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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fect of Multi-dimensional Child Poverty Experience on Child Development: A Qualitative Study

다차원적 아동빈곤 경험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적연구

  • 조준용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부교수)
  • Received : 2019.12.23
  • Accepted : 2020.01.16
  • Published : 2020.02.28

Abstract

This study presents the effects and phenomenological meanings of child poverty on child development by implementing in-depth interviews with 19 adults and 20 children in Korean Welfare Qualitative Panel Study and analyzing multi-dimensional categories of child poverty experiences. By focusing on relative deprivation, this study lists the insider's view on poverty experiences such as pauperization, housing, health, education, child-raising, culture, family and child's dream, and then it describes poverty experiences in a heuristic and hermeneutic way from the child's view. Findings shows that poverty experiences of childhood are associated with negative child development experiences such as trauma, deprivation of growth and opportunity, childhood adultification, 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 of poverty and limiting dreams. This qualitative study based on the insider's view, can contribute not only to profound understandings of multi-dimensional child poverty but to identification of client based policy demand, which enables poverty policy studies expand their boundaries.

본 연구는 한국복지패널에 연계된 질적패널 중 성인 19명과 아동 20명에 대한 심층 면접을 실시하여, 빈곤가구의 아동빈곤의 경험에 대한 다차원적인 범주 분석을 실시하고, 빈곤경험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현상학적 주제분석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본 연구는 상대적 박탈감에 초점을 두고, 빈곤화 과정, 주거, 건강, 교육, 양육, 문화, 가족, 아동의 꿈 차원에서 드러나는 빈곤 경험을 내부자 관점에서 기술하고, 빈곤 경험을 아동발달 관점에서 발견적이고 해석적으로 기술하였다. 연구결과 아동기의 빈곤경험은 트라우마, 성장과 기회의 박탈, 애어른, 빈곤의 대물림, 꿈의 제한이라는 부정적인 아동발달 경험과 결부되어있었다. 이러한 내부자 시각에 기반한 질적 연구는, 다차원적 아동빈곤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대상 밀착형 정책수요를 가능하게 하여, 빈곤 정책연구 외연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

Keywords

I. 서론

에스핑 앤더슨(Esping-Andersen)은 아동기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을 낳는 핵심이며, 교육기회의 불평등은 성인기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므로, 빈곤아동에 대한 투자야 말로 불평등을 약화할 수 있는 핵심적인 정책수단이라고 주장한다[1]. 이는 결국 아동기의 질은 이후 생활기회(Life Chances)에 더 중요해진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1][2].

저출산 시대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18세 미만 아동인구는 1974년 최고 1,642만 명에 달하였으나, 2018년 현재 817만 명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3,4]. 특이한 것은, 아동인구의 감소뿐만 아니라 아동 빈곤율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중위소득 50% 경상 소득을 기준으로 빈곤 아동의 비율을 보면, 2003년 10.5% 였으나, 2012년 9.0%, 2016년 6.9%까지 내려 갔다[5]. 이는 OECD 평균치인 13.4% 의 절반에 가까운 낮은 수치인데[6], 전체 빈곤율에 비해서도 아동빈곤 비율이 특이하게 낮게 나타나고 있다[4]. 이에 대해, 아동을 양육하는 맞벌이 가구의 증가나, 아동 가구에 대한 공적이전소득의 증가가 원인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4], 이와 달리 저소득 청년들의 출산 기피로 이해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7].

문제는 지금껏 이러한 아동빈곤과 관련된 소득빈곤 중심의 정책적인 논의들이, 암묵적으로 아동을 양육하는 가정의 소득빈곤 해소를 통해 아동빈곤이 해결된다는 단선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선 논의처럼, 빈곤한 아동의 삶은 단순히 소득 빈곤이 야기한 어려움에서 그치지 않고, 미래의 교육과 성장, 그리고 기회의 박탈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동빈 곤은 아동발달 맥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수저계급론’으로 일컬어지며 대두된 금수저 흙수저 논란 역시, 빈곤가구에서 성장하는 아동들이 경험하는 현재적 궁핍이 아동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미래의 불평등으로 고착되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8-14].

이러한 측면에서 아동빈곤에 대한 개념 역시, 기본적인 욕구 결핍 상태에 대한 과한 집중에서 벗어나 기회 및 사회적 배제 개념을 활용한 다차원적인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15-17]. 실제 아동복지와 관련된 OECD 및 UNICEF 의 지표의 경우 소득 외에 주거, 건강, 교육 등을 제시하고 있고[4], 최근의 아동빈곤 관련 연구들 역시 빈곤의 다차원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독립변수로서의 아동빈곤이 종속변수로서의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양적연구들로서, 측정가능한 아동빈곤 수준 및 아동발달 수준 간의 단선적인 관계를 계량적 측정을 통해 규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 아동빈곤은 종종 경제적 빈곤이나 주거 빈곤으로 측정되며 아동발달은 학업, 혹은 신체나 정서적 발달 등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이처럼 계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변수에 국한한 기존 접근 방식으로는 빈곤의 다차원성에 대한 발견적 시도를 하기 어렵다. 아동발달에 있어서도 계량화가 어려운 아동의 내적 동기, 꿈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같은 미래적 자산을 드러내기 어렵다. 또한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이 아동 자체에 초점을 두다보니, 부모나 가족과의 상호작용 맥락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동빈곤의 아동발달에 대한 영향이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드러나기 어렵다.

