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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캐니를 유발하는 그로테스크 이미지 무용에 관한 연구 -마기 마랭(Maguy Marin)의 작품 를 중심으로-

Grotesque Image Dance Causing Uncanny -Focusing on Maguy Marin's "May B"-

  • 투고 : 2021.11.01
  • 심사 : 2021.12.15
  • 발행 : 2022.01.28

초록

본 연구는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언캐니(Uncanny) 개념과 그로테스크 이미지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마기 마랭(Maguy Marin)의 작품(1981)를 분석함으로써 무용작품의 미학적 해석 지평을 확장시킬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언캐니와 그로테스크 이론은 문헌연구와 함께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1816)를 사례로 제시하였다. 무용작품 분석에서는 무대공간, 움직임, 의상, 음성 등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언캐니와 그로테스크를 통해 전통적 무대미학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관객의 정신적 참여를 제공하는 실험정신을 가진 작품이라는 점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아울러 시대에 따른 관점변화가 무용 창작에 영향을 주듯이 작품 분석을 통한 다양한 미학적 해석방법의 담론화는 향후 무용 연구에 다양한 방향성을 제공하리라 사료되며, 이 연구가 무용예술의 미적 가치와 위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over the possibility to expand the aesthetic interpretation of dance works. For this purpose, this study analyzes Maguy Marin's (1981) because it shows Sigmund Freud's concept of uncanny and grotesque images well. The theoretical framework of this study was centered on previous academic studies, and Hoffman's Der Sandmann(1816) was presented as an example to help the conceptual understanding of uncanny and grotesque. The analysis of of Magi Marin was divided into stage space, dancer's movements, costumes, and voice. As a result of this study, it was discovered that is a work with an experimental spirit that deviated from the stereotypes of traditional stage aesthetics. And it was implemented as uncanny and grotesque images in the choreography structure. In addition, as the changes of the times have a great influence on the creation of dance works, it is thought that the discourse of various aesthetic interpretation methods in dance works can provide various directions for dance creation in the future. Therefore, this study will be helpful in raising the aesthetic value and status of dance art.

키워드

I. 서 론

시대에 따라 인간의 가치관이 새롭게 생성되듯이 무용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해진다. 이에 따라 작품을 해석하는 논의 역시 다원화된다. 오늘날의 실험적 안무들에 바탕이 된 작품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고해 보는 것은 무용예술의 창작에 있어 그 활용성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또한 관람의 측면에서도 작품의 이해와 수용에 도움이 된다. 이렇듯 작품에 다양한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들을 형성하는 작업은 창작에서 수용에 이르는 무용예술의 전 과정에 걸쳐 유의미하며, 이는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담론화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의 연구에서는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하고자 하며, 그중 ‘언캐니(uncanny)’의 개념을 적용하여 무용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언캐니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논문 제목인 「운하임리히 Unheimlich」(1919)를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낯익은 낯설음’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경계적인 것에서부터 오는 친숙하면서도 두려운 감정이다. 즉 친숙하게 느껴지는 대상이 공포심으로 나아가게 되는 심리적 과정이다.

심리학자 옌치(Ernst Jentsch, 1867~1919)가 그의 논문 「On the Psychology of the Uncanny」(1906) 를 통해 불쾌함과 관련된 인간의 심리를 ‘언캐니’라고 개념화한 이후, 프로이트를 통해 언캐니의 개념이 정교하게 확장되었다. 사전적으로 ‘Heimlich’라는 단어는 ‘안락함’과 ‘친숙함’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un’을 붙이면 ‘편안하고 안락함 속에서 오는 이상함’이라는 뜻이 형성된다. 예를 들자면, 한밤중에 집에 홀로 편하게 있는데 창밖을 보다가 무서운 감정이 순간적으로 드는 그 순간이 ‘언캐니’가 일어나는 때다. 즉 친숙하지만 낯설고 두려워지는 순간과 감정을 말한다[1].

예술에서 언캐니는 관객이 예술작품 속에서 익숙함을 발견하면서 그와 동시에 낯섦이 느껴질 때의 심리상태이다. 이런 심리는 우리에게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고민하게 하며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한편으로 언캐니의 심리는 예술작품 속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연관성을 지니며 서로를 형상화하고 그 개념과 미적 가치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관객에게 생소함과 불쾌함을 자아내는 작품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기괴하게 묘사한 그로테스크 이미지가 종종 발견된다. 따라서 무용 예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에 관한 이론적 맥락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프로이트의 언캐니 이론은 문학, 영화,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적용되어 활발히 연구된 바 있으나 무용에서는 선행 사례가 미비한 편이다. 언캐니 개념을 접목한 무용 분야의 선행연구로는조가영[2] [3]과 이희재[4]가 있다.

