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Annex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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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업의 장기적 진흥계획을 위한 전략 업종 선정에 관한 연구 (Study to Select a Strategic Fisheries for the Encouragement of a Long Term Planning Project in the Korean Fishing Industry.)

  • 장수호
    • 수산경영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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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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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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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
  • This is a study of a long term project to encourage the Korean fishing industry. It seeks to supply a sound theoretical background in an attempt to liberalize the capital investment of the industry. However, the discussions developed in this thesis are based on, the existing world's fisheries resources, the possibility of their prospective cultivation, and the analysis of the evolution of Korean fisheries and fisheries organization. According to the reasults of the analysis ; out of the prospective world fisheries resources which are estimated at about 200 millions m/t the total yield per year is only about 70 millions m/t (1969), and Korea occupies only 850 thousands m/t. This therefore means that the Korean fishing industry allows much room for further growth. But the purpose of Korea's existing fishing industry organizations is entirely directed toword coastal fisheries and their functions never reache beyond the limit of off-shore fisheries. Thus almost 99% of the fisheries population engage in small scale fisheries along the coast line. The result is that the resource are almost exhausted by such over-exploitation. Being faced by this fact, it is of urgent necessity to modernize the management of fisheries as well as to encourage larger scale management of fisheries industries. This should be accompanied by the liberalization of capital investment. For this purpose this study also recommends the unification or annexation of small organizations to establish larger ones that will function for a larger scale industry. and further this study recommends that, in order to reorganize the existing fisheries organizations, a principle of selection should be applied in the areas of (1) maximum sustainable yields, (2) the possibility of forming an enterprise and (3) the maintenance of organization st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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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최초의 흉부외과 관련 의학기록 (The First Written Medical Record on Thoracic Surgery in Korean History)

  • 김원곤
    • Journal of Chest Surg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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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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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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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1909년 12월 22일 당시 23세의 애국청년 이재명에 의해 이루어진 이완용 암살 기도 사건은 비록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났지만 지금까지도 민족정기를 크게 고취시켰던 사건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 연관되어 이재명의 재판을 위해 당시 작성된 이완용의 상해감정서에는 여러 부분에서 의미있는 흉부외과적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즉 늑골하연 자상, 늑간동맥 출혈, 폐손상, 좌흉부타박상, 외상성 늑막염 등의 전문적인 흉부외과 병명이 언급되고 있으며 그리고 기흉과 혈흉을 의미하는 기술(폐를 손상하여 창공으로부터 출혈 및 호흡에 수반된 공기 출입이 있었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흉부천자술에 의한 혈성 삼출액 배출이라는 외과적 시술에 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여러 정황 분석 상 한국사 최초의 흉부외과 관련 의학기록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 연구논문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한 사건을 통하여 한국사 최초의 흉부외과 관련 기록을 발굴, 분석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철도성격규명에 관한 정성적 연구 (A Qualitative Study of the Properties of the Korean Railway during the Japan Colonial Period)

  • 이용상;정병현
    • 한국철도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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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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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6-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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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한반도에서 철도가 처음으로 개통된 후 철도는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즉,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이 건설되었으며, 한일합방이후에는 한반도에서 철도는 일본의 식민화에 따른 지배의 수단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운송수단으로서 근대화를 촉진시키고, 조선의 경제, 문화, 사회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 한국 철도사 연구 중에서 연구가 미진한 부문의 하나가 일제강점기에 있어서의 철도의 성격규명에 관한 연구이다. 특히 구체적인 철도의 영향력과 사회변화 등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와 관료를 중심으로 한 철도정책과정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철도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측면이 간과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철도에 대한 성격규명을 정성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즉,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의 지휘를 받았던 철도국장 등 철도정책결정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철도관료의 분석을 통해 철도의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하였으며, 대륙철도와의 연결과 국내산업개발 측면에서의 조선철도의 성격 등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그 동안 일제강점기의 철도에 대한 성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1918년에 출판된 『간호교과서』 연구 (A study on the Textbook on Nursing published in Korea in 1918)

  • 이꽃메;유수정;박찬숙
    • 한국간호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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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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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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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Purpos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better understand nursing education in the early years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Methods: We compared the 1918 Textbook on Nursing with the first Textbook on Nursing and to the original text, Grade A Textbook on Nursing, by the Japanese Red Cross Society (JRCS) using the historical research method. The background of its publication and its use in nursing education were exploring, too. Results: After Korea's annexation by Japan, the nursing textbook by the JRCS was appointed as the standard textbook in nursing education by the Government-General in Korea (GGK). Missionary nurse got the permission for the nursing textbook by JRCS and the Textbook on Nursing was published in 1918 using Korean and Chinese characters in combination. This book, an adaptation of the original text, explained the responsibilities and roles of nurses to guide them in serving patients as well as assisting in treatment or directly performing emergency medical treatment when necessary, with a focus on the treatment of the war wounded. It would have been partially used in actual nursing education among the missionary community. Conclusion: Textbook on Nursing in 1918 was published not only for the nursing students of missionary nursing schools but also for other nursing trainees of diverse hospitals, nurses and missionary volunteers and to help them to acquire the licenses. It reflects the enforcement on nursing education by GGK and the reality and resistance in terms of the content of education of nursing in Korea during that period.

