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세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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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치료빔 실시간 측정장치 개발

  • 김재홍;;;박연수;양태건
    • 한국진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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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진공학회 2009년도 제38회 동계학술대회 초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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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8-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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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현대사회의 급속한 고령화로 암 환자의 수는 2002년 기준 약 10만 명에서 매년 7~10 %씩 증가되어 2012년에는 2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되어지고 있다. 수술, 방사선 치료, 약물요법 등이 주요 치료방법이며, 암 환자의 30-50 %가 전리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다. 방사선치료는 19세기 말에 발견된 미지의 X-선이 희망의 방사선으로 변화하여 암의 진단 및 치료에 활용되고 있으며, 인간 삶의 질 향상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존의 X-선이나 감마선의 단점을 극복 할 수 있는 입자 빔을 1970년대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 Berkely National Laboratory에서 처음으로 암 치료에 적용하였다. 현재는 일본과 독일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입자 치료시설을 구축 또는 개발계획 중에 있다. 방사선치료의 완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선량을 암세포에 전달해야 한다. 환자에 전달되는 입자빔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기술이 연구되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빔의 특성을 측정하기 위해 간섭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투과형 검출기를 개발하여 실시간으로 치료와 빔 특성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술개발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Multileaf Faraday Cup (MLPC) 검출기 설계구조와 데이터 측정방법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빔의 전송 방향으로 3개층의 $4{\times}4$ 배열의 구조로 48 channel의 전류값을 측정하여 입자빔의 분포를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측정된 전류는 ADC를 거쳐 치료계획에 의해 선택된 영역의 SOBP를 유지하도록 range modulation propeller를 조절하는 feed-back system을 갖춘 방사선치료빔 실시간 측정장치 개발에 관한 결과를 보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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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빅 볼츠만의 과학 방법론에 대한 역사-비판적 검토 (Critics on Ludwig Boltzmann's Methodology of Science)

  • 문장수;이우붕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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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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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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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루드빅 볼츠만의 과학 방법론 및 물리학적 인식들에 대한 인식론적 지위 문제를 역사-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잘 알다시피, 그는 열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을 통해 통계 물리학의 발판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 방법론에 대한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고 직접 철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리학의 인식론에 대한 그의 입장은 실재론과 현상론, 유물론과 관념론, 절대적 진리관과 상대적 진리관 사이에서 배회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과학사 및 과학 철학의 관점에서 19 세기 말에서 20 세기 초에 걸쳐 전개된 물리학의 방법론 및 인식론들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볼츠만의 이러한 배회의 배경을 해명하면서 동시에 그에게서 볼 수 있는 일관된 과학방법론 및 인식론을 도출하여 재구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정신-물체 동일성 이론'으로 특성화하면서, 아울러 이러한 동일성 이론은 작금의 물리학적 인식론의 바람직한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Post-Miesianism의 실체와 미래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Presence of Post-Miesianism and Its Future)

