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신선 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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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글씨로 본 부안 관아와 상소산 일대의 장소정체성 (A Study on the Place Identity on the Vicinity of Sangsosan and Government Office of Buan-hyun by Letters Carved on the Rocks)

  • 노재현;김정문;이현우;이정한;김대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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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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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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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옛 부안 관아(官衙)터 반석(磐石)위에, 19세기 초 현감 박시수가 쓴 초대형 초서체 바위글씨 '봉래동천(蓬萊洞天) 주림(珠林) 옥천(玉泉)'의 의미는 혜천지역의 바위글씨와 맞물려 이 일대가 곧 신선의 세계임을 반증하고 있다. 바위글씨가 집중된 상소산 아래 서림(西林)과 금대(琴臺)그리고 혜천(惠泉)등 경물 지칭의 바위글씨는 이 고장 출신으로 여류시인이자 관기(官妓)였던 이매창이 교우했던 인물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며, 이곳이 부안의 풍류와 선비정신이 교융(交融)된 지역 명소이자 정원 후원으로서의 역사성을 배태한 장소임을 상징한다. 이 지역 바위글씨의 대부분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각자된 것으로, 총 34건 중 경물(景物)관련 4건, 경색(景色) 관련 8건, 인명(人名)관련 5건 그리고 시문(詩文)15건, 기타 2건 등으로 분류되었고, 전체적으로 시문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으며, 시문 속 주제어의 중심에는 '상소산'과 '혜천'이 자리 잡고 있다. '봉래동천'은 물론 '소산사호(蘇山四皓)'의 표현이나 연단로에서 제조된 신선의 단약에 비견되는 '혜천의 샘물'은 신선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누적되고 관성화되어 착근된 장소정체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경관어휘이자 봉래동천, 주림과 옥천 바위글씨의 조합과 조응하는 것으로 이 일대가 '신선의 세계'임을 상징화하고 있다. 헌종11년(1845년)현감 조연명의 인위적인 식수 이후, 체계적으로 가꾸어온 숲인 서림과 그 숲에 조성된 정각 서림정과 주변에 산재한 '혜천 금대'등 바위글씨가 새겨진 암반 등은 신선사상이 깃든 관아(官衙)의 후원이자 임천정원(林泉庭苑)으로서의 성격과 면모를 보여주는 흔적이며, 이곳에 깃든 장소정체성의 핵심이다. 또한 낙토(樂土), 부안의 중심인 관아지역과 풍류 시회처(詩會處)로서 후원 혜천지역은 선계 동경적 아취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공간으로 구현 정착되어 왔음을 볼 때, '상소산과 서림'그리고 '동천과 혜천'의 관련성과 상징성이야말로 이곳 장소정체성의 본질이라 할 만하다. 내변산과 격포지역이 부안관광의 중심인 현실을 볼 때, 서림공원 일대의 바위글씨를 중심으로 한 문화유적은 부안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부안 읍치를 대표하는 역사문화경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구곡원림(九曲園林)에서 찾는 신선경(神仙境)의 경관 스토리보드 - 괴산 갈은구곡(葛隱九曲)을 대상으로 - (Storyboard of Immortal Land in Gugok-Wonlim - A Special Reference to Goisan -)

