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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석가설법도의 사천왕 도상과 배치형식 고찰 (Study on Picture Image and Change of the Four Devas of Sakyamuni Buddha painting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 김경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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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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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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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그린 불화에서는 조선 전반기에 다문천(多聞天)이 드는 지물에 변화가 생긴다. 고려시대까지 부처의 오른편에서 탑(塔)을 든 다문천왕은 조선 전반기에 들어와 비파(琵琶)를 드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원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1330~1336년)" 변상도에서 확인된다. 불화에서 다문천이 드는 탑이 몽구스(보서(寶鼠))로 변하는 지물의 변화는 티베트 사찰인 철방사(哲蚌寺), 오둔사(吳屯寺), 백거사(白居寺)에서 처음 벽화로 나타난다. 조선에서도 원각사지십층석탑 1층 탑신 〈석가설법도〉에서 지물의 변화를 보이는 새로운 배치의 사천왕이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조선 전반기 불화에서 탑과 비파를 든 사천왕의 위치는 좌우가 혼용되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티베트계 사천왕의 영향으로 대체로 파악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티베트계 사찰벽화에서 나타나는 사천왕 도상이 이전의 중국 내륙에서 나타나는 사천왕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여 티베트계 사찰에서 나타나는 사천왕 도상을 중심으로 그 현황을 파악하고, 조선 전기에 나타나는 사천왕 도상이 티베트계에서 연원을 가지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 전반기에 사천왕상의 지물과 위치가 새로운 도상이 확산되는 현상과 더불어 일정기간의 도상 혼용 현상에 대해 그 원인과 이유를 당시 유통되었을 판본을 중심으로 찾고자 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묘법연화경경변상도(명 1432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사천왕 도상과 "제불세존여래보살존자명칭가곡(1417년)"의 사천왕 도상은 다른 형식을 보여 준다. 이것은 주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임에도 서로 다른 판본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그러므로, 조선 전반기 불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사천왕의 지물이 다른 두 가지 판본의 경변상도에 의해 도상의 정형이 확보되지 않은 과도기의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은 티베트불교미술이 중국 내륙에 전파되면서 전통적인 중국 사천왕도상과 티베트계 도상의 혼용이 명대 지속되는 가운데 이러한 전환기 미술이 조선 전기에 유입된 특징이라 하겠다. 따라서, 조선 전반기 사천왕의 다양한 도상 현황은 일괄적인 도상이 정착된 시기가 아닌 다양성을 보여주는 조선 전반기 불교미술의 특징을 공유한다 하겠다.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 4단지 문지 출토 소조편(塑造片)을 통해 본 회암사 사천왕상 (Four Heavenly Kings Statues of Hoeamsa in the Early Joseon Dynasty: Seen Through Clay-Fragments Excavated From the Yangju Hoeamsa Site)

  • 심영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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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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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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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회암사지 발굴조사 중 2001년에는 4단지 문지에서 사천왕상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조편들이 출토되었다. 회암사 사천왕상은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있었던 여말선초에 4단지 문이 건립되면서 조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따라서 회암사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연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양주 회암사지 4단지 문에 봉안되었던 사천왕상의 특징 및 도상과 조성 시기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우선 출토 소조편을 천왕문에 봉안된 조선시대 사천왕상들과 비교하여 각 편의 대략적인 위치와 기능을 밝혔다. 또한 4단지 문지의 크기와 평면 형태를 조선시대의 다른 천왕문과 비교하여 회암사 사천왕상은 입상이었을 것이며 그 크기는 또 다른 입상인 법주사 천왕문의 사천왕상과 비례했을 것으로 보았다. 회암사 중창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4단지 문의 건립 완공 시기는 1376년과 1473년의 두 시기 중 하나로 볼 수 있고 회암사 사천왕상의 조성 시기 역시 이와 연동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출토 소조편 가운데 화염형 장식편은 조선시대 사천왕상 보관의 일반적인 장식 요소로서 고려시대에는 나타나지 않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편의 존재는 회암사 사천왕상의 조성 시기가 고려시대보다는 조선시대일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유구 분석을 통한 건축사 연구에서도 4단지 문의 건립 시기를 대체로 15세기 후반으로 보는 의견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암사 사천왕상은 이후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도상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새로운 전통으로서 정립되었다는 점에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는 또한 거꾸로 4단지 문지의 건립 시기를 15세기 후반으로 보는 건축사학계의 의견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포늪 지역에서 버드나무류 군집의 현존식생도, 현존량 및 1차 생산성 (The Actual Vegetation Map, Standing Crop Biomass and Primary Productivity of Salix spp. in the Upo Wetland)

