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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id the Press Report the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 Focusing on Framing and Signifying Strategies

언론은 한일 갈등을 어떻게 보도했는가 : 프레임 유형과 의미화 방식을 중심으로

  •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
  • 정제혁 (KBS 보도본부 기자)
  • Received : 2020.05.15
  • Accepted : 2020.07.01
  • Published : 2020.07.28

Abstract

This study critically reviewed whether the South Korean press reported the issue of conflict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in a way consistent with their journalistic values. To this end, this study conducted frame analysis and textual analysis for the articles of three press(Chosun Ilbo, Hankyoreh and KBS) from the three major branches of conflict (Korea's Supreme Court's ruling on forced labor compensation in October 2018, the Japanese government's decision to regulate exports in July 2019 and the Korean government's decision to end GSOMIA in August 2019) to one week. There were many superficial reports of simply relaying conflicts around the occurrence and outcome of events, and there were few reports that analyzed the context in depth or suggested alternatives. And partisan reporting, which is cited as a key issue in the Korean journalism, has been strongly revealed in the midst of a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a national emergency situation.

이 연구는 한국과 일본 간 갈등 문제를 다룬 한국 언론 보도의 프레임 유형과 의미화 전략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위해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결정, 2019년 8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갈등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세 시점에서부터 각 일주일 동안 조선일보, 한겨레, KBS 3개 언론사의 기사에 대한 프레임 분석과 텍스트 분석을 실시했다. 연구 결과 사건의 발생과 결과를 중심으로 갈등을 단순 중계하는 피상적 보도가 많고 맥락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보도는 적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또한 한일 갈등 국면에서 언론이 과도한 민족주의에 경도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한국 언론의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정파적 보도 행태가 강하게 드러났다. 이 연구는 언론이 국가적 비상 상황인 한일 갈등마저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는 정파적 보도 양태를 극복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Keywords

I.서론

악화된 한일 관계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리면서 시작된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했고,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대응했다. 한국 시민사회는 의류, 맥주, 여행상품 등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불매운동을 벌였다. 한국 정부는 일단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켰고 일본도 수출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한일 갈등이 빠른 시일 내에 전향적으로 해결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여러 차례 반복되며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2019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갈등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일단 정치 영역에서만 이루어지던 분쟁이 통상무역을 고리로 한 경제 영역으로 확대된 점이 그렇다. 양국 시민사회 모두에서 극단주의에 힘이 실리면서 대화와 소통의 토대가 붕괴되는 조짐이 보인다는 점도 우려된다. 한국 시민사회에 맹목적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반일 정서가 팽배하고, 일본 시민사회 내의 극우 헤게모니가 강화되면서 양심 세력들이 고립된다면 장기적으로 관계 정상화의 동력은 고갈될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가장 가까운 이웃 사이다. 어떤 이유에서 갈등과 긴장이 시작되었든 간에 장기적으로 화해와 협력을 도모해야 하는 관계다. 그럼에도 양국 정부의 인식이 계속 평행선을 그리고 시민들 간에 반목과 혐오가 비등하는 상황이라면, 언론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언론은 현상을 단순히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현실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며, 언론의 보도 내용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는 변화할 수 있다[1]. 상대국에 대한 인식이나 양국 간 관계에 대한 태도는 언론이 재구성한 현실과의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형성된다.

미디어가 다변화된 오늘날의 환경에서 전통적 언론의 의제설정 능력이나 여론 주도 능력은 크게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직접적 경험을 통해 얻기 어려운 국제 문제에 대한 정보를 취재 전달하여 이해를 형성하며 여론을 매개하는 역할은 여전히 언론의 몫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위정보 유포나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즉흥적 여론을 경계하며 정확하고 포괄적인 정보 전달,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분석과 해설을 통해 진지한 숙의(熟議)를 추구하는 언론은 현명한 시민(informed citizen)들의 지적 역량과 덕성을 고양하여 지혜로운 해결책 수립과 양국 간 건강한 관계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언론이 한일관계에 대하여 어떤 보도를 하느냐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 이유다.

언론이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위한 적극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다. 한일 관계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논하는 데 있어 경계해야 할 점이 ‘도구적 언론관’이다. 저널리즘은 국익이라는 별개의 상위 목적에 종속되는 수단이 아니다. 시민들의 인식을 특정한 방향으로 조작하거나 계도하는 프로파간다와도 다르다. 언론인들은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의도된 보도를 하는 것보다 진실 추구와 시민에 대한 복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보도를 해야 한다. 오로지 당장의 갈등을 다루는 태도가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만을 가지고 저널리즘의 질을 판단하려는 시도는 곤란하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저널리즘은 공적 이슈에 대한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와 심층적 분석을 제공하여 관련된 지식을 형성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에 관한 토론을 유도하고 해결책을 탐구하는 기능을 담당해왔다. 언론이 이 같은 전통적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기만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로 한일관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일 갈등 국면에서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이 담당해야 하는 일정한 역할이 존재하고 언론 보도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본 연구는 최근 한일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과연 언론이 양국 간 갈등의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일련의 보도들이 종합적이고 맥락화된 정보 전달을 통해 복합적 현실을 다각도에서 접근하였는지,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사안에 대한 숙의적 공론을 형성하였는지, 보도 과정에서 어떤 의미화 전략을 통해 현실을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하였는지 등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언론이 한일 관계를 다루는 방식의 적절성을 점검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Ⅱ.문헌 고찰

1.뉴스 프레임과 현실의 재구성

프레임(frame)은 본래 인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이나 맥락에 대해 사람들이 부여하는 ‘해석의 스키마’라는 의미에서 이해되었지만[2], 미디어 연구에서는 뉴스 콘텐츠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뉴스 프레임은 미디어가 정보를 전달하고 해석하고 평가하기 위해 의존하는 개념적 도구이자[3] 공적 이슈에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적 패키지로서[4], 미디어가 현실을 특정한 방향으로 의미화하고 재구성하는 도구의 역할을 수행한다[5].

