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지리지(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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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어메니티에 기초한 농촌자원의 중요도 평가 및 순위적 관계 분석

  • 박창석;전영옥;조영국
    • 대한지리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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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지리학회 2002년도 춘계학술대회 요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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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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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본 연구는 농천어메니티의 개념을 토대로 농촌주민과 도시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정주기능으로서의 생활자원화와 방문가치로서의 관광자원화로 구분하고, 이를 토대로 도시민과 농촌주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농촌자원의 중요도와 순위적 관계를 분석하였다. 구체적인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농촌자원을 자연적 자원과 문화적 자원, 사회적 자원으로 구분하여 37개 자원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농촌자원은 농촌어메니티를 형성하거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러한 농촌자원은 농촌주민과 도시민이 지닌 가치에 기초하여 생활자원적 가치와 관광가치적 가치를 동시에 혹은 차등적으로 지닐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농촌자원에 대한 중요도 평균에 대한 차이검증(t-test)을 수행한 결과 전체 자원의 56.8%에 해당하는 21개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 결과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셋째, 농촌자원에 대한 순위적 상관관계분석에서도 전문가와 전체집단에서 생활자원과 관광자원에 대한 순위상관관계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위의 두번째 결과를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농촌자원의 개발 방향과 가치부여가 자원의 속성에 따라 차등적으로 진행되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다섯째, 농촌자원의 유형을 생활자원화와 관광자원화에 대한 중요도의 표준화 점수에 기초하여 4개 유형(유형 I~IV)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유형별 자원중요도를 고려하여 농촌마을의 개발목적에 비추어 생활자원형이나 관광자원형과의 연계를 통해 마을의 정체성과 특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요약 및 결론에서 발췌)를 고지도와 지리지.읍지를 통하여 살펴봄으로써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분석하여 시대상의 복원과 지역사회의 정체성 확립에 일조하고자 한다.곡물의 여러 줄기가 합수하고 물이 역류하지 않으며 잘 감아도는 곳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명당의 기본적인 원리는 장풍(藏風)과 득수득파(得水得破)이다. 장풍과 득수란 '국'(局), 즉 산줄기와 수계로 이루어진 일정한 범위 속에 만물이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인 '체형(體形)'의 의미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면적의 52%를 점유하여 감자 재배지의 핵심지를 이룬다. 4. 한국 감자 재배지역 중심지의 지리적 특징은, 높은 산지지역의 산록완사면에 밭작물로 재배된다는 점과 교통이 불편한 지역으로서 도시화와 산업화 지역의 그늘 지역이 대부분이다. 강원도의 감자 재배지는 감자재배에 적합한 자연환경과 화전농업의 전통, 감자 재배기술의 전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연구소 분포와 영농지도, 씨감자 생산과 협동조합의 판로 개척, 도로 개설과 포장 등의 인문지리적 요인이 영농조건을 개선하고 감자 판매를 위한 시장접근을 용이하게 하여, 남한 최대의 감자 재배지역을 형성하였다. 제주도는 산지지형과 따뜻한 기온으로 2기작이 가능하고, 감자가공 공장설립과 교통발달에 따른 육지 시장과의 접근이 용이해졌기 때문에 남한에서 2번째로 큰 감자재배지역이 되었다.(요약 및 결론에서 발췌)그람양성균에서 효과적이었으며, 농도별 항균력시험 결과 농도가 증가할수록 비례하여 저해율도 증가함을 알 수 있었다. 첨가농도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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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지도의 연구 동향과 과제 (Progress and Prospect of Research on Old Maps in Korea)

  • 김기혁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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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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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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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연구는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나라 고지도 연구 동향을 시기적으로 분석하고 주요 주제를 대상으로 연구 쟁점을 소개하였다. 우리나라 초기 연구는 "대동여지도"를 중심으로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1960년과 1970년대에 규장각 소장 자료가 공개되면서 연구 지평은 크게 확대되었다. 1980년대 들어 목록집이 완성되고 군현지도책이 소개되었다. "대동여지도"에 대한 도법뿐만 아니라 지리지와의 관계가 연구되었으며 지역을 단위로 하는 정리 사업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이후 전통지리사상, 경관의 복원, 영토 문제, 장소의 의미가 중요시되면서 새롭게 접근되기 시작하였다. 지방에서는 지역 정체성 회복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여 도록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논문과 저서들이 발표되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각 기관에 소장된 자료에 대한 비교 연구가 가능해지면서 계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의 흐름 속에서 (1) "천하도"의 제작 기원 (2) 방안식 군현지도 (3) 필사본 "대동여지도"를 중심으로 논쟁이 형성되었다. 고지도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1) 각 기관에 소장된 자료들이 동일한 서지 정보를 바탕으로 상세 목록집의 간행 (2) 소장 기관간의 교류 사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교류 협의체의 설립이 요구된다. (3) 또한 연구 인력이 매우 부족한 현실로 볼 때, 학계와 소장 기관간의 원활한 교류뿐만 아니라 학계 내에서도 학문간 경계를 넘는 소통과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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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상도편 「산천(山川)」 항목에 수록된 수경(水景) 요소의 특징 (Typological Characteristics of Waterscape Elements from the Chapter 「Sancheon」 of the Volumes Gyeongsang-province in 『Sinjeung Donggukyeojiseungram』)