본고는 언캐니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무용작품의 사례를 분석하는 연구이다. 이에 따라 언캐니 개념과 그로테스크 이미지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마기 마랭 (Maguy Marin)의 작품(1981)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무용작품의 미학적 해석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마랭과 관련된 작품 분석이나 개별 논문은 다수가 있으며 이들의 연구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된 바 있다. 그 중 와 관련한 선행연구로는 이다효[5], 김봉순[6], 차주연[7], 고지민[8] 등이 있다.

연구의 분석 대상인 마기 마랭의 는 1981년 초연된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300회 이상 무대에 올려진 바 있으며 한국에서는 1997년 세계연극제에 초청되면서 유명해졌다. 이 연구는 우선 문헌을 바탕으로 언캐니와 그로테스크의 개념을 파악하고 의 인터넷 영상자료 및 사진자료를 참고하여 언캐니 개념을 작품 분석에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Ⅱ. 프로이트의 언캐니 개념

프로이트는 1919년 「언캐니」(국내에서 발간된 프로이트 전집은 「두려운 낯설음」으로 번역되었다)[9]를 통해 자극이나 공포, 혐오를 어떻게 예술에 적용할 수 있는지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10]. 그는 전통적 아름다움에 관한 사유에 머물러 있던 미학을 소외되고 혼란스런감정을 다룰 수 있는 영역으로 본 것이다. 언캐니 미학은 프로이트의 후기 정신분석학과 현대미학이론의 교집이며, 점차 예술에 적용되며 확장되었다. 양가성 (ambivalence)은 언캐니의 특징이자 정신분석학적 용어로서 사용되는데 이는 상반되는 감정이나 태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 감정이며 편안함과 낯설음, 아름다움과 기괴함 등이 서로 공존하여 관계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가영(2021)은 ‘낮설게하기’는 모든 예술 장르의 작품에 널리 적용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의미를 부정하고 독자와 관객에게 불편한 감정을 이끌어내어 낯설게 함을 지향한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에른스트 호프만(E. T. A. Hoffmann, 1776~1822)의 소설 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1816)를 제시하면서 언캐니가 죽음과 밀접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라 설명한다. 호프만은 독일 후기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서 꿈과 현실의 이상을 형상화했다. 낭만주의 문학은 환상과 이상세계에서 나타나는 기괴함을 내재하고 있는데 모래 사나이는 이후 낭만 발레 <코펠리아>(1870)에 영감을 주었다. 프로이트의 논문은 호프만의 예술세계를 반영하는 “소설 같은 이론” 으로 등장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그 개념이 유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11].

모래 사나이는 잠자지 않는 아이들의 눈을 빼앗아 자기 새끼들의 먹이로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타나엘이 내면의 공포심을 가지게 되고, 이후 환영에 휩싸여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어린 시절의 끔찍한 느낌을 떠오르게 하는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점차적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후기낭만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었고 다양한 방법론으로 해석이 시도되기도 했다. 광기, 인간의 눈, 자동인형 등 이색적 소재들은 다방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자동인형인 올림피아는 콤플렉스의 한쪽 부분으로 나타나고 또 다른 한쪽 부분이 나타나엘로 나타나게 되면서 둘은 사랑하게 되는데 사랑했던 상대가 갑자기 낯선 이방인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언캐니의감정적인 효과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작품 속의 무서운 모래 사나이는 독자로 하여금 어린아이의 망상으로 볼 것인지 혹은 소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아야 할지에 대한 의심을 만들어 낸다[9]. 이렇게 현실과 그 밖 사이에 있는 옅은 지대의 혼란스러운 전개 속에서 독자는 언캐니를 체험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이 표상하는 세계와 계속 불일치하며 전개되는 현실에 대한 익숙함과 낯설음의 반복이 초래하는 인식의 한계 역시 언캐니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낭만주의 문학은 환상적인 세계관과 비합리적인 의식들을 소재로 삼았다. 이는 불안하고 기이한 현상을 재현하면서 공포적 분위기를 일으키는 효과를 만들었다. 겉으로는 냉담해 보이는 현실로부터 광기를 표현하는 것은 익숙한 세계를 낯선 세계로 만들며 동시에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기법의 의도는 인간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즉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모습으로서, 이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며 가장 솔직한 내면적 상황이다.

