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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두행렬(街頭行列)과 전통연희 (Korea's Street Processions and Traditional Performing Arts)

  • 전경욱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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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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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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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행렬도는 묘 주인의 등급에 따라 인원수와 각종 대열 및 인원 배치가 규정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가두행렬에 동반되는 연희들은 대부분 산악 백희의 종목들이었다. 특히 안악 3호분의 악대는 고취와 횡취를 갖추고 있어서, 이 행렬의 국제적 교류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호위병, 의장대, 악대, 연희자를 갖춘 고구려의 행렬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어가행렬과 일치하므로 그 영향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가두행렬은 왕의 어가행렬이다. 연등회에서 왕이 봉은사나 흥왕사를 다녀올 때, 왕이 지나는 차도의 좌우에는 등산과 화수를 설치했으며, 그 가두행렬의 규모가 매우 컸고 다채로운 음악과 공연을 연행했다. 나례는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고려시대의 궁중의례에 수용되었다. 고려의 나례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가두행렬과 연희를 행했다. 그리고 정초에 풍물패가 행하는 지신밟기도 나례의 유풍이다. 조선전기의 궁중나례에는 방상시 12지신 이외에 판관 조왕신 소매 등 새로운 배역이 등장한다. 그래서 나례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모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환궁행사에서 왕이 탄 가마는 전후의 고취악대가 행진음악을 연주하고, 산붕이 인도하는 가운데 대궐을 향해 가두행렬을 진행했는데, 이때 각종 연희도 공연되었다. 이 환궁행사는 고려 의종 때의 환궁행사와 매우 유사하다. 조선시대의 삼일유가와 문희연은 양반층의 축제였다. 급제자는 악사와 연희자들을 대동하고 서울 시가를 3일간이나 돌아다니며 가두행렬을 벌이면서, 자기 가문의 경사를 축하하고 가문의 위세를 과시했다. 조선시대의 동제와 읍치제의에서는 사당의 신상이나 신대를 앞세우고 가두행렬을 진행했다. 중국의 마을제사인 영신새회가 후대에는 나례의 연문축역과 융합되었듯이, 한국의 마을제사도 지신밟기와 결합되어 마을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신대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가두행렬이 형성되었다. 수영야류의 가두행렬은 가면극 공연의 홍보 효과가 있었고, 참가자들의 일체감을 조성하면서 축제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북청군 토성리 관원놀이의 중심은 관원의 행차를 모방한 가두행렬이었다. 토성 관원놀이는 인명의 안과와 마을의 오곡 풍성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의 기능, 가두행렬과 여러 연희들을 통해 흥과 신명으로 즐기는 오락적 기능, 주민들의 단결과 화합을 조성하는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가두행렬은 자생적 가두행렬과 외래 기원의 가두행렬이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행렬도의 고취와 횡취, 고려시대에 상원이라는 연등회의 시기와 왕이 참석한 가운데 행해지는 교방가무희 및 백희 공연, 동제의 지신밟기 등을 통해서 국제적 교류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상원연등회는 중국에서 유입되었지만, 왕이 선대 임금들의 초상화를 모신 봉은사에 다녀올 때의 가두행렬과 그 노변에 설치되는 등산과 화수 및 수많은 등은 고려 연등회의 특징이다. 이상의 모든 행사에서 가두행렬은 축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고, 행렬의 중간이나 행렬이 끝난 후 펼쳐지는 전통연희의 공연에서 참가자들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가두행렬의 참가자들은 각 행사를 통해 문화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자기들의 역량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해신사 기본계획에 따른 신당건축 고찰 (A Study on the Basic Planning of the Nam-Hae Sin-Sa Architecture)

