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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ethyl-N'-nitro-N-nitrosoguanidine에 의한 인체백혈병세포의 G2/M arrest 유발에서 Cdk inhibitor p21(WIP1/CIP1)의 관련성 (Involvement of Cdk Inhibitor p21(WIP1/CIP1) in G2/M Arrest of Human Myeloid Leukemia U937 Cells by N-Methyl-N'-Nitro-N-Nitrosoguanidine)

  • 최영현
    • 생명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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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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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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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에서는 monofunctional alkylating agent인 N-methyl-N'-nitro-N-nitrosoguanidine (MNNG) 에 의한 인체 백혈병 U937 세포의 증식억제에 관한 기전 확인하였다. MNNG에 의한 U937 세포의 증식억제는 세포주기 G2/M arrest 및 apoptosis 유방과 연관이 있었으며, MNNG 는 G2/M기 조절에 관여하는 주요 cyclin 및 Cdk들의 발현 수준에는 큰 영향이 없었으나 cyclin B1 및 Cdk2-associated kinase의 활성을 매우 저하시켰다. MNNG 처리로 Cdk inhibit p2l(WAF1/CIP1)이 전사 및 번역 수준에서 발연이 증가되었으며, p21 promoter 의 활성도 증가되었다. p21 promoter deletion constructs을 이용한 연구에서 MNNG의 responsive element 부위는 전사 개시 부위 113-61 부근임을 확인하였다. 이 결과들은 MNNG에 의한 cyclin/Cdk 복합체의 kinase 활성 저하가 p53 비의존적인 p21의 활성 증가에 기인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MNNG의 암세포에서의 항암기전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로서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개초(Gyposphila paniculata)로부터 Flavanone 3β-Hydroxylase 유전자의 분리 및 분석 (Molecular Cloning, Sequence Analysis, and in Vitro Expression of Flavanone 3β-Hydroxylase from Gypsophila paniculata)

  • 민병환
    • Journal of Plant Bio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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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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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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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Flavanone 3$\beta$-hydroxylase (FHT)는 flavonoid 생합성 경로의 가장 중심부에 작용하는 효소로 flavanone으로부터 dihydroflavonol으로의 변환을 촉매하는 역할을 한다. 본 연구에서는 색소유전자의 전이를 통하여 새로운 색소발현체계를 가진 품종을 육종하기 위한 기초연구로 숙성안개초 (Gypsophila paniculata L.)의 꽃봉오리로부터 cDNA-library를 합성하였고 카네이션의 FHT 유전자를 probe로 사용하여 anthocyanin 합성경로의 중요 효소의 하나인 FHT 유전자를 분리하였다. 염기서열분석을 수행하여 분리유전자의 크기가 1471 bp 이며 이 중 coding region은 1047 bp 임을 확인하였다. 이미 밝혀진 다른 식물체의 FHT 유전자와 서로 염기서열의 일치성을 비교해 본 결과 아라비돕시스, 오렌지, 카네이션, 고구마, 스톡, 페튜니아, 감자 및 포도에서 각각 69% 이상을 나타내었다. 분리유전자의 발현을 확인하기 위하여 Northern blot분석 및 인위적으로 기내에서의 transcription과 translation을 수행하였고, 분리한 유전자의 효소활성을 측정해 본 결과 dihtydrokaempferol의 작은 peak을 확인하였다. Southern blot 분석의 결과 안개초의 FHT 유전자는 다른 대부분의 식물체와 유사하게 한 개가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A Longitudinal Case Study of Late Babble and Early Speech in Southern Mandarin

