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벼 4품종을 두 온도조건(저온; $15^{\circ}C$, 대조; $25^{\circ}C$)에서 왕겨의 유무에 따라(정조 및 현미) 발아특성을 조사한 결과, 현미 발아율은 품종간 차이가 없었으나 정조 발아율은 저온에서 품종간 차이가 컸다. 종자를 침윤시키면 온도나 왕겨의 유무에 관계없이 수분이 급격히 증가하다가 30%에서 더이상 증가하지 않고 정체하는데 이때 정체기에 도달하는 시간은 온도가 높을수록, 정조보다 현미가 빨랐다. 그러나 수분정체기에 도달하는 시간은 품종간 차이가 있고 저온에서 차이가 컸다. 수분흡수시간은 발아율, 발아세, 발아속도, 평균발아일수와 모두 높은 부의 상관을 보여 초기 수분흡수시간이 빠를수록 발아를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윤 24시간 뒤 guaiacol peroxidase활성은 처리 및 품종간에 큰 차이를 나타냈으며 발아세와 발아속도와 정의 상관이 있었으나 최종발아율과는 상관이 낮았다. Catalase활성은 발아율, 발아속도 등과 상관이 매우 낮았으며, 용해성 단백질함량 및 maltose농도도 발아특성과 상관이 낮았다. 종자활력검사(TTC활력검사)와 표준발아율검사($25^{\circ}C$)에서 발아율이 높더라도 정조는 저온에서 품종간 발아율의 변이가 커 종자활력검사만으로 발아율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초기의 종자활력은 TTC검사와 guaiacol peroxidase활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품종간 발아율의 변이를 줄이고 발아속도를 높혀 균일한 발아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정범위에서 가능한 온도를 높혀 수분흡수를 촉진시켜야 한다.
한국수도품종의 시대적 변천에 따른 그들 품종의 외부형태와 수량 및 수량구성요소의 변이를 살펴보고저 년대별 주요품종3개씩 18개품종을 시료로 하여 6개품종군 ${\circled1}$ 1907년대 품종(재래품종)을 1군 ${\circled2}$1907~1930년항까지의 품종(도입일본품종)을 II군 ${\circled3}$1930~1960년항까지의 품종중 도입일본품종을 III군, 국내육성품종을 IV군 ${\circled4}$1960년이후 현재까지의 재배품종중 도입일본품종을 V군, 국내육성품종을 VI군으로 구분하여 시험조사하였는데 그 결과는다음과 같다. 1. 신장절위는 엽신장은 1군이 가장 길고 품종의 변천과 함께 짧아지는 경향을 보였고 지엽각은 예각의 방향으로 변천되어 왔으며 총엽면적은 I군에 비하여 II~V군은 모두 작은 수치를 보였는데 일반적으로 상부절위의 엽면적이 특히 작아진 경향을 보였으며 엽면적지수는 반대로 I군이 가장 낮은 값을 보였다. 2. 엽초장 및 엽초중은 I군에 비하여 III~V군은 작은 수치를 보였는데 II~VI군간에는 일정한 경향이 없었고 절간장은 I군이 길고 그밖의 군에서는 짧았는데 시대적 품종의 변천에 따라서 상위부의 절간장이 짧아지는 경향이었다. 절간중은 I군이 매우 크고 그밖의 군은 작은데 시대적 품종의 변천에 따라서 대체로 가벼워지는 경향이었다. 3. 수량구성요소의 품종군간 변이는 간장, 수장 및 I수정화수는 I군 및 III군이 높은 수치를 보였고, 1주수수, 등열비율 및 정조천엽중은 IV, V 및 VI군이 높은 값을 보였다. 시대적 품종의 변천에 따라서는 일정한 경향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최근의 재배품종인 V군 및 VI군이 간장 및 수장이 짧아졌고 등열비율 및 정조천엽중은 증대되었으며 수수 및 I수입수sms 중위의 값을 보여주고 있다. 4. 