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ortoise 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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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범위를 이용한 지수귀문도 해의 탐구 (A study on solutions of Jisuguimundo using the range of magic sums)

  • 권균욱;박상후;송윤민;최성웅;박부성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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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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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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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Jisuguimundo is an inimitable magic hexagon devised by Choi Seok-Jeong, who was the author of GuSuRyak as well as a prime minister in Joseon dynasty. Jisuguimundo, recorded in GuSuRyak, is also known as Hexagonal Tortoise Problem (HTP) because its nine hexagons resemble a tortoise shell. We call the sum of numbers in a hexagon in Jisuguimundo a magic sum, and show that the magic sum of hexagonal tortoise problem of order 2 varies 40 through 62 exactly and that of hexagonal tortoise problem of order 3 varies 77 through 109 exactly. We also find all of the possible solutions for hexagonal tortoise problem of oder 2.

경주 남산 이조리귀부에 관한 고찰 (A Study on the Ijori Tortoise Pedestal of Namsan Mountain in Gyeong-Ju)

  • 이은석;조현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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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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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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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소재하는 최진립신도비의 받침인 석제 귀부(龜趺)는 1740년경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통일신라시대 귀부를 모사한 조선시대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당시 제작되는 귀부 형식과는 다르고, 모사한 원 귀부의 형식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모습들이 확인되고 있다. 첫째, 제작 과정을 기록한 '문루일기(門樓日記)'에는 비석을 먼저, 이후에 귀부를 제작했음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비좌 삽입부가 작아 비석 양쪽 끝단을 잘라 삽입한 흔적이 보이며, 비석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귀부와 비좌를 만들었다는 것은 공정상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또한 비석 제작 부분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백운대라는 사찰터에서 제작되었다고 할 뿐, 공정 내용이 언급되지 않은 점은 당시 실사를 하고 기록했는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둘째, 이조리귀부의 구름문양은 초기의 태종무열왕릉귀부와 서악리귀부 구름문에서 이행되는 시간상의 세리에이션(Seriation)을 잘 반영하고 있다. 비좌 주변을 장식한 연화문은 중앙에 형식화된 보상화가 표현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인 8세기대 기와 등에 가장 잘 나타나던 문양이다. 셋째, 전진하는 모습의 이조리귀부는 지금까지 경주에 전해지는 귀부들에서도 찾기 힘든 생동감을 가지고 있으며, 일렬상의 귀갑문 배치는 이전 귀부의 문양 배치보다 훨씬 간결해지고 공간 활용을 고려한 발전된 형식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조리귀부는 시기적 변화를 보여주는 문양 형식, 비신과 비좌의 불일치, 기록상의 고찰을 통해 볼 때, 18세기 조선시대 석공이 신라문양의 형식변화 등을 모두 고려하여 제작한 모사품이라기보다는 8세기 중반 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귀부였음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철제구갑문은입사규두대도의 보존처리-창녕군 계성면 명리 고분 출토 (The scientific conservation treatment of sword with projecting hilt excavated the III-1 tomb of Myungri, Gysungmyun, Changyunggun)

  • 위광철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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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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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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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The conservation treatment process of sword is below. First, examples written inlay with tortoise-shell design is a big sword with round head excavated Namwon Wolsanri in Korea, big swordsexcavated the Sungchong Ⅱ tomb of Naranghyun, the Moksun Ⅰ tomb of Ejihyun, the Jangjonsan Ⅰ tomb of Dogunhyung in Japan. The period of inlay artifacts are known to about 6c. Therefore, sword is infer to beexcavated to 6c.Second, inlay artifacts excavated the domestic at present were known to 19-pieces. But sword is a big sword inlaid with silver to projecting hilt. This artifact is very important to scholarship data because of be first excavated to the dome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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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고분 출토 금동신발 보존처리 (Conservation of gilted footware excavated from Bokam-ri, Naju Province)

  • 유재은;위광철;류인숙;신의경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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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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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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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Bokam-ri site was excavated from July 1996 to September 1998 and archaeologically assumed to be grouped with tombs of Mahan period. Among these groups, Tomb No. 3 had built up with stone chamber and found one pair of gilted footware near the jar coffin. This footware was severely corroded and cracked so transfered it gently with soil. Radiography film of this footware showed spike decorations on the bottom and fish-shapped ornament. Gilted footware was consolidated with soil using Paraloid B72 10%~15%solution and cleaned using small tools and microscope. SV427 and HV427 as epoxy resin and Araldite(rapid type) used for joining and restoring. The fore part of gilted footware was connected with nails and folded “L” shape to introduce the bottom material. Tortoise-shell design and flower ornaments appeared on the surface and fish-shaped ornaments, spikes and spangles on the bottom. It was found that 7 spikes and 5 fish-shaped ornaments remained well. Especially, Fish-shaped ornaments were firstly found in the gilted footware and appraised archaeologically important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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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中風)의 치법(治法) 중 잠양법(潛陽法)에 대한 문헌고찰 (A Study on the application of checking the exuberance of yang (潛陽) to treat apoplexy)

