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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산 김정기의 유적조사와 한국고고학 (Excavation of Kim Jeong-gi and Korean Archeology)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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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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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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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창산 김정기(昌山 金正基, 1930.3.3~2015.8.26)는 우리나라 문화재 발굴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으신 분이다. 1959년 국립박물관 직원으로 문화재와 인연을 맺으신 이후, 1987년 문화재연구소를 퇴직할 때까지 약 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2015년 영면하기 전까지 대학과 발굴 전문기관에서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창산은 국내의 기념비적인 고고학 발굴조사를 모두 진두지휘하고 초창기 한국 고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으며, 한국 고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그의 활동과 역할은 고고학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나 나름의 한계 또한 찾아 볼 수 있다.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활발히 조사되어 한국 고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시기로 평가되고 있는 국립박물관의 덕수궁시기(1955~1972년)에 창산은 선사시대 패총유적이나 주거지와 같은 고고학 조사에 적극 참가하여 유적측량과 유구 실측을 비롯하여 사진촬영과 유물 제도 등을 맡아서 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익힌 발굴기술을 마음껏 발휘하였고, 전국을 무대로 종횡무진 이루어진 그의 고고학조사는 학사적으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특히, 창산의 견해 가운데 고고학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고분에 있어 수릉의 가능성을 지적한 것과 청동기시대 문화의 이해에 "해미문화"라는 지역문화론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탁견이었다. 1969년 문화재연구실이 설치됨에 따라 그 책임을 맡은 창산은 미약한 규모인 연구실의 운영과 총체적인 책임을 맡아 찬란한 우리문화를 지켜내고자 조사와 연구에 고심하였다. 그는 불국사 복원공사와 경주 천마총, 황남대총의 발굴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이후 황룡사지, 분황사, 미륵사지 등을 조사하며 삼국시대 불교문화와 가람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노력하였다. 당시 창산이 기획하여 진행한 대형 발굴조사는 한국 고고학의 기틀을 다짐과 동시에 관련분야의 연구를 활성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고고학의 계기적인 발전과정 상에서 볼 때, 다양한 발굴조사법의 시도와 체계화, 고고학 전문 인력의 양성과 발굴조사의 대중화, 조사기록의 정형화 및 자료공개 활성화 등은 이 시기 창산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성과로 손꼽을 수 있다. 한편, 유적조사에 있어서 정확한 기록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열정적으로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 발굴왕 창산도 유적의 성격을 밝히고 유구를 해석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황남대총 주인공 논쟁의 불씨를 남겨둔 것은 그의 역할을 재음미해볼 때 매우 아쉬운 한부분이다.

뉴럴 텐서 네트워크 기반 주식 개별종목 지식개체명 추출 방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Knowledge Entity Extraction Method for Individual Stocks Based on Neural Tensor Network)

  • 양윤석;이현준;오경주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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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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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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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정보화 시대의 넘쳐나는 콘텐츠들 속에서 사용자의 관심과 요구에 맞는 양질의 정보를 선별해내는 과정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용자의 정보 요구를 단순한 문자열로 인식하지 않고, 의미적으로 파악하여 검색결과에 사용자 의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형 IT 기업들도 시멘틱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만족도와 편의성을 제공하는 검색엔진 및 지식기반기술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금융 분야는 끊임없이 방대한 새로운 정보가 발생하며 초기의 정보일수록 큰 가치를 지녀 텍스트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연구의 효용성과 발전 가능성이 기대되는 분야 중 하나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주식 관련 정보검색의 시멘틱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식 개별종목을 대상으로 뉴럴 텐서 네트워크를 활용한 지식 개체명 추출과 이에 대한 성능평가를 시도하고자 한다. 