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wooden architec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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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계획 측면에서 본 일본 목구조 교육시설의 구성특성 분석 (A Study on the Composition Features of Educational Facilities for Timber Structure in Japan with respect to Structural Planning)

  • 이주나;신은미
    • 교육시설 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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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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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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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In order to figure out the usability of various timber structures in the educational facility, the recent timber structure examples published in the Japanese architectural magazine, 'ShinKenchiku' over the past five years were surveyed. As the results, timber structures were presented in many cases of nursery schools and kindergartens overwhelmingly, and they also used in various school buildings, university facilities, and the roof structure of the school's gymnasium, with intention of having the differentiated design and space features. The examples show that span 6 to 10m is generally used with flexure structure system and flexure+compression structure system added the strut as compression members. In addition concerning stability, it was founded that the struts have an stability effect in the flexure+compression structure system, and flexure structure system examples using semi-rigid joints have open spaces liberally in two-way direction for about 9m span. For large spaces structures with span of 15~20m or more, the various structural system such as suspension structure, truss, flexure+compression, etc. was designed to overcome the material limitations of timbers and to make an design effect in structure system.

월정교의 복원적 고찰 (Restoration Study of Woljeong-gyo)

  • 남시진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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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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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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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According to documentary records Woljeong-gyo(stone bridge) is built in 760(Silla the 35th King Gyeongdeok 19) and used as original function until 1280(Goryeo the 25th King Chungryeol 6) as Chunyang-gyo. But in those days "Donggyeongjapgi" was published in 1669(Joseon Hyeonjong 10) we assume that it was lost its original function. There are four pier in the type of a ship with the same distance in the middle of river. We can see it is the site of bridge as parts of stonework of bridge are remained. In 1975 the abutments and piers are surveyed and in 1984 stone investigation twice and excavation three times which were to plan restoration were done. Now the restoration of abutments both ends are worked. For restoration of Woljeong-gyo studied documentary records and excavation recoeds were collected and examined. It helped to see the bridge in southern China twice to restore the bridge. Unearthed articles such as yeonham(a kind of member to support roof tiles) and giwa(roof tile) gave decisive clues to assume upper structure of the bridge and from Chinese bridges are helped to type of the bridge. It is certain Woljeong-gyo was ranggyo which means that upper structure was made with wooden members and the stone piers shaped of a ship below and near the abutments both ends another buildings were. Youngjocheok(the architectural measure) of this bridge is similar to gokcheok(the metal measure, 301.84mm) used now that the length of piers is 46choek(尺), the width of that is 9choek(尺), the length between two piers is 42choek(尺), the length between abutment and pier is 38choek(尺). Also we can see that entirely the length of the bridge is 210choek(尺), width is 40choek(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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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서탑 축조의 구조 원리에 관한 기초 연구 6~7세기 전반 목탑과의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Basic Study on the Building Principles of Structure in Mireuksaji Stone Pagoda)

  • 조은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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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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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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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미륵사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 창건한 사찰로 이와 관련한 창건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이(第二) 무왕조(武王條)에 언급되어 있다. 서원의 미륵사지서탑은 해체 전 6층까지의 일부가 남아있었으며 미륵사지 내의 유일한 현존 건축물로서 최근 사리장엄 발견으로 639년이라는 건립연대가 밝혀졌다. 또한 백제 사찰의 발굴조사 자료가 축적되고 동아시아의 학술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미륵사지서탑의 조영을 당시 불탑 건축의 발전 과정과 연관시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미륵사지서탑의 축조에 적용된 구조원리와 1층 평면의 형성을 중심으로 6~7세기 불탑 건축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대형의 불탑건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기초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륵사지서탑은 내부와 외부가 독립적인 개념으로 축조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고층 불탑건축에서 나타나는 구조원리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영녕사 목탑지에서 확인된 탑실심체와 같이 내부의 구조체를 형성하는 개념과 유사하게 내부 적심을 형성하고 외부 부재를 부가하는 방식으로 축조된 것이라 판단된다. 둘째, 미륵사지서탑에서는 상부의 적심부와 동시에 심주석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합 구조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영녕사 목탑과 같은 실심체의 구조보다 발전된 것으로 조팽성 불사의 심초석과 항토 실심체의 구조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혼합 구조는 황룡사 목탑이나 일본의 목탑과 같이 내외진을 전부 목구조로 형성하고 심주가 독립적으로 지지되는 구조 방식보다 선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미륵사지서탑의 경우 1층에 십자형의 공간이 형성된 것은 심주석에 위치한 사리 봉안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심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4방향의 구심적 공간이며 사리의 본질적 의미에 기인하여 백제 6~7세기의 횡혈식 석실분과 유사한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횡혈식 석실분의 축조기법은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상징적 공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인 동시에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된 서탑에 있어서 재료적 동일성으로 인하여 수용이 더욱 용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산 육송 특대재 수급 현황 분석 및 문화재 수리의 활용에 관한 연구 (A Study of the Supply of Large Korean Pine Timber)

