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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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관리범위 및 관리방안 (Management Area and Management Strategy of Baekdudaegan)

  • 신준환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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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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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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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백두대간이란 개념은 신라말엽-고려 초기에 잉태되어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성장하였고, 조선시대에 와서 완성되었다. 이런 백두대간 개념을 오늘에 복원하기 위해서는 첫째, 백두대간은 마루금이 아니라 영역의 개념이며, 둘째, 백두대간은 산마루의 모임이 아니라 수계(水系)와 산계(山系)의 결합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백두대간 관리범위를 설정할 때에는 전통사상에 입각하여 기준을 잡고, 자연환경을 감안하여 이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설정된 관리범위는 3차 수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보전지역은 최소한 1차 수계는 포함해야 할 것이며, 백두대간 관리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형훼손을 방지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우리나라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이름인 Korea, 즉 고려(高麗)정신을 대표하므로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은 남북통일의 초석을 놓는 일이기도 하다.

조선왕릉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의 도상(圖像) 원류와 전개 과정 (On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Iconography of the Twelve Zodiac Signs of Royal Tombs of Joseon Dynasty)

  • 김지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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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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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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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역사, 이념, 문화, 미술, 건축, 제례 등이 종합적으로 융합되어 만들어진 결정체이며, 500년 왕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물로서 그 상징적 의의가 매우 크다. 왕릉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 중에서도 특히 능침 주변에 배치된 석물들은 능침을 수호하는 상징적 기능으로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그 중에서도 봉분 가장 가까이에 표현된 십이지는 그 기능의 가장 중심에 놓여져 있는 대상물이었다. 통일신라시대 능묘에서부터 시작된 십이지신상은 전해지는 규모나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미루어 능묘 축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과 위치를 차지했었음이 확실하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왕릉에 이르러서는 규모나 형태에서 매우 간소화된 경향을 띠게 되면서 다른 석물들에 비견하여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다. 십이지신상은 무덤을 수호하는 역할과 방위의 개념으로서 능묘를 장식했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으며, 시대별로 다양하게 변화되어 나타나며, 조선왕릉까지 그 전통성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사성과 상징성은 간과할 수 없다. 본고에서는 조선왕릉에 표현된 십이지 도상(圖像)을 크게 3가지로 형식 분류하여 그 원류와 시기별 전개 과정을 고찰해 보았다. 십이지 도상은 사람의 몸과 얼굴을 표현한 인신인수형(人身人首形), 관에 십이지 동물을 표현한 인신인수관형(人身人首冠形), 십이지와 십간 팔괘의 혼합 문자형으로 분류된다. 조선왕릉의 이 3가지 십이지 도상은 그 원류를 중국으로부터 볼 수 있으며, 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 교체되면서 왕릉을 장식하는 주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서 애용된다. 조선왕릉 십이지신상은 통일신라 이래 이어온 우리나라 능제의 고유성과 전통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산 증거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베트남의 고려인삼 인식에 대한 소고 (The history of awareness for ginseng in Vietnam)

  • 옥순종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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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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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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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역사상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의 교역은 활발하지 않았다. 한중일 동북아 중심의 역사 서술과 지리적으로 멀어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동남아 국가 중에 베트남은 한국 사신들과 교류가 많았다. 유권 문화권, 한자 문화권으로 정서가 통하고 언어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은 서로 관심을 보여 왔으며 사신들의 활발한 접촉으로 국교 수립과 관계없이 문물이 전파되고 우호적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세기 전반 베트남의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명으로 꼽히는 민망시대에 고려인삼은 지금의 한류처럼 인기를 끌었다. 142명의 자손을 둔 민망황제의 정력이 인삼에 기인한다고 믿었다. 민망황제는 공을 세운 신하나 연로한 신하에게 선물로 인삼을 하사하여 충성을 유도했다. 이같은 전통은 후대 황제에게 까지 이어졌다. 또한 태국, 캄보디아, 프랑스와의 전쟁에 파견된 장군 및 병사들에게도 인삼은 지급되었다. 베트남은 국가 이념강화에 인삼을 적극 활용했다.이 같은 전통으로 고려인삼은 베트남에서 프리미엄 인삼으로서 인식되었다. 인삼의 베트남 유입은 1) 중국 황제의 하사 2) 북경으로 조공을 간 베트남 사신의 구매 3) 사무역 4)국제 무역이 활발했던 류큐, 일본의 중계무역 5) 조선-베트남 사신의 교유 등 5가지 경로를 유추할 수 있다. 베트남이 인삼을 본격 구매하기 전에 인삼의 효능에 대한 인식이 먼저 있었을 것이다. 이는 교역으로서가 아니라 양국 사신들의 교유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5세기에서 18세기 말까지 북경에서 조선과 베트남의 사신, 선비들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1760년 북경에 온 베트남 고관 여귀돈이 조선사신에게 편지를 보내 고려인삼을 보내줄 것을 요청한 것은 18세기에 이미 베트남에서 고려인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았음을 확인해준다. 양국 사신의 교유를 통해 상대 나라의 풍습과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황실에서도 인삼에 대한 지식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경으로 사행을 간 사신들 중에 인삼에 조예가 깊은 서거정, 서호수 등 실학자들이 많았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베트남에서는 신라 시대에 인삼에 대한 인식이 성립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9세기 중반 안남도호부의 책임자로 파견돼 베트남을 10년간 통치했던 당의 고병은 신라인 최치원과 친밀한 관계로 고병이 인삼에 대한 지식을 베트남 상류층에 전했을 수도 있다. 이로써 베트남의 인삼인식은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멀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베트남의 인삼 인식시기 추정은 양국의 접촉 과정에 유추한 가설로서 이를 문헌으로 실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특히 베트남의 역사서와 문집에서 인삼의 흔적을 찾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고대 경주 지역의 홍수 가능성과 인간 활동 (The Possibility of Flooding and Human Activities of Gyeongju Area in Ancint Times)