  • 이상진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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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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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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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현대의 건축시기는 다원성의 시기 또는 복합성의 시기라고 불리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적 실험의 과정을 겪었고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이론들로 무장된 논쟁의 역사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건축의 다양성은 건축디자인이라는 전문직의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반추(反芻)함과 동시에 다변하는 인간사고의 역동성을 반영하고 있다. 건축관련 책자나 저널 등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Neo-Classicism, Deconstructivism, Minimalism, High-Tech, New Moderns 등등의 건축양식들은 스타일을 지칭하는 언어라기보다는 건축적 사고를 지칭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건축디자인이라는 작업은 인간을 둘러 싼 건조환경의 생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건축적 사고방식은 그 시기의 사회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20세기 말부터 불어닥친 디지털 문화의 사회변혁은 전 세계를 하나의 채널로 엮게 되었고, 이러한 영향들은 지역과 민족, 그리고 종교적인 요소들까지도 혼합하여 국경을 초월한 미래의 새로운 이상들을 꿈꾸게 되었다.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급속히 벨라진 인류문명의 진보는 필수적으로 세계화를 동반하는 것이고, 세계화와 지역성사이의 괴리를 통해 나타나는 문화적 비판과 충돌은 아직도 진행상태인 것이다. 세계화라는 통염은 문명의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며 전통문화의 파괴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현재와 같이 IT혁명을 통해 급속도로 빨라진 세계문화의 교류는 한 국가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문화적 유산이라는 토양을 포기하여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논평할 정도이다. 여기서 건축은 문화적 상징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그것이 심미적이든 관습적이든 또는, 경제적이든 건축가는 해답의 제시라는 임무에 직면하게 된다. 20세기에 진행된 모더니즘의 건축은 구조와 공간에 대한 고전건축의 숙원을 고덕건축이 이룬 것처럼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진행된 형태와 공간, 기능, 그리고 아름다움과 기술(technology) 또는 경제성 등에 대한 건축적 의문과 탐구를 일단락지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한복판에 Mies van der Rohe라는 거장이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한 시대를 이루었고 그가 남긴 시대정신의 이념과 가치를 Miesianism이라고 부른다. 실용성과 도덕성을 근본으로 하는 Miesianism은 대중에 호소하는 미적 표현주의를 부정하고 지역정서를 중시하는 문맥적 접근방식을 경시함으로써 보편화라는 현상을 불러일으킨 국제주의 양식의 한 부류로 비판을 받아왔다. 즉, Miesianism의 단순하고 강렬한 외형적 요소는 그것이 내포하는 기술적 합리성이나 공간적 완결성을 무시한 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동시에 지역적 저항을 받게 되었다. 시카고 및 전 세계의 Miesian들, 즉 Mies van der Rohe의 제자들이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수많은 건축가들은 이러한 저항과 비판에 직면하게 되며 새로운 사고의 시대적 요구 앞에 고뇌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1978년 Mies van der Rohe의 제자인 김종성이 미국에서 서울로 돌아와 '서울건축컨설탄트'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Miesianism의 규범적 건축론을 설파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시카고 국제주의학파의 건축전수라고 할 수 있는데 '서울건축컨설탄트'를 통하여 배출된 김종성의 제자들은 명쾌하고도 간결한 건축해법의 경험을 토대름대로의 정체성을 갖고자 노력하였으나 결국 다원적 가치를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본 연구는 Miesianism의 기원을 밝히고 그것의 실수와 오류를 밝힘과 동시에 현대의 여러 가지 건축유형들과 비교하여 봄으로써 Post-Miesianism의 실체와 그 미래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미스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Miesianism의 요체는 첫째, Schinkel로부터 이어받은 시대정신의 사명감, 둘째, Berlage가 전해준 전문가로서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기술적 합리성의 실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당시의 추상예술에 대한 이해로써 받아들인 nee-Suprematism의 아방 가르데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을 전파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미스적인 단순하고 명쾌한 외관이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고 또한 미스가 현대성의 본질이라고 믿는 기술의 전수는 모든 외관을 동일하게 만드는 International Style로서의 보편적 획일성을 초래하였다. Mies van der Rohe의 강력하고 규범적인 dogma는 그의 제자들에게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각인되었고, Mies가 원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들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두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2세대이든 3세대이든 기술적 합리성과 추상적 단순미라는 믿음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때 그들은 Miesian으로 남아있게 되며, 거기서 벗어났을 때 non-Miesian, 또는 배신자로 취급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미스의 제자들에게 강한 족쇄가 되어 형태적 또는 개념적 변화의 시도를 어렵게 하였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평가에 이르게 되었다. 문화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Miesianism에 대한 새롭고 시대에 적합한 해석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대 속에서 우리는 Post-Miesianism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엿볼 수 있게 된다. Post-Miesianism의 징후를 현대의 다양한 건축유형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High-Tech의 구축적이고 정밀한 건축 기술적 해법과 Minimalism의 반복성을 통한 추상미의 표현 등에서 뿐만이 아니라 Post-Modernism의 인간성의 추구나 문맥적 고려, 또는 해체주의의 형이상학적이고 아방가르데적인 실험주의 정신까지조차 Post-Miesianism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미스의 영향이 2세대, 3세대의 건축가들에게 미치면서 여러 방향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시대성에 적응하는 시도들이야말로 새로운 미래를 향한 Post-Miesianism의 실체인 것이다. Mies가 말하였듯이 한 시대의 끝은 그 시대가 완전히 이해되었을 때이며, 모더니즘의 숙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Miesianism의 탐구는 Post-Miesianism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계속될 것이다. 이를 통하여 21세기 디지털 문명의 시대 속에서 현대건축이 안을 수밖에 없는 보편성과 지역성의 충돌이라는 문제의 해결에 한 발걸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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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대 궁궐 건물지 기초의 고고학적 연구 (An Archaeological Study on the Foundations of Five Palaces of the Joseon Period)

