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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의 소집단 자유탐구활동 중 물리 영역 탐구문제의 구성과 변인 추출 및 명료화 과정 (Middle School Students' Construction of Physics Inquiry Problems and Variables Isolation and Clarification during Small Group Open-inquiry Activities)

  • 유준희;김종숙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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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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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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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도입된 자유탐구활동의 지도방안에 대한 시사점을 얻기 위하여 중학생의 소집단 자유탐구 활동 중 물리 영역 탐구문제 구성과정을 변인의 추출 및 명료화의 관점에서 분석하였으며, 변인의 명료화가 진행되는 단계에서 학생의 어려움을 조사하였다. 본 연구의 참여 학생은 서울 소재 대학 영재원 과학반 소속 중학생 4명이며 '계란낙하'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13차시, 30시간동안 자유탐구활동을 진행하였다. 학생들의 탐구문제 구성에서 나타난 변인의 추출 및 명료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하여 선행연구를 토대로 변인 추출의 수준 및 변인의 명료화 수준에 대한 분석틀을 제안하였다. 학생들은 과학적 탐구의 과정을 반복적이고 점진적으로 수행하면서 탐구문제를 5차례 변경하였다. 종속변인이 독립변인보다 먼전 추출되었으며 변인 추출의 수준 및 명료화의 수준도 높게 나타났다. 학생들은 여러 종류의 독립변인들을 외연적 수준에서 추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학생들은 이론적 설명 모형의 부재로 중요한 독립변인을 추출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그 때문에 독립변인과 통제변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도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생들은 탐구주제의 선택 뿐 만 아니라 종속변인과 독립변인의 추출 및 정의하는데 현실적 여건에 의해 제약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생들은 종속변인이나 독립변인을 추출하는데 있어서 모두 감각적인 현상이나 외연적 특성인 깨지는 것, 높이 등이 부각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종속변인의 이론적 정의나 조작적 정의를 하는데 있어서 해당 지식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 결과 해당하는 변인의 과학 사전적 정의를 이해해도 해당 탐구상황에 적용하여 설명모형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이후 독립변인 및 통제 변인을 추출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이론적 설명모형의 부재는 학생들의 이론적 배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도 비롯되지만, 과학적 탐구가 시행착오적인 해보기나 무작정적인 변인사이의 관계 설정하기가 아닌 이론에 근거한 실증적 활동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에 기인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구성주의적 사회과 교육을 위한 사진자료 활용방안 (The application of photographs resources for constructive social studies)

  • 이기복;황홍섭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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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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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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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본 연구는 제7차 교육과정의 기초가 되는 구성주의적 관점에 기초하여 사회과 교육에 있어서 사진자료를 활용하여 자기 주도적 사고를 통해 지식을 구성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모색하였다. 검토결과 구성주의적 사회과 교육의 앎의 구성과정 원리는 개개인의 내면적 인지작용과 사회문화적 맥락간의 통합적, 변증법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과 교육에 있어서 사진은 의사소통의 강력한 도구이다. 사진과의 대화를 통해 사진 속에 담겨진 사회현상의 가시적 측면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측면을 끌어냄으로써 7차 교육과정의 강조점 중의 하나인 탐구학습을 통한 사고력 신장에도 크게 도움을 준다. 초등 사회과 지역 교과서에 나타난 사진자료 분석결과 총 자료 중 지면 차지분량이나 비중이 중에도 학습내용과의 관련성에 있어서 자기 주도적으로 사고하여 탐구할 수 있는 자료라기보다는 보조자료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도 사진의 주제, 종류, 규모, 위치, 색상, 선명도 나아가 자료의 결합형태 등에 있어서도 문제점이 Bl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성주의적 사회과 교육을 위한 사진자료의 개발은 현행 교과서 상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7차 교육과정의 이론적 배경을 담은 사진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 사진자료 개발을 위해 템기반에서 상호작용하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이미 구축된 템사이트의 사진자료 데이터 베이스를 활용하거나 구축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사회과 교육에 있어서 구성주의적 사진자료 활용을 위한 수업구성은 직관, 갈등, 조절, 균형화라는 4단계를 고려하였다. 교육과정 개발자는 교과서 개발시 영상문화시대를 맞이하여 정적인 사진자료보다도 더욱 동적이며, 입체적인 디지털 사진자료의 개발과 활용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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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PCK 관점에서 학생들의 지구과학 개념 이해에 대한 질적 메타 분석: 온실 효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개념을 중심으로 (Qualitative Meta-analysis on Students' Understanding of Earth Science Concepts from the Perspective of Collective PCK: Focusing on the Concepts of Greenhouse Effect, Global Warming, and Climate Change)

