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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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 백혈병작용에 관련된 천연물의 자료조사 (Review of Anti-Leukemia Effects from Medicinal Plants)

  • 배현옥;임창경;장선일;한동민;안원근;윤유식;전병훈;김원신;윤용갑
    • 동의생리병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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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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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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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인삼, 호장근, 상산 등에서 분리한 성분들이 HL60, HL-60, Jurkat, Molt-4에 대한 억제작용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익모초의 Leonunrine, 대청엽의 Indirubin, 천문동의 Aspargus polysaccharideA.B.C.D, 백합의 Colchicnamile, 익모초의 Lenunrine, 산두근, 자초근 추출물이 여러유형의 백혈병 환자에 대한 백혈병 억제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mouse의 P388, L1210, L615, L120, S-180 등에 항 백혈병 효과가 있는 것으로는 완화, 로회, 원지, 오수유, 파두, 뇌공등, 석산, 백출, 단삼, 산약, 목단피, 청대, 감초, 당귀에서 분리한 성분들이 있으며 백굴채, 마전자, 가시오가피, 천초 추출물들이 동물실험에서 항암작용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천연물에서 분리한 성분이 항백혈병 작용이 있는것으로는 ginsenoside Ro, ginseonoside Rh2, Emodin, Yuanhuacine, Aleemodin, phorbocdiester, Triptolide, Homolycorine, Atractylol, Colchicnamile, Paeonol, 당귀다당체, Aspargus polysaccharideABCD, Indirubin, Leonunrine, Acinosohic acid, Trichosanthin, G2 132, Schizandrin, allicin, Indirubin, cmdiumlactone chuanxiongol, 18A glycyrrhetic acid, Kansuiphorin A, 13 oxyingenol Kansuiphorin B 등이 조사되었고, 추출물이 항 백혈병 작용이 있는 것으로는 원지, 오수유, 백굴채, 대황, 산두근, 마전자, 가시오가피, 천초 등이 조사되었다.

일반 프라이머를 이용한 PCR의 식품원료 진위 판별에 적용 (Application for Identification of Food Raw Materials by PCR using Universal Primer)

  • 박용춘;진상욱;임지영;김규헌;이재황;조태용;이화정;한상배;이상재;이광호;윤혜성
    •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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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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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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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식품원료의 진위여부를 판별하기 위한 시험법으로 일반 프라이머를 이용한 DNA barcode 기법을 도입하였다. 동물성식품원료의 경우 미토콘드리아 DNA 중 cytochrome oxidase subunit I(COI) 부위 검출을 위하여 디자인된 프라이머(LCO1490/HCO2198 및 VF2/FISH R2)와 cytochrome b(cyt b) 부위 검출을 위하여 디자인된 프라이머(L14724/H15915)를 사용하였다. 상기 3 종류의 프라이머를 사용하여 가축류 6종(소, 돼지, 염소, 양, 말 및 사슴), 가금류 4종(닭, 오리, 칠면조 및 타조), 어류 7종(명태, 대구, 청대구, 청어, 송어, 다랑어 및 우럭)을 대상으로 PCR 후 전기영동하여 예상되는 PCR 산물의 생성 유무를 확인하였다. 가축류 6종에 대하여는 LCO1490/HCO2198, VF2/FISH R2 및 L14724/H15915 프라이머를 사용한 경우 COI 및 cyt b가 모두 검출되었으며, 가금류 4종은 LCO1490/HCO2198 및 VF2/FISH R2 프라이머를 사용한 경우만 COI이 검출되었다. 또한 어류 7종은 VF2/FISH R2 프라이머를 사용한 경우에만 COI 부위가 검출됨을 확인하였다. 식물의 경우 엽록체 DNA 부위를 이용하여 디자인된 3 종류의 프라이머(trnH/psbA, rpoB 1F/4R 및 rbcL 1F/724R)를 사용하였다. 각각의 프라이머를 이용하여 식물 5종(마늘, 양파, 무, 녹차 및 시금치)에 대하여 실험한 결과 3종류의 프라이머에서 PCR의 산물을 모두 확인하였으며 trnH/psbA 프라이머의 경우 식물 종마다 PCR 산물의 크기는 다르게 검출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17종의 식품원료별 일반 프라이머 및 PCR 조건을 확립하였으며, 생산된 PCR 산물을 대상으로 염기서열을 결정하고 유전자은행에 있는 염기서열과 DB 비교 분석을 통하여 식품에 사용된 원료의 진위여부 판별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석사 무량수전 측면 지붕부 결구의 구성방식에 관한 재고(再考) - 중국 원대(元代) 이전 목조건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Hipped-and-Gable-Roof Framework of Muryangsujeon of Buseoksa Temple)