  • 김태근;이팔홍;오경환
    • 한국습지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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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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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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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버드나무속의 분포 현황과 생산성을 조사하여 버드나무속 군집을 보전하고 생태공학적으로 이용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서 2005년 4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버드나무속의 군집별 분포 면적, 현존식생도, 현존량, 상대생장 및 1차 생산성을 조사하였다. 1. 우포 지역에 분포하는 버들류 7종류 중 선버들이 우점종이고 왕버들이 아우점하였으며, Salix 군락은 선버들, 왕버들, 버드나무, 선버들-왕버들, 왕버들-선버들, 선버들-버드나무 군락 등 총 6종류였다. 2. Salix 군락의 분포 면적은 선버들 군락이 28.46 ha로 가장 넓고, 선버들-왕버들 군락, 왕버들-선버들 군락이 각각 6.12 ha, 선버들-버드나무 군락 2.92 ha, 왕버들 군락 1.86 ha, 버드나무 군락 0.81 ha 등의 순이었다. 3. Salix 군락을 구성하는 선버들은 수령 5~13년, 수고 4.1~7.2 m, DBH 3.0~14.0 cm 등이고, 왕버들은 수령 2~36년, 수고 3.5~10.1 m, DBH 3.2~26 cm 등이었다. 4. 선버들의 현존량은 408 ton 이었으며, 왕버들의 현존량은 336 ton 이었다. 5. 선버들의 연순생산성은 $235g\;m^{-2}yr^{-1}$이고, 이를 우포지역으로 환산한 연순생산량은 $86.4ton\;yr^{-1}$였으며, 왕버들은 $1,006g\;m^{-2}yr^{-1}$$80.3ton\;yr^{-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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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가>에 대한 접근 방식 재고 - 편찬자의 의도를 중심으로 - (Reconsidering the Approach to )

  • 조하연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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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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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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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삼국사기> 편찬자의 의도를 중심으로 유리왕에 대한 전체기록 속에서 <황조가>가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황조가>가 등장하는 유리왕의 초기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과 <삼국사기>의 기본적인 서술 방식에 비추어 <황조가>의 삽입이 이질적임을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편찬자가 이 노래를 기록한 이유를 중심으로 이 노래의 의미를 탐구한 연구가 의외로 드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논문에서는 유리왕에 대한 편찬자의 인식, 유리왕에 대한 전체 기사의 양상, 해당 부분의 원문 재해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즉 <삼국사기>의 편찬자는 굳이 직접적으로 논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유리왕의 내면이 담긴 취미로서 <황조가> 부르기를 소개하여 그가 겪은 실패와 이후의 통치에 나타난 불안과 실수들이 모두 충분한 자질을 다듬지 못한 인간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자면, 유리왕이 평소 불렀던 짧은 노래로써 유리왕의 삶의 한 단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편찬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황조가> 최고(最古)의 향유자를 넘어 우리가 지향하는 최고(最高) 수준의 향유자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향유는 문학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여 의미를 찾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편찬자의 의도를 추적함으로써 소중한 문화유산인 <황조가>가 지닌 문학사적, 역사적 의의를 자세히 드러내고, 이를 온전히 보유하고 보전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유리왕의 삶 전체와 이 노래에 담긴 유리왕의 내면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영화 <왕의 춤>을 통해서 본 권력 수단으로서의 예술 (The arts as means of absolute royal authority through the movie Le Roi danse)

