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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전비기(五倫全備記)》의 창작과 전파에 관한 재고찰

A Study on the creation and dissemination of Wulunquanbei-ji through new materials

  • 발행 : 20190000

초록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오륜전비기(五倫全備記)》의 창작과 간행, 각색 그리고 전파의 문제를 재구해 보았다. 이로부터 중국희곡의 조선 수용의 독특한 사례를 살필 수 있었고, 그 창작, 개작 및 전파 과정을 통해 중국연극사의 인식을 더할 수 있었으며, 특히 명초 연극사의 공백을 채워가는 의미가 있었다. 《오륜전비기(五倫全備記)》는 구준이 삼십 세 때 과거에 낙방하고 여의치 않게 남경에 머물다가 민간의 공연을 보고 연극의 감화력에 대해 느낀 바 있어 민간에 유행하던 남북곡의 체제로 창작한 작품이다. 대부분의 희곡 작품처럼 과거부터 전해오던 민간의 이야기를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구상한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나름 연극적 효과를 고려하였으나, 당시 문단이나 극단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의 생전에 이미 그의 자서와 범례를 포함하는 판본이 간행된 것 같다. 주변에서 이미 성리학의 대가였던 그의 명성에 영향을 끼칠까 봐 염려하는 기사도 보인다. 그러나 일부 곡들은 인정을 받아 전파되고 희곡 선집에도 수록되었으나, 공연을 위해서는 각색의 필요가 있었다. 이미 구준은 이 세상에 있지 않았을 것이며, 청전부(青錢父)가 골계적인 내용을 보완하여 수정 간행했음을 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로써 《오륜전비기(五倫全備記)》는 민간에서 남희연출본으로 유통되고 공연되며 조선에 전파된 것 같다. 그 공연을 본 장정(張情)이 재간행하면서 서문을 썼고, 그 판본이 다시 조선에 전파되었다. 규본 서에서는 그 판본이 널리 공연되는 것을 목격하고 서문에 그 내용을 담았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간행되었는데, 구준 자서와 범례만 수록한 것이 계본이고, 두 편의 서와 1편의 발을 수록한 것이 중도본이며, 규본은 현재 1편의 서와 범례 일부만을 수록하고 있으나 불완전한 판본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중도본은 19세기 말에 간행되어 프랑스에 보존되어 있는 선본이다. 중국희곡이 조선에서 중국어교과서로 수용되면서, 독특한 체례로 간행되어 여전히 이른 시기 남희 연출본의 면모를 보존하고 있어 큰 의미가 있다.

明初說教劇 《五倫全備記》的評價, 一直有毀譽參半, 否定意見更多. 1994年本人報告韓國奎章 閣圖書館本而引起討論, 但之後沒有更多材料進一步說明問題而討論也停止下來了. 但最近又發現 新材料, 可以澄清久擱著的丘濬 《五倫全備記》一案了. 根據新發現的兩個版本包括一篇序和凡例 三條半及一篇跋, 可以說明 《五倫全備記》是在景泰元年庚午年(1450)丘濬三十歲時南京寓言軒為 '世教'採用南戲形式而創作的. 第一次印行早在丘濬在世時, 後來經青錢父者亦在庚午(1510)改編付 與演出和印行, 再後的庚午(1570)張情不但說出該劇演出的信息, 還假錄此改編本并寫序肯定 '化民 成俗之意'. 傳播到朝鮮的就是后兩個本子, 都是改編本系統. 早期接受的方式是傳抄及改寫成小 說, 嘉靖初被選為譯官們的漢語教科書, 屢次被刻印, 因此留存幾種版本, 還被翻譯出版 《五倫全備 諺解》. 本文通過對 《五倫全備記》的創作、改編到傳播接受問題的澄清, 確認了 《五倫全備記》的 作者爲丘濬, 又說明了這文人的南戲劇本為適應觀眾而經過改編, 得到舞台生命的經過, 及傳播到 朝鮮之後的接受情況. 希望本文對久在缺如的中國戲劇史中明初部分增加認識有所幫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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