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이 연구는 조선시대 경북지방 반가(班家)에 사용된 평난간을 대상으로 난간의 유형, 구성요소, 지역성 등 을 고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지배층이었던 양반사대부가 생활했던 반가애서 난간은 거주자의 추락 방지 등 안전을 위해 설치하는 목적 외에도 주택의 위계와 권위 및 거주자의 신분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의장적인 요소로 중요했다. 조선시대 건축에서 난간은1) 전통건축 중 궁궐·누정· 관아․일부 반가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 연구대상인 경북지방 반가에 설치된 평난간 또한 추락을 방지하는 기능적인 목적 외에 주인의 사회적 지위나 권위, 경제력 및 안채와 사랑채 등 주요 건물의 위계를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수직적 신분제도 및 상하 서열은 주택의 공간구성과 건축 외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반가의 경우 설치 위치와 가장의 지위 및 출입동선에 따라 난간 형식, 장식성, 구성요소 등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현존하는 경북지방 반가에 설치된 평난간을 대상으로 난간의 형식과 구성요소, 장식성, 지역적 특성 등을 고찰하는데 있다. 연구대상은 경북 지방에 남아있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시대 반가의 평난간이다.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전국의 반가를 대상으로 연구하기에는 관련 분야의 기초 연구가 미진하여 1차적으로 문화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경북지방 반가 중에서 평난간이 남아있는 32동2)의 반가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표 1>)
표 1. 연구대상 목록
이 연구에서는 평난간의 설치시기와 반가의 건립 시기가 일치한다고 가정하였으며, 연구대상 반가의 건축 시기는 문화재청 자료 및 정밀실측 조사보고서의 기록을 토대로 하였다. 이들 반가의 상량문이나 기존 각종 조사보고서에는 난간의 설치시기와 증설시기, 수리시기 등에 대한 기록이 없어 연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연구 방법으로는 경북지방 반가에 남아있는 평난간을 실측조사해서 얻은 실증적인 자료와 대상 반가의 정밀실측조사보고서, 각종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평난간의 세부형식별 사용시기와 특성을 고찰했다.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안채, 사랑채, 별당에 설치된 평난간을 조사하고, 이를 세부형식별로 구분하고 그 특징을 고찰하였다. 평난간의 조형특성과 장식성 및 지역성은 비교 고찰을 통해 밝혔으며, 또한 궁궐 건축에 사용된 평난간과 비교를 통해 경북지방 반가에 설치된 평난간의 제 특성을 고찰하였다.
표 2. 선행연구 목록
한국 전통건축의 난간에 관한 선행연구는 총 6편으 로, 이들 논문의 논제와 연구내용은 <표 2>와 같다. 선행연구는 신정진(1977), 최영철·홍승재(1898), 김태연·윤재웅(1999), 최영철(2000), 김동열(2014), 전종우 (2016) 등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이들은 궁궐과 정자에 설치되어 있는 난간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였다. 전통주택의 난간에 관한 연구는 1999년에 김태연·윤재웅의 연구가 유일하다. 김태연의 연구는 전국에 남아 있는 전통주택의 계자난간과 평난간을 대상으로 청판의 풍혈, 하엽 등 의장적인 몇몇 요소를 위주로 고찰한 것으로 반가의 평난간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2. 난간의 역사와 구성요소
2-1. 평난간의 발생과 변천
전통건축에서 난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신정진(1977)3)이 신석기 시대 후기 고상식(高床式) 구조물에서 사람, 물건 등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주남철은 고구려의 장군총(將軍塚: 4C 후반~5C 전반) 정상부의 석재에 남아있는 원형 구멍을 난간 동자주를 고정했던 장부 구멍으로 주장한 바 있다.4) 위 주장에 따르면 5세기 전반 이전에 이미 평난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때의 난간에 관한 자료로는 석탑이나 사리구(舍利具) 등에 모각(模刻)하거나 설치한 평난간의 사례를 비롯 경주 동궁과 월지 터에서 목재 교란편(片)이 발굴되었다.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초기 건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파(破)卍자형 교란편(片)에 의해 당시 건물에 평난간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고려시대 석탑과 사리구에 평난간을 설치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조선시대 건축물 중 궁궐·관아·누정·반가 등에는 사용된 풍부한 평난간 실례가 남아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건물에는 다양한 형식의 평난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이후 평난간은 궁궐건축과 누각과 정자를 비롯 양반사대부의 반가(班家)에 설치되어 추락 방지 및 위 계와 거주자의 사회적 신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2-2. 평난간의 구성요소
평난간은 계자난간보다 단순하고 간략한 형태가 특징이며, 난간상방 위에 하엽을 놓고 그 위에 난간대를 올려 놓은 형태이다. 난간부재의 구성 방식과 형태에 따라 크게 머름형, 교란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 평난간으로 나뉜다.