  • Chen, Xiaoxiang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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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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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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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paper studies the relation between canonical/variegated babble (CB/VB) and early speech in an infant acquiring Mandarin Chinese from 9 to 17 months. The infant was audio-and video-taped in her home almost every week. The data analyzed here come from 1,621 utterances extracted from 23 sessions ranging from 30 minutes to one hour, from age 00:09;07 to 01:05;27. The data was digitized, and segments from 23 sessions were transcribed in narrow IPA and coded for analysis. Babble was coded from age 00:09;07 to 01:00;00, and words were coded from 01:00;00 to 01:05;27, proto-words appeared at 11 months, and some babble was still present after 01:10;00. 3821 segments were counted in CB/VB utterances, plus the segments found in 899 word tokens. The data transcription was completed and checked by the author and was rechecked by two other researchers who majored in Chinese phonetics in order to ensure the reliability, we reached an agreement of 95.65%. Mandarin Chinese is phonetically very rich in consonants, especially affricates: it has aspirated and unaspirated stops in labial, alveolar, and velar places of articulation; affricates and fricatives in alveolar, retroflex, and palatal places; /f/; labial, alveolar, and velar nasals; a lateral;[h]; and labiovelar and palatal glides. In the child's pre-speech phonetic repertoire, 7 different consonants and 10 vowels were transcribed at 00:09;07. By 00:10;16, the number of phones was more than doubled (17 consonants, 25 vowels), but the rate of increase slowed after 11 months of age. The phones from babbling remained active throughout the child's early and subsequent speech. The rank order of the occurrence of the major class types for both CB and early speech was: stops, approximants, nasals, affricates, fricatives and lateral. As expected, unaspirated stops outnumbered aspirated stops, and front stops and nasals were more frequent than back sounds in both types of utterances. The fact that affricates outnumbered fricatives in the child's late babble indicates the pre-speech influence of the ambient language. The analysis of the data also showed that: 1) the phonetic characteristics of CB/VB and early meaningful speech are extremely similar. The similarities of CB/VB and speech prove that the two are deeply related; 2) The infant has demonstrated similar preferences for certain types of sounds in the two stages; 3) The infant's babbling was patterned at segmental level, and this regularity was similarly evident in the early speech of children. The three types being coronal plus front vowel; labial plus central and dorsal plus back vowel exhibited much overlap in the phonetic forms of CB/ VB and early speech. So the child's CB/ VB at this stage already shared the basic architecture, composition and representation of early speech. The evidence of similarity between CB/VB and early speech leaves no doubt that phones present in CB/VB are indeed precursors to early speech.

새 자료 <동방?이비겨리라> 연구 (A Study on New material : )

  • 조상우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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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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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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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고의 텍스트인 <동방?이비겨리라>는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 소장본이다. <동방?이비겨리라>는 필사본으로 크기는 $35.7{\times}22.3cm$이다. 필사한 곳, 필사한 사람, 필사한 연도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런데 "${\cdot}$"의 사용으로 볼 때 20세기에 필사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투리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서울, 경기 지역에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선장으로 13장(張)이다. 계선은 없으며 한 면에 10행이 있고, 1행에 20-23자를 썼다. 표제지는 없고, 내제지는 '동방?이비겨리라'이다. 아랫 부분에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 직인이 찍혀 있다. <동방?이비겨리라>에는 "동방?이비겨리라", 이외에 이라, 불셜동자경이라, 불셜지양경이라, 불셜금실필살경이라, 관?조멸경, 황감경, 셩조경, 삼?경"이 합?되어 있다. 이로 볼 때 <동방?이비겨리라>는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 불경을 베껴서 소원성취하려는 의도가 짙은 책으로 보인다. 특히 "동방?이비겨리라"에서는 어떻게 하면 길하고 흉한지를 알려주어 생활에 이용하는 방법을 설명하여주는 비방용 책으로 사용하고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동방?이비겨리라>의 주 관심사는 사람의 수명, 농사, 도적 등이다. 이는 일반적인 당시 평민들이 바라는 것이거나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동방?이비겨리라>는 일반적인 점책이 아니라 비보를 생활에 활용하고 주의하여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액운을 대비하고 싶은 희망을 담고 있는 '생활서'라고 생각한다.

