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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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설(理到說)에 대한 우담 정시한(愚潭丁時翰)의 견해 (Udam Jeong Sihan(愚潭 丁時翰)'s View on the Ido-seol(理到說))

  • 이원준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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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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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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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만년 학설인 이도설(理到說)에 대한 우담 정시한(愚潭 丁時翰, 1625~1707)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퇴계 이도설에 대한 후대 학자들의 수용과 계승 및 발전의 양상을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퇴계 이후 이도설은 '물리도심(物理到心)'으로 이해되었고,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 1627~1704)은 이를 무위의 본체인 '리(理)'에 '저기서부터 여기로 이른다'는 방향성과 운동성을 부여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반면 우담은 '물리도심'을 긍정하였고, 이를 '리'의 온전한 체(體)를 부여받아 만물의 용(用)을 아울러 갖춘 '심(心)'이 만물을 통섭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기존에 구축한 '리의 용(用)'에 대한 정치한 해석에 기반하여 '이도(理到)'를 '물아위일(物我爲一)'로 확장하였다. 이때의 '물아위일'은 단순한 융회관통의 차원이 아닌 '물리'가 질서정연해져 '심' 속에 누가 되지 않는 경지가 된다. 우담의 견해는 '이도(理到)'의 서술어에 해당하는 '도(到)'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이를 '진(盡)'으로 대체하여 이도설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 한 갈암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우담은 보다 본체론적인 측면에서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우담의 견해는 퇴계가 구축한 '리' 중심의 성리학 체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유용한 틀이 될 수 있다. 이는 우담의 리체용론이 퇴계학파의 사상 형성과 그 양상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이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간행태적 측면에서 본 퇴계의 ‘경’사상과 도산서당 공간의 상관성에 관한 연군 (A Study on Interrelation between Toegye′s ‘Piety’ Notion and Space of the Dosan Saudang from an Behavioral point of view)

  • 안민선;권영걸
    •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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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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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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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A built space reflects its society's philosophy, culture and technology of its time period. The study explores interrelation between Toey-Gae's 'Kyung' (Piety) philosophy and architectural designs of the 'Do-San' Sau-Dang (School). Toey-Gae is a leading scholar during Chosun Dynasty who built the Do-San School to teach and showcase Sung Confucianism. He is known for his teachings and practice of 'Kyung' philosophy in all aspects of his life including his work and designs. It is also known that he personally picked and purchased the land best suited to display spirit of 'kyung' philosophy while directing the base design and construction of the building. His attentions to details are evident in his choice of city, building site, and way he arrange his designs within the natural environment. Thus, we can safely presuppose the design of Do-San Sau-Dang was created following Toey-Gae's ideology in its buildings and environment. By examining Toey-Gae's philosophy of 'Kyung' through his writings, physical location and actual designs of Do-San Sau-Dang, we can understand how this ancient philosophical ideology and thoughts were translated to a physical form and its space. The study will also explore the importance of such ideology in the society at the time and how it influenced physical and mental activities of its people.

퇴계(退溪)의 청량산시(淸凉山詩)에 나타난 유산(遊山)체험의 시화(詩化) 양상과 의미 (Poetic Aspects and Meanings of Experiences in Staying in Mountains Presented in Toegye's Poems about Mt. Cheongryang)

  • 최은숙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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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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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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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고의 목적은 퇴계의 청량산시에 나타난 유산(遊山)체험의 시화(詩化)양상 및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 양상을 소재적 측면, 대상 제시의 방법, 대상 인식 및 지향으로 나누어 살핀다. 퇴계가 자신의 청량산 체험을 시화한 작품은 약 50여 수이다. 이들은 55세(1555년)와 64세(1564년)에 각각 지어진 것으로, 창작 시기에 따라 차별성을 띠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먼저 소재적 측면을 살피면, 1차 체험에서는 청량산 자체보다는 청량산에서의 행위를 시적 소재로 주목하고 있다. 이때 청량산은 자신이 머무는 탈속의 공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이다. 반면 2차 체험에서는 청량산 자체가 시적 대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관련 경물 하나하나가 시적 소재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차이는 시적 공간의 제시방식과 연계된다. 1차 청량산 체험을 다룬 시에서 시적 공간인 청량산은 추상적이고 통합적이다. 여기서 청량산의 특성은 부각되지 않으며 차갑고 험준한 이미지로 부각된다. 2차 청량산 체험을 다룬 시에서 시적 공간은 구체적이다. 청량산의 각각 경관이 분절되어 독립적인 공간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시적 소재와 공간 제시는 청량산에 대한 인식과 지향으로 이어진다. 1차 체험을 다룬 시에서 청량산은 속세와 떨어진 고독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충실한 자기성찰을 지향한다. 반면 2차 체험에서 청량산은 다른 이들을 떠올리고 함께 공유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를 통해 시적화자는 유산체험의 충족감을 느끼고 타인과의 소통을 지향한다. 이상의 시화양상은 퇴계의 시적 특성과 지향을 텍스트를 통해 세밀히 고찰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학교교육론(學校敎育論)과 그 도덕교육적(道德敎育的) 함의 (Yeoheon Jang Hyeongwang's perspective on schooling and the implication of moral education)