  • 김상태;장헌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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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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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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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2000년에 발굴된 영암 남해신사는 나라의 안녕과 구복을 위한 국가제사시설로 2001년 신당과 삼문을 복원하였다. 해신사는 바다의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남해신사와 동해묘, 그리고 서해신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해묘도 복원된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 복원된 남해신사의 신당과 삼문은 2000년 발굴도와 내용에 따른 완전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고, 관련 문헌과 고지도 분석, 그리고 발굴내용의 심층분석과 아울러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과 사례분석을 통하여 새로운 기본계획을 연구하게 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서 남해신사 추정 기본계획에 따른 신당건축 고찰에 대한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1. 남해신사는 국가에서 직접 운영한 국가 제사시설로 나라의 안녕과 기우를 지내는 악(嶽) 해(海) 독(瀆)을 대표하는 신당 건축이다. 특히 남해신사는 중국과 일본의 국제무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지리산 제단과 함께 호남지방의 중심적인 신당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2. 해신사에 대한 명칭은 남해신사, 동해묘, 서해단으로 정의되어 불리었다. 그러나 남해신사의 경우 조선 초기와 후기의 명칭이 문헌과 고지도 연구를 통하여 남해신사에서 남해당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해단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건축물이 없는 단으로 조성되었다가, 후기에 건축물이 조성된 사당형식으로 변하였음을 고지도 연구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었다. 3. 해신사에 대한 고지도 분석은 동해묘의 경우 맞배지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나, 서해단과 남해신사의 경우 팔작지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4. 2000년 발굴내용에 의한 용척 분석결과 나타난 다양한 용척의 사용은 고려시대 남해신사의 규모가 대사(大祀)의 규모로 개창되었지만 조선시대에 중사(中祀)의 규모로 중창되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즉 조선시대 중사로 중건하면서 용척의 척도로 조선시대 영조척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5. 상기의 연구결과에 따른 기본계획은 신당의 경우 팔작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3 : 2비율로 계획하였으며, 용두와 용미가 장식된 안초공, 내부의 운공과 파련대공 장식, 그리고 용두의 충량은 해신인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설임을 표현하였다. 중문간채와 대문간채의 경우 향교건축과 같은 규모와 구성으로 계획하였는데, 발굴내용을 기초로 하였으며, 대문간채 솟을 문의 경우 3칸을 솟을 대문으로 올렸다. 이는 대문간채의 측칸이 맞배지붕의 형태이므로 그 비례와 형태의 조화를 고려하였다. 6. 남해신사의 기본계획은 계룡산 중악단의 사례와 같이 신당과 중문간채, 대문간채에 이르는 2가지의 공간, 즉 신당공간과 준비 공간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남해신사 서쪽에 위치한 우물은 신당건축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대전의 앉은굿 음악 연구 - 신석봉 법사의 안택굿을 중심으로 - (A Study on Anjoon-gut Music in Daejeon - Focused on Sir Shin Seok-bong's Antaek-gut Music-)

  • 박혜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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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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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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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신석봉 법사(法師)에 대한 현지 조사를 통하여 앉은굿의 기초이며 핵심인 안택(安宅)굿의 음악을 연구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음악적 특징을 밝힐 수 있었다. 앉은굿의 경문(經文) 구송(口誦)을 위한 반주 악기로는 북과 꽹과리가 쓰이는데, 법사의 오른편에 놓인 북은 경문(經文)을 읊을 때 기본 장단을 규칙적으로 조용히 연주해 반주 역할을 하고, 법사의 왼편에 놓인 꽹과리는 경문 악절의 휴지부를 메우는 역할을 하므로 각 고장(鼓杖) 에 맞는 리듬 패턴을 다양한 변주 형태로 연주한다. 이와 같이 경문을 구송하다 법사의 호흡이나 경문의 내용에 따라 잠깐의 휴지부를 갖고, 그 사이를 꽹과리 변주 리듬으로 메우는 것은 국악 연주 방식 중 하나로, 합주 시 주선율 연주 악기들이 쉬는 사이에 다른 악기가 주선율을 이어서 연주하는 '연음형식(蓮音形式)'과 같다. 