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소

검색결과 16,069건 처리시간 0.051초

시간부사 '증경(曾經)', '이경(已經)' 시상(時相) 자질 중한 대조분석 (Time Adverb 'Cengjing (曾經)' and 'Yijing (已經) Tense and Aspect of the Comparative Analysis of the Characteristics of China and South Korea)

  • 한경숙
    • 비교문화연구
    • /
    • 제42권
    • /
    • pp.451-474
    • /
    • 2016
  • 본고는 현대중국어 시간부사 '증경(曾經)'과 '이경(已經)'의 관련 통사구조와 이에 상응하는 한국어 통사구조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관련 구조 의미소 '시상(時相)(tense and aspect)' 특징을 분석하였고 두 부사의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아울러 중한 두 언어에서 이들이 나타내는 자질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냈고 이를 통하여 분석의 타당성(Descriptive adequacy)을 확보하고 나아가 설명적 타당성(Explanatory adequacy)으로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증경(曾經)'은 상 범주의 하위 범주인 '과거경험상', '성사상', '과거지속상' 등 자질을 갖고 있고 시제 범주의 하위 범주인 '과저시제' '과거경험상' 등 자질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어의 '_었(았)_', '_었었_', '_적이 있_'과 대응관계를 이루고 있다. '증경(曾經)'은 하나의 통사구조에서 상과 시제 두 가지 자질을 갖고 있다. '이경(已經)'은 '완료상'과 완료상의 하위 범주인 '과거경험상', 그리고 미완료상의 하위범주인 '과거지속상' 등 자질을 갖고 있고 시제 범주의 하위 범주인 '과거시제', '현재시제', '미래시제' 등 시제 자질도 갖고 있으며 '상태의 변화' 자질도 갖고 있다. 한국어의 '_었(았)_', '_고_', '_었었_', '곧' 등과 대응관계를 이루고 있다. '증경(曾經)'과 동태조사 '과(過)'를 비교하자면 '증경(曾經)'은 상 범주와 시제 범주를 겸하고 있다지만 '과(過)'는 그 수식 범위가 술어밖에 없기에 상적 특징만 갖고 있다. 그리고 심층구조에서 '증경(曾經)'은 술어의 앞에서 술어를 포함한 술어 뒤에 출현한 조사, 목적어, 보어 모두와 통어 관계를 갖고 있지만, '과(過)'는 그 앞의 술어만 수식한다. '이경(已經)'이 '진행상' 자질을 가진 부사 '재(在)'를 수식할 수 있지만, '증경(曾經)'은 불가능하다. 중국어와 한국어 두 언어는 이렇게 시간 표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어의 '과거경험상', '성사상', '과거지속상' 등 상 자질과 '과거시제' 자질을 갖고 있는 시간부사 '증경(曾經)', 그리고 '과거경험상', '과거지속상' 등 상 자질 그리고 '과거시제', '현재시제', '미래시제' 등 시제 자질을 갖고 있는 시간부사 '이경(已經)' 등이 한국어에서는 '완료상', '지속상' 자질과 '과거시제' 자질로 대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중국어와 한국어 두 언어의 시간 체계는 서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한중 두 나라 사람들의 사유 방식의 차이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사료된다.

일본 철강산업의 사내하청과 노사관계 (In-House Subcontracting and Industrial Relations in Japanes Steel Industry)

