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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피부 미용 교과서 분석 -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중심으로 (An Analysis of the High School Skin Beauty Textbooks - Based on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NCS))

  • 심상희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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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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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7-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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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피부 미용 교과서를 NCS 능력 단위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분석하였다. NCS 기준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과정 동안 습득 가능한 내용의 포함 여부 및 내용의 적합성을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등학교 기간동안 학습이 가능지만 누락된 NCS 능력 단위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필요하다. 둘째, 고등학교 수준을 벗어난 NCS 능력 단위 5 수준은 교체 작업이 필요하다. 셋째, 삽화 자료와 사진 자료는 학습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선명도와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넷째, 교과서의 실습과 관련된 내용들은 구체적인 설명과 이와 관련된 학습자료의 첨부가 요구된다. 다섯째, 피부 미용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의 개념 정리와 표기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본 연구의 결과는 피부 미용 분야 NCS 학습 모듈 개발과 고등학교 피부 미용 교과서의 개선방안을 모색하는데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연구의 한계점으로 학습 대상자의 견해를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학생들의 교과서에 대한 만족도 및 개선방안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는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20세기 초 덕수궁·창덕궁에 유입된 리놀륨(Linoleum) 바닥재 연구: 리놀륨의 제작 방식과 특성 및 사용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Linoleum of the Deoksugung and Changdeokgung Palaces in the Early 20th Century: focusing on its manufacturing process, characteristics, and usage)

  • 최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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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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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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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리놀륨은 실용적이고 위생적이며 친환경적인 바닥재이다. 영국의 월튼(Frederik Walton)에 의해 1863년에 개발된 이것은 코르크와 아마인유, 삼베를 주 재료로 한 유연한 방수 재질로서 20세기 초반 전 세계에서 유행했다. 화학제품인 장판과 달리 뒷면의 삼베 바탕을 한 리놀륨은 병원, 사무실과 같은 상업 공간뿐만 아니라 부엌, 욕실, 심지어 거실과 같은 주거 공간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글로벌한 소재의 하나로서 리놀륨은 20세기 초 국내에도 수입·유통된 정황이 파악되고 우리나라의 덕수궁과 창덕궁 내의 여러 건물에서도 쓰였다. 덕수궁의 경우 1915년에 작성된 『덕수궁원안(德壽宮原案)』에 의하면 함녕전, 덕홍전, 정관헌과 같은 주요 전각을 비롯한 여러 곳에 리놀륨이 사용되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주로 청색과 갈색 무지로서 영국의 제품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 수출입 자료에 따르면 리놀륨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국내에 수입되었다. 창덕궁의 경우 이왕직청사의 건물 평면도에는 곳곳에 리놀륨이 표기되어 있으며 대조전과 희정당 일곽에는 그 원형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대조전과 희정당은 1920년에 개수될 당시 서양식 실내 장식과 근대적 설비를 갖추면서 화장실, 이발소, 서행각과 같은 일부 공간에 리놀륨을 사용했다. 여기에 사용된 것은 검정색 무지, 검정 패턴, 그리고 다색 꽃무늬 타일 패턴으로서 아메리칸 리놀륨 매뉴팩처링 컴퍼니(American Linoleum Manufacturing Company)나 암스트롱 코르크 컴퍼니(Armstrong Cork and Tile Company of Lancaster)와 같은 미국 제품들과 유사성이 크다. 본 연구를 통해 리놀륨의 특성과 사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기초로 향후 창덕궁의 복원·재현뿐만 아니라 리놀륨이 사용된 근대 실내 복원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표종을 이용한 생태계 위해성평가 (Ecosystem Risk Assessment Using the Indicator Species)

  • 장진수;김경웅
    •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지:지하수토양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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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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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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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생태계 위해성평가는 유해물질의 노출로 인한 생태계 교란, 생물 공생의 파괴 및 부적합한 서식조건에 의한 생물집단구조의 문제를 적절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의 위해성 평가는 오염의 수준을 숫자로 표기하여 단일된 공식으로 평가하였으나, 현재 이러한 평가는 실제로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성을 평가하는데는 부적합하다. 따라서 지표종을 이용한 생태 위해성평가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며 육안적 지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의 변화까지도 감지함으로써 위해성 평가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한다. 국외의 경우 오염의 평가 및 오염 지역 복원의 평가기준으로 여러 지표종을 이용하고 있으며, 여러 지표종을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하며 오염으로 인한 변화를 유전자 돌연변이 및 암발생 수준까지 연구함으로써 생태계 위해성 평가를 하는 추세이다. 국내의 경우에도 점차 지표종을 이용한 유해성 평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오염물질의 인체에서의 발암 메커니즘, 동물실험을 통한 발암 메커니즘에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현재까지 이용되는 여러 지표종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중금속으로 오염된 폐광산에서 발견된 생지표종인 고사리, 지렁이, 미생물 및 도룡뇽의 변화를 생태계 위해성 평가에 활용되어진 다양한 예가 소개되어 질 것이다.

