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50-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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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 공예품 제작과 수급(需給)에 관한 연구 - 나전칠기장 민종태 제작 활동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Production, Supply and Demand of Najeonchil Craft Works with a Focus on the Artisan, Min Jong-tae)

  • 채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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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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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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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나전칠공예는 구한말 근대화를 시작으로 6.25전쟁 이후 산업 발전에 힘입어 본격적인 현대화의 길을 걷는다. 1900년대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나전칠공예의 흥망성쇠는 여타 공예 종목과 비교하였을 때 매우 다채롭다. 본 연구는 1929년 나전칠기계에 입문하여, 칠십 평생을 나전칠 공예품과 가구 제작에 매진한 민종태의 제작과 수급 활동을 주제로 한다. 민종태는 근대 나전칠기계의 중시조 격인 전성규의 제자로 살아생전 김봉룡, 송주안, 심부길, 김태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나전칠기 장인이자 사업가이다. 특히 그는 한국 현대 나전칠공예의 호황기인 1970~80년대 주요 수급지였던 서울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민종태 나전칠공예의 입문과 광복 전후의 초기 활동을 기술하고, 본격적인 나전칠 공예품 제작과 수급 체계를 갖추어나가는 1950-60년대를 다루었다. 또한 1970~80년대 이른바 '장롱문화' 시대를 맞이하여 큰 규모의 가구를 제작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에 향합과 차통 등을 수출했던 그의 수급 활동을 관련 자료들과 함께 살펴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칠기장 보유자였던 민종태 제작 활동의 공예사적 의의를 찾고자 하였다.

한국형 사과 병해충종합관리(IPM) 체계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의 전개: 이순원 박사의 연구 사례 (Development of Basic Research for Establishing the Apple IPM System in Korea: Dr. Lee Soon-Won's Research Case)

  • 안정준;오현석;최경산;최경희;도윤수;이선영;이동혁
    • 한국응용곤충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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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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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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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1950년대에 종합적 유해생물관리(IPM)의 개념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1960년대에는 경제학적 개념이 해충방제에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종합방제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병해충 종합방제에 관한 연구는 1970년대 감귤해충에 대한 종합방제연구와 통일계 품종의 보급에 따른 수도해충종합방제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사과 병해충종합관리 연구는 1980년대 화학농약을 이용한 방제 및 약제 저항성 연구, 해충 및 천적생태에 대한 연구, 성페로몬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1990년대부터는 농가보급을 위한 IPM 연구사업과 현장실증사업이 병행되었다. 2000년대에는 교미교란제를 중심으로 한 해충예찰과 발생모형 개발, 해충에 대한 DB프로그램 및 정보공유를 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2010년대는 무인예찰 및 자동화기술 개발을 통해 IPM 기술이 확장되고 있다.

독일 브라운 사의 디자인 전략 분석 (Design Strategy Analysis of the Germean Firm Braun)

  • 이병종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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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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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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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1950년 독일의 브라운 사는 시장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고자 제품들에서 확고한 현대적 디자인의 실현을 근간으로 한 경영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디자인 실장인 프릿츠 아이홀러(Fritz Eichler)박사는 울름 조형대학(Hochschule fur Gestaltung Ulm)이 한스 구겔로(Hans Gugelot)그리고 오틀아이혀(O시 Aicher)와 함께 코퍼레이트 아이덴터티 프로그램(Corporate Identity Programme)의 기초로서, 브라운 디자인 경영전략의 초기 기본 지침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1955년 이들에 가담하게 된 디터람스(Dieter Rams)는 브라운 디자인 전체의 형태를 특징 짓는 인물로서, 그 디자인의 계속적인 개발을 이끌어 왔다. 1950년 중반에 브라운 사의 전 제품 프로그램은 새로이 디자인되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곧바로 시장에서의 명백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독보적인 하나의 아방가르드(Avant-garde)운동이었던 브라운사의 새로운 디자인 라인은 일종의 객관화 할 수 있는 “훌륭한 형태(Good Form)”에 대한 생각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로서 브라운 사의 제품 프로그램 전체가 새로운 라인에 따라 재 디자인되어진 60년대와 70년대에, 브라운 디자인은 전 세계 디자인 분야의 현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목적에 대한 완벽한 충족, 정밀함, 안전성, 내구성, 제품의 질 그리고 점차 최근에 들어서는 환경에 조화를 이루는 것 등에 기초를 두는 브라운 디자인은 무엇보다도 근본에 있어서 기능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래서 브라운 제품들의 모든 요소들은 유사하게 조화를 이루어 통일 감을 주고, 모든 불필요한 세부사항들을 제거하고 필수적인 요소들을 체계적인 정돈에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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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남성 영화배우들의 티셔츠 이미지 연구 (A Study on the 1950s and 1960s T-Shirts Design′s Influence of Actor′s Image)

