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국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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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부근의 하산동층에서 산출되는 패각화석층 - 산상, 화석화과정, 고환경 및 지질유산으로서의 의미 - (Shell Deposits in the Lower Cretaceous Hasandong Formation from Daesong-ri, Geumnam-myeon, Hadong-gun - Occurrences, Taphonomy, Paleoenvironments, and Implications in Geological Heritage -)

  • 백인성;김나영;김현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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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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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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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복족류 패각화석층이 반복적으로 발달되어 있는 하동군 대송리 지역의 하산동층을 대상으로, 이 지역 퇴적층의 퇴적상 및 퇴적환경을 해석하고, 수반되어 있는 패각화석층의 화석화과정 발달특성을 토대로 이 지역 하산동층 퇴적 당시의 고환경을 해석하였으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지역 퇴적층의 암층서적 의미와 지질유산으로의 가치를 고찰하였다. 연구지역에 발달된 하산동층의 퇴적층은 붉은색층을 협재하지 않고 층의 횡적인 연장성이 양호한 회색질 우세의 퇴적층으로서 대규모 범람에 의해 충적평원 내에 얕은 호수가 형성되고 이후 소멸해 가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호수 주변의 사질평원 내지 이질평원에서 천호저에 이르는 환경의 퇴적층으로 해석된다. Brotiopsis wakinoensis 단일 종만이 집중되어 나타나는 특성을 보이는 연구지역의 패각 화석층은 Brotiopsis 속의 배타적 서식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지며, 패각화석층의 산출특성을 기준으로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중 유형 1과 2는 이들이 서식하던 천호저 환경에서 사후에 층상범람 및 호수의 범람에 의해 이질평원 내지 사질평원으로 재동되어 화석화된 것이며, 유형 3은 충적평원상에 발달한 얕은 호수가 비교적 안정화된 시기에 호저에 집단으로 서식하던 복족류들이 죽은 후 서식하던 장소에 대부분 퇴적되어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산동층의 충적평원층 내에 이와 같은 특성의 호수퇴적층이 수십 m 두께의 규모로 발달된 기록은 경상누층군 내에서 일어난 하산동층(하성평원)-진주층(호수)-칠곡층(충적평원) 간의 퇴적환경 변화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특성의 퇴적층이 유사한 층준에 걸쳐 여러 지역에 발달되어 있음은 암층서에 의한 하산동층의 층서대비에 추가적인 설정이 필요함을 제시해 준다. 이와 함께 연구지역 하산동층의 복족류 패각화석층은 우리나라 백악기 초기의 고환경을 이해하는 데에 귀중한 자연사기록으로서, 향후 국내 백악기 연체동물 화석층의 지질유산으로서의 가치분석에 유용한 바탕자료가 될 수 있다.

조선후기 강원감영의 후원조영(造營)과 신선세계 (The Back Garden Structure and the Symbolism of Immortal World of Gangwon Provincial Office in Late Joseon Dynasty)

  • 이상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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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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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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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사적 제439호인 강원감영은 1395년 원주에 처음 설치된 이래 1895년 23부제의 실시로 폐지되기까지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 강원감영은 관찰사의 겸목제(兼牧制) 시행으로 17세기 이후 본격적 영건이 시작되어 폐지 직전까지 약 50동 670칸 규모로 존속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이 훼철되어 2005년 시설 일부를 수리 복원하였고, 현재는 (구)원주우체국 철거 후 감영 후원(後園)에 해당되는 시설을 복원 중에 있다. 강원감영 후원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원주수비대 운동장이 조성되면서 전부 없어졌다. 후원 조성을 위한 발굴조사 결과 연못 일부와 건물지가 확인되긴 했으나, 그 전모를 밝히기에는 유구의 교란과 훼손이 심하였다. 그러나 문헌과 그림 등을 통해 후원 전각들을 고찰해본 결과 연못 안에는 봉래각(蓬萊閣) 영주사(瀛洲?:관풍각) 채약오(採藥塢) 조오정(釣鰲亭) 홍교가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못 밖에는 환선정(喚仙亭)과 방장대(方丈臺)가 건립되어 있었다. 후원 전각의 조성경위와 명칭을 살펴보면 모두 신선과 관련되어 있다. 연못 안에는 전설의 신선세계인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하는 삼도(三島)를 만들고, 그 위에 전각을 지었다. 봉래각을 시작으로 후원에 건립되는 전각들에 영주 방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전각들에도 선가(仙家)의 이름을 부여했다. 후원뿐 아니라 그 주변의 전각들에도 신선과 관련된 이름을 붙였다. '봉래산'인 금강산을 관할했던 강원감영 후원에 이와 걸맞는 신선세계를 조영하였던 것이다. 강원도관찰사들은 여가에 수시로 후원에 나가 신선이 되어 탈속하는 풍류를 즐겼고, '봉래주인', 즉 신선세계의 주인이라 자처하였다. 강원감영은 금강산이 소재해 있던 강원도의 특징이 잘 반영된 신선세계가 구현되어 있었다는 매우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전기 관경십육관변상도에 보이는 고려 전통의 계승과 변용 -정토인식과 왕생관의 변화를 통해- (Study on the Inheritance and Transformation of the Goryeo Tradition in the Illustrations of the Sixteen Contemplations of the Amitayurdhyana Sutra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ith the Focus on the Concept of Rebirth in the Pure Land-)

