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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마비견(後肢痲痺犬)에 대한 봉독(蜂毒) 약침(藥鍼) 및 봉독(蜂毒) 약침(藥鍼)과 한약제(漢藥劑)의 병용치료(倂用治療) : 증례보고(症例報告) (Treatment by Injection-Acupuncture with Apitoxin and Apitoxin Combined by Chinese Herbal Medicine in Patients with Canine Bind Limb Paralysis : Case Report)

  • 전형규;박세근;김덕환;김문호;서금원;서청령;요진재;궐호연;정한문
    • 한국임상수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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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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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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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개 추간판 디스크 2 증례(症例)를 대상으로 봉독약침 및 봉독약침과 한약제로 각각 치료하였다. 증례(症例) 1은 흉-요추부 추간판탈출증(T11-T12, T12-T13, L3-L4 및 L4-L5)으로 진단(診斷)된 증례이었으며. 증례 2는 흉추부 추간판탈출증(T10-T11 및 T12-T13)으로 진단(診斷)된 증례이었다. 이들 증례에 대하여 봉독약침(0.1 ml/혈위, 총$200{\mu}g$)을 실시(實施)하였으며, 운동요법과 수영요법도 병용하였다. 봉독약침에 사용한 혈위는 GV20-Bai Hui, GB30-Huan Tiao, ST36-Zu San Li, GB34-Yang Ling Quan, ST40-Feng Long, ST41-Jie Xi 및 BL40-Wei Zhong, 병변부 및 압통점이었다. 또한 증례 2에 대하여는 봉독약침과 더불어 Zheng Gu Zi Jin Dan(정골자금단(正骨紫金丹) : 1 g), Shiuh Duann(속단(續斷) .0.2 g), Du Zhong(두중(杜仲) : 0.2 g), Mo Yao(몰약(沒藥 : 0.2 g), Ru Xiang(유향(乳香) : 0.2 g) 및 Pyrite(자연동(自然銅) : 0.2 g)를 각각 총 9일간 경구투여(2회/1일)하였다. 증례 1은 총 4주간 11회 치료, 증례(症例) 2는 총 2주간 6회 치료 후 각각 보행이 가능하였다.

접수의 채취부위 및 접수와 대목의 고정법에 따른 장미 접삽묘의 생육 특성 (Effect of Topophysis and Uniting Method of Rootstock and Scion on Rooting and Subsequent Growth of Stenting-propagated (Cutting-grafted) Roses)

  • 박유경;정병룡
    • 원예과학기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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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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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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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실험은 국내 육성 절화 장미의 효율적인 접삽목 방법을 확립하고자 국내에서 육성된 절화장미($Rosa$ $hybrida$ Hort.)를 사용하여 접수의 채취 부위와 접수와 대목의 고정법에 따른 접삽묘의 발근과 그 이후의 생장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스탠다드 계통의 'Sweet Yellow'와 'Hanmaum' 품종과 스프레이 계통의 'Chelsi'와 'May' 품종을 사용하였다. 대목은 $Rosa$ $indica$ 'Major'를 사용하여 접삽목하여 암면큐브($50{\times}50{\times}50mm$, Delta, Grodan, Denmark)에 식재한 후 온실에 옮기기 전에 접목활착실에서 5일간 저장하였다. 대목의 가시와 잎을 제거하고 상부와 하부의 구분을 위해 마디 사이의 눈을 남기고 한 마디씩 절단하였다. 접삽묘의 활착률을 높이기 위해 굵기가 유사한 접수와 대목을 골라 두 개를 동시에 잡고 날카로운 칼을 이용하여 $45^{\circ}$로 절단하였다. 접수로는 3매엽과 7매엽 마디를 제외하고 5매엽 마디를 사용하였다. 접수의 채취부위는 줄기의 하단에서부터 상(7-9마디), 중(4-6마디), 하(1-3마디)의 3등분 하여 처리하였다. 접수와 대목의 고정법은 튜브, 튜브+파라필름, 튜브+클립 및 클립 고정법을 사용하였다. 채취부위와 품종에 따라 접삽묘의 발근과 생장에 영향을 미쳤다. 발근은 상(7-9마디) 부위에서 좋았다. 채취부위에 따라 발근율, 발근수, 최대근장에서 유의성이 있었으나 신초와 뿌리의 생체중과 건물중, 신초장, 접목활착율은 유의적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접삽묘의 발근과 생장은 접수와 대목의 고정법과 품종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 튜브 고정법은 다른 고정법과 비교 시 대체적으로 접목활착율, 발근율, 발근수에서 높았다. 하지만 접수와 대목의 접목부위가 완벽하게 융합하지 못해 이상비대 하였다. 전체적으로 접삽묘의 발근과 생장에 가장 좋은 고정법은 튜브+클립 고정법으로 나타났다. 클립 고정법은 'Sweet Yellow' 품종을 제외하고 다른 세 품종에서는 생육이 좋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튜브+클립 고정법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각되며 시간과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어 기존의 방법인 튜브+파라필름 고정법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파스큐라의 미술론 (PASKYULA's Theory of Art)

