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철릭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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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철릭의 바느질법 연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 박물관 소장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 금종숙;고부자
    • 복식문화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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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식문화학회 2003년도 추계학술발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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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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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본 연구는 고려중기이후부터 조선시대에 왕이하 서인에 이르기까지 착용하였던 철릭에 대한 것이다. 철릭의 형태는 상하가 연결되고 허리에 주름이 잡혀 있으며, 소매는 단추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연구는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착장자의 신분과 용도를 살피고,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소장된 출토유물 중 측정이 가능한 68점을 실측하여 바느질법과 특징을 분석하였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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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철릭 고찰 (A study on Cheollik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 김명자;이소영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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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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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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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Cheollik based on 288 records about it at the homepage of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on the Internet. Cheollik was called in diverse names and worn by various social classes from kings to common people, but it was solidified as clothes for military officers toward the latter half of Joseon. Not only did it serve the purpose of clothes, but it also was used for a royal grant, diplomacy, shrouding a corpse, and royal coffin. It served the diplomatic purposes a lot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and King Seongjong. Cheollik was usually made of cotton, hemp, silk, and mixed fabric with silk used most. Its major colors include white, green, red, blue, black, purple, grey, and yellow with white used most. The fabrics and colors of Cheollik became simplified toward the latter half of Joseon. Silk was most used in Cheollik for a royal grant, shrouding a corpse, and royal coffin. White was most used in Cheollik for kings' visit to royal tombs or their participation in ancestral rites. There were limitations with the selection of materials according to the social status and situations. It was stipulated that only Sa and Ju were used to make Cheollik for Dangsangguan and Danghaguan. Cheollik made of silk was banned for country residents and merchants. The color of Cheollik for Danghaguan was changed to blue and then red. Of military officers, only those who had a Gonsu title or higher were allowed to wear Cheollik made of silk in various colors. In the end, Cheollik was abolished for its low convenience and efficiency during the rule of King Gojong.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혼례도첩》 속 등장인물의 복식 고찰 (Analysis of Clothing in a Painting Album of a 60th Wedding Anniversary Feast i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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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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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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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혼례도첩》(덕수6375)에 묘사된 남녀 등장인물의 복식을 분석하고 《회혼례도첩》의 제작 시기를 추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공 노신랑은 <전안례도>와 <교배례도>에서는 평소 관원으로 착용하던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그 외 <헌수례도>와 <접빈도>, <중뢰연도>에서는 패영 없는 자립에 옥색 포, 홍색 세조대를 둘렀다. 기럭아범은 자립에 귀 옆에 묶은 패영을 달고 흉배를 부착한 무문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성인 남자 자손과 하객들은 도포 등 당시의 대표적인 포 종류를 착용하였는데 특히 무관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은 철릭, 직령을 착용하고 붉은 색 띠와 청색 계통의 띠를 신분에 맞추어 착용하였다. 징씨(徵氏) 등 안내자는 중치막과 홍단령을 착용하였으며 어린 동자들과 시동(侍童)은 중치막을 착용하였다. 술을 따르고 음식을 나르는 총각들은 땋은 머리에 소창의(小氅衣)를 입고 성인들은 전립(氈笠)에 소창의를 착용하였다. 군영 소속의 세악수들은 소색 소창의에 흑색 전복, 그리고 허리에 남색 포대 등 군복을 착용하였다. 둘째, 노신부는 <교배례도>에서는 거두미와 초록원삼 차림을 하였고 <헌수연도>에서는 남치마·옥색저고리 차림이 확인되었다. 여자 자손들은 어여머리에 비녀와 반자, 진주댕기 등의 칠보장식을 하였고 다양한 색상의 저고리에 남색과 홍색, 옥색 등의 치마를 입었다. 남치마에 초록 장옷을 입은 부인도 확인되었다. 홍치마에 초록색 회장저고리를 입은 <교배례도>의 동녀(童女) 4명은 낭자머리에 비녀 꽂고 도다익 댕기를 길게 드리웠으며 칠보족두리를 썼다. 비자(婢子)들은 어여머리에 가리마를 썼으며 양반 부인들과 유사한 치마·저고리를 착용하였으나 색상이 연했고 치마의 길이가 짧았으며 치마의 부풀림 정도가 약하였다. 기녀는 양반 부인과 비슷한 모습이었으나 색상이 덜 화려하였으며 어여머리에는 칠보장식이 없었다. 셋째, 주인공의 자립 착용, 철릭과 직령을 입은 하객들, 군영 소속 세악수 참여 등에 근거하여 회혼례의 주인공이 병조나 군영과 관련된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군영 악대의 전복의 소매 길이와 잠화 사용, 어여머리의 형태와 댕기, 저고리의 길이와 치마의 부풀린 형태 등에 근거하여 《회혼례도첩》의 제작 시기를 1760년대~1780년대로 추정하였다.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 속 인물들의 복식 고찰 (A Study on the Costumes of the Characters of Higyongru Banghwoedo)