  • 이승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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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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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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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조선전기 제작된 관경변상도는 전환기 조선사회의 시대상 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정토인식이 화면의 구성과 도상에 잘 투영되어 미술사적,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조선 15세기 관경변상도는 모두 3점으로 이중 1435년 <지온지 관경변상도>와 1465년 <지온인 관경변상도>는 왕실인물과 고위승려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 이 두 작품은 1323년 <지온인 관경변상도>의 구성과 도상을 계승하면서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고려후기에 융성했던 천태종(天台宗)의 정토신앙경향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고려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선호했던 자력적(自力的)인 정토신앙의 경향이 조선의 왕실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천태사상의 영향을 받은 정토신앙은 조선전기까지 계승되어 천태종이 불교의 통폐합과정에서 선종에 흡수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천태정토신앙의 경향은 이 두 작품이 각각 천태승 행호와 행호를 진불(眞佛)로 모셨던 왕실의 어른 효령대군이 발원하였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한편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사회가 안정화되어 감에 따라 관경변상도를 포함한 정토불화들은 점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교학적이고 자력적인 정토인식보다는 아미타불의 힘에 의해 구원받고자 했던 타력적인 정토신앙이 확산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도상이 용선접인도상이다. 자력적인 정토왕생을 좀더 가치있다고 여겼던 시기에 제작된 <묘만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용선접인 도상에서는 부처님의 인도를 받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해 조선전기의 용선접인 도상에서는 아미타부처님이 관음, 지장, 혹은 인로왕보살등과 함께 왕생자를 이끌고 배를 타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이는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극락왕생한다는 타력왕생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선전기 제작된 3점의 관경변상도는 유교주의 사회에서 타력적인 신앙을 선호하는 정토신앙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불화로서 매우 의미가 크다.

중국(中國) 하북성북부(河北省北部) "옥황묘문화(玉皇廟文化)" 연구 (A Study of the Yuhuangmiao culture of the mountain area of northern Hebei in China)

  • 정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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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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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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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중국(中國) 하북성북부(河北省北部)의 연산산지(燕山山地)와 주변지역은 춘추(春秋) 전국(戰國)시기(B.C770~B.C221년(年)) 북방계청동문화(北方系靑銅文化)의 주요 분포지역으로 분류된다. 최근 군도산(軍都山)일대의 옥황묘묘지(玉皇廟墓地)에서 진행된 대규모 발굴조사를 통하여 그 구체적인 문화성격이 확인되면서 중국학계에서는 이 지역의 문화적 성격을 기존의 주변지역의 청동기문화와는 구별하여 독립적인 문화유형으로 설정하고 있다. 본문(本文)에서는 춘추(春秋) 전국(戰國)시기 하북성북부산지(河北省北部山地)일대의 "옥황묘문화(玉皇廟文化)" 관련 유적들을 분석대상으로 하여 묘제(墓制)와 장속(葬俗) 및 출토유물의 특징을 중심으로 옥황묘문화의 성격과 주변지역 청동기문화와의 다원적인 영향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하가점상층(夏家店上層)문화와 오르도스청동기문화 및 연국계(燕國系)중원문화와의 다원적인 형태의 영향관계는 옥황묘문화의 성격과 계기적 발전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결과적으로 상징적 형태의 석곽(石槨)이 결부된 수혈식토광묘(竪穴式土壙墓), 구(狗)위주의 동물순장(動物殉葬)과 복면장속(覆面葬俗), 단경고복관(短頸鼓腹罐), 삼족쌍이관(三足雙耳罐), 원병형수단검(圓餠形首短劍), 다량의 중원계청동용기(中原系靑銅容器)와 동과(銅戈) 및 차마구(車馬具)의 공반현상, 호형(虎形) 마형동물패식(馬形動物牌飾) 등으로 대표되는 특징들은 주변지역 북방계청동기문화와는 구별되는 옥황묘문화의 고유한 문화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옥황묘문화의 시 공간적 범위는 대체로 주변의 하가점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와 오르도스청동문화 사이로 설정할 수 있으며, 묘제(墓制)와 장속(葬俗) 및 출토유물에 반영된 고유한 문화적 특징과 주변문화와의 다양한 영향관계를 통하여 볼 때 전국중기(戰國中期)이후 연문화(燕文化)에 의해 대체된다.