미디어 프레임 분석은 미디어가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투명한 창이 아니라 편향된 틀을 통해 이슈의 특정 측면을 선택하거나 강조해 현실을 재구성함으로써 공중의 지각과 인식에 한계를 설정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미디어 프레임은 선별과 강조, 배제를 통해 이루어지며, 미디어는 특정 담론을 조직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프레임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다[6]. 미디어는 프레임을 통해 인지된 현실의 특정 측면을 선별하고 텍스트 내에서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정보를 단순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문제 정의(problem definition), 인과적 해석 (causal interpretation), 도덕적 평가(moral evaluation), 해결책의 제시(treatment recommendation)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7].

수많은 사실 가운데 중요한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전달 과정에서 일정한 해석이 가미되는 작업은 뉴스 제작의 불가피한 과정이지만, 여기에 언론사 내외부의 압력과 언론의 편향,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 등이 개입되기 때문에 프레임은 정치적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프레임은 뉴스의 수용자들이 현실을 지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8]. 예컨대 언론은 각자의 프레임을 통해 한일 갈등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서로 다른 시각에서 정의내리고 원인을 해석하며 도덕적 판단을 내릴 뿐 아니라, 상이한 해법까지 제시하면서 공중들로부터 더 많은 동의를 획득하고 영향을 미쳐 현실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뉴스 프레임은 형식적 프레임, 내용적 프레임, 프레임의 심층성 등 여러 가지 차원에서 분석 가능하다. 보도의 형식적 프레임 분석은 기사의 핵심 구성 아이디어가 단절적 사건에 집중되는가 아니면 종합적 이슈를 포괄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언론은 갈등 국면을 보도할 때 사건을 초래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원인과 과정, 맥락에 대한 설명을 누락한 채 가시화된 사건만을 고립시켜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엔거는 이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중점을 두어 피상적으로 보도하는 사건 중심의 프레임을 일화중심적(episodic) 프레임으로,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슈가 발생한 다양한 사회구조적 맥락과의 관계를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해석적 방식을 주제중심적(thematic) 프레임으로 규정했다[9].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 분석은 크게 연역적 접근법과 귀납적 접근법으로 나눌 수 있다. 귀납적 접근법은 언론 보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발견되는 모든 가능한 프레임을 추출하는 방법이다. 다양하고 풍부한 프레임을 탐색하고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간과 노력의 소모가 크고 다른 연구와의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연역적 접근법은 특정 사회체계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한 언론 보도에는 그러한 체계를 반영하는 지속적인 프레임이 존재한다고 보고, 정형화된 프레임에 의거해 연구대상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선행 연구로부터 도출된 프레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고 광범위한 규모의 표본에 대한 더 포괄적인 분석이 가능해진다[10][11]. 특히 세멧코와 팔켄뷔르흐는 갈등(conflict), 인간적 흥미(human interest), 경제적 결과(economic consequences), 도덕성(morality), 책임(responsibility)의 다섯 가지 프레임을 적용해 분석을 시도했는데[12], 이 프레임 유형은 이후 다양한 후속 연구에서 활용되었다.

기사가 어느 정도 심층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프레임의 심층성도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이준웅·황유리의 연구[13]는 기사의 복합성과 심층성을 측정하기 위하여 과정/결과, 원인, 반응, 대안의 분석 유목들을 활용했다. 즉 뉴스의 구성이 이들 유목들을 다양하게 포함시킬수록, 과정/결과만 담는 단계에서 원인과 반응, 대안을 함께 담는 단계로 진입할수록 뉴스가 더 심층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현 외[14]와 김희범·우형진[15]은 이들 유목을 정의, 원인, 결과, 대응, 대안 제시의 다섯 가지로 재정리하고 이들을 진단 차원(정의, 원인)과 처방 차원(결과, 대응, 대안 제시)으로 분류한 뒤 하나의 기사 속에 이들 구성요소들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이 같은 분석은 뉴스가 이들 구성요소들을 모두 포함할 때 사건에 대한 보도가 피상적이고 파편적이지 않은, 심층적이고 맥락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차원의 프레임 분석을 활용해 한일 관계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검토한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동일한 현안을 바라보는 한일 언론의 시각 차이를 드러내는 연구들이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오대영[16]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주요 신문들이 관련 뉴스를 어떤 프레임에 따라 보도했는지를 비교했다. 유승관·강경수[17]는 양국 신문에 게재된 상대국 관련 보도를 분석해 어떤 이미지와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연구했고, 박형준[18]은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신문들이 상대 국가를 보도할 때 어떤 프레임을 사용했고 주관적 형용사와 부사, 동사의 사용 빈도가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했다.

김동윤·오명원[19]은 한국과 일본 언론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보도 양상과 미디어 프레임을 통해 분석했다. 연구 결과 양국 언론은 국익을 내세우는 획일적 민족주의 성향의 보도를 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언론의 인식과 접근이 이념적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김동윤 외[20]는 한일 양국 언론이 상대국 국가 정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를 보도 양상과 프레임 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아베 일본 총리에 대한 한국 언론의 이미지 프레임은 이념을 막론하고 부정적이었던 반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일본 언론의 이미지 프레임은 이념에 따라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 관계와 관련된 보도를 통해 언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연구로는 이완수 외[21]가 있다. 이 연구는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한국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가를 추적했다. 한국 언론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을 현안이나 쟁점을 중심으로 보도했으며, 객관적 관찰자보다는 정부의 대일본 정책을 지지·옹호하거나 자국 중심의 애국주의적 보도 관행에 머물러 있었다.

2.언론의 의미화 전략

그러나 뉴스 프레임 분석만으로는 언론이 보도를 통해 사건을 해석하고 현실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프레임 분석은 객관적 지표를 통해 실증적 측정과 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험적이고 계량화된 연구 결과를 산출하여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데는 강점이 있지만, 현상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담론의 장 내에서 동의와 설득을 구하기 위한 의미 투쟁을 벌이는 언론 보도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수량화되지 않는 구체적 맥락에 대한 설명을 도출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언론이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동원하는 다양한 전략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어떤 기호와 이데올로기가 활용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방법으로서 프레임 분석은 적절하지 않다.