  • 박학래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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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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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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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퇴계(退溪)와 율곡(栗谷) 이후 조선 성리학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학교 교육, 특히 향교(鄕校) 교육(敎育)에 대한 입장과 구체적인 활동을 검토하고, 그것의 도덕교육적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16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구체화된 향교 교육의 폐단에 대해 퇴계와 율곡은 모두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처방에서는 구별되는 입장을 드러냈다. 퇴계가 향교 교육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유학교육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서원(書院)의 건립과 위상 강화에 주목하였다면, 율곡은 관학 교육기관으로서 향교의 교육 개혁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학교 교육의 면모를 일신하고 인재 양성과 윤리기강의 확립을 추구하였다. 본고에서는 퇴계와 율곡의 구별되는 학교 교육 개혁에 대한 입장에 유의하면서 여헌의 학교 교육에 입장을 고찰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향촌 사회의 도덕 질서 회복에 주목한 그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향교 교육과 연결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석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의 향교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그가 제시한 인동 향교의 교육 조목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그가 의도한 향교 교육의 내용과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검토하였다. 나아가 여헌의 향교 교육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도덕교육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고, 현재 교육 현실과 연관하여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시론적(試論的)인 입장을 제시하였다.

한국인의 의사소통과 자기표현에 대한 연구 -칼 융의 심리학과 퇴계의 심성론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Korean's Way of Communication and the Self-Expression - Centered to Carl G. Jung's Psychology and T·oegye Yi Hwang's theory of Human Mind and Nature -)

  • 김장이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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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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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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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인의 의사소통과 자기표현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고찰하여, 그에 따른 감정을 이해하고 자기표현의 중요성을 밝히는데 있다. 연구 방법은 한국인의 정서는 정(情)이라고 보고,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情)의 개념과 상담 및 심리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감정(感情) 개념에 대한 차이점을 규명하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인의 정(情) 문화가 의사소통에서 온전한 감정 이해와 자기표현을 어렵게 한다고 보고, 어떻게 감정이해를 하고 자기표현을 할 것인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는 소통에 있어서의 감정이해와 자기표현에 대하여 서양의 경우는, 칼 융 심리학을 통하여, 한국사상에서는 퇴계 심성론을 통하여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연구하였다. 본 연구를 통하여 밝히고자 한 것은, 의사소통과 자기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칼 융의 심리학에서는 큰 자기(Self)에서 나오는 감정이며, 퇴계 심성론에서는 성(性)에서 나오는 올바른 정(情)에 의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 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의 행위의 주체는 이성이 아닌, 감정이라는 것과 마음이 통해야 행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학집요(聖學輯要)』 진헌의 정치적 성격 (The Political Characteristics of Yulgok(栗谷)'s Presenting Seonghakjibyo (聖學輯要) to the King Seonjo(宣祖))