  • 민건우;박종혁;정지천
    • 동국한의학연구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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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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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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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잠양법(潛陽法)은 평간치법(平肝治法)의 일종으로 간양(肝陽)이 상항(上亢)해서 나타나는 두목혼훈(頭目昏暈), 수족추휵, 구안괘사, 설건어삽(舌乾語澁), 두통불지(頭痛不止), 졸연도지(猝然倒地) 등의 증상(症狀)에 쓰는 치법(治法)이며 중풍(中風)의 표실증(標實證)을 다스리는 목적으로 다용(多用)되고 있다. 중풍(中風)에서의 활용(活用)은 청대(淸代)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는데, 엽천사(葉天士)는 "자액식풍(滋液熄風), 유양영락(濡養營絡), 보음잠양(補陰潛陽)"을 사용하였고, 장백룡(張伯龍)은 "잠진섭납(潛鎭攝納)"하는 치료법을 사용하였다. 중풍(中風)의 병리(病理)가 본허표실(本虛標實)하므로 항상 자음(滋陰), 보수(補水)하는 치법(治法)과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으로 사용되고 있다. 잠양법(潛陽法)이 다용(多用)된 병증은 간신음허(肝腎陰虛), 풍양상요(風陽上擾)로 인한 중경락증(中經絡證)과 중장부증(中臟腑證) 중에서 양폐증(陽閉證)이며, 탈증(脫證)의 일부와 중풍일구(中風日久)로 인(因)한 전간(癲癎)에도 사용되었다. 잠양락(潛陽樂) 중 진주모(珍珠母), 석결명(石決明), 대모(玳瑁), 모려(牡蠣), 패치(貝齒), 구판(龜板), 별갑(鱉甲) 등 개류(介類)의 효력이 뛰어나고, 치방(治方)으로는 진간식풍탕(鎭肝熄風湯), 호잠환(虎潛丸), 고본단(固本丹), 복맥탕(復脈湯), 천마구등음(天麻鉤藤飮), 영양각탕(羚羊角湯) 등이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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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西周)초기 갑골(甲骨)의 특징과 그 변화양상 고찰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and Changing Patterns of Shell-and-Bone Inscriptions during Early Western Zhou)