프로이트는 나타나엘이 인형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형이 살아나길 바라는 어린아이의 욕망과 같은 믿음이 언캐니한 감정을 만드는 것이며, 모래 사나이는 아이들의 눈을 멀게 하는 존재로서 거세 공포를 일으키는 언캐니한 인물로 간주한다[11]. 이 언캐니는 현실적으로 섬뜩한 것과 허구적으로 섬뜩한 것이라는 두 요소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각각 어린 시절의 콤플렉스 경험과 극복된 원초적 신념에 해당한다. 독자는 소설의 말미에서 스토리의 전체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궁금증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의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셸링(F. W. Joseph von Schelling)에 의하면 “두려운 것이란 어둠 속에 있어야만 했으나 드러나 버린 어떤 것”[9]이다.

프로이트는 언캐니한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껴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어쩌면 언캐니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사라지는 감정으로 지적 능력이 잠깐 방향을 잃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일시적인 감정이다[11]. 또한 프로이트의 언캐니는 본래 친숙했던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불편하고 두려운 감정에 이르게 되는 공포스러운 감정까지를 말하는데 예술작품에서도 관객으로부터 일시적 감정을 의도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대부분 두렵고 낯선 감정은 죽음에 관련된 것인데 이러한 죽음에 대한 원초적이며 고정불변한 의미는 우리에게 받아들여야 하는 두려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다만 작품에서는 독자나 관객에게 이러한 두려운 감정과 낯선 감정을 의도적으로 생성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감정이 생성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가능성에 대해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9]. 작가는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면서 환상의 세계를 다루거나, 또는 그 반대로 환상세계를 그리는 듯하면서 현실세계를 말하는 것을 통해 혼란스러운 감정을 개입시킬 수 있다[11]. 이는 경계의 불분명함을 통해 독자가 언캐니한 감정을 체험하게 되며 현실세계보다 예술작품에서 더 풍부하게 경험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Ⅲ. 그로테스크의 이론적 배경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용어의 어원은 ‘그로타 (grotta)’, 즉 ‘동굴’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15세기에 땅속에서 발견된 1세기경의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기 시작하면서 사용되었다. 자연과 동물을 모티브로 삼은 고대 장식예술은 통일적 양식이나 일정한 표현방식이 갖춰지지 않은 채로 각 나라의 예술에서 경계 없이 나타났다.

문학비평가 볼프강 카이저(Wolfgang Kayser)의 연구[12]에 의하면, 16세기에 이르면 그로테스크는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고 각 언어권에 뿌리내리게 된다. 그가 제시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기 독일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기괴한 형상을 의미했으며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형상이 섞인 괴물의 왜곡된 비율과 형태 그리고 무질서함을 의미했다. 이후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섬뜩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넘어서 하찮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고 보며 천박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때의 그로테스크는 가벼운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카이저는 그로테스크의 양면적인 모습을 강조하는데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그로테스크는 풍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희극적이지만 공포감을 자아내는 등의 이질적인 요소는 비정상성을 말한다. 즉 웃음과 공포가 공존하는 것이다. 또한 디드로(Denis Diderot)에 의하면 그로테스크 양식은 허구적이지 않은 현실세계의 일차적 반영이다. 이러한 그로테스크는 16세기 프랑스에서 특유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입체적인 기하학 양식인 아라베스크 (arabesque)와 평면적인 장식기법인 모레스크 (moresque) 양식에도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인들은 그로테스크를 초자연적이고 모순적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가 파괴된다는 것에 대한 당혹감과 충격적인 섬뜩함이라고 하였다[12].