  • 오학수
    • 산업노동연구
    • /
    • 제24권1호
    • /
    • pp.107-156
    • /
    • 2018
  • 이 글은 일본 철강산업의 사내하청 활용 전개와 노사관계 안정에 관하여 조강생산량 1위와 2위인 대표적 제철회사를 대상으로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 제철소 노동자 중 사내하청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후 2000년대 중반까지 지속해서 증가하여 1위인 S사의 경우 약 70%였다. 사내하청은 고용의 수량적 유연성을 높여서 인건비 절약을 꾀하려는 기업의 전략으로 활용되었다. 사내하청 기업의 담당업무는 기업 특수적 숙련을 필요로 하였는데 그것에 대응하는 형태로 정규직의 비율이 높아지고 이직률도 낮아 내부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 사내하청 기업이 업무수행에 필요한 설비나 자재를 자체 도입함으로서 원청과는 장기적인 거래관계를 맺게 되었고, 원청은 사내하청의 생산성 향상 정책을 실시하여 상생적인 관계가 전개되었다. 노조는 사내하청 확대가 기업 이익, 조합원의 고용안정 및 노동조건 유지 등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 반대하지 않았다. 출향과 전적을 통하여 사내하청이 확대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반대하지 않았다. 2000년 이후 원청이 사내하청 기업의 자회사화를 추진하여 상생적인 관계는 자본관계로 뒷받침 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직영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법령준수 요구 강화, 고객의 품질향상과 납기 달성의 엄격성, 노동력 확보 등이 주요 요인이다. 원청과 사내하청간의 노동조건 격차는 임금의 경우 B사가 S사보다 작았는데 사내하청이 원청의 약 90%였다. 상대적으로 B사의 격차가 작은 것은 노조의 격차 축소 운동, 낮은 시장 지배력과 불리한 노동시장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사내하청에도 내부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왔고, 원청과의 임금격차도 크지 않아 노사분쟁의 가능성이 낮다. 원청뿐만 아니라 사내하청에서도 노사관계는 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철강산업 노사관계 안정화는 원청과 하청기업간의 장기적 상생협력관계 하에서 하청기업에서 내부노동시장을 형성/확대하면서 생산성을 높여 원청과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요구된다.

남성지배의 몸과 남근 이데올로기의 문제: 페니스 나르시시즘과 페니스 카르텔의 해체전략 (The Body of Male Domination and the Problem of the Phallic Ideology: The Strategy of the Deconstruction of Penis-Narcissism and the Penis-Cartel)

  • 윤지영
    • 철학연구
    • /
    • 제123호
    • /
    • pp.137-185
    • /
    • 2018
  • 여성혐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존재론적 차원의 물질성과 현실성을 기각시키거나 저항의 단위소를 무화시키는 것이 아닌, 성별 불평등구조에서 지배계급성을 구성하고 있는 남성성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해체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첫 번째로 남근질서라는 아버지의 법질서에서 팔루스와 페니스 간의 유착성-팔루스가 초월적이며 절대적 심급이 아닌 스스로 축소되고 사라져버리는 페니스의 유약성에 참조점을 두고 있는 내재적 결핍성의 지점임을 이론적으로 추적해나감으로써 남근질서의 해체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 남성지배의 축 중 하나인 페니스 나르시시즘이라는 개인적 정체성화의 작동방식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여기서 페니스는 해부학적 기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애의 온전성을 담지받는 장소이자 아버지의 법질서의 사회문화적 권위와 권력의 계승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남성은 자신의 페니스를 중심으로 페니스 나르시시즘이라는 개인으로서의 남성의 정체성화 양식을 구성해나가고 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방기하는 몸이라는 권력적 몸, 특권적 몸을 양산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남성지배의 또 다른 축인 페니스 카르텔이라는 집단적 정체성화의 메커니즘은 남성들의 본래적 우월성의 상호확인에서만이 아니라, 남성들의 자기 완결성의 결여, 무능력함과 형편없음, 비리 축적을 상호 묵인함으로써 더욱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 특권구조란 특정한 남성 개개인에게 독점되는 양태가 아니라, 남성이라는 성별 계급으로 범주화된 이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나눠가지는 지배적 집합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페니스 나르시시즘과 페니스 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서 페니스가 자기완결적이며 불침투적인 닫힌 몸이 아님을 드러내어야 한다. 즉 페니스는 사정기관과 배설 기관이라는 다공성의 일체화 구조를 통해 구멍 지어진 몸이자 숭고와 비천, 깨끗함과 더러움 등의 분열적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뚝 솟은 불변의 공격성과 능동성, 힘과 권위의 기관이 아닌, 시시각각 형태가 변하는 유동적 살로서의 페니스와 팔루스-기관의 유약성을 연동시켜 사유해봄으로써 페니스 카르텔의 남근다발이 한데 묶일 수조차 없는 결핍성의 지대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남근 이데올로기론이 갖는 임계점을 이론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폭압적 남성성의 재생산 고리를 끊어내어 여성혐오를 극복해보고자 한다.