고간중은 Irns이 가장 가벼웠고 그 외 품종군은 서로 비슷하였으며 정조중은 VI군이 가장 높은 치를 보였고 II군, III군, IV군 및 V군은 서로 비슷하게 중간치를 보였으며 I군이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조/고 비율은 VI군이 가장 높았고 I군이 가장 낮았다. 5. 공시한 품종군중 IV군, V군 및 VIrnsdms 수수, 일수평균완전입수 및 정조수입중이 평형있게 수량을 구성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수도(水稻)의 생육(生育)과 수량(收量)에 미치는 볏짚과 규회석(珪灰石)의 효과(效果)를 규명코져 볏짚은 무시용(無施用)과 88g/pot(1000kg/10a)로 2수준, 규회석(珪灰石)은 무시용(無施用)(50ppm), 27(150ppm), 85(300ppm), 135g/pot(450ppm조절량) 4수준을 각각 다르게 처리하고 pot 시험(試驗)을 한 결과(結果)는 다음과 같다. 1. 볏짚이나 규회석(珪灰石) 단용(單用)을 수도(水稻)의 초기생육(初期生育)을 억제(抑制)시켰으나 이들의 병용구(倂用區)에서 이상적인 초형(草型)으로 발달(發達)되어 특히 최고분운기(最高分芸期) 이후(以後)에 효과(效果)가 매우 커서 정조수량(正租收量)이 증가(增加)되었다. 2. 볏짚 무시용구(無施用區)는 규회석(珪灰石) 27g/pot구(區)에서 모두 정조수량(正租收量)이 많았고 볏짚 시용구(施用區)에서는 시용당년(施用當年)에는 규회석(珪灰石) 85g/pot구(區), 그리고 다음해의 잔효구(殘效區)에서는 규회석(珪灰石) 135g/pot구(區)에서 정조수량(正租收量)이 가장 많아 볏짚시용(施用)은 규산(硅酸)의 요구량(要求量)을 증가(增加)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처리간(處理間)에 최고수량(最高收量)을 낸 구(區)는 시비년도(施肥年度)에는 볏짚+규회석(珪灰石) 85g/pot구(區)로서 대조구(對照區)보다 25%의 정조수량(正租收量)이 증대(增大)되었다. 볏짚과 규회석(珪灰石)의 잔효(殘效)를 본 익년도(翌年度)에서는 볏짚+규회석(珪灰石) 135g/pot구(區)가 대조구(對照區)보다 30%의 증가(增加)를 보여 볏짚이나 규회석(珪灰石) 단용(單用)보다 병용효과(倂用效果)가 컸었다.
벼 재배 농업인들에게 기술지원을 하고, 소비자들에게 우리 쌀의 안전성을 널리 알리고자, 2005년-2006년 "탑라이스" 생산단지 및 인근 관행재배 지역에서 토양, 볏짚, 왕겨, 쌀겨, 현미, 및 백미 시료를 채취하여 미국 EPA 7473 규격을 만족시키는 자동수은분석기(DMA80)을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았다. 우리나라 논 토양의 수은함량은 평균 0.031 mg/kg로 토양환경보전법상 우려기준(4 mg/kg)과 대책기준(10 mg/kg) 대비 1/25-1/65 이하로 매우 안전한 수준이었고, 탑라이스를 포함한 우리 쌀 중 수은잔류량은 평균 0.0018 mg/kg로, 중국의 잔류허용기준(MRL) 0.02 mg/kg 및 대만의 잔류 허용기준(MRL) 0.05 mg/kg과 비교할 때 1/10-1/30 이하의 수준으로 수은에 의한 우리 쌀에 대한 안전성 우려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탑라이스 생산단지 토양의 수은함량은 평균 0.02788 mg/kg, 볏짚 0.00896 mg/kg, 정조 0.00182 mg/kg, 왕겨 0.00189 mg/kg, 현미 0.00166 mg/kg, 쌀겨 0.00452 mg/kg, 그리고 백미 0.00145 mg/kg 수준이었다. 