  • 정영훈;윤현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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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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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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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그동안 우리나라 문화재 수리에 필요한 국내산 육송 특대재는 국내에서 수급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북미산 더글라스 퍼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많았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국산 육송 특대재보다 구하기 용이한 북미산 더글라스 퍼로 대체하여 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문화재 원형 보존의 원칙 훼손뿐만 아니라 재료의 진정성 측면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국산 육송 특대재의 수급 현황을 기존 연구와 목재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점검해보고, 실제 국산 육송 특대재가 부족한지와 부족하지 않다면 어떠한 원인으로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사용되기 어려운지를 파악하여 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사용되는 국산 육송 특대재의 취득 경로를 살펴보고, 산림청 산하 공공 기관들과 문화재청의 연구 자료, 제재소의 견적가를 수집하여 원목 가격의 변동 폭을 조사하였다. 또한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사용되기 어려운 원인을 기존 문헌 연구와 문화재 수리업계 종사자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기존 문헌과 인터뷰 조사 결과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주된 원인으로써 첫 번째로는,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필요한 수량보다 부족하여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쓰이기 어렵다는 현장의 의견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국산 육송 특대재의 비축량은 충분하나 국산 육송 특대재의 가격이 입찰제도와 견적의 문제로 구매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두 가지 의견에 대한 검토 결과, 첫 번째 원인보다는 두 번째의 원인이 국산 육송 특대재의 문화재 수리 현장 적용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앞선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써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의 국산 육송 특대재의 공급과 실거래가 조사 등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해결 방안을 통해 국산 육송 특대재가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목조문화재에서 재료의 진정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6~8세기(世紀) 백제(百濟)·신라건축(新羅建築)의 기초부(基礎部) 비교연구(比較硏究) 사찰유적(寺刹遺蹟)을 중심(中心)으로 (A Comparative Study on the Part of Foundation between Baekje and Silla from 6th to 8th Century)

  • 한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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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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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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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건축학적 관점에서 고대건축의 기초부에 대한 고찰을 하기 위하여 건축유구의 확인이 가능한 백제 및 신라의 사찰유적을 중심으로 초석형태와 초석을 정치시키기 위한 적심, 하부기초의 유형과 시기적 변천의 과정을 살펴보고, 백제와 신라의 건물성격에 따른 기초 적심 초석의 시공기법의 차이점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조사대상으로는 기발굴되었거나 현재 발굴중인 유적가운데 사찰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조사대상은 아니지만 일부 유적의 자료는 참고로 활용하였다. 특히 유구의 직접적인 확인이 불가능한 고구려의 유적은 북한에서의 연구자료를 참고자료로 활용하였다. 현지확인이 가능한 유적은 현지조사를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정비 등으로 현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는 발굴보고서를 바탕으로 조사하였다. 조사 후, 각 유적에서 사용된 초석 및 그 하부의 적심과 기초를 각 유형별로 정리 분류하고 이를 시기별 사용건물별로 변천과정을 고찰하였으며, 유형 및 건물성격에 따른 특성과 백제 신라의 건축기법을 비교 고찰하였다. 그 결과 백제와 신라는 기초, 적심, 초석의 사용에 있어서 서로 차이를 보이며, 또한 그러한 차이점을 통하여 황룡사의 목탑이외의 건물에서도 백제건축기술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비교적 성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소수의 유적만을 대상으로 고찰된 것으로 향후 보다 많은 건축유적의 발굴성과에 따라 축적되는 자료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 남방지역 누교(樓橋)의 공간구성과 조형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f the Space Composition and Formation of Roo Bridges in Southern China)