  • 임의제;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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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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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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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용어의 개념과 차이점을 명료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전통 수경(水景) 요소의 쓰임을 고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문헌분석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조선 전기 관찬(官撰)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상도편 "산천" 항목에서 수경과 관련된 지명을 발췌하여 다양한 수경 요소를 파악하고, 사전적 정의와 원문에 대한 해석 및 유사 사례 고찰을 통해서 수경 요소별 특징을 도출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산천" 항목에 수록된 수경은 22개 요소였으며, 이를 입지와 물 흐름의 방식에 따라서 하천경관, 호소(湖沼)경관, 해안경관으로 분류하였다. 2. 자연적 물 흐름을 항시 유지하는 하천경관은 물줄기의 위계와 관련된 선적(線的) 형태의 '수(水)', '강(江)', '천(川)', '계(溪)'와 감입곡류하천 특성으로 인해서 형성되는 점적(點的) 형태의 '탄(灘)', '뢰(瀨)', '폭(瀑)', '저(渚)'로 구성된다. 3. 일정 구역에 모인 물 형태를 갖는 호소경관은 '강'의 중하류에 형성된 넓고 잔잔한 지점을 일컫는 '호(湖)', 하천 중상류 유로 상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淵)', '담(潭)', '추(湫)', 평지에 모인 물로서 '지(池)', '당(塘)', '택(澤)', 그리고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샘을 지칭하는 '천(泉)', '정(井)'으로 구성된다. 4. 해안경관에는 육지와 섬, 혹은 섬과 섬 사이 공간을 지칭하는 '량(梁)'과 '항(項)', 바다를 향해 돌출된 '곶(串)', 바닷가 모래사장 형태의 '정(汀)', 그리고 도서 지역의 지리적 중요성이 반영되어 높은 출현 빈도를 보인 '도(島)'가 포함된다. 연구 결과를 통해 전통 수경 요소의 다양성을 파악하였으며, 이들이 입지적, 경관적, 기능적으로 차별화된 특징을 반영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도출하였다. 이를 통해서 선조들의 자연경관에 대한 관심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형성된 자연에 대한 심미안이 인공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주체가 된 우리 전통정원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미륵리 봉산석표(封山石標)에 관한 연구(硏究) - '문경읍(聞慶邑) 봉산(封山)' 및 조령봉산(鳥嶺封山)과 관련(關聯)하여 - (A Study on the Miruk-ri Bongsan Stone Landmark - With a Relevance to the 'Moonkyung County Bongsan' and Choryung Bongsan -)

  • 배재수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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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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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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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본 연구는 1997년에 발견된 '미륵리 봉산석표(封山石標)'와 '문경읍(聞慶邑) 봉산(封山)' 및 조령봉산(鳥嶺封山)의 관련성을 밝혀 보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본 연구를 위해 조선 후기 지리지(地理誌), 읍지(邑誌), 지도(地圖),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을 이용한 문헌분석과 현장답사를 병행하였으며 그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1)'미륵리 봉산석표(封山石標)'는 조령봉산(鳥嶺封山)의 경계표식석(境界標識石)이며, (2)지정 목적은 한양의 문호(門戶)며 남한강(南漢江)에 접속된 충주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조령관방(鳥嶺關防)의 산림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 (3)미륵리에 봉산석표(封山石標)를 세웠던 이유는 그곳이 오래 전부터 조령(鳥嶺), 문경(聞慶), 충주(忠州)를 이어주는 교통상의 요지(要地)에 위치하여 왕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산(封山)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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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와 시계열 공간정보를 활용한 문화재 리질리언스에 대한 연구 (Resilience of Cultural Heritage by Integrating Historic Maps and Geospatial Information)