  • 정은숙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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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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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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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valuate the influence of T-shirt as a movie costume on the modem mass fashion. The way of study is to analyze the changes of men's image with T-shirt as Hollywood actors costume in 50's and 60's. The costumes create the characters with meanings and symbols moreover they lead fashion as well as promoting artistic value of films.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is shirt learnt the ropes in the U.S. Navy well before it won the hearts of sportsmen and workers alike, with its twin virtues of comforts and hygiene. When American soldiers returned home after World War II showing their T-shirts in the sweltering heat of the Tropics, their shirts were as heroic as they were. Furthermore the new stars of Hollywood, going by such names as Marlon Brando and James Dean, gave the T-shirt its rebel cachet and showed the whole world. Be it tom open on Marlon Brando's torso in Elia Kazan's 'A Streetcar Named Desire', or peeping out dazzlingly white from under James Dean's red jacket in 'Rebel Without a Cause', the T-shirt flaunted its sexuality and emanated the sweet smell or revolt. It would be the banner of rebellion for a whole generation. The T-shirt had finally found its way into the history of fashion and was there to stay.d was there to stay.

광복이후 첫돌 복식의 변천 (Changes in the Ceremonial Dresses for Children's First Birthday Since 1945)

  • Ji, Yoon-Young;Hong, Na-Young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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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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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81-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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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본 연구는 광복 이후 현재까지 첫돌 복식 변화를 시대적으로 고찰, 그 변화 양상과 영 향 요인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연구 방법은 문헌 고찰과 사진 자료를 통한 내용 분석을 주로 하였다. 더불어 자료의 보충을 위해 첫돌 의례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가족, 기성 아동 한복 유통 상인, 상업적 사진사 등-의 면접 조사도 병행하였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940년대 중반∼50년대 초에는 해방 이후 혼란과 전란으로 인한 물자의 부족으로 첫돌 의례의 명분은 남아있으나 복식 문화는 공백기를 맞는다. 1950년대 중반이후 60년대 전반기는 미국의 경제 원조와 섬유 공업 활성화로 의료의 공급이 원활하여 전기에 비해 의례적 의미를 지닌 첫돌 복식의 착용이 가능해 졌다. 전통 한복을 기본으로 한 위에 서양식 복식 품목들이 섞여서 나타나고 있다 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의 두드러진 양상은 기성복 산업 의 발달로 전문적 인 기성복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는 기성복화 된 첫돌 복식의 일습 개념을 등장시키게 하였다. 또한 한복이 예복화 되는 경 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시기로 70년대 후반의 칼라 필름의 보급은 금박과 자수와 같은 다양한 재료와 재단 방법을 사용한 장식화 된 첫돌 복식의 사용을 가속화 시 켰다. 특히 70년대 중반에 소수의 일반에게 입혀졌던 궁중복식의 하나인 당의가 소매없는 당의로 바뀌어 여아의 돌옷으로 입혀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전반기는 칼라 TV의 보급, 비디오 촬영의 보편화로 한복이던 양복이던 일습화 된 첫돌 복식이 대중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후반기에는 국내의 국제적인 행사의 유치와 전통 복식 소개를 위한 전시들을 계기로 왕실 복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로 인해 여아에게 소매없는 당의를 입히고 남아에게 용포를 입히는 유행이 가속화되었다. 또한 서양식 예복을 입히는 유행이 시작되었다. 90년대에 들어와 아기 전문사진점의 등장은 1 회적인 첫돌 의례에 한복과 서양식 예복, 일상복 등을 다양하게 착용시키는 계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변화 양상에도 불구하고 첫돌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옷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그 복식의 구성 이 전통적인 일습 개념을 꾸준히 지향해 온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최근 과열된 아동 산업은 보다 다양한 복식을 입혀서 촬영한 사진으로 특별하게 꾸민 상업적인 기념물들을 남겨주게 하고 있다. 비록 특별한 옷을 준비하여 아동에게 입히는 행위는 유사한 표현 양태이나 지나치게 많은 옷을 갈아 입히는 표현 방식은 지양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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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루르지역의 도시재생정책: 오버하우젠시와 겔젠키르헨시를 사례로 (Urban Revitalization Policies of the Ruhr Area, Germany: Case Studies on the Cities of Oberhausen and Gelsenkirchen)