  • 장헌덕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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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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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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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A bridge is a space used as a passage. This space should be functional, solid, and beautiful. Since the beginning of human life, bridge architecture has given importance to function as a connection from one place to another. Stepping stones in the stream were the connections between divided spaces in the agricultural life, the bridge on the entrances of a town was the place for separation, expectation, and communication for people gathering around the community. Southern Chinese provinces such as Zhejiang, Hunan, Yunnan, and Guizhon is famous for it's spectacular scenary, and tribes like the 'Miao' and 'Dong' live in a cooperate community. The 'Dong' tribe is one of the 'Yue' genealogy where the people have settled down in this place in the days of 'Qin Shi Huang(Qin dynasty)'. As the population of the 'Dong' tribe growed, they used a bridge to connect town to town. The scale became larger with additional design, giving splendid achievement to bridge architecture. The 'Fungyu bridge' in Tongdao and 'Chungyang bridge' in Sanjiang are some fine examples. The Fungyu bridge could be defined as a bridge which blocks wind and rain, this has the same function as the lounge bridge in Taishun located in southern Zhejiang province. In Taishun, 5 minority races such as the 'Dong' and 'Miao' people have been living together as a clan society for centuries on mountains as high as 1000m following their own tradition. The 'Xiliu river' flowing thorough has a variety of bridges remaining in it's original form, and it is recently known as a museum of ancient bridges. The formation of the bridges in Tongdao and Taishun shows that it is different with the arch and straight bridges remaining in Korea. In this study, it is readjusting the base data, showing plan characteristics and describing the construction of the wooden structure above the bridge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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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 전탑(甎塔)과 모전석탑(模甎石塔)의 관계성(關係性)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about the Relations between Brick Pagodas and Stone Brick Pagodas in Korea)

  • 한욱;김지현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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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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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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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 between brick and stone brick pagodas in all classes of pagoda with their construction and shape. Research objects of this study are brick and stone brick pagodas of National Treasure and Treasure and masonry pagodas that are similar to brick and stone brick pagoda. This study includes checking preceding researches, drawing questions from these preceding researches, and finding answers from these questions.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pagoda of Bunhwangsa Temple, the first pagoda in the Silla Dynasty, was built as a masonry pagoda, not a stone brick pagoda. Second, roofs of stone brick pagoda barrows from brick pagoda's techniques for performance of material and ease construction. Third, brick or stone brick pagodas' base have Type II that has low and extensive foundation with soil and stones usually. Forth, Korean pagodas are categorized by their materials, construction methods, and shapes. Wooden pagodas, stone pagodas, and brick pagodas are categorized by materials, post-and lintel pagodas and masonry stone pagodas are categorized by construction methods, and pitched roof pagodas and terraced roof pagodas are categorized by shapes. Fifth, masonry pagodas of Buddhism that have shape of multi-story building were developed from Doltap, traditional stone stack, and they advanced with brick pagodas and stone pagodas to terraced roof stone pagodas and post-and lintel base brick pagodas.

전통 목조건축 서까래의 이형적(異形的) 배치 방식 연구 (A study on the variant placement method of the traditional wooden architecture, rafter)