이러한 점들은 아동빈곤의 제측면을 보다 발견적으로 접근하고, 이것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빈곤 가구내 성인과 아동 모두를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을 실시하고, 이에 대한 질적연구를 시도하였다. 특히 질적분석을 위해 현상학적 접근을 활용하였는데, 이는 빈곤 내부자의 관점에서 아동빈곤 이라는 다차원적인 경험이 제공하는 의미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아동발달 측면에서 갖는 의미를 도출하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본 연구는 질적분석을 통해 도출된 의미 단위를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차원적 빈곤경험과 아동발달의 본질에 입각한 주제를 구성하여 제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본 연구는 소득빈곤 이상의 다차원적 빈곤 경험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이고 발견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함의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II. 문헌검토

1. 아동빈곤과 아동발달

일반적으로 발달심리학이나 장애아동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아동발달 문헌들은 부모의 양육이나 환경요소 들이 아동의 발달과 장애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다루어지고 있다[18][19]. 이에 비해 빈곤이라는 경제학적 변인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주로 통계적 방법론을 활용하여 경제적 빈곤이 학업, 신체 및 정서발달과 같은 아동발달의 측면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빈곤이 청소년의 신체적, 인지적 발달에 미치며 주거환경이 매개효과가 있다는 연구[20]나, 부모의 양육태도와 아동발달의 매개변수로서 빈곤의 영향을 제시한 연구[21][22], 빈곤을 아동의 학업과 정서 발달에 매개가 되는지에 대한 연구[23] 등은 경제적 빈곤의 부정적인 매개효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편 빈곤지위에 따른 아동의 사회정서적 발달에 대한 연구[24], 빈곤여부에 따른 학업성취 분석을 통해 발달궤적을 제시한 연구[25][26] 등은 빈곤이 학업성취나 정서발달로 정의되는 아동발달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빈곤을 오직 수리적으로 측정가능한 경제학적 빈곤으로 정의하고 있어 빈곤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아동발달에 대한 정의 역시 학업, 신체, 정서적 발달에 국한되어 있어, 아동에게 내재한 꿈이나 전망, 기회에 대한 접근이 용이치 않다.

2. 아동빈곤의 다차원성

빈곤에 대한 다차원적 접근은 빈곤을 물질적 박탈과 사회적 박탈로 구분하여 총 77개의 범주를 통해 빈곤의 측정하려했던 타운센트(Townsend)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4][15]. 빈곤의 다차원성은 소득빈곤이라는 경제적 빈곤 척도가 간과한 사회적 자원과 기회 및가능성이라는 미래적 전망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는 식품, 의류, 주택, 환경, 주거, 근로, 고용 권리, 가족활동, 지역사회 통합, 사회제도 참여, 여가, 교육 등의 제 측면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빈곤의 다차원성은 이후 여러 학자들의 박탈지표방식을 활용한 다차원적 빈곤 측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4].

센(Sen) 역시 자원과 같은 복지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실현능력을 높일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강조하였는데, 센의 접근을 활용한 한국의 다차원 빈곤을 분석한 서병수의 경우 자원확보 차원의 결핍과 실현능력차원의 결핍이 합쳐질 경우 빈곤율이 50% 가 넘는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26].

OECD에서는2009년 “Doing Bettter for Children”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아동복지에 대해 다차원적 접근과 아동의 주관적·인지적 방식을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는데, 이는 아동빈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4]. UNICEF 역시 아동의 복지에 대해 물질적 복지, 건강과 안전, 교육, 행위와 위험, 주택과 환경과 같이 5가지 범주로 제공하여 다차원성을 강조하고 있다[4]. 이러한 경향들은 경제적 빈곤 지표에 대한 계량적 측정을 바탕으로 한 지금까지의 단선적인 빈곤 연구들이 갈수록 다차원성과 내부자 관점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III. 연구방법

1. 연구대상

본 연구는 연구자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아동 가구의 빈곤경험과 실태연구에 참여하여 조사원들과 함께 실시한 성인과 아동에 대한 심층 면접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연구대상은 빈곤 경험과 실태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이론적 표집을 통해 이루어졌다. 표집틀은 한국복지패널에 연계된 질적패널이고, 이들 중 빈곤아 동이 있는 가구를 서울, 경기, 강원 지역에서 선정하였다. 총 성인 19명, 아동 20명이 인터뷰에 참가하였고, 일반 현황은 [표 1]과 같다.

표 1. 연구대상의 일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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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사표의 구성

심층면접을 위해 본 연구는 질문 문항을 조사표로 사전에 구성하였고, 캐묻거나, 질문 순서를 바꾸거나, 참여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질문을 수정·보완할 수 있는 반구조화된 면접을 실시하였다. 조사표의 내용은 빈곤의 경험과 실태에 관련된 문항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동 및 성인 각각에 대한 질문내용은 아래 [표 2]와 같이 구성되었다.

표 2. 조사표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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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료수집

자료수집은 2016년 7월부터 8월까지 연구자 및 조원들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참여자 개인별로 1-2회 반구조화된 면접을 실시하였고, 회당 면접시간은 성인의 경우 평균 81분, 아동의 경우 평균 57분이었다. 면접내용은 IRB에서 승인을 받은 절차에 따라 참여자의 동의 후 녹취되었고, 각 조사원들은 가구의 물리적 환경이나 참여자의 비언어적 행동이나 느낀 감정 등을 현장노트로 작성하여, 면접 종료 후 사례요약과 함께 제출하였다.

4. 자료분석 및 엄격성

본 연구는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내부자 관점에서 경험의 의미를 파악하여 범주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이 갖는 본질적인 함의를 주제분석으로 제시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이루어진 주제분석 방식[27][28] 역시 현상학의 기본적인 인간의 경험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갖고, 참여자의 경험적 구술을 판단중지와 자유변경을 거쳐 기술하여도출된 의미를 구성하고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아동빈곤이라는 다차원적 경험이 제공하는 의미를 범주화하고, 아동발달 측면에서 이러한 범주들의 본질적인 함의를 재구성하여 주제분석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본 연구는 아동빈곤 경험이 내포한 소득빈곤 이상의 결핍과 박탈감, 그에 뿌리를 둔 다차원적 빈곤 경험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우선 녹취된 면접내용은 전사하고, 동시에 질문 단위별로 면접 내용을 코딩하였다. 이후 2차례에 걸친 연구진 사례회의를 통해, 아동빈곤의 다차원성과 박탈지표와 관련된 유의미한 발견을 서로 나누고, 동시에 의미 있는 코딩의 단위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러한 과정은 질적분석과 해석에 대한 엄격성을 확보하는 과정이자 각 사례 간에 나타나는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아동빈곤의 경험을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IV. 연구 참여자의 특성

1. 성인참여자 (N=19)

성인 참여자의 경우 연령대는 33세에서 72세에 이르며, 평균 나이는 46.4세였다. 아동의 부친이 4명, 모친은 14명, 조모가 1명이었고, 가구유형의 경우 한부모 가구(7), 양부모(11), 조손가구(1) 였다. 수급지위의 경우 수급가구(9), 차상위 가구(3), 일반 빈곤가구(7)로 구분되었다. 가구 소득은 없음에서 270만원 사이로 보고 되었고, 소득 평균은 158.8만원이었다. [표 3]은 성인 참여자의 특성을 요약해놓은 것이다

표 3. 성인 참여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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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동참여자 (N=20)

아동의 경우 나이가 7세에서 18세에 이르며 평균 나이는 14.3세였다. 초등학생 6명, 중학생 6명, 고등학생 8명이고, 남아가 12명, 여아가 8명이었다. 이들이 받는 용돈은 없는 경우부터 20만원에 이르렀고, 이들이 직접 근로를 해서 버는 소득도 없는 경우부터 최대 50만원에 달했다. [표 4]은 아동 참여자의 특성을 요약해놓은 것이다.