그로테스크는 환상적인 혼란에 매혹되어 순간적인 동화가 되는 것으로, 작품에 나타나는 사건과 상황 그리고 모순되는 사물의 배치나 인물의 구성에 의해 현실의 질서가 해체되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움이다. 이처럼 그로테스크의 본질적인 특성은 생경해진 세계에서부터 오는 것이다[12]. 우리는 편안하게 느끼던 세계가 낯선 존재로 다가오면서 당혹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일상적 삶의 구조가 흐트러지면서 ‘죽음’의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현존하고 있다는 자체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앞서 언캐니한 미적 체험의 예로 살펴보았던 호프만의 (cid:48823)모래 사나이(cid:48824) 역시 그로테스크의 측면에서 고찰해볼 수 있다. 나타나엘이 코펠리우스를 묘사할 때 동물과 인간의 모습이 혼합된 존재로서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형상화한다. 또한 자동인형이 등장하는 모티브는 그 자체로 그로테스크한 것이며 집 안에 실물 크기의 인형을 앉혀 둔 것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것으로, 감각을 뒤흔드는 섬뜩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할 수 없는 올림피아 인형을 살아있는 존재로 바라보며 그 존재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라 믿으면서 고백하는 장면 역시 우스꽝스럽게만 바라볼 수 없으며 동시에 섬뜩하며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12].

이렇게 호프만 작품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악마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평범하지 않은 세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형성시킨다. 이는 독자에게 등장인물에 대한 비현실적인 장면 속 행동들을 현실 세계에 있을 법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유도하면서 한편으로는 극 속에 생경한 모티브를 배치함으로써 우리에게 그로테스크의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이다. 그러므로 언캐니의 낯선 세계로부터 오는 공포심과 그로테스크의 섬뜩한 이미지는 불가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무용예술에 있어서도 그로테스크라는 표현이 들어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는 무용 용어로도 사용되며, 모레스크 또한 스페인 무어족의 춤으로 합창무용과 같은 독립적인 춤의 한 양식이다[12]. 무용을 근본적으로 사유하면 공간 내에서 움직이는 장식이라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감정 표현의 예술이기도 하다. 이러한 무용의 본질은 그로테스크의 어원 및 그 변천과 일정한 공유지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후 20세기의 무용에서는 무용을 통해 가상의 공간을 구현하려 하기보다는 일상적 공간에서 춤출 공간을 찾고자 하는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무용에서의 그로테스크한 재현은 보다 시의성을 확보할 단초를 마련하게 된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그로테스크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 양상으로 변모하였다. 그럼에도 도덕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라는 공통점을 가지며,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는 파멸적인 양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에 악마의 가면을 쓴 존재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그로테스크의 성격을 잃게 만드는 것과 같다. 그로테스크는 단지 믿었던 것에 대한 허상을 인지하면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느 미학적 개념과 마찬가지로 그로테스크도 수용을 통해서만 체험이 가능하다[12]. 무섭고 괴기한 형상으로 보이는 무엇으로부터 관객은 친숙한 형상을 상기할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하다. 이렇게 미적 수용의 과정을 통해서 그로테스크는 익숙함과 생경함 사이의 경계를 교란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사례로서 마기 마랭의 작품 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언캐니 감정과 맞닿아 있는 그의 안무 성향과 작품 특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Ⅳ. 새로운 성향의 무용을 추구한 안무자들

오늘날 무용은 예술 장르의 경계가 흐려짐에 따라 복합 장르에서 새로운 장르의 예술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탈 장르 경향은 이미 1950년대를 지나면서 일부 안무가들에 의해서 시도되었고 1960년대 이후부터는 매우 활발해졌다. 이 새로운 안무가들은 부조리극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부조리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극작가들에 의해 시도되고 상연된 연극이다. 이는 실존주의에 근접하며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통해 전통극의 유산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실험적이다. 그러므로 당시 무용예술에서의 인식 변화를 추구하던 흐름과 유사한 점이 존재한다. 환상적이고 테크닉으로 충만한 외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무용예술에서도 그로테스크와 같은 색다른 미를 작품 내에서 생성시키고자 하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 부조리극은 인간 존재라는 우리에게 가까운 소재로 친근하지만 불합리 속에 느끼는 부조리는 공포를 유발하기 때문에 언캐니가 생성되기에 적합하다.

기존의 외형적 아름다움에서 벗어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움직임으로 접근한 당시의 안무가로는 피나 바우쉬(Pina Bausch)가 있으며 이후 본고의 연구대상 인마기 마랭과 동시대적인 안무가를 살펴보면 샤샤 발츠 (Sasha Alexandra Waltz), 빔 반데키부스(Wim Vandekeybus), 나초 두아토(Nacho Duato), 조셉 나주(Josef Nadj) 등이 있다.