  • 최인화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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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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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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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조선시대에는 5개의 궁궐이 있었다. 태조 4년(1395) 경복궁이 창건되고, 그 후 역사적 상황에 따라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덕궁(경희궁)이 추가로 중건되었다. 궁궐은 당대 최고의 건축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궁궐은 수차례 중건과 소실을 반복하며 조선왕조 500여년 건축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조선시대 5개 궁궐의 발굴 현황을 검토하여 건물의 기초인 건물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건물 기둥의 하중을 지탱하는 핵심 시설인 '적심(積心)'에 대한 분석을 통해 궁궐 건물지가 가지는 궁궐·시기별 특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또한 적심의 편년을 통해 시기별 궁궐 건물 기초의 변화 양상을 확인하였다. 적심은 총 23개 형식이 확인되는데, 전반적으로 5개 궁궐 모두 I~V 형식의 일정한 적심 축조 방식을 가지고 있어 조선시대 궁궐 건물 기초 축조 방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14~17세기에는 일정하게 통일된 재료와 축조 방식(원형 잡석 적심(I-1))이 주를 이루다가 18세기 정조대를 기점으로 다소 다양해지는 양상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19세기 고종대에는 다양한 재료와 축조 방식으로 22가지 형식의 건물지 적심이 축조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궁궐 건물지 연구는 발굴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경복궁 건물지가 주가 되어, 임진왜란 후 중건이 중단된 17~18세기 건물지의 편년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다른 궁궐의 건물지들을 함께 비교 검토함으로써 14세기 말~20세기 초 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궁궐 건물 기초 축조 방식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모리스 꾸랑의 『한국 서지(Bibliographie Coreenne)』에 수록된 도교경전 연구 (A Study on Taoism Scripture included in Maurice Courant's Bibliographie Coreenne)

  • 김윤경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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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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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9-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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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모리스꾸랑의 "한국서지" '도교' 관련 해제들에 대한 고찰이다. 모리스꾸랑은 전임공사인 쁠랑시의 조언과, 한학에 능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3000종이 넘는 도서들을 수집하여 "한국 서지"(1896)를 집필하였다. 모리스꾸랑은 도교관련 경전들을 분류하면서 '경서류', '관성제군 문창제군 부우제군에 대한 숭배의식', '기타'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모리스꾸랑의 "한국서지"에 담긴 도교 부분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19세기 말 관제신앙의 유행과 삼성신앙의 확대이다. 그의 도교서지는 대부분 19세기 말 조직화 되었고, 삼성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무상단'에서 출판한 책들을 중점으로 다루었다. 둘째 모리스꾸랑이 자생적인 도교경전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글본 "도덕경"을 찾으려 노력했고, 한국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조선난서'인 "문창제군몽수비장경(文昌帝君夢授秘藏經)" 등을 다루었다. 셋째 그의 연구를 통해 당대의 도교의 지형도를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살던 시기, 관묘를 중심으로 하는 도교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고, 최초의 도교교단이었던 '무상단'이 조직적으로 활동했으며, "번석자문(飜惜字文)"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적 사회실천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살필 수 있었다. 1890년대 조선은 열강사이에서 나라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 왜 대량의 민간도교경전이 간행되고, 사회의 지도층까지도 삼성신앙을 가졌던 것인가? 이러한 지도층의 태도를 선교사들은 '무당들과 주술사들이 이 나라를 그리고 지배자들까지를 지배하고 있으며, 고종이 역술가에게 포위된 채 생활하였다'라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민간도교에 기반 한 '대종교'는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도 조선후기 난서의 유행과 삼성신앙에 기반 한 민간도교의 확대를 설명하기 위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1890년대 초 조선을 다녀가 "한국서지"를 남긴 모리스꾸랑을 연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일 노인복지법의 비교법적 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the Elderly Welfare Act between the Korea and Japanese)