다국어 범용 의존관계 주석체계(Universal Dependencies) 적용 연구 -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를 중심으로 (A Case Study on Universal Dependency Tagsets)

  • 한지윤;이진;이찬영;김한샘
    • 비교문화연구
    • /
    • 제53권
    • /
    • pp.163-192
    • /
    • 2018
  • 이 논문은 형태통사적 특성이 유사한 한국어와 일본어의 다국어 범용 의존관계 주석체계(Universal Dependencies, 이하 UD) 적용 사례를 살펴보고 비교 분석을 통해서 한국어의 UD 적용 및 개선 방안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교착어적 특성으로 인하여 어미와 조사가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어와 같은 굴절어를 중심으로 설계된 UD를 적용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UD를 구성하는 범용 품사 주석(Universal POS, 이하 UPOS)과 범용 의존관계 주석(Universal Dependency Relations, 이하 DEPREL)의 적용과 그에 따른 논의들을 검토하였다. UPOS의 경우 AUX(조동사 표지), ADJ(형용사 표지), VERB(동사 표지)처럼 서술어와 관련된 주석 표지의 처리와 조사, 어미와 같은 기능어의 처리 방안을 살펴보았으며 접속사 및 이와 관련된 단위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검토하였다. DEPREL과 관련해서는, 구문 표지를 주석하는 기본 단위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통사적 문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지배소 설정 방식과 병렬 구조의 주석 방식, case(격 관계 표지)와 aux(조동사 관계 표지) 주석 방식을 검토하였다. 다양한 관계 주석 표지 중에서 특히 case와 aux에 집중하여 논의한 것은 한국어와의 주석 표지 적용 양상을 비교했을 때 분포 상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case는 한국어와 일본어 모두 조사와 관련이 있고, aux는 한국어에서는 보조용언, 일본어에서는 조동사와 관련이 있는 표지이다. 구체적인 주석 양상을 살펴본 결과 일본어의 aux는 서법 조동사뿐만 아니라 동사에 문법적 의미를 더하는 요소, 한국어의 어미에 해당하는 형태에도 aux를 할당하기 때문에 주석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iobj(간접목적어 관계 표지)와 관련해서는 일본어에서 간접목적어를 인정하는 데에 반해 한국어에서는 간접목적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일본어의 UD 주석에서 형태 분석 기본 단위인 '단단위'를 기본 구문 주석 단위로 하되 '장단위'와 문절 정보를 이용하는 것처럼, 한국어에서도 형태 분석 단위를 의존관계 주석의 정보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조선총독부 공문서의 기록학적 평가 -조선총독부 도시계획 관련 공문서군을 중심으로- (Archival Appraisal of Public Records Regarding Urban Planning in Japanese Colonial Period)

