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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궁궐정원의 경관 구성 비교 연구 - 창덕궁(昌德宮), 이화원( 頤和園), 선동어소(仙洞御所)를 중심으로 - (A Comparative Study on Landscape Composition of Palace Gardens in Korea, China, Japan - Focused on Changdeokgung Palace, Summer Palace and Sento Imperial Palace -)

  • 윤상준;안승홍;윤성융;염성진;박희성;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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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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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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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동아시아 삼국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고정원 문화의 정수이자 역사적 배경과 정치, 문화적 관계성 등을 공간적으로 잘 대변할 수 있는 궁궐정원을 대상으로 형성배경, 입지와 배치, 공간구성, 공간구성요소 그리고 조성계획 및 경관연출기법과 조망적 특징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를 위하여 유사한 위상을 가진 한국의 창덕궁, 중국의 이화원 그리고 일본의 선동어소를 선정하여 3국의 궁궐정원에 대한 이해와 연구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또한 경관 연출을 중심으로 한중일 궁궐정원의 원형에 대한 비교와 분석을 통해 동질성(유사성) 및 이질성(차별성)을 찾아 한중일 궁궐정원이 가지는 정체성을 규명하고 나아가 한국 궁궐정원이 가지는 가치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동질성과 이질성을 기반으로 도출된 비교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정원의 조성으로 자연에 순응한 한국 고유의 양식을 보여준다. 둘째 동아시아적 사상을 반영한 다양한 상징적 정원요소가 표현되고 있다. 우리 궁궐정원의 발달에 있어 중국의 사상과 기술, 기법 등이 큰 영향을 끼쳤고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공간에 구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경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유사함은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셋째 창덕궁 후원은 엄격한 왕권의 권위보다 풍류적 취향의 문화 예술적 수용체 역할을 하였다. 창덕궁과 이화원, 그리고 선동어소가 문화수용체의 성격을 지니듯이 한중일 3국이 문화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그 형태와 재현의 방법이 다르며 각각 독자적인 궁정정원의 양식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정원이 각 나라 고유의 문화와 예술을 수용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한 상주백자 연구 (A study on the white porcelain in Sangju focus on the literature data)

  • 김종태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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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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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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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경북 상주지역은 조선초기에 왕실에 소용되는 상품자기의 절반을 차지하였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에 비해 연구가 대단히 미비한 실정이었다. 이에 상주지역에 관련된 여러 사료들을 살펴보고 상주지역의 한국도자사적의 위치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는 청자(靑磁), 분청사기(粉靑沙器), 백자(白磁), 상감백자(象嵌白磁), 청화자기(靑畵白磁)가 생산되었다. 세종의 명에 의하여 1424$\sim$1432년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가 편찬되었고 성종대(成宗代)에는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설치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욱이 조선왕조로 교체되는 격변의 상황까지 겹쳐 강진의 요업(窯業)은 폐요되었고, 강진에서 종사하던 장인들은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러한 지역의 하나가 상주의 중모현 기미외리와 추현리(湫縣里)(세종 당시의 지명, 현 모동면)이다. 또한 성리학(性理學)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백자제작에 필요한 원료의 조건을 갖춘 곳의 한 곳이 경상북도 상주지역이었으므로 강진의 장인들이 이곳으로 이동했으리라 사료된다. $\ulcorner$태종실록$\lrcorner$(太宗實錄)에는 경상도 상주의 중모, 화령 등의 특정지역을 열거하면서 왕실소용기명 제작을 위해 중앙에서 감독관이 파견된 기록으로 보아 15세기 초의 상주의 자기 제작상황을 알 수 있다. $\ulcorner$태종실록$\lrcorner$(太宗實錄) $\ulcorner$지리지$\ulcorner$ (地理志)에는 추현리와 이미 외리를 언급하면서 상주의 자기제작의 위상을 짐작하는 기록이 언급되면서 전국의 상품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ulcorner$경상도지리지$\lrcorner$(慶尙道地理志)에는 상주가 8곳으로 1/3의 자기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ulcorner$경상도지리지$\lrcorner$(慶尙道地理志)에는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와 동년대에 동일한 목적으로 찬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ulcorner$경상도실록지리지$\lrcorner$(慶尙道實錄地理志)에는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와의 비교를 해보면 상 중 하품의 통합 9개소가 삭제되어 있고, $\ulcorner$동국여지승람$\lrcorner$(東國與地勝覽) 에서는 자기소와 도기소의 위치가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첫째, 15세기 중엽 경제적 태평과 함께 백자의 수요 생산이 증가하자 군신의 변별(辨別)과 사치를 이유로 강력하게 규제하여 백자의 확대와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둘째, 동기(銅器)의 대체품으로 자기를 만들어 충당해야할 강제성 당위성 상실로 인한 자기수요 감소를 초래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셋째, 경기도 광주에서 백자관요가 운영되었으므로 지방인 상주지역에도 더 이상 백자를 조달받을 필요가 없이, 일반 지방관아와 서민들의 일상용기 생산으로 전락하여 소규모화 되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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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실습에 대한 방사선 전공 학생들의 인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erception of Students in the Radiation Study on the Clinical Practices)

