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근대 교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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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교육기(1876 ${\sim}$ 1910) 학회지를 통한 과학교육의 전개 (Development of Science Education through Academic Journal of Educational Associations during the Modern Educational Period (1876${\sim}$ 1910) in Korea)

  • 이면우
    • 한국지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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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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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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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근대교육기(1876${\sim}$1910) 중 1905년부터 1910년 사이는 우리 나라 교육에 대한 일제의 간섭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였다. 이에 대응하여 우리 민족은 전국 단위나 지방 단위로 학회를 세웠고, 학회를 통하여 근대 교육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연구에서는 근대교육기에 국내에서 출판된 학회지 9종 132권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근대교육기에 발간된 학회지의 주요 내용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역사나 지리 등의 내용과 계몽적인 차원에서 서구의 정치나 경제 체제를 소개하는 글과 더불어 자연과학에 관한 논술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둘째, 과학 관련 논술을 분야별로 분석해보면 생리${\cdot}$ 위생을 포함한 생물학 분야와 지구과학 분야가 비교적 많았다. 반면에 물리학이나 화학 분야는 아주 적었다는 특징이 나타난다. 셋째, 학회지에 게재된 지구과학 관련 논술만 분석하더라도, 대부분 같은 저자에 의해 교과서적인 기초 내용을 연재한 논술이 많이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술지에 게재된 과학 관련 논술은 근대 교육기에 우리 나름의 과학 교육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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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 : 한국 근대수학교육의 아버지 (Sang-Seol LEE: Father of Korean Modern Mathematics Education)

  • 설한국;이상구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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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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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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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한국수학사에서 연구와 정리가 취약한 시기인 근대수학의 도입기를 조사하면서, 그 근대수학의 도입기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인 이상설(李相卨)에 대한 조명을 시도한다. 시대적 상황이 모든 분야의 침체기를 가져온 구한말 이상설은 근대수학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높은 학식을 쌓고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간 이상설에 대해 '근대수학교육의 아버지'라는 평가가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가 독립운동가로만 강하게 각인된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세기말 조선 근대수학의 첫 번째 교과서 편저자이자 수학교사이기도 했음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대유학자이면서도 선구적으로 외국어와 서양과학 특히 근대 서양수학을 이해한 면모는 한국이 배출한 천재 중 하나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한국 근대수학교육에 커다란 기여를 한 인물인 이상설의 교육과 학문 및 실천업적을 조명한다. 보재 이상설이 1886년경에 쓴 책 <수리>와 최초로 수학과 과학을 관립교육기관의 교육과정에 편성한 과정, 최초의 근대수학교과서로 여겨지는 <산술신서>의 발간,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의 설립 및 운영을 포함한 보재의 업적을 한국수학사 관점에서 조명한다. 또한 <산술신서>의 목차와 구체적인 내용 및 1901년에 출간된 <신정산술>의 내용을 소개하고, 지금까지 부정확하게 알려진 <수리>와 <산술신서>에 관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여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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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현대화 원칙 및 전략 수립을 위한 전통 재조명 (Review of Traditional Concepts for Modernization of Tradition and Strategy of Modernization)