피나 바우쉬, 마기 마랭, 조셉 나주는 프랑스에서 왕성한 실험적 활동을 이어나간 대표적인 안무가들이며 샤샤 발츠는 독일, 빔 반데키부스는 벨기에, 나초 두아토는 스페인의 안무가이다. 그들은 장르의 융합 속에서 부조리극의 특성을 작품 속에 담았다. 먼저 무용 작품에서 극적 표현을 발현시킨 표현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는 무용에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실험적 무대를 선보이고자 탄츠테아터를 창안했다. 그의 무용작품은 대부분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에서 비판적으로 재고되기 시작한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있으며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내적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극적 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융합적인 예술 속에 고조되는 감정을 극적 상황에 배치하여 하나의 무용극으로 이끌어나갔다.

샤샤 발츠는 탄츠테아터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간의 억압된 욕망과 삶의 관습을 다루는데, 일상적인 삶을 바탕으로 독일의 역사와 인간의 고통을 다양한 예술 장르의 통합으로 보여준다.

빔 반데키부스는 정형화된 무용형식에서 벗어나고자 움직임 뒤에 나타나는 것에 중점을 두며 극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중심으로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였다. 과도하고 거칠며 폭력적인 장면들을 작품에 투여하면서 신체의 한계 상황을 무대 위에 표출시켜 다양한 예술영역의 접근으로 이루어나갔다.

나초 두아토는 발레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동하며 극적 내용보다 서커스와 같은 움직임을 통해서 기괴함을 자아냈다. 또한 그는 무용수의 신체를 통해 과감한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작업했다.

춤의 경계를 뛰어 넘고자 한 조셉 나주는 본인의 작업 과정에서 춤의 근원을 찾고자 했다. 그의 대표작<태양의 먼지>(2007)는 프랑스의 극작가 레이몽 루셀이문학과 광기 그리고 내적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나주는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허물고자 음악과 가면, 의상까지 기괴하게 연출하였다. 그는 무용, 문학, 연극을 결합하고 모순적이고 부조리하며 엄격한 인물들을 통해 작품세계를 창조했다고 평가되었다.

이처럼 그들은 장르의 융합과 부조리극의 성향을 작품에 발현시켰으며 이러한 실험을 통해 무용예술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부조리극은 그로테스크 이미지와 친연성을 가진다. 그로테스크를 생성시키는 작품에서는 왜곡된 현실과 인간성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이를 통해 비관적인 세계관이 드러나는데[13] 그것은 부조리극의 정서 효과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무가들의 실험에 힘입어 언캐니와 그로테스크는 무용에서 하나의 미적 경향으로 확립되었다.

Ⅴ. 마기 마랭의 작품 (1981)

1. 마기 마랭의 안무 성향

대체로 유럽의 무용은 안무가에 의해 통제된 테크닉 구성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에 의해 움직임이 발현되는 방향으로 나아왔고 이에 발맞추어 안무가들은 주제의식에 천착하는 작가적 방식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1980년대에 성행했던 누벨 당스 (nouvelle danse)는 정체되어 있던 무용 형식을 거부하면서 안무가를 작가로 인정하기 시작했던 프랑스 무용 사조의 한 흐름이다. 누벨당스 시기에 활동을 이어갔던 마기 마랭은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 의학교 무드라(Mudra)에서 새로운 공연예술의 경험을 넓혀갔고 안무의 기회를 얻으며 그녀만의 독특한 무용 성향을 구축해 나갔다. 그는 고전적 레파토리를 가지는 전통발레 작품에서 벗어나 실험적이며 혁신적인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다.

그의 초기작품들은 소설가 사뮈엘 베켓(Samuel Beckett)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는데 (1981) 역시 베켓의 소설 <고도를 기다리며>(1952)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부조리적 세계관을 묘사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베켓은 고도의 정체를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않았다. 고도는 자유, 신, 희망, 꿈, 기다림, 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있으며 그 방향은 다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을 바탕으로 마랭은 막연하게 닥쳐오는 삶에서 희망을 가지고자 하면서도 부조리한 현실과 마주하는 인간의 내적 고통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이렇듯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의 부조리성을 상기시키며 그 속의 인간이 갖는 실존적 위기를 제기하고자 한 베켓의 작품에서 마기 마랭은 음악적, 안무적 구상을 느꼈으며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작품에서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큰 영감을 받았다. 마랭이 작품을 통해서 의도하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흘러가는 삶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허무함을 관객 스스로 발견해 내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몸을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였으며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상호의존적이며 서로를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다[14]. 소외된 사람들의 일화들을 제스처와 음성으로 소개하는 등 이야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에 캐릭터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무용작품이면서도 일화를 연극적 느낌으로 유지하기 위해 과장된 움직임을 활용하였다.