미디어 문화연구는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미디어가 다양한 의미 실천 행위를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기성 질서를 재생산하는 과정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탐구해왔다. 지배 블록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부합하는 세계관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규정하고자 시도하고 저항적 집단은 이에 맞서 다양한 대안적 가치관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획득하고자 하는데, 미디어는 이러한 의미 투쟁이 치열하게 발생하는 현장이며 각각의 미디어는 강조와 배제 등 다양한 의미 실천 행위를 통해 사회적 현실에 대한 담론을 형성한다는 것이다[22].

이러한 연구를 위해 미디어 문화연구가 즐겨 활용하는 텍스트 분석은 사람들이 세계를 해석하는 의미부여 실천(sense-making practices)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론이다[23]. 언론 보도에 대한 텍스트 분석은 공적 이슈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뉴스 내러티브의 특성, 발현되는 논리와 관점, 사회적 상징성과 신화작용 등을 비판적으로 탐구한다[24]. 텍스트 분석은 언론이 매개하는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특정 사안의 재현을 둘러싼 의미들의 투쟁이나 대립상과 각축의 단면들, 각 매체들이 특정 사안을 의미화하는 방식의 차별성과 설득력, 의제의 생산을 상호 비교하는 데 유용하다[25].

따라서 언론 보도가 현실을 재구성하여 뉴스 수용자에게 어떤 인식과 태도를 형성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계량적 데이터와 심층적 의미를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적 프레임 분석과 질적 텍스트 분석을 병행하여 상호보완하는 전략적 연구 설계가 필요하다. 한 연구에서 상반된 인식론을 가진 양적·질적 연구방법론(methodology)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은 일반적 연구 관행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지만, 분석을 위한 ‘도구’로서 연구방법(method)의 체계적 결합과 상호보완적 병존은 충분히 가능하며, 단일 주제 아래서도 복합적 연구방법을 동원해 다각도에서 접근하는 연구는 많은 경우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낸다[26]. 모든 연구방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을 결합하는 혼합 연구방법(mixed methods)은 단일 연구방법에 내재된 편향성을 다른 방법으로 상쇄하는 수단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27].

Ⅲ.연구방법

1.연구문제와 연구방법

본 연구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본격화된 한일 갈등을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언론이 현실을 어떻게 재구성하여 뉴스 수용자들에게 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어떤 내용을 강조하거나 배제하였으며 어떤 의미화 전략이 활용되었는가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설정하였다.

연구문제1 한일 갈등을 보도하는 언론은 어떤 뉴스 프레임을 활용하였는가?

연구문제2 언론의 한일 갈등 관련 보도들은 어떤 의미화 방식을 통해 어떤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가?

언론이 한일 갈등을 어떻게 보도했는가를 탐구하기 위해 본 연구는 양적 연구방법과 질적 연구방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였다. 연구방법을 한 가지로 한정하지 않고 다변화함으로써 개별 연구방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풍부한 자료 수집과 분석을 시도하기 위함이다. 연구문제1을 해결하기 위한 양적 연구방법으로서는 프레임 분석을, 연구문제2를 해결하기 위한 질적 연구방법으로서는 텍스트 분석을 채택했다. 두 연구방법은 인식론적으로 상이한 지향을 가지고 있지만, 선별과 배제, 강조 등을 통해 뉴스 수용자의 현실 지각과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교집합을 갖는다.

먼저 언론이 한일 갈등 관련 보도에서 어떤 유형의 프레임을 주로 사용했는지를 알아보고, 나아가 언론사별로 보도의 프레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이어서 텍스트에 대한 질적 분석을 통해 언론사들이 한일 갈등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의미화하고 서사화하여 현실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는가를 파악한다.

2.분석 대상

본 연구는 조선일보, 한겨레, KBS 3개 매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보수와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종합일간지이며, KBS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상파 방송사로서 세 언론사 모두 뉴스 수용자의 현실 인식과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분석 대상으로 선정했다. 신문과 방송은 기술적·물적 조건뿐 아니라 전달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성격이 이질적인 매체이다. 본 연구는 상이한 성격의 매체들을 분석 대상에 두루 포함시켜 한일 갈등을 다루는 언론의 다양한 양상을 관찰하고 연구 결과의 편향을 피하고자 했다.

분석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빅카인즈(bigkinds)’를 활용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기사는 빅카인즈 검색창에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여 검색된 기사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지만, KBS 기사는 여러 시간대의 다양한 뉴스 프로그램을 통한 보도들의 중복 표집을 피하기 위해 KBS 홈페이지를 통해 메인 뉴스인 ‘9시 뉴스’에 보도된 일본 관련 기사만을 추출했다.

분석 기간을 세 차례에 나누어 분석 대상이 되는 데이터를 추출했다. 한일 갈등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시점(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결정,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서부터 각 일주일씩의 기사를 표집했다. 모든 기간의 보도를 살펴볼 수 없는 상황에서, 법원 판결이나 정부 발표 등 핵심적 사건이 벌어진 직후의 기간에 공적 이슈에 대한 담론이 가장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언론 보도도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했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명령 판결을 내린 2018년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결정을 내린 2019년 7월 1일부터 7월 6일까지,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한 2019년 8월 22일부터 8월 28일까지의 기사들이 분석 대상이 되었다.

기사에 ‘일본’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지만 한일관계와 전혀 관련 없는 이슈를 다룬 경우를 제외한 결과 첫 번째 기간(2018년 10월 30일~11월 5일)에는 조선일보 32건, 한겨레 23건, KBS 16건의 표본을, 두 번째 기간(2019년 7월 1일~7월 6일)에는 조선일보 84건, 한겨레 29건, KBS 17건의 표본을, 세 번째 기간(2019년 8월 22일~8월 28일)에는 조선일보 77건, 한겨레 62건, KBS 28건의 표본을 확보했다. 프레임 분석 단위는 개별 기사로 했다.