표 4. 아동 참여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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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분석결과

1. 다차원적 빈곤 경험에 대한 범주분석

여기서는 빈곤가구가 경험한 다차원적 아동빈곤을 범주화하고, 범주 내에서 발견되는 아동발달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였다. 범주 도출 과정에서 무엇보다 질적연구 본연의 경험과 인식을 드러낼 수 있는 빈곤 과정 자체에 대한 내부자적 의미를 모아 ‘빈곤화 과정’으로 도출하였고, 이후 ‘주거’, ‘건강’, ‘교육‘과 같은 기존연구의 다차원적 범주를 투영한 분석결과를 제시하였다. 더 나아가, 기존 양적연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부모와 가족체계와 관련된 발견들을 ‘양육’, ‘문화’, ‘가족’ 차원으로 세분화하여 아동발달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경험에 대한 범주를 제시하였고, 무엇보다 아동 스스로의 내적 동기와 전망을 미래적 자산인 ’아동의 꿈‘으로 제시하여, 발달적 함의를 서술하였다.

1.1 빈곤화 과정

여성 한부모 가구주의 경우, 이혼 이후 급격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하나의 패턴처럼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의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혼은 아동에게 더 이상 부모갈등을 보여주지 않게 되어 ‘아이에게 가장 잘한 일’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아빠가 필요할 때 옆에 없는 것이기도 해서 ‘가장 미안한 일’이 되기도 한다.

한편 부모가 사기를 당해 급작스러운 빈곤을 경험한 아동의 경우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는 후천적 빈곤의 경험이 아동의 심리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친구도 사귀자니 그렇게 또 옛날 친구도 생각도 나고, 막 이러니까 (선생님이 애가) 정체성이 없다 이런 이야길 ...그 때 되게 안타까웠어요 [성인 Q]

이처럼 빈곤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었던 급작스러운 변화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체화된 일상의 경험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나 만성화되 어버린 빈곤 일상의 고통, 가족해체와 같은 사건이 그런 경우이다. 간혹 부모가 아동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달리 빈곤 스트레스가 직접 아동에게 매질 등의 모진 언행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성인 R].

어렸을 때 많이 혼내고 화냈던 거. 걔한테 스트레스 많이 부렸던 거... 너네를 놔두고 가면 내가 얼마나 보고 싶고, 이게 그러면서, 내가 너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 거 같애~ 이러면서 애를 매질했던 거 [성인 R].

사실 빈곤한 환경에서 부모들은 어떤 특정한 어려움을 꼽기보다, 일상생활 모든 것, 돈 걱정, 애들 재우고, 학교 보내고, 밥해주는 것과 같은 매일의 일상의 연속 그 자체가 힘든 일이며, 이러한 어려움이 만성화되어가며 점차 무기력해지기도 하였다[성인 N].

한편 빈곤한 환경이 지속되면서 부부의 불화와 가츨, 별거와 같은 가족해체의 경험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성인 A, 성인 R], 이와 반대로 부모가 아파서 못하게 된 신문배달을 아동이 대신하며 가족의 일을 서로 돕는 등 가족이 더욱 뭉쳐지는 경우도 있었다[아동 H]. 또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스스로 쓸 용돈을 벌기 위해 시간제 근로(알바)를 하는 아동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소득은 월 30-50만원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빈곤 가구의 부모들은, 하루하루 버거운 삶을 밀고 나가고 있으며, 그러한 일상속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좌절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생활 하면서 밀고 나가는 거에요. 밀고 나가는 거죠 뭐 하루하루. 우리는 나이 먹고, 아이는 공부 하고 그러다 보면 벌써 50대가 넘었더라고요... 그러면 우리가 이 다음에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을 못 버는 거죠 [성인 F]

또한 아동들에게 빈곤은 상대적으로 기회가 결핍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생필품이나 영양이 부족한 절대적 빈곤에 대한 인식보다, 또래처럼 유행을 따르거나 진로를 위한 교육적 투자를 부모에게 요청할 수 없다는 인식은, 빈곤을 상대적 기회박탈의 차원에서 인지하는 것이었다. 간혹 상대적 빈곤감에서 느끼는 좌절이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일탈적 사고로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아동들이 내면에는 빈곤으로 인한 불행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들이 아파트에 사는데 그지 같이 산다고 막 덤비고. 아들 때문에 제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동 F]

어릴 때 막 오죽하면 어릴 때 아빠 죽었으면 좋겠다고 막말 생각하고. 지금은 안 그러는데 아무리 그래도 죽었으면 좋겠다 이건 아니니까. 되게 트라우마가 많다... [아동 I]

이처럼 빈곤 환경에서 아동이 부모에 대한 원망을 하는 사고는 거꾸로 부모가 아동을 바라보며 왜 낳았을까 후회하는 모습이나, 아동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모습에서도 일부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처럼 빈곤의 경험은 자칫 가족의 형성이나 가족관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져올 위험도 있는 것이었다.