  • 차주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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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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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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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 구조에 관한 연구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일제시대에 해체 보수한 기록이 있으며, 팔작지붕의 측면 지붕부 결구 구조기법과 추녀, 귀서까래 등의 결합 수법들이 정연한 형태로 결구되지 않고, 조선시대 팔작지붕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와 이질적인 요소가 많아 원형이 아닌 것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그 편년에 대해 다양한 의견(13세기, 12세기 건축)들이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어 왔었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목조건축 구조틀이라는 관점에 근거하여, 중국 당 송대 팔작지붕에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 기법과 유사한 건축을 대상으로 평면비 및 어칸과 퇴칸의 비례를 상호 비교하여 살펴 본 결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는 팔작지붕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판단하였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측면 서까래가 내부 보(량(梁))에 직접 접하는 기법은 중국 당 송대 팔작지붕 건축에서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수법으로, 중국의 팔작지붕은 당대(唐代) 이후에 산화(山花, 합각) 양가(梁架)를 구성하여 팔작지붕의 측면을 구성하는 기법이 발달되어, 명청대 이전까지 크게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귀서까래의 발달과정 중 평행서까래에서 말굽서까래로 전환되기 이전 방식인 평행복사연(平行輻射椽)이 현재 부석사 무량수전의 귀서까래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추녀의 중간부분부터 귀서까래가 걸치지 않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방식은 중국에서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방식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의 특성으로 보인다. 이런 기법들을 살펴본 결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는 중국 남방지역에서는 볼 수 없으며, 북방 지역의 당 송대(唐 宋代) 및 요대(遼代) 시기에 볼 수 있는 기법으로, 건축물의 편년시기와 평면에서 어칸과 퇴칸의 비례 관계를 고려해볼 때 동아시아 북방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구조 기법으로 판단된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가 변형된 것이 아니고, 팔작지붕 고유의 방식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향후 부석사 무량 수전의 평면과 어칸 및 퇴칸의 비례,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를 중심으로 고려시대 이전 폐사지 중 팔작지붕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에 대해 복원 설계에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관왕묘(東關王廟)의 조각상 연구 (A Study on the Sculptures from Donggwanwangmyo [East Shrine of King Guan Yu])