3.분석 유목

형식적 프레임과 내용적 프레임, 프레임의 심층성 세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뉴스 프레임 분석을 진행했다. 형식적 프레임은 누가 무슨 행동을 했는가, 어떤 발언을 했는가,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가만 보도하는 경우는 일화중심적 프레임으로, 사건의 배경과 원인, 관련된 맥락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보도를 하는 경우는 주제중심적 프레임으로 분류했다.

내용적 프레임 분석에서는 세멧코와 팔켄뷔르흐의 다섯 가지 프레임을 활용하였다. ‘갈등’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 물리적 충돌, 서로 간의 의견 불일치 등 갈등 자체를 기술하는 데 중점을 두는 프레임을 말한다. ‘인간적 흥미’는 사건, 이슈, 문제를 보여주는 데 있어 개인의 인간적 모습이나 이슈의 감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시도에 집중할 때를 말한다. ‘경제적 결과’ 프레임은 개인, 집단, 제도, 지역, 국가에 경제적으로 미치는 결과를 중심으로 사건, 문제, 이슈를 보도하는지, 현재 또는 미래의 재정적 손실이나 이득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를 말하는 경우이다. 다만 본 연구에서 다루는 지소미아 관련 국면에서는 외교·안보적 파장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관계로, 이 프레임을 경제적으로 미칠 영향을 강조하는 경우에 국한시키지 않고 ‘경제/외교안보적 결과’로 확장하여 적용하였다. ‘도덕성’은 종교적 신조나 도덕적 처방의 맥락에서 사건, 문제, 이슈를 다루는 경우의 프레임이다. 자유, 평화, 정의, 인권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해 행동을 해석하거나 판단하는 경우도 도덕성에 포함시켰다. ‘책임’은 정부, 개인, 집단에 원인이나 해법의 책임을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이슈나 문제를 보여주는 경우의 프레임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 책임 프레임을 일본의 책임 / 한국의 책임 / 기타 책임의 세 가지 하위 프레임으로 다시 나누었다. 한일 관계 관련 보도에서는 책임 귀속을 어디에 하는가에 따라 보도의 성격과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의 심층성은 선행연구들을 기초로 하되, 분석 유목들을 조정하여 정의, 과정, 결과, 원인, 전망/예측, 대안 제시의 여섯 가지 유목으로 재설정하였다. 과정을 살펴보는 기사와 결과를 보여주는 기사 간의 차별성을 고려할 때 두 항목을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였고, 본 연구가 다루는 이슈의 특성상 각 주체들의 반응이나 대응은 심층성과는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제외하는 대신 전망/예측 항목을 추가하였다.

‘정의’는 문제의 성격, 특징에 대한 규정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는 경우를 말한다. ‘과정’은 사건의 전개와 진행 추이에 대한 종합적 설명이 포함된 경우이고, ‘결과’는 사건으로 초래된 결과나 사건에 대한 주체들의 대응이 담겨 있는 경우를 이른다. ‘원인’은 사건을 초래한 근원적 이유에 대한 해설이 있는 경우의 프레임이다. ‘전망/예측’은 사건의 이후 전개에 대한 예상이나 해설이 담겨 있는 경우를, ‘대안 제시’는 문제의 구체적 해결 방안 또는 포괄적 대안이나 노력이 담겨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상의 분석 유목들은 기사가 얼마나 다양한 요소들을 내포하며 심층적 보도에 이르렀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줄뿐더러, 특히 본 연구에서 다루는 한일 갈등 국면과 관련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 언론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진단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내용적 프레임과 프레임의 심층성 항목에서는 하나의 기사에서 여러 개의 프레임이 나타날 경우 지배적 프레임만 코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 중복 코딩을 실시했다. 즉 기사 1개 당 1개의 프레임을 추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1개의 기사에서 2개 이상의 프레임이 동등한 수준에서 중요하게 나타나면 복수로 처리했다. 자료의 코딩에는 언론학을 전공한 학부 졸업생 1명과 연구자가 참여했다. 최종 코딩 전에 분석 대상 기사 가운데 전체의 약 10%에 해당하는 기사를 매체별로 고르게 무작위 추출해 사전 코딩을 통한 코더 간 신뢰도를 검사했다. 홀스티(Holsti)의 신뢰도 공식을 활용해 코더 간 일치도를 검증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코더 간 상호 신뢰도가 0.9 이상으로 나타나, 전체 분석 대상 뉴스를 절반씩 나누어 각각 코딩을 진행하였다.

Ⅳ.프레임 분석 결과

1.기사 유형

프레임 분석에 앞서 각 언론사별 기사의 유형을 파악해보았다. 분석 대상이 된 세 가지 분석 시기별로 스트레이트, 탐사기획, 분석/해설, 사설/칼럼, 인터뷰, 기타의 여섯 가지 항목에 따라 기사를 분류했다. 시기별 기사 유형의 결과는 다음의 [표 1]부터 [표 3]까지와 같다.

표 1. 강제징용 판결 보도의 기사 유형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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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수출규제 보도의 기사 유형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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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지소미아 보도의 기사 유형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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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판결 보도에서는 심층적 해석을 요구하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도의 특성상 세 개 언론사 모두에서 스트레이트(36.6%)와 분석/해설 기사(33.8%)가 비교적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수출규제 국면과 지소미아 국면에서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각각 72.3%와 65.3%) 분석/해설 기사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각각 13.8%와 19.2%). 스트레이트 기사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언론의 관행상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와 경제적 함의가 풍부한 수출 규제 국면과 지소미아 종료 발표 국면에서 시민들이 상황을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해설 기사의 비중을 높일 필요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세 시기를 종합한 전체 보도의 기사 유형에 대한 분류는 [표 4]와 같다.