  • 정주영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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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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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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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PASKYULA was formed in September, 1923 through the union of artists involved in two art groups: Kim Ki-Jin, Kim Bok-Jin, Yeon Hak-Nyeon who had previously participated in the ToWolHoi, and Park Young-Hi, Lee Sang-Hwa, An Seok-Ju, former members of the BaeckJo. After its founding, the PASKYULA artists had been searching for the social function of art to reform the harsh reality of Minjung and the nation with criticism toward society as well as art world. Their art theory for MinJung could grow relatively ease in relation to changing social and political conditions in the early 1920s. In August, 1925, PASKYULA organized the Korea Artista Proletaria Federatio with the YeomGunSa, and laid the groundwork for Proletariat art movement which was regularized in the late 1920s. From PASKYULA up to the early state of KAPF, the theory of art advocated by Kim Bok-Jin and An Seok-Ju could be summarized as "art for MinJung". At that time, widely ranging discourses on MinJung, however, was spawned in art theory, because many intellectuals-including artists and writers-begun to pay more attention to MinJung, who emerged as one of the social forces after the Samil Independent Movement. Sometimes, MinJung was construed as the target of enlightenment from a negative viewpoint. On the other hand, several intellectuals under the influence of individualism asserted that the discussion itself on MinJung exerted an evil influence on art. In contrast of these cases, the PASKYULA artists including Kim Bok-Jin, An Seok-Ju perceived that MinJung had the potential to change society, and regarded them as "a creator of genuine civilization and art". In the PASKYULA artist's writings, the concept of MinJung was often overlapped with the meaning of the Choson nation suffering under colony. Although their concept of MinJung was transformed gradually into the proletariat as they were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socialism, it did not change that they grasped the realities of the whole Choson Peninsula through the proletarian consciousness. In the early state of PASKYULA, the methodology for social function of art was presented in a twofold manner. First of all, Kim Bok-Jin emphasized on the necessity of education to improve MinJung's way of life through art, and it was embodied by the organization of ToWol Art Workshop and public lecture. Also, he championed "the popularization of art", which was one of methods to distribute art to MinJung. According to the PASKYULA artists, art should be not art for art' sake but art for MinJung. That was why they advocated the convergence of art and MinJung's life. Especially Kim Bok-Jin affirmed a link between art and industry because he considered industry the field inextricably linked with MinJung's life. In this context, his idea could be read as the generalization and equalization within the framework of possession. Kim Bok-Jin thought that the social ramifications of capitalism deprived MinJung of their right to enjoy art, and emphasized the artist' social role to return the right to them. That is, the even distribution of art was mainly discussed than the contents of art in the half of 1920s. By 1925, the contents of art itself became an issue in the PASKYULA art theory, and it was based in realism. Kim Bok-Jin and An Seok-Ju insisted that art should be reflection of real life. At that time, realism acquired the representation of MinJung and the nation's realities not realistic style. In fact, the various Western art styles including Futurism, Constructivism, Cubism etc. were exploited in the PASKYULA's visual images. Western art, target of criticism on theory, was selectively adopted in the works which were produced by Kim Bok-Jin and An Seok-Ju. Kim Bok-Jin's MoonYeUnDong cover design was conceived of as the example in which Western art was adopted with it's ideology under the influence of MAVO, while Western art shown in An Seok-Ju's illustrations served as a decorative function in many cases. Especially, An Seok-Ju attempted the various styles of Western art simultaneously, which may be seen as representing that PASKYULA did not have a firm ideology for their style. Also, it can be read as showing his hasty zeal to overcome Western art rapidly. The wish to establish "art for MinJung" as soon as possible was accompanied with the will to jump over the all steps of Western art though it was superficial. This aspiration of PASKYULA was expressed through the mass media, which had the potential for communicating to MinJung. At this point, there was a significant disparity between PASKYULA and another art groups in the first half of 1920s. However, the PASKYULA's method on the basis of the mass media could not but have a certain limitation because of the medium's properties. Nevertheless, PASKYULA' attempts may be considered to be valuable in sense that they expended the boundaries of Korean modern art into the commercial art questioning the matter of the distribution for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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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유관 나사를 이용한 관절경적 족근 관절 고정술 (Arthroscopic Ankle Arthrodesis Using Three Cannulated Screws)