뉴럴 텐서 네트워크 관련 기존 주요 연구들이 추론을 통해 지식 개체명들 사이의 관계 탐색을 주로 목표로 하였다면, 본 연구는 주식 개별종목과 관련이 있는 지식 개체명 자체의 추출을 주목적으로 한다. 기존 관련 연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모형의 실효성과 현실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데이터 처리 방법이 모형설계 과정에서 적용되며, 객관적인 성능 평가를 위한 실증 분석 결과와 분석 내용을 제시한다. 2017년 5월 30일부터 2018년 5월 21일 사이에 발생한 전문가 리포트를 대상으로 실증 분석을 진행한 결과, 제시된 모형을 통해 추출된 개체명들은 개별종목이 이름을 약 69% 정확도로 예측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모형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후속 연구와 모형 개선을 통한 성과의 제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종목명 예측 테스트를 통해 본 연구에서 제시한 학습 방법이 새로운 텍스트 정보를 의미적으로 접근하여 관련주식 종목과 매칭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논산 노성산(魯城山)의 입석(立石) 분포와 총석사(叢石寺) 수석(樹石)의 정원적 면모 (Dispersion of Standing Stones at Noseongsan(Mt.Noseong) and Aspect of the Stone Decorated Garden(Soo-suk Jeongwon) at Chongsuk-Sa(Chongsuk Buddhist Temple) in Nonsan City)

  • 노재현;허준;장일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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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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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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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논산 노성산성 일대 입석과 총석의 현황과 그 형태 및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이에 따라 노성산과 노성산성의 장소정체성과 노성산성 내외부에 산재한 입석의 분포를 파악하는 한편 입석의 밀도가 가장 높고 문화재적 보존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총석사'를 중심으로 수석(樹石)의 배치형태 및 구성 특성을 조사 분석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佛宇條)에서의 '탑사(塔寺)' 존재의 언급, 탐문조사 결과 사찰의 존재설 그리고 '관음사(觀音寺)' 명의 와편 발굴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오래전부터 산성 내부에 불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총석사'라는 각자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찰조사 결과, 산성내부에 존재하는 다수의 입석지 중 제6입석지는 수석(樹石)의 규모, 수석 구성의 복합적 경향, 주변 우물(샘) 및 방지 그리고 석문 등에 이르는 계단의 조성 흔적 등을 볼 때 총석사를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총석사를 비롯하여 삼신암, 칠성암, 대장암 등으로 각자된 5개의 수석과 관세음보살로 추정되는 선각 마애불은 동일 공간 바위 위에서 발견된 북두칠성의 성혈(星穴)과 함께 이 공간이 불교 또는 도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발생한 칠성신앙 및 산신신앙적 공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로 파악되었다. 총석사 입석의 실측조사 결과, 수석의 수는 총 24개로 수석고는 29~402cm, 수석폭은 48~290cm로 규모에 있어 큰 편차를 보였으며 수석간 평균거리는 23.56cm로 나타났다. 또한 입석, 평석, 산형석 그리고 영상석 등 다양한 돌을 특치(特置), 군치(群置)하여 수석하였으나 돌의 좌향은 서향(W)으로의 일관된 지향성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국내에 알려진 정토정원의 유구와 비교할 때 수석의 배치 기법상 입석과 형상석 이외의 3개의 평석은 선원의 대표적 구성요소가 되는 좌선암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중 보살암을 마주하는 평석은 삼산석(三山石)을 상징화하여 조성된 것이지만 높이 및 주변 수석 배치 여건으로 보아 참선의 목적보다는 제수를 위한 공양석으로 추정된다. 총석사 수석의 구성은 입면이나 평면구성상 천지인 삼재(三才)를 형상화한 삼존석형(三尊石形)을 바탕으로 심경미(深景美)를 추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등변삼각형의 3:5:7 복합수석법으로 일정한 지향성을 보이며 배치되고 있음을 볼 때 총석사 입석군은 사원수석의 형태로 참선을 목적으로 돌짜임된 축경적(縮景的) 정원 유구로 보인다.