  • 신동호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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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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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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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독일 북서부에 위치한 루르지역은 1850년대부터 석탄이 채굴되면서 석탄광업과 제철공업을 중심으로 유럽 최대의 공업지역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너지원으로써 유류(Oil)에 비해 석탄의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떨어졌고 개발도상국의 부상에 따라 이 지역의 석탄광업과 제철공업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부터 석탄광구와 제철공장이 하나씩 폐쇄되기 시작하여 도심에 조성된 많은 공업용지가 유휴화 되었고 실업자도 크게 늘어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였다. 루르지역의 전형적인 공업도시라 할 수 있는 오버하우젠(Oberhausen)시는 이러한 문제에 당면하여 대규모 제철공장부지를 정화하여 거대한 쇼핑몰과 여가산업지구를 조성하였고, 겔젠키르헨(Gelsenkirhen)시는 석탄광업지구를 정화하여 태양광 산업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단지와 친환경 주택단지를 조성하였다. 본 연구는 경로의존론(Path Dependence Theory)에 입각하여 이 두 도시가 추진한 도시재생정책의 집행과정과 결과를 분석하고, 이론적,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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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적 맥락에 따른 북한 구석기 연구 변화 (The Socio-Political Significance of Paleolithic Studies in North Korea)

  • 이형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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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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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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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1950~60년대부터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의 구석기 고고학 연구는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달려왔다. 수십 년간 서로 다른 가치의 구석기 연구를 해 온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구석기 고고학의 궤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궤적이 놓인 정치·사회적 지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 구석기 고고학을 '읽기' 위해서는 문헌의 정보를 살피는 동시에 문헌의 밖을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북한의 구석기 고고학을 읽는다는 것은 고고학적 연구와 함께 북한의 정치·사회적 특성을 연동하여 살핀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변혁에 따른 구석기 고고학의 변이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도서 정리 사업'이라는 정치·사회적 사건과 이에 따른 학술 자료 인용의 관계성은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정치·사회적 일정과 관련하여 북한의 구석기를 읽기 위해서는 북한의 구석기 연구를 고고학적 자료와 같이 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고학적 자료를 각각의 속성으로 구분하여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1950~6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북한의 구석기를 여러 속성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여러 속성, 즉 세부적인 연구 단위를 찾고 그 연구 단위의 변화를 읽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북한 구석기 연구 단위는 편년 연구, 사회 진화, 유물 조합, 인류 진화, 지질 환경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해당 다섯 가지 연구 단위의 세부적 내용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 세부 연구 단위의 변화는 크게 1950~60년대 이후, 1970년대 이후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나누어 관찰이 가능하다. 새로 조사된 고고 자료로써 각 연구 단위의 내용은 누적되는 방향으로 변화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종의 대응도 관찰된다. 각 연구 단위의 표지적 내용은 대체적으로 서로 대응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편년 연구의 특정 표지 개념은 인류 진화의 특정 표지 개념 그리고 사회 진화의 특정 표지 개념과 대응이 된다. 그 대응을 살펴보면 마치 잘 짜인 오면체 구조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각각의 연구 단위가 서로 공고히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연결의 특징도 관찰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중심 주제는 핏줄로 대표되는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초기 구석기 연구를 벗어나 '조선민족' 개념의 확산 이후, 기원, 계승, 계통은 구석기 연구에서도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담론을 담는 기능으로 각 연구 단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데 있어 연구 단위는 서로 공고히 연결되어 있다.

