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이 <메멘토(Memento, 2000)>에서 다룬 기억상실로 인한 ‘시간의 단절’,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의 상대성 이론에 기초한 ‘시간지연’은 <인셉션(Inception, 2010)>의 소재인 ‘꿈속 꿈에서의 시공간’과 함께 ‘시간’이라는 단어로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이들 작품 중 <인셉션>은 액자구조 속 비선형적 플롯들의 시간진행 속도를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가히 시간성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인셉션>에 대한 연구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는데, 먼저 ‘공간적’ 관점에서, 구조주의적 분석을 시도한 연구[1]와 과거 특정 미술이 추구한 공간과 <인셉션> 공간의 유사성을 논한 연구[2]가 있다. 다음으로 꿈과 현실의 ‘재인(reconnaissance)적’ 관점에서, 분열된 주체로부터 극복되는 주인공을 다룬 연구[3], 그리고 들뢰즈(G. Deleuze)의 꿈-이미지(image-rêve)를 다루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궁극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연구[4]가 있다. 끝으로 ‘음악적’ 관점에서, 영화에 쓰인 노래의 기호학적 쓰임새와 양상을 분석한 연구[5]와 음악이 다층적 공간구조 속에서 “영화적 세계를 구축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연구[6]가 있다.
이와 같이 <인셉션>에서 다루어진 주요 연구대상은 ‘공간’, ‘재인’, ‘음악’으로 나뉠 수 있으며, 본 연구가 추구하는 선행연구와의 차별성은 이 세 가지를 잇는 ‘시간’이다. 공간은 물리적으로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재인은 과거라는 시간을 전제로 하는 기억 활동이다. 결국 시간 예술인 음악은 ‘공간’에서 울려 퍼지며, 음들의 선후관계에 의한 ‘재인’을 동반한다. <인셉션>에서 음악은 꿈속 공간들의 통로가 되는 동시에 시간속도가 서로 다른 공간 사이에서 시간성의 문제를 낳는다. 본 연구는 이 음악의 시간성을 철학적 개념을 통해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접근은 <인셉션>의 공간 이 꿈, 곧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음악적 관점에서의 선행연구들은 음악의 외시와 역할을 논할 뿐 시간성의 문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본 연구가 철학적 접근을 위해 방법론으로 택하고 있는 것은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 1859∼1941)의 시간개념이며,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1896)의 도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철학에서 시간은 지속(durée)이자 진화(évolution)하는 질적인 것으로서, 현재는 지각(=이미 기억)을 통한 과거와의 공존이다. 이러한 베르그손의 입장은 앞으로 다루게 될 <인셉션>의 음악 빠르기를 논하는 데 유효할 것이다.
<인셉션>에서 등장하는 음악 중 논의될 음악은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노래의 《난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의 원곡 버전과 이로부터 빠르기를 늦춘(원곡을 늘인) 버전, 그리고 그 변화된 빠르기에 맞춰 재편곡된 버전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곡에서 빠르기를 늦추게 되면 재편곡 버전과 유사도가 높다. 회자되는 두 버전의 현상학적 유사성을 넘어, 어느 연구도 시도하지 않은 그 시간성의 철학적 사유는 본 연구만이 가진 큰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실제적 분석
<인셉션>에서 영화제목은 꿈기계를 통해 표적의 무의식(꿈) 속에 침투하여 의도된 ‘생각’을 심는 것을 의미한다. 그 생각을 단단히 심으려면 무의식에 깊게 들어가야만 하는데, 영화는 이를 위한 장치로서 꿈속 꿈이라는 설정을 가져온다. 다시 말해,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는 것을 반복하여 무의식의 다층구조를 그린다[그림 1]. 이는 현실과 네 번의 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꿈의 공간은 도심, 호텔, 설산(雪山), 그리고 꿈의 최하위층을 일컫는 림보(limbo)이다.