대개 머름형 평난간은 대개 난간대·법수·난간동자·난간상방·난간청판·난간하방으로 구성되어 있다.5) (<그림 1>) 난간대는 평난간의 가장 상단에 놓이는 수평재로, 단면이 둥글어 돌란대라 하기도 한다. 반가의 평난간에서는 대개 난간대가 난간상방의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 법수(法首)는 난간의 좌우 끝부분에 놓인 수직재로 난간의 끝부분을 마감하는 역할을 하며, 법수의 높이는 난간동자보다 크며, 대개 머리 부분을 깎아 장식했다. 난간 하방은 난간상방과 같은 형태의 수평재로 평난간을 마룻바닥에 고정하는데 사용된다. 난간청판은 난간동자 사이를 막아 대는 판재로, 크게 청판 중앙에 풍혈(風穴)을 뚫어 꾸민 것과 풍혈을 새기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그림 1. 머름청판형 평난간의 형태와 구성 부재(군자정)
이밖에 교란형 평난간은 머름형과 달리 난간청판 부분에 亞자, 卍자 모양의 난간살대를 넣어 꾸민 것이다. 교란형 평난간은 난간대·법수·하엽·난간동자·난간상방·난간살대·난간하방으로 구성되며, 난간살대의 짜임에 따라 卍자교란·亞자교란·파(波)卍자교란·빗살교란·X자교란 등으로 세분된다.6) 연구대상 반가의 교란은 대개 난간대를 받는 장식적인 요소인 하엽 및 난간하방이 생략된 검박한 의장과 구성이 큰 특징이다.
3. 평난간의 유형 및 설치 위치
3-1. 평난간의 유형 분류
경북지방 반가에 설치된 평난간은 전체형태, 난간대의 살짜임, 세부 구성요소에 따라 크게 머름형, 교란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의 4유형으로 구분된다.(<표 3>) 이들 4유형의 평난간은 다시 세부형식의 차이에 따라 8가지의 세부 유형으로 나뉜다.
아래 <표 3>을 중심으로 평난간의 세부유형을 살펴보면 먼저 머름형 평난간은 난간청판에 새기는 風穴의 有無에 따라 머름청판형과 풍혈투각형으로 세분된다. 교란형은 난간살대의 살 짜임에 따라 卍자형, 亞자형, 기타형으로 구분된다. 이밖에 머름·살대복합형과 간이살대형 평난간이 있으며, 이중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은 머름형과 유사하나 난간대를 받치는 난간동자를 위로 길게 뽑아 올려 난간대를 받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머름·살대복합형은 다시 난간청판의 風穴 유무에 따라 풍혈 있는 살대+투각형과 풍혈 없는 살대+청판형으로 구분된다. 끝으로 간이살대형 평난간에는 세로살대 위주의 세로살대형 평난간이 있다.(<표 3>)
표 3. 평난간의 세부 유형과 실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경북지방 반가에 설치된 평난간8)은 크게 머름형, 교란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의 4유형으로 구분된다. 이는 다시 난간청판의 풍혈 유무와 살대의 살짜임에 따라 머름형 평난간은 머름청판형과 풍혈투각형 그리고 교란형은 卍자형 亞자형 기타형의 3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은 살대+청판형과 살대+투각형으로, 간이살대형 평난간은 세로살대형으로 나뉜다.
