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한국마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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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박물관의 디오라마전시방법 연구 -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Diorama Exhibition Methods in Histroy Museums - Focused on Storytelling)

  • 이준희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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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14년도 추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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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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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는 박물관에서는 관람객에게 적극적인 체험의 기회를 주고, 이를 통해 관람객과 전시물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역사박물관에서 디오라마전시방법은 한 가지 유물이나 사건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가장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시방법이다. 그러나 역사박물관의 디오라마전시는 대부분 축소모형을 통해 이루어지며, 스토리의 기 승 전 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이는 관람객의 적극적인 체험을 이끌어 내는데 한계를 가진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관람객의 주인공화, 배경의 다양화라는 전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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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마임에 대한 역사적 고찰 (A Historical Study on the Mime in Chinese Theater)

  • 안상복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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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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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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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중국 마임에 대해 역사적 고찰을 진행한 글이다. 중국 전통극에서의 마임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하는 문제는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나, 고대 배우들의 행위를 통해서 대략적이나마 초기의 자취가 발견된다. 필자는 사기(史記) "골계(滑稽)열전"에 수록된 초(楚)나라 장왕(莊王: B.C.613-591) 때의 배우 우맹(優孟) 이야기 속에서 그 근거를 찾아 제시할 수 있었고, 이를 근거로 중국의 마임은 최소 2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것으로 판단하였다. 중국의 마임은 전통극 중에서도 제의극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 발전은 각색행당제(脚色行當制)와 긴밀히 연계되어 진행되었다. 주(做)나 타(打)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정식동작(程式動作)들은 최근 몇 세기에 걸쳐 구체화되었지만 그것들의 좀 더 먼 기원은 고대의 무(舞)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대의 무는 다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나뉘어 전개되었으니, 현재의 주나 타에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문무와 무무라 할 수 있다.

한국 마임의 전통성과 정체성 - 기원, 역사, 특징 - (Tradition and Identity of Korean Mime)

  • 김익두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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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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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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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마임(mime)/무언극(無言劇)이란 '신체를 움직이는 기술'을 뜻하고, 오늘날에는 사실적이고 상징적인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하나의 성격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기술을 뜻한다. 한국 마임의 시원은 멀리 선사시대의 '신성한 몸짓'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마임에 관한 자료는 고고학적 발굴 자료들, 구비전승 자료 및 이후에 기록된 이 시대 관련 문자기록들 등이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인간이 수행하는 가장 원초적인 연극 형식인 윈시 제천의식(祭天儀式) 등에 마임의 흔적이 나타난다. 삼국시대의 마임은 악가무희사(樂歌舞戱詞)가 종합된 이른바 '가무백희(歌舞百戱)' 혹은 '산악백희(散樂百戱)' 형태로 존재했다. 이 시기의 마임은 '호선무(胡旋舞)' '광수무(廣袖舞)' '괴뢰희(傀儡戱)' '기악(伎樂)' 검무(劍舞) '무애무(無㝵舞)'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백제 '기악(伎樂)'은 불교적인 내용의 가면 묵극(黙劇) 곧 마임으로 보인다. 남북국시대에는, 신성한 제의극보다는 세속극이 더욱 더 강화되고 정형화되고 다양화되었으며, 이러한 변화에 따라, 마임도 그만큼 다양한 정형화를 이루었다. 구체적으로는, '처용가무(處容歌舞)' '황창무(黃倡舞)' '대면(大面)' '월전(月顚)' '속독(束毒)' '산예(狻猊)' 등에서 시 시대의 마임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마임은 매우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인형극, 탈놀음, 무용극 형태로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처용가무(處容歌舞)'와 같은 기존의 전통 마임이 사회적으로 널리 보편화되고, '헌선도(獻仙桃) 포구락(抛毬樂) 연화대(蓮花臺)'와 같은 마임 형태의 무용극이 수입되었다. 조선시대에의 마임은 광대(廣大) 서인(西人) 주질(注叱) 농령(弄鈴) 근두(斤頭) 등과 같은 '규식(規式)이 있는 유희[규식지희(規式之戲)]'와 수척(水尺) 승광대(僧廣大) 등과 같은 '웃고 희학하는 놀이[소학지희(笑謔之戱)]'로 분화된 연극의 변화와 더불어 발전했다. 이 시기에 들어오면, 연극적 양식들이, 무당굿 풍물굿/농악 인형극/괴뢰희 탈놀이 조희 판소리 궁중 가무악극(歌舞樂劇)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분화 발전됨에 따라, 마임도 이런 다양한 연극적 양식들의 변화 발전 속에서 다양하게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한국의 마임은 역사적으로 매우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독자적인 양식으로 분화되지 않은 채, 여러 연극 양식들 속에서, 그 연극 양식의 일부분으로 존재해 왔다. 이러한 특징과 전개 양상에 따라, 한국의 마임은 굿놀음식 마임, 인형놀음식 마임, 잡색놀음식 마임, 탈놀음식 마임, 궁중무용식 마임, 판소리식 마임 등등, 다양한 양식적 분화를 이룩해 왔으며, 그 각 양식적 분화에 따라 각 양식별로 매우 특특하고도 다양한 특징들을 확립해 왔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지도제작의 전통과 조반니 마리노니의 역사적 위상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Historical Status of Giovanni Marinoni in the Tradition of Cadastre and Cartography in 18th Century Italy)