  • 장경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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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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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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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중국 촉(蜀)나라의 장수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이다. 이러한 사당이 우리나라에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598년 정유재란 때부터이다. 당시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힘으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길 염원하면서 그들의 주둔지마다 관왕묘를 세웠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중국 명나라 황제와 조선의 국왕은 외세를 물리치려는 의지로 관왕묘를 세우고자 하였다. 1599년 8월 조선 정부는 '동관왕묘조성청' 이라는 관청을 임시로 설치하고 인력과 물력을 총동원하였다. 명나라 기술자의 감독 아래 연 2,400명의 조선 장인과 역군(役軍)들이 중국 제저우(解州) 관제묘(關帝廟)를 본으로 삼아 영건하여 3년 뒤인 1602년 봄에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한 중 기술자가 협력하여 세웠기 때문에 관왕묘의 정전 건축과 내부 구조 및 조각상에는 양국의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관왕묘 내부에는 7기의 조각상이 서 있다. 관우상 1기는 금동상이며, 나머지 6기는 소조상 위에 채색한 것이다. 이들 조각상들은 1602년에 만들어졌고, 관우와 그를 배위하는 관평(關平) 주창(周倉) 조루(趙累) 왕보(王甫)는 삼국시대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초상조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복식은 관우를 추숭하던 당송대에 확립된 도상을 따르고 있었으며, 세부적으로는 명대적 요소와 조선적 배치가 절충되어 있었다. 이로 미루어 송대 이후 확산된 <의용무안왕(義勇武安王)> 판화의 도상이나 명나라 만력황제가 1593년 조영한 제저우 관제묘의 명대 관우 도상이 동관왕묘를 제작할 때 직접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재 동관왕묘와 비교되는 중국 제저우 관제묘의 경우 건축과 조각상이 모두 청대 18~19세기에 중건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동관왕묘의 조각상은 17세기 초 한 중 관왕묘 중에서 제작시기가 가장 이른 예로서 당시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는 점, 한 중 기술자의 합작으로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 금동으로 만든 관우상은 유일하다는 점, 문무 배위상을 각 1쌍씩 마주 배열하여 조선왕릉의 석인 배치와 친연성이 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묵가의 의리관(義利觀)과 겸애(兼愛) (Mohist's Idea of YiLi and Jianai)

  • 이태승;윤무학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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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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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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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묵가의 의리관과 그것을 기초로 한 "겸애"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묵가의 이념적 특성을 고찰한 것이다. 공자와 묵자를 비롯한 제자 백가에서 의리관이 주요 의제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그것은 대체로 "의"와 "리"를 본말(本末) 혹은 체용(體用) 관계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계승하고 개인의 도덕적 표준으로 설정한 것이 공자를 비롯한 유가의 입장이었다. 물론 유가의 눈높이는 당시의 위정자 혹은 지도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에 비해 묵가에서는 자기 집단의 구성원의 입장을 대변하여 개인보다는 집단과 사회의 공동의 이익 추구를 도모하였다. 따라서 유가에서 "의"를 "리"보다 중시한 데 비해, 묵가는 양자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묵가가 전국시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하늘의 뜻"에 그것의 형이상학적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수반하여 내부적으로 묵가의 의리관은 "겸애"를 비롯한 묵가의 핵심적인 주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겸상애, 교상리", 말하자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서로 이롭게 해주는 일이다." 한편 묵가의 의리관, 나아가 겸애를 비롯한 십대 주장의 이념적 기반이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시 묵가 구성을 비롯한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들의 눈높이에는 쉽게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진한(秦漢) 봉건제국이 성립되면서부터는 오히려 쇠망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봉건제국에서는 개별집단으로의 묵가의 이념과 활동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예컨대 "최고 통치자" 위에 "하늘"(상제)을 설정하는 방식은 정권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결정적 제약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묵가의 "절용", "절장", "비악" 등의 주장은 기득권으로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후 청대 서세동점(西勢東漸)에 이르기까지 묵가는 유가와 달리 학파로서의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묵가의 겸애를 비롯한 이념은 유토피아적 구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유가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상호간의 사랑과 배려, 아울러 상호 이익을 공유한다는 이념은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성리학(性理學)과 산수화(山水畵)의 발전에 관한 연구 - 송대를 중심으로 - (Research of the Neo-Confucianism and the development of Landscape painting in Song Dynasty)