  • 박홍규;송재혁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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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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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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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글은 선조(宣祖) 초반 정국에서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처해 있던 정치적 상황에 주목하여 "성학집요(聖學輯要)"의 진헌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 책이 진헌된 선조 재위 8년(1576) 12월까지, 선조 초기 국정운영 속에서 율곡은 배제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성학(聖學)의 완성을 표방하고 있는 "성학집요"의 진헌 속에는, 율곡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들을 종합하여 재차 선조에게 호소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선조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고자 했던 목적도 내재되어 있다 할 수 있다. 율곡의 이러한 정치적 입장은 "성학집요"의 서두인 "진차(進箚)"와 종장인 "성현도통(聖賢道統)"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진차"를 통해 선조 초기 정국에서 자신이 처했던 정치적 상황을 술회하고 자신의 정견을 집약한 "성학집요"의 진헌을 통해 조정에 재출사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으며, "성현도통"에서는 주자(朱子)의 뒤를 바로 자신이 잇고 있다는 도통(道統)의식을 표방하고 그러한 도통의 계승자로서 자신의 구체적인 정견을 선조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성학집요"의 모델이 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진헌과 이에 대한 율곡의 계승의식을 확인하고, 다음으로 "성학집요"가 진헌되기까지의 시기, 즉 선조 즉위년부터 재위 8년까지 율곡이 배제되어 있었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본다. 이후에는 "성학집요"의 "진차"와 "성현도통"을 중심으로 그의 정치적 입장이 각각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로 한다.

고봉(高峯)의 성리학(性理學)과 수양론(修養論) (Kobong(高峯)'s Philophy and the theory of Self-cultivation(修養))

  • 강희복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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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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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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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논문에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함께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인물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사상에 관하여, 수양(修養)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해해보았는데, 이런 논의를 위하여 고봉의 "주자문록(朱子文錄)"의 구성과 특징 및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에 관한 견해도 함께 살펴보았다. 유학은 인학(仁學)(성학(聖學))이며, 이런 유학(儒學)의 문제는 근원 주체 관계로 요약해 볼 수 있고, 수양(修養)란 하늘과 사람의 관계 및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삶의 주체(主體)로서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문록(朱子文錄)"은 고봉이 퇴계와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에 관하여 논변(論辯)하기 이전(1557년, 31세)에 주자학(朱子學)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주자의 사상 가운데에서 수양(修養)를 지향하는 심성설(心性說)의 소개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으며, 퇴계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비교해볼 때 고봉의 "주자문록(朱子文錄)"은 문집 전체에서 시(詩)를 제외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보다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퇴계(退溪)와 고봉(高峯)는 약 8년 동안(1559-1566)에 걸쳐 편지를 통하여 인간의 본성의 문제(정(情)과 선악(善惡)의 문제)에 관하여 논쟁하였는데, 퇴계(退溪)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질적 차이가 있는 감정(이기호발(理氣互發) 칠정대사단(七情對四端))으로 이해하였고 고봉(高峯)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부분과 전체의 관계(이기공발(理氣共發)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로 이해하였는데,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 이발(理發)인가 기발(氣發)인가에 관한 논의는 개념에 관한 논리적 분석이나 이론적 타당성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 결국은 체인(體認) 확충(擴充)과 성찰(省察) 극치(克治)를 내용으로 하는 수양(修養)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性理學)과 "논사록(論思錄)"을 중심으로 하는 경세론(經世論)에 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의 수양론(修養論)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은 고봉이 수렴(收斂)의 공부가 부족하고 조존천리(操存踐履)의 공(功)이 없다고 하였다. 고봉은 "이심법설(移心法說)"과 "삼해(三解)"에서 마음(심(心)) 그리고 경(敬)과 성(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음(심(心))은 몸(신(身))을 주재하며, 활물(活物)로서 광명동철(光明洞徹)하여 온갖 이치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성(性)(체(體))과 정(情)(용(用))을 포함한다. 마음(심(心))은 배(주(舟))와 같고 경(敬)은 키(타(?))와 같으니, 배가 파도에 있을 때에는 키로써 움직이며 마음이 물욕(物欲)에 있을 때에는 경(敬)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성인(聖人)과 중인(衆人)이 동정(動靜)할 때에 성(性)을 온전히 하기도 하고 해치기도 하는 것은 경(敬)과 사(肆) 혹은 성(誠)과 위(僞)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며, 성인의 도(道)로서의 경(敬)(주일무적(主一無適))을 통하여 하늘의 도(道)로서의 성(誠)(진실무망(眞實無妄))을 이룰 수 있는데, '심사명변(審思明辨)'하여 스스로 힘써 그치지 않는 것이 '사성지실(思誠之實)'이라면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삼가하고 스스로 잘 지키는 것은 '주경지실(主敬之實)'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봉은 책을 읽을 때는 언어와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옛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하며, 마음으로 견득(見得)해서 삶 속에서 체인(體認)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학(大學)"의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과 "중용(中庸)"의 중화(中和)에 관하여도 시(詩)를 썼다. 이렇게 볼 때 고봉(高峯)은 유학의 수기(修己)(명명덕(明明德))와 안인(安人)(신민(新民))을 전제로, 신(新)유학(儒學)(주자학(朱子學))의 인간관(심(心) 성(性) 정(情)/미발(未發) 이발(已發)/체(體) 용(用))과 수양론(거경궁리(居敬窮理)/정제엄숙(整齊嚴肅) 주일무적(主一無適)/경(敬) 성(誠))을 충실하게 따르며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각설(知覺說)을 중심으로 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성리학(性理學) - 심즉리설(心卽理說) 성립의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 (Lee, Jin sang' Neo-Confucianism in the viewpoint of Perception in Toegye School)