표 4. 전체 보도의 기사 유형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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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형식적 프레임

한국 언론 보도에서 단편적인 일화중심적 프레임의 보도들이 훨씬 많다는 일반적 통념과 달리 본 연구에서 분석한 한일 갈등 관련 보도에서는 주제중심적 프레임의 기사들이 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강제징용 판결 보도에서는 전체 71건 보도 중에 일화중심적 프레임이 27건(38.0%), 주제중심적 프레임이 44건(62.0%)으로 주제중심적 프레임이 훨씬 더 많았다[표 5]. 수출 규제 국면의 보도와 지소미아 종료 국면의 보도에서는 일화 중심적 프레임이 각각 57.7%와 52.1%로 주제중심적 프레임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주제중심적 프레임도 각각 42.3%와 47.9%로 나타나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표 6][표 7].

표 5. 강제징용 판결 보도의 형식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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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6. 수출규제 보도의 형식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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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7. 지소미아 보도의 형식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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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8]에서 보듯 전체 368건의 보도 가운데 일화중심적 프레임의 보도는 189건(51.4%), 주제중심적 프레임은 179건(48.6%)으로 나타났다. 피상적이고 파편적인 보도가 근소하게 많았지만, 배경과 원인, 맥락에 대한 종합적 보도 역시 꽤 많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만 경제와 안보 등 국민의 실제 삶과 더 밀접한 관련성이 있고 일반 시민들이 판단에 혼란을 겪을 만한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종료 국면에서 오히려 주제중심적 프레임이 줄어들고 일화중심적 프레임이 증가한 점은 비판받을 만하다.

표 8. 전체 보도의 형식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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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내용적 프레임

[표 9]는 강제징용 판결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을 정리한 결과다. 일본의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이 전체 23건 중 12건(52.2%)으로 압도적인 한겨레와 갈등 프레임이 전체 35건 중 19건(54.3%)으로 압도적인 조선일보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세 언론사 모두에서 한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이 일부 등장한 것은 해당 이슈에서 한국 사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기사들 때문이다.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박근혜 정권 당시 대법원이 재판을 지연시킨 결과 고령의 일부 피고들이 사망 한 뒤에야 판결 선고가 이루어졌음을 지적한 것이다.

표 9. 강제징용 판결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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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규제 보도와 지소미아 종료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 분석 결과를 담은 [표 10]과 [표 11]에서는 두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째, 경제적(외교안보적) 결과 프레임이 크게 늘어난 점이다. 수출 규제 보도에서 전체 131개 프레임 중 경제적 결과 프레임은 49개(37.4%)로 나타나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고, 지소미아 보도에서 전체 180개 프레임 중 외교안보적 결과 프레임은 70개(38.9%)로 나타났다. 이러한 특징은 세 개 언론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두 번째 특징은 책임 프레임의 극명한 차이다. 두 갈등 국면에서 조선일보는 한국에 책임을 물었고, 한겨레는 일본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조선일보는 수출규제 국면의 보도에서 일본의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이 3개, 한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이 18개였고, 지소미아 국면 보도에서도 일본 책임 프레임은 0개, 한국 책임 프레임은 23개였다. 한겨레 보도에서 일본 책임 프레임은 두 국면에서 각각 5개, 6개였다. 한국 책임 프레임은 수출 규제 국면에서만 1개 있었고 지소미아 국면에서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이 2개 있었다. 전체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 분석을 종합한 결과는 [표 12]와 같다.

표 10. 수출규제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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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1. 지소미아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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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2. 전체 보도의 내용적 프레임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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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프레임의 심층성

[표 16]은 세 국면을 종합한 전체 보도에서 프레임의 심층성을 분석한 결과다. ‘결과’ 프레임이 전체 프레임의 절반 이상의 비중(55.6%)을 차지할 만큼 높게 나타났다. 문제 해결과 관련된 ‘대안 제시’ 프레임(6.3%)의 비중은 ‘결과’에 비해 매우 낮았다. ‘원인’ 프레임(9.6%)과 ‘전망/예측’ 프레임(14.1%)도 낮게 나타나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보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분석 대상이 된 세 개 언론사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강제징용 판결 보도에서만 ‘과정’ 프레임(20.1%)의 비중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고 ‘결과’ 프레임(38.1%)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이는 분석과 해설이 강조되는 대법원 판결 보도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수출 규제 국면과 지소미아 종료 국면으로 갈수록 언론이 전망/예측(각각 15.2%와 12.3%)이나 원인 분석(각각 11.1%와 6.8%)에 소홀해지고 결과 프레임(각각 55.1%와 66.8%)의 보도가 더 많이 이뤄진 점이 흥미롭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미래가 불투명해질수록 주체들의 반응이나 대응을 단순 전달하는 보도에 더 많이 집중했다는 의미다. 강제징용 판결 보도에서는 비교적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보도를 달성했지만, 한일 갈등이 심화되며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수출 규제 보도와 지소미아 관련 보도에서는 오히려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보도의 양이 많아졌다는 점은 문제이다.

표 13. 강제징용 판결 보도의 프레임 심층성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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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4. 수출규제 보도의 프레임 심층성 (단위 :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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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5. 지소미아 보도의 프레임 심층성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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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6. 전체 보도의 프레임 심층성 (단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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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텍스트 분석 결과

한일 갈등 관련 보도에서 현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의미화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한 언론사는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경제와 안보에 무능한 좌파 정부’라는 기존에 형성된 인식틀을 가져와 한일 갈등을 정권 공격의 수단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한일 관계 문제를 한미 관계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다양한 상징들을 활용해 안보 문제를 새롭게 의제화시켰다.

수출 규제 국면에서 조선일보는 ‘치밀하게 준비한 유능한 일본 정부’ 대 ‘아무런 대책 없는 무능한 한국 정부’를 대조시키며 정부를 질책하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내용적 프레임 분석 결과에서 조선일보가 한국 정부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프레임을 많이 활용한 것으로 나타난 점은 이러한 상징 전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같은 이항대립적 의미작용은 국력이 약하고 정부가 무능한 한국이 치밀하게 준비해온 일본에 맞서 싸울 수 없으니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피하다는 암묵적 결론을 내포한다.