  • 한성구;지준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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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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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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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우리는 근대의 본질과 수용의 타당성에 대해 성찰하기 전에 이미 일본이라는 타자에 의해 이식된 근대 속에 던져졌으며, 이로 인해 근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유보되거나 정서상 회피, 또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구한말 전통 문화와 사상의 무기력함으로 인해 야기된 망국의 상황도 사람들이 근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근대란 연속되는 역사 시간 속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상대적 개념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규정받는다. 따라서 회피하거나 망각하고 싶은 근대라 할지라도 현대를 이해하고 그 원류가 된 전통 시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근대에 대한 정면적인 직시가 필요하다. 근대의 실패는 전통 계승의 실패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 계승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가다보면 우리가 근대를 실패한 시기로 인식하는 원인의 일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는 반전통주의는 서구 교육의 전래와 깊은 연관이 있다. 신교육은 반전통주의를 서구화 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였다. 서구문화를 추종하는 개화론자들은 조선이 뒤처지게 된 원인을 전통교육에서 찾았다. 따라서 조선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전통과의 단절, 그리고 급격한 서구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전통주의는 근대교육으로의 진전이라기보다는 서구교육에 대한 일방적인 예속이라고 볼 수 있다. 신교육의 일각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반전통적 입장은 기존의 교육 체제를 철저히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천 년간 계승되어 내려온 교육 내용과 형식마저도 도외시함으로써 문화적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서구 교육의 수용이 지닌 양면성을 고려할 때, 전통교육을 부정하는 모든 신교육을 곧 근대교육으로 파악하는 단선적 이해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구한말 발간된 잡지와 신문의 전통 교육 계승 관련 글들을 중심으로 근대 지식인들이 전통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다. 아울러 전통 단절 원인과 그것의 결과로 야기된 교육적 병폐의 양상을 논함으로써 오늘날 새롭게 조명해야 할 전통적 요소를 찾아 교육적 참고로 삼고자 한다.

한국 근대 고등수학 도입과 교과과정 연구 (Korean tertiary mathematics and curriculum in early 20th century)

  • 이상구;함윤미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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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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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7-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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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초등(elementary), 중등(secondary)교육에 이어지는 대학 및 직업 교육을 총칭하여 고등(tertiary) 교육이라고 한다. 본 연구는 한국의 근대 고등수학 도입과정과 정규대학 교과과정으로의 정착 과정을 확인한다. 우리의 고등 수학교육은 산학자의 전통수학, 육영공원, 원산학사, 1895년 교육과정에 수학을 필수과목으로 도입한 성균관, (교동)소학교, (교동)한성사범학교, (한성)중학교, 민족 사립학교, 종교학교, 배재학당 및 이화학당의 대학부, 숭실대학, 사범학교, 관 공립전문학교, 사립전문학교, 경성제국대학, 경성대학, 국립서울대, 김일성대를 시작으로 해방과 함께 전국의 주요대학을 통하여 전수, 발전 확산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1900년 근대 수학교과서의 발간을 시작으로 1909년까지 한글로 쓰인 근대 수학책이 봇물 터지듯 발간되었다. 그러나 오랜 수학적 연구의 전통과 1880년대에 시작된 고등교육에서의 서구식개혁노력은 1905년 이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간섭부터 시작하여 1910년 한일합방을 계기로, 특히 중등교육이상의 수학교육과 수학적 연구의 전통은 천천히 붕괴되었다. 최소한 1910-1945년 사이에는 한반도에 중등교육이나 교양수학의 수준을 넘어서는 진정한 고등 수학교육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을 때 한국은 모든 전문 직종에서 심각한 인력난을 겪었다. 특히 수학과가 단 하나도 없어 수학분야 이학사가 10여 명도 못되는 수학분야의 교수인력의 부족은 심각하였다. 단 한명의 교수도 연구경험을 가지지 못한 수학분야의 상황은 한국이 21세기 현대수학의 주류에 진입하는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면서 신설된 다양한 국 공립 및 사립학교들에서 대학수학이 교수되었고 교육과정이 국제기준으로 정착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에 근대 고등수학이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도입되었으며, 어떤 교재로 누구에 의하여 지도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정규 대학과정의 교육과정으로 정착되었는지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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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계몽기.일제강점기 수학교육과 해방이후 한국수학계 (Evolution of Korean Modern Mathematics in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 이상구;양정모;함윤미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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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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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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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근대수학을 도입하는 과정과 해방 직후 국내 수학계의 주변 환경을 소개하며, 이를 통하여 근대수학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우리의 노력과 장애물들을 회고해보고 이를 현 시점에서 반추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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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만화의 예술적 특징에 관한 연구 - 1900년대 초부터 1945년까지 작품의 조형적 측면을 중심으로 - (A Study on Artistic Characteristics of Korean Modern Cartoon - Centering on the field of modeling in the period from the early 1900's till 1945 -)

