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은 특정한 환경과 상황을 컴퓨터로 만들고 사용자가 마치 실제 상황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 주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말한다[1]. VR영화는 가상현실 플랫폼에서 가상현실 디바이스(device)를 이용하여 감상하는 영화로 가상공간 안에 구현된 영화 속으로 들어가 영화가 가진 연출이나 내러티브 (narrative)를 따라가며 감상하는 영화를 의미한다[2]. VR영화 역시 기존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가지고 이를 위해 연출이 개입하고 내러티브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VR영화가 기존의 영화와 다른 점은 360도로 구현된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달리 프레임(frame)이 존재하지 않으며 관객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인스턴트 프레임(instant frame)[3]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VR영화가 갖는 인스턴트 프레임의 속성으로 인해 관객은 시선의 자유를 통해 자신이 가상공간 안에 직접 존재한다고 느끼는 원격현전 (텔레프레젠스:telepresence)[4]을 경험한다. VR영화가 제공하는 360도의 가상공간에 들어온 관객이 자유로운 시선의 움직임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연출자가 설계한 스토리텔링 (storytelling)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기존의 영화의 스토리텔링 전달과정과는 차별화된다. VR영화에서 관객은 360도의 가상현실이 주는 강력한 몰입감과 원격현전을 체험하고 때로는 가상현실 안에서의 상호작용(interactive)을 통해 스스로 스토리를 발전시킬 수 있다.
김진아감독의 VR단편다큐멘터리 <동두천>(Bloodless, 2017)은 1992년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한국여성 성노동자 윤금이씨에 관한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이다. 2017년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2017년 9월 베니스국제영화제 (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베스트 VR 스토리상(Best Virtual Reality story)을 수상했다. <동두천>은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등장하며 배우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흥미로운 시점(Point of view)의 혼용을 만들고 이를 통해 VR영화의 특징인 강렬한 몰입감과 원격현전을 경험하게 한다. 시점의 혼용과 함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 성노동자의 방 안 풍경에서 전개되는 시야각을 벗어난 프레임의 확장과 이차프레임의 활용이다. 본 연구는 <동두천>에서 시점의 혼용을 통해 몰입감을 만드는 스토리텔링 방식과 시야각의 경계 너머까지 활용하는 프레임의 확장 및 이차프레임의 적극적 활용방법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영상문법이 <동두천>의 스토리텔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Ⅱ. 본론
1. 연구방법 및 내용
1.1 선행연구 및 연구방향
VR영화에서의 시점과 프레임에 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기에 앞서 시점을 분류하는 방식과 VR영화의 360도 환경에 대해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시점을 분류하는 방식은 주로 소설을 통해 발전해왔다. F. K. 스탄젤(Franz K. Stanzel)은 주석적(註釋的) 서술, 1인칭 서술, 인물시각적 서술로 분류하고 있으며[4], 브룩스와 워렌(Cleanth Brooks, Robert Penn Warren)은 1인칭 서술, 1인칭 관찰자 서술, 작가관찰자 서술, 전지적 작가 서술로 나누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브룩스와 워렌이 <소설의 이해> (Understanding Fiction)에서 제시한 4가지 분류 방법이다. 1인칭 시점은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을 말하는데, '나'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이며 또한 우연한 목격자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주변적인 참가자이기도 하다. 전자를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하고, 후자를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 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first-person narration)은 작품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로, 인물의 초점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한다. 다음으로 VR이 구현하는 360도의 공간이 실제 관객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살펴보면, VR영화에서 관객은 구체(sphere)의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다고 느끼며, 이것은 전후, 좌우, 바닥과 공간을 모두 하나의 화면으로 채워주는 미디어 케이브(Media cave)환경과 유사성을 가진다[5]. 그러나 관객이 미디어 케이브와 같은 360도의 환경에 놓인다고 해도 사람의 눈이 갖는 시야각의 제한을 받게 된다. 따라서 VR영화의 관객은 영화를 관람할 때 눈과 고개를 돌려 자신이 놓인 공간과 상황을 인식하게 되며 어떤 순서와 과정을 거쳐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객에게 시선의 자유가 주어진다. 관객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시선을 이동하여 공간을 보는 과정에서 즉흥적이고 불분명한 경계를 갖는 인스턴트 프레임이 형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 정보가 축적되고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는 이를 설계한 연출 의도가 일정 부분 개입된다.