이 악기 반주에 맞추어 구송되는 안택굿 경문의 장단 주기는, 대체로 3소박4박의 '외마치 장단', 3소박8박의 '두마치 장단', 그 외에 '외마치 장단'과 같이 3소박4박의 리듬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 템포가 매우 빠른 '세마치 장단', 다양한 리듬패턴 없이 획일화된 리듬형을 일률적으로 막치는 '막고장', 그리고 그 일반적인 장단형에서 벗어난 '못갖춘 장단의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신석봉 법사는 안택굿 전반의 각 처에 걸쳐 '두마치 장단, 주기로 소위 그가 청(淸)이 라고 말하는 창(唱) 즉 소리를 하고 있으며, 오직 안택 마지막 처인 대문에서 구송되는 '퇴송경'만이 '외마치 장단' 주기로 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에 비교적 앞의 두 장단보다 그 템포가 빠른 '세마치 장단'과 '막고장'은 무당이 춤출 때와 신장대 잡을 때 경(經) 없이 악기 연주로만 행해졌다. 특히 춤출 때 연주되는 '세마치 장단'은 비교적 느린 템포에서 시작하여 점점 몰아치다가 다시 느린 템포로 돌아오는데, 이와 같이 우리 음악의 대표적인 빠르기 형식 중 하나인 느림-빠름-느림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음조직에 있어서는 구성음이 mi-la-do'-re'이며, 그 주요 음이 mi-la-do'의 완4도+단3도 음진행을 보이고 있는 메나리토리의 음구성이나 음진행과 같지만, 첫 음인 mi음을 떨고 re'에서 do'로 흘러내리는 시김새를 갖는 전형적인 메나리토리 시김새의 특징이 조금 약하게 보이고 있다. 이는 아마도 전 지역에 걸쳐 그 음악적 어법(語法)이 경상도에 비해 비교적 약한 충청도라는 지역적인 음토리의 결과일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안택굿 음악의 가사 붙임에 따른 리듬형태는, 비교적 그 템포가 다른 경문들에 비해 빠르고 la음이 곡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퇴송경'에서만은 오직 '실라빅(syllabic)'한 리듬형을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신코페이션(syncopation)'이나 '멜리스마틱(melismatic)' 식의 리듬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각 경문에 따른 음구성을 간략히 살펴 본 결과, 음구성은 일반적으로 la음의 비중이 크며, la음을 중심으로 la-do' 상행과 la-mi 하행의 단3도, 완전4도 음정의 음진행을 주로 보이고 있다. 또한 전체 곡의 빠르기는 M.M.♩.=116-184정도의 빠르기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굿 전반에 걸쳐서는 대부분 경문 구송에 알맞은 빠르기인 M.M.♩=120-140 사이의 템포 즉 '보통빠르기' 정도로 진행되었다.

'축원-굿춤' 판의 생성 국면과 사회적 성격 - 동해안별신굿의 경우 - (The Creating Situations and Social Characteristics of Gutchum-pan to Pray - Focused on Donghaeanbyulsingut -)

  • 전성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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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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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9-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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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동해안별신굿에서 무당과 마을 사람들이 직접 관계 하면서 생성되는 '축원-굿춤'판이다. 굿판의 흥을 돋우기 위해 굿거리의 말미 또는 굿거리와 굿거리 사이에 집단적으로 벌이는 '허튼춤판'과는 달리, '축원-굿춤'은 매 굿거리에서 축원무가 구연 중에 개별적이고 반복적으로 생성되므로 별신굿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춤이다. 그러므로 '축원-굿춤'판의 생성배경을 살피고, 그것이 어떠한 사회적 성격을 지니는지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제공업(機械制工業)이 확립되면서 많은 수공업 생산자들이 소비자의 입장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분배법칙은 다양한 마을굿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즉 굿에 필요한 제반시설과 도구 그리고 행위 등이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체제 속에 편입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전통적으로 굿에서 '정성'을 상징했던 시간과 행위 그리고 제물 등이 지닌 의미는 기계의 대량생산화와 자본의 흐름 속에 희석되었다. 그리고 별신 굿 기간 동안 행해지는 모든 가무악 연행은 자본/노동적 가치로 산출될 수있는데, 특히 '축원'이 '춤'으로 이어질 경우, 무당은 자본적 이익[별비]과 노동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재수굿'에 해당되는 '축원-굿춤'판에 포함된 '축원[말]과 춤[몸짓]'의 생산 활동은 동해안별신굿이 갖는 전통적인 제의적 맥락과 더불어 한국 자본주의의 문화적 맥락 속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축원-굿춤'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축원-굿춤'은 '마을공동체→소집단별 경쟁→개별적 경쟁'으로 이어진다. 둘째, '축원 무가' 구연이 지속적으로 반복될수록 이와 관련된 연행이 '굿춤'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셋째, 다양한 축원의 대상들 중에서 특히 어촌 사람들의 생업 활동과 관련된 직간접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경우 '축원→굿춤'으로 잘 연결된다. 넷째, 축원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집단은 반복적으로 '축원-굿춤'판에서 소외될 수 있다.