  • 김일현;김관수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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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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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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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role of Giovanni Marinioni during the formation of the modern cartography and cadastre during the 18th century. Initial study began with Giambattista Nolli's Roman map noticing not much information was available to acknowledge his activities during his Milan period before the departure to Rome. It became evident that Marinoni was a key person to understand the complex circumstances in which the professional training and formation of Giambattista Nolli took place as later worked as an anonymous intern during the elaboration of Theresian Cadastre of Milan. The other important figures are Leandro Anguissola and Giovanni Filippini. Anguissola's position and precedent work facilitated Marinoni's multidisciplinary activities that he had performed in Vienna and Milano in the field of making urban maps of those two cities. On the other hand, Filippini not only collaborated with Marinoni but also introduced Nolli in the field of cartography. These activities show transitional and dual aspects that characterized the period in which important irreversible changes that occur during the reign of Habsburg empire and in the rest of the Europe toward the formation of modern society and state. Marinoni's theories and praxis greatly influenced Nolli's later commitment under the Savoia and later on the elaboration of the 'Pianta Grande di Roma' in 1748.

무언인형의 연행양상과 존재의미 (Performance Aspects and Meaning of Existence of the Silent Puppets)

  • 허용호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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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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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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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에서 필자는 전통인형연행에 등장하는 무언인형에 주목했다. 무언인형을 실마리로 해서 마임의 '몸을 통한 표현'에 연결될 수 있는 인형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무언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여러 방식을 함께 주목했다. 무언인형의 연행방식 고찰과 역사적 전개양상 고찰을 통해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첫 번째 사항은 그 연행양상의 다양성을 통해 무언이라는 한계 혹은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사항은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무언인형은 줄곧 존재해왔으며, 나름의 유형별 전개 양상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항을 종합해 보면, 무언인형은 그 탄생 이래 지속적으로 나름의 전개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이유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무언인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인형은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일탈적 욕망과, 상상 혹은 관념을 통한 초월적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욕망을 표출하고자 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곧 무언인형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언인형의 존재이유는 마임의 완성에 꼭 필요한 존재로 중시되는 관객의 역할, 구체적으로 관객의 욕망과 상상력을 발흥시킬 필요성 강조와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결국 무언인형은 그 연행양상이나 역사적 전개양상을 통해서 무언을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이를 통하여 '일상의 의사소통과는 다른 비일상적 의사소통 방식'을 부단히 모색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 연행방식과 의미화양상을 통하여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색', '관객의 능동화를 위한 상상력 자극과 마음 속의 연행을 위한 여러 모색'을 수행해 왔음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한국에서의 마임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무언인형이 건네는 말이라 생각한다.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초등 사회과 비대면 수업의 교육적 효과 분석 (Analysis of the educational effect of non-face-to-face classes in elementary school social studies using minecraft)

  • 김영현
    •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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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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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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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의 목적은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초등 사회과 비대면 수업의 교육적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4학년 31명을 실험학급(15명)과 통제학급(16명)으로 나누어 한학기 동안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사회수업을 실시한 후 학업성취도(지리, 역사, 일반사회), 학습태도(학습동기, 학습흥미, 학습효능감), 장소감(장소정체성, 장소애착, 장소의지), 협력의 변화와 양상을 t-test 및 질적내용분석으로 연구하였다. 연구결과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초등 사회 수업을 경험한 실험학급 학생들은 학업성취도, 학습태도, 장소감에서 통제학급에 비하여 유의미한 향상이 나타났으며 질문과 설명 그리고 의견 제안의 방식으로 학생 간의 상호협력이 긴밀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 한국 역사지리학의 형성과 발전 (The Shaping and Progress of Korean Historical Geography Since 1945)

  • 홍금수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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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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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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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현대 역사지리학은 일제강점기 일본 여러 대학의 지리역사과에서 수학한 1세대 지리학자, 특히 노도양의 선구적인 활약에 힘입은 바 크며, 1960년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찬에 의해 본격적인 출발과 비약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다. 사우어의 문하생인 니펜의 지도를 받은 연유로 이찬은 답사와 문헌자료에 입각한 버클리 학파의 방법론을 한국에 이식하였으며, 1988년에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를 창립하여 과거의 지리와 지리적 변화에 관심을 가진 학자의 역량을 결집하는 구심체로 삼았다. 2세대 학자가 양산된 1980년대 이래 한국 역사지리학은 케임브리지 학파의 단면법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연구의 활성화를 기하고 있으며, 주제와 방법론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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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송의 수필 속 개성 한옥 고찰 (A Study of Gae-sung Han-ok in Reference to Ma Hae-song's Essay)

  • 김버들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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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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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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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It is difficult to conduct an on-site investigation of Kaesung since it's located in North Korea. After the devastating Korean civil war we have lost a lot of authentic structures. At present, the statement of those who have seen the Kaesung during the time would be of great help in bringing out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According to Ma Hae-song, who was a local in Kaesung. He vividly remembered how his neighborhood looks like and he even mentioned the every single detail of his house in his essay. Moreover he also compared the traditional Han-ok in the former time from the household of other countries. There was an extraordinary interest and insight in Han-ok. This study estimated Ma hae-song's Gaesuong house based on Ma hae-song's personal and supplementary records. the contents by exchanging e-mails with his eldest son, poet Ma Jong-ki. Through the above process, it was confirmed that the writer Mahae Song's Gaeseong House was a typical wealthy merchant's house located in Donghaerang, a luxury residential area, and was engaged in comme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