제주도 노거수 자연유산의 100년 전과 현재 분석 (An Analysis of a 100-Years-Old Map of the Heritage Trees in Jeju Island)

  • 송국만;김양지;서연옥;최형순;최병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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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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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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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100년 전 제작된 1918년 제주도 정밀 고지도를 바탕으로 당시 제주도의 노거수에 대한 기록정보를 확인하고 복원하여 기초정보를 구축하는데 목적이 있다. 고지도 분석을 위해 ArcGIS를 활용하여 대표지점 선정을 통한 좌표계 및 배율 일치작업을 수행하였다. 고지도에서 표기한 독립수 좌표정보를 점 추출법을 활용하여 디지타이징하였으며, 지도에서의 범례 형태 및 상대적 크기를 바탕으로 속성정보를 추출하였다. 100년 전의 고지도를 바탕으로 제주에 분포했던 노거수 현황을 파악하였으며, 당시 노거수의 특성을 분석하였다. 또한 현재 보호되고 있는 노거수 정보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 노거수의 특성 및 제주 경관과 식생에서의 노거수 기여 가능성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100년 전 제주도에는 1,013개체의 노거수가 섬 전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목재이용에 집약적이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을과 인접한 저지대에서도 노거수는 보호의 대상이 되었으며, 제주 고유 경관의 대표적인 구성요소로 존재해 왔다. 현재 잔존하고 있는 노거수는 총 159그루로 파악되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저지대 인가 주변에서 분포가 확인되고 있으며, 개체수의 감소는 섬 전역에서 확인된다. 개체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는 제한수명 도달, 자연적 교란(태풍, 병해충, 건조 등)과 함께 인위적 교란(대규모 개발 사업, 목재이용 등)이 주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405개체에 이르는 많은 수의 개체는 제주 식생의 복원과정에서 중요 종급원으로 기여하여 현재의 숲을 형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생태·자연도의 관·민원 현황에 대한 고찰 (A Review on the Public Appeals of the Ecosystem and Nature Map)

  • 안경환;신영규;김지연;이율경;임정철;하정욱;권혁수;서재화;김명진
    • 환경영향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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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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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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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생태 자연도는 자연자원을 식생, 멸종위기동 식물종 분포에 따라 생태학적 보전과 복원을 위한 정보 제공과 정책 및 토지이용계획 등에 중요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생태 자연도는 2만 5천분의 일 축척 지도 794도엽에 대하여 1, 2, 3등급과 별도관리지역으로 구분하여 표기되고 있다. 2005년에 최초의 생태 자연도 국민열람(안)이 공개되어 1,419건의 관련된 관 민원이 발생하였으며, 일부 수정을 거쳐 2007년에 고시되었다. 2012년에 두 번째 생태 자연도 국민열람(안)이 공개되었으며, 1,263건의 관 민원이 접수되었다. 2007년에 고시된 생태 자연도의 등급조정을 위한 관원과 민원은 182건이 접수되었으며, 2013년까지 159건이 수정 보완 고시되었다. 2007년 생태 자연도 고시자료의 국토대비 각 등급별 면적 비율은 1등급 7.5%, 2등급 39.2%, 3등급 44.7%이다. 2012년 생태 자연도 개정고시 국민열람(안)에서는 1등급이 약 1.7%, 2등급이 약 6.3% 증가하였으며, 3등급은 8.1% 감소하였다. 전국의 1등급 지역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곳은 강원도(2007: 54.33%, 2012: 47.53%)로 나타났다. 1등급 면적 비율이 가장 높고 3등급 면적이 가장 낮은 지역은 강원도며, 3등급 면적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특별시다. 1등급 면적이 가장 많이 증가한 지역은 경상북도며, 가장 많이 감소한 지역은 전라북도와 서울특별시다. 1등급 판정에 가장 높은 기여를 하는 평가 항목은 식생이었다.