그림 1. <인셉션>의 꿈 층위 (감독 자필 그래프)[7]
제한된 시간 안에 ‘인셉션’을 행하고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이전 꿈들로부터 ‘킥(kick)’을 통해 상위 꿈으로, 현실로 옮겨가야 한다. 대사에서 킥은 “떨어지는 느낌(feeling of falling)”, 혹은 “충격(jolt)”으로 꿈에서 깰 수 있는 수단이다. 킥이 일어나야 할 시점은 최상위 꿈에서 킥을 일으키기 전에 하위 각 꿈들에 전달되어야 하며, 이는 음악신호로 동기화(synchronize)된다. 즉, 음악이 들리면 킥이 임박했다는 지표(index)기호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기호학자 리슈카(J. J. Liszka)는 지표기호를 인접성에 의한 사물의 재현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인접성의 종류에 “가리키는 deictic(혹은 지시하는referential)”것을 포함시키고 있다[8]. 대표적인 음악의 예로서, 웨스트민스터 타종(Westminster Chimes)의 수업시간 마침 음악을 들 수 있을 것이다[9]. <인셉션>에서 지표 기호는 두 가지가 관찰되며, 하나는 앞서 언급한 음악 신호로 사용되는 《Non, je ne regrette rien》, 다른 하나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물건인 토템(totem)이 그것이다. 전자는 각 층위의 꿈의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꿈으로부터 현실로 소환하는 매개가 되지만, 후자는 영화의 말미에 꿈과 현실의 기준이 되는 상태를 끝까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식별불가능성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음악신호 《Non, je ne regrette rien》은 꿈을 꾸고 있는 자에게 직접 들려주게 되며[그림 2], 꿈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 꿈속 공간에서 듣게 된다. 각 꿈의 단계에서 킥을 동기화하기 위해서는 음악신호 전달자 한 사람(A단계에서 꿈꾸고 있는 자 본인)이 남아 다음 B단계의 꿈을 꾸는 사람(A단계에서 꿈을 공유한 자 중 한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 다시 말해, 차례로 각 사람의 꿈을 표적과 함께 공유하여 ‘인셉션’을 행한 후 이전 단계로부터 음악신호가 포착되면 킥을 통해 다시 역순의 꿈들로 돌아와 최종적으로 현실에서 눈을 뜨는 구조이다.
그림 2. 1단계 꿈에서 음악신호 전달자인 팀원 유서프(Yusuf)와 2단계 꿈을 꾸고 있는 팀원 아서(arthur), warner bros. (2010)
여기서 각 단계 꿈의 공간적 시간은 설산(3단계 꿈)에서 주인공 코브(Cobb)와 꿈 설계자 아리아드네(Ariadne)가 나누는 대사, “Cobb : Yusuf's ten seconds for the jump, which gives Arthur three minutes, which gives us about...(유서프[1단계]의 10초가 아서[2단계]에게는 3분이 되고, 우리[3단계]에게는...) Ariadne : Sixty minutes.(1시간이요.)”처럼 서로 동일하지 않다. 이는 ‘인셉션’ 임무 이전 코브의 또 다른 대사, “In a dream, your mind functions more quickly, therefore time seems to feel more slow.(꿈에서 정신이 더 빨리 활동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느리게 느껴지는 거야.)”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처럼 상이한 공간적 시간 설정 아래 영화는 음악신호 《Non, je ne regrette rien》을 변형한다. New York Times에 실린 <인셉션> 작곡가 한스 짐머(Hans Zimmer)의 다음 인터뷰 내용은 그가 음악의 빠르기, 곧 템포를 변형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 쓰인 음악은 에디트 피아프 트랙의 템포를 줄이고 늘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1/2, 1/3 시간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어느 시간이든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저는 다른 단계의 시간으로 떨어뜨릴 수(drop) 있었습니다[10].”