늦게 (아이를) 낳은 게 지금 저는 정말 후회해요. 왜 낳았을까. 떼어내버릴걸 [성인 F]

아 결혼은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요..세상이 각박해지고 어차피 힘드니까...결혼하지 말고 그냥 혼자 살아라 [성인 L]

1.2 주거

빈곤한 주거 환경은 부모와 아동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된 원인이 된다. 특히 집이 단순히 잠자는 공간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과의 생활과 소통의 공간이자, 동시에 학령기의 성장하는 아동에게 공부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빈곤가구의 주거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집이 좁고 불결하기도 하고, 반지하에 살면서 집주위에 도둑들의 범죄가 걱정되기도 하며[성인 G, 성인 I, 아동 I, 아동 N], 비가 새거나 냉난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성인 K], 성범죄자들이 주변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성인 C, 아동 O], 술먹고 소리지르는 이웃, 집으로 오는 길에 가로 등도 없어 음산한 길[아동 A, 아동 H, 아동 P] 등은, 주거 환경이 가족간에 짜증을 내게 되는 주요 요인이 됨을 잘 보여준다.

일단은 주거가 되면은 모든 게 조금 안정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그렇고, 지금 집에 들어가면 짜증 먼저 나요... 옆집도 맨날 욕하고 싸우는 소리가...아이들이 집중을 할래야 할 수가 없어요... 공부하라 공부하라 해도, 조건이 안 되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집중을... [성인 O]

특히 아동들에게 독립적인 공간이나 공부방을 마련 해주기는 커녕 성(性)구분 없이 함께 방을 쓰거나 온 가족이 한방을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성인 B, 성인 G, 성인 N, 성인 P], 이러한 배치는 아동에게 공간을 제공할 여력이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청소나 관리가 너무도 힘들어 한 방에 몰아서 살게 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공간배치에 있어서, 아동의 성장과 발달 차원을 고려하기 보다는 관리의 수월성 중심으로 공간을 배정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엔 거실에다가 남자애 둘을 재웠어요. 그리고 여자애 둘을 작은 방을 따로 주고. 그런데 이 치우질 않으니까이 치우는 게 너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2층 침대 놓고 한 방으로 넣었어요... [성인 B]

그런데, 이러한 주거의 문제는 단순히 공부방이 없다 거나 성구분 없는 방사용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주거환경에서 아동들은 부모들의 걱정을 비롯해서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 어려운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과 고민, 부부싸움 등에 그대로 노출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아동들은 이후 살펴볼 소위 ‘애어른’이 되는 경로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어느 날에 엄마, 아빠 표정이 안 좋은 걸 보고 잠자는 척하고 기다렸거든요? 근데 무슨 이야기 들려오는 거예요...이자 이번 주까지 다 갚았다고 이런 소리... 이자가 있다면 당연히 빚도 있을 테고...그 소리 듣고 아~ 빚이 있었구나? 그 때가 8살이었나? 그 때 딱 알았어요 [아동 S]

또한 급작스런 빈곤을 경험한 아동이 반지하 집을 “북한으로” 오는 것으로 표현할 때, 부모들은 자녀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적절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치. 그러니까는 OO이도 맨날 뭐 아파트에서 살다가...어느날 순간에 지하인 거기에 왔지...뭐라고 하냐면 엄마 꼭 있잖아. 내가 나는 북한으로 오고... [성인 Q]

1.3 건강

빈곤한 환경에서 아동을 키우는 부모는,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스트레스와 양육의 부담을 겪으며, 신체적/심리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근로활동 외에도 가사와 양육을 병행하고 피로감이 쌓이면 우울과 자살 충동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제일 어려운 게, 내 병하고 금전적인 거지. 쉽게 이야기해서 내가 자칫 잘못하면 자살충동을 너무 많이 느끼니까. 순간적으로 그래요[성인 M].

제가 농약을 샀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 살겠는 거예요... 아무리 옆에서, 저희 집사람도 있고, 조언을 해주고... 뭘 해도, 벌써 제 머리 속에는 아니다... 내가 이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람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제가 이 숨쉬는 것 자체도 너무 싫었던 거예요 [성인 N]

더 큰 문제는, 가구내 아동에게 보살핌을 제공하는 주체인 부모가 우울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가지게 되면, 바로 아동의 양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부모의 감정 상태에 따라 위축되는 자녀들은 가정에서 눈치껏 행동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또한, 부모의 고민이나 심리적 어려움이 아동들에게 공유될 때, 아동들이 간혹 문제행동이나 때로는 신체화 장애(somatization disorder)로 불리는 증상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아동에게서 발생했던 도벽과 원인 모를 복통에 대해 상담과 치료를 했던 한 부모는,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이 아동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하였다[성인 O].

부모의 영향 이외에도 경제적 여건에 대한 아동의 불만이 과식과 비만, 주의력 결핍, 양극성 장애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모나 아동 모두, 정신 건강의 문제가 전문적 치료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았다. 당면한 생계유지에 급하다보면, 치료를 요하는 증상에 대한 반응이 늦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눈떠서 바로 나가서 저녁에 들어와야 되는데 저녁에 들어와서 잠깐 있는 사이에 (우울)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니까 내 몸이 힘들고 뭐 하니까 그니까 그 시간에 어떻게 거기 가서 정신과 갈 생각을 못 하죠. [성인 D]

1.4 교육

교육의 경우 빈곤이 아동의 인적자본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부분과, 이것이 빈곤의 대물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인식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인식하는 아동의 인적자본 형성의 기회의 박탈은 압도적으로 학원비의 부담이었다. 인터뷰에 참가한 부모들은 사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학원을 보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교육은 경쟁적인 교육환경에서 아동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꿈을 선택하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다니는 학원이니까 교류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성인 E, 성인 Q].

그러나 부담스런 교육비는 현실적으로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쉽지 않다. 실제 경제적 부담 때문에 다니던 학원을 중단하기도 하고, 방과후 교실도 근근히 보낼 정도이며, 대안으로 활용한 지역아동센터나 공부방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리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경험은 부모에게는 안타깝고 속상한 경험으로 남게 되고, 자녀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교육 때문에 부모가 빚졌다는 죄책감을 주기도 하였다[아동 E].

또한 경제적 이유로 아동이 특성화고를 선택하게 하거나[성인 B], 대학보다 취업을 선택하기[아동 C]도 한다. 때로는 눈앞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의 꿈을 미루거나, 의지를 꺾기도 하였다. 실제, 공부를 잘하는 아동에 대해, 부모로서 느끼는 대견함도 있지만 앞으로 지원해주지 못할까 걱정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치과의사가 되겠다는 큰 아이가 공부를 잘할까봐 겁나는 부모[성인 O], 검사가 되려는 딸의 로스쿨 비용이 걱정되어, 딸이 크면 꿈이 바뀌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부모 [성인 P]가 그런 예이다.

