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8세기

검색결과 896건 처리시간 0.028초

조선시대 성곽 장대의 건축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 Jang-Dae of Castle in the Joseon Dynasty)

  • 김기현;장헌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8권2호
    • /
    • pp.120-141
    • /
    • 2015
  • 본 연구는 조선시대 성곽 축성의 기술적 변화 가운데 하나인 장대를 중심으로, 장대의 건축적 특성을 시론적으로 고찰한 연구이다. 장대는 장수의 지휘시설 및 장졸들의 훈련시설로 성내에 마련된 건물이다. 장대가 최초로 건립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18세기를 전후로 하여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는 왜란과 호란을 거치며, 장대의 실효성에 대한 인식이 대대적인 축성사업에 적용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장대는 조망의 기능이 최우선시 되었기 때문에 높은 지형에 개방적인 형태로 설치되었다. 또한 강변 경사지에 위치한 읍성 누각의 높고 개방적인 형태는 내부에서의 유관(遊觀)과 더불어 장대의 기능을 병행할 수 있었다. 또한 장대는 병사들의 교련과 사열이 이루어지는 장소였기 때문에 병사들을 소집하기 위한 넓은 대(臺)가 전면에 구성된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시대 장대의 공간구성에서 정형화된 형식으로 나타나며, 지형적인 제약으로 인해 넓은 공간이 확보될 수 없는 곳은 대의 형태만을 갖추었다. 한편, 장대에는 지휘관이 위치하는 장소로서의 위계성이 다양한 건축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높이차를 통해 지휘관의 공간에 위계성이 부여되고, 건물의 격을 높이고자 여러 장식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었다. 장대 건물의 평면은 크게 장방형과 정방형으로 구분되는데, 장방형 평면은 건물의 규모에 따라 $5{\times}4$칸과 $3{\times}2$칸이 일반적이다. 이 중 $5{\times}4$칸의 건물은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평지성이나 읍성에서 나타나며, 비교적 소규모인 $3{\times}2$칸은 주로 산성에서 나타난다. 정방형 평면의 건물은 모두 $3{\times}3$칸의 형태를 가지며, 어칸 길이는 협칸의 약 두 배가 되어, 내부 중앙칸이 넓게 마련된다. 이는 내부 중앙칸이 상층의 바닥 면적이 되기 때문에 상층의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파악된다. 장대의 일부는 내부에 층을 두어 상부공간을 구성한다. 하층이 개방되고 상하층에 처마를 달아낸 중층누각형식은 장대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건축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건물들은 하층의 내진주가 그대로 연장되어 상층의 변주가 되는 온칸물림방식을 보여주며, 내진주에 멍에창방을 끼우고, 귀틀을 결구하여 상층마루를 구성하였다. 또한 읍성에 위치한 누각은 상부에만 지붕이 구성되어 중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높은 누하주를 세우고 상부에 청방을 결구하여 상층마루를 구성하였다.

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 출토 금동풍탁(金銅風鐸)에 대하여 (About a Wind-chime excavated from WolnamSaji(月南寺址) in GangJin)