  • 황상일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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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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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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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현재 경주시 북천, 서천, 남천으로 둘러 싸인 왕경 지역의 대부분은 최종빙기 동안 형성된 선상지 저위면에 해당한다. Holocene 중기 이후 북천은 이미 동적평형상태에 도달하여 하도의 형태와 폭이 현재와 유사하였거나 같았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경주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하여 사람이 죽거나 인가가 떠내려간 것은 $30{\sim}60$년 간격으로 발생한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150{\sim}200$년 간격으로 나타났다. 북천은 대규모 홍수 발생 주기가 상당히 길었으므로, 고대 동안 사람들은 북천 하상의 많은 부분을 홍수 피해로부터 거의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는 고대 동안 북천에 제방이 조성되었다는 주장이 지속되고 있다. 북천의 하천에너지가 최대가 되는 분황사 동쪽 북천 좌안에서는 측방침식을 막기 위하여 축대를 조성하였으나 인공제방을 조성하지 않았다. 지형학적으로도 왕경 지역의 선상지 지형면 위에 고대의 충적층을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선상지 퇴적층 위에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의 문화층이 신라 시대 문화층과 함께 분포한다. 아울러 범람을 막기 위해 북천을 연하여 숲을 조성한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대 동안 북천이 범람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배움공동체에 대한 탐색적 연구 : covid19 언택트시대를 중심으로 (An Exploratory Study on the Learning Community: Focusing on the Covid19 Untact Era)

  • 정수정;임홍남;박홍재
    • 융합정보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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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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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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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언택트시대의 배움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어떠한지 살펴보고, 팬데믹이라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아동을 위한 배움공동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한다. 이를 위해 2020년 1월 20일부터 2021년 1월 20일까지 1년 동안의 빅데이터를 '언택트+배움공동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포털사이트(구글, 다음, 네이버 등의 뉴스)에서 데이터를 수집 및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단어빈도 및 네트워크분석에서 '마을교육공동체', '운영', '활동', '코로나19', '지원', '온라인' 등의 단어가 언택트시대의 배움공동체와 관련이 높은 것으로 도출되었다. 이는 배움공동체 내에서 마을의 교육공동체가 주축이 되어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도 마을 활동가와 주민협의회 등이 뜻을 모아 코로나19로 멈춰진 아동의 일상을 회복하고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여 지원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단어빈도 분석을 통해 배움공동체와 관련된 핵심키워드를 파악하고 배움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경향을 살펴보았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아동의 공적 돌봄·교육의 틈새와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배움공동체의 도입 및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로써 시사점을 가진다

분황사 중문지 출토 치미 연구 (A Study on the Chimi Excavated from the Middle Gate Remains of Bunhwangsa Temple)

  • 김숙경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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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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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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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This paper aimed to identify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chimi excavated from ancient ruins, especially middle gate remains of Bunhwangsa Temple in the Unified Silla period. Middle gate had planned $3{\times}2$ with 295mm measuring unit and gabled building. Detailed study of the shape of chimi of the middle gate restored by related field experts reveals as follows. 1) Height of chimi is 4.5(130.6cm) of Tang's system of measurement classified as large one. 2) The front and back side square hole is made for transverse timber placement. 3) Position of chimi is not the end of the ridge of roof, it moved toward the center. 4) Construction method of chimi is structured with smaller beam and center column. 5) Width and height of the ridge is less than 38cm and 54cm to be approximately, Width and height of the gabled ridge is less than 38cm and 50cm. 6) This chimi is considered to be very unique when compared to existing ancient restored chimis, it is designed to be advantageous to the chimi construction.

