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역사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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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農樂)'과 '풍물(風物)'의 타당성 검토와 '농악(農樂)' 비판에 대한 반론 (The Checking the Validity of 'Nongak' and 'Pungmul', and Objection to the Criticism of 'Nongak')

  • 김정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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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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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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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글은 '농악(農樂)'과 '풍물(風物)' 두 용어의 합리성과 효용성에 관한 논의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사료검토를 바탕으로 한 통시적 고찰을 통하여 '농악'과 '풍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가를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사료를 인용하여 논의의 역사적 맥락과 근거를 확보하려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고찰을 기반으로 하여 현재까지 '농악'에 가해진 많은 비판적 논의들을 검토하고 그 오류를 지적하였다. 본론에서는 '농악'을 비판한 의견들에 대한 재반론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농악'과 '풍물', '풍물굿'과 '풍물놀이' 등의 용어를 포괄하여 그 의미와 합리성을 검토하였다. '풍물'은 조선시대부터 악기의 의미로 수백 년 동안 사용되어 왔고 현재에도 악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역사적 정통성을 고려할 때 공연양식으로서의 '농악'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를 나타내는 용어로서 매우 합리적이다. '풍물'이 한자말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만한 논거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 말이 한자말이라는 것은 재삼 강조해 둔다. '풍물굿'은 '풍물로 하는 굿'이라는 의미로 글자 그대로 보아서는 나름대로의 합리성은 인정되지만 1980년대 소수의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더구나 현장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풍물놀이'는 종합예술인 농악을 지칭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놀이, 제의, 연극, 음악, 무용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된 농악을 놀이라고 한정하여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악'은 농경사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 스스로가 창조하고 발전시킨 민중적 종합예술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전통성, 사용빈도, 인지도 등으로 보아서 가장 합리적인 용어라고 판단된다.

서울지역 공동체신앙 전승과정 고찰 조선시대 각사(各司) 신당(神堂)의 존재양상과 변화를 중심으로 (A Study of the Transmission of Community Religion in Seoul Focussing on the Shrine of the Authorities and the Change)

  • 오문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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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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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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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서울 공동체 신앙은 조선시대 각 관서에 속한 신당의 제사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각 관서(官署)의 부속공간으로 존재하던 신당의 제사 주체는 하급관리들이었다. 이러한 신당은 대개 부군당(府君堂)으로 불리웠다. 기록에 등장하는 부군당은 대개 1~3칸 정도의 규모이며, 내부에는 신앙의 대상인 부군을 그림으로 그려 봉안하였다. 역사기록에는 부군당의 제사대상이 최영장군이나 송씨부인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부군당의 제사대상은 각각 달랐다. 부군당의 제사 대상 가운데는 왕건, 단군, 남이장군, 제갈공명, 김유신, 임경업, 공민왕, 태조 이성계,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반, 남한산성 일대의 지역에 전승되는 설화의 주인공인 홍씨대감과 처첩, 임진왜란 이후 신으로 모셔지기 시작했던 관우와 제갈공명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조선시대 각 관서 신당의 의례를 오늘날 서울지역 마을굿의 양상과 정확하게 비교해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볼 때 굿과 고사의 형태가 공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관서 신당 의례는 점차 민(民)의 공동체신앙으로 자리잡아, 서울의 문화적 변동 맥락 속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본고는 조선시대 관서에 속한 신당의 존재양상을 살펴 보고, 관서 신당의 의례가 민간화되는 전승의 맥락을 장충동 관성묘, 방산동 성제묘, 서빙고 부군당의 사례를 통해 살펴 보았다. 방산동 성제묘가 민간화 되어가는 과정은, 군인들의 신으로 인식되던 신령 관우가 역사적 변화과정 속에 놓이게 되면서 군인들의 신에서 상인들의 신이 되었고, 이후 특정지역 상인들의 공동체적 신앙 대상이 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충동 관성묘는 남영 군인들의 부군당으로서, 관성묘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영신사(永信社)라 불리는 제사집단에 의해 제사가 전승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구성원이 된 이 일대 마을의 공동체신앙으로의 전승이 자연스럽게 계승되었다. 서빙고 부군당의 민간화 과정은 조선 후기 장빙역(藏氷役)의 변화와 맞물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근대 역사 경관의 보존과 철거 - 구 조선총독부 철거 논쟁을 사례로 - (Conflicts between the Conservation and Removal of the Modern Historic Landscapes - A Case of the Demolition Controversy of the Japanese General Government Building in Seoul -)

