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가 태조부터 철종까지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편찬한 사서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 151호로 중요한 기록유산이지만 내용이 방대하여 분석함에 있어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의 모든 내용을 분석하기 보다는 중요한 단어들을 추출하여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는 웹 크롤링을 통하여 조선왕조실록 웹페이지의 본문에서 단어를 추출하고 단어의 빈도수에 따라 정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의 본문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본 연구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부분만을 추출하여 단어의 빈도수에 따라 중요도를 분석하였다.
경북 상주지역은 조선초기에 왕실에 소용되는 상품자기의 절반을 차지하였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에 비해 연구가 대단히 미비한 실정이었다. 이에 상주지역에 관련된 여러 사료들을 살펴보고 상주지역의 한국도자사적의 위치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는 청자(靑磁), 분청사기(粉靑沙器), 백자(白磁), 상감백자(象嵌白磁), 청화자기(靑畵白磁)가 생산되었다. 세종의 명에 의하여 1424$\sim$1432년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가 편찬되었고 성종대(成宗代)에는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설치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욱이 조선왕조로 교체되는 격변의 상황까지 겹쳐 강진의 요업(窯業)은 폐요되었고, 강진에서 종사하던 장인들은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러한 지역의 하나가 상주의 중모현 기미외리와 추현리(湫縣里)(세종 당시의 지명, 현 모동면)이다. 또한 성리학(性理學)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백자제작에 필요한 원료의 조건을 갖춘 곳의 한 곳이 경상북도 상주지역이었으므로 강진의 장인들이 이곳으로 이동했으리라 사료된다. $\ulcorner$태종실록$\lrcorner$(太宗實錄)에는 경상도 상주의 중모, 화령 등의 특정지역을 열거하면서 왕실소용기명 제작을 위해 중앙에서 감독관이 파견된 기록으로 보아 15세기 초의 상주의 자기 제작상황을 알 수 있다. $\ulcorner$태종실록$\lrcorner$(太宗實錄) $\ulcorner$지리지$\ulcorner$ (地理志)에는 추현리와 이미 외리를 언급하면서 상주의 자기제작의 위상을 짐작하는 기록이 언급되면서 전국의 상품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ulcorner$경상도지리지$\lrcorner$(慶尙道地理志)에는 상주가 8곳으로 1/3의 자기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ulcorner$경상도지리지$\lrcorner$(慶尙道地理志)에는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와 동년대에 동일한 목적으로 찬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ulcorner$경상도실록지리지$\lrcorner$(慶尙道實錄地理志)에는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와의 비교를 해보면 상 중 하품의 통합 9개소가 삭제되어 있고, $\ulcorner$동국여지승람$\lrcorner$(東國與地勝覽) 에서는 자기소와 도기소의 위치가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첫째, 15세기 중엽 경제적 태평과 함께 백자의 수요 생산이 증가하자 군신의 변별(辨別)과 사치를 이유로 강력하게 규제하여 백자의 확대와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둘째, 동기(銅器)의 대체품으로 자기를 만들어 충당해야할 강제성 당위성 상실로 인한 자기수요 감소를 초래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셋째, 경기도 광주에서 백자관요가 운영되었으므로 지방인 상주지역에도 더 이상 백자를 조달받을 필요가 없이, 일반 지방관아와 서민들의 일상용기 생산으로 전락하여 소규모화 되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청산별곡>은 고려시대의 작자 미상의 가요이며, <강보>는 조선 세종이 창제한 <발상> 중의 한 곡으로, "세종실록"에 의하면 <발상>은 기존의 고취악과 향악에 의거하여 창제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이 기록에 근거하여 이 논문은 <발상> 중 <강보>가 고려 향악인 <청산별곡>에 근거하여 창제되었음을 고증한 논문이다.