  • 홍은기;장헌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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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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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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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잦은 수리가 이루어지는 평연(平椽) 부분을 대상으로 서까래에 나타나는 변형의 흔적을 통해 서까래 배치에 대한 수리 방식과 변형이 이루어지는 시기 등을 고찰하고 이형적(異形的) 배치 방식이 사용된 건물의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에 덧서까래 방식의 한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던 '덧걸이' 방식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 기초 연구로써 하연(下椽)과 상연(上椽)이 엇갈려 결구되지 않고, 하연 끝뿌리에 덧도리가 사용되고 덧도리 상부에 상연이 새롭게 배치되는 방식이다. 조선 후기(18세기 중반) 이후부터 건물의 수리 중에 변형이 이루어지면서 등장하게 된 것으로 분석되었고, 19세기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덧걸이 방식이 사용된 26동의 건물을 중심으로 덧도리가 사용되지 않던 유형에서 덧도리가 사용되고 추가 보강재가 사용되는 단계로 차츰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덧걸이 방식이 갖는 구조적 특징은 크게 4가지로 첫째, 하연 뒷뿌리에 상연을 받기 위한 덧도리가 사용되었다. 덧도리의 사용은 상연을 배치할 때 하연과의 관계성이 적어져 시공상의 편리성을 제공하였고 하연의 뒷뿌리를 눌러주는 힘이 증가해 처마의 처짐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반자가 구성되어 반자 내부의 구성에 자율성이 부여되었다. 천장을 이용해 내부가구를 가림으로써 상부가구의 간소화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하연 뒷뿌리가 빠져나가는 길이에 제한이 없어지게 되었다. 또한 일부 건물에서 보이는 추가 보강재들은 상연을 한번 더 눌러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셋째, 기존 엇걸이 방식에서는 하연과의 연계성이 더 크던 지붕 기울기가 덧걸이 방식에서는 상연과의 연계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덧걸이 방식에 사용된 서까래는 상연이 하연의 굵기에 비해 얇은 특징이 나타난다.

백제양식석탑의 형성과 전개의 시발점(始發點) (A Starting Point of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Baekje-style Stone Stupa)

  • 전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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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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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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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미륵사지와 정림사지 석탑은 한국석탑의 시원인 동시에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백제석탑이다. 따라서 이 둘의 특징을 살펴보는 작업은, 넓게는 한국석탑, 좁게는 백제양식석탑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백제의 뛰어난 건축술은 기록에도 전하듯이 아비지가 신라의 국가적인 사업인 황룡사목탑의 건립에 초청된 것을 통해서 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석탑과 관련된 기술과 양식이 신라에 전파되었음도 짐작된다. 그러나 신라통일을 맞이하여 백제석탑의 양식을 공유하는 석탑들이 일순간에 단절되었다고 보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 계승 발전된다는 측면에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현재 학계에서는 여타의 백제지역 석탑들을 모두 고려시대 건립된 백제계 석탑이라는 틀로 규정하여, 일률적인 편년 아래 두고 있다. 등장요인으로는 불교의 대중화, 지방 호족의 지원, 문화의 복고적 경향 등을 들고 있는데, 과연 이것만으로 백제양식석탑이 약 300년간의 공백을 깨고 한 순간에 등장할 수 있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물론 경주지역처럼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백제양식석탑이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전개의 시발점에 초점을 맞추어, 백제양식석탑이 미륵사지와 정림사지 석탑을 통해서 형성되고, 그후 왕궁리 석탑을 통해서 전개가 시작되었음을 고찰해 보았다.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 평면형식(平面形式) 시대위치(時代位置) (A Study on the period of the Mireuk Temple stone pagoda plane type)

  • 김덕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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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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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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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미륵사지 서탑은 현존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탑이다. 현재까지 연구 진행된 결과에 따르면 미륵사지 서탑은 9층 석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규모의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탑에 대한 직접적인 창건 기록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미륵사의 창건기사가 "삼국유사(三國遺事), 무왕조(武王條)"에 연기설화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설화적인 역사의 기록은 사실성에 대한 규명에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 건축사적 측면에서 평면형식의 시대 위치에 대한 고찰은 탑의 창건 연대 규명에 하나의 가시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서 미륵사지 서탑의 양식과 계통사 연구에 근간이 된다고 판단하여 수행코자 한다. 목조번안 석탑으로도 유명한 미륵사지 서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그동안의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 우리나라 불탑은 인도에서 발생되어 중국을 거쳐 도입되었다. 국내에서는 미륵사지 서탑보다 앞선 시기의 유례를 볼 수 없는 상태이므로 중국의 실 예를 참고하여 접근해 보고자 했다. 본 고에서는 한국(韓國)과 중국(中國)의 전석탑(塼石塔) 평면의 시대별 변천과정을 고찰하여 미륵사지 서탑의 평면형식이 7세기 초에 위치함을 결론으로 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