  • 이병렬;김현길;윤명관;이기종;차상영;임청환
    • 대한방사선기술학회지:방사선기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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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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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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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임상실습은 전공분야에 관한 실제적 경험을 의료기관에서 현장 실습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이에 임상실습이 진행되는 가운데 임상 지도강사와 학생의 임상실습에 관한 인식을 비교 연구하고자 한다. 수도권에 소재하고 있는 방사선을 전공하는 재학생 중에 2013년 임상실습을 마친 학생을 대상으로 하였다. 본 연구를 위해 고안된 설문지를 사용하여 진행하였으며, 회수된 설문지 275부를 통계프로그램 SPSS(12.0 version)을 사용하여 빈도분석, 교차분석, 카이제곱 검정, McNemar검정을 실시하였다. 방사선 전공을 선택한 동기는 높은 취업률 때문(44.0%)이고, 학과에 대한 만족도는 보통(53.1%)이라고 대답하였다. 8주의 임상실습 기간에 대해 51.3%가 적절하다고 인식하였으며, 임상실습 시기는 3년 과정의 학생은 2학년 겨울방학(47.3%), 4년 과정의 학생은 3학년 1학기(27.7%)로 나타났다. 임상실습 동안 학생들은 전문지식의 부족(32.4%)을 느꼈으며, 실습교육의 일부 내용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차이가 있다(68.4%)고 대답하였다. 임상실습교육에 대해 대부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중에서 임상실습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은 $3.94{\pm}0.89$로 나타났다. 실습의 실시 전과 후에 방사선사 취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84.1%에서 82.9%로 나타났다. 방사선사 취업을 원하는 이유는 직업의 안정성으로 실습 전 49.0%와 실습 후 46.0%, 취업을 원하지 않은 이유는 적성 및 소질에 맞지 않아서가 실습 전 37.0%와 실습 후 40.7%로 대답하였다. 취업을 위한 대학교육이 아닌 유능한 인재를 통한 방사선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내실 있고 만족도 높은 대학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고 교육대상자인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임상실습시기와 기간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기술ㆍ가정교과 운영실태와 평가 -경남지역 소재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Operation of Technology. Home Economics Curriculum of Middle and High Schools in Kyungnam Area)

  • 김상희
    •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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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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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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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본 연구는 경남지역의 중 고등학교에서 기술ㆍ가정교과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기술ㆍ가정교과의 운영과 교과내용 및 목표의 적합성 평가, 교과내용의 전문성 및 활용도 평가에 대하여 2002년 10월 16일부터 30일까지 235부를 우편조사 하였다. 기술ㆍ가정교과 담당교사의 주전공은 가정교과가 기술ㆍ산업교과보다 2배 가량 많았으며, 수업의 운영은 분담수업이 전담수업보다는 다소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었으나,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 비하여 전담수업 비율이 높았다. 실습수업에서 내용에 있어서는 중$.$고등학교에 큰 차이가 없으나 빈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중학교에 비하여 고등학교의 실습빈도가 적었으며, 특히 기술교과 영역은 1회도 없는 경우가 30%가까이 되었다. 수업시의 애로사항 등에서 교과자체의 수업시수의 부족이나 실습시간의 부족 등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나타났는데, 교사의 주전공이나 수업방식에 따라 애로사항의 순위에 차이가 있었다. 즉 기술교과 교사들이 가정교과 교사들보다 실습실이나 실습도구 등의 부족을 거론하고 있었고, 전담수업이 분담수업에 비하여 교과의 전문지식 부족을 거론하고 있었다. 교과내용과 목표의 적합성 평가는 대체로 보통수준을 유지하는 정도였으나, 교과내용의 진로교육 측면 기술ㆍ가정교과의 상호연계성 측면에서는 상당히 낮은 평가를 보여 통합교과로서의 위상이 심각하게 낮게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진로교육적 측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는 바이다. 교과내용의 전문성 및 활용도 평가에서 자신의 전공영역에 대하여는 높은 전문성과 활용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타 전공영역에 대하여는 낮은 인식을 보이고 있어서 전담수업을 할 경우 수업의 질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컴퓨터영역은 각각의 교사가 나름대로의 전문성과 가장 높은 활용도를 평가하고 있어서 기술교과와 가정교과 영역을 매개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앞으로 8차 교육과정의 개정에서 기술ㆍ가정교과는 수업시수가 축소되더라도 분리할 것인지, 축소된다면 현행의 통합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조사대상교사들의 태도는 반반이었다. 분리 시 요구되는 수업시수는 주당 각각 2시간이 가장 많았는데, 각각 주당 2시간의 수업시수는 하나의 교과목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시수로 보여진다. 본 연구를 통하여 기술ㆍ가정교과가 제대로 정체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분리되어 독립교과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윽적 여건이 그러하지 못하다면 통합교과로서의 체계성이나 담당교사들의 확실한 보충교육, 충실한 실습수업이 될 수 있는 여건의 조성, 교사들의 수업 질 제고를 위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노력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기술ㆍ가정교과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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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D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식물공장용 배지의 멸균 효과 (Effect of the Nematode Sterilization of Nursery Medium using QRD Microwave in the Plant Factory)