이들 평난간의 중 가장 많이 설치된 평난간은 교란형으로, 사랑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안채 5, 사랑채 13). 다음은 머름형 11동(안채6, 사랑채5), 머름·살대복 합형 10동(안채 4, 사랑채 6), 간이살대형 4동(안채 3, 사랑채1)의 순으로 조사되었다9).(<표 4, 5>참조)
3-2. 평난간의 부재 결구 및 유형별 사용 시기
평난간을 구성하는 난간대-난간대, 난간대-판재, 난간대-난간동자, 마루귀틀-난간동자 등의 결구에 다양한 이음과 맞춤법이 사용되었다. 난간대는 통재로 처리하기 어려워 대개 이어서 사용했다. 맞댄이음 또는 반턱이음 기법이 주로 사용하여 난간대를 길이방향으로 연결하여 사용했다. 연구대상 반가에서는 맞댄이음보다 반턱이음(<그림 2>의 ①)을 사용하여 난간대를 이었으며, 철물(<그림 2>의 ②)를 사용하여 이음부를 더욱 단단하게 고정한 사례도 있었다.
그림 2. 난간대의 반턱이음 및 철물 보강
그림 3. 평난간에 사용된 각종 장부맞춤
수직재인 난간동자나, 법수 등을 마룻바닥 또는 수평재와 결구할 때는 주로 장부맞춤을 했다. 즉 난간동자나 법수를 마루귀틀 또는 난간대와 짜 맞출 때는 주로 통장부맞춤, 외장부맞춤, 쌍장부맞춤 중 하나를 선택하여 사용했다.(<그림 3>) 이 중 통장부맞춤(<그림 3>의 ①)의 사례는 경주 양동마을 두곡고택의 평난간에서 확인할 수 있고, 다른 장부맞춤은 경주 양동마을 사호 당 고택의 평난간에서 사용되었다.(<그림 3>의 ②, ③)
이처럼 평난간의 부재 결구를 살펴보면 난간대의 이음에는 반턱이음, 난간동자나 법수를 마룻바닥에 고정할때는 통장부맞춤, 외장부맞춤, 쌍장부맞춤 등의 맞춤법이 사용되었다. 쇠못이나 띠쇠를 사용하여 보강하기도 했는데, 쇠못은 마루귀틀에 난간동자를 고정하거나 난간대와 난간동자를 긴결할 때 사용되었다.( <그림 4>의 ①) 띠쇠는 연구대상 중 안동 진성이씨종택의 사랑채와 별당사랑채에만 사용되었다.(<그림 4>의 ②)
그림 4. 평난간에 사용된 각종 철물
한편 연구대상 반가에 설치되어 있는 평난간의 유형별 사용 시기를 살펴보면 일정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표 1,4,5>참조) 머름형 평난간은 주로 하회양진당(1650년 중수)·하회충효당(1516년)·안동 의성김씨종택(1588년 중수) 등 16세기에 건축 또는 수리된 바 있는 연구 대상 중 오래된 반가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머름형 평난간은 18세기 이후 용례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19세기 중반 이후 다소 증가한다.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반가로 18세기에 지은 안동 하회마을의 하동고택(1836년)과 화경당고택(1862년) 및 양동마을 사호당고택(1840년)·안동 권성백고택(1800년말)을 들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머름형 평난간은 16세기 또는 그 이전 반가에서 일찍부터 사용된 고식(古式)의 평난간이나 그 후 19세기까지도 꾸준히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교란형 평난간은 연구대상 반가 중 경주 양동향단(1580년경)에 처음 사용된 후 18세기 초반에 들어와 양동마을의 상춘헌고택(1730년), 두곡고택(1730년), 봉화 송석헌고택(1700년대), 봉화 만산고택 등에 비교적 널리 사용되었으나 머름형에 비해 수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이처럼 교란형 평난간은 16세기 말부터 반가에 설치되었으며, 그 후 17세기에는 설치 빈도가 감소하다가 18세기 이후 19세기에 들어와 교란형 평난간의 설치 빈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밖에 머름·살대복합형(주로 살대+청판형) 평난간은 안동 의성김씨종택(1589년중수)과 상주 양진당(1628년,1808년 중수)·봉화 송석헌고택(18세기)·안동 권성백고택(19세기)에 사용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은 16세기말에 등장하여 17~18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18세기 초에 많이 사용되었다.