무의식의 창조성과 종교 :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Creativity of the Unconscious and Religion : Focusing on Christianity)

  • 김정택
    • 심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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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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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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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논문에서는 무의식의 창조성이 종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 했던 프로이트의 무의식관이 오직 자아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부문만을 포함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무의식의 범위에는 억압된 내용뿐만 아니라 의식의 문턱값에 이르지 못한 모든 심리적 소재가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인간 정신 역시 전적으로 개별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집단적 현상이기도 한 것이기에, 이러한 집단정신이 정신기능의 하부를 포괄하고 있고, 의식과 개인적 무의식은 정신기능의 상부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았다. 무의식은 자기조절의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융은 다양한 임상경험과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요구를 다시 거두어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융은 무의식이 지닌 자율성으로 보았으며, 이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무의식이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꿈이나 환상을 통한 상(像)들은 풍성한 관념뿐 아니라 감정을 포함하는 모든 것이다. 무의식의 이러한 창조적인 상들이 인간이 본래의 자기(Self)를 찾아나가는 '개성화의 과정'을 도와주고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아의식을 보상하는 무의식의 과정은 전체 정신의 자가조절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어 창조적인 방법으로 자율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융이 체험했던 종교란 바로 무의식의 창조성과 자율성에 의해 움직여지는 집단의식의 상들이 의식을 사로잡아 형성된 '누미노줌'에 대한 숙고의 자세이며, 종파란 바로 이러한 상(像)들이 제의(ritual)나 의식으로 굳어져 신앙 공동체로 형성된 것이다. 융은 종교를 최고, 혹은 가장 강력한 가치와의 관계로 파악하고, 이러한 관계는 양면적, 즉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불수의적인 것이기도 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나의 가치, 즉 어떤 에너지가 부하된 정신적 요소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힐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게 된다. 융은 인간 속에서 최대의 세력을 갖고 있는 압도하는 정신적 요소, 또는 그러한 심리학적 사실이 신(神)으로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융은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 개혁교회의 전통적인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자신을 헌신적인 그리스도교인 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에게 다가온 기독교는 지적(知的) 정직성도 부족했고 영적인 활력도 부족한 생명력이 사라진 습관적이고 관례적인 한 기관일 뿐이었다. 융은 12살 때 자신의 환상을 통해 만났던 극적인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무의식 안에 살아있는 신의 존재를 인식했기에, 일생을 통해 끊임없는 신학적인 질문과 삶 안에 얽혀있는 종교적 문제들과 대면했다. 이는 분명히 제도화된 그리스도교의 소생을 위한 융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이고 사랑이었음을 이 논문에서 밝혀보려 한다.

기무라씨 질환, 5 예 보고 (REPORT OF EXPERIENCE WITH KIMURA'S DISEASE)

  • 설대위;박윤규;이광민
    • 대한두경부종양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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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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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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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