① 선행연구
장효진, 장선희, 김인주(2018)는 VR영상 스토리텔링의 특성을 도출하며 첫 번째로 인스턴트 프레임을 통한 상호작용, 두 번째로 관객과 제작자의 의도가 서로 공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선형과 비선형의 스토리텔링, 세 번째로 공간의 스토리 배치에서의 시선의 디자인을 들고 있다. 그리고 VR영화에서 관객에게 주어진 시선의 자유는 그동안 기존 영화에서 제한되고 선택된 시선을 전달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이며 새롭게 영화문법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다. 전병원, 차민철(2018)은 VR영화의 특징과 스토리텔링의 변화로 첫 번째, 프레임과 쇼트·앵글 개념의 해체, 몽타주를 통한 의미화 작용 해체와 장면전환, 마지막으로 시점의 전환을 들고 있다. 그중 시점의 전환과 관련하여 ‘VR영화는 언제까지 관객을 유령 같은 존재로 떠돌게 할 것인가? 관객은 유령 같은 무존재감을 스스로 언제까지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자문하며 게임 등에서 유저(user)가 1인칭 시점으로 참여하다가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는 방식을 들어 VR 실사 영화에서도 AR, 홀로그램과의 결합을 통해 관람자가 VR영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을 제안한다[6]. 김태은(2018)은 VR영화의 구체 환경의 형태가 확장된 프레임이며 이 안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시각지표들의 상징적 작용‘들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동시에 기존 영화에서 사용되는 이차 프레임(frame within frame)의 성격을 가진다고 한다[7]. 그리고 이것을 스테거(T. Steger, 2007)를 인용하여 암묵적(implicit) 프레임이라고 부른다[8]. 기존 영화에서의 이차 프레임은 ’프레임 안의 프레임‘을 가리키며 창, 문, 거울 등 일반적으로 사각형의 형태를 갖는 오브제(objet)가 프레임 안에서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어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 다양한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하는데[9], VR영화에서 인스턴트 프레임, 암묵적 프레임이 형성되는 과정은 관객에게 주어지는 시선의 자유와 시야각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 관객은 VR이라는 360도 이루어진 공간에 1인칭 시점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무대 또는 스크린과 관객을 가르는 제4의 벽(the forth wall) 개념에서 차이를 보인다. 제4의 벽은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뜻한다.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인 드니디드로(Denis Diderot)가 주창해 사실주의 연극의 기반이 된 개념으로 이 벽을 사이에 둔 관객과 배우는 서로 간섭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10]. 그러나 VR영화의 관객은 프레임 바깥이 아닌 프레임 안 중심부에 위치하므로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과 동시에 화면 속 인물과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스웨이지 이펙트(Swayze effect)라고 한다[11]. 스웨이지 이펙트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Oculas story Studio)의 첫 인 하우스(in-house) VR영화 로스트(Lost, 2015)의 제작팀이다. <로스트>는 픽사(Pixar)의 푸른 우산(The Blue Umbrella, 2013)을 만든 사스치카 운셀드(Saschka Unseld)가 연출한 작품이다.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는 <로스트> 제작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관객이 VR의 가상환경에 들어가면 주변 환경을 관찰하는데 집중해서 배우의 연기나 행동에 주의를 덜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것은 VR영화가 기존 영화 등과 달리 제4의 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객은 VR영화를 볼 때 가까이 보이는 물체들을 관찰하면서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는데 이로 인해 초반의 이야기 전개를 따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로스트>의 경우는 관객이 가상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을 더 주기 위해 오프닝 씨퀀스(opening sequence)를 1분 더 늘려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대로 관객이 등장인물, 환경, 그리고 이야기와 연결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을 확인하고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지가 유령이 되어 여주인공과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빗대어 스웨이지 이펙트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극 중 캐릭터가 관객을 인지하고 냄새를 맡는 장면에서 관객이 영화에 더 호기심을 느끼게 되며, 이처럼 관객은 VR 영화에 있어서 영화 속 장면의 실체(an entity)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VR영화의 시점과 프레임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살펴본다. <난민>(The Displaced, 2015)에서는 사운드와 독립된 주체의 움직임을 통한 시점 유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제한적이지만 상호작용을 유도한다[12].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의 <로스트>의 제작진은 ’VR콘텐츠의 감상에서 시간은 선조적으로 흘러가지만, 관객인 스토리를 발견하는 방식은 선조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다. 이는 VR영화<인베이전>에서 서사적 선조성의 해체를 인식한 발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13]. VR애니메이션에서도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주요 장치는 외부 청각신호이며, 이것은 캐릭터의 시선의 이동과 함께 일어난다[14].