7월 2일자 <한일관계 악화 책임있는 靑, 막상 日 보복조치 나오자 침묵> 기사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청와대와 외교부는 ‘경제 문제’라는 이유로 대응을 경제 부처들에 떠넘기고 뒤로 빠졌다”고 비판했다. 사설 <日·中·美 우리 기업들 직접 겨냥, 정부는 어디에 있나>에서는 “온갖 규제와 수사로 기업의 목을 조이는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을 보호해야 할 사태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고 공격했다.

7월 3일자 <갈팡질팡 한국... 강경화 “이제부터 연구” 산업부 “기업도 몰랐나”> 기사에서도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상황을 방치하거나 기업들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은 이어졌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는 ‘갈팡질팡’이라는 제목의 근거가 될 만한 팩트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7월 4일자 사설 <‘전략적 침묵’한다는 청와대, 무능 무책임일 뿐>에서는 “대일 강경 외교 일변도 이던 청와대는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무능이자 무책임”이라 꾸짖었다.

반면 일본 정부는 무섭고 치밀한 상대로 자리매김되었다. 7월 2일자 기사 <한국산업 급소 찌른 ‘일본의 보복’>에서 한국 기업의 심각한 타격을 강조하며 “실효성도 없는 맞대응을 하기보다 갈등을 해결하는 적극적 외교 정책”을 주문한 조선일보는 7월 3일자 기사 <日 치밀한 공세... 한국이 수입 다변화 못할 소재만 콕 집어냈다>에서 업계에서 “역시 일본은 무섭다”는 말이 돌았다며 “적어도 6개월 이상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한국 반도체의 취약점을 검토·준비해 파고들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7월 5일 <‘북한’ 빼곤 하는 일도, 되는 일도 없는 대한민국 국정>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정부는 ‘수입 다변화’ ‘국산화’ 같이 먼 산 바라보는 얘기만 하고 있다”며 해당 사안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대북관계를 연결시켜 “정권의 관심은 오로지 북한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설은 사드 사태 당시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주권국가가 주권을 스스로 포기한 굴욕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사실상 ‘굴욕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적 대책이 아닌 조속한 해결을 강조하는 논조는 사실상 자존심을 꺾고 일본에 양보를 하라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는 대응을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7월 6일자 강천석 논설고문의 칼럼 <국가가 ‘사귀는 법’·‘싸우는 법’>은 현 정부를 병자호란 때 청 태종에게 포위돼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 조정에 비유하며 “나를 모르고 상대를 모르는 ‘몽상 외교’는 언젠가 깨지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인조가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듯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일본과의 국력 차이를 냉정히 인정하고 ‘화친’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상용 전 주일 대사와의 인터뷰를 담은 7월 5일자 <“나는 善 상대는 惡? 외교를 도덕화하면 아무것도 해결 못해”> 기사는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측면이 있지만, 문제의 원인이 강제징용 배상을 거부하고 무리한 경제 보복을 가하는 일본이 아닌 도덕적 관점에서 대일 강경 기조를 이어가는 한국 정부에 있다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조선일보 보도에도 일본의 책임을 강조하는 기사가 일부 있었다. 7월 2일 <치졸한 보복... 日내부서도 “센카쿠열도 분쟁때 中의 희토류 수출 금지와 같아”> 기사는 일본 내 비판 여론을 전하며 일본의 수출 규제를 ‘치졸한’ 보복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7월 4일 사설 <일본도 중국 수준의 나라인가>은 “일본도 알고 보니 무도한 경제보복을 일삼는 중국과 다를 것 없는 수준”이라며 일본의 경제 보복을 “폭력적이고 야비한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의 책임을 따지는 기사는 사라지고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기사가 늘어났다. 조선일보는 지소미아 종료 국면을 한미 동맹 균열과 안보 불안 상황을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로 정의내리며 이슈를 새로운 의미로 재규정했다.

8월 22일 <전문가들 “한·미·일 협력 고리 끊은 셈... 외교 고립 될수도”> 기사에서 “한미동맹에도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고, 8월 23일자 <북·중·러 위협 커지는데... 韓美동맹도 흔들릴 우려> 기사에서는 “50년 가까이 유지돼 온 한·미·일 안보 체제 자체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것”, “동북아에서 우리나라가 고립될 수 있다” 등 과장된 우려를 쏟아냈다. 하지만 2016년 체결되어 3년 만에 협정이 종료된 상황이 어떻게 50년간 유지된 거시적 안보 체제 자체의 균열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없었다.

8월 24일자 <“한국, 3각 안보체제 사실상 탈퇴... 韓美동맹 파열음”> 기사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미국이 의심할 수 있다”며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동북아 안보 질서를 개편해 제2의 애치슨 라인을 그으면 한국은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같은 날짜의 <[김대중 칼럼]한·미 동맹 와해되기 시작했다>에서도 “한·미 간 동맹 구조를 와해하는 데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며 “동북아에는 70여 년 전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선언했던, 즉 동해를 경계선으로 한 대륙 봉쇄 라인이 새롭게 형성될지도 모른다” 고 동일한 경고를 하고 있다. 같은 날 사설 <美 ‘文 정부’ 찍어 작심 비판, 韓 빠진 ‘新애치슨 라인’ 우려된다> 에서도 같은 논리를 들며 정권을 “제동장치가 풀린 폭주기관차”에 비유했다.

한국인들의 안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애치슨 라인’ 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동원하며 지소미아 종료를 외교적 고립과 전쟁 가능성에 효과적으로 연결짓고 이를 방치하거나 초래한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상징 전략이다. 조선일보는 8월 26일 사설 <안보 고립, 외교 실종, 경제 위기 자초>에서 “1950년 1월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이 제외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발표한 것이 5개월 후 6·25 전쟁을 불렀다. 한·미·일 삼각 안보를 거부한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 스스로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한 발을 내민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거부하면 일본이 북의 위협을 감수하고 한반도 미군 지원에 전력을 다하겠나. 김정은이 가장 기뻐할 소식”이라 주장했다.