음악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악이라면 박자가 유지되는 한, 시간을 균등 분할(마디)하여 음을 배열(선율)하게 된다. 이때 분할된 시간이 인지적 임계점 이상으로 늘어나거나 줄어들게 되면 음과 차순 음의 거리가 변동되어 리듬이 달라진다. 위의 작곡가 언급대로 <인셉션>에 등장하는 《Non, je ne regrette rien》 은 위의 표 1과 같이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표 1. 《Non, je ne regrette rien》의 타입
종합하자면, 음악신호로 A단계에서 들을 때 OM, B 단계의 꿈에서는 코브의 말처럼 시간이 더 느리게 느껴지므로 템포를 늦춘 DM이 사용된다. B단계에서 DM과 같이 서사공간에서 들리는 디제시스(diegesis)적 음악이 아닌, 삽입음악을 필요로 하는 경우 영화는 브라스를 중심으로 재편곡된 MM을 택한다. <인셉션>이 개봉되었을 당시, MM이 OM으로부터 느려진 DM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지했던 바이다. 본 연구는 회자됐던 음원 단순비교를 넘어, 소노그램(sonogram) 분석을 통해 보다 학술적인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위 [그림 3]은 OM의 도입부 악보이다. 이 곡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로 이루어진 리듬으로서, 한 마디 안에 4개의 반복적 리듬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시간에 따른 소리의 주파수별 분포를 보여주는 소노그램으로 나타내면 [그림 4]와 같다.
그림 3. 《Non, je ne regrette rien》 악보[11]
그림 4. OM의 소노그램 분석(조건: 11seconds, 4096 FFT Size)
소노그램에서 가로축은 시간(11초 동안 측정)이며, 세로축은 가청주파수 대역(20∼20,000Hz)이다. 이는 시간진행에 따른 소리의 흔적을 시각정보로 제공한다. 소노그램에 보이는 뚜렷한 세로 줄 두 개(줄 사이가 먼 것)는 OM의 특징적 리듬인 ♩♪을 나타내며, 연속적인 흔적은 이 리듬이 [그림 3]의 악보와 같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그림 5]는 BPM 90의 OM을 BPM 28까지 떨어뜨려 음악의 빠르기를 늦춘 DM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세로 줄 두 개의 뚜렷한 흔적은 관찰되며, 가로축에서 줄 사이의 시간차는 OM의 분석보다 훨씬 벌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LP 레코드판의 회전을 늦춰 듣는 상황과 같다.
그림 5. DM의 소노그램 분석(동일 조건)
[그림 6]은 DM을 골격으로 작곡가가 브라스 악기를 위주로 재편곡한 MM의 분석이다. 악기의 음색 때문에 주파수의 밀도가 [그림 5]와 다르게 나타나지만, 세로 줄의 흔적과 간격은 유사도가 높다. 우리는 OM의 ♩♪ 리듬[그림 3]이 아래 [그림 7]에서 MM의 ♩# ♩로 확장되어 낮은 음역대 브라스(Tiefes Blech)가 그 리듬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6. MM의 소노그램 분석(동일 조건)
그림 7. MM의 악보[12]
결과적으로, 빠르기를 늦춘 비정형의 DM으로부터 재편곡을 통한 정형화 작업은 디제시스의 음악신호를 밑바탕으로 비디제시스 음악 MM을 탄생시켰다. 이 MM은 사운드트랙에서 ‘Half Remembered Dream’ 으로 명명되어 영화의 오프닝에 첫 등장한다. <인셉션> 에서 꿈의 다층구조는 디제시스 측면에서 음악을 늘어뜨리고, 비디제시스 측면에서 디제시스의 이 음악을 투영시킨다. 다시 말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속도가 느린 음악을 듣지만, 영화 밖 관객들은 정상 속도의 삽입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시간성에 대한 문제는 본 연구가 베르그손의 시간개념과 연결해야 하는 이유이다.
Ⅲ. 음악의 시간성에 대한 베르그손적 함의
베르그손의 시간개념을 다루기 전에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현상학자 후설(Edmund Husserl, 1859∼ 1938)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시간의식(Zur Phänomeno-logie des inneren Zeitbewußtseins, 1928)에서 ‘시간객체’의 예로 지속하고 있는 음을 들고 있는데, 다음 글은 울려 퍼지고 있는 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의식되는지 언급하고 있다.