③ 연구방향
본 연구는 <동두천>에서 360의 VR환경을 통해 실제 동두천의 낮과 밤의 풍경으로 들어간 관객이 밤거리에서 한 여자를 만나서 시선이 마주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시점의 묘한 변화에 주목한다. 관객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동두천의 낮과 밤, 걸어가는 여자를 지켜보다가 여자가 정면으로 시선을 건네며 카메라를 향해 빠르게 다가올 때 마치 자신에게 그 여자가 들어오는 듯한 감정을 경험하며 순식간에 관찰자의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이것은 기존 영화에서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거나 매우 가까이 근접한 경우라 할지라도 제4의 벽의 존재로 인해 스크린과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가 있는 것과 달리 VR의 특성상 관객이 이미 360도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기에 발생하는 효과이다. 두 번째로 <동두천>의 마지막 장면인 여인숙의 방 안 장면에서 나타나는 프레임의 확장과 이중프레임에 관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기존 영화에서 각각의 프레임이 숏(shot) 단위로 편집해서 연결되는 것과 달리 VR영화에서는 360도로 이어진 실제와 흡사한 프레임 안에 관객이 들어와 있게 되고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인스턴트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인스턴트 프레임들은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의 의도에 따라 배치된 시각지표들에 의해 암묵적 프레임으로 구성되며 서사로 연결된다. <동두천> 역시 여인숙 방 안의 풍경 안에 놓인 시각적 기표들과 사운드에 의해 암묵적 프레임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암묵적 프레임의 연속성 안에서 다시 거울을 이용한 이차 프레임이 나타난다. 본 연구는 <동두천>에서 나타난 1인칭 시점의 혼용과 암묵적 프레임 안에 덧붙여진 이차 프레임의 활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본 연구를 위해 VR영화의 시점과 프레임, 기존영화의 이차프레임에 관한 선행연구와 더불어 <동두천>의 제작진을 별도로 인터뷰하여 연구방향과 기획의도의 상관관계를 통해 비교적 주관적이고 경계를 짓기 어려운 영화 안의 시점과 프레임의 해석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동두천>의 시점과 프레임의 활용방식이 기존 VR영화와 공통된 지점과 특이점을 나누어 살펴본다.
1.2 <동두천>에 관하여
① 개요
<동두천>을 만든 김진아 감독은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에서 출발하여 <두 번째 사랑>(2007)과 <파이널레시피>(2014)등의 상업장편 영화까지 다양한 영상분야에서 작업을 해왔다. <동두천>은 1992년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한국 여성 성노동자 윤금이씨에 관한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든 VR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한국 전쟁 이후부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의 쇠락한 주거지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낮의 황량한 철조망이 쳐진 풍경은 어느새 네온 불빛이 넘실대는 밤거리로 이어진다.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들과 불빛 사이로 한 여자가 흔들리듯 걷는 것이 보인다. 관객은 그 여자를 쫓으며 점점 더 어둡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어느 순간 그 여자가 관객의 정면에 서있고 관객을 향해-결국 카메라를 향해-그대로 걸어온다. 그리고 공간은 허름하고 좁은 여인숙 방으로 이어진다. 널려진 옷가지와 폭력의 흔적, 관객은 이곳이 거리를 걷던 여자의 방임을 알아 차린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방에서 갑자기 방바닥을 적시며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피는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음습한 방바닥을 메워간다. VR영화 특유의 현전감이 강하게 작동하는 가운데 관객의 시야각을 완전히 벗어난 곳에서 돌출적인 사운드가 들리고 관객이 적극적으로 몸을 돌려 볼 것을 유도한다. 그곳에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거나 무심히 지나친 거울이 있고, 거울에는 방안에서 보이지 않았던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한 여자의 몸이 보인다[15].
② 제작과정
본 연구와 관련하여 연구자가 직접 <동두천> 제작진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제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동두천>은 작품의 특성상 관객에게 그 장소에 직접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2D가 아닌 3D(Stereoscopic) VR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촬영은 벤타VR의 전우열촬영감독이 맡아 8대의 고프로 카메라로 촬영했으며 후반작업은 오토파노 비디오(Autopano Video)와 오토마노기가 (Autopano Giga), 누크(Nuke), 부분적으로 에프터 이펙트(After effects)를 사용했다. 현장녹음은 장규식 사우드디자이너가 맡았으며 360도 공간의 소리를 수음할 수 있는 엠비소닉(Ambisonics) 마이크로폰(microphone)을 사용했다. 총 상영시간은 타이틀(title)과 크레딧(credits)포함 11분40초이다.