  • 이승일
    • 기록학연구
    • /
    • 제12호
    • /
    • pp.179-235
    • /
    • 2005
  • In this article, the task of evaluating the official documents that were created and issued by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with new perspectives based upon the Macro-Appraisal approaches developed by the Canadian scholars and personnel, will be attempted. Recently, the Canadian people and the authorities have been showing a tendency of evaluating the meaning and importance of a particular document with perspectives considering the historical situation and background conditions that gave birth to that document to be a more important factor, even than considering the quality and condition of that very document. Such approach requires the archivists to determine whether they should preserve a certain document or not based upon the meaning, functions and status of the entity that produced the document or the meaning of the documentation practice itself, rather than the actual document. With regard to the task of evaluating the official documents created and issued by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 and involved the city plans devised by the office back then, this author established total of 4 primary tasks that would prove crucial in the process of determining whether or not a particular theme, or event, or an ideology should be selected and documents involving those themes, events and ideologies should be preserved as important sources of information regarding the Korean history of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Those four tasks are as follow: First, the archivists should study the current and past trends of historical researches. The archivists, who are usually not in the position of having comprehensive access to historical details, must consult the historians' studies and also the trends mirrored in such studies, in their efforts of selecting important historical events and themes. Second, the archivists should determine the level of importance of the officials who worked inside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 as they were the entities that produced the very documents. It is only natural to assume that the level of importance of a particular document must have been determined by the level of importance(in terms of official functions) of the official who authorized the document and ordered it to be released. Third, the archivists should be made well aware of the inner structure and official functions of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 so that they can have more appropriate analyses. Fourth, in order to collect historically important documents that involved the Koreans(the Joseon people), the archivists should analyze not only the functions of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 in general but also certain areas of the Office's business in which the Japanese officials and the Koreans would have interacted with each other. The act of analyzing the documents only based upon their respective levels of apparent importance might lead the archivists to miss certain documents that reflected the Koreans' situation or were related to the general interest of the Korean people. This kind of evaluation should provide data that are required in appraising how well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s function of devising city plans were documented back then, and how well they are preserved today, utilizing a comparative study involving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s own evaluations of its documentations and the current status of documents that are in custody of the National Archive. The task would also end up proposing a specialized strategy of collecting data and documents that is direly needed in establishing a well-designed comprehensive archives. We should establish a plan regarding certain documents that were documented by the Joseon Governor General office but do not remain today, and devise a task model for the job of primary collecting that would take place in the future.

1930년대 중국 문서당안 행정개혁론의 이해 (The Records and Archives Administrative Reform in China in 1930s)

  • 이원규
    • 기록학연구
    • /
    • 제10호
    • /
    • pp.276-322
    • /
    • 2004
  • Historical interest in China in 1930s has been mostly focused on political characteristic of the National Government(國民政府) which was established by the KMT(中國國民黨) as a result of national unification. It is certain that China had a chance to construct a modern country by the establishment of the very unified revolutionary government. But, it was the time of expanding national crises that threatened the existence of the country such as the Manchurian Incident and the Chinese-Japanese War as well as the chaos of the domestic situation, too. So it has a good reason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 and pattern of the response of the political powers of those days. But, as shown in the recent studies, the manifestation method of political power by the revolutionary regime catches our attention through the understanding of internal operating system. Though this writing started from the fact that the Nationalist Government executed the administrative reform which aimed at "administrative efficiency" in the middle of 1930s, but it put stress on the seriousness of the problem and its solution rather than political background or results. "Committee on Administrative Efficiency(行政效率委員會)", the center of administrative reform movement which was established in 1934, examined the plan to execute the reform through legislation by the Executive Council(行政院) on the basis of the results of relevant studies. They claimed that the construction of a modern country should be performed by not political revolution anymore but by gradual improvement and daily reform, and that the operation of the government should become modern, scientific and efficient. There were many fields of administrative reform subjects, but especially, the field of records and archives adminstration(文書檔案行政) was studied intensively from the initial stage because that subject had already been discussed intensively. They recognized that records and archives were the basic tool of work performance and general activity but an inefficient field in spite of many input staff members, and most of all, archival reform bring about less conflicts than the fields of finance, organization and personnel. When it comes to the field of records adminstration, the key subjects that records should be written simply, the process of record treatment should be clear and the delay of that should be prevented were already presented in a records administrative meeting in 1922. That is, the unified law about record management was not established, so each government organization followed a conventional custom or performed independent improvement. It was through the other records administrative workshop of the Nationalist Government in 1933 when the new trend was appeared as the unified system improvement. They decided to unify the format of official records, to use marker and section, to unify the registration of receipt records and dispatch records and to strengthen the examination of records treatment. But, the method of records treatment was not unified yet, so the key point of records administrative reform was to establish a unified and standard record management system for preventing repetition by simplifying the treatment procedure and for intensive treatment by exclusive organizations. From the foundation of the Republic of China to 1930s, there was not big change in the field of archives administration, and archives management methods were prescribed differently even in the same section as well as same department. Therefore, the point at issue was to centralize scattered management systems that were performed in each section, to establish unified standard about filing and retention period allowance and to improve searching system through classification and proper number allowance. Especially, the problem was that each number system and classification system bring about different result due to dual operation of record registration and archives registration, and that strict management through mutual contrast, searching and application are impossible. Besides, various problems such as filing tools, arrangement method, preservation facilities & equipment, lending service and use method were raised also. In the process this study for the system improvement of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 they recognized that records and archives are the identical thing and reached to create a successive management method of records and archives called "Records and Archives Chain Management Method(文書檔案連鎖法)" as a potential alternative. Several principles that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 should be performed unitedly in each organization by the general record recipient section and the general archives section under the principle of task centralization, a consistent classification system should be used by classification method decided in advance according to organizational constitution and work functions and an identical number system should be used in the process of record management stage and archive management stage by using a card-type register were established. Though, this "Records and Archives Chain Management Method" was developed to the stage of test application in several organizations, but it was not adopted as a regular system and discontinued. That was because the administrative reform of the Nationalist Government was discontinued by the outbreak of the Chinese-Japanese War. Even though the administrative reform in the middle of 1930s didn't produce practical results but merely an experimentation, it was verified that the reform against tradition and custom conducted by the Nationalist Government that aimed for the construction of a modern country was not only a field of politics, but on the other hand, the weak basis of the government operation became the obstacle to the realization of the political power of the revolutionary regime. Though the subject of records and archives administrative reform was postponed to the future, it should be understood that the consciousness of modern records and archives administration and overall studies began through this examination of administrative reform.