  • 기무라씨 질환은 특히 두경부 부위에 피하 종괴를 일으키는 만성염증성, 증식성 질환이다. 저자들은 최근 치험하였던 본 질환 5 예를 한국외과 문헌에 처음으로 보고하는 바이다. 기무라씨 질환은 크게는 ALHE(Angiolymphoide Hyperplasia with Eosinophilia) 의 범주에 속한다. 본 질환의 병리학적 특징은 증식된 lymphoid follicles, eosinophilic infiltration 과 혈관의 증식성이다. 이 질환은 이하선, 악하선 및 상부 경부 부위등에 흔히 종괴를 일으키며 이들 종괴들은 피하조직 뿐만 아니라 타액선과 상부 경부 임파선에까지도 파고 든다. 저자들의 증례 중 한명에서는 서혜부에 종괴가 있었으며 새로이 증식된 혈관과 동상들 (Sinusoids) 로 인하여 혈관 분포가 매우 풍부하였다. 저자들 증례 5 명의 평균 연령은 35세이었지만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38세 이하이었다. 남녀비는 3:2 이었으며 증상의 평균 기간은 5.2 년이었다. 전례에 있어서 말초 혈액 소견상 Eosinophilia 가 있었다. 전례에서 다발성 종괴들을 보였으며 가끔은 대칭적이기도 하였다. 저자들이 시행한 치료 양상은 수술만 시행한 경우와 수술 및 스테로이드 홀몬요법 시행 경우가 각각 1례씩이었고 수술과 방사선조사 경우가 2례이었으며 나머지 1례에서는 수술, 스테로이드 홀몬요법 및 방사선조사의 복합치료를 실시하였다. 저자들은 기무라씨 질환과 ALHE 질환과의 관계를 고찰해 보았으며 기무라씨 질환의 치료 경험을 보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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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교합자와 I급 부정교합자에서 치아와 기저골의 관계에 대한 비교 분석 (COMPARATIVE ANALYSI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BASAL BONE AND TEETH IN NORMAL OCCLUSION AND ANGLE'S CLASS I MALOCCLUSION)

  • 문혜정;경희문;권오원;김정민
    • 대한치과교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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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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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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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 저자는 좋은 교합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치아와 기저골과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정상교합자와 Angle써 I급 부정교합자(비발치군, 발치군)의 경석고 모형상에서 최대치아근원심폭경, 기저악궁폭경 및 기저악궁장경을 계측하고 최대치아근원심폭경 합, 최대치아근원심폭경 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 비, 최대치아근원심폭경 합에 대한 기저악궁장경 비 및 최대치아근원심폭경 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과 기저악궁장경합의 비를 산출하여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최대치아근원심폭경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 비는 상악에서 정상교합군은 $46.9{\pm}2.6\%$, 비발치군은 $49.4{\pm}3.9\%$, 발치군은 $42.5{\pm}3.3\%$로 나타났으며, 하악에서 정상교합군은 $46.6{\pm}2.4\%$, 비발치군은 $47.5{\pm}4.0\%$, 발치군은 $42.6{\pm}2.6\%$로 나타났다. 2. 최대치아근원심폭경합에 대한 기저악궁장경 비는 상악에서 정상교합군은 $33.4{\pm}1.9\%$, 비발치군은 $33.9{\pm}1.8\%$, 발치군은 $28.7{\pm}2.5\%$로 타나났으며, 하악에사 정상교합군은 $34.4{\pm}4.3\%$, 비발치군은 $36.5{\pm}1.9\%$, 발치군은 $31.5{\pm}2.5\%$로 나타났다. 3. 최대치아근원심폭경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과 기저악궁장경 합의 비는 상악에서 정상교합군은 $80.3{\pm}3.4\%$, 비발치군은 $83.3{\pm}4.8\%$, 발치군은 $71.2{\pm}4.3\%$로 나타났으며, 하악에서는 정상교합군은 $81.0{\pm}5.2\%$, 비발치군은 $84.0{\pm}5.4\%$, 발치군은 $74.1{\pm}4.1\%$로 나타났다. 4. 최대치아근원심폭경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 비의 $95\%$ 신뢰구간은 상악에서 정상교합군은 $46.3-47.5\%$, 비발치군은 48.1-50.7, 발치군은 $41.7-43.3\%$로 나타났으며, 하악에서 정상교합군은 $46.1-47.2\%$, 비발치군은 $46.1-48.8\%$, 발치군은 $42.0-43.3\%$로 나타났다. 5. 최대치아근원심폭경합에 대한 기저악궁장경비의 $95\%$신뢰구간은 상악에서 정상교합군은 $32.9-33.8\%$, 비발치군은 $33.3-34.5\%$, 발치군은 $28.1-29.2\%$로 나타났으며, 하악에서 정상교합군은 $33.4-35.4\%$, 비발치군은 $35.8-37.2\%$, 발치군은 $30.9-32.1\%$로 나타났다. 6. 최대치아근원심폭경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과 기저악궁장경 합의 비의 $95\%$신뢰구간은 상악에서 정상교합군은 $79.5-81.0\%$, 비발치군은 $81.6-84.9\%$, 발치군은 $70.1-72.2\%$로 나타났으며, 하악에서 정상교합군은 $79.8-82.2\%$, 비발치군은 $82.1-85.5\%$, 발치군은 $73.1-75.1\%$로 나타났다. 7. 최대치아근원심폭경합, 기저악궁폭경, 기저악궁장경, 최대치아근원심폭경 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 비, 최대치아근원심폭경 합에 대한 기저악궁장경 비 및 최대치아근원심폭경 합에 대한 기저악궁폭경과 기저악궁장경 합의 비에서 발치군 남자의 기저악궁장경을 제외하고는 상하악간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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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1년간 서울대학교병원 교정과에 내원한 순구개열 환자의 내원 현황에 관한 연구(1988.3 - 1999.2) (The study on the cleft lip and/or palate patients who visited Dept. of Orthodontics, Seoul National University Dental Hospital during last 11 years (1988.3-1999.2))