<동두천>은 실제 고 윤금이씨가 일했던 크라운 클럽이 있던 거리부터 사건이 벌어졌던 셋방까지 동두천 기지촌의 공간을 영화 속에 담았다. 셋방 같은 경우 동두천 일대의 여인숙을 돌아다닌 뒤에 과거의 실제 살해 장소와 비슷한 크기와 느낌의 여인숙을 찾아서 미술 작업을 거쳤다. 촬영은 본 촬영 1회, 보충 촬영 1회로 총 2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본 촬영일에 동두천의 밤거리 풍경과 여인숙(피해여성의 방) 장면을 촬영했으나, 그날따라 부대의 훈련이 잡혀 클럽이 있는 거리가 한산하고 가게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아 적합한 분위기와 조도의 확보가 어려웠다. 이후 보충촬영을 통해 밤거리 장 면을 재촬영 하였으며 원래 기획의도 및 시나리오에 없던 낮의 동두천의 황량한 분위기의 거리 장면을 추가 촬영했다.
2. 장면구성 및 분석
2.1 장면구성
<동두천>의 첫 장면은 철조망이 쳐진 황량한 도로의 풍경이다. 앞서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의 <로스트>의 경우처럼 <동두천>의 아무 설명 없이 펼쳐지는 낯선 거리의 풍경은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장면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미군이 주둔한 대한민국의 동두천의 거리를 스스로 둘러보고 관찰할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그림 1. 첫 장면(낮)
동두천 거리의 낮의 풍경이 지나가고 나면 네온사인이 켜진 밤거리의 풍경이 펼쳐진다. 동두천의 밤은 예전보다는 많이 쇠락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미군들 대상의 클럽들이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요란한 불빛을 뽐내고 있다. 거리를 지나가는 미군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 2. 밤 장면
클럽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가 점점 사라지며 장면은 좀 더 어둡고 으슥한 골목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골목길 사이로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다른 길, 지친 듯 비틀거리는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관객의 시선은 그녀의 모습을 따라가고 장면이 전환되면 다시 그 여자의 모습을 찾는다. 처음으로 여자의 정면 모습이 보이고 바라보고 있는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그대로 똑바로 걸어와 내 안으로 들어오듯 카메라를 온통 메워버린다. 통상적인 VR의 현전감, 즉 내가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벗어나 영화 속 대상과 시선이 마주치고 스스로 영화 속의 실체라고 강렬하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영화 속 인물과 소통하지 못하고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스웨이지 이펙트를 어쩌면 다소 거칠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파쇄해버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 3. 여자의 시선(스틸)
실내의 풍경. 형광등이 켜진 좁은 방 안은 평범한 삶의 공간이 아님을 보여주듯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이 옷걸이와 벽에 걸린 거울 하나뿐, 텅 빈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깨진 술병과 널브러진 붉은 이불이 폭력이 휩쓸고 간 폐허처럼 놓여있다. 앞에서 관객을 관통하듯 지나간 여자의 모습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주인 없는 방 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불을 적시며 무언가 흐르기 시작한다. 붉은 피는 점점 이불을 흥건히 적시고 누런 장판이 깔린 바닥을 지나 흐른다.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피가 계속 나오는데 관객의 눈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고 관객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다시 살피면, 관객의 시야각을 벗어난 방 뒤쪽에 걸린 직사각형의 거울 안에 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미리 그 거울을 바라보고 있던 관객의 시선에는 나타난 것이겠지만, 많은 관객은 사운드의 지시에 따라 뒤를 돌아보게 되고 거울에 보이는 죽은 여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거울에 보이는 피 흘리며 죽어있는 여자는 우리가 앞서 동두천의 밤거리에서 만난 바로 그 여자이다[16].