8월 27일자 <‘美 실망의 무게’ 모르는 靑>이라는 기자 칼럼은 미국이 ‘실망’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럼을 쓴 기자는 “주권국인 대한민국이 미국의 실망이 두려워 미국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글 전체적으로는 사실상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반면 한겨레는 분석 대상이 된 세 개 언론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민족주의적 색채가 가장 강한 상징 전략을 활용하였다. 한겨레는 한일 간 정면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명분 없는 도발을 감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충돌이 불가피하게 초래되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일본 책임론을 분명히 하는 의미화 전략을 수행했다. 또한 정부여당의 대책 수립 노력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일본에 밀리지 않기 위해 내부 분열을 경계하는 언술도 반복적으로 제시했다.

한겨레는 먼저 악화된 한일 관계의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강조했다. 수출 규제 조치 발표 직후인 7월 1일 사설 <일본, ‘졸렬한’ 무역보복 조처 당장 철회하라>에서는 “강제징용으로 숱한 인권유린과 불법을 자행해놓고 사과는 못할망정 피해배상 요구를 경제보복으로 틀어막으려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7월 4일 사설 <아베가 촉발한 한-일 ‘무역 갈등’, 일본이 먼저 풀라>에서는 수출 규제 조치를 “이웃나라의 경제 숨통을 조이려는 부당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최소한의 외교적 양식과 예의가 있다면 당장 수출통제를 철회하는 게 순리”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정부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 건 잘한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후에도 한겨레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WTO 협정을 위반했으며 상식에 반하는 것임을 반복해서 지적하며 일본의 모순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지소미아 종료 발표 직후인 8월 22일 <‘일 보복에 물러서지 않겠다’ 의지...한-일 관계 재구성 ‘신호탄’> 기사에서는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해 대화의 신호를 보냈는데도, 일본이 이를 무시하고 대화를 거부”했기 때문에 지소미아가 종료된 것이라며 일본 책임론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사설 <일 대화 거부·모욕적 반응에 ‘지소미아 종료’ 정공법 택해>에서도 한국 정부는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며 협상을 시도했지만 “일 본 정부가 아무런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며 지소미아 종료를 ‘정공법’으로 규정했다. 또다른 사설 <한-일 정보협정 종료, 아베 정부가 자초했다>에서도 “정부가 일본에 이처럼 강력한 경고를 발신한 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지소미아 종료는 “일본의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했다. 8월 23일 사설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반응과 적반하장 일본>에서도 “지소미아 종료는 일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지소미아 종료에는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8월 23일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반응과 적반하장 일본>에서는 미국을 놓고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삼아 경제보복 조처를 내놨을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한국이 대항 조처를 취하자 흥분하는 것은 동맹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경고했다. 8월 28일 사설 <‘지소미아 번복’ 압박하는 미국, 일본 편드는 건가>는 “미국의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미국은 일본을 편드는 듯한 태도를 거두고 동맹국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외부의 적 앞에서 벌어지는 내부 분열을 경계하고 그러한 분열을 유도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8월 23일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반응과 적반하장 일본>은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안보위기를 과장하는 것도 볼썽사납다”고 지적하며 “정부는 이런 때일수록 국민을 믿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8월 23일 사설 <불확실성 커진 경제, 정부 ‘위기 관리’ 빈틈없어야>에서도 “이런 마당에 일부 언론 등이 ‘미국 보복설’ 등 현실성 낮은 주장을 퍼뜨려 공포감을 부추기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짓이다. 백해무익한 자해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의 보도는 당위와 현실 가운데 당위를 중심으로 한일 갈등을 진단하고 분석하고 있다. 주권국가로서 존엄성을 지킬 필요성을 인식하고 역사적 가해자인 일본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위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한 과정과 노력이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전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한겨레는 역사적 책임과 국제법 위반 등 일본의 부도덕성을 당위적으로 비판하는 데 집중하느라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종료가 한국 경제와 외교/안보에 미칠 영향과 향후 전개를 냉철히 분석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조선일보가 현실을 강조하느라 역사와 당위에 대한 고려를 생략해버렸다면, 한겨레는 반대로 당위에 집중하느라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지 못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한겨레의 7월 2일 사설 <일본의 ‘무역 도발’, ‘반도체 국산화’ 앞당기는 계기로>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선택을 ‘자해극’으로 규정했다. 수출 규제 품목이 일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들어 “우리의 약한 고리를 건드려 압박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속셈”이라 분석하면서도 곧바로 “하지만 수출 규제로 일본 기업들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한국 측 피해보다 일본 측의 피해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양국 경제에 모두 큰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기보다 다소 희망 섞인 관측에 머물렀다는 의심이 든다.

8월 22일 <한-일 ‘경제 갈등’ 수위 높아지고 장기화... 추가 보복 가능성> 기사에서는 지소미아 종료와 한일 갈등 심화로 인한 악영향을 “경제 영역 전반에서 불확실성과 리스크 요인이 커지게 됐다”고 표현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국의 명분을 확인하고 일본의 책임을 따지는 기사들에 비해 한일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전달하는 기사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족했다.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대안이나 해법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7월 1일 사설 <일본, ‘졸렬한’ 무역보복 조처 당장 철회하라>에서는 “다각도로 후속 대책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언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8월 22일 <일 대화 거부·모욕적 반응에 ‘지소미아 종료’ 정공법 택해> 기사에서도 정부 관계자가 “지소미아가 없어도 한반도 안보에는 우려할 만한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 사실을 그대로 전할 뿐, 외교적 후폭풍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이루어 지지 않았다. 8월 22일 사설 <한-일 정보협정 종료, 아베 정부가 자초했다>에서도 “정부는 이번 결정을 미리 미국에 통보하는 등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고 한다. 이런 점에 비춰 미국도 이번 결정이 일본의 부당한 무역 보복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란 점을 이해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적고 있다. 정부 관계자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며 향후 전개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독자들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합리적 전망과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보도이다.