천연기념물 제주 삼도 파초일엽 자생지 생육 및 관리 현황 연구 (The Study on Conservation and Management of Natural Habitat of Spleenworts on Samdo Island (Asplenium antiquum Makino), Jeju (Natural Monument No. 18))

  • 신진호;김한;이나라;손지원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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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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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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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파초일엽 자생지는 1949년 제주도 삼도에서 최초 발견된 이후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 제18호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삼도에서만 자생하며, 해방이후 땔감, 도취 등으로 자생지가 크게 훼손되어 거의 멸실에 이르렀으나 이식, 복원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상지는 2011년부터 공개제한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2000년대 자생지 복원 이후 약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파초일엽 생육실태 변화상에 대한 모니터링과 자생지 관리를 위해 이식, 복원의 기원 등 주요 관리이력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본 연구 결과 지정초기부터 현재까지 자생종 판별, 이식 복원 기록 등 문화재 관리이력을 확보하였고, 복원 이후 약 20년이 지난시점에서 파초일엽 생육변화상을 살펴보았다. 파초일엽 자생지 복원 이력을 살펴보면 1970-80년대에 이식된 개체들은 공식문서가 없었으며 1974년 복원 이식한 개체는 당시 일본 개체로 판단되어 자생종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파초일엽 자생종 판별 연구를 통해 유전적으로 자생종으로 판명된 개체를 증식하여 2000년 156본, 2001년 150본을 이식하고 육묘장을 2004년 조성하여 파초일엽을 증식하였다. 자생지 내 파초일엽 생육지는 2곳으로 지점 1은 석축 위에 65개체가 3단에 나누어 밀식하여 자라고 지점 2는 29개체가 2열로 자라는 형태로 조사되었다. 파초일엽이 생육하고 있는 지역의 식생은 참식나무가 우점하는 상록활엽수림지대이며, 조사지점 외 자생 파초일엽 개체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복원 후 최초로 자연 발생한 파초일엽 치수의 분포현황을 확인한 점이다. 치수 개체는 약 300개체 이상이었으며, 이 중 밀도가 높은 지점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위한 고정조사구 3개소를 선정하였다. 모니터링 1지점의 파초일엽 치수는 23개체로 개체당 잎수는 4~17장, 길이는 0.5~20 cm이었으며, 2지점은 88개체로 개체당 잎수는 5~6장 길이는 1.3~10.4 cm이었으며, 지점 3은 22개체로 잎 수 5~9장, 잎 길이 4.5~12.1 cm로 나타났다. 파초일엽 자생지는 2011년 공개제한 지역으로 설정되었으나 낚시, 스쿠버행위 등 일부 행위가 허가됨에 따라 자생지의 훼손 발생가능성이 크므로 법의 엄격한 적용과 함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충분한 교육과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용자 로그 분석에 기반한 노인 돌봄 솔루션 구축 전략: 효돌 제품의 사례를 중심으로 (Implementation Strategy for the Elderly Care Solution Based on Usage Log Analysis: Focusing on the Case of Hyodol Product)

  • 이준식;유인진;박도형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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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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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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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취약계층 노인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노인세대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노인 돌봄 솔루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노인 돌봄의 수단으로 첨단화된 ICT 기술을 탑재한 스마트 토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스마트 토이를 통해 기록되는 노인 행태에 대한 로그 데이터는 노인 돌봄 관련 정책 수립, 노인 돌봄 서비스 컨셉 기획 및 개발과 같은 분야에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설명지표로써 활용 가치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노인 돌봄 스마트 토이와 관련된 연구 중 스마트 토이를 통해 기록된 사용자 행동 로그에 주목하여 이를 의사결정에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기존에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스마트 토이 사용자 행동 로그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노인 돌봄 솔루션의 사용자 경험 증진을 위한 효과적인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사용자 프로파일링 기반 행태 분석과 사용 행태에 따른 삶의 질 변화 메커니즘 도출을 단계적으로 수행하였다. 분석 결과, 5개의 노인 생활관리 요인으로부터 노인집단 유형을 분류할 수 있는 2개의 중요한 차원을 도출하였으며, 도출한 차원에 근거하여 전체 노인 사용자를 3개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유형별 스마트 토이 사용 행태 차이를 프로파일링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스마트 토이 사용 행태에 따른 삶의 질 변화 메커니즘을 도출하기 위한 단계적 회귀분석을 수행하였으며, 스마트 토이와의 상호작용, 스마트 토이의 콘텐츠 사용, 스마트 토이가 관찰한 노인의 가정 내 활동 정도가 노인의 우울감 개선과 생활패턴 개선에 미치는 영향 및 이를 중재하는 경로로써 스마트 토이에 대한 사용자의 성능평가와 만족감의 역할을 밝혀내었다.