2.2 의 시점과 프레임 분석
① 시점과 스웨이지 이펙트
VR영화에서 나타나는 스웨이지 이펙트와 관련하여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 샘(패트릭 스웨이지)은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먼저 죽음을 맞이하고 유령이 되어 아내 몰리(데미 무어)의 곁을 맴돈다. 그러나 몰리에게 다가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존재는 영매 오다 매 브라운(우피 골드버스) 뿐이다. VR영화에서 관객은 기존 영화가 갖는 제 4의 벽을 허물고 영화 속 360도 프레임 안에 자신의 현전을 느낀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극 중 인물에게 말을 걸 수도 개입할 수도 없는 ’유령‘같은 상태에 놓 인다. 전병원·차민철(2018)은 ’VR영화는 언제까지 관객을 유령과 같은 존재로 떠돌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의 <로스트>의 제작 경험은 관객이 VR영화에서 스웨이지 이펙트를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화 속 캐릭터가 관객을 인지하고 영화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 관객이 영화에 더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들에 따르면 관객은 영화 속 장면의 실체이다. <동두천>의 김진아 감독은 ‘VR기계를 쓰는 순간, 관객은 시선은 있지만, 몸은 없으며, 눈앞의 모든 것이 움직이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관객이) 굉장히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VR매체의 특성에 대해 ’관람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하게 만들 수 있고, 이야기가 직접적이고 신랄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17]. 김진아 감독이 말하는 VR이 갖는 체험적 성격과 관련해서 피터 도슨·리차드 레비·나타샤 라이온즈 (Peter Dawson, Richard Levy, Natasha Lyons, 2011) 역시 버츄얼 뮤지엄 캐나다(Virtual Museum of Canada)에서 있었던 이누이트(Inuit)에 관한 대화형 가상공간전시의 사례연구를 통해 인터랙티브 3D 세계(interactive 3-dimensional worlds)를 체험하는 것이 과거와의 연결감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18]. VR을 통해 구현된 세계에서 관객은 원격현전을 느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가상의 세계에 대해 연결된 것처럼 느끼고 직접적인 체험으로 받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VR영화를 관람할 때 상반되게 느껴지는 두 가지 측면, 스웨이지 이팩트와 실감나는 원격현전은 결국 VR영화의 특징인 제4의 벽 깨기(Breaking the forth wall)에서 비롯된 동전의 양면이다. 앞서 <로스트>의 예처럼 관객은 VR 360도 환경에 들어오면 우선 주위를 돌아보고 주변 환경을 인지하려고 한다. 제4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 360도 환경에 적응하고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된 관객은 자신의 몸을 느낄 수는 없지만 스스로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다고 느낀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 속 캐릭터가 말하고 움직이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순간, 관객은 존재하지만 개입할 수 있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변한다. 그러나 캐릭터가 관객을 영화 속 개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야 유령과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게 된다. 제4의 벽과 스웨이지 이팩트는 향후 VR영화 스토리텔링 개발과 연구에 있어서 지속적인 논의가 전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주제이다[19].
<동두천>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관객이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이 보고 있는 360도의 환경을 살펴보고 인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VR영화에 들어간 관객들은 낯선 공간에 놓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동두천> 역시 철조망이 쳐진 낯선 거리의 풍경과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검은 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미군의 모습 등을 둘러보며 동두천이라는 미국 주둔 도시가 가진 분위기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다. 낮의 조금은 한산하고 이질적인 거리의 모습이 지나가면 동두천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밤거리의 모습이 보인다. 미군 대상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팝(pop) 음악과 쇠락한 유흥가의 모습이 대비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며 어둡고 좁은 골목길로 무대가 옮겨진다. 그곳에서 관객들은 골목 사이로 지나가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장면이 바뀌면 여자가 비틀거리며 뒷모습으로 걷는 모습이 보인다. 어딘가 흐트러지고 상처 입은 모습이다. 그리고 좁은 골목에서 그 여자와 관객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그 여자는 망설임 없이 관객을 바라보며 걸어온다. 그리고 관객의 시야를 온통 덮어버린다. <로스트>의 사례에서 보듯이 관객은 VR영화 속 캐릭터가 관객을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할 때 스토리에 집중하게 되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 <동두천>의 관객은 1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낯선 도시를 탐방하던 중 불시에 한 여자와 만나게 되고 그 여자가 관객을 인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영화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제4의 벽을 허물고 자신의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을 맛본다. 