  • 노재현;박주성;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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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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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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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국내 구곡 중 선유동구곡과 함께 신선 사상적 색채가 가장 농후한 충북 괴산 갈은구곡을 중심으로 제명에 깃든 상징성과 구곡시에 나타난 경관적 특징을 선도적 관점에서 풀이하였다. 아울러 구곡문화경관의 이해와 홍보에 부합되도록 갈은구곡의 서사구조를 정리하고 주축(主軸) 이야기의 전달을 위한 경관스토리보드를 제시하였다. 갈은구곡 각 곡의 명칭이나 주변의 각자 그리고 인근 선유동구곡의 경물들과 상호 비교를 통한 갈은구곡 장소와 경관의 의미를 분석 해석한 결과, 신선과 관련된 경물과 고사에는 선계 동경과 불로장생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선인합일(仙人合一)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인다. 특히 이곳에는 식물류의 불변성과 동물류의 신령성 그리고 그 배경을 구성하는 자연물의 항상성(恒常性)을 바탕으로 한 장수길상(長壽吉祥)의 의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또한 특징적으로 시각적 종점(visual terminal)에 설정된 9곡 선국암은 바둑이 신선의 도락(道樂)임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바둑9품계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갈은구곡은 풍류나 도학의 성취수단으로서 보다는 신선사상과 관련된 선도적 발상과 신선 관련 모티프 즉 장생과 불사, 신령성, 신선놀음 등의 결속구조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갈은구곡에는 선계지향 및 장생불사와 은일의 정취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준거한 공간 이야기구조는 '신선의 세계로 들어섬(기(起))'-'신선의 세계가 펼쳐짐(승(承))'-'신선과 함께 함(전(轉))'-'신선이 됨(결(結))'으로 전개 해석되었다. 최종적으로 표층구조에서 읽혀지는 갈은구곡의 경관이미지는 계류의 환경지원성을 바탕으로 이곳에 깃든 수경관의 선경적 아름다움과 구곡동천의 선취(仙趣)적 공간미를 속성으로 하고 있으며, 심층구조로는 바둑 9품계의 '입신(入神)공간'으로 수직 상승하는 서사구조로 정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강선(降仙)-선경(仙境)-선약(仙藥)-선학(仙鶴)-선유(仙遊)-은선(隱仙)의 6개의 장면(cut)을 주제로 한 갈은구곡의 경관스토리보드를 제시하였다. 선도적 신선사상을 대변하는 장생불사의 신선은 현대 조경의 주요 경관연출 모티프가 될 것이 자명하다. 자연의 불변성과 신령성 그리고 이와 같은 특성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주변 산수경관의 항상성이야말로 한국적 조경설계에서 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제주 방선문(訪仙門)의 선경(仙境)적 이미지와 명승적 가치 (Study on Enchanted Image and Scenic Value of Jeju Bangseonmun)

  • 노재현;신상섭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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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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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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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방선문(訪仙門)은 한라산의 옛 이름인 영주산을 신비롭게 하는 신선사상의 흔적이 가장 역력한 명소로 한천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구춘화(瀛丘春花)'의 대상장으로 널리 알려진 방선문(訪仙門)과 들렁귀(등영구(登瀛丘))는 문자 그대로 '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며, 신선의 산 영주산으로 이르는 통로이자 속세와 탈속의경계로 그려지고 있다. 조선조 선비들은 신선의 고향 한라산을 무대 삼아 방선문, 환선대, 우선대 그리고 등영구의 제액(題額)을 바위에 각자(刻字)함으로써 신선의 문에 들어, 신선을 부르고, 신선을 만나, 신선의 세계로 오르는 선경의 이미지를 방선문에 구축해 왔다. 이는 세속의 번거로움을 털고 한라산 신선이 되는 풍류 행위의 시적 표현이며, 도교적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으로, 방선문 4승경의 장소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다. 방선문이 갖는 선경적 장소성뿐만 아니라 계곡 및 하천경 관을 이루는 지질지형학적 특성과 식물생태학적 가치는 방선문이 '자연경관으로서 명승'으로도 부족함이 없음을 보여준 다. 고찰 결과를 종합할 때 방선문은 마애각에 새겨진 제영의 의미가 갖는 장소정체성과 선경적 의미 그리고 영주십경의 대상장이자 '영구춘화'의 시점장으로서는 물론 방선문 계곡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선인과 자연과의 만남을 통한 교감의 장소로 유전되어 왔다. 지금도 제주민과 호흡하는 문화공간으로 지속되고 있음은 생활명승의 전형성 또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현재 문화재보법의 명승적 가치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제주 방선문계곡은 명승의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전형적 장소이자 공간이라 할 만하다.