딸은.. 가슴이 아픈 게.. 이제 공부를 잘하니까 검사를 하고 싶어 해요. 근데 이제, 제도가 로스쿨로 바뀌었잖아요. 제가 차마…(웃음) 보낼 수가… 로스쿨 얘기는 못하고, 옛날처럼 사법고시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그래 열심히 공부해.. 그냥 그러고 있어요. 크면 바뀌겠죠 뭐[성인 P]

아동에게서도 교육투자에 대한 박탈감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은 교육투자가 안되면 빈곤으로 연결될 것으로 인식하나, 집안의 경제적 형편을 생각하면 그냥 앞이 안보일 뿐이고, 향후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이 표출되기도 하였다[아동 B, 아동 C]. 또한 빈곤이 대물림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부모의 인식도 나타났는데, 이는 종종 본인 능력의 한계에 대한 체념이 동반되는 것이었다.

그냥 상고를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한 거였고 저도 야간에 공부를 했었던 거는 있는데.. 나처럼 살기를 원하지는 않으니까. 나보단 좀 더 나은 생활을 하면 좋겠는데...[성인 D]

영향을 미치죠. 그니까 여유가... 학원이 사실 중요하긴 한데... 만약에 근데 경제력이 더 되면 더 좋은 걸... [성인 S]

1.5 양육

일을 하는 한부모 가구에서 아동의 양육은, 부모가 경험하는 빈곤의 일상 중 가장 힘든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어린 초등학생의 경우, 출근해야 하는 아침에 제대로 케어를 해줄 사람이 없어서 매일 매일 실랑이를 하는 등, 힘들고 불안한 일상을 지속하게 된다. 사실 밥 먹이는 것부터 케어하는 것까지, 아동 양육과 결부된 빈곤의 일상은 부모에게 가장 힘든 경험이다[성인 G, 성인 S]. 이렇게 힘든 양육환경은 종종 아동들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아동이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가 다시금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 아들에게 가장 역할과 동생들에 대해 부모 역할을 전가했다가도, 아들이 투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아침에 몇 번 저는 회사에 있고 아이는 집에서 울고 이렇게 실랑이를 몇 번 하면서 그렇게 3~4월이 자주 반복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너무 케어할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힘이 드는 거예요 [성인 S]

아동은 연령에 맞는 자연스런 발달을 경험하여야 하며, 때로는 말썽도 부리고 반항도 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가정의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힘들어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동들은, 종종 자신의 꿈을 접어 가면서까지 현실에 순응하고 오히려 부모를 위로하며, 모든 것을 가족중심으로 생각한다. 또한 적은 돈으로 실현 가능한 꿈을 꾸며,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너무 모범적으로만 보이고 착해 보이는 아동에 대해 부모는 아동이 너무 참고 사는 것이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되고, 사실 아이 속이 곪았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제가... 캠프를 갔었잖아요... 거기서 좀 무슨 일이 있었어요... 엄마한테 말을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말을 못했어요 [아동 S]

그니까 지금 큰 아이 같은 경우도 속으로 많이 곪았을 거예요 [성인 B].

이처럼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는 부모 입장에 서는 키우기 수월한 점도 있겠지만 아동의 성장 자체만을 본다면 우려스럽다. 또 아동이 과하게 부모나 가족을 걱정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는 모습은, 이후 자신의 꿈을 설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애어른’이 되어가는 아동은 부모입장에서 양육하기가 쉽다는 것이지, 그것이 부모를 완전히 이해해서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모를 폐끼치면 안되는 외부인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부모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근데 사고 싶은 걸 말을 안 했어요. 그냥. 사고 싶은 거 말해서 괜히 폐 끼치기 싫어가지고 [아동 S]

한편, 양육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부모로서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도, 아동은 자연스럽게 애어른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아이가 착하지만, 만일 아이가 어긋나게 되면 자신은 자살한다는 부모의 생각이나, 부모가 함께 있어도 자신을 돌봐주지 못한다고 아동이 인식하는 경우, 아동은 애어른을 강요당하고,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쟤는 되게 예뻐요... 엄마랑 살아도 아이들이 진짜 공부 잘하지 말썽 부리지도 않지... 길거리에 나가서 나쁜 짓이나 하고, 지 마음대로 해버리면... 진짜 나는 죽어버려... 그러니까 우리 딸이 정신연령이 40대야[성인 M]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혼자서 힘으로 다 알아서 하니깐요. 힘들 때도 있는데 어머니가 직접... 이제는 지혜가 딸리시니까... 이제 제 힘으로 혼자 해야 하죠 [아동 R]

간혹,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으로 부모의 권위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한 아동들은 부모에 대해 ‘나이 먹도록 뭐했냐’는 등의 일탈적 언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부모의 무력감과 죄책감은 더욱 커진다. 또한 부모 자신의 훈련되지 못한 부적절한 양육방식으로 인해, 훈육이 필요한 아동에게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성인 G].

1.6 문화

빈곤가구에서 부모와 아동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은 종종 아동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 가족사진 찍기, 부모님과 함께 한 졸업식이나 태권도 대회, 시골, 집앞 공원, 해수욕장, 놀이공원, 혹은 목욕간 것이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소소한 일상은, 특히 나이가 어린 아동들에게는 손꼽아 기다렸던 선물 같은 경험이었다. 함께하는 횟수가 적었던 것도 있겠지만, 아동들에게 가족과 함께한 평범한 여가는 가족간의 일상의 기쁨이 중요함을 잘 보여준다. 그만큼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게 되면, 아동들은 부모님과의 시간이 간절하다.

행복했던 건 그냥 초등학교 때 엄마랑 같이 목욕탕 간거... 그냥 엄마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 목욕 끝나면 우유 같이 마시고 계란도 먹고 했던 것 같아요 그냥 평범했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아동 N]

물론 아동의 경우 이처럼 가족 간의 여가 및 문화생활 이외에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가족 여가활동과 비슷한 경험들이 존재하였다. 또한 상당수의 아동들은 스마트폰이나 PC 게임 등을 주된 문화생활로 꼽았는데, 문제는 이러한 게임 활동을 제어하거나 조언하지 못하는 경우, 즉 ‘부모가 없는 동안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 ‘나둬야지 어떻게’라고 방임하는 경우, 아동들이 쉽게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중독 증세는 종종 가족 갈등을 낳기도 한다는 점이다[성인Q]. 심지어 아동이 게임 회사에 결제를 해서 부모가 경찰서에 출두를 하고 아동은 가출을 했다 돌아오기도한 사례도 있었다[성인 G].