  • 김권중;최의선;김호준;박재용;이기영
    • 한국지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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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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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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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에서는 지구과학 교육 연구 논문들을 대상으로 질적 메타 분석을 통해 집단적 PCK (cPCK) 중 '특정 과학 주제(온실 효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 이해 지식'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온실 효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 대체 개념(오개념)과 관련된 지구과학 교육 연구 논문 22편을 선정하여 각각의 정의, 원인(매커니즘), 그리고 영향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를 종합하기 위해 언어 네트워크 분석, 정신모형틀을 적용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온실 효과에 대한 학생들의 개념 이해를 메타 분석한 결과, 온실 효과와 지구 온난화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온실 기체의 종류를 제한적으로 알고 있고, 온실 기체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온실 효과의 발생을 환경오염이나 오존층의 변화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지표-대기의 열수지 평형과 온실 효과를 관련짓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2) 지구 온난화에 대한 학생들의 개념 이해를 메타 분석한 결과, 지구 온난화를 해수면 상승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지구 온난화의 발생을 환경오염, 오존층의 변화, 빙하의 융해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지표-대기의 열수지 평형이 깨져 지구 온난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지구 온난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3) 기후변화에 대한 학생들의 개념 이해를 메타 분석한 결과, 기후변화를 지구 온난화, 기상 변화, 기상 이변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기후변화의 발생을 대기오염, 오존층의 파괴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기후변화가 우리 생활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대한 분석 결과를 언어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종합한 결과, 집단적 PCK로서 3가지 정신모형(범주적 오해, 기제적 오해, 위계적 오해)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과학 교사 PCK 개발을 위한 함의를 논의하였다.

고구려 거문고 연구 재검토 (A Re-examination the study on the Gogureoy Geomungo)