Ⅵ.논의 및 결론

지금까지 한일 갈등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한 프레임 분석과 텍스트 분석 결과를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결론을 대신하여 연구문제를 중심으로 분석 결과를 정리하고 이들이 갖는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연구문제1에 따라 프레임 분석을 해본 결과, 한일 갈등을 전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는 발생 사건을 중심으로 갈등을 단순 중계하는 피상적 보도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보도 가운데 스트레이트 기사의 비중(62.2%)이 지나치게 높고 분석/해설 기사의 비중(20.1%)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탐사기획 보도 (2.4%)는 거의 없었다. 또한 내용적 차원에서는 갈등(37.6%)과 결과(34.3%)를 단순 전하는 보도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심층성 차원에서도 단순히 발생한 결과를 전달하는 보도(55.6%)가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대안 제시(6.3%), 원인 분석(9.6%), 전망/예측(14.1%)을 담은 기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러한 경향성은 시간이 지나고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종료 국면을 거치며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될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주제중심적 프레임의 보도가 비교적 많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화중심적 프레임의 보도가 주제중심적 프레임의 보도보다 조금 더 많았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다만 미리 예고되어 있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도에서는 주제중심적 프레임이 훨씬 많았음에도 이후 전개된 수출 규제 조치와 지소미아 관련 보도에서 일화중심적 보도가 급격히 늘어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종료가 한일 관계에서 더 중대한 분기점이며 판단의 어려움이 큰 사안임을 감안하면 주제중심적 프레임의 보도가 더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제중심적 프레임의 기사들이 많았음에도 프레임 심층성에 대한 분석에서는 단순 결과 보도 프레임의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점을 감안할 때, 주제중심적 프레임 기사들이 갖는 한계도 추정해볼 수 있다.

이 같은 분석 결과들은 맥락적 지식을 전달하거나 심층적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보도가 많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일 관계는 고립된 개별 사건이나 단일 국면만 놓고 논의될 수 없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사건들과 연관지어 원인과 책임을 따져야 하는 이슈다. 동시에 경제와 안보 등 여러 측면에서 긴밀히 상호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대와 궁극적으로 화해와 선린을 도모해야 하는 난제이기도 하다. 언론은 식민의 고통을 환기시켜 역사적 진실이 망각되거나 은폐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분출되는 민족주의적 에너지가 과잉되지 않고 이성과 현실의 기획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모순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발생한 개별 사건을 단순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중심의 보도로는 언론 앞에 놓인 이중의 과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한 보도는 역사적 맥락과 단절되거나 민족주의적 열정의 과잉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해 본다면, 한일 갈등 국면에서 언론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 공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에 부족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언론은 분석과 해설을 통해 시민들의 토론과 심의를 유도해야 할 국면에서 오히려 단순 정보 전달에만 치중하며 언론의 책임을 소홀히 했다.

이어서 연구문제2에 따라 텍스트 분석을 한 결과, 조선일보는 이항대립적 의미작용을 통해 한국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고,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일 갈등을 정권 공격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징 전략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겨레는 한국과 일본 간 대결 구도를 부각시키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견지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조선일보가 한국 정부의 책임을 부각시켰고 한겨레는 일본의 책임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던 프레임 분석 결과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정파적 보도 행태가 한일 관계 관련 보도에서도 드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언론은 독재 정권의 일방적인 통제로부터 벗어나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정파와 유착 또는 공생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언론의 정치적 편향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며 서구 언론에서도 정파성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정파성이 문제로 지적되는 이유는 정확하고 종합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우호적 정파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슈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여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한국 언론의 정파적 보도 행태가 국내 정치 이슈에만 한정되어 이루어진다거나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여 이념과 관계없이 대체로 여론이 하나로 모이는 대일 관계 관련 보도에서는 언론의 정파성이 드러나지 않고 획일적인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에 경도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본 연구에서는 일부 언론이 한일 관계 보도에서도 강한 정파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진보개혁 성향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보수 성향의 조선일보는 한일 관계 보도에서도 현안의 본질과 관계없이 문재인 정부 비판에 초점을 맞추는 행태를 보였다. 7월 3일 <세계는 기술전쟁, 日은 기술 보복, 한국은 ‘불 꺼진 연구소’> 기사는 일본의 경제 보복을 다루다 갑작스럽게 정부 정책 비판으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의 주52시간제 정책을 언급하며 “정부가 기술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논리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 발표 이후 명확한 팩트나 근거 없이 청와대가 책임을 미루거나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지소미아 종료 발표 이후에는 정부가 한미 동맹 균열과 안보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관련 조선일보의 보도에서 일본 책임 프레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반면 한국 책임 프레임은 다른 매체에 비해 매우 높게 나오는 이유는 이 같은 정파적 보도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국 정권과 정파적으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 갈등을 일본보다 한국 정권의 책임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진보 성향의 한겨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비교적 상세히 전달하고 일본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에 집중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의 사법농단으로 강제징용 판결이 5년이나 지연되었다는 사실도 조선일보에 비해 더 자세히 전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전략에 대한 비판이나 한국 경제와 외교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분석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한겨레의 이 같은 보도에 대한 평가는 보수 성향 정권에서 한일 갈등이 빚어졌을 때의 보도와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한일 관계를 다루는 보도가 심각한 정파성을 띠고 있다면 심층적 프레임에 해당하는 문제 정의, 원인 분석, 전망/예측, 대안 제시 기사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환영하기도 어려워진다. 심층적 정보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편향과 왜곡으로 인해 오염되고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한일 갈등을 다룬 언론 보도를 분석하여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맥락에 대한 분석과 해설이 거세된 피상적인 단순 정보 전달과 정권에 대한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를 보도하는 정파적 양태다. 이러한 보도는 한일 갈등의 해소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언론의 신뢰 회복에도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언론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위기 상황에서 대체 불가능한 효능을 제공하지 못하고 국가적 비상 상황인 한일 갈등마저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는 양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언론의 신뢰 회복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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