress-application type'(Gimhae Gosung Old Ulsan-eupseong), 'non-fortress-application type'(New Ulsan-eupseong), 'fortress-relocation type'(Dongrae Kijang Geojegohyunseong Ulsan(Jwabyeongyoung)-eupseong), 'non-fortress-relocation type'(Sacheon Hadong Jinhae-eupseong Geojesadeongseong) are differentiated by type. Mergence type is divided into 'Merger of Villages after Castle Relocation Type(Changwon Namhae Gonyang-eupseong)', 'Merger of Villages before Castle Relacation Type(Ungcheon-eupseong)'. Coastal-eupseongs are moved to other places in need of more affluent water supply(Gimhae Gijang-eupseong) and wider usable area(Namhae Gohyunseong-eupseong). Eupseongs were enlarged owing to the population growth, caused by annexations of local districts.(Ungcheon-eupseong) 'Seonso'(navy yard) is a unique feature which cannot be seen in inland eupseongs.

방연(方椽)이 표현된 승탑의 용례와 특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Use and Features of Bangyeon on the Seungtap)

  • 조현정;김왕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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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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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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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Rafter is a member for roof and plays a role in protecting shaft members under rafter such as pillar, beam and girder from natural environment and to fix by supporting finished materials of roof. It is common in the Korean architecture that rafter cross-section is paired with circular form and Buyeon cross-section is paired with the square shape. However, while there are not many, some architectures have rafter end header in the square shape. The aim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square shape cases of rafter end header with special reference to stone structure. As a result, among stone structure related to Bangyeon, the majority case is seen at Palgakwondang type Seungtap. It was shown in the Seungtap of monk of Gusanseonmun school in the later Unified Silla to the early Goryeo period that succeeded Seodang Jijang.

우리나라 종이접기 공예품에 대한 역사적 고찰 (Historical Review on the Korean Paper Folding Crafts)

  • 전철
    • 펄프종이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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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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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8-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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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e history of paper folding had continued before that the paper manufacturing technique was spread in the 3rd century and it was used for witchcrafts and rituals. Fold means as was used with the word Cheop and Jeopji.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 conical hat with fabric spread as customs, then it was made of the paper that led the popularization of paper folding form the early Joseon Dynasty. Paper crafts and living things with paper are mostly derived from fabrics except the paper written for saint's name related God. In the period of the tribe nation, witchcrafts and rituals brought to Japan via the Korean Peninsula, as a result Kami which means God in Japanese that becomes the paper. The first folding fan was made to develop from the fan, Baekseopsun in the end of Goryeo Dynasty. It was an outstanding application of paper folding crafts. Since the early Joseon Dynasty, paper flower folding has considered as the virtue of savings and has developed one of the Korean traditional paper arts. Paper folding has also developed in the practical uses like the other Korean paper arts but paper folding that was developed as seasonal customs, playing or religious purpose showed a different trend from Korean paper 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