  • 김진현;김태욱;이근우;하유신;이재현;김경민
    • 생물환경조절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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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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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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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에서 사용한 QRD(Quadratic Residue Diffusor) 마이크로파는 일반적인 마이크로파와 달리 파장의 위상차를 변화시켜 균일한 살균을 유도할 수 있어 저전력으로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소비가 적은 QRD 마이크로파를 이용하여 식물공장에 이용되고 있는 배지를 멸균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얻은 결과는 아래와 같다. 마이크로파의 조사 출력에 따른 배지의 외적변형은 배지 내의 수분의 함유량과 마이크로파 출력을 2~8kW까지에서 우레탄스폰지와 암면은 외적변형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PDA고체배지는 2kW 출력에 60초와 180초에서는 배지가 녹지 않았고, 그 외 처리에서는 전부 배지가 녹았다. Bacillus sp.와 Burkholderia sp.에서 마이크로파의 조사 출력과 처리시간에 따른 균주 표면 온도는 차이가 나타났다. 마이크로파의 조사 출력과 처리시간에 따른 균주 멸균 실험은 마이크로파의 출력 2kW에서 시간과 관계없이 Bacillus sp.와 Burkholderia sp.는 모두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마이크로파의 출력 6kW에서는 Burkholderia sp.의 60초 처리를 제외한 모든 실험구에서 멸균되었으며, Bacillus sp.는 모든 실험구에서 사멸되었다. 마이크로파의 출력 8kW에서 시간과 관계없이 Bacillus sp.와 Burkholderia sp.는 모두 멸균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균주를 각각의 배지에 오염시킨 후 마이크로파를 처리한 배지 내의 온도는 처리시간 60초 지난 뒤에는 우레탄스폰지와 암면배지에서의 온도가 $100^{\circ}C$ 이상으로 유지되어 대체로 60초 부터 멸균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따라서 식물공장내에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Bacillus sp.와 Burkholderia sp.는 본 실험에서 사용된 QRD 마이크로파로 충분히 멸균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헬기 탑재용 전자장비의 동특성 분석 절차 (Dynamic Characteristic Analysis Procedure of Helicopter-mounted Electronic Equipment)

  • 이종학;권병현;박노철;박영필
    • 한국소음진동공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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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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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9-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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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기동중인 헬리콥터는 공기역학적인 현상에 의하여 발생하는 불규칙 진동과 회전날개의 작동으로 인한 정현파 진동이 합성되어 발생하는 진동, 작업 및 착륙 시 발생하는 충격, 그리고 갑작스런 기동 시 발생하는 가속도와 같은 동적 하중에 노출 된다. 이때 발생하는 진동과 같은 동적 하중은 기체내부로 전달되어 헬리콥터운용에 필요한 전자장비를 가진 한다. 과거에 이러한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진동크기 감쇠시키기 위한 완충기를 전자장비의 장착대에 적용하여 왔다. 그러나 헬리콥터의 경우, 저주파에서 정현파 가진이 발생하므로 완충기 적용은 오히려 장착 플레이트 및 전자장비 부품의 파손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완충기를 제거한 장착대를 동적 하중에 강건하며 전자장비에 전달되는 진동크기를 최소화 하도록 설계하였다. 완충기를 제거한 장착 대를 적용 시, 무게와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전자장비를 기체에 체결하는 나사 수가 적어짐에 따라 체결작업에 필요한 시간이 감소되는 장점을 갖는다. 최적화 해석에 적용되는 동적 하중을 선정하기 위하여 진동, 충격, 가속도하중을 비교 분석하여 가장 결정적인 동적 하중인 진동에 의한 하중을 선정하였다. 전체모델 유한요소 해석을 통하여 전자장비의 동적 거동을 분석하고 최적화 해석에 필요한 단순화 모델을 구축하였으며, 모달 테스트를 통해서 동특성을 검증하였다. 위상 최적화를 적용하여 강성대비 체적비가 큰 장착대의 형상을 도출한 후 고유진동수, 응력을 제약조건으로 무게가 최소화 되도록 하는 파라미터 최적화를 수행하여 장착대의 최종 형상 및 치수를 결정하였다. 개선모델은 체적 및 질량이 약 13 % 감소하였으며 사용시간은 규격대비 9.2배 증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최적화된 장착대를 운용중인 실제 장비에 적용하여 진동환경에 대한 안정성을 평가하였다.