  • 양원식;백승학
    • 대한치과교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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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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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7-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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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순구개열은 악안면 선천성 기형 중에서 발생율이 가장 높으며, 여러 선학들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순구개열의 발생빈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순구개열 환자의 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교정과의 순구개열환자의 내원동향에 관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저자들은 서울대학교병원 교정과에 내원한 순구개열 교정환자들의 연도별, 종류별, 성별, 연령별, Angle씨 부정교합군별 분포에 따른 역학적 특성과 국내병원에서의 수술시기 등의 치료현황에 대한 임상자료 등을 파악하고, 이를 순구개열 환자의 교정 진단 및 치료계획 수립에 중요한 기초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본 연구를 시행하였다. 1988년 3월 1일부터 1999년 2월 28일까지 서울대학교병원 교정과에 내원한 순구개열 환자(총 250명)와 그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초진시의 문진, 시진을 통하여 기록한 교정 chart및 cleft chart내용, X-tay film과 모형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본 병원 교정과에 내원한 순구개열 환자의 수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증가한 후 1992년까지 감소추세를 보였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비교적 일정한 추세를 보이다가 1997년 이후 현저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2. 내원한 환자를 순구개열의 종류에 따라 조사한 결과 구순열:구순치조열:구개열:구순구개열이 7.6:19.2:9.6:63.6의 비율을 보였다. 편측 대 양측의 발생빈도는 구순열은 79:21, 구순치조열은 77:23,구순구개열은 75.5:24.5으로서 편측의 발생빈도가 양측에 비해서 높았다. 그리고 편측성에서 좌, 우측간의 발생빈도는 구순열이 53.3:46.7, 구순치조열이 59.5:40.5, 구순구개열이 59.2:40.8 으로서 좌측의 발생빈도가 우측에 비해서 높았다. 3. 순구개열의 남:여 발생빈도는 구순열은 57.9:42.1, 구순치조열은 68.8:31.2, 구순구개열은 76.1:23.9 로서 남자의 발생빈도가 여자에 비해서 높았다. 그러나 구개열에서는 41.7:58.3으로서 여자의 발생빈도가 남자에 비해서 높게 나타났다. 4. 내원 환자를 연령군 별로 조사한 결과 7-12세 군이 $52\%$로서 압도적으로 많았고, 0-6세 군 ($20.4\%$), 13-18세 군($17.2\%$), 18세 이상 군 ($10.4\%$)의 순이었다. 5. 구순열의 봉합수술시기로는 0-3개월 군이 $60.3\%$로서 가장 많았고, 4-6개월 군이 $17.9\%$로 두 번째였다. 6. 구개열의 봉합수술시기로는 1-2세군이 $31.7\%$로 가장 많았고, 0-1세군은 $25.6\%$, 2-3세군이 $12.1\%$였다. 구개 및 상악 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5세 이상 군은 $11.6\%$를 차지하였다.7. 구순 반흔 제거수술시기로는 4-6세군 ($27.5\%$), 6-8세군 ($19.6\%$), 2-4세군 ($13.7\%$)이 $60\%$이상을 차지하여 초등학교 취학 전에 구순의 반흔을 제거하려 함을 알 수 있었다. 8. 비변형 교정수술시기로는 0-2세군 ($7.1\%$), 2-4세군 ($14.3\%$), 4-6세군 ($21.4\%$), 6-8세군 ($14.3\%$)으로 초등학교 취학이전이 $57.1\%$로서 최근의 조기 치료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9. 인두피판술은 평균 6세에 시행되었으며, 수술 시행 시기별의 차이를 보이지 않고 고른 분포를 보였다. 10. 내원한 환자를 순구개열 종류와 Angle씨 분류법에 의해 조사한 결과, 구순열군은 I급이 가장 많았고 III, II 급의 순이었으며, 구순치조열, 구개열, 구순구개열군은 III급이 가장 많았고, I, II 급의 순이었다. 그리고 III급의 발생빈도의 비율차이는 구순치조열은 $61.7\%$, 구개열은 $73.9\%$, 구순구개열군에서 $79.3\%$로서 구순구개열에서 압도적으로 III급의 발생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11. 모든 연령군에서 III급 부정교합의 빈도가 가장 많아서($72.7\%$) 전치부의 반대교합이 주된 내원 동기가 됨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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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진찬(奉壽堂進饌)의 무대와 공연 요소 분석 (Analysis of the Stage and Performance Elements for Bongsudang-jinchan Banquet in Joseon Dynasty)