  • 김경태;이송;고동오;양승진;전태환;양종화
    • 대한관절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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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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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9-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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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목적: 말기 족근 관절염 환자에서 시행한 3개의 유관 나사와 관절경을 이용한 족근 관절 고정술의 임상적, 방사선적 결과를 평가하여 유용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대상 및 방법: 2006년 5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관절경하에 3개의 유관 나사를 이용하여 족근 관절 고정술을 시행한 족근 관절 관절염 환자 15명, 17예를 대상으로 하였다. 남자가 8명, 여자가 7명 이었으며 평균 나이는 62.2세였다. 임상적으로 수술 전과 수술 후의 미국 정형외과 족부 족관절 학회(American Orthopaedic Foot and Ankle Society)의 족관절-후족부 기능 평가 기준(ankle-hindfoot functional scale), 시각 상사 척도 동통 점수(visual analogue scale pain score) 및 환자의 만족도를 평가하였고, 방사선적으로 방사선 전후, 측면과 mortise 사진을 측정하여 골유합을 확인하였다. 평균 추시 기간은 24.2개월이었다. 결과: 족관절-후족부 기능 평가 기준은 수술 전 평균 47.4점에서 수술 후 최종 추시에서 평균 82.5점으로 향상되었고, 시각 상사 척도 동통 점수는 수술 전 평균 8.6에서 최종 추시 시 평균 2.4로 감소되었다. 환자의 만족도는 7예(41.2%)에서 매우 만족, 8예(47.0%)에서 만족(good), 1예(5.9%)에서 보통, 1예(5.9%)에서 불만족 소견을 보였다. 모든 예에서 족근관절은 성공적으로 골유합이 되었으며 유합의 평균 시간은 9.1주였다. 결론: 관절경하에서 3개의 유관 나사를 이용한 족근 관절 고정술은 좋은 임상 결과와 높은 골유합을 얻을 수 있어 진행된 족근 관절염에서 시행 할 수 있는 유용한 술식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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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coplasma 성(性) 붉나무빗자루병(病)에 관(關)한 연구(硏究) (I) (Studies on Mycoplasma-Like Organism Associated with Witches' Broom of Rhus javanica (I))

