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세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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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정학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Home Economics in Korea : Past, Present, and Future)

  • 이정연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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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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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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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가정학이 학교교육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개화사상이 전반적으로 확산된 19세기 말이다. 미국인 선교사에 의하여 시작된 가정과교육은 그 후, 대학이 설립되고, 석.박사 과정이 증설되면서 양적인 증가와 더불어 가정학의 전문성이 강회되었다. 한국의 가정학은 초기부터 여성교육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으며,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여 생활개선에 계몽적인 활동을 추구해왔다. 현재 한국의 가정학은 초기의 가정과 교육에서 분화하여 아동 및 가족학, 가정관리 및 소비자학, 식품영양학, 의류학, 주거학 그리고 가정교육학 등 6개 하위영역으로 세분화해가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의 가정학은 전문적인 분화와 전체적인 통합간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으며, 변화하는 미래 사회에 적합한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과과정을 준비하고 있고, 가정학의 발전방향을 공동연구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대외활동 및 서비스를 활성화하여 함께 발전하는 가정과 사회 건설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가정학 역사는 60여년에 불과하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체계를 갖추고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어왔으며, 미래 사회에서는 가정학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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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트(KARST)의 지표지형과 동굴지형

  • 오종우
    • 한국동굴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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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동굴학회 1994년도 동굴의 개발과 보전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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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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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
  • 카르스트라는 용어는 고대 인도-유럽어로 그 기원은 거슬러 올라간다. 암석을 뜻하는 칼라(Karra)로 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의 파생어는 유럽과 중동의 많은 언어에서도 발견된다. 북부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그 단어는 칼스(kars)를 거처 카라(Kra)로 발전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와 이태리의 국경지대인 트라에스트(Trieste)지방에서 그 지역에 대한 지역적인 명칭으로 이것이 '불모의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종종 이 지역의 자연적인 특징이 최초로 광범위하고 과학적인 연구로 받아들여진 지역으로 '고전적인 카르스트'로 언급된다. 로마시대에 지역적인 명칭은 '칼스서 혹은 칼소'(Carsus & Carso)였고, 그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Austro-Hungarian)제국의 일부분이 되고 나서, '카르스트'(karst)라는 독일말로 정착되어진다. 뷔엔나(Vienna)의 지리학 또는 지질학술대회에서 국제적인 과학적 용어로서 그 단어가 정식으로 사용되었고, 그 용어의 기술적인 사용은 19세기 중반경에 확립되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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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20세기 갓끈 재질 조사: 호박, 대모, 플라스틱, 유리를 중심으로 (Investigation of the 19th~20th century Hat String Materials at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Amber, Tortoise Shell, Plastics, Glass)

  • 오준석;이새롬;황민영;노수정;이영민;박성희;임성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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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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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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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갓끈은 조선시대 남성용 모자인 갓을 고정하는 실용적인 면과 함께 사용하는 재료의 다양화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는 장식적인 구실도 하여, 금, 은, 옥, 마노, 호박, 명박, 산호, 청금석, 수정 등 다양한 고급 재료가 사용되어 왔다.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갓끈의 재질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중 19~20세기 갓끈에 대해 재질을 조사하였다. 갓끈의 재질을 분석한 결과, 전통적인 재질로는 호박, 대모, 나무, 대나무가 사용되었으며, 상아, 유리(소다유리, 납유리, 알칼리혼합유리)와 19세기 이후 발명된 신소재인 플라스틱(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 페놀-포름알데히드, 폴리스티렌, 아크릴)이 갓끈 장식에 새롭게 사용되었다. 갓끈의 중앙 장식, 구슬, 대롱에 사용된 재료는 대모가 가장 많이 차지하며, 대나무, 나무, 호박 순으로 전통 재료의 사용 빈도가 높았다. 대나무는 대롱으로 사용하여 다른 재질의 중앙 장식과 구슬을 조합한 갓끈이 많아, 흥선대원군 집정시 의관과 문물의 간소화시책에 따른 죽영이 유행을 보여주고 있다. 호박은 갓끈의 중앙 장식과 구슬에 사용되었으며, 산지는 한국에서 발견되고 있는 호박 유물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발틱 호박으로 동정되었다. 갓끈에 사용된 유리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에서 출토되거나 전승되어온 소다유리나 알칼리혼합유리도 사용되었지만, 납유리에서는 Na2O가 검출되어 한국에서 발견되는 납유리 성분에서 벗어난 특징을 보여주어, 개항 후 해외에서 들어온 새로운 공예용 유리로 추정된다.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나 페놀-포름알데히드 등과 같은 플라스틱은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통재료인 대모, 호박, 산호 등을 대체하는 새로운 합성재료로써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는 열화에 의해 균열과 미세 균열, 부서짐과 황변이 관찰되고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20세기 갓끈 재질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개항이후 전통적인 재료의 사용과 함께, 대모나 호박과 같은 천연재료를 대체하기 위해 유리와 플라스틱과 같은 신소재의 도입이 확인되었다.