  • 손은신;배정한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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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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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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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최근 산업유산, 근대 문화 유산,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 등 기억의 경관들이 공공 공간으로 새롭게 활용되고 있다. 여러 유형의 기억의 경관 중 19~20세기에 주로 형성된 근대 역사 경관(modern historic landscape)은 근대사에 대한 평가 및 인식 변화에 따라 보존과 철거 간 논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경관이다. 본 연구는 1995년 철거된 서울의 구조선총독부 철거 논쟁을 사례로 근대 역사 경관을 둘러싼 보존과 철거 사이의 쟁점을 검토하고, 보존 및 철거를 결정하는 가치 판단 기준과 근대 역사 경관의 형성 방식을 탐구한다. 먼저 1980~1999년 사이 조선총독부 철거 논쟁을 다룬 신문기사, 뉴스, 토론 프로그램 자료와 관련 문헌을 검토하고, 철거 논쟁의 주요 쟁점으로 다음의 여섯 가지 항목을 도출한다: 상징적 위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견과 대응, 관련 국가의 반응과 개입, 재정적 여건, 경관의 기능과 이용 방식, 도시 역사 건축 정책 변화. 이를 기반으로 근대 역사 경관을 형성하고 보존 혹은 철거를 결정하는 중요한 가치로서 상징적 가치 간 대립 양상과, 근대 역사 경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비판에 대응하는 기능적 가치의 역할을 고찰한다. 특히 본 연구는 근대사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근대 역사 경관의 보존과 철거의 향방 또한 변화하지만, 오늘날에도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전히 상징적 가치라는 점에 주목했다. 근대 역사 경관은 오늘날 중요한 설계 대상지 중 하나로서 여전히 합의되고 해결되어야 할 역사적 쟁점을 갖는다. 본 연구는 근대 역사 경관의 가치를 상징적 가치와 기능적 가치로 나누어 평가하고, 그 배경에 자리한 사회적 맥락을 재검토했다는 점에서 동시대적 의의를 갖는다.

아토피 질환의 '한국적' 탄생과 부상: 대중적 지식활동의 역할을 중심으로 (Atopic Dermatitis and the Making of an Environmental Disease in Contemporary South Korea)

  • 이정
    • 과학기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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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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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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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논문은 아토피 질환에 대한 '한국적'인 이해와 대응을 낳은 역사적 과정을 살펴본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특이면역성 질환 아토피는 외국의 경우에 '환경병'으로 인식되는 우가 드물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토피는 '환경호르몬' 등의 위험요소들과 결부되며 표적 환경병의 지위를 갖고 있다. 아토피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사전예방원칙과, 매체중심이 아닌 수용자중심의 환경오염 관리라는 전향적 원칙을 내세운 2008년의 환경보건법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논문은 이 규제과정에 있어서 대중의 지식적 정치적 활동의 역할을 살펴본다. '아토피 = 환경병'으로 아토피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토피 아이들을 둔 아토피 엄마들이다. 이들은 의학과 독성학 등 과학계의 성과는 물론 본의 '아토피 아이, 지구의 아이'와 같은 환자조직의 활동경험과 성과를 이용, 대중적 호소력을 발휘한 '아토피 이론'을 제시했다. 이들은 과학적 불확실성을 전용하는 편, 한의학계, 생협, 민노당 등과도 지식 정치적 연대를 형성함으로써 환경보건법이라는 성과를 내게 된다. 이 논문은 이 과정을 검토함에 있어 '대중'이라는 주체가 성되어가는 역사성과 사회적 이슈 형성의 문화적 맥락에 관심을 돌린다. 이러한 연구는 위험규제나 정책연구 등에 역사적 역동성에 대한 논의의 단초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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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군인 배우자의 여성한부모로서 사회 재적응 경험 (Social Readjustment Experience of Military Widows as Single Mothers)

  • 이윤수
    • 한국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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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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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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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레질리언스 관점에서 '순직군인 배우자가 여성한부모로서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겪게 된 재적응 경험은 어떠한가? 순직군인 배우자의 삶에서 '순직'의 의미와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연구 질문을 가지고 순직공군조종사 부인으로 구성된 자조집단 ${\bigcirc}{\bigcirc}$ 회에 참여하여 여성한부모의 경험을 심층면담과 참여관찰로 탐구하였다. 현상학적 이론과 분석방법을 통해 순직의 의미와 본질을 살펴보았으며 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순직공군조종사부인의 특수한 취약성에 관한 경험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연구분석에 따르면 연구 참여자는 배우자의 순직과 함께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고군분투해 오면서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한다. 특히 자조 집단의 참여와 활동은 자신들을 의식해 주기를 바라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순직'에 대한 죽음의 가치와 평가, 과거에 대한 역사성은 레질리언스 보호요인 중 '신념 체계'가 되어 순직군인 부인들의 삶에 중요한 존재 의미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에 대한 논의는 유가족을 비롯한 군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국가 정책과 보훈처 및 군 조직에서 보다 실질적인 사회복지실천 서비스를 응용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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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환경디자인의 활성화 요인 및 특성에 관한 연구 - 일본 도쿄시의 주요 가로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ctivation Factor and Characteristics of Street Design - Focusing on the Famous Streets in Tokyo, Japan -)