  • 김영호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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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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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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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
  • 붉나무빗자루병은 국내외적(國內外的)으로 처음으로 발견된 병(病)으로서 그 병원체(病原體), 병징(病徵), 전염경로(傳染經路) 항생물질반응(抗生物質反應) 등을 조사(調査)하였다. 1. 붉나무빗자루병의 병징(病徵)은 지엽(枝葉)의 총생(叢生), 기관(器官)의 위축(萎縮), 위황(萎黃), 화기(花器)의 엽화(葉化) 등 빗자루병 특유(特有)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2. 이병주(罹病株)의 총엽병(總葉柄) 및 주맥조직(主脈組織)을 전자현미경(電子顯微鏡)에 의해서 관찰한 결과 사관세포(篩管細胞) 및 사부유세포(篩部柔細胞)에서 mycoplasma-like organism 이 관찰되었다. 3. 본(本) 병원체(病原體)는 unit membrane에 싸여 있고 이분(二分), 출아(出芽)에 의하여 증식(增殖)하며 사공(篩孔)을 통해서 식물체내(植物体內) 이동(移動)을 하는 것이다. 4. 이병엽(罹病葉) 주맥(主脈)의 사관세포(歸管細胞)는 위축(萎縮)되었고 각(各) 유관속(維管束)의 사부(篩部)는 분리(分離)되어 있는데 반하여 목부(木部)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병주(罹病株)의 엽내조직(葉內組織)은 선상표피(腺狀表皮)가 나타나지 않았다. 5. 전자현미경관찰결과(電子顯微鏡觀察結果) 도관세포(導管細胞)에는 이상결정물질(異常結晶物質), 호(好) osmium성(性) 과립(顆粒)들이 관찰되었고 엽록체(葉綠體)의 grana 구조(構造)가 미발달(未發達)되어 있었다. 6. 접목전염(接木傳染)이 용이(容易)하며 아접(芽接)이 절접(切接)보다 전염성이 높았고 접아(接芽)나 접수(接穗)가 활착되지 않았어도 전염은 가능했다. 그러나 즙액전염(汁液傳染), 충매전염(虫媒傳染)은 부정적이었다. 7. Teracyclin과 terramycin을 처리(處理)한 효과(効果)는 일시적이었으며 영구치료(永久治療)는 되지 않았다. 또한 근부침지(根部浸漬)가 엽면살포(葉面撒布)보다 반응(反應)이 좋았으며 농도(濃度)는 근부침지(根部浸漬)에서 1,000 ppm이 가장 효과적(効果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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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지식재산권 라이센스 계약 분쟁의 준거법 결정 원칙으로서 로마I 규정의 적용에 관한 연구 (The Applicable Laws to International Intellectual Property License Contracts under the Rome I Regulation)

  • 문화경
    • 법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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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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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7-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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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최근에는 지식재산권의 국제적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라이센스 계약 관련 분쟁에 있어 다국적 요소가 개입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분쟁의 해결에 있어서도 준거법의 결정이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2011년 7월 한-EU FTA가 발효됨에 따라 우리나라와 유럽 각국 사이에 경제적 사회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로 인한 법적 분쟁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국제적 지식재산권 이용 계약과 관련하여 유럽연합(EU)의 준거법 결정 원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지식재산권 라이센스 계약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준거법 결정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국제사법 원칙에 의한 유형화가 필요하며 이때 지식재산권 라이센스 계약은 그 성질상 계약의 문제로 유형화된다. 유럽연합(EU)의 경우에는 라이센스 계약상의 쟁점 판단을 위한 준거법 결정을 위하여 기본적으로 로마 I 규정(the Rome I Regulation)의 적용을 검토하여야 한다. 그런데 분쟁의 대상이 되는 계약이 체결된 시점에 따라 국제사법 일반원칙, 로마협약(1980), 로마 I 규정 등 각각의 경우에 적용되는 규범이 달라지므로 계약 체결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고, 이들 중 로마 I 규정은 2009년 12월 17일부터 체결된 계약에 적용된다. 계약상의 분쟁에 관한 준거법 결정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준거법의 지정이 널리 허용되지만,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준거법을 결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제사법 이론상 '객관적 연결 방식'에 의하여 준거법이 결정된다. 이러한 원칙을 반영하여 로마 I 규정 제4조 제1항은 계약의 유형에 따른 준거법 결정 원칙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식재산권 라이센스 계약이 해당되는 규정은 없다. 결국 로마 I 규정 제4조 제2항이 검토되어야 하고 로마 I 규정 제4조 제3항에 의하여 해당 계약이 더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국가가 있는 경우에는 이 국가의 법이 준거법으로 적용된다. 이들 규정에 의하여서도 라이센스 계약의 준거법을 결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로마 I 규정 제4조 제4항에 의하여 해당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국가의 법이 준거법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로마 I 규정을 중심으로 지식재산권 라이센스 계약의 준거법 결정 원칙에 대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향후 우리나라와 유럽연합 국가들이 준거법 결정의 연결점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관련 국제계약 분쟁의 해결을 위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우리나라 국제사법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보다 풍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 법제분단: 분단을 넘어 법제통합을 위한 과제 (South-North Legal System Division: Challenge for the Integration of Legal Systems beyond the Division of Korea)