위성 고도계 자료를 활용한 한반도 해수면 높이 변동 연구 (Study on Sea Level Changes in Korean Peninsula by Using Satellite Altimetry Data)

  • 황도현;윤홍주;서원찬
    • 한국전자통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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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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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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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해수면은 19세기 말부터 상승 추세에 있으며, 20세기 이후 상승률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해수면 높이는 지역적인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반도 주변 해역을 대상으로 해수면 변동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하였다. 사용된 자료는 해상도 $1/4^{\circ}$의 Topex/Poseidon, Jason-1, Jason-2 위성의 고도계 자료를 이용하였다. 1993년부터 2013년까지 21년간 월별 평균 해수면 아노말리는 1~4월은 음의 값을 보였으며, 5~10월까지 양의 값을 보였다. 중국 보하이만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해수면 변동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21년 자료를 평균한 결과 중국 보하이만은 대륙성 기후 영향을 받는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쿠로시오 해류 및 와동류 영향을 받아 해수면 변동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티 판의 다큐멘터리 <우리의 모국 프랑스>에 나타난 아카이브 활용 양상과 역사서술 방식 (Rithy Panh's Practices on Archive Images and Methods of Historiography in La France est notre patrie)

  • 유지수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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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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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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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리티 판 감독의 2015년 작 다큐멘터리 <우리의 모국 프랑스 La France est notre patrie>는 시각적 구성에 있어 아카이브 이미지와 무성영화에서 차용한 인터타이틀을 사용하고, 청각적으로는 음악과 효과음을 주로 한 외재적 음향에 기대고 있는 파운드 풋티지 영화이다. 감독은 프랑스 식민지배하에 놓인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기 영화역사와도 궤적을 같이하는 시기에 촬영된 이미지를 발굴하여 재구성한다. 본 논문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대학살의 생존자인 감독의 기억과 역사 인식이 아카이브를 통해 영화와 맺는 실천적 관계를 고찰한다. 또한 벤야민의 역사적 몽타주와 변증법적 이미지 개념을 적용하고, 무엇보다 영화가 제시하는 중층적 시점에 주목하여 <우리의 모국 프랑스>가 구현하는 역사서술 방법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이 영화의 구성적 특이성이 어떻게 자기반영성에 충실한 에세이 영화를 추동하며, 대항기억의 담론을 일으켜 메타역사로서 관객을 복합적 사유의 문턱으로 인도하는가 밝히고자 한다.

보물 제440호 통영 충렬사 팔사품(八賜品) 연구 (A Study on the Palsapum (八賜品, Eight-Bestowed Things), Treasure No. 440, in Tong-Yong Shrine to the Loyal Dead in Korea)

  • 장경희
    • 역사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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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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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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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팔사품은 이순신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상징물이자 삼도수군통제사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의물로서 400년간 통제영과 충렬사에 배향되어 있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1966년 보물 제440호로 지정되었으나 중국에서 전래된 유물이라서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팔사품 유물을 중심으로 문헌기록이나 회화 및 한중 관련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양식적 특징을 알아내고, 유물의 제작 연대나 제작지 및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현존하는 8종의 유물 중 5종은 본래의 것이고, 3종은 후대에 새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전자는 도독인(都督印)·영패(令牌)·귀도(鬼刀)·참도(斬刀)·곡나팔이며 1598년 이전 명나라에서 제작되어 진린 장군에 의해 전래된 것이었다. 후자는 깃발[독전기(督戰旗)·홍소령기(紅小令旗)·남소령기(藍小令旗)]들이며 19세기 조선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특히 전자의 유물을 양식적으로 분석한 결과 명 황실의 품격이나 공식적인 성격보다는 개인적이며 광둥지방의 토착적인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팔사품을 중국 명나라 신종황제가 이순신에게 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진린 장군이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통제영에 남긴 것임을 밝혀내었다.현존하는 팔사품 유물은 시기별로 명칭이나 품종과 수량 및 부속품에서 변화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대에 따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7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도독인만 주목했다. 그 도장은 명대에 제작된 것은 확실하나, 사인(私印)이어서 진린 도독의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 18세기에는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4점이며, 1795년 발간된 『이충무공전서』 「도설」에서 확인된다. 이들 중 도독인을 비롯한 5종의 유물은 크기에서 기록과 유사하나, 형태나 문양은 조선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국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 광동지방의 향토성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19세기에도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5점이며, 1861년 신관호가 그린 <팔사품도> 16곡 병풍에서 확인된다. 도장함과 영패주머니 및 3종의 깃발은 가죽이나 천처럼 쉽게 훼손되는 재료에 조선식 글자와 문양을 넣어 새로 제작한 것이다. 보존에 취약한 유물들은 19세기 말 이후에도 계속 개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팔사품은 이른 시기에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이후 정부의 무관심과 공식적인 기록의 관리 소홀로 오류가 많았다. 앞으로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과 유물의 안정적인 보존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팔사품이 영원히 보존될 때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 야욕을 한중 양국의 협력으로 이겨낸 역사를, 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한국의 이순신장군과 중국의 진린도독을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관용 비판: 약자의 관용에서 '위대한 관용'으로 (Nietzsche on a critique of toleration: from the weak's toleration to 'the great toleration')