사료로 본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기거용 가구 - 床榻(상탑)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Daily life Furniture in Three Kingdoms and Unified Silla Period - Based on the Sang(상) and Tap(탑) -)

  • 이정미
    •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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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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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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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e ondol is a uniquely Korean system of providing warmth to room. The ondol rooms never use daily life furniture because the ondol warms the floor surface where people sit. Finally, the ondol floor changed the traditional housings inner space. Before use ondol where daily life furnitures[sang(상) and Tap(탑)] are installed in the room. The origin of daily life furnitures are the ancient tomb mural of Koguryo Period. The daily life furniture can be classified as three large groups in the ancient tomb mural of Koguryo. First, a single seat[Jowa-sang(좌상)] of set up a screen[병풍]. The second, It make possible Many peoples take a seat with no decoration seat[Tap(탑)]. The third, uptodately table and chairs. A radical difference between sang(상) and Tap(탑) whether set up a screen[병풍]. The meaning of sang(상) and Tap(탑) in Koguryo ancient tomb provided Oksa-jo[옥사조] in Samkuk-sagi[삼국사기] with several valuable leads to help solve the sang(상)'s meaning. Furthermore, It will be start ponit of study on constructive shape of inner space in those days.

중세 주택의 개구부 형식에 관한 연구 -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 주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Form of Window and Door of the Medieval Times House - Focused on the House of Unified Silla and Goryo Period -)

  • 이정미
    • 한국주거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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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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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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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form of window and door of medieval times house which are no longer in existence, by comparative analysis between literature materials and architectural remains of united Silla and Goryo period. Particularly the window and door form change process of was analyzed, in connection with the change of term which are recorded in literature material. The form and the composition of window and door are the elements which determine the elevation design of architecture and concerned with interior environment. Therefore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e sense that it could be used as base data for the study on the reconstruction and interior space of medieval times house. There were ho (戶) and moon (門) as door, and chang (窓) for lighting and ventilation as window. Among these, the window can be divided into fixed and openable. There were two kind of fixed window. One is called chang (窓), and it was covered by silk or paper for lighting. The other is called ham (檻), it was the form of vertical bar window and lighting and ventilation was available. And there were two kind of openable window. One is called ho (戶), which had wooden plate window leaves. And the other is called changho (窓戶), lighting was available in the condition of closing.

역사도시 경주의 경관정체성에 관한 연구 II - C.G.를 이용한 통일신라시대 경주의 경관요소 특성 연구를 통한 경관정체성 규명을 중심으로 - (A Study on identity of scape for Historical city, Gyeongju II - With a characteristic of landscape elements of Gyeongju in unified Silla period by Computer Graphic -)

  • 홍사철
    • 한국디지털건축인테리어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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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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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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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Urban scape of Gyeongju is overlapped by periods. So, a study of each Periodical urban scape is required to understanding the present urban scape. All it requires study is on account of different a characteristic and the meaning of the scape. Especially, unified Silla period was most flourished in all time, has Abundant image of urban scape, heavily influences present urban scape. The research was proceeded through the classifying the concept of Urban form and the basic ideology and adopting the representative landscape at that time with the literatures and maps, on Unified Silla Period. And then tried to find out the identity of landscape with the link between the concepts of the representative landscape and that of Urban form in chronological order. The identity of historical landscape in Gyeongju on Unified Silla Period from the result of research has been influenced on by the connection with natural environment, urban form revealed by grid, space organized by vigorously heading up the inside, and Buddhistic ideology and esthetics.

영상분석기법에 의한 문화재의 정밀 수치자료 획득과 공간분석 - 성덕대왕신종에 대해 - (The Spatial Analysis and Acquistion of Precision digital data due to Cultural Properties using the Photogrammetry)

  • 강준묵;배연성;배상호;이성순
    • 대한공간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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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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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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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문화재의 정밀 기하학적 수치자료의 획득과 분석체계는 전통문화를 영구 보존하고 복원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본 연구는 문화재치 효율적 관리를 위한 기법을 제시하고자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범종인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정밀 3차원 수치자료를 구축하고 각 문양에 대한 기하학적 형상분석을 다양하게 시도한 것이다. 다른 구조물에 비해 취급과 정밀실측이 곤란한 문화재에 대해 정확한 3차원 수치자료의 효율적인 취득과 그 분석방법을 제시하므로서 문화재의 안전진단은 물론 고고학 및 미술사 통의 관련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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