그는 사회 속에 현존하는 인간의 현실적 관계를 주제로 삼으면서 그 내면적 풍경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처럼 그는 작품에서 시대의 반영을 담고자 하는데 소재는 ‘인간’이며 사회에 대한 관점을 연극적 요소를 결합하여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하여 나타낸다. 또한 문학을 창작에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희곡이나 신화 등의 내용을 패러디하거나 재해석하여 인간의 내면을 무용수의 움직임을 통해 작품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신체 표현법에 관심을 두었다[6].

2. 작품 분석

작품는 1981년 11월 4일 앙거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지금까지 마랭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그로테스크적인 움직임과 동작으로 세계의 부조리를 상기시킨다. 또 과장된 일상 동작을 통해 연극적 무용 예술에 접근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이러한 반복을 통해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끼고 부조리한 사회상에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고자 한다.

그림 1. [15]

[그림 1]에서 나타나듯이 작품이 이루어지는 공간의무대 장식은 모두 배제되어 있으며 빈 공간에 화려하지도 가상적이지도 않은 색채만을 사용하여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또한 빈 공간은 가상세계의 공간으로 인지되다가도 때로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두운 조명과 함께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들을 통해 고립의 끝을 알 수 없게 만들면서 관객 개개인의 경험 속에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틀을 넓게 마련하였다.

작품에 내재된 부조리의 세계관은 무용수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들은 특별한 동작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상적 동작의 변용이다. 이를 통해 현실과의 이질감이 없는 외형적 움직임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즉 움직임의 구성을 통한 추상화가 아니라 극적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스며들게 한 신체 표현법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보는 관객은 무용수의 분칠한 외형적 모습이 주는 이질적 감각과 충돌을 느끼게 되고, 이에 따라 다소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림 2. [16]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모습과 의미 없는 일상 동작들의 변용은 극의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인간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의문을 관객 스스로 제기하도록 이끈다. 불안정한 스텝이 점차적으로 고조되기도 하며 침묵 속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등 인물들 간의 해체와 결합의 반복이 이루어지면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유지한다. 또한 반복적인 구조 속에서 시공간의 현재성을 드러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시간의 단절을 통해 현재의 찰나성을 보여주며[7]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이라는 전통적 정체성을 전복하고 껍데기 속에 남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모습에 불과한 인간의 이미지를 의미 없는 반복적 움직임으로 재현하고 있다[그림 2].

마랭은 초췌하고 낡은 세계에 던져진 인간의 모습과 희망 없는 삶을 인간의 육체라는 무차별적 기호로만 표현하고자 한다. 무용수들은 얼굴과 몸에 흰색 가루로 분칠을 하고 깔끔하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 이처럼 뚜렷한 대비가 없는 캐릭터를 가진 10명의 무용수들은 전체적으로 몰개성화되어 있다. 그들은 무기력한 스텝을 사용하며, 기괴하고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보여주면서, 때로는 희극적인 면모를 통해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이렇듯 마랭은 춤 형식에 중점을 두지 않은 채 우리가 평소에 놓치는 미시적 감각과 함께 세속적 욕망에 가려진 기쁨, 슬픔, 불안, 고통 등을 표현하고자 정제되면서도 때로는 과장된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움직임으로 승화시키는 등 극적 기법으로 관객들의 다양한 감정적 변화들을 끌어내고 있다[7][그림 3].

그림 3. [17]

작품이 끝나갈 무렵에 이르면 단조롭고 낡은 옷에서 평범한 일상복으로 교체된다. 또한 신발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무대 위에 그들이 벗은 신발을 두고 정처 없이 걷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무용수들의 행위는 관객에게 다양한 의미를 생성시킬 수 있는데 전체적인 상황은 세속적인 삶의 지향에 따라 몸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오브제로서의 신발은 걷는 인간의 발을 감고 있는 신발을 무대에 벗어 둠으로써 정신적인 해방에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그림 4].