별업 하거원(何去園) 원림에 투영된 조영사상 연구 (A Study on the Landscape Philosophy of Hageohwon Garden)

  • 신상섭;김현욱;강현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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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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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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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유회당 권이진이 대전 무수동에 경영한 별업 하거원 원림의 조영사상을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하거원에 투영된 작정자의 사상적 배경은 '신종추원(愼終追遠)'의 효제사상, 가학의 전통과 도덕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무실사상, 청한지연(淸閒之燕)의 유학적 은일사상과 신선풍의 도가적 풍류사상을 들 수 있다. 즉, 이러한 사상적 가치관을 하거원이라고 하는 목적공간에 대입시켜, 상징원(象徵園), 의원(意園), 축경원(縮景園) 등과 같은 별업 원림을 구축하였다. 2) 하거원의 공간구성체계는 위계성을 고려한 3단계 영역으로 대별되는데, 제 1영역은 유회당에서 도경에 이르는 지역으로 거주를 겸한 전이공간, 제 2영역은 수만헌 뜰을 중심으로 요천대와 장우담 그리고 화계, 선묘의 시묘소 등이 펼쳐지는 기념비적(별업) 추모공간, 제 3영역은 하거원의 좌청룡 지맥 그리고 북에서 남쪽을 향하여 계류가 관류하는 동쪽 외원에 속한 은일공간이다. 3) 상징적으로 제 1영역은 유회당-고수대-오덕대로 이어지는 유교적 공간, 그리고 죽천당-도경에 이르는 선경의 세계를 의미적 경관으로 중첩시켜 상징화하였다. 제 2영역은 수만헌과 요천대 그리고 장우담 영역인데, '신종추원(愼終追遠)'의 상징적 가치, 부모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 등이 투영되고 있다. 제 3영역은 하거원의 동쪽 외원(배경대 - 운와 - 몽정 - 가산), 그리고 북에서 남으로 물길이 관류하는 계원(溪園) 권역은 동계(東溪) - 활수담 - 수미폭포로 구성되는데, (1) 몽정은 학문을 통해 어리석음을 깨닫는 격물치지의 삶을, (2) 활수담은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 초월적 삶의 자세를, 그리고 (3) 장우담은 신선세계로 향하는 선경의 관문을 상징화하고 있다. 4) 하거원 별업의 사유방식은 유교와 도학의 두 알고리즘이 반복적으로 중첩되어 드러난다는 점인데, 공간전개의 서장에 해당하는 납오지와 활수담은 도덕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수심양성의 장을 상징화 하였다. 그리고 하거원의 동쪽 외원에 속하는 몽정 권역은 수신과 학문탐구 등 유교적 가치체계를 주제로 하고 있다면 장우담, 수미폭포, 운와 등은 신선경의 세계를 의미경관으로 대입시킨 척번(滌煩)의 풍류라 할 수 있다. 5) 가산이라고 하는 축경기법을 별업 하거원에 대입시켜 무산12봉과 같은 선경세계를 구축코자 하였는데, 옛 시문에 표현된 상징적 의미를 차용하여 '하방(1), 화봉(2, 3), 출군(4, 5, 6), 신완(7), 취규(8, 9, 10), 처묘(11), 기융(12)'이라 명명했다. 가산을 읊었던 대표적 옛 시인은 왕의, 노삼강, 두보, 한유, 전희성, 범석호 등을 들 수 있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글로서 인연을 맺고 그들이 추구했던 신선경의 세계와 풍류문화를 하거원이라고 하는 별업에 담아 정신세계의 풍요를 구가코자 하였다.