  • 성윤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0권1호
    • /
    • pp.18-41
    • /
    • 2017
  • 강진 월남사지는 그 동안 3층석탑과 파괴된 비석이 남아있었던 소규모 폐사지였다. 하지만 사역 입구쪽에 있던 파괴된 비가 고려시대 신앙결사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수선사 제2세인 진각국사 혜심의 것으로 밝혀졌고, 그 이후 최근의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도읍기로 추정되는 연화문수막새가 수습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2012년 출토된 금동풍탁은 높이 23cm에 이르는 대형급에 속할 뿐 아니라, 탁신 네 면에 비교적 큰 범자가 장식되어 이채롭다. 이에 더해 풍탁 보존처리 과정에서 '개천(盖天)'으로 추정되는 음각 명문도 확인되었다. 월남사지 출토 금동풍탁의 범자는 '옴'( , oṃ), '아'( , a), 훔( , hūṃ), 브룸( , bhrūṃ)이다. '옴'( , oṃ), '아'( , a), 훔( hūṃ)은 삼밀진언으로 알려졌고, 브룸( , bhrūṃ)은 최상의 존격을 의미한다. 또한 삼밀진언은 그 수행법을 통해서 우주 근본 원리인 법신불과 감응하여 진리를 깨닫도록 하고, 브룸( , bhrūṃ)은 일체 결합의 의미가 있다. 결국 금동풍탁 네 면을 장식하고 있는 범자의 의미는 불교의 교조(敎祖)인 부처님이 설한 '법(法)[교리]' 혹은 그 자체로서 최상의 존격인 '佛(불)'과 결합되기를 갈망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탁신에 새겨진 '개천(盖天)'의 명문은 풍탁 제작과 관련된 인명으로 볼 수도 있으나, 고려시대 향완, 반자, 향로 등에 새겨진 명문과 그 위치가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결국 풍탁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기능을 생각할 수 있다. 즉 법음(法音)으로 상징되는 풍탁의 소리가 하늘을 덮어 시방세계에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을 상징적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월남사지 출토 금동풍탁은 폐사지에서 출토된 풍탁과의 비교, 고려후기 역사적 상황, 밀교 관련 경전 발행연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13세기 중후반에 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명말청초(明末淸初) 유민화가(遺民畵家)의 화풍(畵風)에 나타난 예술심미 -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를 중심으로- (An Aesthetic on painting style of Yumin Painter in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y - Focuse on the Paldaesanin and Seokdo -)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 /
    • 제5권3호
    • /
    • pp.61-70
    • /
    • 2019
  • 명말청초의 화단은 청(淸) 왕조에 충실하게 협력했던 정통파와 청(淸)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졌던 개성파가 대립한 혼란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왕조교체기에 국파가망지통(國破家亡之痛)의 한(恨)을 품고 현실을 초월해 산림에 은둔자적하였던 대표적 유민화가였던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石濤)는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개성적 표현 양식으로 어떠한 유파를 이루지 않았고, 작품을 통해서 흉중의 비참함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자신만이 느끼는 새로운 착상과 구도를 통해 광괴적(狂怪的)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의 화풍(?風)은 비분에 싸인 자아마저 망각한 반규범적이며 무위자연적 사유를 통해 간일(簡逸)하면서도 광견적 심미관을 형성하여 자신만의 개성미와 독창성을 야일(野逸)한 묵희(墨戱)로 발현하였다. 팔대산인(八大山人)은 저항정신과 비분강개가 함축된 기이한 그림을 독특한 발묵선염법을 통해 주로 그렸는데, 냉소(冷笑) 풍자(諷刺)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 광방불기(狂放不麒)하게 묘사하였다. 한편, '차고이개금(借古以開今)'을 주장한 석도(石濤)는 "화어록(畵語錄)"에서 화리(畵理)와 필법(筆法)의 일치화를 일획(一劃)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일획론(一劃論)은 기존의 법(法)으로부터 벗어난 무법이법(無法而法)의 자율성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감각적 필묵과 색채미를 통해 유민의식에 기반한 흥(興) 욕(欲) 정감(情感)이 유희적(遊戱的)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들의 개성적 화풍은 이후 양주팔괴(楊州八怪)에 전해져 18세기 화풍을 선도하였다.