3-3. 평난간의 설치 위치와 유형
(1)안채
연구대상 반가 32동 중 16동(22개소)10)의 안채에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평난간의 설치 위치는 대개 안방 정면의 툇마루 또는 쪽마루 끝, 건넌방 정면의 툇마루 또는 함실마루 끝, 부엌에 인접한 다락마루 끝 등으로 나타났다.(, ) 주 출입 동선이 통과하는 대청 주위보다 대개 온돌방에 면한 쪽마루 또는 툇마루에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난간이 거주자의 사회적 지위와 위계를 상장하는 요소로 중요했다는 점을 잘 말해준다.
그림 5. 안채에 설치된 머름형 평난간
안채에서 평난간의 설치 빈도를 보면 건넌방 정면 마루 끝(함실마루 포함)에 가장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12/22개소)11) 다음으로 부엌에 인접한 식료품 등을 수장하는 누다락 앞쪽에 설치된 것이 6개소, 안방 정면 툇마루 또는 쪽마루 끝에 설치된 것이 4개소로 나타났다. 건넌방 전면의 함실마루 등에 평난간을 많이 시설한 것은 그 방이 안노인의 거처공간으로12), 안노인이
표 4. 안채의 평난간 설치 위치와 유형
함실마루에 앉아 소일하며 가정 대소사를 챙기는 것을 고려할 때 거주자의 안전과 지위 등을 고려하여 거기에 머름청판형 평난간을 많이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누다락 앞에 설치하는 난간은 수장하는 물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아울러 앞이 개방된 높은 누다락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 평난간의 설치 사례를 하회 충효당 안채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건넌방 앞쪽 마루에 머름청판형, 누다락 끝에 풍혈투각형 평난간이 각각 설치되어 있다. 건넌방 앞쪽 마루(2칸) 끝에 시설한 머름청판형 평난간은 높직한 건넌방 앞쪽 마루를 사용하는 거주자의 안전과 사용자의 위계를 고려한 것이며, 누다락 끝에 시설한 풍혈투각형 평난간은 의장적 효과 및 사용자의 안전과 물품이 낙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에 사용된 평난간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머름형이 9/22개소로 가장 많고, 다음이 교란형(5/22개소), 머름·살대복합형(4/22개소), 간이살대형(4/22개소)의 순이었다. 머름형 평난간 중에도 난간청판에 풍혈을 새기지 않은 간략하고 고졸(古拙)한 머름청판형(7/22개소)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풍혈을 새긴 풍혈투각형은 2/22개소로 소수에 불과했다.
이같이 경북지방 반가의 안채에는 풍혈이 없는 머름청판형 평난간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장식성이 배제된 검박하고 고졸한 난간으로, 평난간 중에서도 높이도 가장 낮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사치를 금하고 검박함을 숭상했던 유교적 생활윤리와도 잘 부합했으며, 따라서 반가에서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교란보다 간략한 머름청판형 평난간을 특히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2)사랑채
사랑채(별당포함)에 사용된 평난간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대개 사랑방 앞쪽의 툇마루 끝 또는 사랑방+사랑대청 앞쪽의 마루 끝에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는 사랑채나 별당의 측면에 길게 설치된 경우도 있었다. (<표 5>,<그림 6,7,8,9> ) 특히 사랑대청 앞에 길게 평 난간을 설치한 것은 안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림 6. 양동마을 송첨종택 사랑채의 평난간 (출처: 한국의 전통가옥 기록화보고서(25))
평난간이 설치된 사랑채는 연구대상 32동 중 18동 (28개소)으로 나타났다. 사랑채에는 머름형, 교란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 평난간이 모두 설치되어 있으나 평난간의 경우 세부형식에서는 안채와 다소 차이를 보였다. 즉 사랑채에는 머름투각형을 비롯 卍자 교란, 亞자교란, 기타교란, 살대+청판형, 살대+투각형, 세로살대형 평난간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안채에 잘 사용되지 않는 난간형식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接賓客의 공간으로 가장이 거주하는 사랑채에는 의장적이고, 장식성이 큰 난간인 풍혈투각형, 亞자교란,
표 5. 사랑채의 평난간 설치 위치와 유형
살대+투각형 평난간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동선의 공간에 시설되는 난간의 형식을 통해 家門과 家長의 사회적 지위 등을 외부인에게 전달하려는 주인의 건축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사랑채에는 평난간 중에서 권위와 위엄, 지위 등을 표현하기 용이한 교란형식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 7. 예천권씨초간종택 별당 남측의 평난간
연구대상 반가의 사랑채에는 장식적인 亞자 교란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채에는 亞자형 교란보다 장식성이 낮은 卍자형 또는 간략한 기타형 교란이 사용되었다. 이밖에 간략한 형태의 살대+청판형 평난간의 경우 사랑채에는 난간청판에 풍혈을 새긴 장식적인 살대+투각형 평난간이 사용되었으나 안채에는 검박한 머름청판형 또는 살대+청판형이 채용되었다.