Back TranScription(BTS)기반 데이터 구축 검증 연구 (A Study on Verification of Back TranScription(BTS)-based Data Construction)

  • 박찬준;서재형;이설화;문현석;어수경;임희석
    • 한국융합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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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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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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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최근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을 위한 수단으로 음성기반 인터페이스의 사용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음성인식 결과에 오류를 교정하기 위한 후처리기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sequence to sequence(S2S)기반의 음성인식 후처리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구축을 위해 human-labor가 많이 소요된다. 최근 기존의 구축 방법론의 한계를 완화하기 위하여 음성인식 후처리기를 위한 새로운 데이터 구축 방법론인 Back TranScription(BTS)이 제안되었다. BTS란 TTS와 STT 기술을 결합하여 pseudo parallel corpus를 생성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해당 방법론은 전사자(phonetic transcriptor)의 역할을 없애고 방대한 양의 학습 데이터를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기에 데이터 구축에 있어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기존의 BTS 연구를 확장하여 어떠한 기준 없이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보다 어투와 도메인을 고려하여 데이터 구축을 해야함을 실험을 통해 검증을 진행하였다.

수질분석에 사용되는 qPCR기술 (Utilization of qPCR Technology in Water Treatment)

  • 김원재;황윤정;이민혜;정민섭
    • 공업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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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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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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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유엔이 발표한 세계 물개발 보고서는 2030년까지 식수가 현재보다 40%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물의 양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인해 상수원이 오염되는 것을 말한다. 미생물이 수질에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미생물의 분석은 수질관리에 매우 중요하다. 현재 미생물 분석에 사용되는 방법은 배양 후 현미경을 통한 모양과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나, 유전자분석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현미경을 통한 미생물 분석 방식에 qPCR(quantitative polymerase chain reaction) 적용이 가능해졌고 활용방법 등이 연구되었다. 그 중에는 역전사 단계를 추가하여 RNA 분석에 용이성을 부여한 RT-qPCR법과 미생물 배양분석에 접목시켜 검사시간을 단축시키는 ICC-qPCR, 자연에서 채취한 샘플의 위양성율을 감소시키는 데 용이한 viability qPCR, 다중분석에 용이한 multiplex qPCR, 소량의 샘플만으로 분석이 가능한 microfluidic qPCR법 등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처럼 qPCR 방법이 미생물 분석에 적용되는 사례와 방식의 원리, 그리고 발전 방향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고전 필사본 유랑과 도서관으로의 귀환 (The Wandering of Classic Manuscripts and Their Return to the Library)

  • 윤희윤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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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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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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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기록은 인간의 삶과 지식 세계에 대한 수상인 동시에 지문이다. 기록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책은 인류 역사를 추적하는 통로이자 그것을 음미하는 창이다. 그리고 책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이고, 압권은 필사본이다. 그것은 파피루스 두루마리, 양피지, 종이 등에 기록한 원본과 그것을 번역·중역한 사본을 총칭한다. 장구한 지식문화사를 반추하면 서양 필사본은 자연적 재해뿐만 아니라 인위적 문화반달리즘과 비블리오코스트로 인하여 시공간을 유동하는 강물처럼 이합집산을 계속해 왔다. 이에 본 연구는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르네상스 시대까지 서양 필사본의 유량과 도서관 보존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왕조와 제국, 군주와 재상, 장군과 정복자, 귀족과 부유층, 성직자와 학자를 불문하고 고전 필사본을 수집하고 번역하는데 혈안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석학들이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지식과 지혜를 기록하지 않았으면, 중세 비잔티움 제국·이슬람 제국이 고전을 수집·번역하고 재생산하지 않았으면, 책 사냥꾼들이 고전을 추적하지 않았으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지적 엑소더스를 통해 고전을 복원·재해석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역사도서관이 사력을 다해 고전과 번역본을 수집·보존하지 않았으면, 현대인은 고전 지식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필사본의 추적은 역사적 유동, 지리적 유랑, 언어적 변용으로 인해 많은 난제와 모순이 중첩되어 있는 아포리아다. 새로운 필사본이 발견·해석되면 수정과 보완이 불가피하므로 후속연구를 통한 고전 필사본의 유랑과 귀환에 대한 추적은 계속되어야 한다.