지금까지 '훈민정음'이 세종의 명을 받든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 창제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지만 본 논문에서는 신미(1403-1480)가 세종의 밀명을 받고 '훈민정음' 창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밝히고, 나아가 이와 관련 설화의 문화융합 콘텐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으로 특히 "세종실록", "문종실록", "한국불교전서" 등 문헌 중심으로 그 근거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첫째, 세종의 신미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 둘째, 신미가 범어에 능통하여 불경 해역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점, 셋째, 세종이 금동아미타삼존불을 복천암에 시주하고, 신미에게 '국이세(國利世)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존호를 내린 점, 넷째, 신미의 불교를 통한 훈민정음의 교육과 보급의 서원, 다섯째, 세조의 신미가 주석하고 있는 복천암 방문 등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훈민정음 창제 관련 설화를 단순한 스토리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이를 스토리텔링 하여 국가적 혹은 지역적 축제로 승화시킨다면 융복합 문화콘텐츠 활성화의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음에 그 의의를 두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고흥현 자기소 은촌은 운대리 가마터와 관련되어 연구성과가 집적되었다. 그 이유는 운대리에서 27개소의 분청사기 가마터가 확인·조사되어 그 수량이나 밀집 분포 면에서 중요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실록』 지리지에 '현 서쪽(縣西)'이라는 방위와 부합되지 않아 명쾌한 해결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운대리 가마터가 현(치소)의 서쪽이 아니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고흥현 자기소 은촌(犾村)에 대해 논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고흥현 치소는 『세종실록』 지리지 편찬연대인 1424~1432년 전에 이미 현 보성군 조성면 우천리 고내마을 일대로 이동되었기 때문에, 자기소 또한 보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치소의 위치는 자기소·도기소를 비정하는데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흥현 사방경계 기록 중 남쪽과 동쪽의 경우 현재 옥하리에 있는 흥양현 읍성은 『세종실록』 지리지와 부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성 조성면 우천리의 조양현성은 영조척으로 환산하게 되면 사방경계 기록과 유사한 결과값이 나와 이곳이 『세종실록』 지리지 단계의 고흥현 치소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자기소 은촌(犾村)의 의미구조는 동물+소리인데, 이와 유사한 구조의 지명이 보성 득량면 정흥리에서 확인되었다. 바로 호음동(虎吟洞)으로, 이 마을 남쪽에서 분청사기 가마터가 조사되었고, 여기서 '내섬(內贍)'의 '섬(贍')자 중 아래 획에 해당되는 '언(言)'자가 있는 분청사기편이 확인됨에 따라, 공납자기 생산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되어 고흥현 자기소 은촌은 보성 정흥리 분청사기 가마터로 추정하였다. 남은 문제는 고흥 분청사기 핵심 연구 대상인 운대리 가마터의 성격이다. 최근 운대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각종 제기(祭器)를 근거로 고흥현에서 흥양현으로 확대 개편되는 1441년 2월 이후 1450~70년대에 운대리 가마터가 자기소 기능을 하였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지방 군현(郡縣)의 수령이 주관하는 국가의례인 주현제(州縣祭)에 이용된 자기 제기가 운대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상준(象尊), 희준(犧尊)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하였던 7호 가마터 주변에서 수습된 '예(礼)'명 분청사기편 역시 달리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예(礼)'명은 관사명이기 때문에 공납자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대리 가마터가 1441년 2월 이후 1450~70년대에 흥양현의 자기소 역할을 하였다면, 이 편은 자연스럽게 운대리 가마터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황희(黃喜: 1363~1452)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으로 세종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는 종묘(宗廟)에 배향된 공신(功臣)이며 조선시대의 대표적 청백리(淸白吏)이다. 학문상의 공로를 인정하는 팔도유생들에 의해 문묘(文廟)에 배향을 청하는 상소가 두 차례나 있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위상은 실로 남다른 바가 있다. 그러나 "세종실록" 등 조선왕조에서 펴낸 실록(實錄)에 따르면 황희에 대한 당대(當代)의 평가가 일률적이지는 않았다. 황희의 부정과 비리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실록에 다수 실려 있다. 모두 사실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의 내용이 있고, 고의적인 악평(惡評)에 가까운 내용도 있다. 다만, 사관(史官)이 양심에 따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존중할 필요는 있다. 황희는 특유의 관대함[관(寬)]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관료 사회에서 인심을 얻었다. 그러나 관대함이 지나쳐 집안을 다스리는[제가(齊家)] 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사관의 평이다. 필자는 이 평이야말로 당시 일각에서 황희에 대해 제기한 비판의 근본 원인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잘못에는 저마다의 유형이 있다. 잘못을 보면 그 사람의 인간됨을 알 수 있다"고 한 공자의 말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청산별곡(靑山別曲)>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이며, <강보(降寶)>는 조선 세종이 종묘, 조회, 공연에 사용하기위해 새로 창제한 <발상(發祥)> 11곡 중의 한 곡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발상>은 고취악과 향악에 의하여 창제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이 기록에 근거하여 이 논문은 <발상> 중 <강보>가 고려 향악인 <청산별곡>에 근거하여 창제되었음을 밝힌 논문이다. <강보>와 <청산별곡>의 선율을 비교 분석한 결과 48행의 <강보>는 10행의 <청산별곡>을 세 번 반복하였는데, 즉 <강보>의 1-16행, 17-32행, 33-48행에서 <청산별곡>이 세 번 반복하여 발췌되었고, <청산별곡>과 <강보>의 선율은 거의 같거나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세종 때 <발상> 중의 <강보>가 고려 향악인 <청산별곡>을 발췌하여 신악(新樂)으로 창제되었음을 이 연구에서 밝혀냈다.