그림 8. 안동임청각 군자정 측면에 시설한 평난간
그림 9. 안동 도암종택 사랑방 정면의 평난간
이처럼 외부인의 출입이 잦은 사랑채에는 장식적인 亞자형, 卍자형 교란 및 난간청판에 풍혈을 새긴 풍혈투각형 평난간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반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안채에는 장식성이 낮은 머름청판형 평난간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안채와 사랑채의 상이한 공간 특성과 용도가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즉 가장의 거처로 접객공간으로 사용된 사랑채에는 가장의 신분과 가문의 사회적 지위 등을 표현하기 위해 안채보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교란을 적극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랑채에 외관이 간단한 간이살대형 평난간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안채와 사랑채(별당 포함)의 평난간은 그 형식과 설치 위치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사랑채에 화려하고 장식적인 亞자 교란이 많이 설치된 것은 사랑채가 가장 (家長)의 거처로 접객과 사회활동의 중심이라는 독특한 공간 성격이 반영된 결과이라고 할 수 있다.
4. 평난간의 장식성과 지역성
4-1. 평난간의 장식성
경북지방 반가에 설치된 평난간은 매우 소박하고 검박하다. 궁궐의 평난간13)과 비교해보면 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이는 경북지방 반가에는 크게 머름형과 교란형 평난간을 중심으로 또는 복합된 머름·살대 복합형, 간이살대형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반면 궁궐의 평난간도 머름형과 교란형이 대부분이나 연구대상 반가에 설치되어 있는 머름·살대 복합형, 간이살대형 평난간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림 10. 궁궐의 교란형 평난간과 난간 청판의 풍혈
그림 11. 평난간의 난간청판에 새긴 풍혈의 문양 비교
교란형 평난간도 형태와 구성방식 및 살짜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경북지방 반가의 교란형 평난간은 높이가 낮고 난간살의 짜임이 卍자형, 亞자형 위주여서 궁궐의 난간에 비해 전반적으로 검박한 형태가 특징이다. 반면 궁궐에 설치된 교란은 卍자형, 亞자형 외에 빗살, X자형 등 난간의 살 짜임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매우 화려하고 다양하다.(<그림 10>)
경북지방 반가의 경우 난간청판에 대개 간략하고 고졸한 안상형 풍혈이 투각되어 있으나 궁궐의 경우 <그림 11>의 ①과 같이 다양한 화문(花紋)을 조식하여 그 형태와 구성이 매우 장식적이다. 뿐만 아니라 궁궐의 평난간은 단청을 올려 화려하게 장식한 반면에 가사규제에 따라 단청할 수 없는 경북지방 반가의 평난간은 목재의 재질감과 목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림 12. 궁궐과 반가의 평난간 형식 비교
그리고 경북지방 반가의 머름형과 교란형 평난간은 공히 난간청판이 단층(單層)이나 궁궐에서는 난간청판을 겹으로 놓아 복층의 난간을 구성한 사례도 많다. 심지어 머름형과 교란형 평난간을 복합하여 복층의 평난간을 구성하기도 했다. 즉 창덕궁 승화루의 난간 (<그림 12>의 ①)은 풍혈투각형 난간 위에 2단의 교란형 평난간을 올려 높은 평난간을 구성한 것이다. 이 밖에 궁궐에서는 3, 4단의 높고 화려한 평난간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에 비해 경북지방 반가의 평난간의 조형적 특징은 단층의 낮고 소박한 형태를 일관되게 추구한데 있다.(<그림 12>의 ②)
또한 궁궐에 사용된 장식적이고 화려한 교란형 평난간은 경북지방 반가의 간략한 평난간에 비해 구성형식과 부재 수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궁궐건축의 평난간은 난간대, 법수, 하엽, 난간동자, 난간상방, 난간청판, 난간하방 등의 부재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부재의 치목, 결구도 매우 정교하여 왕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처럼 궁궐의 평난간이 매우 장식적이고 규범적인 조형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면 경북 지방 반가의 평난간은 대개 하엽, 난간상방, 난간하방 등의 부재를 생략하고, 규범에 구속되지 않은 검박하고 대범함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반가의 평난간은 부재를 생략하고, 간략하고 검박한 조형을 추구한데 그 특징이 있다.