“동일한 지속은 현실적으로 구축되고 있는 지금의 지속이며, 그런 다음 경과된 과거의 지속이고, 여전히 의식되거나 혹은 회상 속에서 마치 새롭게 산출된 지속이다[13].”
음악의 선율에서 변화하는 음들의 계기(succession)적 출현이야말로 시간객체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지만, 후설은 ‘동일한’ 음-지속에도 주목한다. [그림 8]처럼 음-지속은 ‘지금’이라는 의식된 어떤 국면 아래, 뒤로 밀려난 연속된 국면들이 ‘과거지향(Retention)’ 속 여전히 우리가 견지하는 방식으로 주어져 있으며[14], 이는 후설의 도식에서 수평적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음-지속의 시간시점들은 점점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가며, 후설의 표현으로 “공허함(Leere) 속으로 가라 앉아버린다”[15]. 이는 곧 도식의 수직적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림 8. 후설의 시간 도식[16]
이처럼 과거가 현재의 계기 속 침전이라는 후설의 입장은 우리에게 친숙할 수 있겠지만, 이제부터 다룰 베르그손의 과거는 현재와의 공존이다.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에 따르면[17], [그림 9]에서 대상 O와 가장 가까운 원 A는 직접적 ‘지각’이며, 그 뒤로 밀착돼있는(포함관계가 아닌) 원 B, C, D는 개별 ‘기억’의 점증적 확장이다. 지각과 기억의 관계에 대해 베르그손은 정신적 에너지(L'Énergie spirituelle, 1919)에서도 “기억의 형성이 결코 지각의 형성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으며, 이 둘은 ‘동시간적(contemporaine)’이라고 말한다[18]. 베르그손의 시간개념에서 기억의 형식은 과거이지만 그 질료는 현재가 되어, 역설적으로 ‘현재의 기억’이 성립한다 [19]. 그가 말하는 과거(기억)는 앞서 언급한 후설의 입장처럼 단순히 침전되는 것이 아닌, 현재(지각)와 함께 능동적인 것이다.
그림 9. 베르그손의 지각과 기억 도식[17]
그렇다면 어떻게 능동적인가? 물질과 기억에서 베르그손은 ‘재인’을 “우리가 현재에서 과거를 다시 파악하는 구체적 행위”[20]로 정의하고 있는데, [그림 9]의 회로야말로 그가 “현재의 지각에 그것과 인접한 옛날에 주어진 상들을 결합하는 것”[20]이라고 말한 재인행위와 상응한다. 들뢰즈(G. Deleuze)가 Cinéma II의 베르그손에 관한 주석에서[21], 재인의 두 종류인 ‘자동적인(automatique) 재인’과 ‘주의 깊은(attentive) 재인’ 을 언급한 것도 전자에 감각-운동적 이미지를, 후자에 순수한 시지각적(음향적) 이미지를 대응시키기 위함이었다. 특히 주의 깊은 재인은 베르그손의 말처럼 “상기억(souvenir-image)의 규칙적인 개입을[원 B, C, D] 요청하는 재인으로 이행”[22]하는 것이며, 들뢰즈 또한 기억-이미지를 소환하고 있다. 들뢰즈에 의하면 기억이미지는 두 재인에 모두 개입하는데, 전자에 “우발적, 부차적으로만”, 후자와는 “본질적으로” 연관된다[23].