This study uses the "Sejong chronicles" ritual manual to investigate the movements and roles of provincial governors during the enshrinement rituals of the royal portrait, the official uniforms of the provincial governors in their role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official uniforms system for local governor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Provincial governors who participated in the enshrinement rituals of the royal portrait were governors 'en route' and governors 'in destination'. The movements of the governor 'en route' followed the provincial borders, official residences, and neighboring provincial borders. The movements of the governor 'in destination' followed the provincial borders, the official residence, and jinjeon. The roles of the governors included the welcoming ceremony, the bow-down ceremony, the front guard, and the farewell ceremony. The governors 'en route' wore Jobok in the welcome ceremony, and a Sibok in the bow-down ceremony before the farewell. The governor 'in destination' wore Jobok in the welcome ceremony, and Jobok (or Sibok if Jobok was not available) in the bow-down ceremony before the farewell. The characteristics of the official uniforms system for local governors in the Joseon Dynasty were as follows. First, the governors wore different uniforms depending on the importance of the ritual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Second, the names of official uniforms Sang-bok and Si-bok were used interchangeabl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ird, local governors were allowed to wear Sangbok (or Sibok) instead of Jobok.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200여년 동안 생산되었던 분청사기는 백자와 함께 왕실뿐 아니라 국가 행사에 사용되었던 조선 초기 국용(國用) 자기였다. 분청사기는 청자 백자와 달리 "세종실록" "지리지"에 그 생산처라고 할 수 있는 자기소와 도기소 기록이 남아 있어 매우 주목된다. 하지만 경상도에 비해 전라도 소재의 자기소 도기소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 나주목에 소속되었던 나주목, 해진군, 영암군, 영광군, 함평현, 무안현, 장성현, 고창현, 흥덕현의 자기소 도기소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고찰 결과 다음과 같은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일부 지역에 대해서는 기왕의 조사를 근거로 자기소를 추정한 연구 성과가 있었지만 유물, 즉 분청사기 편년만을 이용하여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각 지역별 자기소 도기소로 기록된 지명과 조선 후기 지방 행정 명칭을 기록한 "호구총수"의 지명을 대조하여 그 변화상을 추적하였다. 이와 아울러 자기 관련 지명, 지표 및 발굴조사에서 수습 확인된 유물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보다 더 정확한 자기소 도기소 위치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부 지역을 제외한 8개 시 군 9개 지역에 대한 위치를 비정하였다. 둘째, 자기소뿐 아니라 도기소에서의 자기 생산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이유는 나주목 도기소, 영암군 도기소, 무안현 도기소로 각각 비정되는 영암 청용리 동산 분청사기 요지, 영암 상월리 유천 분청사기 요지, 무안 청수리 청수동 분청사기 요지 등에서 분청사기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김제 청도리 동곡마을 일대 발굴 결과 공납 자기로 추정할 수 있는 '공(公)'명, '상(上)'명 분청사기가 확인되었고, 이 요지가 위치하고 있는 청도리가 전주부 도기소 우림곡(雨林谷)이 있었던 우림곡면(雨林谷面) 지역으로 밝혀졌다. 전남 지역이 아니지만 매우 주목할 만한 유적이다. 도기소로 추정되는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보다 많은 자료가 확보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연구 성과도 증가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기존 조사에서는 지표 혹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만 중요시하였으나, 행정구역 명칭의 변화상을 추적하여, 보다 합리적이면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자기소 도기소로 추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요지가 위치하고 있는 해당 지명에 대한 변화나 자기 관련 지명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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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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