앞서 밝혔듯이 VR영화 에서는 기존 무대연극이나 영화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관객은 때로는 자신이 VR영화 안에서 몸을 잃고 배회하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느끼기도 하고, 극 중 캐릭터가 자신을 인지하고 반응할 때는 스스로 영화의 한 개체로 존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김진아 감독의 말처럼 VR영화에 들어간 관객은 존재하되 몸은 없는 상태를 경험한다. 현실에서 몸이 없지만 존재하는 상태를 상상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통 죽어서 몸이 없이 영혼이 떠도는 상태, 즉 유령이라고 부른다. VR영화에서 관객이 처한 상태가 영화 속 세계에서 유령과 비슷하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스웨이지 이팩트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동두천>의 관객은 낯선 도시에 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 유령과 같은 상태로 떠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여자는 그 세계에서 몸을 가지고 있고, 실체가 있다. 그 여자가 관객을 인지하고 시선을 마주치며 다가오는 순간 몸이 없는, 매우 ’상처받기 쉬운’, ‘감정적으로 취약한’ 관객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제4의 벽마저 넘어 그녀가 관객이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위치, 즉 카메라의 위치에 파고들면 마치 그녀가 자신의 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낀다. <동두천>은 VR영화에서 관객이 자신을 유령과 같은 존재로 느끼는 상태, 스웨이지 이팩트의 극단까지 관객을 밀어붙인다. 관객이 서 있다고 가정되는 카메라의 자리까지 캐릭터가 침범해옴으로써 관객은 자신이 몸과 분리되어 그곳에 있다는 유리감(遊離感)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 순간 관객이 유지하고 있던 1인칭 관찰자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동두천>의 주인공은 영화 속에 존재하는 여자나 동두천이라는 공간이 아닌 몸이 부재한 상태로 영화 안에 들어가 한 여자와 접속하게 되는 관객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이어지는 방 장면이다. 동두천의 실제 여인숙의 한 밤을 빌려 미군 성폭력 피해자의 방을 재현한 방의 모습은 앞서 말했듯이 황량하다. 밤의 거리에서 자신이 몸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며 낯선 여자와 충돌한다음 이동한 방안의 풍경 속에서 관객이 경계를 풀기란 쉽지 않다. 특히 그 방 안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대신 이미 지나간 폭력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깨진 술병과 흐트러진 이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초라한 방. 여기서 관객이 1인칭 관찰자 시점인지, 전의 장면에 이어 1인칭 주인공 시점인지는 각각의 관객의 몰입도에 따라 차이를 보일 것이다. VR의 특징인 몰입감과 원격현전 역시 개인에 따라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듯이 동두천의 어두운 골목길에서 한 여자와 만나고 낯선 방 안으로 들어온 관객의 시점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제작팀은 이러한 시점의 전환에 관한 고민을 깊게 했다. <동두천>의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한 강지영은 인터뷰에서 <동두천>의 방 안 카메라 시점의 결정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화 기획 초반에는, 방에서의 관객의 체험 위주로 기획하였기에 관객이 실제 여자의 시점과 같이 누워있는 위치에서 방을 바라보는 실험적인 시점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영화의 앞부분에 아직 남아있는 동두천의 거리 모습 등을 추가하면서 관객이 거리와 방을 모두 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서 관람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변경’하였다는 것이다. 가상현실 환경에서 <동두천>과 같이 시점의 혼용을 한 것은 매우 도전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김진아감독 역시 201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윤금이 살해사건, 1992)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영화매체가 근본적으로 관음의 미학이 내재되어 있다보니 피해사건의 이미지가 남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는데 VR을 접하게 되고 VR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라면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VR은 1인칭 시점이 가능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완전하게 그 상황 속에서 적극성을 가질 수 없는 수동적인 자세가 가능하다. 수동적인 입장이지만 경험이 공유되는 모순적인 명제를 가지고 <동두천>은 시작되었다. (중략) <동두천>은 관객이 피해자도 아니고 그저 관음하는 사람도 아닌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20]. 피해자와의 동일시나 관음하는 관찰자의 시점이 아닌 ‘이상한 존재’가 되는 것, <동두천>에서 관객은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처럼 유령이 되어 미군에 의한 강간폭력 살해사건이 있었던 1992년 동두천의 방 안에 서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폭력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빈방 안에서 이윽고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성폭력의 순간을 관음하는 것이 아니라, 잔혹한 폭력의 결과를 나 홀로 맞닥뜨려야 한다. 