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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경제영시(集景題詠詩)'를 통해 본 전통주택의 조경문화 향유양상 (A Study on the Traditional House Landscape Styles Recorded in 'Jipkyungjaeyoungsi(集景題詠詩, Series of Poems on Gardens Poetry)')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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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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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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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한국고전번역원 DB자료에 근거하여 전통주택 관련 '집경제영시(集景題詠詩)'를 통해 본 정원의 식물요소와 상징성, 그리고 조경문화를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집경제영시'는 고려중기에 유입되어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는데, 주로 문신의 길을 택한 상류계층에 의해 향유되었다. 총 165책에서 주택정원을 대상으로 25책의 33제영시가 추출되었는데, 최초로 관련 제영시를 남긴 인물은 고려후기의 문신 이규보(1168~1241)로 판단된다. 그는 '퇴식재팔영', '가분중육영', 그리고 '가포육영' 등 경물소재의 확장과 영물시를 팔경시로 대입하여 향유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한 최초의 인물이라 하겠다. 둘째, 제영시 표제는 사랑채 당호가 많이 활용되었으며, 경물은 8영(詠)이 전체 33개소 중 19개소(57.5%)였으며, 4영, 6영, 10영, 14영, 15영, 16영, 36영 등의 빈도순으로 제영되었다. 제영에는 소상팔경류의 전형성을 벗어나 (1)경물명 중심 (2)지명과 경관명의 결합 (3)경관명 중심으로 차별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셋째, 소표제는 (1)자연 및 정원식물 중심의 자연경관소재(22개소, 66.7%)가 주를 이루었고 (2)사랑채 건물 및 연못과 정자 등 조경시설 중심의 인문경관소재(3개소) (3)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행위요소 중심의 복합 문화경관소재(8개소)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양상은 정원식물의 심미적 취향, 실경을 뛰어넘어 관념화된 경물을 향유하며 주목받지 못했던 채소류와 약초류에도 관심을 두는 정감 표출로 이어진다. 넷째, 정원식물은 상록수(4종)에 비해 낙엽수의 개체수(17종) 비중(80.9%)이 월등히 높았다. 이러한 양상은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상록수 18종(21.2%) : 낙엽수 67종(78.8%)의 비율, 그리고 선행연구[변우혁(1976), 정동오(1977), 이선(2006) 등]와 유사한 결과이다. 다섯째, 정원식물의 출현빈도는 매화(14회), 대나무(14회), 소나무(11회), 연(11회), 국화 10회, 버드나무(5회), 석류(4회), 단풍나무(3회), 오동나무, 배롱나무, 밤나무, 모란, 파초, 갈대, 맨드라미(각각 2회) 등이었다. 즉, 의미론적으로 (1)유교적 규범(소나무, 측백, 매화, 국화, 대나무, 연꽃 등) (2)안빈낙도의 생활철학(국화, 버드나무) (3)은일사상과 태평성대 희구(오동나무, 대나무 등) 관련 상징식물의 도입이 상대적으로 높은 출현빈도를 보였다. 여섯째, 안뜰과 바깥뜰, 채원과 약포, 그리고 사랑뜰 화분에 도입된 식물류 추적이 가능하였다. 즉, 안뜰에는 심미적 취향을 뛰어넘어 문화경관으로 승화시킨 상징식물의 도입, 채원과 약포에는 채소류, 과실수, 약용식물의 이용후생적 도입 양상이 뚜렷하며, 사랑뜰에 화분을 놓아 완상한 석창포, 석류화, 서상화, 국화, 대나무, 연꽃, 매화 등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일곱째, 정자, 연못, 계류, 분경(盆景), 괴석, 후원(後園), 과원(菓園), 약포(藥圃), 화오(花塢), 국리(菊籬), 범주(泛舟), 조어(釣魚), 계음(?飮), 탁족, 간화(看花), 행림(杏林), 도원(桃源), 무송(撫松), 설중매, 상국(霜菊) 등의 시어(詩語)를 통해 조경소재와 관련한 정원 문화의 향유 양상을 추적할 수 있었다.