입지와 장소 특성으로 본 암각바둑판의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 (A Study on the Meaning and Cultural Properties Value of Rock-Go-Board from the Viewpoint of Site and Location Characteristics)

  • 박주성;노재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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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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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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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시조문학과 신선 (Literature of Korean Verse, Sijo and Taoist Hermit)

  • 김명희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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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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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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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사대부들의 전유물인 시조에서 신선은 어떤 역할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찰하였다. 시조에서 선어들이 빈도수가 많음을 기존의 연구사를 통해 밝혔고 시조라는 장르를 통해서는 신선에만 집중하였다. 그중 적송자가 많이 등장하는데 적송자는 사대부들이 좇아가는 적송자로 표현하고 있어 '적송자를 좇으리'가 관용어구처럼 쓰이고 있다. 이것은 적송자를 좇아야만 비로소 신선 대열에 낄 수 있다는 등식처럼 되어버린 결과다. 중국의 장량이나 범려도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적송자를 찾아 신선이 되어 영원 불사했다는 역사적 사건이 변모되어 전설로 신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시조를 즐기는 사대부들도 마치 장량이나 범려처럼 자신들도 적송자를 좇겠다는 관념어적인 어투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이태백은 한국문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태백은 시선이며 주선으로 시조 문학에서는 비상 모티브를 가진 신선 또는 상천 모티브로 쓰이는 주선으로 노래 부르고 있어 풍류를 즐기는 사대부들에게 친근하게 인용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반면에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신선으로는 진시황과 한무제를 들 수 있다. 두 황제는 불로초를 찾고 봉래산을 찾은 인물로 현실정치에서는 실각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불로장생을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인물이어서 사대부들은 그런면에서 이상적인 이상향은 없다는 다분히 현실적으로 다가가 유교사상에 입각해 현실에 만족하며 살자는 자족형으로 시조를 부르고 있었다. 따라서 두 황제의 역할은 부정적 이미지다. 시조에서 여선들도 등장하는데 그중 마고선녀, 서왕모, 무산신녀, 항아가 있다. 마고 선녀는 장수를 관장하는 할머니로 때로는 미녀로 쓰이고 있으며 서왕모는 불사약을 가지고 있는 신선으로 무산신녀는 운우의 정을 대변하는 미녀로 항아는 남편을 배반하고 외롭게 월궁에서 지내는 신녀로 표출되고 있다. 이들 선녀의 특징은 미녀이며 자상하고 섬세하며 애정시에 두루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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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강원감영의 후원조영(造營)과 신선세계 (The Back Garden Structure and the Symbolism of Immortal World of Gangwon Provincial Office in Late Joseon Dynasty)

  • 이상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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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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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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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사적 제439호인 강원감영은 1395년 원주에 처음 설치된 이래 1895년 23부제의 실시로 폐지되기까지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 강원감영은 관찰사의 겸목제(兼牧制) 시행으로 17세기 이후 본격적 영건이 시작되어 폐지 직전까지 약 50동 670칸 규모로 존속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이 훼철되어 2005년 시설 일부를 수리 복원하였고, 현재는 (구)원주우체국 철거 후 감영 후원(後園)에 해당되는 시설을 복원 중에 있다. 강원감영 후원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원주수비대 운동장이 조성되면서 전부 없어졌다. 후원 조성을 위한 발굴조사 결과 연못 일부와 건물지가 확인되긴 했으나, 그 전모를 밝히기에는 유구의 교란과 훼손이 심하였다. 그러나 문헌과 그림 등을 통해 후원 전각들을 고찰해본 결과 연못 안에는 봉래각(蓬萊閣) 영주사(瀛洲?:관풍각) 채약오(採藥塢) 조오정(釣鰲亭) 홍교가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못 밖에는 환선정(喚仙亭)과 방장대(方丈臺)가 건립되어 있었다. 후원 전각의 조성경위와 명칭을 살펴보면 모두 신선과 관련되어 있다. 연못 안에는 전설의 신선세계인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하는 삼도(三島)를 만들고, 그 위에 전각을 지었다. 봉래각을 시작으로 후원에 건립되는 전각들에 영주 방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전각들에도 선가(仙家)의 이름을 부여했다. 후원뿐 아니라 그 주변의 전각들에도 신선과 관련된 이름을 붙였다. '봉래산'인 금강산을 관할했던 강원감영 후원에 이와 걸맞는 신선세계를 조영하였던 것이다. 강원도관찰사들은 여가에 수시로 후원에 나가 신선이 되어 탈속하는 풍류를 즐겼고, '봉래주인', 즉 신선세계의 주인이라 자처하였다. 강원감영은 금강산이 소재해 있던 강원도의 특징이 잘 반영된 신선세계가 구현되어 있었다는 매우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강릉 연곡면 유등리 '유상대(流觴臺)' 곡수로(曲水路)의 조명(照明) (A Study on the Yousang-Dae Goksuro(Curve-Waterway) in Gangneung, Yungok-Myun, Yoodung Ri)