  • 최헌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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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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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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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기원한 악기로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선비등 지식층의 애호 악기가 되어 '백악지장(百樂之丈)'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거문고의 우리 음악문화에서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하겠는데, 이 악기의 기원이 외래의 와공후(臥??)라는 것을 넘어 고구려의 거문고 자체가 부정되고 와공후(臥??)만을 인정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에 대한 한국 학자들의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구려의 거문과와 관련된 연구는 여러 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는데, 그 연구 주제는 주로 왕산악(王山岳)의 거문고 제작설을 인정하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거문고류 현악기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국 초기에 부정되던 거문고 와공후(臥??) 기원설은 임겸삼의 주장대로 고구려 거문고가 모두 부정되는 것이 아니고, 왕산악이 진(晉)의 와공후(臥??)를 개조하여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와공후(臥??) 기원설을 인정하고 그 시기가 언제인가에 연구의 초점을 둔 연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여럿의 거문고류 현악기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이들을 비교하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거문고류 악기를 다시 검토해본 결과 8개의 고구려 고분에 나타나는 10개의 고구려 거문고류 현악기는 단순히 금(琴), 쟁(箏), 축,(筑) 와공후(臥??), 거문고로 단정 짓기 쉽지 않았다. 조금씩 그 형태와 연주자세, 괘와 술대의 유무, 줄의 수 등의 차이가 있는 것은 고분벽화의 정밀 묘사의 부정확성을 떠나서, 악기의 본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고 또 그 내용이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그 명칭을 금(琴), 쟁(箏), 축(筑), 와공후(臥??), 거문고라기 보다는 금(琴)류, 쟁(箏)류, 축(筑)류, 와공후(臥??)류, 거문고류라 해야할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이들 악기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거문고류 악기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유된 생각인데, 이는 고구려에서 거문고가 정착되기 전에는 다양한 거문고류 현악기가 연주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삼국사기"의 왕산악(王山岳) 거문고 제적설에 너무 경도되어 있는 것도 문제로 보았는데, 그것은 고조선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즉 공후인(??引)에 등장하는 공후(??), 즉 와공후(臥??)를 고려한다면 "삼국사기"의 왕산악(王山岳) 거문고 제작설은 믿기 어려우며, 고구려보다 더 이전 시기부터 거문고류의 현악기를 연주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무도하가와 비슷한 시기라 할 수 있는 기원전 3-4세기의 악기로 신강(新疆)지역에서 공후(??)가 발굴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이 지역이 중국에 속한 곳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공후(??)는 외래 악기가 분명하고, 중국에 전래된 이후 금(琴), 슬(瑟), 쟁(箏) 등 악기의 영향으로 와공후(臥??)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시기는 위진(魏晉)시대의 고분에 괘가 있는 와공후(臥??)류 악기의 그림과 토용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빨라도 한대(漢代)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중국에서는 아직 공후(??)가 전래되기 전에 이미 고조선에는 공후(??)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그 전래 과정은 중국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또 와공후(臥??)가 외래의 세워 연주하는 하프류의 공후(??)를 뉘여 연주하는 악기로 개조한 중국의 악기로 주장하는 것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즉 중국에 와공후(臥??)가 생기기 이전 또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미 고조선에 와공후(臥??)가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문고의 기원이 된다는 와공후(臥??)의 발생지(發生地)는 혹시 고조선(古朝鮮)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 설혹 한(漢) 무제(武帝) 때 공후(??)(와공후(臥??))가 만들어 졌다는 설이 사실이고 이에 따라 뉘여타는 공후(??), 와공후(臥??)가 한대(漢代)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삼국사기"의 왕산악(王山岳) 거문고 제작이 진(晉)에서 전래된 와공후(臥??)를 개조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고조선(古朝鮮)에 이미 와공후(臥??)로 추정되는 공후(??)가 있었으므로 고구려 사람들이 진(晉)에서 전래된 칠현금(七絃琴)(와공후(臥??)?)을 몰랐을리 없기 때문이다. 또 이 칠현금(七絃琴)이 중국 전통의 琴이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한(漢)의 문화와 교류가 많아서 한(漢)의 고취(鼓吹)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한(漢)의 금(琴) 역시 이미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晉)에서 전래된 칠현금(七絃琴)이 금(琴)이더라도 고구려 사람들이 그 연주법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거문고를 굳이 진(晉)에서 전래된 칠현금(七絃琴)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신뢰하기 어렵다. 앞에서 살핀 여러가지 상황으로 보아 고구려의 거문고는 금(琴)이든 와공후(臥??)든 중국에서 전래된 악기를 개조해서 만들었다기 보다는 고조선에서부터 내려오던 거문고류 현악기를 개량하여 만들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다만 금(琴)이든 중국에서 만들어진 공후(??)든 혹은 쟁(箏) 슬(瑟) 축(筑) 등의 악기가 고구려에 전래되었다면 이들이 거문고 창제에 참조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그러나 거문고 창제의 원형을 굳이 외래 악기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구려 전래의 거문고류 현악기가 있었고 이를 토대로 외래의 현악기를 참조하여 거문고를 창제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좀 더 많은 자료를 찾아 연구해야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문제라 하겠으나, 적어도 "삼국사기"의 왕산악(王山岳) 거문고 제작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고구려 거문고를 보는 시각을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