관객은 앞서 밤거리에서 만난 여자가 실은 이 방의 주인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 여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시신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 이 방 안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리고 외화면 사운드의 지시와 함께 몸을 돌려 거울 속에 보이는 피 흘리며 죽어있는 여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 체험을 관객이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가정하면 <동두천>의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관객은 극의 일부이고 한 개체이며 주인공이다. <동두천>의 시점이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점의 혼용과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관객은 유령이 되어 <동두천>안에서 이미 죽은 자, 유령과 조우하고 과거의 잔혹한 살해현장으로 인도되어 감정을 오롯이 체험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② 외화면과 프레임
기존 영화에서 사각의 프레임 안에 보이는 공간은 내화면(on-screen),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프레임은 외화면(off-screen)이라고 한다. VR은 촬영된 프레임들을 스티칭(stitching) 기법을 통해 이어붙여서 360도의 화면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 영화와는 프레임의 개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21]. 김태은(2018)은 VR영화에서는 관람자의 시선의 시야각의 범위를 일종의 내화면으로 볼 수 있고, 그 이외의 유동적인 다른 공간은 외화면이라고 하였다. 이 경우 내화면 바깥의 개념은 외부 공간이 아닌 시선의 범위를 벗어난 외부이며 언제든지 관객이 고개를 돌려서 시선의 시야각에 들어오면 다시 내화면이 되는 등 VR은 외곽의 경계가 모호한 프레임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VR영화에서 관객이 시선을 어느 시점에 고정시킬 경우 형성되는 프레임을 ‘암묵적 프레임’이라고 지칭한다. 이러한 암묵적 프레임이 장효진·장선희·김인주(2018)에서 ‘가시범위를 크기로 하는 향유자가 공간상의 시선이 다다른 주변부의 범위로써 일시적으로 가지게 되는 프레임’인 인스턴트 프레임과 유사한 개념이다. 다만 김태은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360도 환경에서 VR영화의 암묵적 프레임이 기존 영화에서 창과 문, 거울 등 대개 사각형의 오브제가 프레임 안에서 또 다른 프레임을 형성하는 이차 프레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두천>의 방 안 장면을 외화면과 프레임의 측면에서 살펴볼 때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 방 안 거울의 존재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관객은 이전 밤거리 장면에서 여자가 자신이 있는 곳, 즉 카메라를 통과하듯 다가오는 장면에서 자신의 몸의 부재를 느끼고 매우 취약한 감정 상태가 된다. 단순한 관찰자에서 극의 한 개체로 인정받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영화 안에 존재한다. 더욱이 이어진 방 안 장면은 사람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관객은 1인칭 관찰자와 주인공의 경계선에서 개인에 따라 그 경계를 넘나들며 영화를 ‘감상’ 또는 ‘경험’하거나 하게 된다. 그러나 이윽고 방 안에 놓인 붉은 이불이 핏빛으로 젖어 들고 서서히 장판 바닥을 가로지르며 피가 흐르는 광경이 보인다. 관객은 그 방 안의 유일한 목격자로서 자신만이 이 기이한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 유일한 존재라고 느낀다. 장면의 의미를 극 안에서 해석하는 존재가 주인공인 동시에 화자라고 볼 때 <동두천>에서 관객은 화자이며, 주인공의 자리서 방 안에 서있게 되는 것이다. VR영화의 프레임은 360도로 펼쳐져 있지만 통상 사람의 시야각은 220도 내외에서 머문다. 대개의 관객이 바닥에 놓인 이불을 중심으로 방안의 풍경을 지켜보며 이후 피가 이불을 중심으로 서서히 스며들 때 관객의 시선이 그 피와 원인의 부재를 해석하는데 집중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때 형성되는 프레임은 VR영화 안에서 360도로 구현된 프레임 가운데서 인스턴트 프레임인 동시에 암묵적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프레임은 관객 각자의 주관적 시선의 선택에 따라 형성된다. 이것을 전체 360도 프레임 안에 형성된 이차프레임의 성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두천>에서는 기존 영화에서 의미하는 대로의 이차 프레임이 새롭게 나타난다. 방바닥을 흐르던 피가 점점 양이 많아지고 온통 방안을 적셔갈 무렵 의미 그대로의 외화면, 360도의 VR의 전체 프레임 밖에서 지시된 강렬한 사운드가 관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VR기계를 쓴 영화 밖의 몸을 돌려 바라본 시선의 끝에는 직사각형의 평범한 거울이 놓여있다. 여기서 사운드에 의한 시선의 지시 또는 유도가 필요한 이유는 이불과 피에 주목하고 있던 대부분 관객의 시야 각에서 보이지 않는 위치에 그 거울이 있기 때문이다. 그 거울에는 막상 방안 이불 근처 피가 흐르는 곳에는 보이지 않던 여자의 죽어가거나 혹은 죽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폭행을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성의 몸은 방 안에 실체로는 부재하되 이차프레임으로 활용되는 시야각 너머의 거울 안에는 존재한다. 방 안 장면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피가 흐르지 않는 방- 거울에 여성의 모습 없음
그림 4. <동두천> 방 안 1
둘째, 피가 흐르는 방-거울에 여성의 모습 없음
그림 5. <동두천> 방 안 2
셋째, 피가 흐르는 방-거울에 여성의 모습이 보임
그림 6. <동두천> 방 안 3
<동두천>의 방 장면을 전체 360도 프레임과 이불과 피를 중심으로 하는 관객의 시야각과 시선에 의해 형성되는 인스턴트 프레임/암묵적 프레임(2차 프레임)의 개념으로 바라볼 때, 360도 프레임 바깥인 외화면의 사운드에 의해 관객이 시선이 시야각을 넘는 화면으로 유도되어 새롭게 인스턴트 프레임/암묵적 프레임(2차 프레임)이 형성되고 그 안에 본질적인 의미의 이차프레임, 즉 거울 속 여성의 모습이 드러나는 구조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 영화의 이차프레임의 역할처럼 <동두천> 안에서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 다양한 의미작용을 불러일으킨다.