한편, [그림 9]에서 대상 O 뒤에 점선으로 표시된 원 B´, C´, D´는 ‘주의’의 정도에 따라 확장된 원 B, C, D 의 반사로서, 대상에 주어진 잠재적인 것의 심층들이다. 이 반사의 영역은 즉각적 지각이 아니므로 원 A´는 따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적 실존은 시간 속에 펼쳐짐에 따라 잠재적 실존, 거울 속의 이미지를 동반하게 된다”[24]는 베르그손의 언급은 이제 우리로 하여금 <인셉션>의 음악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앞서 우리는 템포를 늦춘 DM을 골격으로 재편곡한 MM을 다루었다. [그림 9]의 도식에서 ‘현실적 실존’에 해당하는 실선의 영역을 MM으로 상정한다면, ‘잠재적 실존’의 점선 영역에 DM을 위치시킬 수 있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적 순간인 원 A와 리듬적 경과의 층위인 원 B, C, D...는 상호 침투 속에 총체 MM을 이루어 현실태로 나타난다. 한편, 반사된 원 B´, C´, D´는 리듬적 경과의 거울 속 이미지로서, 음악적 대상 O가 갖는 리듬 ♩#♩의 잠재태이다. 즉, MM의 리듬은 유사도 높은 리듬골격의 DM의 그것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로써 MM은 잠재태 DM을 거울로 하는 현실태가 된다.
[그림 10]은 차례로 킥을 통해 4단계부터 1단계 꿈까지 돌아오는 영화 말미의 시퀀스를 아리아드네를 중심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시퀀스는 브라스를 중심으로 영화적 분위기의 긴박감을 더하는 두 종류의 비디제시스 음악을 갖는다. 우선, 3단계 꿈으로부터 깨는 2단계부터 MM이 사용되며, 이 음악은 2단계의 킥을 통해 1단계에 이르는 순간 멈춘다. MM의 등장 초기에 디제시스의 DM(가사 ‘Non’을 늘인 부분)도 잠시 동반되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킥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음악신호이다. 1단계의 아서에게 들려주는 음악신호 OM은 시간흐름이 다른 2단계에서 DM의 형태로 들린다. 우리가 앞서 논한 현실태와 잠재태의 관점에서 MM과 DM을 살펴보자면, 결과적으로 MM은 삽입된 영화음악으로 들리는 현 실태와 영화적 실제의 음악신호 DM을 드리운 잠재태를 함께 갖는다. 이를 증명하듯이 음악신호뿐인 DM은 곧 사라지고, 영화음악인 동시에 음악신호가 내재된 MM은 아리아드네가 눈을 뜰 때까지 지속된다.
그림 10. 킥과 이전 꿈으로부터의 깸
한편, 시퀀스의 4단계와 3단계에서는 또 한 종류의 비디제시스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MM과 유사한 브라스 중심의 음악이면서 템포가 약간 더 느린 MM´이 다. 이 단계들은 2단계보다 하위 꿈이기 때문에 더 느려진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여 음악의 템포도 변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MM´의 리듬분할 비율은 MM의 그것과 같다는 점에서, MM의 잠재태 DM은 MM´의 잠재태 DM´으로 거듭난다. 여기서 DM´는 하위 꿈에서 들리는 음악신호이며, MM´ 역시 MM의 경우처럼 DM´를 골격으로 재편곡한 버전이다. 정리하자면, 이 시퀀스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비디제시스 음악은 삽입된 영화음악인 동시에 스토리 내 음악신호가 되는 셈이다. 외시된 비디제시스 음악은 관객들에게 삽입음악으로 들리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는 디제시스의 음악신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셉션>에서 꿈은 서사의 공간으로서 시간의 속도를 좌우하는 원인이다. 베르그손은 꿈의 속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꿈은 축약하여 바라본다. 꿈은 결국 기억이 작동하는 대로 작동한다. 깨어 있을 때 우리가 시감각을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시각적 기억은 그 감각 위에 정확히 놓여야 한다. 따라서 기억은 감각의 전개를 따르고 그것과 동일한 시간을 점유한다. (중략) 그러나 꿈속에서는 시감각을 해석하는 기억이 자신의 자유를 되찾는다. [꿈속에서] 시감각이 유동적이라는 사실은 기억이 거기에 접합되지 않아도 되도록 해준다. 따라서 해석하는 기억의 리듬은 더 이상 실재의 리듬을 채택할 필요가 없다[25].”