버들송이버섯(Agrocybe cylindracea)유전자원 및 선발계통의 특성 (Characteristics of the gene resources and selected strains of Agrocybe cylindracea)

  • 허병수;유영진;서상영;최규환;최영민;권석주;장갑열
    • 한국버섯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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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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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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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주름버섯목(Agricales), 소똥버섯과(Bolbitiaceae), 볏짚버섯속(Agrocybe)에 속하는 버들송이버섯은 국내에서 대부분 병 재배용 품종으로 육성되어 있어 수량 증대를 위한 봉지재배용 품종을 개발하고자 본 연구를 수행하였다. 버들송이버섯 33개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유전자원의 봉지재배 특성과 수량을 조사한 후 재배일수와 자실체 모양을 고려하여 5개 모본을 선발하고 3개의 교배조합을 작성하여 7계통을 선발하였다. 선발된 7계통과 대조품종인 '참'을 봉지재배한 결과 재배일수는 'JBAC15-1'이 49일, 'JBAC15-6'이 50일로 대조품종의 재배일수인 53일 대비 각각 4일과 3일이 단축되었으며, 그 외의 계통은 대조품종보다 긴 재배일수를 나타내었다. 선발계통의 발이율은 'JBAC15-1'이 96.1%로 가장 우수하였으며 다음으로 'JBAC15-6'이 94.5%를 나타내어 대조품종의 발이율인 93% 대비 각각 3.1%, 1.5% 우수한 결과를 나타내었다. 봉지 당 수량은 'JBAC15-1'이 176.8 g으로 가장 우수하였고 'JBAC15-6'이 168.7 g으로 대조품종인 '참'의 160.7 g 대비 각각 10%, 5% 증수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대조품종인 '참' 대비 재배일수가 짧고 수량이 우수한 'JBAC15-1'과 'JBAC15-6'을 최종 선발하였다. 선발계통인 'JBAC15-1', 'JBAC15-6'의 균사생장 최적 배지는 PDA, 최적 온도는 $27.5^{\circ}C$, 최적 pH는 'JBAC15-1'이 pH 5, 'JBAC15-6'이 pH 6으로 나타났다. 자실체 갓의 색은 'JBAC15-1'과 '참'이 진갈색을 나타냈으며 'JBAC15-6'은 연갈색을 나타내었다. 갓 형태는 반구형으로 모두 동일하였으나, 대의 색은 'JBAC15-1'이 연갈색을 나타냈으며 'JBAC15-6'은 흰색을 나타냈고 대조 품종인 '참'은 상아색으로 각각 서로 다른 특성을 나타내었다.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 이론에 대한 검토 및 제언 (A Review of Ecological Niche Theory from the Early 1900s to the Present)

  • 구경아;박선욱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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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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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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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에서는 생태적 지위 이론(개념과 정의)의 시대별 변화를 검토하여 이를 바탕으로 동식물의 서식지 관련 연구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국내·외 생태적 지위에 대한 시대별 주요 논의 동향을 검토하고 분석·정리하였다. 생태학이 발달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생태적 지위 이론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연구가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900년대 초를 생태적 지위 개념이 태동한 시기라고 한다면 1900년대 중반은 개념이 성장한 시기고, 190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는 개념이 고도화된 시기다. 이렇게 고도화된 개념은 2000년대 접어들어 다양한 기술과 연구 방법 및 분야의 발달에 따라 적용 분야에 따라 다양화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면, 한 종의 생태적 지위를 정의하는데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1) 대상종의 개체군 동태, 2)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생물적 환경 조건(먹이망 상의 먹이 관계와 물질 흐름), 3)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비생물적 환경 조건(물리적 환경 조건), 4) 대상종과 생물, 비생물 환경 인자와 이들 환경 인자 간의 모든 직·간접적 상호작용, 5) 대상종의 이동 능력이나 유전적 다양성과 변화에 의한 적응력 등을 포함하는 대응 및 적응 메커니즘 등이었다. 국외의 상황과 달리 국내에서는 생태적 지위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 철학적, 실증적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린넬, 엘튼, 허친슨에 의해 제시된 개념과 정의가 선택적으로 일부만 소개되거나, 용어에 관한 설명 없이 단순히 차용되고 있었다. 생태적 지위 이론이 서식지 기반의 생물종 보전과 복원을 위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생태적 지위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연구와 연구 방법의 다양화와 고도화 그리고 기술적 발전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생태학 분야의 학문적 발전뿐만 아니라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보전 및 복원을 위한 정책 수립과 시행의 중요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경주 지역 지석묘 문화의 특징과 종말기의 양상 (The Characteristics of Dolmen Culture and Related Patterns during the End Phase in the Gyeongju Region)

