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황남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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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皇南大塚) 98호분 출토 유리(琉璃)의 과학적(科學的) 분석(分析) (Scientific analysis of the glass from Hwangnam-daech'ong Tomb No. 98)

  • 조경미;유혜선;강형태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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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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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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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황남대총 98호분 북분과 남분에서 출토된 유리시료 40점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실시하였다. 유리의 성분조성은 주사전자현미경-에너지분산형분광기(SEM-EDS)를 사용하여 정량분석하였고 다변량해석법을 통하여 시료를 분류하였다. 그 결과 시료 40점 모두 Na2O를 약 20%정도 함유한 소다-석회(Na2O-CaO-SiO2)유리임을 확인하였으며, 다시 5개 주성분(SiO2, Al2O3, Na2O, CaO, K2O)으로 다변량해석[주성분분석(PCA)]을 실시한 결과 2개의 군(群)으로 분류되었다. I군(群)에 포함된 시료는 Al2O3의 농도가 9.7%로 높고 CaO의 농도는 2.2%인데 비하여 II군(群)에서는 각각 3.2%, 4.9%의 범위로 나타났다. 특히 시료 No. 12의 노란색으로 편석된 부분을 미소부위 XRD로 분석한 결과 PbSnO3임을 국내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연(鉛)을 함유한 시료 중 No. 12, 17은 열이온화질량분석기(TIMS)로 납동위원소비를 측정하였고 선형판별식분석법(SLDA)을 이용하여 납의 산지를 추정하였다. 그 결과 각각 중국 남부, 한국 남부의 납광석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남대총(남분)의 서역계 유리제품 특성화 연구 (Characterization of Western Asia Glassware excavated from Hwangnamdaechong Great Tomb)

  • 강형태;정영동;허우영;신용비
    •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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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2004년도 제20회 발표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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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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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A lot of foreign objects(ceramics, pottery, bronze, glassware and coins, etc.) have been found in the archaeological sites in Korea. These foreign objects are the evidences of the cultural exchanges of that time, whose scale and routes are an important part of the studies in ancient history. So it is crucial to accumulate basic reference information such as the raw materials and the production method of these objects through scientific researches, along with archeological researches. These scientific research materials provide a basis for finding the importing route and the origin of these objects. Besides, we can find out extraordinary and distinctive production technique by comparison with tile domestic objects. This article reports the result of an analysis, performing on 36 samples of the glassware fragments excavated from the South Tomb of the Hwangnamdaechong, to verify their components and note peculiar features. We have analyzed the major and minor components of 10 elements, and then by using these data examined the differences in the composition of components, varying with the origin and color of glassware. We used the PCA(principal component analysis) as the statistical method to classify the sample in order to find out how the samples formed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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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기의 화학조성-경주 황남대총 출토 도.토기를 중심으로 (The scientific analysis of potteries excavated from Kyong-ju relics-In terms of potsherds excavated from Wangkyong, Walsung, Hwangnam great tomb)

  • 홍종욱;문환석;황진주;조남철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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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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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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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This paper presents the results of investigation on crystal, firing temperature and trace elements analysis of fragments 4~8 centriesexcavated from Kyong ju historical sites such as Wang kyong,Walsung, Hwangnam great tomb by application of optical microscope, neutron activation analysis and X-ray diffraction. Temper analysis of clay for identification of local or foreign production; Trace elements is not presented a unique chemical composition. That’s data have to be treated a statistical process in order to normalize. The results followed ;(1) Firing temperature could be estimated $700^{\circ}C$ on some softness pottery at Walsung and most of hardness others are $1,000^{\circ}C$ to $1,200^{\circ}C$.(2) Crystal structures are divided into three kinds of mineralogical composition(Quartz, Mullite, Feldspar).(3) Considering of the results of statistical data, chemical composition of Walsung is more similarly Wang kyong than Hwangnam great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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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제 문화재 복원용 광경화성 수지의 물성 연구 및 적용 (The Physical Properties of UV-curable Resin for the Restoration of Glass Cultural Properties and Its Application in Conservation Treatment)

  • 이해순;나아영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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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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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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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문은 유리제 문화재 복원에 안정한 물성을 지닌 복원재료를 선정하기 위한 연구이다. 아크릴계 광경화성수지(FLGPCL04 Clear®)를 기준으로 우레탄계 광경화성수지(SECURE CP-7321®)를 10%씩 가감한 혼합 시편 11종을 제작하고 6종의 물성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결과 굴절률, 비중, 접착력, 황변도의 측정값에 대해서는 11종 혼합재료 모두에 대하여 유사하였으나 표면경도 및 압축강도 측정값에서는 우레탄계 광경화성 수지의 혼합 비율이 10~20% 범위일 때 가장 적합하였다. 즉, 유리제 유물을 복원한 이후의 상태 유지에 가장 효과적이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아크릴계와 우레탄계 광경화성 수지를 9:1로 혼합한 재료(AU9010)를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유리잔 (황북519)의 보존 처리에 적용하였다.