위의 글에서 꿈은 기억과 감각이 분리된, 기억이 감각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상황이다. 그는 정신의 두 극단을 다루면서 ‘꿈’과 ‘행동’을 언급하고 있는데 [26], 전자는 [그림 11]의 단면 AB에, 후자는 점 S에 해당한다.
그림 11. 베르그손의 역원뿔 도식[27]
베르그손에 의하면[27][28], 움직이는 평면(우주) 속 ‘나의 현재 표상’이 되는 점 S는 신체의 이미지로서 감각-운동의 상태(행동)이며, 그 반대편에 있는 단면 AB는 감각과 전혀 섞이지 않은 잠재적인 무의식적 기억의 상태(꿈, 순수기억)이다[29]. 또한, 꼭짓점과 단면 AB 사이의 무수한 절단면(의식, 개별기억)들은 ‘주의’의 응집 정도에 따라 넓이를 달리하며[30], 상하이동을 통해 현재 상태에 소환된다[31]. 이처럼 두 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는 우리의 정신은 앞서 살펴본 베르그손의 [그림 9] 도식과 같이 [그림 11]의 도식에서도 변함없는 현재와 과거의 공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셉션>의 꿈속에서 듣는 음악신호, 즉 원곡을 늘인 DM은 [그림 11]의 도식에서 어디쯤 위치하게 되는가? 베르그손은 꿈에서 청각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꿈속에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지각된 실제 소음이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꿈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꿈에 소리의 질료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꿈은 소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32].”
신경생리학적 그의 언급을 그대로 영화에 적용하기에는 어느 정도 간극이 존재하겠지만, 최소한 <인셉션>의 꿈속에서 등장인물이 듣는 음악신호는 수면 중 실제 지각된 소리이다. 그리고 꿈이라는 무의식에서 ‘실재의 리듬’을 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상황은 음악의 리듬을 늘어뜨려 템포를 변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DM의 위치는 일단 감각이 섞인(지각된) 영역으로서 무의식의 단면 AB로부터 벗어나 있으나, 꿈에서 듣는 소리이기에 단면 AB에 바로 인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의의 응집을 많이 필요로 하는 확장된 면에 위치하는 만큼 음악 DM의 단면 면적은 단면 AB와 거의 가깝게 넓다. 즉, 음악 DM은 점 S에서 감각된 원곡에 비해 더 깊은 주의가 요구될 만큼 그 성질이 변화된 것이다.
여기서 본 연구는 원래의 음악 OM과 템포를 늦춘 DM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베르그손의 역원뿔 도식을 응용해 보고자 한다. 먼저, [그림 11]의 점 S를 ‘나’가 아닌 ‘음악’ OM으로 가정해보자. 치환된 꼭짓점은 감각-운동 장치에 의해 실재의 리듬으로 재생되는 OM이며, 반대편의 단면 AB는 OM의 템포를 무수히 늦춘 것에 해당한다. 단면 AB로부터 꼭짓점으로 이동할수록 템포는 추동(推動)되어 현실의 재생 속도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DM은 단면 AB와 꼭짓점 사이 어느 절단면의 위치에 놓일 것이며, 이때 단면의 넓이는 ‘리듬적 잉여’ 로서 면적이 넓어질수록 템포가 느려진다. 템포의 변화는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DM은 OM을 모체로 함에도 불구하고 템포에 따른 음색, 음높이 등 질적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베르그손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에서 한 음이 장단을 깨는 경우를 예로 들어 ‘질적 변화’를 얘기하고 있다. 이는 전체로부터 구별되는 별개의 것이 아닌 지속 안에서 “동일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변화하는(à la fois identique et changeant)” 것이다[33]. 그러면서 그는 “시간을 공간에 투사하고, 지속을 연장으로 표현하며, 계기는 (중략) 연속적인 선이나 사슬의 형태”로 만드는 우리의 행태를 지적한다[34]. 결국 앞 단락에서 독자의 이해를 위해 제시됐던 역원뿔 도식의 응용은 역원뿔을 압축하여 응축된 2차원의 형태로 다시 제시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OM과 DM의 관계는 베르그손의 표현으로, 병치되지 않고 서로 스며든다[34]. 이러한 관점에서 <인셉션>의 꿈속 음악신호로 듣는 DM은 《Non, je ne regrette rien》 OM의 지속 안에 있으며,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에서 아래의 글처럼 지속의 유일한 리듬을 인정하지 않기에 이 둘은 동일한 음악이 될 수 있는 동시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지속의 유일한 리듬은 없다. 많은 다양한 리듬들을 상상할 수 있으며, 그것들이 더 늦건 더 빠르건 의식의 긴장과 이완의 정도를 나타내며, 그것에 의해 존재의 연쇄에서의 그들 각각의 위치를 확정할 것이다 [35].”