4-2. 평난간의 지역성
연구대상 평난간의 지역성을 연구대상 반가의 대부분이 위치하고 있는 경주시, 안동시, 봉화군의 세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14). 먼저 연구대상인 경주지역반가 중 평난간이 설치된 사례는 총 5동(8개소)이었다.15) 설치된 평난간은 머름형, 교란형, 간이살대형으로 이 중 卍자형, 亞자형 교란이 머름형 평난간16)보다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5/8)(<그림 13>)
평난간이 설치된 안동지역 반가는 11동(20개소)이며17), 이들 반가에는 머름형, 교란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 평난간이 사용되었다. 안동지역에서는 머름형 평난간의 설치 빈도가 교란형 보다 월등히 높았으며(12/20개소), 머름형 중에도 풍혈투각형이 다수를 차지했다(8/12).(<그림 14>)18) 그리고 안동지역 반가에는 소수이긴 하나 경주지역에서 사용되지 않은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도 사용되었다.
그림 13. 경주지역 반가의 교란형 평난간
그림 14. 안동지역 반가의 머름형 평난간
반면 봉화지역 반가(5동, 8개소)에는19) 교란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봉화지역 평난간의 특징은 경주, 안동지역 반가에서 볼 수 있는 머름형 평난간이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데 있다. 특히 봉화지역 반가의 경우 경주, 안동지역 반가에서 보기 어려운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이 가장 많이 사용된데 가장 큰 특징이 있다.(5/8개소) 이처럼 평난간 중에서 가장 높은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이 집중 분포한다는데 봉화지역 평난간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봉화지역 반가의 경우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이 대개 사랑채 前面에 설치되어 있으나 안동지역에서는 계단 주위나 안방 전면(前面) 등에 사용되었다. 이처럼 봉화지역 반가의 사랑채 전면(前面)에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이 많이 설치된 것은 급한 경사지에 입지하는 이 지역 사랑채의 독특한 배치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급한 경사지에 입지하는 봉화지역 반가의 사랑채의 경우 대개 전면(前面) 기단이 높고 마루도 마치 누마루처럼 높직하여 정면에서 직접 사랑채로 출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대개 사랑채의 측면 또는 배면으로 출입할 수밖에 없다. 높은 사랑마루에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생활의 안전을 위해 사랑채 정면에 키 큰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랑채의 입지 특성 및 독특한 진입 동선은 자연 사랑채 전면에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을 설치하도록 하는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그림 15. 봉화지역의 머름·살대 복합형 평난간(송석헌고택)
이처럼 경북지방 반가의 평난간에는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 지역의 지형조건과 건축형식, 진입동선 등이 영향을 미쳐 독특한 유형의 평난간이 더 많이 선호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짐작된다. 즉 경주지역 반가에는 교란형 평난간, 안동지역 반가에는 머름형 평난간이 타 유형의 난간보다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봉화지역 반가의 경우 사랑채 전면에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경주와 안동지역 반가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이 지역 반가의 독특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간략한 머름형 평난간도 지역별로 세부형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안동지역 반가에는 머름형 평난간 중 풍혈투각형이 더 많이 채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주지역 반가에 사용되지 않은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 결론
이 연구를 통해 경북지방 반가에 설치된 평난간을 대상으로 난간의 유형, 특징, 지역성을 고찰하여 얻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북지방 반가의 평난간은 크게 머름형, 교란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의 4유형으로 구분되며, 이는 난간청판의 형태와 살 짜임 등에 따라 다시 8유형으로 세분할 수 있다. 즉 머름형 평난간은 난간청판의 풍혈의 유무에 따라 머름청판형과 풍혈투각형으로 구분되며, 교란형 평난간은 난간에 사용된 살대의 구성형태에 따라 卍자형, 亞자형 및 기타형으로 세분된다.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도 풍혈(風穴) 유무에 따라 살대+청판형과 살대+투각형으로 나뉜다. 그리고 경북지방 반가의 평난간은 난간청판이 단층(單層)인 형태로, 이는 난간청판과 난간살대를 겹으로 구성하거나 복층의 머름형과 교란형을 주로 사용한 궁궐의 평난간과 확연히 구별된다. 무엇보다 연구대상 반가의 평난간은 장식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낮고 검박한 단층 위주의 평난간으로 일관해온데 큰 특징이 있다.