  • 강지원
    • 트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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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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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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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 제라르 꼬르비오의 영화 <왕의 춤>은 17세기 프랑스의 궁중을 배경으로 루이 14세가 어떻게 강력한 절대군주, 태양왕 루이 14세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존했던 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바로크시대의 예술 애호가였던 루이 14세가 예술을 어떻게 즐기고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했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고 있는 모습은 역사적 사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 본 연구는 영화가 묘사하는 당시의 예술계와 역사적으로 고증된 예술계를 비교하면서, 과연 영화가 말하고자 한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 한다. 언뜻 영화는 루이 14세에 대한 영화로 소개되는 듯하다. 하지만 보다 자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던 궁정 음악가 장 바티스트 륄리의 관점에서 그려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제라르 꼬르비오는 당시 예술과 예술가들의 모습을 한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리려 했다. 그리고 륄리에 비견되어지는 극작가 몰리에르의 모습 또한 영화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지금도 위대한 극작가로 평가되는 몰리에르가 영화에서는 지금과 같은 평가를 기대하기 힘든 인물로 그리고 있다. 그의 문학적 업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모습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두 예술가의 비교는 영화가 사용하는 예술적 이미지의 핵심이 '아이러니'란 점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태양왕'의 이미지를 통해 루이 14세가 감추려 한 내면적 고통을 묘사하고, 이와 동시에 댄스 장면을 통해 루이 14세의 압도적인 예술을 향한 애정의 관점을 그려낸다. 이처럼 영화 <왕의 춤>이 사용한 화려한 미장센의 양면성을 본 연구는 '예술'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17세기를 들여다보는 아이러니한 장치로써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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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R 분자 마커를 이용한 왕대속 대나무의 유전적 다양성 및 계통 관계 (Genetic Diversity and Phylogenetic Relationship of Genus Phyllostachys by ISSR Markers)

  • 이송진;허만규;허홍욱
    • 생명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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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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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82-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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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ISSR분자 마커를 이용하여 왕대속 대나무의 유연관계를 분석 실시하였다. 전세계적으로 왕대속에 속하는 4종은 경제학적,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식물 자원중 하나이다. 총 11개의 ISSR 프라이머 중 9개의 프라이머에서 증폭이 일어 났으며 총 64개의 밴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ISSR분석결과 왕대속 4종의 대나무에서 70.49%인 43개의 다형현상이 나타났다. 4개의 분류군으로 분류된 왕대속 대나무의 집단내 다양성(Hs)은 0.092,집단간 다양성(Gst)은 0.499로 나타났다. 각 종에 대한 유전자 유동(Nm)은 0.559로 나타났다. 따라서 왕대속에 속하는 4종의 유전자 유동(Nm)은 아주 낮음을 알 수 있었다 4종의 분류군에 대한 유전자 다양성(Ht)은 0.291로 낮게 나타났으며 ISSR 마커로 명확하게 그들은 분류가 되었다. 또한 왕대속의 4종은 단일계통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환경농법용 외래 왕우렁이의 생태위해성 및 위해성 관리의 필요성 (Ecological Risk of Alien Apple Snails Used in Environmentally-friendly Agriculture and the Urgent Need for Its Risk Management in Korea)

  • 방상원;조미경
    • 환경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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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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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9-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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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국내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왕우렁이는 본래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외래종으로 국내의 토종 우렁이와는 다른 종이다. 왕우렁이농법은 논에서 지속적이고 높은 제초효과와 그에 따른 제초제 사용의 감소 및 비용의 절감으로 인하여 국내에서 많이 사용되는 친환경농법의 하나이다. 특히 최근 2008년도 3월에서 5월까지 조류독감의 전국적인 발생으로 인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오리농법의 사용을 자제하는 대신에 이를 대체할 농법으로 왕우렁이농법을 권장함으로써 왕우렁이의 사용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외래왕우렁이는 토종 우렁이와는 달리 알을 낳아 산란하기 때문에 대량증식이 용이하고 우화율도 95.8%로 높아 잠재적 해충으로써의 가능성이 높다. 이와 더불어 일본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에서는 이미 외래 왕우렁이로 인한 생태계 및 농업의 피해가 보고된 바 있고, 국제자연보전연맹은 왕우렁이를 "세계 100대 최악의 침입외래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친환경농법으로 외래 왕우렁이를 수입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겨울기온을 보이는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충남, 강원의 일부지역에서 왕우렁이가 자연생태계로 유출되어 월동하거나 서식하는 것이 발견되고 있어 타 국가에서와 같이 외래 왕우렁이에 의한 생태계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농림기관과 왕우렁이 농업 관련 단체들은 왕우렁이농법의 친환경적 이점과 최근 일부지역에 대해 실시된 월동조사에서 월동이 불가능하였던 연구결과를 내세워 왕우렁이에 대한 생태계 교란야생동 식물종으로의 지정을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국내 외에서 외래 왕우렁이에 의한 생태 및 농업적 위해성을 분석하고, 국내의 여건 변화에 따른 왕우렁이의 생태위해성을 제시하여, 왕우렁이에 대한 위해성 판단이 명확해 질 때까지 왕우렁이의 합리적인 사용과 함께 국가차윈의 과학적인 생태위해성 관리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