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세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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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노르 논쟁과 신쟝 생산건설병단 - 중국 서북지역 사막화의 사회적 과정- (Lop-Nor Debates and the Xinjiang Production-Construction Army Corps: A Social Process of Desertification in Northwest China)

  • 이강원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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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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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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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신쟝의 타림분지에 있는 롭노르 호수의 위치와 성격은 19세기 말 이래 내륙아시아에 관심을 가진 많은 학자들(프르제발스키, 리히트호펜, 코즐로프, 헤딘, 헌팅톤, 스타인, 천쫑치 등)의 논쟁 사안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중국과학원 고찰대에 의해 롭노르의 위치와 성격이 해명되었다. 롭노르는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성격 역시 변함 없이 염호였지만, 그간 위치와 성격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은 하천수의 유입방향과 수량에 변화가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하천의 변화는 역사시기와 현재 모두에 있어서 롭노르 상류부의 물 사용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상류부의 물 사용이 급격히 증가한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롭노르에 물을 공급하는 하천들의 수량이 감소하여 롭노르가 고갈되었고, 하천의 길이마저 축소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 시기에 작용한 인위적 작용의 주요 내용이 신쟝 생산건설병단이라는 대규모 조직에 의한 외부 인구의 유입과 이들에 의한 인공 오아시스의 건설이었다. 이러한 토지형질의 변화와 수자원의 고갈은 사막화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균열마저 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롭노르와 유사한 변화가 중국 서부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의료화'에서 '생의료화'로: 정신장애의 사례 (From 'Medicalization' to 'Biomedicalization': the Case of Mental Disorder)

  • 김환석
    • 과학기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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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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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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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지난 40여 년 동안 의료에 대한 사회과학의 지배적 관점은 '의료화' 이론이었는데, 이는 비의학적 현상으로 취급되던 문제(예: 동성애, 알코올중독, 비만 등)를 질병으로 재정의하여 의학적 개입의 영역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의료전문가의 권력이 확대되는 사회적 과정을 가리켰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의료 분야에서 생물과학과 정보기술의 확산에 따른 급속한 기술과학적 변화와 이와 연관된 생명경제 등 새로운 사회적 배치의 출현은 최근 '생의료화' 이론이라는 새로운 사회과학적 관점을 대두되게 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현대 의료에 대한 사회학적 및 과학기술학적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한 기본 작업의 하나로서 의료화 이론과 생의료화 이론을 비교하고 그 장 단점을 평가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또한 이 중에서 어떤 이론이 더 적실성이 있는가를 정신장애의 사례를 통해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분석의 결과, 적어도 정신장애의 경우에 의료화는 19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는 생의료화 이론에서 주장하는 다섯 가지의 핵심적 과정들도 대체로 관찰되며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정신장애에 대한 위험 감시의 기술을 제외하곤) 보인다. 이것은 의료화가 지속적으로 관철은 되어 왔지만, 단지 의료적 영역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생의료화 이론에서 주장하는 질적 변형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화의 개념이 비록 오늘날에도 타당하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적절하고 충분하게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들을 생의료화의 개념이 포착할 수 있게 만든다고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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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도자기산업의 부활과 지역활성화운동 -일본 토치기현(栃木縣) 마시코정(益子町)의 사례- (Local Revitalization Movement through Revival of Traditional Ceramic Industry in Japan - A Case of Mashiko-cho in Tochigi-ken)