토양 중 수은농도 대비 비율로 계산해 보면 볏짚 0.321 ${\gg}$ 쌀겨 0.162 ${\gg}$ 왕겨 0.068 ${\geq}$ 정조 0.065 > 현미 0.060 > 백미 0.052 순으로 볏짚 및 쌀겨의 수은농도가 높았다. 잔류수은의 흡수이행 기울기는 볏짚 ${\gg}$ 쌀겨 ${\gg}$ 왕겨 ${\geq}$ 정조 > 현미 > 백미 순으로 기울기가 크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흡수이행량이 크다는 것으로 해석되며, 지상부로 흡수된 총수은량의 83.8%는 볏짚에 존재하였으며, 정조에 16.2%, 왕겨에 2.8%, 현미에 12.4%, 쌀겨에 3.5% 및 백미 9.7%가 분포하였다. 결론적으로 "탑 라이스" 생산단지를 포함한 인근의 관행재배지역 토양은 수은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여기에서 생산된 우리 쌀은 매우 안전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1795년 윤2월 12일 정조가 친림하여 행한 장용영 외영의 군사 훈련을 그린 <서장대야조도>를 중심으로 장용영 하급 군사들의 위치와 역할, 역할별 군복의 구성과 특징을 고찰하였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서장대야조도>에서 정조가 자리한 서장대 앞에 2열로 마주보도록 배치된 등롱군·뇌자·순령수·대기수와, 서장대를 둘러싸고 정조를 호위한 군사들은 모두 장용영 소속 하급 군사들이었다. 정조 앞에 배치된[御前前排] 등롱군의 군복은 전립,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하급 군사들의 협수는 기존 학계에 알려진 관직자들의 무가 있는 협수와는 달리 소창의형 협수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등롱군은 칼을 차고 손에는 홍사촉롱을 들었다. 뇌자는 신전수와 주장수가 있었다. 왕 앞에 배치된 뇌자의 군복은 주전립,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뇌자는 칼을 차고 신전기 또는 주장을 들었다. 왕 앞에 배치된 순령수는 순시기수와 영기수가 있었다. 순령수의 군복은 전건,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순령수는 칼을 차고 홍순시기 또는 홍령기를 들었다. 왕 앞에 배치된 대기수의 군복은 전건, 흑색 협수, 청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왕 앞에 배치되는 다른 군사들과 달리 대기수는 정조대에 와서야 왕 앞에 배치됨으로써 괘자의 색상이 청색인 점이 달랐다. 대기수는 칼을 차고 대기치를 들었다. 서장대를 둘러싼 군사들은 전초군과 좌초군이었고, 성곽을 방어하는 군사들은 좌·우·전·후 초군으로 보았다. 초군의 군복은 전립, 흑색 협수, 호의,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짚신으로 고증하였다. 호의는 방위에 따른 색을 사용하였기에 좌초군은 청색, 우초군은 백색, 전초군은 홍색, 후초군은 흑색이었다. 초군이 소지하는 무기는 조총과 칼이었다. 성정군들은 조총과 칼 외에도 훈련 상황에 따라 횃불이나 등이 달린 기창을 들기도 하였다. 이상의 고증 결과를 반영한 시각화의 기본 원칙은 3D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실물 제작까지 가능하도록 시대와 신분에 적합한 형태·색상·재질 기준을 제안하였다. 역할별 복식 착장도에 무기와 군기(軍器)를 갖춘 앞·옆·뒤 모습으로 표현하고 색상을 RGB와 CMYK로 제안하였다.