경주 지역 지석묘 문화의 특징과 종말기의 양상 (The Characteristics of Dolmen Culture and Related Patterns during the End Phase in the Gyeongju Region)

  • 이수홍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3권4호
    • /
    • pp.216-233
    • /
    • 2020
  •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문화를 검토하고 지석묘의 종말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18곳, 초기 철기시대 이른 시기 즉 종말기의 무덤 유적 9곳을 분석하였다. 경주는 검단리 문화 분포권에 포함된다. 현재까지 경주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무덤은 약 120기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수에 비해 무덤의 수가 부족한 편인데, 검단리 문화권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무덤의 수는 부족해도 매장주제부의 구조는 다양하다.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의 특징은 토광묘와 묘역식지석묘·적석제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축조된다는 점이다. 토광묘는 동산리유적 부장품인 방추차를 통해서 볼 때 북한 동북 지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은 송국리 문화권에 주로 분포하는데, 특이하게도 검단리 문화권인 경주 지역에서 많이 확인된다. 초기철기시대가 되어도 청동기시대의 영향이 이어진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된다. 새롭게 이주한 점토대토기 문화인들은 목관묘를 축조하였다.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새로운 고소의례가 등장하는데 국읍(國邑)에서 주재하는 천신제사(天神祭祀)의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 화천리 산251-1유적과 죽동리유적은 고소의례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러한 고소의례에도 묘역식 지석묘와 동일한 형태의 적석제단이 축조되고 지석묘의 상석과 유사한 바윗돌이 이용되었다. 초기철기시대에도 청동기 시대 전통을 유지한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 이용되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되었어도 지석묘가 가진 권위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로 알려진 묘역식지석묘나 적석제단 일부에서는 초기철기시대까지 의례 행위가 지속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2세기 후반이 되면 목관묘가 군집하기 시작한다. 철기 문화가 확산하고, 중국 중원의 유물이 유입되는 등 경주 지역을 비롯한 남부 지역이 동아시아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시점이다. 이때 지석묘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 무예 인류무형유산 등재 과제 (A Task for Listing Martial arts of 『Muyedobotongji』 on the UNESCO Representative 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 곽낙현
    • 동양고전연구
    • /
    • 제69호
    • /
    • pp.451-479
    • /
    • 2017
  • 이 연구의 목적은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과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예도보통지"는 1790년(정조 14)에 편찬되었다.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는 기본적으로 찌르는 방식의 자법(刺法), 찍어 베는 방식의 감법(坎法), 치는 방식의 격법(擊法)의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하였다. 둘째, "무예도보통지"의 무예가 무예사적 가치로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18세기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 삼국 무예를 조선의 실정에 맞게 새로운 안목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종합한 것이다. "무예도보통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갖는 가치는 장교와 군졸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만든 무예 서적이라는 점이다. 셋째,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절차는 준비 및 제출, 심사, 결정의 세 단계로 진행되며, 소요되는 기간은 2년이다. 특히 심사보조기구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 산하 기구로서 24개 위원국 가운데 각 지역별로 1개국씩 전체 6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넷째,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무예도보통지" 소장본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2)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시 도무형문화재 또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필요하다. (3) "무예도보통지" 무예 기법 및 동작에 대한 실기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다. (4) "무예도보통지" 무예 복장 및 무기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5) "무예도보통지" 무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야 한다. (6) 문화재청 세계유산팀, 외교부 등 관련 부처와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루어야 한다. (7) 유네스코 등재기준과 충족을 위한 국내외의 "무예도보통지" 무예 관련 자료 수집을 포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8) 인류무형유산 등재유형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조경(趙璥) 시(詩)의 천기유로양상(天機流露樣相)과 그 의미(意味) (The aspect of the revelation of profound secrets of nature in the Poetry of Jo Gyeong[趙璥] and its meaning)