  • 배준수;양윤정;최윤조;김상균
    • 대한토목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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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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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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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문화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값진 자산으로 최근 재난위험경감이라는 국제적인 의제에 있어서 문화유산이 포함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재의 리질리언스 구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리질리언스 구축에 있어서 공간정보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고지도와 시계열 공간정보와 연계를 통해 문화재에 내포되어 있는 리질리언스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안하였으며, 공주지역에 위치한 문화재를 대상으로 본 연구에서 제안한 방법론을 적용하였다. 항공영상과 구지형도의 시계열 영상을 대상으로 지오레퍼런싱을 수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문화재 및 주변지역에 대한 변화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강 하구둑 및 보의 설치로 인해 강폭의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문화재 주변지역이 도시화로 인해 상당 부분 개발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문화재 및 유적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온것으로 분석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지도 데이터만을 이용하여 문화재 리질리언스를 추출하고자 하였으며, 향후 지리지 등 역사기록물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화재 리질리언스를 추출하기 위한 연구가 수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세종대(1418~1450) 성주 세종대왕자(世宗大王子) 태실(胎室) 출토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의 제작 특징과 제작지 고찰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and the Kiln Site of Production of the Buncheong Ware Excavated from the Placenta Chamber (Taesil) in Seongju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1418-1450) in the Joseon Dynasty)

  • 안세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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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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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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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세종의 대군·군과 세손을 포함하여 총 19기 태실이 모여 있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여러 태실이 한 공간에 조성된 유일한 사례이자, 태를 봉안·보호하는 장태용 그릇의 구성과 조형 역시 다른 곳과 구별되어 주목받아왔다. 본 글은 성주 태실에서 출토된 장태용 그릇 중 하나인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에 집중하여 제작의 특징을 구명하고 제작지 고찰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 대상은 태주가 확인된 6점에 한정하였다. 성주 태실은 세종 연간 왕실의 장태와 태실 조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행사가 가장 성행한 1436~1439년에 계획되고 세워졌을 것이다. 태를 담은 항아리를 덮어 보호하는 목적으로 태와 함께 장태 된 이 분청사기 뚜껑은 장태에 필요한 여러 잡물 가운데 중앙 관청에 분정된 잡물의 용도와 일치하며, 장흥고에서 장태 행렬 이전에 마련하여 조달한 품목으로 유추된다. 뚜껑의 크기·형태·장식 등의 조형적 특징은 15~16세기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고, 『세종실록』 「오례」에 수록된 길례용 제기 및 가례용·빈례용 준작 기물과 친연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뚜껑의 꼭지를 에워싸고 있는 태토빚음의 번조받침 흔적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에 남아 있는 흔적과 상통한다. 덧붙여 번조받침 흔적의 형태와 위치를 통해 이 분청사기 뚜껑은 꼭지를 아래로 향하게 한 후 받침 도구와 갑발 등을 이용하여 번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분석과 『세종실록』 「지리지」에 등재된 자기소 내용, 15세기 전반 자기의 진헌·공납 관련 기록, 현재까지 조사된 분청사기 가마터 출토 유물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을 때 이 분청사기 뚜껑을 제작한 곳은 현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사료된다.