현대 독일 지역지리학의 전개 -전통과 변화-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Regional Geography in Germany since 1945 : Traditions and Changes)

  • 안영진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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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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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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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이 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지역지리학의 전개과정과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후 독일 지역지리학은 영미와 다른 위기와 재흥과정을 거치면서 전통의 지속과 새로운 변화를 겪어 왔다. 독일의 지역지리학은 1950, 60년대를 거치면서 전래의 방법론을 고수하면서 지리학 내외의 급속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1960년대 말 이래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따라서 1970, 80년대에 지역지리학은 다양한 발전 방향과 방법론을 모색하면서 새로운 연구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곧 지지의 실용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과학적으로 조직화된 정보를 수신자 위주로 제공하는 지리학 분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래 통독과 함께 '지지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지역지리학의 학문적 위상과 방향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금 대두하고 있으며, 그 전도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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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연륜연대기를 이용한 영동지방의 5~6월 강수량 (253년간: A.D. 1746~1998) 복원 (Reconstruction of May~June Precipitation (253 Years: A.D. 1746~1998) in East-Coastal Region (Yungdong) of Korea from Tree Rings of Pinus densiflora S. et Z.)

  • 박원규;서정욱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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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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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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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설악산에서 작성된 8개 지역 연륜연대기 중 강수량 복원에 적합한 대승폭포 인근 2개 지역(해발고 700~900m)의 연륜연대기를 이용하여 253년간 (A.D. 1746~A.D. 1998)의 5월~6월 총강수량을 복원하였다. 1765~1800년(최장 가뭄), 1835~1845년, 1890~1910년, 1920~1940년, 1980~1995년이 건조기로 나타났으며, 1810~1830년, 1860~1890년, 1950~1970년이 습윤한 시기로 나타났다. 장기간으로 보았을 때, 18세기 후반기는 건조한 기간이었으며, 19세기의 5월~6월 총강수량이 250mm로 20세기의 231mm보다 많아 19세기가 20세기보다 상대적으로 습윤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강수량 변화폭이 19세기가 20세기보다 큰 것으로 관찰되었다. 전 기간에 걸친 주요한 건습 주기는 단기간은 3년, 장기간은 60~80년으로 조사되었다. 서울지방의 측우기 자료와는 1800년대 초를 제외하곤 대체로 일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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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국도 자산관리시스템 도입을 위한 기본체계 구축에 관한 연구 (Study on Establishing Essential Framework for Importing Asset Management System of National Road)

  • Park, Hyosung;Lee, Soohyng
    • 한국재난정보학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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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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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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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도로부문의 투자는 신규건설 그 자체가 정부 정책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도로부문 예산이 2000년을 정점으로 신규건설은 감소하고 유지관리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에서 도로 유지관리 예산 증가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면서 서비스수준에 대한 사용자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도로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1950~60년대에 사회기반시설을 집중적으로 건설하였던 선진국들이 최근 공공시설물의 노후화에 대처하기 위해 자산관리 개념을 도입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일반국도의 효율적인 유지관리를 위해 "한국형 도로 자산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기본체계를 제시하였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장기적이며 예방적인 도로 유지관리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기존의 포장관리시스템에 경제성 분석 과정을 포함시키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