이순신의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에 대한 서지적 고찰 (Bibliographic Study on 『ChungMinKongKeicho (忠愍公啓草)』 by YI Sun-sin)

  • 노승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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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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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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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중 조정에 보고한 장계(狀啓)가 그 당시와 후대의 등록(謄錄) 형식에 따라 3자에 의해 등서되어 현재 장초(狀草), 계초(啓草), 계본(啓本) 등으로 전한다. 특히 전라좌수영의 수군절도사로 재직할 때 작성된 "임진장초(壬辰狀草)"는 대표적인 장계로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 분실되었다가 소재가 확인된 "충민공계초"는 "임진장초"와 함께 후대의 이순신 장계류에 전범이 될 만큼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국보급 유물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이순신 관련한 새로운 책인지 아니면 기존에 분실되었던 장계별책인지 불분명한 상태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에 대한 서지적인 고찰을 통해 관련 내용을 고증하였다. "충민(忠愍)"은 이순신이 사후에 사용했던 명칭이었고, 1662년에 장계가 등서되어 "충민공계초"가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임진장초"에 없는 12편이 더 들어있는데, 그간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장계별책에도 "임진장초"에 없는 12편이 더 들어 있었다는 점이 서로 일치하는 점이다. 특히 1928년 일본인들이 촬영한 사진 11장의 형태와 내용이 "충민공계초"에 들어있는 12편과 완전 일치한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이 책을 "별도로 초사(抄寫)한 계초(啓草) 1책"이라고 한 점, 이 책의 12편으로 장계를 보충한 점, 홍기문과 이은상이 장계초본에 기존 "임진장초"에 없는 12편이 더 들어있다고 한 점, 조성도가 12편을 따로 별책본으로 분류한 점 등은 12편이 들어있는 장계별책을 "충민공계초"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다. "충무공계초"는 편수가 총 62편이므로 12편이 더 들어있는 분실된 장계별책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충무공유사"의 "충무공계본"은 모두 16편이다. 본문에는 이두문이 그대로 실려 있고, 뒤의 3편은 "충민공계초"원문과 동일하다. 지금까지 이두문이 그대로 실린 것은 1935년에 간행된 조선사편수회의 "임진장초"가 유일했는데, "충무공계본"의 간행된 시기가 오히려 이를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충민공계초"가 장계별책이라는 것에 대한 반론은 이은상이 "장계등본 별책의 일기 1장"이라고 한 말에 근거한다. 1953년 설의식이 "이순신수록 난중일기초"에 "무술일기" 초고 사진 1장을 도판으로 처음 소개하였다. 이은상도 "무술일기"에 장계초본 별책 속의 친필 일기초 2면을 첨가했고, 다시 "장계 등본 별책 끝에 최후 10일 동안의 일기 한 장"과 "별책부록"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 의견은 설의식이 정확한 출처를 모르고 소개한 "무술일기" 초고 사진 1장"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은상은 "충무공유사"를 장계관련 책으로 잘못 파악하고 "장계등본 별책의 일기 1장"이란 말을 하였다. 이는 실제 원본상황과 다른 잘못된 견해이므로, 굳이 이를 정정한다면 "충무공유사의 일기 1장"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일기 1장이 딸린 장계별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반박의 근거가 잘못된 것이다. 요컨대 "임진장초" 이외의 모든 장계들을 장계별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통상 지칭되었던 장계별책에 유독 12편이 더 실려 있다고 한다. 이 점이 다른 장계류와 차별화된 점이다. 그러므로 여러 장계이본 중에서 유일하게 12편이 더 수록된 "충민공계초"가 기존에 알려진 장계별책이라는 견해에 더 무게가 실릴 것이다.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 안사국(安邪國) (A Study of Dohang-Ri wooden coffin and Anya-Kuk)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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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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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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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격과 성립시기(成立時期)에 대하여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는 상황이나 모두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헌자료의 기록과 고고자료상에서 서로 공통적으로 관련지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며, 연(燕)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갖춘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성립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 뿐 만 아니라 중 남부지역에 이르기까지 큰 파장을 미쳤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철기문화(鐵器文化)의 