  • 유호진
    • 동양고전연구
    • /
    • 제49호
    • /
    • pp.225-260
    • /
    • 2012
  • 하서(荷棲) 조경(趙璥) 시(詩)의 특징은 우선 신선, 꽃의 신, 귀신, 주조(朱鳥), 용(龍) 등 신이한 존재가 등장하는 환상적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하서가 도학의 정치이상과 사회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을 인식하고 그로 인한 비애(悲哀)를 표출한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가 당대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시에는 여느 도학자의 시처럼 '봄'이라는 상징이 출현하는데, 이는 절망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는 자연물을 형용함에 있어 그 배후에 놓인 우주의 이법(理法)과 함께 자연물 자체의 활처(活處)를 선명하고 예리하게 묘사하였다. 조선전기 도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천리(天理)와 본성(本性)의 체인(體認)이라는 주제를 겨냥한 데 비하여 그는 사물의 천기(天機)를 묘파하는 쪽으로 시세계를 더 확장했던 것이다. 특히 산수(山水)의 정신(精神)을 묘사한 시들은 강인한 힘과 역동적인 운동을 형상화 함으로써 쇠잔해가는 세상에서 용맹스럽게 전진하려는 인생태도를 암시하였다. 자연물의 천기(天機)에 주목한 하서는 새로운 매화의 형상을 그려냄으로써 더욱 풍부하게 자신의 인생이상(人生理想)을 제시하였다. 이전의 매화시와는 달리 하서의 매화시에서는 매화의 모습이 도를 체득한 도인(道人)의 형상, 동시대인을 감화시키는 대인(大人)의 형상, 그리고 천기(天機)를 발현한 처사(處士)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어두운 사회 현실을 의식하면서 매화의 모습을 도인(道人)과 대인(大人)의 형상으로 그려냈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매화를 천기(天機)를 발현한 존재로서 묘사하였다는 점은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는 천진(天眞)한 인격에 대한 지향과 그러한 인격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내어 인간적인 자아 형상을 선명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하서는 당대의 천기론적 사유를 도학시 창작에 수용하여 보다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인격이상(人格理想)을 창조했던 것이다. 이는 18세기 도학시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의 제문(祭文) 연구(硏究) - 호소력의 근원에 대한 탐색 - (A Study on Gusadang Kim Nakhaeng's Writing for Ancestral Rites - Exploring the source of his appealing)

  • 정시열
    • 동양고전연구
    • /
    • 제59호
    • /
    • pp.93-120
    • /
    • 2015
  • 본고는 구사당 김낙행의 제문이 갖는 호소력의 근원에 대한 탐색을 목적으로 한 연구이다. 구사당은 18세기 영남의 유학자로서 지행합일과 실천궁행의 학덕으로 칭송받은 분이다. 구사당의 제문과 그의 스승인 밀암 이재의 서찰은 '구제밀찰'이라는 별호가 붙여질 정도였지만 현재 구사당의 제문에 대한 연구 성과는 전무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구사당의 제문 가운데 감정 표현이 특히 풍부한 3편을 논의 대상으로 했다. 제2장에서는 '미시적 관점에서 기억의 재구'라는 제목하에 구사당의 제문이 호소력을 갖춘 한 편의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존재하는 데서 제문은 시작된다. 고인과의 일화가 제문이라는 무대에서 상세하게 재구성되는 데는 저자의 기억이 큰 역할을 한다. 제3장에서는 '고조된 감수성의 수사적 재구'라는 제목으로 제문에 필요한 수사적 장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문의 격을 높이고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사가 필요하다. 제문은 양식적 특성상 슬픔을 드러내는 글이지만 단순히 감정의 배출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제4장에서는 '애상적 분위기의 서사적 재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한 산 자의 손짓이 호소력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서술의 초점이 분명해야 한다. 구사당은 서술 방식을 명확히 한 상태에서 고인의 인품과 안타까운 죽음, 지난 시절의 인연과 남은 자의 그리움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제문은 글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산 자의 슬픔을 재현하는 장이다. 이렇게 재현된 글이 제문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호소력을 지녀야 한다. 본고에서는 제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호소력이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본 고학파(古學派)의 정치관 - 이등인재(伊藤仁齋)와 적생조래(荻生?徠)의 위민(爲民) 개념을 중심으로 - (The Political Views of Kogakuha(古學派) in Japanese Confucianism - Focused at the concept of 'For the People' of Ito-Jinsai(伊藤仁齋) and Ogyu-Sorai (荻生?徠))