King Jeong-jo (正祖) was the 22nd king of Joseon dynasty (朝鮮王朝), who led the golden age of Korean culture during his ruling. This study is on the burial dressing of King Jeong-jo based on the publications during his ruling; such as "Gukjo Sangrye Bopyeon (國朝喪禮補編)", "Chungwan Tonggo (春官通考)", Jeong-jo "Gukjang Dogam Euigwe (國葬都監儀軌)", "Jeongjo Binjeon Honjeon Dogam Euigwe (正祖殯殿魂殿都監儀軌)" and "Jeong-jo Sillok (正祖實錄)", "Gukjo Sangrye Bopyeon (國朝喪禮補編)" was published in 1758. It compiled the funeral protocols of royal court, complementing the shortcomings of protocol documents published till then. "Chungwan Tonggo" was published in 1788, compiling all the protocols and customs practiced during Joseon dynasty in an organized manner. "Jeong-jo Gukjang Dogam Euigwe" and "Jeongjo Binjeon Honjeon Dogam Euigwe", record the burial dressing and the state funeral of King Jeong-jo in detail based on the contents of above protocol publications. In addition, the 'Daeryeom Euidae ', 'Soryeom Euidae', 'Seup Euidae' and 'Mokyok Euidae' that had been actually practiced were studied in detail based on the records in June/July, 1800 in Book 54 'Jeong-jo' of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e timing of King Jeong-jo's state funeral was when the most elaborated and complete protocol books of Joseon dynasty had been published. Therefore, it was possible to explore the solemn and magnificent funeral culture and King's burial dressing in late Joseon dynasty by way of King Jeong-jo's burial dressing.
본 논문은 조선시대의 관찬 해제목록인 $\lceil$군서표기(群書標記)$\rfloor$에 수록된 각 서적의 해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그 서적들의 질적 수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먼저 $\lceil$군서표기$\rfloor$에 수록된 서적의 수준 평가를 유형별로 살펴보고, 이를 현대 문헌정보학에서 제시하는 장서평가기준과 비교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도서의 질적 수준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목록의 성격을 감안할 때, 저자의 수준과 내용 면에서 현대의 양서(良書)의 평가기준을 상회하는 훌륭한 책들이라 할 수 있다.
용주사 <삼세불회도>는 유교적 이념과 불교적 이념, 궁중화원 양식과 산문화승 양식, 고유한 전통화법과 외래적 서양화법 같은 다양한 이원적 요소들이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이룩된 기념비적 걸작으로서 조선 후기의 회화 발달과 혁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의 하나이다. 그러나 화기(畫記)가 없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와 작가를 비정하고 양식 특징을 분석하는 문제를 놓고 연구자마다 견해 차이가 심해 지난 50여 년 간 논쟁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회화사적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문제는 모든 논의의 기본적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불화와 달리 화기(畫記)가 없고, 작가에 대한 기록이 문헌마다 다르며, 화승들의 전통적인 불화 양식과 화원들의 혁신적인 서양화법이 혼재되어 있어 작가와 양식을 일치시켜 이해하는 문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문제는 특히 논란이 많은 쟁점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현존 <삼세불회도>는 일반적인 불화와 달리 수미단 중앙에 왕실(王室) 존위(尊位)의 축원문(祝願文)을 써놓아 주목되며, 애초에 썼던 "주상전하(主上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전하(世子邸下)"의 삼전(三殿) 축원문을 지우고 '자궁저하(慈宮邸下)'를 '왕비전하(王妃殿下)' 앞에 추가해서 고쳐 써넣어 더욱 주목된다. 따라서 이 축원문은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객관적 단서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최근에 새롭게 제시된 19세기 후반 제작설은 1790년의 용주사 창건 당시에는 순조(純祖)가 '원자(元子)' 신분이었고 1800년 1월 1일에야 '세자(世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세자(世子)'라는 존호가 쓰여있는 현존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은 세자 책봉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하며, 형식과 도상이 19세기 후반기 화승들이 그린 청룡사나 봉은사의 <삼세불회도>와 유사하고 서양화법은 후대에 개채된 것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는 19세기 후반기의 화승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불화(佛畫) 화기(畫記)의 축원문을 광범위하게 조사해보면, 불화 제작 시점에 왕실에 실존한 인물의 신분(身分)과 생년(生年), 