  • 정수진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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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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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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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 연구는 가로 환경디자인의 활성화에 관한 연구로, 일본, 도쿄의 유명 가로를 그 대상으로 한다. 가로환경의 구성 요소는 크게 물적 요소와 비 물적 요소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물적인 요소에는 도시의 형태, 건축물, 가로의 형태, 오픈스페이스의 입지, 가로수, 가로 장치물 등이 있고, 비 물적인 요소로는 시설의 프로그램, 상품의 물류, 문화, 역사와 같은 공간 프로그램, 다른 지역과 차별화를 통한 개성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 등이다. 대상지로는 신주쿠, 시부야, 하라주쿠, 우에노, 이케부쿠로를 선정하였다. 조사결과, 대중교통수단과 거리 상으로 밀접한 연계성을 가지며 역사적인 맥락을 가지고있다. 물리적인 공간의 조작을 통하여 연속적인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비 일상적인 체험을 극대화한다. 이는 과정에서부터 기반시설을 확보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고자 하기 때문에 가능하며, 한편으로는 지역의 차별화를 위한 브랜드화 전략과 마케팅 수법이 적절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로 환경 내에서 가로 장치물의 역할에 의하여 이러한 활성화 요인들이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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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의 영화적 기억과 크로노폴리틱스 (Chronopolitics in the Cinematic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 박현선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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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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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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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논문은 일본군 '위안부'의 영화적 재현이 어떻게 일상의 영역에서, 그리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상상력'을 촉발하고 공통의 감각과 정동을 불러일으키는가 살펴보자 한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는 오랫동안 망각되었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야 공공 기억의 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러한 전환에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담론화를 가능하게 만든 국내외적 크로노폴리틱스(chronopolitics)가 존재한다. 이는 '시간의 정치학'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독특한 위상을 보여주는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영화적 재현은 역사적 크로노폴리틱스와 연속적이면서도 단절적인 이중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시각적 크로노폴리틱스를 드러낸다.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 재현의 크로노토프는 크게 4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1990년대 이전 일본군 '위안부'의 극적 재현들, 둘째, 증언과 역사쓰기로서 1990년대 후반 다큐멘터리, 셋째, 2000년대 들어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을 이끌어낸 극영화들, 넷째, 애니메이션 및 기타 장르를 포함하는 매체의 확산이다. 이들 중에서 '위안부' 문제를 대중적 극영화(fiction film)의 범주에서 표상하고 있는 첫 번째 국면과 세 번째 국면에 집중해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1990년 이전의 '위안부' 극영화들이 철저히 상업영화와 대중장르의 틀을 고수하며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성애화를 추구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영화들은 대중영화의 양식 속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실험해보고 있다. 특히, <귀향>,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등과 같은 2000년대 '위안부' 극영화들의 등장은 우리가 그간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본군 '위안부' 운동 등을 통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이슈에 대하여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이에 대한 '문화적 재현은 어떻게 가능한지' 등의 여러 문제를 제기해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2000년대 영화적 재현의 전략들에 주목하면서, 이 글은 멜로드라마의 대중 정치학, 피해자성과 폭력의 재현, 메타기억으로서의 일본군 '위안부' 극영화 등을 논의하고자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멜로드라마적 상상이자 메타기억으로서, '위안부' 극영화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통과해야 할 역사적, 정치적, 미학적 관문들을 보여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최근의 극영화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의 관계를 넘어서, 오래된 식민 구조를 해체하고자 하는 탈식민주의적 과제이자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트랜스내셔널한 프로젝트로 거듭나는 방식에 이 글은 주목한다.

조선총독부 시가지계획 관련 공문서의 분류와 평가 (Archival Appraisal and Classification of the Official Documents of the Government-General of Choson Related to Urban District Planning)