전자기록의 장기보존을 위한 이관절차모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ransfer Process Model for long-term preservation of Electronic Records)

  • 천권주
    • 기록학연구
    • /
    • 제16호
    • /
    • pp.39-96
    • /
    • 2007
  • 기록관리 환경이 점차 자동화되고 효율성과 편리성을 보장해 주는 여러 가지 어플리케이션이 개발 보급됨으로써 기록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생산, 관리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록의 전자적 관리와 이관조항이 담긴 개정 법령이 시행된 점은 새로운 개념의 패러다임을 이행하려는 적절한 조치였다. 그러나 개정된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이하 기록관리법)에서의 전자이관은 일반적인 개념만을 제시한 것으로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절차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기록을 이관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기록을 먼 훗날에도 이용하기 위해 수행하는 기록관리 과정의 일부이다. 따라서 기록을 생산한 생산자와 이관 받을 기관이 상호 협력하여 기록 자체와 그 맥락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장기보존시설로 옮겨 보존해야 한다. 결국, 이관의 문제는 일정한 절차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신뢰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로 옮겨서 장기보존 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 모든 디지털 객체의 장기보존을 위한 표준인 OAIS 참조모형의 기능모델과 미항공우주국의 우주데이터 시스템 위원회(CCSDS : Consultative committee for Space Data Systems)에서 개발한 '생산자-아카이브 인터페이스 표준방법론(Producer-Archive Interface Methodology Abstract Standard-CCSDS Blue Book)'을 연구 분석하여 기록물관리기관간의 전자기록 이관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였다. 또한 해외의 다양한 이관사례를 통해 표준과 실제의 갭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관준비 ${\rightarrow}$ 전송(접수) ${\rightarrow}$ 검증 ${\rightarrow}$ 보존처리 ${\rightarrow}$ 저장소 저장'이라는 5단계와 단계별 하위절차로 구성되는 이관절차모형을 제안하였으며, 한국의 전자기록 이관구조를 '(특수)기록관에서 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의 이관'과 '민간부문에서 기록물관리기관으로의 이관'으로 구분하고 설계된 표준절차모형을 적용함으로써 실행 가능성을 입증해 보았다.