  • 홍성흡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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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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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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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연구에서는 도자기를 모티브로 한 일본의 한 농촌지역의 지역활성화운동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도자기가 지역활성화의 모티브가 된 역사와 핵심 활동가집단의 이념적 특성과 역할, 그리고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지역사회의 대응전략 등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마시코(益子)지역의 도자기산업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20세기에 접어들어서 여러 번 고비를 겪었지만 1960년대부터 민예운동과 결합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도자기산업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마시코의 경험은 1980년대 말 이후 일본정부가 주력하였던 '위로부터의' 지역활성화운동과는 달리 자생적인 '밑으로부터의' 지역활성화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일본 전국에 유행처럼 번진 지역활성화운동들보다 선행하여 지역의 전통적이고 토착적인 문화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예운동과 결합한 마시코의 지역활성화운동은 문화예술가 집단의 이념적 지도를 바탕으로 부단히 변화하는 현실의 상황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1950년대 중반부터 일용 도자기생산으로부터 민예품 도자기생산으로의 전환과 1960년대 중반의 도자기생산 및 판매의 핵심활동가집단의 공식적 출범과 산지직매체계의 구축,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본격적인 민관협력 등이다. 현재까지 도자기를 모티브로 한 마시코의 지역활성화운동은 비교적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지만, 지역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최근의 내부 분화는 현실의 조건에 맞게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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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20세기 초 신부 가마덮개의 특성과 양식 변천 (Characteristics of Bridal Palanquin Covers and Changes in Style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 박윤미;오준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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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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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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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조선 말기에 혼례를 마치고 신부가 시댁으로 가면서 가마를 타고 가는데 그 때 가마 위에 벽사의 뜻이 담긴 호피를 덮는 풍습이 있었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호피나 표피를 사용했으나 서민들 사이에서는 호랑이무늬를 그린 모포를 덮었다. 그 모포는 호탄자, 호구, 호구욕 등으로 불리었다. 신부 가마덮개가 처음 사용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 성행하다 점차 사라졌는데 신식혼례의 등장으로 신부의 가마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호랑이무늬 모포는 신부 가마 위에 덮는 것뿐만 아니라 상 위에 덮거나 바닥에 깔기도 하였는데 모두 혼인식에 사용되었다. 호랑이무늬 모포 9점에 대한 성분 분석 결과 겉감과 안감의 경사는 무명실, 위사에는 모사(毛絲)가 사용되었다. 겉감의 위사에 사용된 모사는 2종류인데 중국의 비미종 양모와 중국 허베이성 카펫용 염소모로 밝혀졌다. 러시아에서 '호랑이 그린 무늬의 담요'가 수입되었다는 것과 중국에서 모물을 사들인 후 우리나라에서 깔개를 만들었다는 내용, 그리고 여러 기법의 모깔개를 제작했다는 사료를 고려해보면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완제품으로 수입하기도 했고 국내에서 생산하기도 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 조사한 호랑이무늬 모포 13점의 겉감은 직물의 조직과 실꼬임 방향에 따라 6종류가 있으며 안감은 3종류, 그리고 가선은 4종류로 분류되었다. 안감과 겉감은 한 폭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직물의 폭이 최소 135cm의 광폭으로 직조하였다. 호랑이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은 공판화 기법이다. 빨간색 겉감 위에 호랑이 몸통과 꼬리의 도안을 대고 흰색을 칠한 후 호랑이의 바탕색인 노란색과 얼룩무늬인 갈색, 검은색의 순서로 칠한다. 호랑이무늬는 조금씩 달라서 여러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호탄자의 무늬는 호피처럼 엎드린 상태로 그렸는데 서 있는 자세도 생겨나고 호랑이무늬는 작아지면서 가장자리에 화려한 꽃무늬를 그려 넣었다. 이같이 호탄자는 무늬에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변천을 겪다가 가마덮개로서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점차 사라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남아 있는 호랑이무늬 모포 중 수입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당시 유행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여러 생산지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국재(玉局齋) 이운영(李運永)의 <임천별곡(林川別曲)>에 나타난 근대성(近代性) 양상(樣相) -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형을 중심으로 (The Aspects of Modernity in ImcheonByeolgok(林川別曲) by Okgukjae(玉局齋), Lee Un-young: Based on Using Greimas's Actant Model)

  • 박수진
    • 기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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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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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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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18세기 가사 작품인 옥국재 이운영의 <임천별곡(林川別曲)>에 나타난 근대성 양상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8세기는 시대적으로 파격적인 모습을 형성한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성을 드러내기에는 가장 알맞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도 사상과 체제의 변화가 일어났고, 봉건사회 붕괴의 가장 큰 요인인 신분체계가 흔들렸다. 이 변화는 새로운 근대의식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임천별곡(林川別曲)>은 이운영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경향도 있다. 이는 이운영이 진보적인 실학사상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양반됨을 욕보이면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논자는 여항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임천별곡(林川別曲)>은 애정가사로 알려졌지만, 풍자비판적인 특징이 강하기에 애정가사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이며, 서사적 양상이 대화체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천별곡(林川別曲)>에 드러난 근대성 양상으로는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사랑과 욕망에 대한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신분질서의 해체'이다. 그레마스 행위소 모형으로 이 두 가지 양상을 제시하였다. <임천별곡>은 유교적 이데올로기, 신분제도 등의 조선의 봉건사회에 대한 저항과 반항의 형태로 이타적인 요소들에 대한 변화하는 근대적 조선을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논자는 '저항'과 '해체'라는 말로 대신하였지만, 18세기 조선의 봉건사회에 대한 부패한 지배층과 착취당하는 서민층의 삶을 늙은 생원과 할멈으로 비유하여 제시하였던 것이다. 18세기 등장한 전통적인 봉건사회의 비판은 중세와 근대를 구별 짓는 헤게모니의 변화로 드러났고, 이러한 헤게모니의 변화는 18세기 전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8세기 가사문학에서는 이러한 헤게모니가 정확하게 구분되지는 못하였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정착되어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논자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으로 <임천별곡>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창덕궁 성정각 출토 모담(毛毯) 직물 분석 (A Textile Analysis of Woolen Carpet Excavated from Seongjeonggak Hall, in Changdeokgung Palace)