국보 제193호 봉수형유리병 금사의 특성과 제작기법 연구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 and Manufacture Technique for the Gold wire of Phoenix-Shaped Glass Ewer by National Treasure No. 193)

  • 황현성;윤은영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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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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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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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국보 제193호 봉수형유리병은 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황남대총 남분의 수많은 부장품들 사이에 독특한 형태의 녹색 유리 편들로 심하게 파손된 채 출토되었다. 1984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본격적으로 보존처리를 실시하여 박물관에서 오랜 기간 동안 전시되어 왔지만, 30년이라는 세월로 인해 기존에 사용한 접착제는 심하게 열화가 되어 매우 불안전한 상태가 되었으며 특히 복원제로 사용한 에폭시 수지가 빛과 열에 의해 심하게 황변이 되어 더 이상 유물의 안정한 전시와 효과적인 전시가 이루어질 수 없어 이번에 재 보존처리를 하게 되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그동안 연구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던 세 조각으로 파손된 봉수형유리병 손잡이 부분을 금사로 정성스럽게 감아 수리에 사용한 3 조각의 금사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금사에 대한 분석방법으로는 SEM-EDS와 Stereo Microscope를 사용하여 비파괴적으로 분석하였다. 먼저, SEM-EDS 분석 결과, Au 91.9wt%-Au 92.8wt% 와 Ag 5.9wt.%-Ag 6.5wt.%으로 Au 과 Ag의 합금인 금제로 밝혀졌다. 다음으로 광학현미경으로 금사의 제작기법을 관찰한 결과, 일반적으로 금사는 덩이 금을 두드려서 만들거나 구멍에 밀어 넣어 뽑아내는 인발 가공 또는 금판을 꼬아서 제작하는 방법으로 제작하는데 봉수형유리병 손잡이에서 분리한 금사는 표면에서 꼬임 흔적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단지 길이 방향으로 미세한 줄무늬가 관찰되고 단면이 모두 채워진 상태인 것으로 보아 인발 가공하여 만든 것을 사용하여 보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그동안 금사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금제품 유물의 구성품으로만 인식된 채 별도의 유물로 주목받지 못해 금사에 대한 제작기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매우 미흡한 편이기 때문으로 장차 금사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번 봉수형유리병 손잡이 고정에 사용된 금사 분석 결과가 기존 신라시대 금제 유물의 금사와의 상호 연관성을 밝혀내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중.일 3국의 어부 제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Fish Shape Credit Mark of the Ancient China and Japan, Korea)

  • 임명미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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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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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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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1. After the Chu Dynasty(周代), we can confirm the fish shape mark made of stones as the relics of the Chunkuk dynasty(戰國時代). In the Shu Dynasty(隋代), the system of bamboo and the rabbit shape mark made of silver into the fish shape mark. As it were, made of bamboo or siltier changed into the fish shape mark made of jade, gold, silver or wood. 2. In the Dang Dynasty(唐代), the used the fish shape credit mark made of jade, gold, silver, copper or textile, according to their classes. According to one's posit the man who wore purple, red coat, credit mark made a gold and silver. attached with putting them in fish bags. 3. In the Ryo Dynasty(遼代), there was also a system of attaching marks. The emperor was hanging the fish shape and the officials attached the double fish shape to the common dress. fish shape of jade. gold, amber, agate, silver or copper. without any fish bag. 4. The Song Dynasty(宋代) followed the system of the Dang Dynasty they used only the fish shape bags without marks in them. Hanging the fish shape bags made of gold and silver at the back side of the belt. 5. The Gin Dynasty(金代) carried out the system of made jade, gold or silver like the Dang, Song and Ryo Dynasty. In the Sejong Kingdom a system of paper card was carried out as the credit mark of the eighth and the ninth grade. 6. In the Ming Dynasty(明代), the military official general attached the golden, silver, ivory of jade, wood and copper cards with their positions and names. 7. Following the Dang Dynasty, Japan made of fish shape bags to their clothes. Colors of their fish shape marks were same as their clothes. They made the marks, such as crystal, cow's horn, lead and nickel and plated them with gold or silver. 8. In Korea, Pohai(발해) established the fish shape credit mark differed in material. gold, silver or copper according to their positions. We can confirm the Unified Silla(南國;統一新羅), carried out the system of attaching the fish shape in Chonma Chong(천마총), Golden Crown Chong(金冠塚), the King's 13-17 belt ring unearthed at the north part of Court South threat Chong(황남대총), the fish shape golden or silver, to their purple or red ceremonial coats. In the Koryo Dynasty(高麗), like the Dang, Song and Pohai, they attached the fish shape golden or silver marks, to their purple or red ceremonial co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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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5~6세기 무덤 출토 팔찌에 대한 연구 -물리적·형태적 특성 및 착장 양상을 중심으로 (A Study of the Bracelets Excavated from Fifth-and Sixth-century Silla Kingdom Tombs: Physical Characteristics and Wearing Practices)