  • 장완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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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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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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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성리학과 문화예술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데에서 출발하며, 특히 송대에 흥성한 산수화의 발전에 이론적 근거가 되었음을 연구하였다. 성리학은 고대 동양사회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예술 심지어 생활에 전반에 걸쳐 근간을 이루어 왔던 유학의 새로운 경향이다. 성리학은 중국의 북송(北宋)대 다섯 학자인 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가 그 기틀을 새우고 남송(南宋)의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이다. 중국의 원(元)나라를 통해 고려후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조선의 건국의 기틀이 되었고, 퇴계 이황, 율곡 이이를 거쳐 '문화 전반'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성리학과 예술론과 관계하여 격물치지, '리', 우주의식, '생의', '기상', '예'와 '도'의 관계 등이 산수화와 산수화론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연구하였다. 산수화나 화조화에서도 신유학에서 말하는 천지의 '생의'의 미와 '어진 사람은 만물과 더불어 하나'라는 사상을 화폭에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시와 회화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동양에서는 송대 이전부터도 시와 회화의 관계를 중시했지만, 송에 이르러 시와 회화의 통일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명나라 때 조성된 졸정원(拙政園)과 같은 강남 정원 문화는 송대 산수화로부터 기인했다. 산수에서 등장하는 산속의 작은 정자나 가옥들이 정원에 옮겨진 것이다. 이는 곽희가 "임천고치"에서 말한 "가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닐 수 있고, 살 수 있는 곳"을 화폭 속에 그려야 한다는 것이 명 청대에 이르러서는 현실로 옮겨진 것이다. 또한 현대에 있어서는 환경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지속적인 연구는 앞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디자인 발전 연구, 더 나아가 문화산업의 기초자료로서 복합학문, 학제간 교류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참동계』와 태극(태일)-음양-오행 체계 (Cantongqi and Its Relation to the System of Taegeuk (Taeil),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 이봉호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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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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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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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지금까지는 주돈이의 <태극도>가 『주역참동계』에서 연원한다는 학설이 정설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몇 학자들은 기존의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논쟁이 일었다. 이들은 <태극도>의 『주역참동계』 연원설에서 청대 학자들이 근거로 사용한 책들과 도상이 주돈이 이후의 것이거나, <태극도>에 기초해서 후대에 그려진 것임을 주장한다. 반면에 최근 학자들의 주장에서 <태극도>의 『주역참동계』 연원설을 최초로 제기한 남송 시대의 주진(朱震)과 양갑(楊甲)의 학설은 해명하지 못하였다. 이들 남송 시대 학자들은 주돈이와 주희 사이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이러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았다. 주돈이의 <태극도>는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골자로 한다. 따라서 이 체계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주역참동계』가 직접 연관이 있음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태극-음양-오행의 체계 형성 과정은 한대의 종교적 사상적 영향에 의한 것이다. 한무제의 태일신(太一神) 신학체계에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가 신학적으로 정립된다. 동중서에 의해 유학의 육예(六藝) 해석에 음양오행이 도입되며, 이는 한대 역학자들이 『주역』 해석에 오행을 개입하게 하는 사상적 흐름을 형성한다. 그러나 한대 역학자들은 음양재 이설을 중심으로 하였기에 태일-음양-오행의 체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한시기에 쓰여진 『주역참동계』는 한 대 역학자들이 『주역』을 해석한 다양한 『역위(易緯)』 이론과 연단 이론을 결합하면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를 사상적으로 형성한다. 이때 『주역참동계』는 '감리위역설(坎離爲易說)'을 중심으로 한 역학 이론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역참동계』와 그 주석들에는 <태극도>와 같은 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리위역설'을 중심으로 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태극도>를 구성하는 도상의 부분들을 그려낼 수 있는 내용은 존재한다. 이 체계에서 '태극'이 아니라 '태일'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태일'을 '태극'으로 해석할 사상적 이론은 등장하고 있었다. 한대 역학자들은 역에 원기(元氣) 개념을 적용하였고, 공영달에 의해 태극이 '원기'이자 '태일(太一)'이라고 정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주역참동계』가 <태극도>와 같은 도상을 담고 있지 않아도 태일(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태극도> 도상의 부분들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음을 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