  • 박성희;이량미;안보연;조미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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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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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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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조선 말기 방한용 깔개인 모담(毛毯)이 창덕궁 성정각의 해체 공사 중 발견되었다. 문헌기록에 비해 현전하는 조선시대 모직물 유물이 많지 않아 유물로서 가치가 높다. 특히 1907년 창덕궁 성정각을 수리한 기록이 있어, 모담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 모담은 자적색 계열의 바탕 직물로 위에 황색, 홍색 등으로 선염한 색사를 표면에만 삽입하여 문양을 시문하였다. 모담의 식서부분은 S연의 면사가 확인되었으며, 지경사는 Z연의 황마사, 지위사는 S연의 황마사, 문경사는 S연의 모사를 사용했다. 특히 무늬는 루프파일의 색사로, 색사의 경계면에서 일부 컷 파일이 확인되나 지위사로 고정되어 표면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 다. 황마사와 모사를 사용한 것은 18세기 중엽 유럽의 브뤼셀 카펫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모담의 문양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으며 다만 문양이 부분적으로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연구내용을 도출하기 위해 문헌과 회화자료 외에 현미경 분석, 적외선 분광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유물에 사용된 염료를 밝히기 위해 색도측정을 토대로 자외-가시광 분광분석을 실시하여 천연 염색한 직물 샘플에 대한 교차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모담의 녹색 모사는 쪽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적색의 바탕조직은 소목으로 염색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폴 푸아레의 디자인에 표현(表現)된 동양(東洋) 영향(影響)에 관(關)한 연구(硏究) (A Study of the Oriental Influences on Poiret's Designs)

  • 박혜원;조규화
    • 패션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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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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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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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폴 푸아레 (1879-1944)가 패션 역사상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코르셋을 제거시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 인해 발생된 새로운 직선형의 실루엣에 화려한 색채와 장식을 하여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현대패션의 근원이 되었다. 본 연구는 푸아레의 새로운 직선 실루엣과 화려한 색채와 경이적 장식의 근원이 다름아닌 동양이라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미 국내의 몇편의 논문에서 이러한 논의가 지적되어 왔으나 다른 논제를 다루는 중에 언급이 되었고 당시의 작품이나 동시대의 자료를 분석한 것이 아닌 근래의 출판물에 의존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그의 동양풍 디자인의 근원을 밝히는데 있어 가능한한 1 차적 자료의 접근을 시도하였다. 1912년 작품인 이브닝 드레스, 터번, 숄, 구두 각 1점과 그의 작품 의도와 생애의 추구를 말해주는 자서전(1930년 불어본 및 1931년 영어본)과 보그(Vogue)지의 기사(1920년 2월호, 9월호) 등을 통하여 그의 동양에 대한 관심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푸아레의 동양 영향의 근원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절정을 이룬 'Sino-Japonism'(중국-일본주의)의 심취, 러시아 발레단의 의상과 색채, 천일야화의 영향에 의한 중동(페르시아)에 대한 열망, 그리고 인도 토민병의 복식에서 비롯된 터번에의 매료 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근원에서 탄생된 디자인으로는 직선형의 튜닉, 기모노 소매(처음엔 푸아레 자신도 중국의 것으로 혼동을 하기도 했지만), 하렘팬츠, 비대칭적인 카프탄식의 코트, 원색의 사용, 극동지역의 직물과 문양, 술장식, 터번 등으로 나타내었다. 따라서 폴 푸아레의 동양적인 관심은 단지 개인적 '취향 혹은 취미(taste)'가 아니라 한 시대양식으로 자리잡은 '동양주의(Orientalism)'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푸아레의 동양주의는 당시의 패션에 있어 신체의 선을 부정하여 코르셋을 제거 시키게한 그의 모더니즘의 근거가 된다. 본연구의 제한점으로 1차적 자료를 수집하는데에 있어 보다 폭넓지 못했던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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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미래 우리나라 겨울철 강수형태 변화 (Current and Future Changes in the Type of Wintertime Precipitation in South Korea)