  • 노재현;신상섭;이정한;허준;박주성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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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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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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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 대상인 강원도 강릉시 연곡동 유등리 뱀골 하류의 너럭바위에 새겨진 '유상대(流觴臺)' 각자와 암각바둑판은 이곳이 유상곡수 놀이와 신선 풍류 행위가 이루어졌던 풍류처임을 확인시켜 준다. 3차에 걸친 정밀답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통일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운(道雲)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폐허가 되었고, 1954년에 재건된, 백운사 경내에 새겨진 '만월산 백운동천(萬月山白雲洞天)'이란 암각서는 뱀골 계곡에 선도적(仙道的)풍류와 선비문화의 전통이 면면히 스며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단서이다. 최백순이 1934년 편찬한 강릉의 읍지인 동호승람 제2권에 인종원년(1545)을 전후하여 '남전현(籃田縣)의 백운사는 율곡 이이, 성제 최옥 등 명유(名儒)의 강례처(講禮處)'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공간이 유서 깊은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호승람과 완역 증보임영지에 기술된 무오년, 즉 철종9년(1858) 김윤경(金潤卿)이 창건한 백운정(白雲亭)의 존재를 통해 누정 및 동천 경영의 흔적을 추론할 수 있다. 아울러 유상대 각자 바위 계류 건너 입석에 새겨진 '백운정동천(白雲亭洞天)' 암각서는 백운정 건립 3년 뒤인 철종12년(1861)에 조성되었으며, 유상대와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는 상징적 표식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정황과 입지성을 전제로 유상대 곡수유구 흔적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유상대 주변 계류 및 암반에는 수량과 유속을 조절하기 위한 세분석(細分石)과, 유로와 잔을 가두기 위한 홈인 금배석(擒盃石)과 유배공(留盃孔)의 조탁 흔적 등을 발견하였다. 더불어 하단 암벽에서 '오성(午星)'이란 명기 아래 23인명의 각자를 발견하게 됨에 따라 이곳이 20C중반까지 유상곡수연의 성격을 갖는 풍류 문화경관의 거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공간에서는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 유상대를 중심으로 한 선비 풍류의 문화가 전승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유 불 선(儒 彿 仙)이 습합된 독특한 역사문화공간'이란 측면에서도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23인명의 정체와 유상대 각자 주체 파악 등 유상곡수 등 풍류행위를 기록한 자료 발굴 등을 통해 본 공간의 성격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기록에 전해지는 암각장기판 또한 발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바, 현재 콘크리트포장 도로의 파쇄를 통한 추가 유적의 발굴 및 노선 변경 등 원형경관 회복방안 또한 시급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전통조경요소로써 도입된 학(鶴)과 원림문화 (Cranes(Grus japonensis) Adopted as a Traditional Factor in Landscaping and Gardening Culture)