  • 박재복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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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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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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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기존의 갑골연구는 상후기 은허갑골문에 편중되어 갑골실물에 대한 연구나 서주시기 갑골문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서주초기 전형적인 갑골의 정치(整治)방식, 찬(鑽) 착(鑿) 작(灼)의 형태와 배열, 갑골문의 특징과 서사방식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형성배경과 변화양상에 대해 전래문헌과 출토된 갑골실물을 중심으로 심도있게 고찰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내용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첫째, "시경(詩經)", "상서(尙書)", "일주서(逸周書)" 등의 전래문헌에서 선주(先周)시기 고공단부(古公亶父)가 거북점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당시의 복갑(卜甲)은 아직 출토되지 않았다. 점복내용은 문왕(文王), 무왕(武王), 성왕(成王)시기에 집중되고 복(卜) 명(命) 점(占) 서(筮) 길(吉) 흉(凶) 구(龜) 등 점복관련 단어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주원갑골문도 절대다수가 이 시기의 기사각사(記事刻辭)이며 주공(周公)과 관련된 내용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 둘째, 서주초기 중심지역에서는 복갑(卜甲)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여 복골(卜骨)의 비중이 낮지만 주변지역에서는 복갑이 거의 출토되지 않아 복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정치(整治)방식은 복갑과 복골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중기 조연장(曹演莊)유형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상(商)후기 섬서지역의 북촌(北村)유형과 선주(先周)문화의 점복방식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서주초기 갑골은 대부분 찬(鑽) 착(鑿) 작(灼)을 겸용하였는데, 그 형태와 배열에서 상후기 은허갑골과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은허갑골은 모두 원형 찬(鑽)과 대추씨 모양의 착(鑿)을 한 세트로 하고 있지만 서주초기 복갑은 모두 방형 찬(鑽)과 장방형 착(鑿)을 한 세트로 설치하였고, 복골은 모두 원형 찬(鑽)과 세로의 가느다란 착(鑿)이 한 세트로 고양이 눈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찬(鑽) 착(鑿) 작(灼)의 배열은 복갑에서는 천리로(千里路)를 경계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어 상후기 은허 복갑과 대동소이하지만 복골에서는 하나의 복골에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어 상중기 조연장(曹演莊)유형의 특징을 띠고 있다. 넷째, 상주(商周)시기 갑골문의 서사방식은 갑골 정면의 복조(卜兆)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복조(卜兆)는 갑골 뒷면의 찬(鑽) 착(鑿) 작(灼)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갑골을 배치하는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고, 각 부위에 따라 일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상후기 은허갑골문은 복갑을 세로로 배치하여 천리로(千里路)를 경계로 좌우대정(左右對貞)을 이루고, 복골은 좌우견갑골을 한 세트로 하여 좌우대칭을 이룬다. 선주(先周)시기의 갑골문에서도 이러한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서주초기에 이르면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주초기 복갑은 가로로 배치하여 갑수(甲首)가 옆을 향하게 하며, 복골의 중간부분은 대부분 가로로 배치하고 병부(柄部)와 선부(扇部)는 골구(骨臼)를 아래로 향하게 배치한 다음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쓰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주례(周禮)"에 보이는 점복과정 중에서 '시고(視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서주초기 예악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점복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서주초기 갑골은 상후기 은허갑골의 선진적인 점복방식을 수용함은 물론 상중후기 섬서지역에서 유행하던 점복방식을 기초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 점복방식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칠기에 나타난 묘금기법 연구 (A Study on Investigation of Gold Painting Technique in the Lacquerwares of Goryeo)

  • 박정혜;이용희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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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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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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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고려시대의 칠기는 10세기 초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동안 다양하게 변화하였으며 화려한 전성기를 이루고 독창성이 돋보이는 나전칠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려나전칠기는 나전과 대모, 금속선등을 이용한 세밀한 문양과 여기에 화려함을 더하는 묘금기법이 특징이다. 금분을 이용해 선묘를 하여 칠기를 장식하는 묘금기법은 회화적 장식적 측면에서 대단히 화려하지만 묘금에 의한 문양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은 극히 드물고 묘금기법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문헌자료도 많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고려시대 칠기의 묘금을 대상으로 미시경적 관찰을 하여 금분의 특징과 교착제, 교착상태 등에 관해 밝히고 고대기술의 복원연구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금분의 입자는 불규칙한 방형과 다각형, 삼각형 모양으로 크기가 2 ㎛에서 20 ㎛까지 다양하게 보이며 금분의 입자는 끝이 말려들어가 중첩되어진 부분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금분입자는 종이가 구겨진 듯한 형상과 비슷하게 관찰되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고려시대 묘금에서 사용된 금분은 금박을 분말상태로 분쇄하여 만든 금분을 묘금에 사용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 18세기 조각가 최천약(崔天若) 연구 (A Study on the 18th Joseon Dynasty Sculturers Choi Cheon-Yak)

  • 김민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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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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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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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최천약(崔天若 1684경~1755)은 동래(東萊) 출신 무인(武人)으로 1713년부터 왕실의 공역을 담당한 별간역(別看役)이었다. 그는 능묘석물, 건축, 옥공예, 주조(鑄造) 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당시 사대부들은 '최천약은 형태가 없는 물건을 잘 창조한다[천약선창의(天若善創矣)].'라며 그의 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1713년 옥보(玉寶)의 거북이[귀구(龜瞿))를 깎는 것을 시작으로 왕실 공역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720년대에는 자신만의 옥보 거북이 양식을 만들어 냈다. 왕실 공예품 중에서 동인(銅人 1741년)은 우리나라 유일의 금속제 침구동인상(鍼灸銅人像)으로 인체 각 부분의 표현이 사실적인 작품으로 최천약이 감동(監董)한 작품이다. 1731년 인조 장릉 병풍석에 십이지신상 대신에 모란과 연꽃을 조각한 최천약은 이때부터 왕릉 및 사대부묘 석물에 감동을 시작하여 단경왕후 온릉(1739년), 의소세손묘(1752년)에서 초상조각에 가까운 문인석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천약은 공민왕릉 무인석을 모델로 조현명묘 무인석(1752년)을 제작하고, 그가 1755년 사망하자 후배들은 조현명묘 무인석을 계승해 박문수묘(1756년)와 정성왕후 홍릉 및 인원왕후 명릉 무인석(1757년)을 조각한다. 그 결과 14세기 말 공민왕릉 무인석의 충갑(衷甲), 흉갑의 매듭, 대(帶)의 화문(花紋) 등이 18세기 무인석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의소세손묘 문인석 조현명묘 무인석 등 최천약이 제작한 문무인석들은 초상조각으로도 손색 없으며, 조선 후기 조각의 대표작으로 김하정(金夏鼎) 변이진(卞爾珍) 등 별간역(別看役)들과 김천석(金千碩) 박필심(朴弼深) 등 최고의 석수(石手)들이 있었기에 제작 가능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최천약이 제작한 다른 문무인석의 발굴 및 다른 별간역들의 활동과 작품 등의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능묘석물의 실체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20세기 갓끈 재질 조사: 호박, 대모, 플라스틱, 유리를 중심으로 (Investigation of the 19th~20th century Hat String Materials at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Amber, Tortoise Shell, Plastics, Glass)