신라(新羅) 백지묵서(白紙墨書) 화엄경(華嚴經)과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 고찰(考察) (The Study on 'characters made by Empress Wu Zetian' through The Avatamsaka-Sutra in ink on the white paper of the Shilla Period)

  • 박상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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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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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5-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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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신라(新羅) 백지묵서(白紙墨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국보 196호로 지정된 한국에서 가장 오랜 사경(寫經)이다. 이 사경(寫經)은 당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699년에 한역(漢譯)한 주본(周本) "화엄경(華嚴經)" 80권(卷) 가운데 권 제1~10과 권 제 44~50이다. 권10과 권50의 말미에 발문(跋文)(528자(字))이 있는데, 이 발문에 의하면 화엄사 창건자인 황룡사의 연기(緣起)법사가 발원하여 754년에서 755년에 걸쳐 약 6개월이 걸려 완성된 사경임을 알 수 있다. 이 발문은 사경제작에 따른 의식절차(儀式節次)와 제작방법(製作方法)이 기록되어 있고, 사경 제작에 참여한 필사자(筆寫者)와 부처님과 보살(菩薩)을 그린 화사(畵師) 등 사경(寫經)에 관계한 19명에 대한 거주지(居住地), 인명(人名), 관명(官名) 등(等)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고문서이기도 하다. 이 사경은 발견되었을 당시 권1-10은 응고되어 펼쳐볼 수가 없는 상태였고 권44~50도 보존을 염려하여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최근에 내용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져 이 사경이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 연구의 보고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는 당(唐) 고종(高宗)의 황후(皇后)로 고종(高宗)의 사후(死後) 스스로 황제가 된 칙천무후(則天武后)(684~704재위(在位)) 가 만든 일종의 이체자(異體字)이다.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는 무후(武后)의 치세(治世)에만 쓰이고 그의 사후에 폐지되었지만, 그 후에도 취미와 호기심에 따라 사용하기도 하였던 글자이다. 이 신라 사경에 나타난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는 초(初), 년(年), 월(月), 일(日), 성(星), 정(正), 천(天), 지(地), 수(授), 증(證), 성(聖), 국(國), 인(人)의 자(字) 등 13종 512자로, 칙천무후(則天武后) 재위 당시에 제작된 돈황(敦煌) 사경(寫經)과 비교해 볼 때 사용된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의 숫자나 사용 빈도에서 돈황(敦煌) 사경(寫經)보다 뛰어난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의 보고(寶庫)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현존 최고(最古)의 화엄경 사경(寫經)으로 알려진 일본(日本) 정창원(正倉院)의 화엄경(華嚴經) 사경(寫經)(768)에는 칙천무후자(則天武后字)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볼 때, 신라 사경(寫經)은 한역(漢譯)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화엄 사경임을 알 수 있다.

上海博物館蔵戦国楚竹書 《容成氏》 の古帝王帝位継承説話研究 (A Critical Study of the Legend on the Chinese Ancient Dynasty's Succession before Yao-Shun Era : Focusing on the Rongchengshi in the Shanghai Bowuguan zang Zhanguo Chuzhushu(II))