둘째, 평난간의 부재 결구에 이음과 맞춤법이 사용되었다. 난간대 이음에는 반턱이음 그리고 난간동자와 짜여 지는 난간대, 마루귀틀 등의 결구에는 통장부맞춤, 외장부맞춤, 쌍장부맞춤 등의 수법이 사용되었다. 마루귀틀에 난간동자를 고정하거나 난간대와 난간동자를 긴결할 때 쇠못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철물을 사용하여 평난간의 부재 결구를 보강하거나 장식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셋째, 경북지방 반가에 사용된 평난간의 유형별 사용 시기를 살펴본 바 머름형은 주로 16~17세기, 교란형은 18~19세기에 많이 채용되었다. 특히 교란형 평난간은 16세기말에 나타나 17세기에는 많이 시설되지 않다가 18∼19세기에 사용 빈도가 급격히 증가했다.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은 16세기 후반에 나타나 17~18세기까지 사용되었으며, 특히 18세기 초에 많이 쓰였다. 끝으로 평난간의 유형별 설치 빈도는 교란형 평난간이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머름형, 머름·살대복합형, 간이살대형 평난간의 순이었다.
넷째, 안채와 사랑채에 주로 사용된 평난간은 채에 따라 설치 위치에서 차이를 보였다. 안채에서는 주로 건넌방 전면의 마루 끝을 비롯 안방 전면의 툇마루(또는 쪽마루), 부엌에 인접한 누다락 정면에 주로 설치되어 있었다. 반면 사랑채(별당포함)의 경우 사랑방 앞쪽 또는 측면의 마루 끝에 주로 시설되었다. 일부 반가에서는 사랑대청 앞쪽에 평난간을 시설한 사례도 있었다. 여서이 거처하는 안채에는 낮고 간략한 형태의 머름형 평난간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반면 사랑채에는 장식적인 교란형(亞자, 卍자) 평난간이 많이 시설되었다. 외래객을 접객하는 사회적 공간인 사랑채에는 장식적이고 의장성이 높은 교란형 평난간을 설치하여 가장과 가문의 사회적 지위 등을 표현한 반면 내밀한 가족의 생활 공간인 안채에는 간략하고 검박하며 실용적인 머름형 평난간을 사용하여 조선시대 유교윤리에 맞는 생활공간의 성격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경북지방 반가의 평난간에 나타나는 지역성을 알아보기 위해 안동, 경주, 봉화의 세 지역의 평난간을 비교 고찰하였다. 그 결과 안동지역 반가에는 머름형 평난간, 경주지역 반가에는 교란형 평난간이 주로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동지역에서는 머름형 평난간 중 풍혈 투각형을 특히 선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봉화지역의 경우 대개 사랑채 정면에 경주, 안동지역 사랑채에서 볼 수 없는 키가 큰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을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면 기단이 높고 사랑마루도 누마루처럼 높아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독특한 머름·살대복합형 평난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반가의 입지 특성․배치형식․진입 동선이 난간의 설치 위치와 형식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되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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