  • 이송순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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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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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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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현존 총독부 공문서는 이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영구보존문서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현존 문서의 실태는 부분적이고 불균등하여 기록(archives)으로서의 가치평가와 활용에 어려운 점이 많다. 본고에서 살펴본 시가지계획 관련 공문서 역시 이를 통해 일제 시기 진행된 시가지계획의 모든 상을 도큐멘테이션하는 데는 상당한 한계를 갖는다. 이에 이러한 불균형 잔존 행정기록에 대해서는 당대의 정책 제도 변화에 대한 컨텍스트를 파악하고, 이를 수행한 조직의 핵심기능을 종합하여 거시 평가의 틀을 만들어, 여기에 현존 문서를 배치하는 도큐멘테이션 과정, 이 과정에서 가치가 높은 기능과 관련된 기록이 소수라는 점, 즉 기록의 재현성이 불완전한 것을 보충하기 위한 다른 역사적 자료의 적극적 이용과 적극적인 기록수집 방안을 함께 강구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일제시기 도시계획 관련 공문서 중에서도 시가지계획관련 문서라는 하나의 문서군(series)에 대한 기록 평가를 시도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총독부 공문서 전반에 대한 평가 방법을 도출하기는 한계가 있으나, 시가지계획이라는 총독부 식민정책의 집행과정에서 생산된 문서의 맥락을 이해하여 기록의 가치를 평가함으로써 문서 활용에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총독부 공문서와 같이 이미 영구보존기록으로 결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역사기록에 대한 평가는 처분을 위한 평가로서의 기능은 갖지 못한다. 이에 역사기록에 대한 평가는 향후 기록의 접근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DB화나 정보콘텐츠화와 연계하는 방안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대건축의 '물질조직화' 개념을 활용한 통합설계교육방법론 연구 (A Methodology of Architectural Integrated Design Education based on 'Material Organization')

  • 김정수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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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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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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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문은 통합설계교육 방법론에 대한 연구로서 1990년대 물질조직화의 개념으로 작업하였던 건축가들 중 특히 FOA에 집중하여 건축관과 설계방법론을 고찰하고 이를 적용한 수업사례를 중심으로 통합설계교육 방법론으로서의 가능성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FOA의 설계방법론은 프로토타입에서 출발하여 건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물질로서 다루고 다이어그램의 위상학적 변환의 과정으로 이들을 조정하고 통합하여 하나의 건물로 일관성 있게 조직화하는 방법이다. 이를 실제 본인이 지도하였던 통합설계스튜디오의 설계방법론으로 적용하여 학생들의 설계과제를 진행하고 이를 분석하였다. 통합설계스튜디오는 대지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설계개념의 추출에서 시작하여, 기본법규사항과 무장애 설계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거쳐, 필요한 기술적 요소들을 적용하고 조정하면서 상세설계까지 발전시키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아 진행되었으며, 학생들은 물질조직화의 방법으로 여러 관련 이론과목에서 배운 지식들을 통합한 설계안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구조, 대지의 역사, 극장 시야각 등을 주요 물질 요소로 삼아 형태를 형성하며 학습한 지식과 설계안을 일관성 있게 통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에 FOA의 물질조직화를 기반으로 한 설계방법론은 통합설계방법론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고 판단된다.

더늠 개념의 역사적 변천 (Historical Transitions in the Definitions of Deonum)

  • 송미경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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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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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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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더늠은 그것이 더늠이라는 말로 명명되기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더늠이라는 말이 지칭했던 대상은 현재 더늠이라는 말로 부르는 대상과 같지 않았다. 더늠이라는 용어의 개념, 이것이 지칭하는 대상의 성격 및 범주에는 나름의 역사적 변천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더늠의 어원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시 추적해 보았다. 이 용어가 일상어로 쓰였을 가능성 및 판소리 외의 다른 예술 분야에서 쓰였을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본래 가락을 범범하게 지칭하는 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늠은 국악계에서 널리 쓰이는 '-드름'과 같은 범주에 드는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기팔명창 시대 초창기 및 그 이전에 통용되었던 '가락으로서의 더늠' 개념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차 약화되어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일상어로 쓰이던 더늠이라는 말이 판소리로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명창이 구사하는 독특한 가락을 지칭하는 정도의 용어로 쓰였으나 판소리가 예술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점차 독립적인 소리 대목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바뀌게 되었고, 전기팔명창 시대에는 이러한 용례가 완전히 일반화되었다. 한편 전기팔명창 시대에 더늠으로 인정되었던 소리 대목 대부분은 명창이 새로 만들어 판소리에 편입시킨 창작 레퍼토리, 즉 '창작으로서의 더늠'이었지만, 후기팔명창 시대로 접어들면서는 기존의 더늠을 탁월한 기량으로 소화해 장기화(長技化)한 인기 레퍼토리, 즉 '장기로서의 더늠'도 더늠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더늠의 용례에 일종의 분화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근대오명창 시대 및 그 이후에 더늠으로 인정받은 소리 대목 대부분은 '장기로서의 더늠'에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정노식은 더늠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조선창극사"의 서술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창극사"에는 '가락으로서의 더늠', '창작으로서의 더늠', '장기로서의 더늠' 용례가 모두 확인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