  • 최광용;권원태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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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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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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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 연구에서는 20세기 후반 관측자료를 분석하여 최근 한반도 겨울철 강수현상에 나타난 변화 양상과 그 원인을 밝히고, 21세기 후반 기후모델(GFDL 2.1)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의 겨울강수 변화추세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61개 지점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에 따르면, 지난 35년 동안$(1973/74\sim2006/07)$ 우리나라 겨울철($11\sim4$월) 총 강수량은 변화가 없었지만, 강설량은 약 4.3cm/10년의 비율로 감소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강설일수가 감소하고, 강설강도가 약해지고, 강설계절의 길이가 줄어들면서 설수일율(전체 강수일 수에서 강설일이 차지하는 비율)도 낮아졌다. 이러한 패턴은 겨울철 강수형태가 점차 강설에서 강우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우리나라 겨울철 강수 형태의 변화는 겨울철 양(+)의 북극진동(Arctic Oscillation)에 의해 한반도 주변의 겨울철 기압이 상승함에 따라 나타난 기온상승과 관련되어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동북아시아 지역의 기압 상승은 한반도 주변의 대기와 해양 온도를 차별적으로 상승시킴으로써 대기안정도 증가에 의한 눈구름 형성 감소와 관련된 대기-해양간 온도경도를 감소시켰다. 모델생산 미래$(2081\sim2100)$ 기후자료와 20세기 후반$(1981\sim2000)$ 기후자료 비교 분석 결과, 21세기 말에는 대기 중 온실기체의 양이 증가할수록 온난화가 강화되어 겨울철 강설기간이 더 짧아지고 강설불가능일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양 복식에 나타난 검정색의 이미지-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를 중심으로- (The Image of Black Expressed in Western Dress-From Renaissance to 19C-)

  • 문혜정;김민자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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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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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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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bstract the image from black dress, which has been favored by many people regardless of the times and examine it throughout the history of drss and thereby clearly define the images that black limplies in dress. Color image is a visual symbol, an image that forms through a combination of visual stimulus created by color, coupled with all the external factors related to it. Black is a one-dimensional color, of which the impact is subjective to its energy, which depends on light reflected on the object, and its texture. Therefore, black projects different images, depending on its surroundings. In general, black has had negative connotations in the Western culture. In dress, however, it has implied other various images different from the general negative ones. By combining general images of black and those exprssed in dress, major images of black were categorized into dignity, elegance, eroticism, asceticism and tragedy. Dignity is a category similar to the sublime. Dress with dignity has sharp contours and is generally made of velvet or silk which can be characterized by their splendor and voluminous-ness, exaggerating the body of a person wearing it. Such costume is mostly found in powerful countries in history such as Burgundy Court in the 15C, Spain in the 16C. Netherlands in the 17C. Elegance evokes grace and beautifulness. It includes elegance, grace, beauty and dandyism as subcategories or silk. Good examples are dandies' black costume and Ladies black and white dressees in the 19C. Eroticism is an image which expresses sexual attractiveness. Costume with eroticism is made of velvet or silk, which project sumptuousness through reflection. Such costumes expose parts of the body or are tightly tailored in order to emphasizes body contours. Asceticism means restraint from physical and mental desires. Costume with asceticism makes a person wearing it look smaller by covering the whole body. Puritan's black dresses and Bourgeoisie's black suit are good examples. Tragedy is anguish. sorrow. Black costume with grievous feelings such as mourning dresses is made of lusterless textile concealing most of the body except for the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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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곳체(C. Gottsche)의 조선 기행과 그 지리적 의미 (C. Gottsche's Journey through Korea in 1884 and Its Geographic Implications)

  • 손일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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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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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9-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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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독일인 지질학자 카를 곳체(C. Gottsche)는 1884년 당시 조선의 통리아문 협판이던 묄렌도르프의 초청을 받아 한반도 내륙을 조사하였다. 그는 138일에 걸쳐 2,550km의 거리를 주파했는데, 귀국 후 당시 답사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의 지리와 지질에 관한 3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들은 근대 지리학과 지질학을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야외과학자가 한반도 전역을 실제로 답사하고 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지구과학 논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가 쓴 3편의 논문 중에서 특히 "조선의 지리(${\ddot{U}}ber$ Land und Leute in Korea)"(1886)는 조선의 지질과 광물에 주목한 다른 2편의 논문과는 달리, 야외과학자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 논문이 지닌 사료적 가치도 높다. 이 논문은 아직 국내 학술논문에 소개된 바 없어 19세기 말 서구인들의 조선 인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지리학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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