Ⅲ. 결론
VR은 발 빠르게 게임, 언론매체, 의료, 영화 등 다양한 분야로 퍼져가고 있다. 영화산업 역시 VR을 영화의 한 분야로 받아들이고 전통적인 영화의 개념과 접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 칸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세계영화제가 VR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2017년 처음으로 VR영화 경쟁부분을 신설했다. <동두천>은 201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VR영화 경쟁부문에서 베스트 스토리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현물 투자 포함 3천만원이라는 적은 제작비로 실험적인 도전을 한 <동두천>의 이러한 성과는 VR의 강점인 ‘경험’하는 영상콘텐츠라는 특성에 집중하여 새로운 영화 문법과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동두천>을 시점과 프레임의 관점에서 분석한 결과를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두천>은 제4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 VR의 특성을 이용하여 시점의 변화를 시도한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동두천의 낮과 밤의 거리를 둘러보던 관객은 거리에서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를 뒤쫓아 가는 스토리텔링 속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가 자신(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다가와 자신의 몸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카메라가 서 있는 자리까지 침범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이 영화 안에 몸이 부재한 상태로 실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강렬한 체험을 통해 방관자와 같은 1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며, 이어서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기괴함 속에 오로지 자신만이 이것의 인과를 해석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주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사운드의 지시에 의해 통상의 시야각을 벗어나 능동적으로 몸을 돌려 거울 속에 나타난 여자의 몸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으로 관객이 주인공인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완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영화가 ‘본다’, ‘감상한다’라는 입장이었다면 VR영화가 ‘체험한다’, ‘경험한다’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VR영화 에서 프레임의 형성에 관한 선행연구가 말해주듯이 VR 영화의 프레임은 관객의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한다. 인스턴트 프레임이나 암묵적 프레임과 같은 VR영화 속 프레임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들은 VR영 화에서 360도로 구현된 환경 안에서 관객이 시야각 안에서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영화를 보고 정보를 얻는 과정을 기존 영화 속 프레임의 역할에 빗대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360도로 구현된 영상 전체를 한 프레임으로 보고 그 안에 형성된 관객의 시야각을 이차프레임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바라보는 주장도 있으나 아직 VR영화의 문법과 프레임에 관한 연구가 시작 단계인 머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향후 더 깊은 논의를 통해 VR영화의 프레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동두천>에서 프레임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기존 영화 안에서 이차프레임이 갖는 역할을 VR영화 안에서 유사하게 사용하고, 사운드의 지시 등을 활용하여 관객의 능동적인 시선처리를 만들고 마치 컷(cut)이나 패닝(panning)처럼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셋째, 선행연구에서 밝혔듯이 VR영화에서는 사운드의 지시, 때로는 등장인물의 시선변화를 함께 동반하여 관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동두천>에서는 등장인물 없이 외화면의 사운드의 지시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시야각 너머로 유도한다. 이것 역시 기존의 VR영화의 사운드에 의한 시선 유도의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두천>에서 시점과 프레임의 활용방식을 기존의 VR영화와 관련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두천>은 기존의 VR영화에서 정립된 방식인 사운드의 지시를 통한 외화면으로의 시선 유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동두천>이 VR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특이한 지점은 기존 VR영화에서 관객이 느끼는 스웨이지 이팩트를 거꾸로 관객을 영화 속 유령의 자리에 세워 시점의 변화를 통한 관객의 적극적인 해석과 개입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동두천>이 성폭력 사건으로 살해당한 여성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점이다. 즉, 이미 죽은 사람에 관한 영화이기에 VR에서 관객이 자신을 소외된 유령처럼 느끼는 스웨이지 이팩트가 <동두천>에서는 관객이 스스로 유령이 되어 극을 해석하는 주인공의 자리로 전환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VR영화에서 인스턴트 프레임과 관객의 시선에 의한 이차프레임의 관련성은 새롭게 정의되고 논의될 필요가 제기된다. <동두천>에서 보듯이 VR에서도 기존 영화가 갖는 사각의 이차프레임의 활용은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VR영화에서 관객의 시선에 의한 프레임을 기존 영화의 이차프레임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것은 이후 더 논의가 필요하다.
VR관련 기술은 매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VR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영상문법에 관한 이해가 깊어질 때 VR영상과 VR영화의 스토리텔링 역시 다양하고 흥미로워질 수 있다. VR과 같은 뉴미디어의 발전은 결국 얼마나 유익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지속하여 생산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그 중 VR영화 스토리텔링은 VR만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기존 영화와의 관계 속에서 문법을 재해석하고 접목하는 과정을 통해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VR에서의 영상문법과 스토리텔링에 관한 연구가 꼭 필요하다. <동두천>의 시점과 프레임에 관한 본 연구가 VR영화가 해석되고 논의되는 긴 여정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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