  • 이도희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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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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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9-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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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고령화' 및 '고령사회'라는 표현은 20세기 말부터 우리사회에 회자되어 온 용어라 하겠다. 즉, 65세 이상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짐에 따른 결과이다. 무엇보다 인구의 고령화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많은 문제를 초래하기에 복지문제차원의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왔다. 이미 고령화를 일찍 경험한 선진국은 보건의료서비스, 소득보장 및 장기요양보호문제 등의 노후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한 국가 재정과 법제도적 차원의 대응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노인복지법이라는 법제적 차원의 선진 일본과의 비교법적 고찰을 실시하였다. 무엇보다 노인복지를 포함한 사회복지법제의 내용은 각 국가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또한 고령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법제도적 차원의 노인복지법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즉, 노인이라는 사회적 존재 및 역할에 대한 다양한 이슈는 바로 법제도적 차원의 진단에서 출발한다 하겠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노령화의 선발국가인 일본의 노인복지법을 바탕으로 향후 우리가 당면해야 할 고령 및 초고령사회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에의 시사점을 제언하고자 한다.

문화콘텐츠학 정립을 위한 놀이 개념에 대한 탐색적 연구 (An Exploratory Study on the Concept of Play for Establishing Cultural Contents Studies)

  • 김기정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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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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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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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문화콘텐츠가 1990년대 후반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부상하여 성장한 지 벌써 20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화콘텐츠 개념 규정 및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문화콘텐츠'라는 말이 가진 폭넓은 의미의 자장을 포괄하면서도 핵심을 통어하는 주요 개념을 제시하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문화콘텐츠는 21세기의 놀이학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놀이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정초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문화콘텐츠의 의미와 관련이 깊다고 판단되는 세 가지 개념적 범주 즉, 모방, 미학, 권력을 중심으로 각각에서 놀이가 어떠한 의미를 획득하고 활용되는지를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놀이는 감성, 예술, 지각, 인식, 교육, 우연, 힘, 헤게모니, 계급, 종교, 의례, 육체 등과 같은 다양한 개념들과 연관되어 다채롭게 사용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놀이 개념의 이러한 다양한 활용법은 문화콘텐츠 연구자들에게 일정 부분 놀이의 관점에서 문화콘텐츠를 연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치유인문학과 힐데가르트의 보석치료에 관한 고찰 (Healing Humanities and Hildegard - Focusing on Jewelry Therapy)

  • 이은영
    • 한국자연치유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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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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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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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개요: 21세기 '지금 여기' 우리는 covid-19처럼 감염병이 삶 속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는 '치유인문학'을 힐데가르트의 보석치료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목적: 그동안 인문학이 교양교육으로서 '소통과 융합'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그 가치를 강조했다면, 이제 인문학은 잠재적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문학적 가치의 실천적 발현이라는 쟁점을 우리는 '치유 인문학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방법: 연구방법은 문헌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이 논의는 중세시대 빙엔의 힐데가르트가 강조했던 자연치료 중 한 유형인, 보석치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결과: 힐데가르트는 인간의 질병과 건강을 잘못된 생활습관과 생활방식 그리고 자연과 소통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결론: 오늘날 의학기술에 치중되어 있는 인간의 건강과 질병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이 요구되며, 그 과정에서 힐데가르트의 보석치료가 인문학적 치유의 한 가능성으로 제시되었다.

제주 관덕정(觀德亭) 벽화의 도상과 표상 (Iconography and Symbols of the Gwandeokjeong Pavilion Murals in Jeju)