  • 李承律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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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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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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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The respective history of the Chinese Ancient Dynasties from the era of the ancient Emperors to the revolutionary era of Yin-Zhou殷周 was described in the Rongchengshi容成氏, one of the texts in Shanghai Bowuguan zang Zhanguo Chuzhushu(II)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二) discovered in 1994 at an antique market in Hong Kong. Drawn from the historical explanations expressed in it, the anonymous author's own views on history could be observed as largely being composed of 'resignation'禪讓, 'usurpation'簒奪, and 'banishment/smite'放伐. Following the advent of the recently excavated bamboo slips of Rongchengshi, a careful reconsideration is urgently needed to the established interpretation on the origin of the ritual of resignation in the relevant academic circles. Because it shows us that the ritual of resignation as a way of the succession, judging from my analysis, was already realized by Nine Emperors('Rongchengshi', Zunlushi尊盧氏, Hexushi赫胥氏, Gaoxinshi高辛氏, Cangjieshi倉頡氏, Xuanyuanshi軒轅氏, Shennongshi神農氏, 渾沌氏, and Baoxishi包羲氏 and maybe the more) before the era of 'Yao-Shun'堯舜. Accordingly, the aforementioned fact, which has never been elaborated in the previous texts including the first Chinese historiography Shiji史記, is the only peculiar feature to the Rongchengshi itself. Thus, a simple but empirically important question could be raised here: Was this way of description an exceptional case, even as unaccepted in Warring States Period at that time? If then, the Rongchengshi could not but help being evaluated merely as a buried historical texts, without any influence on the ancient Chinese, along with its author. The Chu bamboo slips Tangyu zhi dao唐虞之道 from Guodian Chujian郭店 excavated in 1993, however, has a very similar content to the Rongchengshi in relevance to the historical existence of the ritual of resignation. From the sentence, expressed in Tangyu zhi dao, that "the sudden rise of 'Six Emperors'六帝 was due to the practice of resignation like the period of Yao-Shun", it could be easily presumed that the 'Six Emperors' was closely connected to the 'Nine Emperors' and maybe the more at that time. Comparing with the related extant literary texts and the excavated materials in a vigorous way, in this paper, I explore four significant questions from a more critical stand to the conventional studies. First of all, I explicate the distinctiveness of the Rongchengshi as an academically very precious materials. Secondly, and closely related to the above, I evaluate its status or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the Chinese ancient thoughts. And thirdly, I make an endeavor to trace back to the date of its transcription. Finally, and the most crucially, I attempt to show what Schools it was originated from and what connections it had with the Schools in the acient China. In sum, some concluding remarks, having somewhat insightful and significant implications for the further studies in these issues, could be drawn from my exploration. Viewing from the historical perspective of thoughts, at first, the legend of Ancient Dynasty's Succession before Yao-Shun Era in the Rongchengshi had some interactions directly and closely with Zhangzi莊子, Muzi墨子, Guanzi管子, Xunzi荀子 and Tangyu zhi dao. Also in doing search for the unification in a transitional epoch from the late to the end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the political stand of Shi士 and Ke客 was reflected in it as well as in the Tangyu zhi dao because they actively wanted to suggest the most appropriate model of the Emperor or the idealistic succession process and political rea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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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김응환의 봉명사경과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Kim Eung-hwan's Official Excursion for Drawing Scenic Spots in 1788 and his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 오다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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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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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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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은 금강산과 해금강, 관동팔경을 그린 60점의 실경산수화와 51편의 기문(記文)으로 이루어진 화첩으로 규모와 화풍에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림의 특징은 화면을 가득 채운 구성과 남종화풍을 따르면서도 거칠고 파격적인 화법, 산석(山石)의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표현 등이다. 1973년의 특별전, '한국미술이천년(韓國美術二千年)'을 처음으로 화첩의 일부만 공개되었던 작품은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그 전모가 공개되었다. 