해양산업 클러스터와 항만도시재생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 부산 북항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rrelation between Marine Industry Cluster and Port Regeneration - Focused on the Busan North Port -)

  • 리윈장;양명인;전수아;어영호;최태영
    • 한국항만경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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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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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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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한국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선진국로서 대외무역항로와 해양경제가 내륙국가에 비하여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다. 사회 변화에 따라 원래의 항만지역은 다양한 원인으로, 일부 병폐가 점차 사람들의 사야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과 손상을 받는 것은 항만지역 해양산업 클러스터의 경제이율과 미래 발전 공간이다. 본 연구는 해양산업 클러스터와 항만도시재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였다. 정량분석 각도에서 재생디자인을 분석해 나가며 항만도시재생을 통하여 해양산업 클러스터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필요성 및 중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이론적 배경을 고찰하여, 세계적으로 잘 된 항만도시 사례 분석을 통해 연구대상지 부산 북항의 현황을 맞춰서 분석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하여 다시 해양산업 클러스터와 항만도시재생의 데이터로 실증분석을 하였다. 본 연구 사례조사와 실증분석의 결과를 보면 해양산업 클러스터와 항만도시재생 간 실제로 향상시키고 상호작용한 관계이다. 연구를 통해 부산 북항재개발사업을 디자인적, 환경적, 경제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지역 발전의 우세를 찾을 동시에 부산지역 해양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느 나라나 항만도시든지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발전은 해양산업 클러스터의 활성화를 촉진할 수밖에 없으며, 마찬가지로 항만지역이 어느 정도 발전하면 자연히 물리적 여건상 낙후되어 지역발전에 장애가 생기게 되는데, 항구도시의 재생을 통해 이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해결할 수 있다.

권구현과 한용운 시조의 문학사적 의의 - 1920-1930년대 시조부흥운동의 재인식 - (A study on Significance of Literary History in Kwon Goohyeon's and Han Yongwoon's Sijo)

  • 여지선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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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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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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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시조는 우리 민족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장르이다. 특히 1920년대-1930년대에는 최남선, 주요한, 이병기, 이은상 등의 국민문학파에 의해 시조부흥운동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카프문인 권구현과 비문단인(非文壇人) 한용운 등도 시조에 지극한 관심을 드러내었다. 카프 동인이자 아나키스트였던 권구현은 ${\ulcorner}$흑방의 선물$\rfloor$(1927)을 발간하였는데, 이 시조집은 최남선의 ${\ulcorner}$백팔번뇌$\rfloor$(1926)와 함께 20년대에 발간된 단 2권의 개인 시조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최남선을 비롯한 국민문학파의 시조부흥운동만 주목되고, 권구현의 시조집은 조명 받지 못했다. 이는 해방 이후 한국문단이 반공이데올로기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나, 도리어 그가 카프동인이자 아나키스트였다는 사실은 '프롤레타리아 시조'(조운, 1927), '시조형의 프로시'(박영희, 1959)를 개척한 성과를 남았다. 비문단인 한용운은 ${\ulcorner}$님의 침묵$\rfloor$(1926) 시인으로 주목되어 시조시인으로는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시조는 독립운동가 한용운, 승려 한용운 등 그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아내기에 충분하였다. 한용운의 시조에 대한 애정은 첫 발표작인 <무궁화를 심고저-옥중시(獄中詩)>(1922)가 ${\ulcorner}$님의 침묵$\rfloor$보다 4년이나 앞선 것과 자유시 창작이 부진했던 1930년대에 시조창작을 지속한 데에서 알 수 있다. 이 같은 한용운의 시조는 '전통장르 시조'가 유학자 및 유학의 세계관을 넘어서 승려 및 불교 세계를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 있다. 본고는 권구현과 한용운의 시조 연구를 통해서 1920년대-1930년대 시조의 위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전통장르 시조는 1920년대-1930년대에 국민문학파 뿐만 아니라 카프문인 권구현과 비문단인 승려 한용운 등 문단의 전반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로써 본고는 당시 시조창작이 카프의 안티세력에 의한 부분적인 운동이 아니라 1920년대-1930년대의 시대정신에 의거한 카프문인, 승려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전반적인 운동이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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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도성의 구조와 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An Investigation into the Structure and Formation Process of the Capital of Balhae)