  • 강영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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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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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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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제주의 관덕정은 군병들의 활터로 '활쏘기'는 물론 '말 타면서 활쏘기', '전쟁의 진법'까지 훈련하여 상무 정신을 고취시키고, 전쟁 대비를 위해 무예를 연마할 목적으로 1448년에 건립되었다. 또한 제주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인원이 운집할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각종 연회나 관아의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관덕풍림'과 같이 계절의 정취와 자연의 운치를 향유하는 장소였다. 이러한 장소성과 건축적 의미가 큰 관덕정이 17세기 건물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기에 건물 상인방 4면의 5가지 그림이 조선 후기의 그림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관덕정은 10여 차례 이상의 수리와 중수를 거쳤기에 벽화가 구체적으로 언제 처음 그려졌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현재의 벽화원형은(1976년 모사본 기준) 벽화의 도상과 양식으로 추정해보면 1850년(철종1) 재건, 1882년(고종19) 중수, 1924년 도사(島司) 전전선차(前田善次)의 보수, 1969년 10번째 중수 때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벽화 도상을 분석하여 제작 시기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즉, 최초 <호렵도>가 18세기 이후 그려지기 시작한 점을 비롯하여 삼국지의 유명 화제인 <적벽대전>이나 한나라 때의 은일자를 그린 <상산사호>, 당나라 시인 두목의 이야기인 <취과양주귤만거>와 같은 고사인물도의 유행과 민화풍의 <십장생도> 등의 주제는 물론 그림의 구성, 인물의 무기와 복식, 산수 표현과 채색, 필법 같은 세부적인 사항도 관덕정의 벽화가 19세기 말경에서 20세기 전반기에 그려진 작품임을 방증한다. 또한 당시 화단에서 유행하던 회화 주제나 양식과 관련이 깊어 1850년이나 1882년에 제작된 벽화가 1924년 보수와 1969년 중수를 거치면서도 벽화의 기존 내용과 형태를 보존·유지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관덕정의 벽화 주제나 구성 방식은 군사훈련이라는 건물의 목적과 기능에 적합하게 건물 중앙 좌우에 파노라마 형식으로 <적벽대전>, <호렵도>를 구성하고, 바깥쪽으로는 감계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제주의 관리가 지녀야 할 덕목인 은일과 입조 등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상산사호도>나 <취과양주귤만거>의 고사 인물도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선 사상과 장수를 상징하며, 궁중 행사나 장식화로 쓰이던 주제가 민간으로 확장되어 길상·벽사 기능이 강화된 <십장생도>를 표현하였는데, 이는 당인들의 지향을 반영하기 위해 전체적인 벽화 주제와 구성을 선택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벽화의 산수가 제주의 명산인 '한라산'이라는 점, 높고 낮은 오름, 현무암 자연석 돌담 표현, 수많은 고사 중에 제주의 진상품이자 특산품인 '귤'을 주제로 한 두목의 고사를 채택하여 시각화한 점, 백록담의 흰 사슴 전설의 응용, 제사를 중시하는 유가적 관습이 남병산의 제사 장면으로 표현된 것 등은 모두 제주의 풍속과 자연환경, 생활상의 일부를 반영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조선후기 청화백자 산수문양의 전개양상 (Landscape Designs on Blue and White Porcelains in the Late Joseon Period)

  • 정은주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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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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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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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논문은 청화백자에서 산수문이 가장 성행했던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분원의 시대적 상황과 그곳에서 시문제작에 직접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화원과 화청장의 역할에 주목하였고, 현존 백자의 청화 산수문 주제를 분류하여 당시 문화.사상적인 배경에 초점에 두고 검토하였다. 또한 백자의 청화산수문양에 나타난 양식적 변화를 당시를 풍미했던 산수화풍 및 화보 도상과 비교하여 그 전개와 제변화 양상을 정리하였다. 조선후기 백자의 청화 산수문 중 대표적 주제는 동정추월문으로 이는 당시 화단을 풍미한 진경산수나 풍속화 등 현실적 소재와는 거리가 있으며, 국왕과 종실 등 분원의 정책을 운영하던 핵심 세력 및 백자 향유층의 사상.문화적인 경향을 잘 시사한다. 또한 청화백자의 기면에 동정추월문과 대칭하여 나타난 소재는 조선 유학자들의 이상적인 삶을 묘사한 처사들의 은일고사의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그 도상적 특징은 조선 중기의 소경산수인물도와 당시 유행하던 중국화보의 영향이 간취된다. 이들 산수문양은 호형 도자 문양을 구획 짓는 릉화창에 시문되거나 편병, 각병 등에 묘사되어 기면의 특성에 맞게 포치를 변화시켜 나타난다. 회화적인 요소가 강한 산수문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도식적으로 변모하거나 약리도와 길상도, 십장생과 같은 민화적 요소와 함께 시문되면서 점차 백자의 중심 문양에서 저변으로 밀려나 퇴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청화 산수문양이 시문된 백자의 편년작이 극히 드문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백자에 그려진 청화산수문 전개 양상의 일단이라도 정리하여 앞으로 이 분야 연구에 다양한 접근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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