도입단계에는 철기(鐵器)의 실용적이고 희소적인 가치에 의해서 매장유구(埋葬遺構)에는 쉽게 부장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기원전 2세기 전반경부터는 일부 한정된 철기(鐵器)만이 매장유구(埋葬遺構)에 부장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립시기는 철기의 도입과 보편적인 활용으로 보아야하며 목관(木棺)을 사용한 서북한지방(西北韓地方)의 토광묘문화(土壙墓文化)를 포함하여 중남부지역(中南部地域)에 있어서 목관(木棺)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 단계, 즉 기원전 3세기전반대의 어느 시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한편 함안(咸安) 도항리고분군(道項里古墳群)에서 확인된 목관묘(木棺墓)는 목관(木棺)의 형태에 있어서 판재조립식목관(板材組立式木棺)과 통나무목관(木棺)의 2종류가 확인되며, 판재목관(板材木棺)의 사용 비율이 3배 이상 높은 편이다. 출토유물(出土遺物)은 비교적 단순한 조합상(組合相)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영남지역(嶺南地域)을 중심으로 한 목관묘유적(木棺墓遺蹟)에서도 모두 확인되고 있는 특징이므로 전반적으로 변(弁) 진한사회(辰韓社會)의 매장문화는 동일한 흐름 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통나무로 제작한 목관(木棺)은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므로 한국식동검문화(韓國式銅劍文化)와 함께 목관(木棺)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되며,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과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만 이러한 목관(木棺)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는 것은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양지역간(兩地域間)의 유기적인 관계를 살피는데 있어서 주목되어야 한다.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 출토되고 있는 철기류((鐵器類)도 거의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그것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항리(道項里) 67호묘(號墓) 출토 주조철부(鑄造鐵斧)는 다호리 1호분에서 출토된 주조철부(鑄造鐵斧)와 같은 지금(地金)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소형철부(小形鐵斧)의 구성비율이 다른 철기류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것과 기경구(起耕具)로 이용되는 철제따비의 출토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단계에는 목제농기구(木製農器具)의 제작과 사용이 활발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 비해 절대적으로 빈약한 철기유물은 안사국(安邪國)의 내적(內的)인 한계(限界)를 보여주는 것이며 소국(小國) 수장(首長)의 신분적(身分的)인 상징(象徵)으로서 사용하였던 동경(銅鏡)과 의기류(儀器類)의 출토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를 조영한 집단(集團)은 당시 대외문화교류(對外文化交流)의 중심적인 선진지역(先進地域)에 비해서 사회문화적(社會文化的)인 변동(變動)이 덜한 주변 지역적인 성향이 강한 집단(集團)일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후 2세기 후반경 영남지역의 목관묘(木棺墓)는 목곽묘단계(木槨墓段階)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서도 목관묘(木棺墓)는 2세기대를 종점(終點)으로 사라진다. 고고자료상으로도 3세기에서 4세기대에 해당되는 적극적인 유구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3세기 전반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일어났던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과 관련지어 합리적으로 추론하고자 한다. 즉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양집단(兩集團)은 낙동강(洛東江)과 남강수계(南江水系)를 장악한 교역(交易)의 중심지(中心地)로서 서로 경제적(經濟的) 정치적(政治的)인 공조체제(共助體制)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에 보이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의 대상국은 가나(加羅)와 아라국(砑羅國)이며, 가나(加羅)는 다호리집단(茶戶里集團)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시기도 기원 3세기 전반대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3세기 전반대 이후의 사건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4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양지역(兩地域)에서 뚜렷한 목곽묘(木槨墓)의 축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두 집단(集團)이 전쟁(戰爭)의 피해를 직접 받은 당사자였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M&W 파동 패턴과 유전자 알고리즘을 이용한 주식 매매 시스템 개발 (Development of a Stock Trading System Using M & W Wave Patterns and Genetic Algorithms)