정암사 수마노탑 탑지석(塔誌石) 연구 (A Study on the Memorial stone of the Sumanotap in Jeongamsa Temple)

  • 손신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7권1호
    • /
    • pp.116-133
    • /
    • 2014
  • 수마노탑 탑지석은 1석부터 5석까지 차례로 1719년, 1773년, 1874년, 1653년, 1874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연호(年號)와 간지(干支)를 분석해본 결과, 제2석과 제4석 모두 1713년의 기록임을 알게 되었다. 동시기의 기록이 둘로 나눠진 것은, 중수대상을 탑신과 찰간으로 나누어 각기 소임을 맡은 이와 시주자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수마노탑 탑지석 5매에는 모두 중수불사의 역할을 맡은 승려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일반인 시주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 법호법명(法號法名)으로 기록된 제3석의 승려들 이름을 19세기 후반 불사 기록과 비교하여 12명의 동명(同名)을 파악하였다. 이들 대부분이 수마노탑 중수불사 전후로 강원도 서울 경상북도 사불산 일대와 경남 해인사 등지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은, 당대 불사의 경향과 수마노탑의 위상을 시사하고 있다. 1874년 탑 내에 봉안된 금은합 시주자인 김좌근은 청신녀양씨와 함께 기록되어, 수마노탑 시주자 중 유일하게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실재는 그의 애첩, 나합이라 불리던 나주 출신 기생 양씨가 그의 사망 이후 시주한 것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좌근의 애첩이던 양씨가 왕과 왕비 왕대비 대비 부대부인 등이 대거 참여한 불사에 개인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1874년 수마노탑중수는 원자 즉 순종의 탄생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 왕실에서 사적(私的)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할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탑지석에 기록된 10여 곳의 사찰 중 빈번히 등장하는 곳은 경북 봉화의 각화사와 강원도 영월 보덕사이다. 각화사는 사고사찰(史庫寺刹)로서 조정의 관리대상이었고, 보덕사는 단종 능의 원찰로서 왕실에서 돌보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 두 사찰이 수마노탑 중수 불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이 두 사찰의 조력으로 수마노탑이 중수되었다는 점과 당시 수마노탑의 위상이 사고사찰이나 능침수호사찰 못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법랑질 표면 처리방법에 따른 레진계 치아 고정재료의 접착강도 비교 (Comparison of adhesive strength of resinous teeth splinting materials according to enamel surface treatment)

  • 이예림;김수연;김진우;박세희;조경모
    • 구강회복응용과학지
    • /
    • 제35권2호
    • /
    • pp.72-80
    • /
    • 2019
  •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레진계 치아고정 재료의 법랑질 치면 처리 방법에 따른 전단결합강도와 파절 양상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 재료 및 방법: 레진계 치아고정 재료로 G-FIX, LightFix를 사용하였다. 시편 제작을 위해 소의 하악 절치 20개를 사용했다. 노출된 법랑질 표면을 4부분으로 구분하여, 각 분획 마다 37% 인산(E), 37% 인산+Adhesive resin (E+A), 37% 인산+G-premio bond (E+GP), G-premio bond (GP)로 각각의 치면 처리를 하고, 재료를 접착하였다. 만능 시험기를 이용하여 전단결합강도를 측정하였고, 시편의 파절된 표면을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파절 양상을 관찰하였다. Two-way ANOVA를 이용하여 재료와 표면처리 방법 사이의 상호작용을 검증하였고 각 재료에서 표면처리 방법 사이의 비교를 위해 One-Way ANOVA test를 하고 Scheffe's test로 사후 검정 하였다. 각 표면처리 방법에서 재료 사이의 전단결합강도를 비교하기 위해 independent t-test를 하였다. 모든 통계는 95% 유의수준에서 진행하였다. 결과: 동요치 고정을 위한 G-FIX는 산부식만 시행한 후 재료를 적용해도 접착 레진을 추가적으로 사용했을 때와 유사한 전단결합강도를 보였으며 LightFix는 산부식을 시행한 후 접착 레진을 추가적으로 사용했을 때 가장 높은 전단결합강도를 보였다. 또한, G-FIX와 LightFix 모두에서 별도의 산부식 없이 자가부식 접착제만 처리했을 때 가장 낮은 전단결합강도를 보였다. 교호작용의 검증 결과 치아고정용 레진과 표면처리 방법 사이의 상호 연관됨이 관찰되었다. 파절 양상은 모든 군에서 대부분 혼합성 파절이 관찰되었다. 결론: 치아 고정용 레진인 G-FIX와 LightFix의 사용시 제조사의 지시와 같이 산부식만 시행한 후 재료를 적용해도 충분한 접착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한정우기(閑情偶寄)』 「종식부(種植部)」를 통해 본 식물의 상징성과 완상(玩賞) 방식 (A Study on Symbolism and Appreciation of Plants through 'Xianqingouji Zhongzhibu')