  • 배진희;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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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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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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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2015년 9월, 보물 제1879호로 지정된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 속 인물들의 복식을 고찰한 것이다. <희경루방회도>는 1567년 6월 광주목(光州牧) 관아의 희경루(喜慶樓)에서 개최된 동방(同榜) 계회(契會)를 그린 것으로, 방회(榜會)의 주인공인 관료 5인과 관아 소속의 향리(鄕吏), 아전(衙前), 나장(羅將), 조례(?隷), 악공(樂工), 여기(女妓), 동기(童妓) 등 다양한 신분의 남녀가 묘사되어 있다.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식을 밝히기 위해 문헌자료와 복식유물, 회화자료 등을 활용하였으며 연구범위는 겉으로 드러나는 두식(頭飾)과 포류(袍類), 그에 따른 부속품류로 한정하였다. 현직에 있는 시임관료(時任官僚)는 사모(紗帽) 홍단령(紅團領)을 착용하였다. 그 외에 품계에 따른 품대(品帶)와 흑화(黑靴)를 신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직에서 물러난 원임관료(原任官僚)는 말총[마미(馬尾)]이나 사(紗)로 싼 흑립(黑笠)에 홍직령과 도아(?兒) 등을 착용하였다. 향리는 흑죽방립(黑竹方笠)에 흰색 직령(直領)을 입고 도아를 띠었다. 고려시대에는 방립이 왕 이하 지식층에서 썼던 관모였지만 조선전기에는 향리의 관모로 전락하였는데 그 착용 모습이 <희경루방회도>에서 확인되었다. 아전은 흰색 직령에 흑립을 쓰고 도아를 띠었다. 나장은 조건(?巾)을 쓰고 철릭 위에 반비의(半臂衣)를 착용하는 것이 규정이었지만 <희경루방회도> 속 나장은 반비의를 착용하지 않고 조건과 철릭만 착용한 모습이었다. 또한 조례는 포(布)로 싼 흑립에 홍철릭을 착용하고, 악공은 소모자에 홍철릭을 착용하였다. 나장 이하 하속은 허리에 모두 청색 계통의 도아를 둘렀다. 여기(女妓)와 동기(童妓)는 주인공의 시중을 들거나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들은 크게 부풀린 둥근 고계(高?)에 홍색 대요(臺腰)를 두르고 곧은 깃 또는 젖힌 깃의 황장삼(黃長衫)을 입고 허리띠를 둘렀다. 동기는 뒤쪽에 양 갈래로 짧게 땋아 내린 머리에 교임형 홍색 포를 착용하였다.

한국의 병행수입에 따른 정책의 유효성 평가: 럭셔리 의류브랜드 (Evaluation on Effectiveness of the Parallel Importation Policy in Korea: Luxury Apparel Brands)

  • Kwon, Soongi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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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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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83-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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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연구의 목적은 병행수입제도의 정책운용적인 관점에서 고가품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 하고있는 럭셔리의류 브랜드를 중심으로 병행수입제도 도입 이후 현 시점에서 공정경쟁의 관점에서 병행수입의 문제점 추출과 대안을 도출함으로써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문헌조사와 in-depth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제도적 측면에서는 병행수입제도 도입 당시 병행수입과 직접 관련된 지적재산법과 독점규제법 사이에는 전용사용권자의 보호와 규제라는 입법적 목적이 서로 다른 이유로 병행수입 도입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상표권 침해 기준의 모호, 세관절차에 있어서의 문제점 등이 추출되었다. 럭셔리의류 산업적 측면에서 병행수입제도는 수입물품의 가격인하를 선도하여 소비자 이익 증진에 기 여 하는 반면에 명품의 유통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위조상품의 처벌실적 이 증가하고, 이월상품과overrun된 제품의 저가수입 등의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적 해결방안으로는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통한 병행수입 허용기준의 보완, 지적재산권법 에 병행수입허용 규정 명시 , 소비자 관점에서의 병행수입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전달 등의 내용 보완이 이루어져 야 한다. 본 연구의 시사점은 정책당국에게 경쟁조건의 Global Standard라는 견지에서 제도적 운용의 개선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 논거와 토대를 제공하였다. 또한 전용사용권자와 병행수입업체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존한 판매전략을 지양하고 소비자 보호와 적 정 한 상표권 보호의 합리적 조화가 궁극적으로 생존의 핵심전략임을 인식시켜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가치관은 이들의 의복관심과 의복착용 그리고 구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포제로 평가되었다. 모든 남자포제가 전통적, 순수한 이미지의 포제로, 철릭을 제외한 모든 포제가 단순한 이미지로 나타나 조선시대 남자 포제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는 단순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남자 포제의 시기별 복식이미지에서는 조선전기(철릭, 답호, 직령)의 포제는 관할성 요인이 높은 의례적인, 관할한, 특이한 이미지로 평가되었고 조선중기(도포, 창의)의 포제는 품위있는, 절제된, 풍성한 이미지로 평가되었으며, 조선후기(주의)의 포제는 활동적인, 단순한, 직선적인 이미지로 나타났다. 따라서 시대별 남자 포제의 이미지는 시대적 여건과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 왔으며,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이미지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이러한 논란의 해결방안으로 관세법 고시에 의한 우회적 도입을 결정한 정부의 방침에 대해 제도적 측면에서의 문제점으로 저작권 침해 기준의 결여다.lavonoid 함량의 판단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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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의 관직자 복식 고증 (Features of the Costumes of Officials in the King Jeongjo Period Seojangdaeyajodo)