  • 김진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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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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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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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바둑판식 좌우대칭구조로서 궁성 - 황성 - 외성의 3중성 구조를 지닌 상경성은 발해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전범적인 도성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발해 도성제도의 변천과정은 발해 중앙행정체제의 완비로 발해정체제도 보편화과정의 단계적 표지라고 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대상은 상경성으로, 그 구조는 중원의 수당장안성(隋唐長安城)과 그 형식면에서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상경천도 당시 수당장안성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상경성 발굴결과와 선학들의 연구결과를 검토해 보면, 상경성은 수당장안성의 외적 구조만이 아니라 그 내면에 투영되어 있는 조영원리도 수용했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당시 발해의 국력수준에서 현재와 같은 조영이 불가능함을 주장했던 단계별축조설은 궁성의 중심점인 2호 궁전과 3~5호 궁전 사이에서 조영시기의 차이를 발견할 만한 층위가 확인되지 않은 점, 상경성 전체가 동일한 영조척에 의해서 계획되었다는 점, 그리고 3조제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점 등의 측면에서 좀 더 깊이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결국 상경성 조영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문왕 치세 당시 국가의 운영원리가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따라서 상경성의 조영과 그 원리는 초축 당시 상당한 정도로 중원문화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전제하는 것이며, 상경성이 지니는 위상과 구체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더 나아가 이것은 국가의 통치체제가 마련되고 사회전반으로 투영되었으며, 그가 구상하는 천하관(天下觀)이 발해국 전체로 확대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구(新舊) 관념의 교차와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 (The Conceptual Intersection between the Old and the New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al Knowledge System)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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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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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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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고는 서양 근대 문명 수용 초기(1890~1910)에 발생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을 중심으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을 역사의미론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한국의 근대를 성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에서 신구 관념을 놓고 벌어진 주체 간의 투쟁은 전통개신론자들과 문명개화론자들의 주장에서 첨예하게 드러났다. 서양의 충격에서 비롯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은 우주 자연으로부터 사회 정치체제, 학술?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였지만, 전통 지식 체계를 이해하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신구 관념에 따른 전통 지식 체계의 구축과 변용과정에서 문명개화론자들에게 '구(舊)'는 단순히 과거의 '지나간', '오래된'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제거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 건설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전통개신론자들에게 '구(舊)'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이념 속에서 다시 '신(新)'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함하고 있는 '개신(改新)'의 대상이었다. 박은식의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이나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은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新學)'으로 재편하려한 대표적인 시도였다. 보편성과 객관성,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는 근대적인 학문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新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성학(聖學)으로서의 위상은 탈각되었고, 신앙과 종교적 전통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과 '구학의 신학화' 과정에서 신구 관념의 교차가 발생하였다. 여기서 특히 신구 관념의 교차를 가능하게 한 '실(實)(학(學))'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전후 발간된 다종의 근대 매체는 신구 관념의 다층적 전개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전통 지식 체계가 신학(新學)으로 변용될 수 있었던 계기로서 '실학'이라는 개념적 준거틀이 작동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 실학이 지칭하는 대상은 대체로 서양의 학문인 '신학(新學)'을 표상하고 심지어 등치되기도 했지만, 전통개신론자들은 문명개화론자들이 점유하였던 '실학' 개념과 그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들은 과학 기술에 압도되어 점차로 거세되어가던 전통적 가치를 '신학' 수용의 토대로 인식하고, '실학(實學)'을 개념을 준거로 하여 '신학(新學)'을 재전유(再專有)(re-appropriation)하였다. 일제의 강점이 구체화 되어 전통 지식 체계의 주체적 변용 시도는 일정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구학의 신학화'는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가 지닌 모순과 문명개화론의 탈주체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도덕 원리와 경쟁 원리가 충돌하고 '진화'와 '진보'가 대세인 현실에 대응하려했던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는 이미 분리될 수 없는 도(道)와 기(器)를 분리 가능한 것으로 상정해야만 성립되는 모순을 안고 있었고, 문명개화론은 서양을 내면화하여 자기 비하와 멸시로 주체의 균열을 야기하고 전통 지식 체계로부터 단절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