원주시 섬강, 원주천의 비오톱유형별 야생조류 서식특성 연구 (Properties of Wildbirds Habitat according to Biotope Types at Seom River and Wonju Stream)

  • 노태환;피재황;최진우;이경재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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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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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6-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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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강원도 원주시에 도심지를 통과하는 원주천과 외곽의 국가하천인 섬강 전 구간을 조사하여 비오톱유형화를 통해 하천 자연생태 현황을 파악하고, 야생조류 출현위치를 파악하여 비오톱과 야생조류 출현현황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비오톱유형은 규모, 형태, 경관에 따라 중분류하였으며, 수문, 물리환경, 식생에 따라 소분류하였다. 또한 하천공간, 물리환경, 식생, 토지이용에 따라 비오톱유형을 세분류하였으며, 조사 결과 섬강은 21개 유형, 원주천은 19개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야생조류는 2008년 1월과 5월에 조사를 시행하였으며, 각 조류의 출현위치를 표기하여 야생조류 출현지점의 비오톱 속성을 파악하였다. 야생조류 출현 현황은 섬강 전 구간에서 봄철 31종 795개체, 겨울철 49종 4,348개체이었고, 원주천에서는 봄철 34종 427개체, 겨울철 33종 3,442개체이었다. 섬강은 산지형 하천 중 합수부 퇴적지 자연하천 지역에 겨울철 26종 547개체, 봄철 12종 72개체이었으며, 농촌형 하천 중 퇴적지 및 습지식생이 넓게 형성된 자연하천 지역에 겨울철 34종 1,412개체, 봄철 24종 341개체이었다. 이에 농촌형 하천은 하폭이 넓고 유속이 느리며, 다양한 비오톱유형이 있어 야생조류 서식에 양호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사와 표현이 힘든 선형 하천구간에 정밀 비오톱 조사와 유형화를 통해 하천 전체 현황을 파악하였으며, 야생조류 출현현황을 조사하여 생물서식처 복원, 생태하천 조성, 하천정비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되며, 원주시 도심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자료로 활용 가능하다. 또한 하천은 강우에 의해 비오톱 속성이 빈번하게 변경되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하천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할 것이다.

라이다(LiDAR) 측량기법을 활용한 고분분포현황 조사 (Survey on the distribution of ancient tombs using LiDAR measurement method)