  • 이수홍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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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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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6-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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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문화를 검토하고 지석묘의 종말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18곳, 초기 철기시대 이른 시기 즉 종말기의 무덤 유적 9곳을 분석하였다. 경주는 검단리 문화 분포권에 포함된다. 현재까지 경주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무덤은 약 120기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수에 비해 무덤의 수가 부족한 편인데, 검단리 문화권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무덤의 수는 부족해도 매장주제부의 구조는 다양하다.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의 특징은 토광묘와 묘역식지석묘·적석제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축조된다는 점이다. 토광묘는 동산리유적 부장품인 방추차를 통해서 볼 때 북한 동북 지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은 송국리 문화권에 주로 분포하는데, 특이하게도 검단리 문화권인 경주 지역에서 많이 확인된다. 초기철기시대가 되어도 청동기시대의 영향이 이어진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된다. 새롭게 이주한 점토대토기 문화인들은 목관묘를 축조하였다.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새로운 고소의례가 등장하는데 국읍(國邑)에서 주재하는 천신제사(天神祭祀)의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 화천리 산251-1유적과 죽동리유적은 고소의례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러한 고소의례에도 묘역식 지석묘와 동일한 형태의 적석제단이 축조되고 지석묘의 상석과 유사한 바윗돌이 이용되었다. 초기철기시대에도 청동기 시대 전통을 유지한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 이용되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되었어도 지석묘가 가진 권위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로 알려진 묘역식지석묘나 적석제단 일부에서는 초기철기시대까지 의례 행위가 지속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2세기 후반이 되면 목관묘가 군집하기 시작한다. 철기 문화가 확산하고, 중국 중원의 유물이 유입되는 등 경주 지역을 비롯한 남부 지역이 동아시아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시점이다. 이때 지석묘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 희랑대사상(希朗大師像)의 특징과 제작 의미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Huirang Daesa Sculpture at Haeinsa Temple in Hapcheon)

  • 정은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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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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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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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희랑대사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상으로 높이 82.4cm, 무릎폭 66.6cm, 앞뒤 최대폭 44cm에 이르는 등신상에 가까운 크기이다. 제작 기법은 승상의 앞면과 뒷면을 건칠과 나무를 접합하여 만든 것으로 동아시아의 유일한 사례로 주목된다. 유사한 기술이 나말여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에 이미 적용된 바 있어 이 시기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희랑대사상에 대해서는 18세기에 쓰여진 가야산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즉 승상의 가슴에 있는 구멍과 힘줄과 뼈가 울퉁불퉁하다는 등의 독특한 특징은 현재의 희랑대사상과 정확하게 부합된다. 가슴에 있는 구멍은 신통력의 상징으로 3~4세기에 활동한 서역의 승려 불도징(佛圖澄)의 가슴에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흑칠 상태였으며, 19세기에 현재와 같이 채색되었음도 알 수 있다. 봉안 전각은 해인사의 해행당(解行堂)과 진상전(眞常殿)이었으며, 이후 조사전과 보장전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승상의 제작과 봉안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문헌 기록에 등장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매우 드문 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승상의 초상조각은 고려시대의 희랑대사상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제작된 나옹과 의상대사상 등 모두 네 구뿐이다. 이 가운데 희랑대사상은 고려 초기 10세기경에 제작된 상으로서 최고의 제작 기술과 사실적인 재현 그리고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다. 승상을 제작하여 숭배하고 신성시하는 전통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다만 재료와 제작 기술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차이와 특이성을 보이며 발전하였다. 중국은 육신불(肉身佛)이 많은 편이며 일본은 건칠, 나무, 흙 등 시대마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많은 승상을 제작하였다. 저마다 다른 재료와 기법을 사용했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승상 제작은 승려의 참모습과 정신성의 성공적 표현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조선(朝鮮) 후기(後期) 부휴문중(浮休門中)의 불사(佛事)와 의겸파(義謙派) 불화(佛畫)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 불화(佛畫) 조성(造成) 불사(佛事)를 중심으로- (Collaboration Between the Buhyu Monk Clan and the Uigyeom School of Monk Artis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Buddhist Paintings for Songgwangsa Temple in Suncheon)