  • 송혜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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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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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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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1795년 화성 행궁에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열린 봉수당진찬의 의례와 악무를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및 "정조실록", "홍재전서(弘齋全書)"등의 봉수당진찬 의례기록과 <화성능행도병>등의 도상자료, 일기체의 한글가사 작품인 이희평(李羲平)의 <화성일기(華城日記)>등의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무대와 공연요소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잔치의 주인공에게 충(忠)과 효(孝)의 의미를 담은 음악과 춤, 꽃과 음식, 술과 글을 예를 갖춰 올리는 궁중연향은 예악(禮樂)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의례로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고유한 음악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예'라는 상징적이며 총체적인 틀 안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던 연례의 음악과 춤들이 개별 악곡과 춤으로 해체되어 '작품화'되었고. 궁중음악과 춤의 철학이나 원리,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축소된 채, 음악과 춤의 전통은 형식과 예술적 표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1990년대 이후, 궁중의례 전통의 재현(再現)을 목적에 둔 연구와 행사가 추진되면서, 이와 연관된 공연예술 활동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봉수당진찬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무대화 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原典)의 재현(再現) 및 복원(復原) 문제, 완성도 및 예술성에 대한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으며, 지금까지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의주의 외형적 재현에 관심을 두었을 뿐, 무대조건이나 공연요소에 중점을 둔 심도있는 분석은 부족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 무대구성과 공연요소 중심으로 분석해 본 결과, 조선시대 궁중연향 중에서 유일하게 '행궁'에서 개최된 봉수당진찬은 '예악의 정치'를 의례와 악무로 구현하는 궁중연향의 기본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군신동락(君臣同樂)'의 친화의 비중이 높은 연향이었음을 밝혔다. 내연과 외연의 성격이 섞인 봉수당진찬에서는 가림막을 최소화하여 신분의 차서(次序)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원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삼면에 둘러친 휘장 안에 외빈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술과 음식, 음악과 춤을 다 같이 공유하도록 배치되었다. 또한, 연향공간의 상징성을 내포한 차일을 백관들의 공간에 치고, 임금이 솔선하여 선찬(膳饌)과 산화(散華)를 명함으로써 군신동연(君臣同宴)의 의미와 범위를 확장시킨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봉수당진찬이 '예악의 원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여느 궁중 연향에 비해 '정(情)'을 나누는 화친(和親)에 기반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봉수당진찬에서는 여느 내연에서보다 임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의주 외의 기록으로 전하는 여러 가지 상황 - 7작 이후에 정조가 신하들을 가까이 불러 나눈 대화, 신하들에게 음식과 꽃을 내림, 잔치를 주제로 직접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도 이에 화답하게 한 일 등-은 의주에 따른 단선적인 연향의 진행에 변화를 주고, 연향의 의미를 확장시키는데 한 몫 하였다. 이밖에, 봉수당진찬의 주악과 정재의 구성을 분석해 본결과 연향에서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움직임이 매우 절제된 것은 여느 궁중연향과 비슷하지만, 춤과 음악을 통해 구현된 소리와 색채감은 매우 다채로웠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봉수당진찬에서는 정조 이전에 치러진 내연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정재를 상연하였고, 이 중에는 새롭게 초연된 레퍼토리도 있었으며, 또 기존의 공연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선유락>이나 <검무> 등, 지방 관아 및 민간의 레퍼토리를 궁중연향으로 수용한 점, 풍류방에서 즐겨 연주되기 시작한 생황을 <학무> 와 연계한 것은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궁중연향의 '열린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담 '주인집을 망하게 한 하인'의 분석심리학적 이해: 트릭스터 원형을 중심으로 (An Interpretation of the Folktale 'the Servant Who Ruined the Master's House' from the Perspective of Analytical Psychology: Centering on the Trickster Archetype)