  • 이은주;김영선;이경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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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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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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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1795년 윤2월 12일 서장대에서 행해진 군사훈련을 그린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를 중심으로 관직자의 유형별 복식과 유형별 복식의 구성에 따른 특징을 고찰하였으며 고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장대 안팎에서 왕 가까이에 위치한 관직자는 모두 34명인데 당상관 27명, 당하관 7명이었다. 34명 관직자의 복식 유형은 모두 3종으로 갑주·융복·군복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중 갑주 착용자 12명은 모두 당상관이었고, 융복 착용자 5명은 당상관이었으며, 군복 착용자는 당상관 11명과 당하관 6명이었다. 둘째, 갑주의 형태 고증은 말 타기에 적합한 여반 장군의 갑옷 유물과 『무예도보통지』의 갑주 그림을 참조하고, 착용의 실용성을 고려하여 갑옷의 구성품을 정하였다. 갑주의 구성품은 투구, 갑의, 갑상, 호항, 호액, 비갑에 골미를 추가하였다. 갑주 색상은 <서장대야조도> 갑주에서 가장 표현 빈도가 높은 홍색과 녹색으로 고증하였다. 셋째, 당상 융복의 구성은 호수를 장식한 주립, 남색 철릭, 홍색 광다회, 정, 수화자로 고증하였다. 넷째, 군복 구성은 안을 올린 전립, 동다리, 전복, 요대, 전대, 수화자로 고증하였다. 군복에서 당상과 당하의 직물차이는 문양의 유무에 있었는데 당상관은 운보문 직물을, 당하관은 문양이 없는 직물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당상관은 장식품의 세부 재료에서 옥과 금, 은을 사용하였다. 그 외에 무기는 시복, 환도, 등편, 비구와 깍지 등을 갖추었다. 정조대 기록에는 다양한 색의 협수가 보이므로 당상관과 당하관의 동다리와 전복 색상은 다양한 배색으로 고증하였다. 이상의 고증 결과를 반영하여 콘텐츠 제작을 위한 복식의 시각화 자료로 제시하였다. <서장대야조도> 관직자 복식의 고증 결과를 반영한 시각화의 기본 원칙에서 3D 콘텐츠 제작이나 실물 제작이 가능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시대와 신분에 따른 형태·색상·재질의 견본, 각 복식과 지물을 패용한 앞·옆·뒤 모습을 제시하고 색상은 RGB와 CMYK로 제시하였다.

조선시대 공신초상(功臣肖像)의 관복(제1기) 고찰 (A Study of the Gwanbok (1st period) of Meritorious Vassals' Portraits in the Joseon Dynasty)

  • 김미경;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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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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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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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연구는 공신초상의 관복 제1기를 하향뿔의 사모와 잡색 단령 시기로 규정하고 성종 7년(1476) 이전에 그려진 조선 초 개국공신(1392)에서 성종 초 좌리공신(1471)까지의 공신초상 관복의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관복 제1기에 속하는 공신초상(이모본) 중 이제(개국), 이천우(정사·좌명), 마천목(좌명), 신숙주(정난), 설계조(정난), 그리고 이숭원(좌리) 공신초상 등 관복 표현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6점을 선정하고 관복 구성품별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 삼공신(개국·정사·좌명)의 사모는 모체는 낮고 모정은 둥글며, 사모의 하향각(下向角)은 좁고 짧은 형태였으나 단종대 이후 정난·좌리공신 사모는 모체가 높아지고 사모의 하향각도 두 배 정도로 길어졌다. 그리고 관복 제1기 공신초상의 사모뿔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개국 초에는 단령의 색상 규정이 없었으나 대체로 옅은 색의 단령으로 표현되었다. 세종대 이후 예복용 흑단령 제도가 시작되었으나 공신초상 관복에는 흑단령 제도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단종대 이후에는 담홍색 단령으로 표현되었다. 단령 겉감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으며, 옆트임에는 '안주름무'가 표현되었다. 단령 받침옷 답호와 철릭 역시 통일된 색상은 없었으나 정난공신 이후에는 청색 답호와 초록색 철릭을 착용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품대는 공신의 품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단종대 이후 흉배제도가 제정되었으나 제1기 공신초상 중에는 정난공신 신숙주 초상에서만 유일하게 흉배가 표현되었다. 단령에 신는 화자는 조선 초 삼공신 초상에서는 흑화가 확인되었으나 단종대 이후 정난·좌리공신 초상에서는 백화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일부 공신초상의 흑화와 백화 솔기선 부분에 연금사로 장식한 휘(揮)가 확인되었는데 휘 장식의 화자는 3품 이상이 신던 협금화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