영상콘텐츠분야 정권별 빅데이터 분석 - 상위 중심성 값의 변화를 중심으로 (Analysis of Big Data by Regimes of Image Contents Field)

  • 황고은;문신정
    • 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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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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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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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는 영상콘텐츠 분야가 정권별로 어떤 의미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의미연결망 분석 기법을 적용했다. 연구대상은 영상콘텐츠 석박사학위논문의 초록을 대상으로, 시기는 문화산업 도입기인 1993년부터 2016년까지이다. 분석대상 단어는 정권별 최상위 출현단어인 영상, 미디어, 교육, 콘텐츠 등 4개 언어의 의미연결망을 분석하였다. 분석방법에는 빅데이터 분석기법인 텍스트 마이닝과 의미연결망 분석을 활용했고, 분석프로그램으로는 R을 사용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에 대한 영향력 감소이다. 초기 영상콘텐츠 분야는 영상과 관련한 '교육',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실시되었으나 점차 감소 추세를 보였다. 둘째, '미디어'의 역할 변화이다. 중기의 영상콘텐츠 분야는 영상을 전달하는 수단인 '미디어'에 대한 연구들이 주로 실시되었으며, 더불어 '디지털' 기술에 대한 연구들이 강세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위상의 변화이다. 노무현 정부를 시작으로 내용물의 질에 관련한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였으며, <박근혜정부>에는 '영상'과 '콘텐츠'의 위상이 거의 동등해져 연구들이 실시되었다.

조선 초 성임의 석가산에 조명된 상징성과 형태적 구현 (Symbolism and Formal Embodiment Lighted in Seokgasan of Seong-im in the Early Joseon)

  • 윤영조;윤영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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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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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9-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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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석가산(石假山)은 고려시대 창안되어 조선시대로 전승, 발달된 한국전통기법으로 산수자연의 풍치를 축경적으로 재현한 한국의 창조적 석정문화(石庭文化)이다. 이 연구는 조선 초 문신인 성임(成任, 1421-1484)의 한양 인왕산 저택에 조영한 석가산을 대상으로 관련 옛 문헌을 근거로 하여 성임이 조영한 석가산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 그리고 형상과 구조를 구현해 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성임의 석가산에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구명할 수 있었다. 조선 초 성임의 석가산은 고려 중기 만월대 본궐 뜰에 처음 조성한 지변형(池邊形) 석가산의 구조적 형태를 계승하고 있고, 석가산이란 명칭도 성임의 저택 원림에서 처음 '석가산'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초 성임의 석가산에는 신선사상 등 여러 철리적(哲理的) 함의(含意)가 고려시대보다 더 응축되어 상상의 공간으로 표상되고 있으며, 중국의 여러 명산명호의 모사가 고려조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보이지 않던 석가산 조영목적에 정서적인 안정과 치유를 위한 실용성이 나타나고 있다. 성임의 석가산은 고려시대 석가산의 계승적 차원의 역사적 의미와 형상과 구조적 틀을 확인 해 볼 수 있는 조경사적 가치가 높은 기록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를 통해 본 조선시대 읍치(邑治)의 공간구조와 관아(官衙) 조경 - 평안도 영유현과 황해도 신천군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patial Structure of Eupchi(邑治) and Landscape Architecture of Provincial Government Office(地方官衙)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Sukchunjeahdo(宿踐諸衙圖)' - Focused on the Youngyuhyun Pyeongan Province and Sincheongun Hwanghae Province -)