《해악전도첩》이 김응환(金應煥)(1742~1789)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화첩의 마지막 장에 쓰여진 관지(款識)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칠보대>에 찍힌 '복헌'이라는 도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응환을 지시하는 관지와 도장은 모두 후대에 더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화첩을 둘러싼 여러 요소를 고찰하여 제작자를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악전도첩》 제작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18세기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과 봉명사경을 살펴보았다. 정선(鄭敾)(1676~1759)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1711)을 비롯하여 심사정(沈師正)(1707~1769), 김윤겸(金允謙)(1711~1775), 최북(崔北)(1712~1786 이후), 강세황(姜世晃)(1713~1791) 등은 조선 후기 최고의 여행지였던 금강산을 유람하고 기행사경도를 제작하였다. 화가들은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여 내금강의 명승명소를 주로 그렸고, 자신들이 경험한 장소를 새롭게 시각화하였다. 이러한 기행사경도는 여행을 기념하며 동행자나 후원자를 위해 여러 장면을 담을 수 있는 화첩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개별적인 금강산 기행사 경도의 제작이 증가하는 가운데 1788년에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도화서 화원인 김응환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에게 영동9군과 금강산의 명승(名勝)을 그려오도록 명한 일은 공적 업무였다. 정조는 이들의 관계 및 지방관으로서의 경력, 서로 다른 화풍 등을 고려해 봉명사경의 화원으로 선발하였다. 김응환과 김홍도는 영조(英祖)(재위 1724~1776)조부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선후배이자 동료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아가 이들은 영남 지역의 찰방(察訪)으로서 지방관의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두 화원의 화풍은 서로 달라 김홍도는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필선을 운용한 반면, 김응환은 굳세면서도 울창한 풍치를 잘 표현했다. 두 명의 화원은 각자의 개성으로 봉명사경 기간 동안 100여 폭의 초본을 그렸고, 이를 선별하여 60~70여 폭의 화첩 혹은 두루마리를 완성하였다. 이들의 그림은 18세기 전중반에 내금강과 관동팔경 위주로 제작된 금강산 기행사경도의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했고 영동과 외금강의 명승명소를 새롭게 발견하며 소재를 확장시켰다. 현재 《해악전도첩》은 원(元), 형(亨), 이(利), 정(貞) 4책으로 이루어졌는데, 원(元), 형(亨)책은 내금강의 그림 29점이며 이(利)책은 외금강의 장면 17점, 정(貞)책은 해금강과 관동팔경 14점으로 구성되었다. 비단 위에 그려진 각 그림은 기하학적으로 산석을 표현했으며, 연백으로 금강산의 암봉을 흰색 혹은 회청색으로 표현했다. 《해악전도첩》의 구도와 화법은 정선, 강세황, 심사정, 정충엽(鄭忠燁)(1725~1800 이후), 김응환, 김홍도의 화법과 비교할 수 있어 18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을 갖는다. 특히 화첩의 일부 그림은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海東名山圖帖)》(1788)과 구성 및 회화적 모티프가 매우 유사하여 두 화첩간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반면에 <영랑호>, <해산정>, <월송정> 등은 김홍도의 그림과는 구별된다. 이를 통해 화가가 김홍도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첩을 제작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해악전도첩》에는 다른 화첩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운담>, <백운대>, <안문점망비로봉>, <백정봉>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장면마다 경물의 특징을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화가는 산석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선과 면을 도드라지게 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다. 그는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법을 확립했고 이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화면에 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했다. 이처럼 60점의 그림은 거칠고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 안에서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본고는 화법과 봉명사경의 정황을 종합해 《해악전도첩》의 제작자를 김응환으로 추론하였다. 나아가 김하종(金夏鍾)(1793~1878 이후)의 《풍악권(楓嶽卷)》(1865년 이후)과의 친연성은 《해악전도첩》의 화가를 김응환으로 추정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해산첩》과는 달리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미비한데 김하종의 《풍악권》만이 《해악전도첩》의 소재와 화법을 따르고 있다. 김하종은 《풍악권》에서 50년 전, 춘천부사 이광문(李光文)(1778~1838)을 위해 제작한 《해산도첩》(1816)과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김응환의 《해악전도첩》과 유사한 구성과 회화적 요소, 화보식 인물표현을 따르면서 사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개성김씨의 일원이자 김응환의 종손인 김하종은 가문에 전해지는 《해악전도첩》류의 그림을 감상했고 이를 새롭게 번안했다고 추측된다. 화첩에 포함된 51편의 기문은 그림 다음 장에서 그려진 장소를 설명하고 있어 각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문은 그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앞의 장소로부터의 이동 정보, 이름의 유래, 지형적 특징, 관련 정보 등이 서술되었다. 이와 같은 백과사전식 혹은 지리지와 같은 기문은 19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금강산 화첩류에 더해졌다. 《해악전도첩》의 백화암 기문에는 1845년의 암자에 대한 중건 내용이 기록되어, 기문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김하종에게 《풍악권》을 주문한 이유원(李裕元)(1814~1888)도 각 그림에 글을 붙였는데 이 글들은 김응환의 화첩에 포함된 기문 51편과 내용 및 서술방식이 흡사하다. 이유원의 기문은 《해악전도첩》의 기문이나 그 초고(원본)와 관련성이 높지만 두 화첩의 기문 필사의 선후관계를 판정하는 데에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악전도첩》은 김홍도의 봉명사경 초본 및 김홍도의 영향으로 제작된 19세기의 금강산 화첩과는 구별된다. 이 화첩은 화원 김응환의 회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넓히고 18세기 후반 실경산수화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