Ⅳ. 결론
본 연구는 <인셉션>에서 꿈의 층위를 연결하는 《Non, je ne regrette rien》에 대하여 실제적 분석을 통해 세 가지 타입의 버전을 시각적으로 확인하였다. 원곡 버전과 템포를 늦춘 버전은 영화에서 디제시스적으로, 느려진 템포를 골격으로 재편곡된 버전은 비디제시스적으로 활용된다. <인셉션>의 다층구조는 꿈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각각의 꿈들은 진행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본 연구의 핵심은 영화에 쓰인 이들 음악의 시간성에 대해 베르그손의 시간개념을 적용하여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베르그손의 지각과 기억 도식에서 이들은 동시간적이며, 이렇게 구성된 현실적 실존의 영역은 대상의 뒤편에 잠재적 실존으로 반사된다. <인셉션>에서 브라스로 재편곡된 버전은 원곡을 늘인 버전을 리듬적 골격으로 했다는 점에서 재편곡 버전을 현실태에, 템포를 늦춘 버전을 잠재태에 위치시킬 수 있다. 꿈속에서 들리는 음악신호인 템포를 늦춘 버전은, 하위 꿈에서 상위 꿈으로 되돌아오는 시퀀스에서 브라스의 재편곡 버전으로 치환된다. 엄밀히 말해, 디제시스의 잠재태적 음악(템포를 늦춘 버전)이 내재하는 비디제시스의 현실태적 음악(재편곡 버전)은 영화음악과 음악신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베르그손의 역원뿔 도식은 우리의 정신이 감각-운동의 상태인 꼭짓점과 무의식적 기억의 상태인 확장된 극단의 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주의의 정도에 따라 넓이를 달리하는 의식, 개별기억의 절단면을 현재의 나, 즉 꼭짓점으로 불러오는 것을 나타낸다. <인셉션>에서 원곡을 늘인 버전은 수면 상태에서 지각된 꿈속에서 듣는 소리로서, 역원뿔 도식에서 꿈이 속한 극단의 면에, 그러나 지각된 것으로서 바로 인접한 절단면에 위치한다. 이 역원뿔 도식은 꼭짓점을 본래 템포의 원곡으로 치환하여 반대의 극단을 향할수록 점차 템포가 느려지는 질적 변화의 동일체로 응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베르그손의 개념을 엄격히 적용하면 응용된 도식은 역원뿔을 압축한 2차원의 형태로 제시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현재와 과거를 공존케 하는 베르그손의 시간개념을 통해 <인셉션>의 재편곡 버전(비디제시스)과 템포를 늦춘 버전(디제시스)이 반사적 관계라는 것을, 거울 속 이미지이기에 때로는 대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템포를 늦춘 버전과 원곡 버전(디제시스)은 질적 변화를 갖는 지속하는 동일체의 관계임을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이 세 가지 버전의 외시된 음악의 이면에는 디제시스와 비디제시스의 경계를 허물며 음악의 시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있는 연결고리가 생기는 셈이다. 이처럼 <인셉션>에서 등장하는 음악의 시간성을 음악적 외시를 넘어 철학적 사유를 통해 탐구한 것은 본 연구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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