  • 임건태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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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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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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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관용에 대한 여러 가지 중요한 비판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견해로 19세기 말 독일 철학자 니체의 입장이 있다. 니체는 인간 자신을 위축시키는 노예도덕, 즉 약자와 희생자의 도덕을 강하게 거부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관용 역시 비판한다. 그래서 니체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관용이란 일차적으로 약자들이 자신들의 비겁함이나 무력함을 감추고 그러한 치부를 정의로 포장하기 위한 변명 내지 구실이다. 물론 니체는 이 같은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나름의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에서 나오는 관용으로 소위 위대한 관용이라는 개념으로 칭해질 수 있다. 위대한 관용은 자신과 대립되는 사상이나 견해 등 역시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만이 기꺼이 발휘할 수 있는 덕목이다.

19세기 말 요코하마 외국인거류지의 공간특성 연구 (A Study on the Spatial Characteristic of Yokohama Foreign Concession in the end of 19th Century)

  • 송혜영;김도연;유재우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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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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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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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e foreign concession of Yokohama was the first downtown formed through the open port of Yokohama. It became a stepping stone to the center of the market economy. Yokohama was regarded as the turning point of modernization in Japanese history and it reached the high light of modern city in Japan.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term "open port" which occurred in East Asia was directly connected with modernization. Nevertheless, there is not many researches on architectural history about the central space of the open port city. As the method of research, we examine the parcels and spatial changes that are based on the contents of maps and pictures in terms of architectural history. For the foreign concession that was set up in Yokohama and the first open port in Japan, the spatial scope was set for certain and the temporal range was also set from the setting of the concession in 1859 to the abolition in 1899.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sider the future research related to the study of the open port city from the perspective of comparative historical research.

공쿠르 형제가 본 18세기와 19세기 프랑스 사회와 문화 (French Society and Culture of the XVIIIth and the XIXth Centuries as Viewed by the Goncourt Brothers)

  • 장연욱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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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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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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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논문에서 우리는 귀족적인 18세기 문화를 과도하게 애호했던 공쿠르 형제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들은 작품에서 로코코, 로카이유, 왕의 애첩, 골동품 등의 주제를 주로 다뤘는데 이는 두 형제가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시절의 귀족적 세계를 되살리려는 의도에서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이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18세기 귀족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정당할까? 그들이 18세기 문화를 탐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이 연구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그런 문화에 대한 두 형제의 집착에는 미학적인 편애를 넘어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우리는 먼저 이념적인 원인을 살펴보았다.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 귀족적 문화에 대한 그들의 집착과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의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거부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집중되었다. 그런 다음 1848년 혁명 직후 그들이 프랑스 대혁명을 연구한 이유와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이 탐구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유쾌하고 활력 있는 18세기 문화를 특화했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1848년의 끔찍했던 기억을 잊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공쿠르 형제가 자신의 시대가 안고 있었던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18~19세기 정원 예술에서 현대적 시각성의 등장과 반영 - 픽처레스크 미학과 험프리 렙턴의 시각 매체를 중심으로 - (Modern Vision in the 18~19th Century Garden Arts - The Picturesque Aesthetics and Humphry Repton's Visual Representation -)

  • 이명준;배정한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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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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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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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픽처레스크 미학과 풍경화식 정원은 자연을 그림과 같이 정태적으로 감상하게 만드는 이른바 회화적 자연관의 전범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해석은 당시의 시각 문화를 선원근법에 의존하여 설명한 데에서 연유한다. 실상 당시는 새로운 시각 매체의 발명에 따라 종래의 원근법에 기반했던 시각성이 '유동적인 시각'과 '시점의 상대성'으로 요약되는 '움직이는 시각성'으로 변모해가는 바로 직전의 시기였다. 이 연구는 그러한 시각 문화의 변동에 주목하여 픽처레스크 미학과 험프리렙턴의 시각 매체에서 나타나는 '움직이는 시각성'의 징후를 읽어내고자 한다. 18세기 독일의 정원 이론가 히르시펠트는 풍경화식 정원은 구불구불한 선을 이용하여 움직임의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다른 예술 형식보다 우월하다고 분석했다. 18세기 말 야기된 픽처레스크 논쟁에서 아마추어 이론가들은 회화에서 복잡하고 다채로운 시각의 변주를 중요하게 여기고, 정원도 그러한 시각적 자극이 만들어지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렙턴의 "레드북"에 수록된 스케치에서는 움직이는 시각성이 반영된 다양한 재현 전략들이 발견된다. 렙턴은 속도의 차이를 고려하여 여러 유형의 길을 체계적으로 설계했고, 인간의 시각장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적 프레임이 아닌 파노라믹 뷰를 활용하였으며, 현실에서의 움직임과 유사한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스케치들을 전략적으로 배열하였다. 이와 같이 픽처레스크 미학과 렙턴의 시각 매체는 당대 시각 문화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움직이는 시각성을 반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