  • 김다영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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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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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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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조선 후기 불화 조성 불사(佛事)는 화승(畫僧)과 승려(僧侶) 문중(門中)의 유기적 관계 속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불사에서 승려 문중은 사상을 담기 위하여 주제와 도상을 선택하였고, 화승과 화파는 이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렇기에 조선 후기 불화의 이해를 위해서는 작가인 화승 및 그의 양식적 특징뿐만 아니라 조성 당시 사찰의 상황, 불사의 참여자 등을 파악하여, 조성 배경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본 논문은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호남 및 인근 지역에서 부휴문중과 불사를 함께 진행했던 18세기 대표 화승 의겸(義謙)을 중심으로 한 의겸파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의겸파는 부휴문중의 종찰(宗刹)인 순천 송광사에서 1724년부터 1725년까지 2년간 진행된 불화 조성 불사에 참여하였다. 본 불사를 앞서 언급한 다각적 접근법을 통해 해석한 결과, 송광사 불화 조성 불사에 부휴문중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송광사 불화 조성 불사를 기점으로, 의겸파는 계속해서 호남, 호서, 영남 지역 등 부휴문중 영향권 내의 사찰과 그들이 주도한 불사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부휴문중 사상 시각화에 주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의겸은 부휴문중으로부터 '호선(毫仙)', '존숙(尊宿)', '대정경(大正經)' 등의 화승으로서는 이례적인 존칭까지 부여받았으며, 그의 화풍은 삼남(三南)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처럼 순천 송광사 불화 조성 불사는 부휴문중이 의겸파와 협업하여 문중의 사상을 시각화한 대표 사례이며, 의겸파에게 인맥적, 지역적 기반을 제공하여 의겸이 조선 후기 대표 화승의 위상에 오를 수 있도록 일조하였다. 의겸의 이와 같은 위상과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이후의 조선 후기 불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에, 순천 송광사의 불화 조성 불사는 미술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 개방에 의한 하도의 지형변화 과정 수치모의 분석(세종보를 중심으로) (Numerical analysis of morphological changes by opening gates of Sejong Weir)

  • 장창래;박태효;강태운;옥기영
    • 한국수자원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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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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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9-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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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에서는 2차원 수치모형(Nays2DH)을 적용하여 금강에 건설된 세종보를 중심으로 보 개방 후에 홍수량 변화에 의한 하도의 지형변화 과정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부등류, 부정류(단일사상), 연속홍수사상을 수문특성을 반영한 흐름조건으로 수치모의를 수행하였다. 부등류 수치모의 조건은 유황에 따른 정상유량으로 상류단 경계조건을 가정하였다. 부정류와 연속홍수사상의 경우에는 실제 홍수사상들로부터 정규 수문곡선 (normalized hydrograph)을 산정 한 후, 시나리오에 따른 첨두유량으로 정규 수문곡선을 재구성하여 상류단 유량으로 가정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지형학적 변화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하상기복지수(BRI)를 산정하여 시간에 따른 하상변동을 분석하였으며, 연구지역의 항공사진과 수치모의 결과를 정성적으로 비교하였다. 부등류 수치모의 결과, 각 유황별 유량이 증가하면 하폭 대 수심의 비는 감소하고, 사주의 이동속도는 증가하였다. 하상기복지수는 초기에는 증가하지만,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변화량이 작아졌다. 또한 유량이 증가하면 하상기 복지수가 증가했다. 부정류 수치모의 결과 사주의 이동속도는 유량의 변화에 따라 감소했다. 또한 첨두홍수에 대한 지형적 반응에서 시간지체(time lag)가 발생했다. 즉, 부정류에서는 하상고의 변화는 수리학적 조건에 대하여 위상지연(Phase lag) 이 나타났다. 연속홍수사상 발생에 의한 부정류 수치모의 결과에서는 각각 첨두홍수 발생에 따른 사주의 이동속도는 홍수발생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감소했다. 또한 부정류 수치모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위상지연이 나타났으며 사주의 이동속도는 지수적으로 감소하는 특성을 보였다. 하상기복지수는 시간경과에 따라 증가하였으나, 첨두홍수가 연속으로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상기복지수의 증가율은 완만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하천의 수문특성을 반영한 지형변화 과정을 수치모의를 수행하여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흐름특성에 따른 하상변동의 정량적인 예측모의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