일제강점기 경주 남산 삼릉계 약사여래좌상 반출 경위에 대한 고찰 (A Study of the Removal of the Seated Medicine Buddha from the Samneung Valley at Namsan, Gyeongju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 아라키 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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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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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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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경주 남산의 불적에 대한 본격적 조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경주 남산 불적조사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경주 남산 불적을 심도 있게 고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선행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경주 남산의 불적조사는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한일병합을 전후한 초기 조사는 예비 조사 정도로 간주되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초 조사로 후속 조사의 발판이 되었고, 1910년대에 남산이 불적의 보고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1915년 경주에서 반출되어 경성 경복궁에서 개최된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에 출품된 삼릉계 약사여래좌상은 관람객의 눈길을 가장 끄는 미술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세간에 불적으로서의 경주 남산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약사여래좌상은 남산 불상 중에서 가장 원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공진회에 출품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그 반출은 한일병합을 전후하여 구상된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진행되었다.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은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중심이 되어 구상된 식민 이데올로기인 '일선동조론'과 '조선정체성론'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해체하고 그 한복판에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석굴암을 안치시킴으로써 일본 제국에 의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을 시각적으로 선언하려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그 구상이 무산되자 석굴암 본존불 대신에 경성으로 반출된 것이 다름 아닌 삼릉계 약사여래좌상이었다. 약사여래좌상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11년 세키노 다다시가 실시했으나 그 위치를 세키노에게 알린 것은 모로가 히데오나 고다이라 료조와 같은 경주 거주 일본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 현지인은 총독부로부터 요청을 받아 공진회에 출품할 만한 불상을 찾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약사여래좌상은 총독부와 세키노 다다시, 그리고 경주 거주 일본인들 사이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경성으로 반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경주 남산의 불적이 그 신비의 베일을 벗기는 과정이기도 했다. 요컨대 초기 남산 불적조사는 기초 조사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과 1915년 공진회의 성공적 개최라는 데라우치 총독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깊은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 순수한 학문적 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기 어렵다. 한편 석굴암 경성 이전계획이 좌절되고 경성으로 반출될 가능성이 컸던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 현지에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는 경주 조선인의 저항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자세히 논할 수 없었으나 그들을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로 부각시킬 연구가 요구된다.

국공유지 필지 관리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A Study on the Problem and Improvement Plan of Management of Public Land Parcels)

  • 김진;정영진;김준호;이현준;홍성언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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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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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6-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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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에서는 현행 국공유지 필지 관리에 관한 현황 및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기초로 국공유지 필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국공유지 관리의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분석된 문제점으로, 필지 관리 미흡에 따라 필지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량은 2008년 기준으로 매년 평균적으로 128,520필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리고 현황과 지적공부의 토지이용상황이 불일치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기초해 군소필지가 난립되고, 이는 필지 관련 통계자료 조사 산정시 오류가 포함되어 통계정보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합병을 통한 필지수 감소, 지적확정측량을 통한 지적정보 관리의 신뢰성 확보, 현황 중심의 국공유지 필지의 등록 관리를 제시하였다.

우리나라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1800-1910) (The Needs of Digital Archive Development for the Records of Early Foreign Missionaries in Korea (1800-1910))

  • 장윤금
    • 정보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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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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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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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우리나라 초기 개신교 선교사에 대한 역사는 19세기 말 쇄국정치가 막을 내리고 서구문명에 대한 문이 열리면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의사 혹은 교사 등의 전문가 신분으로 들어와 활동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기록물은 단순한 종교적인 가치를 넘어 우리나라 근대 역사, 정치, 경제, 사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초기 선교사 자료의 역사적인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접근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정책이나 방안에 대한 체계적인 시도는 현재까지 매우 미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 서적, 정기간행물, 일기, 편지, 사진 등의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 초기선교사 자료는 현재 이들을 파송한 선교회, 신학대학, 정부기관, 도서관, 박물관, 연구소, 선교사 가족 등에 산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이러한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료에 대한 현황조사 및 전문가 심층면담을 통해 이들 자료의 아카이브 현황과 향후 체계화된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범위는 우리나라에 개신교 선교사가 처음 들어오기 시작한 1800년대부터 일본강점기 이전 1910년으로 제한하였다.