  • 김낙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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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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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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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이진상의 특색 있는 이론인 심즉리설의 연원을 지각론의 전개과정을 통해 탐색해 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황과 이이 이후 양대 학파로 분기된 조선유학계는 상호 비판과 영향 수수를 통해 발전하여 왔고, 조선후기의 논쟁적 주제 중의 하나가 지각론이었다. 주자학의 일반적인 지각론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호락의 학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들은 심합이기와 심시기라는 이이의 심론 중 후자에 비중을 두어 자신들의 학문적 정체성을 가다듬었다. 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퇴계학파에 속한 대산학맥의 학자들은 이주기자설에 의하여 이기를 새롭게 해석하고, 지각론에도 이를 적용하여 퇴계학적인 지각 이론을 새롭게 만들어 내었다. 이진상의 심즉리설은 호락의 심시기설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대산학파의 새로운 이기론과 지각론을 세밀하게 가다듬고 과감한 이론적 비약을 통해 만들어진 이론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본심, 즉 리(理)를 지각할 수 있는 근본적 가능성의 기반을 찾고자 하였던 것인데, 성선론의 논리적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 저술(著述) 『천명도설(天命圖說)』의 사상사적(思想史的) 위상(位相) (The Historical Status of "Cheonmyeong-Doseol" by Jeong Ji-wun)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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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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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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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1509-1561)은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四七論辨)의 단초가 된 "천명도설(天命圖說)"를 그린 당사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추만 정지운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학계는 물론 일반대중들도 깊이 있는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지운에 대한 선행연구도 "천명도설(天命圖說)"의 내용 분석을 위주로 하는 미시적 방식을 취하는 데 머물러 있다. 정지운의 삶과 학문이 그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지운은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지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논리적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밝혀 기묘사림(己卯士林)을 신원하고, 그들의 유지를 정연하게 체계화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성숙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의 성리학설이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사상으로 자리 잡는다는 점을 볼 때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두고 이황과 기대승 간에 벌어진 논변은 조선 성리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의 이해 수준에 머물러 있던 당시 상황에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본격화함으로써 조선 전기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황과 기대승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중심으로 논변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심화시키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이때 정착된 사림파의 심학화(心學化) 경향은 명종과 선조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조선 정치사상사를 주도하는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그러한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견인한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확인하게 된다.

활인심방 연구주제 동향에 따른 건강무용프로그램 적용 가능성 (A Study on the Applicability of Health and Dance Program according to the Trend of Live-In-depth Research)

  • 정유진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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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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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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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연구는 퇴계 이황의 활인심방에 관해 국내에 발표된 연구를 분석하여 건강무용프로그램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정보과학회, DBpia에서 '활인심방'을 키워드로 국내 학술지 게재논문을 검색하고, 1974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출간된 논문 총 24편을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 분야 분류기준에 따라 중분류로 분류, 분석하였다. 그 결과, 첫째, 연도별 학문분야 연구동향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활인심방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철학, 유학분야 순서로 활인심방 규명 연구에 관심이 많았고, 방안 연구는 인문학, 복합학, 체육학 순으로 활인심방의 관심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연구 주제 동향을 보면 연구주제로 활인심방을 규명하고자 한 연구가 방안 제시 연구보다 많았다. 셋째, 연구 주제별 동향은 활인심방에 대한 학문적 정의를 하고자 한 연구, 활인심방과 타 학문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자한 연구, 프로그램의 개발에 관한 연구 순으로 나타났다. 넷째, 활인심방을 하나의 무용프로그램에 적용함으로써 건강증진을 위한 무용프로그램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다양한 분야와 통합된 건강무용프로그램으로의 가능성을 마련하는 기초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건강무용프로그램 연구의 방향성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