한편, 부모들의 문화생활은 아동과 함께 가는 영화관이나 독서 등을 나타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성인 친구들과 누리는 여가활동이나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이 부모들로 하여금 대인관계에서 이질감을 가지게 하거나, 여가가 시간 낭비라는 인식으로 설명되기도 하였다.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내야겠다 싶어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저도 그 시간이 더 좋아진 거예요. 친구들하고 만나봤자...나하고 별개의 사람들 같은 거예요..., 그때부터는 ... 허비되는 시간으로 느껴지고, 친구들을 끊고... [성인 O]

1.7 가족

앞서 양육 경험의 범주화에서 보았듯이 빈곤가구의 부모들은 종종 에너지의 고갈을 경험하고, 가족 갈등 과정에서 부모 기능의 약화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는 곧 가족기능의 틈새를 야기하기도 한다. 자녀 양육에 대한 주도권을 잃거나 가족관계에서 무기력해지는 부모의 모습, 혹은 아동에 의지하고 기대는 모습을 여과 없이 표현하거나 아동에게 동생 양육 책임을 공공연하게 전가하는 모습[성인 P] 등은 종종 아동의 적극적인 역할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동은, 가출한 엄마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누나가 왕따를 당한다고 거짓 연락하여 갈등을 조정하려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아동 A], 부부 갈등을 부인하는 부모에게 다툼을 알고서도 모르는 척 해주기도 한다[아동 R]. 또한 엄마가 아파도 자신이 걱정할까 아픈 내색도 안한다고 생각하는 아동이나[아동 N], 투정부릴 상황에도 참고 있는 아동의 모습이 오히려 더 걱정스럽다는 부모[성인 Q]에게서 나타나는 아동의 모습은, 나이에 비해 성숙한 정도를 지나친 ‘애어른’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걱정스러운건… 다른 아이들처럼 오히려 투정부리지 못하는거?... 참고, 생각이 많아 하는 표정을 볼 때가 있어요... 그런 거 보면...이 다음에 커서 성인이 되서 잘못 터지느니 차라리 미성년일 때 터지는 게 괜찮지 않을까...[성인 P]

이러한 애어른의 모습은 일하는 부모를 대신하여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아동의 모습에서도 보이는데, 이 경우 가장 흔한 유형은 부모의 물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도구적인 부모화’로 범주화될 수 있다[아동 B, 아동 O, 아동 Q]. 한편, 아동이 이러한 도구적인 부모화에서 더 나아가, 가족관계에서 어른처럼 정서적 관여를 하게 되면, 머지 않아 아동은 자신이 해 온 부모 역할의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역할을 하면서 돌보던 동생이 성장하면서, 더 이상 자신을 따르지 않고, 또한 본인도 더 이상 동생을 부모입장에서 받아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힐 때, 동생을 지극히 아끼면서 동시에 동생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아동 O, 아동 Q]과 같은 양가감정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 형제/자매의 돌봄을 받고 성장하는 동생 역시 정신적 성장이 늦어지고 의존적으로 변하기도 하여, 아동의 부모화 현상은 본인이나 동생 모두의 성장과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아동 P, 성인 O]. 실제 본인이 어린 시절 부모없이 여동생을 키웠다는 한 아빠의 경우[성인 N], 어른 역할을 위한 자율성을 추구하여, 자퇴와 가출, 자장면 배달 등 보호막 없는 사회생활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방황과 비행, 교도소 수감 등의 극심한 성장통을 동시에 경험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례는 자연스런 성장 속도를 뛰어넘는 부모화가 아동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을 예시 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부모 가구 아동의 경우, 아동이 아빠의 책임과 역할을 짊어질 뿐 아니라, 마치 배우자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배우자화’ 라는 개념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아동은 아빠 입장에서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며 오히려 엄마를 애처럼 대하기도 하고, ‘엄마 힘들까봐’ 등의 사고를 통해 부모를 자신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고를 하게 된다.

이처럼 빈곤가구의 아동들이 가족 내에서 역할갈등을 경험하는 성장의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아동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움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며 아픔을 치유하는 ‘약’이자,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함께하는 ‘친구’이며, 궁극적으로 ‘행복’의 근원이었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관계가 좋은 경우, 구성원들은 가구의 전형적인 경제적 빈곤에 대한 인식보다 가족이 유지되는 것이 갖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는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어려운 경제 환경과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힘은 바로 함께 있는 아동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빈곤 환경에도 불구하고 가족이야말로 삶을 유지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근원이며, 이러한 가족의 기능을 유지하고 향상하는 것이 탈빈곤 과정에서 중요함을 보여준다.

1.8 아동의 꿈

빈곤가구의 아동들이 비슷한 유형의 경험을 보이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설정하는 기준과 관련된 것이었다. 특히 빈곤아동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도록 꿈과 욕구를 조정하거나, 때로는 자신의 꿈이 부모에게 부담을 줄까 아예 꿈을 접기도 하였다[성인 B, 성인 Q, 아동 R]. 대신 매우 구체적이고 당장 실현 가능한 돈벌이를 통해 가족에 보탬이 되고 싶은 것을 꿈으로 제시하며, 자신의 진짜 꿈을 가두기도 하였다[아동 N]. 집안의 경제적 환경을 고려하여 특성화고를 다니게 된 경우나[아동 B], 간호사가 되고 싶으나 집안의 경제적 형편이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꿈을 접은 경우[아동 C], 이들은 모두 집안을 돕고자 대학보다는 취업을 선호하였다. 또한 앞서 교육 영역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동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꿈을 지원하지 못할까 우려하는 부모는[성인 O, 성인 P], 사실 아동의 꿈이 벅차기까지도 하다.