구한말의 호위제도 고찰 (A Study on the Guard System in the Last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 이성진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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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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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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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구한말의 호위제도 고찰은 개항 이후의 고종의 친정, 그리고 대한제국시대의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시대의 왕실호위제도에 대한 고찰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호위제도를 이해하기 위하여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간의 세도정치로 인하여 문란해진 왕권을 강화하고 국방력강화와 비변사를 폐지하며 종전의 삼군부로 부활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왕권 강화에 도움을 주었고 허약했던 중앙군을 강화하여 상비군을 늘리고 군기를 숙정하게 되었으며 신무기를 개발하는 등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대원군 실각 후 고종이 친정을 했다고 하나 대원군과 민비세력과의 불화로 인한 불안에 대처하여 궁궐 숙위를 전담하는 무위소를 설치한 이래, 2군영 제도 실시의 친군영, 용호영의 부활, 시위대 친위대 등으로 이어진 갑오개혁까지의 호위체제의 변화는 법제적인 것이 아니었고 일본, 청국, 러시아 등 외세의 변화상황에 따라 주체적으로 힘을 다한 것이었다. 일본이 침략경쟁에서 승리한 이후 독무대가 되는 상황의 변화로 인해 대내의 국가수호에 대한 노력의 효과가 약화되었으며, 더욱이 갑오개혁 이후 경무청 내에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경무서를 둔 것과 대한제국시대의 경무서를 경위원과 황궁경위국으로 개편되었던 제도역시 일본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어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역경에서 이루어진 그 노력과 분투의 과정은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따라서 왕실을 호위하는 세력이 일본에 넘어간 대한 제국시대의 호위제도와 모든 상황전개는 제도가 아무리 완벽하게 수립되어 있을지라도 국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할 때 왕실의 호위제도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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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한국철도와 만주철도의 비교연구 (A Comparative Study of the Korean and Manchurian Railway Systems during the Japan Colonial Period)

  • 이용상;정병현
    • 한국철도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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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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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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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철도와 만주철도를 비교하였다. 양국철도는 공히 제국주의 철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만주철도는 정부주도하의 민간철도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철도는 철도수입위주였지만 만주철도는 철도이외에도 지역개발, 광산, 항만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다. 두 번째 만주철도는 우리나라 철도에 비해 수익성이 좋았고, 화물위주의 수송이었다. 세 번째로 철도관료의 경우도 우리나라는 주로 정부 관료들이 임명되었지만 만주철도의 경우는 정당정치에 의한 정치가, 외교관 등 다양한 계층에서 임명되었다. 관동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군의 영향력이 컸다. 공통점으로는 제국주의 철도였기 때문에 정부정책 특히 시기적으로 철도는 군사적 목적에 활용되었다. 특히 만주철도의 경우 대륙에서의 전쟁수행이라는 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같은 시기의 일본 본토 그리고 대만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철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의 부각을 통해 우리나라 철도의 성격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제국기 개국기원절(開國紀元節) 기념행사와 음악 (The celebration events and music on the celebration day of national foundation(開國紀元節) during the Daehan Empire Period)

  • 이정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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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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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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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개국기원절(開國紀元節)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기리는 경축일이다. 줄여서 기원절이라고도 하였다. 이를 기념한 행사가 1895년부터 1910년 한일병합 직전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대규모 혹은 소규모로 설행되곤 하였다. 설행 시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개국기원절은 조선의 전통적인 궁중 행사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아니며, 개항(1876) 이후 새롭게 제정된 경절(慶節)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항 이후 세계 각국과 교류하게 되면서 근대화에 매진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경축일의 성격을 지닌 각종 경절 기념행사를 어떻게 구체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 전통적인 궁중 행사와 별도로 혹은 일부 교차되면서 경절 기념 경축 행사가 1895년부터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본고에서는 근대식 경축일을 의미하는 경절의 하나인 개국기원절을 살펴보았다. 이를 기념하여 행사를 펼쳤던 모습이 1895년 7월 16일 경복궁에서부터 포착된다. 그리고 독립협회에서도 개국기원절 기념을 행사를 설행하였다. 개국기원절을 기념하여 설행된 행사는 전통적인 하례 방식이 일부 지속되는 토대 위에 현저히 달라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특히 독립협회에서 펼쳤던 개국기원절 경축 예식에는 축사, 연설 같은 근대적인 축하 방식이 도입되고, 궁중음악 창가(唱歌) 등 다양한 음악이 함께 어울리는 등 새로운 요소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