  • 최은석
    • 법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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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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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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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올해로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 72년이 흘렀다.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과 동시에 남쪽은 자본주의, 북쪽은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체제 갈등과 대립을 해왔다. 이러한 남북분단은 단순히 정치 경제체제에만 머물지 않고 법제도 역시 동질성을 찾기 어려운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의 분단은 법제분단도 함께 동반되는 사회적현상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일례로 북한은 해방과 동시에 구 소련군의 주둔 하에 북한지역을 지배하면서 법적 안정을 위한 조치를 빠르게 취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한 토지사유화 폐지 등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작업은 구 소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경우와 같이 생산수단인 토지사유화 폐지 절차를 거쳐 국유화 정책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북한 정권은 민족적 독립완수와 반제적 반봉건적 관계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토지개혁을 실시함으로 인해 분단 이후 남북한체제 간의 현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남북법제를 중점으로 지난 72년간 사회주의의 실험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대결하면서 단절된 북한 법제의 특성과 법적 환경을 탐구하고자 한다. 한편, 현재 통일을 위해 진행 중인 법제통합 연구의 현황에 대해서도 간략히 진단해 본다. 그리고 법제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분단에 따른 남과 북 각각의 국가로서 법적 지위를 규명해 보고, 남북관계의 법적 성격과 북한법제가 갖는 한계성에 대해 살펴본다. 아울러 법제통합을 위한 기본방향을 모색해 보고, 법제분단 해소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무산(제천시)의 식물다양성과 식생 (Vascular Plant Diversity and Vegetation of Samusan Mt. in Jecheon-si, Korean Peninsula)

  • 김중현;김진석;남기흠;정은희;이경의;황요섭
    • 한국자원식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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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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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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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사무산의 관속식물상을 밝히고 주요 식물을 조사하였다. 2014년 6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총 9회에 걸쳐 현지조사를 실시한 결과 관속식물은 108과 306속 424종 8아종 48변종 4품종 1교잡종으로 총 502분류군이 확인되었다. 식물종다양성이 높은 과는 국화과(70분류군), 화본과(52분류군), 장미과(30분류군), 콩과(28분류군), 사초과(20분류군)이었다. 한반도 고유종은 10분류군이며, IUCN 평가기준에 따른 적색목록식물은 14분류군으로 확인되었다.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은 V등급 5분류군, IV등급 11분류군, III등급 14분류군, II등급 10분류군, I등급 21분류군으로 총 61분류군이 관찰되었다. 외래식물은 43분류군으로 귀화율 8.6%, 도시화지수 13.4%로 나타났다. 삼림식생은 소나무림과 굴참나무림, 상수리나무림, 신갈나무림, 느티나무림, 아까시나무림으로 대별된다. 삼림의 수직구조는 안정적이며, DBH-Class 분석 결과는 교목층의 우점종이 한동안 유지될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산은 식물종다양성이 높고 고유종, 희귀식물, 호석회성식물 등 주요 식물들이 다수 분포하며, 식물지리학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함에도, 인위적인 교란과 훼손에 대한 어떠한 보호조치도 없기 때문에 생물자원이 지속적으로 소실되고 있다. 따라서 산림식생 보전을 위한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노사관계 : 노사갈등 이슈와 서구 노조들의 대응전략을 중심으로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nd Labor Relations : Labor-management Conflict Issues and Union Strategies in Western Advanced Countries)