그렇다고 아동이 꿈을 타협하거나 제한하게 되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 가슴 아픈 일이다. 부모의 마음은 아동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꿈을 키워가며 선택하도록 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따라주지 않아 미안하며[성인 E], 아동이 자신의 꿈을 지극히 안정적인 직업으로 국한하고, 능력에 비해 더 큰 꿈을 꾸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다[성인 P]. 꿈을 정확히 “9급” 공무원이라고 답한 아동의 경우[아동 P],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안정적인 성공 목표로서 오직 9급 공무원만을 제시하고 있었다.

일단 완전히 실패하지 않고, 어느 정도 성공을 하면, 실수 때문에 자책하는 것 보다는 성공했다는 사실... 주위에서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거냐는 그런 말 안 해 줬으면 좋겠고, 그것에 대해서 저에게 조금 현실적일지... [아동 P]

한편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에 연기자의 꿈을 꾸었던 한 아동은 돈벌이가 안된다는 생각에 갈등하며 자신의 꿈이 휴전상태라고 표현하였다.

막 연기력이 좋다고 극찬해주시니까, 되게 자신감이 붙는 거에요.. 잘하고 싶은 것도 있고... 근데 이게 돈 벌이도 잘 안 되는 것도 알고... 돈 때문에 생각하다 보니까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휴전인 상태... [아동 I]

한편 ‘애어른’을 경험했던 성인의 경우[성인 N], 자신의 모든 것을 가족에 희생하나 정작 본인 스스로의 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의 빈곤아동의 미래의 모습 역시, 자칫 자신의 꿈의 실현보다 가족 부양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게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2. 주제 분석

여기서는 다차원적 빈곤에 대한 범주분석을 바탕으로 이를 아동발달의 현상학적 본질 측면에서 구성하여 제시하였다. 빈곤화 과정에서 심리적 경험과 박탈감은 ‘전쟁과 같은 빈곤의 경험’으로 제시하여 아동에게 빈곤은 본질적으로 외상(外傷)임을 나타냈고, ‘주거환경: 관리와 권리의 사이’는 주거가 본질적으로 아동이 발달하는 공간이자 권리임을, 아동의 교육은 빈곤의 악순환 이라는 본질적으로 미래의 빈곤이라는 관점에서 ‘교육: 수저계급론’이라는 정책적 주제로 제시하였다. 또한 아동다운 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빈곤 환경에서 발달하는 아동은 ‘애어른’으로, 빈곤 아동의 안정 추구성은 ‘꿈꾸는 방법: 되면한다’ 로, 끝으로 그럼에도 견뎌내는 힘의 원천은 ‘그래도 가족:소소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주제로 제시하였다.

2.1 전쟁과 같은 빈곤의 경험: 트라우마와 박탈

다양한 빈곤 경로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경험은 빈곤이란 단순히 경제적 궁핍함을 넘어, 다양한 사건들과 환경이 최악으로 맞물려 떨어진, 그래서 바닥을 치는 경험에 이르는 심리적 트라우마(trauma)와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부모에게 빈곤은 삶의 고단함과 무력감, 아동에 대한 죄책감을 수반하는 경험이었고, 때로는 아동이나 주어진 처지에 대한 다양한 양가감정이 동반된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아동에게도 빈곤은 갖혀있는 것, 정체성의 혼란, 북한으로 온 기분, 스스로의 꿈이 휴전상태가 되는 것과 같은 전쟁같은 경험이었고, 억지로라도 애어른이 되어서야 현실을 직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외상(外傷)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경험이 의식주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빈곤 상태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박탈감, 즉 상대적 빈곤감이 문제였다. 유행에 뒤처지는 자신, 학원이나 배우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는 것이 경제적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들은 자신의 꿈과 진로를 수정하거나, 일탈적 사고나 행동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는 결국 꿈의 선택 기회의 박탈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2.2 주거환경: 관리와 권리의 사이

아동빈곤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주요한 주제는 바로 주거환경이었다. 인터뷰 참가자들에게 주거는 단순히 잠자는 공간이 아니라, 가족이 소통하고, 아동이 성장하는 터전이었다. 그러나 빈곤아동들은 대개 열악한 주거 환경에 거주하면서, 성인의 실용적이고 관리적 사고 중심으로 이루어진 방 배치에 따라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동들은 독립된 공간이 없이 거의 모든 가족 갈등과 걱정에 노출되어 있었고, 부모의 심리적 고통이 아동에게 전이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관리라는 개념으로 배치된 주거 환경은 자연스레 아동을 애어른을 만드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빈곤가구의 부모들에게도 잘 인지되고 있어, 가장 절실한 변화가 필요한 것을 물으면 주거라고 응답하고 있었다. 아동이 좋은 환경에서 나이에 맞는 발달과 성장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리공간으로서의 주거가 아동의 권리 중심으로서의 주거로서, 공간에 대한 사고가 바뀔 필요가 있어 보인다.

2.3 교육: 수저계급론

최근 한국 사회에서 아동들이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위해 ‘수저계급론’ 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는데, 본 연구에서도 이러한 수저계급론을 지지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관련된 경험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흙수저 계급론을 설명할 수 있는 빈곤층의 경험들은,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이 교육이나 꿈의 선택과 같은 기회의 결핍을 가져오게 되어, 미래의 삶의 어려움과 연결될 수 있는 경험들이었다. 또한 경제력 이외에도 부모의 건강이나 교육 수준에 따른 지원 수준도 차이가 나고 있어,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과 고착화의 가능성 역시 드러나고 있었다. 부모 역시 지금의 환경에서 아동들이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생활’을 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아동 역시 ‘그냥 (앞이) 안보이는’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하며, 가난이란 ‘자식에게 빚밖에 물려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절규하기도 한다. 특히 저소득층의 계층 고착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경험적으로 진술되고 있다는 점은, 다시금 이들 계층의 아동들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에 대한 보다 세심한 접근을 요하고 있다.