  • 신상섭;이승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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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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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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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조선후기 문신 한필교(1807~1878년)가 관직을 역임했던 읍치를 대상으로 제작한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화첩의 평안도 영유현과 황해도 신천군 읍치를 분석 자료로 활용하여 실증사료로서의 가치추적, 공간구조 등의 전형성 정립, 관아조경 및 문화경관 특성 도출 등을 시도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풍수형국도' 성격을 겸하며 사방전도묘법으로 그려진 "숙천제아도"의 읍치도는 조선시대 지방고을의 터잡기와 공간구조는 물론 환경설계원칙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고을 치소(邑治)는 남북 중심축선에 위계를 설정한 배산임수 체계이며,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관아시설, 그리고 3단1묘의 제례처 등 도성에 준한 토지이용과 배치규범을 적용하고 있다. 교통요충지에 자리한 고을 치소는 어귀 장터마당을 결절점으로 안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관아 문루에 다다르는 노단경이 형성되고, 고갯길 또는 물길을 따라 외부 바깥길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는다. 즉, 동선체계는 바깥길-고갯길-어귀길-장터마당-안길-또는 샛길로 수용력과 위계에 따라 분절되며 3거리 길로 접합되는 양상이다. 지방관아의 토지이용은 3조(三朝)의 개념(외조, 치조, 연조)을 반영한 위계적 구성인데, 동헌의 후원과 객사의 별원을 포함하여 3문3조2원(三門三朝二園)의 공간체계를 보여준다. 고을의 뒷동산 소나무 숲, 명당수인 남천, 안산(案山)에 해당하는 조산(造山), 비보숲 읍수(邑藪) 등 풍수적 경관짜임이 작용되었는데, 겨울철 북서풍 차단과 여름철 상승기류 형성 등 에너지 보존, 색체 항상성, 자연재해 방지와 심리적 안정성 등 쾌적성 조건에 부합되는 환경지속성이 추출된다. 한적한 곳에 자리한 향교는 별도의 원림을 가꾸지 않았으며, 누정은 심신수양, 안분지족, 자연회귀 같은 상징적 가치, 정치적 행사와 윤리관 반영, 유흥상경 등 문화경관 양상이 다양하게 표출되는데, 객사에는 기와를 얹은 와정(瓦亭)이, 동헌과 내아에는 네모꼴 연못을 두고 소박한 모정(茅亭)이 도입되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관아에 지표경관으로 문루가 자리하고, 군사훈련 및 심신수양을 겸한 사정(射亭)이 필수시설로 도입되었다. 아사의 앞뜰은 네모꼴 마당(庭)으로 조경처리를 하지 않은 반면, 정청의 뒤뜰(後園)과 객사의 별원(別園) 등은 장식적으로 가꾸었다. 이러한 관아조경은 공간 성격 및 위계를 반영하되 기능적 지속성(차폐와 방화, 미기후조절 등)과 심리적 건전성, 상징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경관미학이라 하겠다. 한편, 소나무, 느티나무, 배나무, 버드나무, 향나무(또는 노송), 연(蓮), 화목(花木) 등이 조경식물로 활용되었는데, 환경심리적 가치가 부가된 배후숲, 조산숲과 비보숲 등과 함께 건전한 문화경관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결과를 일반화 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조선시대 읍치의 공간구조 및 환경설계 원칙이 제도적 틀 안에서 정형성으로 작용되고 있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고려시대 왕실호위제도의 사적 고찰 (Historical Review on the Security Service for the Royal Household in the "Goryeo" Era)

  • 이성진;김의영;이종환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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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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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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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고려시대의 왕실 호위라 함은 오늘날로 보면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에 해당한다. 고려시대의 독특한 정치제도가 완성되기까지는 신라시대나 태봉국의 제도를 답습하여 왕의 신변을 중심으로 경호가 실행되었다. 고려의 중앙군은 2군과 6위라는 8개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2군은 6위보다 위였으며 이는 응양군(鷹揚軍)과 용호군(龍虎軍)으로서 이를 근장(近仗)이라고 불렀다. 이를 오늘날의 공경호와 관련을 지어보면 근접경호에 해당된다. 고려 귀족 사회의 안정기에 귀족문화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 뒤로 귀족분열과 상극대립으로 중앙통제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무신란이 일어나고 무신들이 집권함으로서 왕의 신변은 안정되지 못하였다. 최씨 무인집권시대에 이르러 무인집권의 안전을 위하여 도방을 설치했고 최우 시대에는 그의 문객들을 모아 사병들뿐만 아니라 정방, 서방, 등의 문신을 거느려 인사행정을 담당케 했다. 몽고에 항쟁하던 시대에는 무신통치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삼별초를 중심으로 항쟁했다. 최씨 정권시대의 그들 나름의 국가관과 국가 호위의 정신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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