그림 4. [18]

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용수의 목소리다. 이전의 다른 무용 작품처럼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이루어지는 춤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음성을 사용하여 연극적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제 전달의 매개체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무대 위 무용수의 움직임, 의상의 요소를 통한 주제 전달과 함께, 호루라기 소리를 통해 공간에 강압적인 분위기를 불어넣으며 무용수들의 급격한 움직임의 변화에서는 거칠어지는 호흡소리를 동반하는데 이 불만족스럽고 불편한 소리를 통해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표현한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C’est fini – Ca va finir – Ca va bientot finir”라는 대사를 읊기도 하는데 이는 “곧 끝날 거야”라는 뜻이다[7]. 무용 언어와 연극적 표현수단인 대사의 중간지점쯤에 해당하는 간결한 문장사용과 긴 침묵 속 각기의 자연스러운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는 어디선가 익숙하듯 들어봤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이끌어냄으로 이러한 음성의 역할은 움직임의 효과에 더욱 긴장감 있는 몰입을 위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에서는 이렇게 되풀이되는 감정과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자 하지만 해답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그저 물음만 안고 계속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 이끌려 무겁고 느린 발걸음으로 쉼 없이 이동하면서 마무리된다.

이렇듯 이 작품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이미지를 안무에서 대사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면모의 모순적 다층 성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랭은 익숙한 시각적 효과와 함께 한편으로는 이질적인 동작과 배치를 통해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 즉 인지하고 있지만 발화되지 않길 바라고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무대 위에 드러냄으로써 불편하면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제공하고자 한다.

Ⅴ. 결론

이 연구는 마기 마랭의 작품 를 통해 무용에서 그로테스크 이미지와 언캐니의 감정이 생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앞서 문학작품에서의 언캐니를 바탕으로 그 모티브가 되는 요소를 해석해봄으로써 무용작품에서 언캐니가 나타나는 배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그로테스크의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그로테스크 이미지에서 언캐니라는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무용작품과 달리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재해석하여 창조된 안무구조의 다양한 의미들로 현실계와 상상계의 중간 지대에 우리를 끌어들이고자 했다. 마랭은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라는 신화에서부터 벗어나서 일상적 움직임으로부터 부자연스러운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냄에 따라 그로테스크 이미지에서부터 도출되는 언캐니한 감정을 생성해낸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무용 관념을 해방시키고자 무용수의 가벼운 몸과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의 인간의 면모를 무겁고 무너지는 반복적 움직임 속에서 보여주고자 했으며, 별다름 없이 흐르는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베켓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인류와 사회에 대한 두려움, 낯설음과 같은 미적 체험은 ‘낯설게 하기’의 방법론으로 사용되며 이는 무용에서 낯익은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선 동작과 무대 상황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대장치와 의상 무용수들의 기괴한 움직임은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무용수가 인간의 모습을 나약하고 고립된 인간들의 존재 그 자체로만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잘 아는 것과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개개인에게 성찰적으로 그려내게끔 하였다. 사람들은 생소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만나면 공포심에 빠져 방어적 폭력의 자세로 들어서기도 하는데 이렇듯 서로를 누르는 무거운 이미지를 통해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제공하면서 관객은 자신으로부터 두렵고 낯선 감정을 연이어 받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의상 가면과 같은 오브제를 활용하여 일차원적으로 인물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 인물 그 자체를 변형시키면서 그로테스크 이미지가 생성되며 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불편한 움직임을 통해 낯설음과 같은 시각적 혼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기계음이나 배경음악이 아니라 무용수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무언가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듯하지만, 그 음성이 관객으로서는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소리이기에 어딘가 불편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이렇게 전통적 무대 미학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실험정신은 관객의 정신적 참여를 통한 자극과 성찰을 통해 혼란스러움을 제공하였다. 또한 삶 그 자체라는 근원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공감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런 주제는 익숙한 동시에 가볍지는 않고, 모두 알고 있지만 잘 드러내지 않는 주제로 어쩌면 불편한 것이기도 하다.

이 연구를 통해 언캐니의 미학적 개념과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가지는 예술작품에서 미학적 시각의 확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듯 다양한 개념적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앞으로 무용예술의 영역과 가능성의 확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무용창작의 미학적 기반을 다양한 방향으로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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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https://www.levolcan.com/saison/1920/may-b
  16. https://lefifa.com/catalogue/may-b
  17. https://www.artistikrezo.com/
  18. http://lestroiscoups.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