  • 심현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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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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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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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라이다(LiDAR) 측량을 활용한 문화재 조사·연구는 해외에서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라이다 측량의 장점과 활용도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문화재 조사에 활용한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주로 산성 조사에 한정되었고, 아직 고분 조사에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다. 이에 대체로 산지에 분포하여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물론이고 복원, 정비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삼국~통일신라시대의 고분군에 대해 라이다 측량을 통한 기초 데이터의 확보가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경주 서악동 장산고분군과 충효동고분군 일대에 대한 라이다 측량을 실시하여 고분의 분포현황과 입지 양상 등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미 정밀지표(측량)조사가 실시된 장산고분군에서는 기존 보고서의 지형도에 표기된 배치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세밀한 지형정보와 분포양상을 추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10기가 발굴된 이후 추가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는 충효동고분군에서는 기존 발굴 고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였고, 조사되지 않은 고분의 현황과 잔존 양상 등 새로운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들은 고분군 자체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물론이고, 향후 고분군의 보존과 정비 부분에도 기초자료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산림지대라 접근이 쉽지 않거나, 관찰이 힘든 산지 고분군의 양상을 파악하는데 라이다 측량은 가장 효과적이다. 지표조사와 같은 실질적인 현지조사에 앞서 실시하여 사전조사 또는 예비조사로써 활용도 높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고분 조사는 라이다 측량을 통해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사와 정비·활용 계획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는 보통 산지에 위치하는 고분군에 대한 조사·연구 및 보존·정비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고분분포도 작성을 위한 정밀지표조사가 먼저 실시되는데, 이에 앞서 라이다 측량 데이터를 확보하여 활용한다면 더욱 효과적이고 정확도 높은 분포도 작성과 현황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넓은 지역에 대한 현장 조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누락이나 오류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고분 조사에 있어 라이다 측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기초 데이터를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과시된 효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연구 (Showing Filial Piety: Ancestral Burial Ground on the Inwangsan Mountai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재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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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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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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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덕수5520)는 그림과 발문(跋文) 열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작가는 조중묵(趙重黙)(1820~1894 이후), 주문자는 박경빈(朴景彬)(생몰년 미상), 발문을 쓴 사람은 홍선주(洪善疇)(생몰년 미상), 제작연대는 1868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낱장으로 보관되어 온 <인왕선영도>를 병풍으로 복원하고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인왕선영도>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서쪽 실경이 묘사되어있고 원경에는 북한산 연봉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에는 인왕산(仁旺山), 추모현(追慕峴), 홍재원(弘濟院), 삼각산(三角山), 대남문(大南門), 미륵당(彌勒堂)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있다. 이 지역을 나타낸 조선후기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형 표현과 지명 표기에 유사성이 있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도의 지리정보를 숙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경의 현장을 답사한 결과, 조중묵은 각각의 경물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였고 수평의 화면에 나열식으로 조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중묵은 남종화풍 정형산수에 뛰어났던 화가로, <인왕선영도>의 세부 표현에서 사왕파(四王派) 화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도화서 화원들이 화보를 활용하여 가옥을 그리거나 토파에 호초점을 찍고 당분법(撞粉法)으로 꽃을 나타내는 등 장식적인 화풍을 구사한 경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인왕선영도>에는 바위를 짙은 먹으로 쓸어내리듯 붓질한 기법, 산세의 괴량감, 가로로 붓을 대어 단순하게 그린 소나무 등 18세기 정선(鄭敾)(1676~1759)의 개성적 양식도 가미되어있다. 조중묵은 인왕산 실경산수로 유명한 정선의 양식과 권위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유기적 공간감과 현장의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연폭 화면이라는 매체도 조중묵의 개인 양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왕선영도>는 발문의 텍스트와 화면의 이미지가 잘 조응하는 작품이다. 발문의 내용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①무덤의 주인공과 이장 경위, ②무덤의 입지와 풍수, ③묘제(墓祭)와 신이(神異)한 응답, ④무덤 관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 ⑤병풍 제작의 동기인 박경빈의 효성과 수묘(守墓), ⑥발문을 쓴 의의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한 ②의 내용은 화면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인왕선영도> 제작의 직접적 동기인 ⑤를 보면 주문자 박경빈이 "무덤이 마치 새롭게 단장한 것 같이 눈에 완연하다."라 하여 <인왕선영도>에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듯 나열한 구도는 회화미는 떨어지더라도 무덤의 풍수지리를 전달하는 데는 더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산도(山圖)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선영도로서, 족보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기록에서는 족자 선영도를 첨배(瞻拜)의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선영도 첨배는 현실적으로 수묘(守墓)가 곤란할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례로 인정되었다. 한효원(韓效元)(1468~1534), 조실구(曺實久)(1591~1658) 등이 선영도를 제작한 후 당대의 명사에게 서문을 요청하고 효심을 과시한 사례는 <인왕선영도>의 선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개인 소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선영도는 아니지만 계회도 형식의 족자이고 풍수를 도해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선영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왕선영도>는 첨배라는 측면에서 초상화와도 의미가 비슷했다. 발문의 "부친의 기침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고, 그 태도와 몸가짐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는 표현과 부친의 초상에 조석 문안을 올린 서효숙 고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경빈이 일반적인 선영도 형식이었던 족자나 목판화 대신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를 주문한 의도는 분명히 알기 어렵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도 사례(四禮) 의식에 다수의 병풍을 배설(排設)하였는데, 의례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주제를 반드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왕선영도> 또한 여러 의례에 두루 배설하거나 장식 병풍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선영 그림이라는 주제를 실경산수화 이미지 아래에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왕선영도>의 핵심 소재인 무덤 봉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제 위반을 숨기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인왕선영도>에 묘사된 인왕산 서쪽 산기슭은 분묘 조성 금지구역이었다. 1832년에 금표 내에 몰래 쓴 묘를 적발하여 즉시 파내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한 사례로 볼 때, 19세기 중엽까지도 사산금표 내의 분묘 금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장지를 얻기 위해 쏟은 정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장지조성에 마을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필요했던 것은 금표 구역 내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왕선영도>와 비교 가능한 동시대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로 이한철(李漢喆)(1808~1880)이 그린 <석파정도(石坡亭圖)>(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들 수 있다. <석파정도> 제작시기를 전후한 1861년에 이한철과 조중묵은 철종어진도사에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조중묵이 이한철의 <석파정도> 제작 과정을 보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조중묵이 몇 년 후 <인왕선영도>를 주문받았을 때 <석파정도>의 인상적인 연폭 실경산수를 본 경험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작품의 화풍 차이는 주문자의 취향과 제작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는 실경산수화와 선영도의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자의 지식수준과 주문자와의 친분, 관람에 들이는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자호, 본관이 일체 작성되지 않은 채 '박공(朴公)'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주문자인 박경빈의 인적 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다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가계를 미루어 볼 때 재력이 있음에도 지배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발문을 쓴 홍선주 또한 사대부로 보기 어려우며, 『승정원일기』 기록에 나타나는 경아전 서리일 가능성이 있다. 박경빈은 상류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수적인 가치인 효(孝)를 강조하여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이전하고 <인왕선영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금제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병풍의 다목적성 등의 이유로 본래의 제작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모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병풍이 제작된 지 47년 만에 각 폭이 분리된 채 미술상을 통해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이 된 상황을 보더라도, 박경빈이 <인왕선영도>에서 꿈꾸었던 명당 발복과 가문의 신분상승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