  • 양훈석;김선웅;최흥식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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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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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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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투자자들은 기업의 내재가치 분석, 기술적 보조지표 분석 등 복잡한 분석보다 차트(chart)에 나타난 그래프(graph)의 모양으로 매매 시점을 찾는 직관적인 방법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패턴(pattern) 분석 기법은 IT 구현의 난이도 때문에 사용자들의 요구에 비해 전산화가 덜 된 분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분야에서 신경망을 비롯한 다양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법을 사용하여 주가의 패턴을 연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특히 IT 기술의 발전으로 방대한 차트 데이터를 분석하여 주가 예측력이 높은 패턴을 발굴하는 것이 예전보다 쉬워졌다. 지금까지의 성과로 볼 때 가격의 단기 예측력은 높아졌지만, 장기 예측력은 한계가 있어서 장기 투자보다 단타 매매에서 활용되는 수준이다. 이외에 과거 기술력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패턴을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 연구도 있지만 찾아진 패턴이 매매에 적합한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실용적인 부분에서 취약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주가 예측력이 있는 패턴을 찾으려는 기존 연구 방법과 달리 패턴들을 먼저 정의해 놓고 확률기반으로 선택해서 매매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5개의 전환점으로 정의한 Merrill(1980)의 M&W 파동 패턴은 32가지의 패턴으로 시장 국면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전환점만으로 패턴을 분류하기 때문에 패턴 인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32개 패턴으로 만들 수 있는 조합의 수는 전수 테스트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최적화 문제와 관련한 연구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algorithm) 중 하나인 유전자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 GA)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미래의 주가가 과거를 반영한다 해도 같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전진 분석(walk-forward analysis, WFA)방법을 적용하여 과최적화(overfitting)의 실수를 줄이도록 하였다. 20종목씩 6개의 포트폴리오(portfolio)를 구성하여 테스트해 본 결과에 따르면 패턴 매매에서 가격 변동성이 어느 정도 수반되어야 하며 패턴이 진행 중일 때보다 패턴이 완성된 후에 진입, 청산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확인하였다.

일본 면형 유산 보존제도의 확산과정과 특성 (Developing the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Preservation of Area-Based Heritage Sites in Japan)

  • 성원석;강동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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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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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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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우리나라의 면형 유산 보존제도는 1984년 제정된 「전통건조물보존법」이 시효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1996년에 폐지되었다. 일본은 1960년대 고도(古都)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66년 「고도보존법」을 제정하고 '역사적풍토보존지역'과 '역사적풍토특별보존지구'를 도입하였다. 면형 유산의 보존을 위해서는 1975년 「문화재보호법」의 개정과 함께 도입된 '중요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 제도가 시초이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면형 유산의 보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유산과 유산 사이의 공간과 맥락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중요문화적경관' 제도가 도입되었다. 또한 일본의 근대화와 관련된 각종 물적·비물적 자원을 포괄하는 '근대화산업유산군33'이 2007년에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 역사적 가치를 가진 지역 풍경을 보호하기 위한 '아름다운일본의역사적풍토100선'이 선정되었다. 이후 2015년에는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유·무형 유산을 통합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한 '일본유산' 제도가, 2016년에는 사라져 가는 농수산업의 계승과 육성을 위한 '일본농업유산', 2017년에는 20세기 일본의 근현대 기술의 증거물인 '20세기유산'까지 제도의 확산 과정을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현재(2020년 9월) '역사적풍토보존지역'과 '역사적풍토특별보존지구'가 30개소와 60개소, '중요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 120개소, '중요문화적경관' 65개소, '근대화산업유산군' 66개소, '아름다운일본의역사적풍토100선' 264개소, '일본유산' 104개소, '일본농업유산' 15개소가 지정되었다. 이러한 상황 인식 속에서, 1976년 이후 순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의 면형 유산 보존제도 전반의 특성 추출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본 연구의 연구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헌 및 선행연구 고찰을 통해 일본 면형 유산 보존제도를 조사하고 연구범위를 설정한다. 