1788년 김응환의 봉명사경과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Kim Eung-hwan's Official Excursion for Drawing Scenic Spots in 1788 and his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 오다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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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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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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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은 금강산과 해금강, 관동팔경을 그린 60점의 실경산수화와 51편의 기문(記文)으로 이루어진 화첩으로 규모와 화풍에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림의 특징은 화면을 가득 채운 구성과 남종화풍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파격적인 화법, 산석(山石)의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표현 등이다. 1973년의 특별전, '한국미술이천년(韓國美術二千年)'을 처음으로 화첩의 일부만 공개되었던 작품은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그 전모가 공개되었다. 《해악전도첩》이 김응환(金應煥)(1742~1789)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화첩의 마지막 장에 쓰여진 관지(款識)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칠보대>에 찍힌 '복헌'이라는 도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응환을 지시하는 관지와 도장은 모두 후대에 더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화첩을 둘러싼 여러 요소를 고찰하여 제작자를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악전도첩》 제작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18세기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과 봉명사경을 살펴보았다. 정선(鄭敾)(1676~1759)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1711)을 비롯하여 심사정(沈師正)(1707~1769), 김윤겸(金允謙)(1711~1775), 최북(崔北)(1712~1786 이후), 강세황(姜世晃)(1713~1791) 등은 조선 후기 최고의 여행지였던 금강산을 유람하고 기행사경도를 제작하였다. 화가들은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여 내금강의 명승명소를 주로 그렸고, 자신들이 경험한 장소를 새롭게 시각화하였다. 이러한 기행사경도는 여행을 기념하며 동행자나 후원자를 위해 여러 장면을 담을 수 있는 화첩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개별적인 금강산 기행사 경도의 제작이 증가하는 가운데 1788년에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도화서 화원인 김응환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에게 영동9군과 금강산의 명승(名勝)을 그려오도록 명한 일은 공적 업무였다. 정조는 이들의 관계 및 지방관으로서의 경력, 서로 다른 화풍 등을 고려해 봉명사경의 화원으로 선발하였다. 김응환과 김홍도는 영조(英祖)(재위 1724~1776)조부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선후배이자 동료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아가 이들은 영남 지역의 찰방(察訪)으로서 지방관의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두 화원의 화풍은 서로 달라 김홍도는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필선을 운용한 반면, 김응환은 굳세면서도 울창한 풍치를 잘 표현했다. 두 명의 화원은 각자의 개성으로 봉명사경 기간 동안 100여 폭의 초본을 그렸고, 이를 선별하여 60~70여 폭의 화첩 혹은 두루마리를 완성하였다. 이들의 그림은 18세기 전중반에 내금강과 관동팔경 위주로 제작된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했고 영동과 외금강의 명승명소를 새롭게 발견하며 소재를 확장시켰다. 현재 《해악전도첩》은 원(元), 형(亨), 이(利), 정(貞) 4책으로 이루어졌는데, 원(元), 형(亨)책은 내금강의 그림 29점이며 이(利)책은 외금강의 장면 17점, 정(貞)책은 해금강과 관동팔경 14점으로 구성되었다. 비단 위에 그려진 각 그림은 기하학적으로 산석을 표현했으며, 연백으로 금강산의 암봉을 흰색 혹은 회청색으로 표현했다. 《해악전도첩》의 구도와 화법은 정선, 강세황, 심사정, 정충엽(鄭忠燁)(1725~1800 이후), 김응환, 김홍도의 화법과 비교할 수 있어 18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을 갖는다. 특히 화첩의 일부 그림은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海東名山圖帖)》(1788)과 구성 및 회화적 모티프가 매우 유사하여 두 화첩간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반면에 <영랑호>, <해산정>, <월송정> 등은 김홍도의 그림과는 구별된다. 이를 통해 화가가 김홍도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첩을 제작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해악전도첩》에는 다른 화첩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운담>, <백운대>, <안문점망비로봉>, <백정봉>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장면마다 경물의 특징을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화가는 산석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선과 면을 도드라지게 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다. 그는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법을 확립했고 이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화면에 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했다. 이처럼 60점의 그림은 거칠고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 안에서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본고는 화법과 봉명사경의 정황을 종합해 《해악전도첩》의 제작자를 김응환으로 추론하였다. 나아가 김하종(金夏鍾)(1793~1878 이후)의 《풍악권(楓嶽卷)》(1865년 이후)과의 친연성은 《해악전도첩》의 화가를 김응환으로 추정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해산첩》과는 달리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미비한데 김하종의 《풍악권》만이 《해악전도첩》의 소재와 화법을 따르고 있다. 김하종은 《풍악권》에서 50년 전, 춘천부사 이광문(李光文)(1778~1838)을 위해 제작한 《해산도첩》(1816)과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김응환의 《해악전도첩》과 유사한 구성과 회화적 요소, 화보식 인물표현을 따르면서 사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개성김씨의 일원이자 김응환의 종손인 김하종은 가문에 전해지는 《해악전도첩》류의 그림을 감상했고 이를 새롭게 번안했다고 추측된다. 화첩에 포함된 51편의 기문은 그림 다음 장에서 그려진 장소를 설명하고 있어 각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문은 그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앞의 장소로부터의 이동 정보, 이름의 유래, 지형적 특징, 관련 정보 등이 서술되었다. 이와 같은 백과사전식 혹은 지리지와 같은 기문은 19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금강산 화첩류에 더해졌다. 《해악전도첩》의 백화암 기문에는 1845년의 암자에 대한 중건 내용이 기록되어, 기문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김하종에게 《풍악권》을 주문한 이유원(李裕元)(1814~1888)도 각 그림에 글을 붙였는데 이 글들은 김응환의 화첩에 포함된 기문 51편과 내용 및 서술방식이 흡사하다. 이유원의 기문은 《해악전도첩》의 기문이나 그 초고(원본)와 관련성이 높지만 두 화첩의 기문 필사의 선후관계를 판정하는 데에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봉명사경 초본 및 김홍도의 영향으로 제작된 19세기의 금강산 화첩과는 구별된다. 이 화첩은 화원 김응환의 회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넓히고 18세기 후반 실경산수화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