  • 오준석;이새롬;황민영;노수정;이영민;박성희;임성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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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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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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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갓끈은 조선시대 남성용 모자인 갓을 고정하는 실용적인 면과 함께 사용하는 재료의 다양화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는 장식적인 구실도 하여, 금, 은, 옥, 마노, 호박, 명박, 산호, 청금석, 수정 등 다양한 고급 재료가 사용되어 왔다.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갓끈의 재질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중 19~20세기 갓끈에 대해 재질을 조사하였다. 갓끈의 재질을 분석한 결과, 전통적인 재질로는 호박, 대모, 나무, 대나무가 사용되었으며, 상아, 유리(소다유리, 납유리, 알칼리혼합유리)와 19세기 이후 발명된 신소재인 플라스틱(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 페놀-포름알데히드, 폴리스티렌, 아크릴)이 갓끈 장식에 새롭게 사용되었다. 갓끈의 중앙 장식, 구슬, 대롱에 사용된 재료는 대모가 가장 많이 차지하며, 대나무, 나무, 호박 순으로 전통 재료의 사용 빈도가 높았다. 대나무는 대롱으로 사용하여 다른 재질의 중앙 장식과 구슬을 조합한 갓끈이 많아, 흥선대원군 집정시 의관과 문물의 간소화시책에 따른 죽영이 유행을 보여주고 있다. 호박은 갓끈의 중앙 장식과 구슬에 사용되었으며, 산지는 한국에서 발견되고 있는 호박 유물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발틱 호박으로 동정되었다. 갓끈에 사용된 유리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에서 출토되거나 전승되어온 소다유리나 알칼리혼합유리도 사용되었지만, 납유리에서는 Na2O가 검출되어 한국에서 발견되는 납유리 성분에서 벗어난 특징을 보여주어, 개항 후 해외에서 들어온 새로운 공예용 유리로 추정된다.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나 페놀-포름알데히드 등과 같은 플라스틱은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통재료인 대모, 호박, 산호 등을 대체하는 새로운 합성재료로써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는 열화에 의해 균열과 미세 균열, 부서짐과 황변이 관찰되고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20세기 갓끈 재질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개항이후 전통적인 재료의 사용과 함께, 대모나 호박과 같은 천연재료를 대체하기 위해 유리와 플라스틱과 같은 신소재의 도입이 확인되었다.

궁중 장식화의 채색 분석과 장황 고찰 (A study in pigment analysis and original mounting of the decorative painting at court)

  • 안지윤;김수연;천주현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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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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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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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궁중장식화는 궁궐의 안팎을 장식했던 것으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일월오봉도와 해반도도는 왕의 권위와 수복을 기원하여 제작된 대표적인 궁중장식화 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일월오악도와 해반도도 중 19세기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명확한 제작시기와 배설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공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와 해반도도는 보존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그 제작시기와 배설위치 그리고 제작기법 등을 확인하게 된 것으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복원과정에서 확인한 2곡병 형태의 양면 장황과 장자문의 귀갑창은 지금까지 궁중장식화에서 보고되지 않았던 첫 연구 사례이다. 또 원형 장황 복원에 의한 실측과 현존하는 궁궐 건축물의 대조 그리고 의궤 자료의 조사 등으로 창경궁영건도감의궤(1834년)에 기록된 함인정에 배설되었던 것임을 밝혀냄으로 19세기 초반의 일월오봉도와 해반도도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