  • 이용수
    • 한국철학논집
    • /
    • 제42호
    • /
    • pp.259-294
    • /
    • 2014
  • 유가 정치사상에서 중심 개념은 천天과 인人(=민(民))이다. 특히 유가 사상에서 천이 갖는 의미가 결코 작을 수 없음은, 그것이 형이상학적으로 인간과 천을 설명하는 리理와 결부되면서 정치의 분야에 까지 그 논의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명'의 개념을 배제하고서 동양의 정치사상의 본질을 논의하기 어렵다. 본고는 18세기 초의 일본에서, 그 동안 도덕적으로 정당하면서도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었던,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군주의 사적私的 차원이었던 '천天'의 정치화가 어떻게 공적公的인 '민民'의 차원으로 전환되었는가에 초점을 두어, 일본사상사에서 고학파古學派로 분류되는 대표적 사상가 이토 진사이(이등인재(伊藤仁齋))와 오규 소라이(적생조래(荻生?徠))의 학설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동양 정치사상사에서 주자학이 지녔던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권위가, 일본의 에도(강호(江戶)) 시대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당연히 배태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동안 억눌렀거나 억눌렸던 '민'에 대한 새로운 차원에서의 해석과 개념 정립이 어떤 사유 과정과 논쟁 과정을 거치며 부상했는가를 탐구해 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이토 진사이에 대해서는 그가 보았던 '민民'에 대한 관념을 재검토하여 인仁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살펴보았다. 오규 소라이의 경우는 '선왕의 도'에 대한 개념과 ""육경"은 곧 물物이다"고 선언한 의미를 규명하면서 그의 안민천하의 정치론을 논했다. 이들 두 사상가가 펼친 정치관의 의미는 과거의 가치관을, 당대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일종의 치유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사이에게서는 '인'의 새로운 해석에 바탕한 '왕도의 구현'으로 나타났고, 소라이에게서는 '선왕의 도'에 바탕한 도덕으로부터의 정치의 독립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토지피복지도를 활용한 IUCN 생태계유형분류 국내 적용 (A Study on the Application of IUCN Global Ecosystem Typology Using Land Cover Map in Korea)