  • 노명선
    • 심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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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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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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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논문을 통해 한국 민담 '주인집을 망하게 한 하인'의 심리학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민담 속 주인과 하인의 대립은 보편적인 인간 정신의 문제로, 경화된 기존의 집단적 의식과 이를 보상하고 갱신하려는 새로운 의식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각도에서 설명해보자면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과 본능적인 측면 사이의 혹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대립이며, 자아와 그림자 사이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민담 속 주인은 애먹이는 막내 하인을 없애버리려 여러 차례 시도하지만, 하인은 꾀와 속임수를 써서 주인으로부터 음식과 말(馬), 막내 누이, 전 재산,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아 버리고, 이야기는 막내 하인과 막내 누이의 혼인 생활로 끝을 맺는다. 주인이 죽고 하인이 새로운 주인이 되는 대극반전(enantiodromia)은 낡은 집단적 의식이 파괴되고 집단적 무의식으로부터 올라온 새로운 의식이 지배적 위치에 서게 되는 것으로, 개인의 심리적 상황에서는 기존의 자아의 태도가 해소되고 새로운 태도로 변환되는 것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이야기의 중간 과정에서 하인은 그를 죽이려고 주인이 써준 등편지를 순박한 사람들을 이용해 새롭게 바꿔 써서 막내 누이와 혼인한다. 이 모습은 집단적 의식의 도덕관념에서는 부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아낙네, 꿀장수, 배고픈 중으로 상징되는 조선 시대 집단적 의식에서 무시되어오던 정신요소를 통합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인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의식성은 기존의 틀에 구속받지 않는 트릭스터적 특성을 갖기에 집단적 의식에서 무시되어온 정신적 내용을 통합하여 조선 후기 집단적 의식에 대한 보상과 대안으로서 제시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은 다시 하인을 죽이려고 하인을 가죽 부대에 넣어 나무에 매다는데, 가죽 부대 속에 들어가 매달렸더니 눈을 떴다는 하인의 속임수에 넘어간 소경이 대신 매달려 죽고 하인은 달아나게 된다. 주인과 하인의 대극 문제가 마침내 나무로 상징되는 전체 정신(Self)에 맡겨지자 소경이 제거되는 것은 트릭스터에 포함되어있는 맹목성, 어리석음, 탐욕적 요소를 구분하고 정화하려는 자기(Self)의 의도로 이해해볼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집단적 의식의 새로운 변화 혹은 새로운 자아의 태도를 상징하는 하인은 기존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주인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나 꾀 많은 하인의 활약상을 들으며 청중들은 유쾌함과 해방감을 느끼는 한편, 소경이 대신 죽고 주인집 식구가 몰살되고 하인이 주인이 되는 부분에서는 하인의 위험성과 통제 불가능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의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해외 유화들에 등장하는 트릭스터들 역시 철저히 이기적이고 오직 욕구를 채우고 위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무고한 존재들을 속이거나 죽게 만드는데, 이들 트릭스터를 처단하거나 교화하려는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그들은 달아나버린다. 그러므로 본 민담 역시 이런 원형적 그림자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의식이 통제하거나 의식에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그것을 외경하고 관조하도록 하는 목적 의미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릭스터는 기존의 구조와 질서가 경화되었을 때 보상작용으로서 무의식으로부터 올라오는 재생시키는(revivifying) 자연 에너지의 비합리적 발현 양상이다. 그 현상은 기존의 집단적 정신의 입장에서는 파괴적이고 비도덕적일 수 있으나, 도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보다 근원적 정신인 집단적 무의식의 기능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릭스터 원형상으로 볼 수 있는 하인은 변환을 가져오는 존재로 파괴성과 창조성이라는 양면성과 모순성을 지니고 있다. 본 민담의 유화들의 결말은 여러 갈래인데 이는 트릭스터의 양면성으로 인해 청중의 마음 반응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반영하며, 트릭스터 문제에 대한 무의식의 다양한 반응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트릭스터란 그만큼 결론이 안 나고 논란을 일으키는 모순덩어리 존재로 의식적 합리적 태도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우리 안의 트릭스터 원형에 대해 진지하게 관조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