2.4 애어른: 어른스런 아이도 그저 아이일 뿐

양육과 가족관계에서 범주화되어 나타난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빈곤과 관련된 다차원적인 경험들은, 빈곤가구 내에서 약화된 가족기능이나 부모의 역할의 틈새를 초래한다. 이때, 이러한 틈새를 메우고 가족의 체계를 유지하려는 아동들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거나 가사일을 돌보는 등의 부모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때로는 가구 내의 어려움을 부모와 함께 나누고 고민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가족해체와 빈곤의 과정을 함께 겪은 아동의 경우, 배우자가 없는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기둥이 되어주는 어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모화나 배우자화 같은 형태로 ‘애어른’의 모습을 띠고 있는 아동들은, 자신의 삶이 가족가치의 실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자신을 가족의 욕구를 위해 희생하게 되고, 이 때문에 자신의 발달과정이 지연되고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부모나 형제로부터 충족시켜야 할 자신의 관심이나 욕구, 보살핌을 희생시키면서 세대 간의 경계가 침범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29].

실제로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사례들은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가구 내에서 감당 못할 어른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부부관계의 조정자의 역할이나, 동생과 엄마를 돌보는 가장의 역할, 남편처럼 부모를 대하는 자식의 모습이나 자신의 꿈보다는 엄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습 등을 통해 ‘애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애어른’은 실제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율성이 아직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아동들의 자연스런 발달을 저해하기도 하였다. 또한, 성장하면서 부모의 권위나 양육을 벗어나며, 때로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족을 대하게 되기도 하였다. 애어른으로 성장한 한 성인의 예는, 빈곤 환경에서 애어른이 되는 것이 대견한 일이기보다 아동기를 상실한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2.5 꿈꾸는 방법: 되면한다

상대적으로 결핍된 기회와 경제적 어려움, 그 안에서 애어른으로 자라나는 아동들은 주어진 경제형편의 경계 내에서 꿈을 제한하거나 보류하며, 보다 현실적인 탈빈곤을 목표로 꿈을 수정한다. 큰 꿈을 가지는 것은 부모에게 미안한 일이고, 부모 역시 지원하지 못하는 꿈에 대해서 아동에게 미안한, 즉 꿈이 서로가 미안한 일이 되기도 하였다. 연령대가 높은 아동들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고, 실패하여 자책하기보다는 작은 성공을 바란다. 부모들은 아동의 꿈이 좁아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부를 너무 잘하여 비싼 대학 등록금을 준비할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선다. 가능하고 안전한 꿈을 추구하는 이러한 경험은 좋아하는 꿈을 찾아 시도해보겠다는 모험을 허락하기보다, 될 것 같은 꿈을 찾아 시도해보는, 안전한 꿈을 꾸게 만들고 있었다.

2.6 그래도 가족: 소소한 일상이 행복

아동빈곤은 부모가 아동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부모로서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움을 가져오는 경험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모들이 힘든 경험을 견뎌내는 원천 역시 바로 아동의 존재였다. 부모들은 은연 중에 아동들에게 부모의 역할, 배우자의 역할과 같은 어른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며, 아동들 역시 이러한 어른의 역할을 내면화하며 가족체계의 틈새를 메우고 관계를 유지하였다. 부모님의 케어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지 못하는 아동에게 가족이란, 스스로 홀로서게 하는 이유이자 때로는 감당 못할 어른 역할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가족은, 그야말로 자신의 버팀목이며,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의 기억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의 근원이었다.

V. 결론

본 연구는 빈곤가구 내의 성인과 아동들에 대한 심층 면접을 실시하여, 아동빈곤 경험을 다차원적으로 기술하고 현상학적으로 분석한 뒤, 도출된 의미의 본질을 주제분석으로 구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가 제시하는 정책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빈곤이 단순 돈없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같은 경험이자 트라우마라는 주제는, 빈곤정책 에서 소득보장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래세대를 키우는 빈곤가정을 위해 보다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데, 빈곤아동뿐만 아니라 가족 체계 관점에서 부모에 대한 접근이 동시에 고려될 필요가 있다.

둘째, 빈곤아동이 있는 가구에 대해, 아동 발달 관점에서 적절한 주거기준과 주거환경 개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행 국토해양부의 최소 주거면적, 필수설비 기준, 구조 성능 및 환경 기준에 따른 최저주거기준이, 아동의 발달과 공간에 대한 권리 차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셋째, 빈곤아동들의 인적자본 형성과 꿈을 지지할 수 있도록, 욕구에 부합하는 적극적인 교육지원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빈곤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정책을 통해 사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교육 지원책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지원가능하도록 하고, 부모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다양한 꿈을 접할 수 있도록, 꿈교육 프로그램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넷째, 빈곤가구 내에서 부모의 고통이 아동에게 내재화되거나 빈곤아동이 애어른으로 성장하는 매커니즘에 대한 다양한 개입이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 지지를 위한 프로그램 외에도 빈곤아동이 아동기라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아동들의 문화경험이나 여가활동 경험이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는 점은, 문화누리카드 한도 상향 및 아동들의 여가와 또래활동에 대한 전향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아동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꿈을 지지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아동들이 경제적 기반이 없으면 고등교육이나 진취적인 시도를 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은, 미래적 자산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빈곤의 대물림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이러한 차원에서 빈곤아 동의 미래적 자산형성을 지원하여 출발선에서의 격차를 줄여주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현재 보호대상 및 기초수급가구에 한정되어 있는 아동발달계좌의 수준과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가족과의 일상이 행복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가족체계를 지지하는 빈곤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 특히 소득의 빈곤을 넘어서 시간 부족에 따른 부모-자녀 관계의 결핍이나, 여가나 양육의 결핍을 논의할 수 있는 시간빈곤 개념은, 부모의 경제적 결핍이 시간결핍과 맞물리는 빈곤가구 현실에서, 빈곤아동의 발달을 위해서라도 매우 유용한 정책적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차원적인 아동빈곤 경험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질적연구를 통해 분석한 본 연구는, 주요 개념을 조작화하지 않고 개방하여, 그 개념이 모호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연구에 참여한 아동들의 발달 상태나 빈곤 상태의 정도에 대해 양적연구처럼 통제하거나 유형화한 것이 아니어서, 본 연구의 발견들을 일반화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내부자의 시각에 집중하여 의미를 구성하고 본질에 접근하려는 현상학적 접근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연구가 사회정책에서 아동발달에 대한 또 다른 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이러한 질적연구가 빈곤아동의 정책수 요에 기반한 정책 대안을 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본 논문은 2019년 한림대학교 연구비(HRF-201902-001)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며, 본 연구자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아동가구의 빈곤경험과 실태 연구에서 생성한 자료를 활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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