  • 김종옥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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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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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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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본 논문에서는 한국 근대사회 대중문화의 신총아(新寵兒)로 자리매김 된 만화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사회적 의미를 밝혀 한국만화의 역사적 위상 정립을 위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였다. 만화가 학문으로서 연구 영역을 확대하고, 한국 사회 속에서 독특한 대중문화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태동기부터 한국만화가 갖는 역사적 위상을 고찰하고 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만화는 시각문화로 문맹률 높던 근대한국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목적을 훌륭하게 실현한 장르였다. 이 시기 근대만화의 등장은 격변기(激變期) 대중을 계도(棨導)하며 주권회복운동을 펼쳐 나갔던 개화파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선전 ${\cdot}$ 교육의 도구였으며, 역으로 친일의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또 영리를 목적으로 매체를 운영하던 신문사(출판사)들에게는 중요한 독자 확보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문은 1900년대 초반부터 1945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맞는 시기까지를 한국만화의 태동기로 보고 그 특징을 밝혀 보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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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기·근대시조 DB의 개선 및 콘텐츠화 방안 연구 (A study on the improving and constructing the content for the Sijo database in the Period of Modern Enlightenment)

  • 장정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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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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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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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최근 검색 기능을 갖춘 "계몽기 근대시조의 XML 데이터베이스 문서화"라는 자료가 기초학문자료센터(http://www.krm.or.kr)를 통해 제공되고 있어 근대시조의 문화콘텐츠화를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계몽기 근대시조 DB의 특성 및 문제점을 검토해 보고 개선 방향을 탐색함으로써 이 자료의 콘텐츠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계몽기 근대시조 DB는 12,500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근대시조를 한자리에서 일별할 수 있도록 집성해 놓았다는 점과 문헌 및 작가명 작품명 검색, 원문 검색, 시기별 검색 등의 검색 기능을 갖춘 최초의 시조 DB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이 DB는 현대어 정규화 텍스트가 형성되지 않아 제목이나 원문이 고어나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 검색이 되지 않으며, 1945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과 개인 시조집에 수록된 작품이 대거 누락되어 있어 계몽기 근대시조의 총체적 모습을 확인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작자 표시가 실명, 호, 필명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어 작가별 자료 추출에 불편함이 따르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DB 활용을 제고(提高)하는 방안으로 본고에서는 현대어 정규화 텍스트 마련, 작품 별 내용소(內容素) 색인어 부여, 고시조 DB와의 통합, 작품 형식에 대한 정보 제공 등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시조문화정보시스템'의 성격을 갖춘 복합적인 성격의 계몽기 근대시조 DB가 형성된다면 이를 연구 및 교육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음을 피력하였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근대사 학습 및 근대기 국토 인식 등에 대한 보조 자료, 고유의 동식물 캐릭터 학습 및 상업적 캐릭터 생성을 위한 원천 자료, 시조놀이 등의 시조학습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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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간호학의 보급과 간호사 양성 정책 (Dissemination of Nursing Science and Nursing Training Polic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정은영
    • 한국융합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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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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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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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간호의 주체성을 지켜내기 위힌 노력의 과정들을 살펴봄으로써 미래의 간호 발전을 위해 현재 간호학이 갖추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시도되었다. 일제강점기 간호의 역사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근대 간호의 태동기인 1910년부터 1919년에는 간호교육기관이 확장되고, 간호 관련 제도를 만들었다. 1920년부터 1937년은 근대 간호의 발전기로 간호의 영역 확대될 뿐 아니라 간호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2개의 간호협회를 조직 하였다. 근대 간호의 정체기인 1938년부터 1945년은 전쟁이라는 사회적 재난 속에서 전쟁인력 동원을 위한 간호사 양성 정책이 펼쳐지면서 또다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 속에서 시대적 사건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지만 그 시대에 정립된 간호제도는 현재 간호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은 공통된 해석이다 간호의 영역 확대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회적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변화되는 간호의 역할과 보급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