성씨(姓氏)까지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에는 용주사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처럼 수십 년 전에 승하한 사람들을 생전의 존호(尊號)로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1790년 전후에는 원자(元子)나 세자(世子)의 유무(有無)와 무관하게 의례적으로 "주상전하(主上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삼전(三殿) 축원문을 쓰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에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존호가 쓰여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왕실 위계와 달리 '자궁저하(慈宮邸下)'가 '왕비전하(王妃殿下)'보다 앞에 쓰여있는데, 이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비극으로 인한 정조와 혜경궁(자궁(慈宮)), 왕비 세 사람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정조가 혜경궁의 왕실 위상을 왕비 앞에 오도록 하여 정조대에만 사용된 특별한 왕실 전례였기 때문에 현존하는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은 정조대에 개서(改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애초에는 당시의 일반적인 불화 축원문처럼 의례적인 삼전(三殿) 축원문을 썼다가 이를 지우고 다시 '자궁저하(慈宮邸下)'라는 특별한 존호를 넣어 개서(改書)하는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는 현륭원(顯隆園)의 재궁(齋宮현륭인 용주사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와 부인인 혜경궁(惠慶宮)(자궁(慈宮))임에도 불구하고 축원문에 의뢰적인 삼전(三殿)만 쓰여있고 혜경궁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정조가 지시하여 개서(改書)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개서(改書)는 정조가 현륭원과 용주사가 준공된 뒤 처음으로 현륭원에 원행(園幸)하여 원소(園所)를 두루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용주사에 들러 <삼세불회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견했던 1791년 1월 17일에 정조가 지시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어진다. 따라서 이와 같이 특수한 내용과 형태로 이루어진 축원문은 현존 <삼세불회도>가 1790년의 창건 당시에 그려진 원본 진작임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객관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행행일기(幸行日記)>(구7152, 이하 <일기>로 약칭)는 1761년 4월 사도세자의 평양밀행을 기록한 문서이다. 당시 작성자는 평양의 하급 군관 함대일(咸戴一)(1738~1771)이며, 사도세자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4월 7일부터 5월 1일까지 세자를 모셨다. <일기>는 해당 시기 구체적인 행적을 적고 있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사도세자의 평양밀행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일기>는 다른 일기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용된 종이의 품질과 정연하게 쓰인 서체와 문장의 구성은 일반적인 일기와는 다르다. 이 <일기>는 개인이 쓴 일기와는 달리 완성된 문서에 가까운 형식을 갖추었다. <일기>는 그동안 모호하게 알려졌던 사도세자의 평양밀행을 기록한 만큼 내용 사실 여부를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과정으로 먼저 함대일이라는 인물을 추적하였는데, 그의 가계(家系)는 <일기>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과 일치하였다. 또한 <일기>에서 사도세자가 글씨를 쓴 정황이 나오는데, 당시 쓴 예필진적(睿筆眞跡)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일기>에 실린 내용을 사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밀행 당시 사도세자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만났지만, <일기>는 함대일과 사도세자 중심으로만 구성되어있다. 이 점은 당시에 원문에 해당하는 기록이 존재할 수 있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일기>는 이를 바탕으로 편집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기>는 함대일의 아들 함정희(咸正禧)(1758~1817)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부친 함대일이 영조(英祖)(재위 1724~1776) 재위 기간에는 사도세자와 관련된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낮다. 둘째로 정조 대 함정희가 사도세자의 예필과 일기를 바친 정황이 확인된다. 물론 당시 정조에게 바친 일기가 현재의 <일기>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정조(正祖)(재위 1776~1800)의 주도로 사도세자 현창 사업이 진행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당시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예필과 일기를 바친 시기는 각각 현륭원 조성과 사도세자의 환갑과도 겹치는 점이 확인된다. 따라서 <일기>는 함정희가 본인의 입신(立身)을 위해 제작하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북한은 최근 공산주의의 몰락과 동구의 자유화로 인한 전한기를 맞아 북한의 내분적 모순과 침체된 경제현실을 극복하기위하여 과학기술개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폐쇄적이던 북한의 과학기술정책이 점차 개방화하려는 움직임과 변화가 크게 나타나고 있어 남북과학기술교류의 가능성이 그 어느때 보다도 고조되고 있다.