  • 장림;양유선;성종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7권2호
    • /
    • pp.30-39
    • /
    • 2019
  • 본 연구는 이어(李漁; 1611-1680)의 "한정우기(閑情偶寄)" "종식부(種植部)"에 수록된 68종 식물 중 상징적 의미와 독특한 완상 방식을 지닌 27종의 식물을 추출하여 고찰했다. 해석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식물의 상징성이다. 1) 모란은 외적으로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강직하고 정직한 특성을 갖기 때문에 화왕(花王)으로 삼는다. 모란과 겨룰 수 있는 꽃은 작약밖에 없으나 작약을 화상(花相)으로 비유한다. 이어는 작약도 마땅히 다섯 등급의 제후(諸侯) 대열에 속해야 한다고 했다. 2) 이어는 복사꽃과 동백꽃을 미인의 뺨으로 해당화, 재스민 꽃, 다화장미, 수선화, 개양귀비를 자태가 다양한 여인으로 비유하면서 이에 대한 사랑스러운 감정을 꽃에 투영하였다. 3) 이어는 연꽃을 꽃 중의 군자로, 황양목을 나무 중의 군자로 삼는다. 반대로 서향을 꽃 중의 소인(小人)으로 비유한다. 4) 감탕나무는 풍채가 있으나 절개를 과시하지 않는 까닭에 이어는 감탕나무를 은사로, 멀리서 바라본 능소화를 하늘 끝의 신선으로 비유한다. 둘째, 식물의 완상 방식이다. 1) 식물감상 시 보조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 야외에 나갈 때 천막을 휴대하야 하고, 정원에서 매화를 감상 시 종이 병풍을 활용해야 정취를 더욱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매화 이외에도 이어는 난초 옆에 감상할 수 있는 기물을 배치해야 더욱 다채롭게 식물을 향유할 수 있다고 했다. 2) 이어는 백일홍과 살구나무의 예를 들어 식물은 동물과 사람처럼 지각이 있다고 주장했다. 3) 오감으로 식물과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는 버드나무와 합환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연꽃과 매괴의 예를 들어 식물은 관상 가치뿐만 아니라 실용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4) 사물의 비유로, 일반 사람들은 계관화를 '닭 벼슬'로 보는 반면에 이어는 하늘의 상서로운 구름과 같다고 했다. 종합하자면 본 연구는 이어가 식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인간의 다감각적 세계를 식물에 투영해서 인격화하고 식물에 대한 그의 사랑을 더해 독특한 식물 향유 방식을 표출해 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명말청초에 문인들이 아취(雅趣)의 삶을 추구했는데, 그의 식물의 상징성 및 식물 완상 방식은 그 당시 문인들의 아취의 삶을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