  • 손희정;원수연;전정은;박은희;김도희;한상학;송영근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 /
    • 제37권3호
    • /
    • pp.209-220
    • /
    • 2023
  • 인간 활동으로 광범위한 자연 생태계 변화로 지난 몇 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생물다양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생태계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생물다양성 위협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IUCN 의회는 2019년에 생태계의 기능과 유형을 고려한 IUCN Global Ecosystem Typology(GET)를 구성했다. IUCN은 10개의 생태계 군계, 108개의 생태기능별 토지 유형(EFG; Ecological Functional Group)을 전 지구적 범위에서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IUCN GET 생태계의 유형 분류에 따르면 국내 생태계는 Realm (1수준)이 8개, Biome (2수준)이 18개, Group (3수준)은 41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IUCN이 제공하는 GET의 경우 전 세계 규모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해상도가 낮고 실질적인 토지 현황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본 연구는 토지피복지도를 활용하여 국내 IUCN GET 유형 분류의 정확도를 높이고 실질적인 현황을 반영한 지도를 제작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① IUCN GET에서 제공하는 국내 GET 데이터 체계를 검토하고, ② 이를 국내 현황과 비교 분석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GET의 한계와 활용 가능성을 평가하고 ③ 이후 국가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국내 현황을 반영한 국내 GET 유형 분류를 수행하였다. 본 연구는 토지피복지도와 기존 국가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국내 GET를 총 25개 유형으로 분류했다(Terrestrial Realm :9, Freshwater: 9 Marine-Terrestrial: 5, Terrestrial-Freshwater :1, Marine-Freshwater-Terrestrial:1). 기존 지도와 비교했을 때 수정된 국내 GET의 경우 'F3.2 Constructed lacustrine wetlands', 'F3.3 Rice paddies', 'F3.4 Freshwater aquafarms', 'T7.3 Plantations'가 면적이 가장 많이 축소되었다. 온대 산림(T2.2)의 면적이 가장 많이 늘어났고, 'MFT1.3 Coastal saltmarshes and reedbeds', 'F2.2 Small permanent freshwater lakes'등 3개 유형 또한 수정 후 GET 면적이 증가했다. 해당 과정을 통해 기존 GET에서 모든 EFG의 합이 국토 면적의 8.33배를 차지하던 기존의 지도를, 토지피복지도를 활용하여 총합이 국토 면적의 1.22 배가 되도록 수정하였다. 이를 통해 유형별 차이가 작고 정확성이 떨어진 기존의 EFG가 본 연구를 통해 개선 및 수정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현장 요건을 반영한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여 GET 기준에 상응하는 한국의 GET 지도를 제작한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혼례도첩》 속 등장인물의 복식 고찰 (Analysis of Clothing in a Painting Album of a 60th Wedding Anniversary Feast i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6권3호
    • /
    • pp.76-98
    • /
    • 2023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혼례도첩》(덕수6375)에 묘사된 남녀 등장인물의 복식을 분석하고 《회혼례도첩》의 제작 시기를 추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공 노신랑은 <전안례도>와 <교배례도>에서는 평소 관원으로 착용하던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그 외 <헌수례도>와 <접빈도>, <중뢰연도>에서는 패영 없는 자립에 옥색 포, 홍색 세조대를 둘렀다. 기럭아범은 자립에 귀 옆에 묶은 패영을 달고 흉배를 부착한 무문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성인 남자 자손과 하객들은 도포 등 당시의 대표적인 포 종류를 착용하였는데 특히 무관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은 철릭, 직령을 착용하고 붉은 색 띠와 청색 계통의 띠를 신분에 맞추어 착용하였다. 징씨(徵氏) 등 안내자는 중치막과 홍단령을 착용하였으며 어린 동자들과 시동(侍童)은 중치막을 착용하였다. 술을 따르고 음식을 나르는 총각들은 땋은 머리에 소창의(小氅衣)를 입고 성인들은 전립(氈笠)에 소창의를 착용하였다. 군영 소속의 세악수들은 소색 소창의에 흑색 전복, 그리고 허리에 남색 포대 등 군복을 착용하였다. 둘째, 노신부는 <교배례도>에서는 거두미와 초록원삼 차림을 하였고 <헌수연도>에서는 남치마·옥색저고리 차림이 확인되었다. 여자 자손들은 어여머리에 비녀와 반자, 진주댕기 등의 칠보장식을 하였고 다양한 색상의 저고리에 남색과 홍색, 옥색 등의 치마를 입었다. 남치마에 초록 장옷을 입은 부인도 확인되었다. 홍치마에 초록색 회장저고리를 입은 <교배례도>의 동녀(童女) 4명은 낭자머리에 비녀 꽂고 도다익 댕기를 길게 드리웠으며 칠보족두리를 썼다. 비자(婢子)들은 어여머리에 가리마를 썼으며 양반 부인들과 유사한 치마·저고리를 착용하였으나 색상이 연했고 치마의 길이가 짧았으며 치마의 부풀림 정도가 약하였다. 기녀는 양반 부인과 비슷한 모습이었으나 색상이 덜 화려하였으며 어여머리에는 칠보장식이 없었다. 셋째, 주인공의 자립 착용, 철릭과 직령을 입은 하객들, 군영 소속 세악수 참여 등에 근거하여 회혼례의 주인공이 병조나 군영과 관련된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군영 악대의 전복의 소매 길이와 잠화 사용, 어여머리의 형태와 댕기, 저고리의 길이와 치마의 부풀린 형태 등에 근거하여 《회혼례도첩》의 제작 시기를 1760년대~1780년대로 추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