차제에 과총은 지난 11월 14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북한의 과학기술과 남북교류를 주제로한 심포지움을 통해 북한의 과학기술정책을 비롯한 과학기술전반에 관한 실상과 자료를 종합적으로 조사 연구, 앞으로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고 남북한의 교류협력방안을 모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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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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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쳐 즉시 처리하여야 합니다. 다만, 즉시 처리가 곤란한 경우는 회원에게 그 사유와 처리일정을 통보하여야
합니다.
제 11 조 (회원의 의무)
① 이용자는 회원가입 신청 또는 회원정보 변경 시 실명으로 모든 사항을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하여야 하며,
허위 또는 타인의 정보를 등록할 경우 일체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② 당 사이트가 관계법령 및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의거하여 그 책임을 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회원에게 부여된
ID의 비밀번호 관리소홀, 부정사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회원에게 있습니다.
③ 회원은 당 사이트 및 제 3자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제 4 장 서비스의 이용
제 12 조 (서비스 이용 시간)
① 서비스 이용은 당 사이트의 업무상 또는 기술상 특별한 지장이 없는 한 연중무휴, 1일 24시간 운영을
원칙으로 합니다. 단, 당 사이트는 시스템 정기점검, 증설 및 교체를 위해 당 사이트가 정한 날이나 시간에
서비스를 일시 중단할 수 있으며, 예정되어 있는 작업으로 인한 서비스 일시중단은 당 사이트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공지합니다.
② 당 사이트는 서비스를 특정범위로 분할하여 각 범위별로 이용가능시간을 별도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그 내용을 공지합니다.
제 13 조 (홈페이지 저작권)
① NDSL에서 제공하는 모든 저작물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으며, KISTI는 복제/배포/전송권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② NDSL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상업적 및 기타 영리목적으로 복제/배포/전송할 경우 사전에 KISTI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③ NDSL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할 수 있습니다.
④ NDSL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무단 복제, 전송, 배포 기타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
저작권법 제136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제 14 조 (유료서비스)
① 당 사이트 및 협력기관이 정한 유료서비스(원문복사 등)는 별도로 정해진 바에 따르며, 변경사항은 시행 전에
당 사이트 홈페이지를 통하여 회원에게 공지합니다.
②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려는 회원은 정해진 요금체계에 따라 요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제 5 장 계약 해지 및 이용 제한
제 15 조 (계약 해지)
회원이 이용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때에는 [가입해지] 메뉴를 이용해 직접 해지해야 합니다.
제 16 조 (서비스 이용제한)
① 당 사이트는 회원이 서비스 이용내용에 있어서 본 약관 제 11조 내용을 위반하거나,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 2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없는 경우
- 기타 정상적인 서비스 운영에 방해가 될 경우
② 상기 이용제한 규정에 따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에게 서비스 이용에 대하여 별도 공지 없이 서비스 이용의
일시정지, 이용계약 해지 할 수 있습니다.
제 17 조 (전자우편주소 수집 금지)
회원은 전자우편주소 추출기 등을 이용하여 전자우편주소를 수집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습니다.
제 6 장 손해배상 및 기타사항
제 18 조 (손해배상)
당 사이트는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와 관련하여 회원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당 사이트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손해발생을 제외하고는 이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합니다.
제 19 조 (관할 법원)
서비스 이용으로 발생한 분쟁에 대해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민사 소송법상의 관할 법원에 제기합니다.
[부 칙]
1. (시행일) 이 약관은 2016년 9월 5일부터 적용되며, 종전 약관은 본 약관으로 대체되며, 개정된 약관의 적용일 이전 가입자도 개정된 약관의 적용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