  • 이병훈
    • 한국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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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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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9-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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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급속한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인한 경제 산업구조의 거대한 변동을 일컫는 4차 산업혁명이 노사관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며 많은 갈등이슈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예상 이슈로는 (1) 기술대체에 따른 고용조정 또는 직무재배치 및 숙련재교육의 실시여부, 기계-작업자 상호관계의 설정방식, 그리고 노동강도 협상과 작업장수준의 노동자율성 보장, (2) 플랫폼매개 노동의 확산에 따른 디지털 특고에 대한 제도적 보호장치의 법제화 및 노동자성 인정 여부와 규제입법 방식, (3) 불안정 노동에 대한 실업안전망과 소득보전대책 및 재원확보 방안 그리고 직무훈련 정책 지원, (4) 작업감시 규제와 노동자 프라이버시의 보호 방법, (5) 디지털 특고의 노동권 보장여부와 노동조합 조직체계 및 교섭구조 그리고 불안정노동자의 권익대변과 조직화 관련 제도 개선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서구 노동조합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상반된 대응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독일 노조들의 경우 디지털 기술혁신에 따른 파급문제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노사정간의 정책협의와 노사간의 단체교섭 등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형성'전략의 대응을 보여주는 반면, 영미권의 노동조합들은 우버 등의 플랫폼매개 노동자들에 대한 권익대변과 노조 조직화를 위해 전통적인 '보호'투쟁의 운동방식을 적용해오고 있다. 서구 노조들의 대응사례를 잘 참조하여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노사갈등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디지털 혁신으로 인한 '파괴적 피해'를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노사정간에 다양한 수준의 정책협의와 노조의 정책'형성' 전략이 적극 강구되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노동 4.0에 대한 사회적 대화와 산별교섭 및 업종별 정책협의 그리고 사업장 협상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디지털 기술혁신이 미칠 수 있는 예상 폐해를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포괄적이며 종합적인 접근이 요망된다.

영구평화를 위한 초국가주의 역사로의 전환기 아카이브즈와 아키비스트의 역할: 유럽연합 아카이브즈 설립과정과 유럽차원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독일 아키비스트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The Role of Archives and Archivists in the Period of Transformation into Supranationalism from Nationalism for the Purpose of Permanent Peace: Focused on the Establishment of European Community Archives and the Activities of the German Archivists for the Redressing the Common European Past)

  • 노명환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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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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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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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고에서는 기록관리 그리고 그 담당자 아키비스트는 어떠한 사회 역사적 역할을 수행하는가? 하는 질문이 핵심의 화두다. 기록관리를 통해 공동체의 사회 역사적 증거가 제공되고 공동의 기억 및 의식 그리고 정체성이 확립되기 때문에 사회변동과 역사변혁을 위해 아키비스트의 역할은 실로 막대한 것이다. 필자는 유럽통합 과정에서 그리고 독일의 유럽적 차원에서 수행하는 나치 과거사 청산에서 아카이브즈 및 아키비스트가 수행하는 사회 역사적 역할을 실증적으로 탐색한다. 유럽인들은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를 전쟁의 원인으로 규명하였고 영구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초민족주의(Supranationalism) 또는 초국가주의 이념을 정립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유럽통합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유럽, 즉 초국가주의 유럽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하여 부끄러운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하고 정리하여 새로운 유럽인 공동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그들은 아카이브즈 역할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인 1945년부터 실질적인 유럽통합이 추진되었고 1989-90년 시점에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현실사회주의가 와해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유럽통합은 큰 변동을 겪었다. 1945년부터 1990년까지는 냉전의 시기로서 유럽통합은 서유럽에 국한되는 서유럽통합이었고 1989-90년 이후부터는 탈냉전시기로서 유럽전체의 통합이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 동유럽의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 아카이브즈와 아키비스트들이 과거청산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평화와 연대로 정의되는 유럽 공동의 미래상 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렇게 유럽통합 과정에서 아카이브즈와 아키비스트들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공동의 기억과 이에 기반한 공동의 의식 정립이 상호 불가분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공동의 기억과 공동의 의식 정립은 공동체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수적이며 이러한 과정은 명확한 증거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명확한 증거의 제공은 무엇보다도 기록의 보존과 관리에 의해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키비스트들의 존재 의의와 아카이브즈 운영의 목표가 충분히 인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