둘째, 면형 유산 보존제도의 확산과정을 조사하고, 제도 발전에 따른 제도들 간의 관계성을 분석한 후 그 특성을 도출한다. 셋째, 관계성 및 특성과 관련된 내용의 구체화를 위해 대표 사례 3곳에 대한 심층 분석을 진행하고, 이를 종합하여 대표 사례가 가지는 특성을 도출한다. 이를 통해 도출한 일본 면형 유산 보존제도의 두드러진 특징은 매년 신규유산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유산들 간의 중첩 현상이 발생하며, 면형 유산의 보존은 물론 전통 산업, 문화 관광 등 연관 산업의 활성화와 지역 정체성의 강화 등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현재 우리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근대역사문화공간' 제도의 활성화에 시사점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신구(新舊) 관념의 교차와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 (The Conceptual Intersection between the Old and the New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al Knowledge System)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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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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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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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고는 서양 근대 문명 수용 초기(1890~1910)에 발생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을 중심으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을 역사의미론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한국의 근대를 성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에서 신구 관념을 놓고 벌어진 주체 간의 투쟁은 전통개신론자들과 문명개화론자들의 주장에서 첨예하게 드러났다. 서양의 충격에서 비롯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은 우주 자연으로부터 사회 정치체제, 학술?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였지만, 전통 지식 체계를 이해하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신구 관념에 따른 전통 지식 체계의 구축과 변용과정에서 문명개화론자들에게 '구(舊)'는 단순히 과거의 '지나간', '오래된'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제거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 건설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전통개신론자들에게 '구(舊)'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이념 속에서 다시 '신(新)'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함하고 있는 '개신(改新)'의 대상이었다. 박은식의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이나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은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新學)'으로 재편하려한 대표적인 시도였다. 보편성과 객관성,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는 근대적인 학문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新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성학(聖學)으로서의 위상은 탈각되었고, 신앙과 종교적 전통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과 '구학의 신학화' 과정에서 신구 관념의 교차가 발생하였다. 여기서 특히 신구 관념의 교차를 가능하게 한 '실(實)(학(學))'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전후 발간된 다종의 근대 매체는 신구 관념의 다층적 전개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전통 지식 체계가 신학(新學)으로 변용될 수 있었던 계기로서 '실학'이라는 개념적 준거틀이 작동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 실학이 지칭하는 대상은 대체로 서양의 학문인 '신학(新學)'을 표상하고 심지어 등치되기도 했지만, 전통개신론자들은 문명개화론자들이 점유하였던 '실학' 개념과 그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들은 과학 기술에 압도되어 점차로 거세되어가던 전통적 가치를 '신학' 수용의 토대로 인식하고, '실학(實學)'을 개념을 준거로 하여 '신학(新學)'을 재전유(再專有)(re-appropriation)하였다. 일제의 강점이 구체화 되어 전통 지식 체계의 주체적 변용 시도는 일정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구학의 신학화'는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가 지닌 모순과 문명개화론의 탈주체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도덕 원리와 경쟁 원리가 충돌하고 '진화'와 '진보'가 대세인 현실에 대응하려했던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는 이미 분리될 수 없는 도(道)와 기(器)를 분리 가능한 것으로 상정해야만 성립되는 모순을 안고 있었고, 문명개화론은 서양을 내면화하여 자기 비하와 멸시로 주체의 균열을 야기하고 전통 지식 체계로부터 단절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