  • 김해경;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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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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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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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학과 관련된 고문헌과 조선시대 산수화를 분석하여 원림에 도입된 동적(動的) 조경요소인 학으로 인해 형성된 원림문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학은 부처의 화현(化現), 신선 세계와 장수의 희구(希求), 은일자의 고고한 삶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써 불교 도교 유교적인 상징 의미를 지녔다.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학을 길렀던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선비는 학시사(鶴詩社) 학 품평회를 개최하거나 출사(出仕)를 거절하는 의미로 학을 활용하였다. 둘째, 원림에 학을 도입하기 위해서 야생의 학을 잡아 길들여 학옥 학우리나 울타리를 만들어 가두고, 물을 공급해 주는 연못으로 생육환경을 마련했다. 또한 학을 전담 관리하는 노비가 있었으며, 춤을 추도록 훈련시킨 후 마당에 관념적 의미에서 한 마리의 학을 방사하거나 학의 생태를 고려하여 두 마리의 학을 방사했다. 셋째, 학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학과 짝이 되어 상징성을 만드는 수목으로써 은일 처사의 의미체인 매화와 장수 의미를 지닌 소나무를 원림에 식재하였다. 더불어 조선시대 선비는 학과 함께 완상(玩賞) 오수(午睡) 독서(讀書) 탄금(彈琴)으로 풍류를 즐겼다.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 선비는 학이 상징하는 의미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시를 짓는데 그치지 않고 동적 전통조경요소로써 원림에 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으며, 선비의 풍류와 연관시켜 학의 생김새, 몸짓, 소리를 포함하는 공감각적 감상을 즐겼다.

양양 죽도의 장소성과 지형경관의 지명 고찰 및 비정 (A Placeness and Identification on the Place Names of Geomorphological Landscape in Jukdo, Yangyang)

  • 노재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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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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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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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양양 죽도의 지형 형성과 경관안내판, 경관해설판에 드러난 의문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죽도 경관의 올바른 인식과 경관자원탐색의 일환으로, 문헌연구와 현장조사 그리고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죽도 자연경관의 특성을 정리하는 한편, 전래 문화경관에 대한 지명 고찰과 경물 비정(批正)을 추구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양 죽도는 푸른 대나무가 가득했기 때문에 이름 붙여진 섬으로, 최소 14세기 전반 이전부터 18세기 중반 이전까지 주변에는 바다와 죽도를 관망하기 위한 관란정이 존재했다. 원래 섬이었던 죽도가 모래의 퇴식작용에 의해 육계도로 연륙화된 시기는 대략 19세기 후반 이후로 추정된다. 죽도에는 오랜 시간 풍화로 형성된 다채로운 풍화지형과 해안지형 그리고 구조지형이 발견된다. 그중 풍화혈의 일종인 타포니와 나마 지형경관은 죽도에 전래되는 전설과 시문의 핵심적 이야기와 관련된 경관요체이다. 죽도에는 총 7개소의 바위글씨가 존재하는데 해안에서 발견되는 방선암, 농구암, 청허대, 연사대 등은 신선 풍류와 은자(隱者) 모티브를 바탕으로 한 경물로 보인다. '정씨세적(鄭氏世蹟)'이란 바위글씨를 통해 볼 때 죽도의 주된 경관 향유자는 18C 중반의 초계정씨(草溪鄭氏) 가문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관찬지리지나 시문으로 볼 때 죽도는 '죽도선구(竹島仙臼)', '죽도 돌구유', 또는 '신선절구' 등을 주요 모티브로 한 선교적(仙敎的) 색채가 짙게 전승됐다. 이 '신선의 돌절구'라 알려져 온 경물은 형태나 크기 그리고 기능으로 유추해 볼 때 나마 지형의 선녀탕이 아닌 별도 공간에 형성된 포트홀인 것으로 확증된다. 따라서 근대 명명된 선녀탕은 흥미 본의의 터무니없는 '이름붙이기'의 산물로 보인다. 현재의 경관 안내와 해설 내용은 죽도의 장소성과 부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승되어 온 문화경관과 일치되지 않는다. 향후 경관안내판과 해설판 등 관련 경관정보는 양양 죽도의 경관정체성을 제고하기 위해 신선 관련 스토리 및 모티브를 적극 부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