  • 윤상덕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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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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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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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피장자의 성별 및 위계 연구에 신라 마립간기 무덤 출토 귀금속제 장신구는 주요 연구대상이다. 그럼에도 팔찌(釧)는 소홀히 다루어졌는데, 최근 하대룡이 팔찌를 통해 성별을 추정한 연구를 발표하여 주목받았다. 이에 신라 팔찌의 기본 요소에 대한 관찰과 정리가 필요해졌고 이 글에서 물리적인 성격부터 외관과 변천, 착장 양상을 검토하였다. 대상 팔찌는 총 176점으로 은제, 금제가 대부분이며, 동, 유리 등이 확인되었다. 제작방법은 대부분 일회용 토범(土范)을 사용해서 주조로 만들었으며, 특히 각목문이나 돌기문도 새긴 것이 아니라 주조임을 알 수 있었다. 유리 팔찌와 용문양 팔찌는 둥근 형태의 거푸집을 사용하고, 판금제작을 제외한 나머지 팔찌는 '一자'형 거푸집으로 주조하여 둥글게 구부린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구부린 뒤에 양 끝을 접합해서 땜한 경우(폐쇄형)와 접합하지 않고 열린 형태로 둔 경우(개방형)로 나눌 수 있다. 변천은 이한상의 연구와 같이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문양 없는 둥근 봉의 형태에 각목문이 부가되고, 6세기가 되면 돌기형이 유행하는 방향을 확인하였는데, 초기형태는 원삼국시대의 가는 봉형 팔찌에서 이어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팔찌는 착장 뒤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손목에 맞춰서 제작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개방형의 디자인이 사용될 수 밖에 없다. 또 금, 은과 동의 연성을 고려하면 늘림이나 변형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결국 팔찌가 남성의 손에 들어가기에 작더라도 개방형은 착장할 수 있으며, 폐쇄형도 타원형으로 변형하면 남성도 착장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즉, 변형 가능 정도에 따라 개방형인 A유형에서 유리팔찌와 같이 변형이 거의 불가능한 D유형까지 나누었을 때, 개방형인 A유형이 세환이식 착장자에게 더 많이 확인되며, 변형이 어려운 C, D 유형은 세환이식 착장자에게는 보이지 않고 태환이식 착장자에게서만 발견되는 점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팔찌는 남성도 착장할 수 있었으며, 세환이식과 태환이식 및 대도 착장을 기준으로 남녀를 구별하는 기존의 연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창산 김정기의 유적조사와 한국고고학 (Excavation of Kim Jeong-gi and Korean Archeology)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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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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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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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창산 김정기(昌山 金正基, 1930.3.3~2015.8.26)는 우리나라 문화재 발굴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으신 분이다. 1959년 국립박물관 직원으로 문화재와 인연을 맺으신 이후, 1987년 문화재연구소를 퇴직할 때까지 약 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2015년 영면하기 전까지 대학과 발굴 전문기관에서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창산은 국내의 기념비적인 고고학 발굴조사를 모두 진두지휘하고 초창기 한국 고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으며, 한국 고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그의 활동과 역할은 고고학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나 나름의 한계 또한 찾아 볼 수 있다.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활발히 조사되어 한국 고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시기로 평가되고 있는 국립박물관의 덕수궁시기(1955~1972년)에 창산은 선사시대 패총유적이나 주거지와 같은 고고학 조사에 적극 참가하여 유적측량과 유구 실측을 비롯하여 사진촬영과 유물 제도 등을 맡아서 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익힌 발굴기술을 마음껏 발휘하였고, 전국을 무대로 종횡무진 이루어진 그의 고고학조사는 학사적으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특히, 창산의 견해 가운데 고고학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고분에 있어 수릉의 가능성을 지적한 것과 청동기시대 문화의 이해에 "해미문화"라는 지역문화론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탁견이었다. 1969년 문화재연구실이 설치됨에 따라 그 책임을 맡은 창산은 미약한 규모인 연구실의 운영과 총체적인 책임을 맡아 찬란한 우리문화를 지켜내고자 조사와 연구에 고심하였다. 그는 불국사 복원공사와 경주 천마총, 황남대총의 발굴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이후 황룡사지, 분황사, 미륵사지 등을 조사하며 삼국시대 불교문화와 가람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노력하였다. 당시 창산이 기획하여 진행한 대형 발굴조사는 한국 고고학의 기틀을 다짐과 동시에 관련분야의 연구를 활성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고고학의 계기적인 발전과정 상에서 볼 때, 다양한 발굴조사법의 시도와 체계화, 고고학 전문 인력의 양성과 발굴조사의 대중화, 조사기록의 정형화 및 자료공개 활성화 등은 이 시기 창산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성과로 손꼽을 수 있다. 한편, 유적조사에 있어서 정확한 기록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열정적으로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 발굴왕 창산도 유적의 성격을 밝히고 유구를 해석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황남대총 주인공 논쟁의 불씨를 남겨둔 것은 그의 역할을 재음미해볼 때 매우 아쉬운 한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